썩 끌렸던 영화는 아니었지만 나머지는 다 본 관계로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영화다. 다른 극장에서 내가 보고픈 영화들이 상영하긴 하지만 너무 멀구나. 어느 극장에서 상영하는지 확인하지 않고 아무데나 가서 볼 수 있는 영화로는 현재 극장 간판에 걸린 영화는 거의 다 봤다.

  <맨발의 기봉이>는 실화다. 실존 인물 엄기봉씨의 삶을 그려낸 영화인데, 왠지 <말아톤>따라하기 같은 느낌이 들어 보지 않으려 했다. <말아톤>의 흥행에 입힙어 성공해보려는 영화로만 보였다. 평범하지 않은, 어딘지 장애가 있는 사람을 다루었다는 것도, 두 사람 모두 마라톤으로 그것을 극복하려고 했다는 것도, 마라톤으로 주목받았다는 것도, 사람사는 냄새가 짙게 풍긴다는 것도 모두 일치했다. 그래서 나중에 비디오로나 보면 볼까 했는데 결국 극장서 보게 되는구나.

 

* 뭐가 그리 좋노. 냄비 들고 맨발로 뛴다. 어머니 맛난거 가져다 드리러.



* 뛰어라. 뛰어야 된다. 어머니가 고기를 씹어먹을 수 있도록 틀니를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뛰어야 한다.

 

  엄기봉씨는 남해의 조그만 마을, 다랭이 마을에 사는 인물이다. 신체나이는 40살, 정신연령은 8살. 그는 동네 주민들의 일손을 돕고 약간의 돈을 받아와 그것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항상 맨발로 마을을 휘젓고 다니는 통에 마을 주민들은 그에게 '맨발의 기봉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운동화가 닳아서라나.

  빨래하고, 나무도 해오고, 어머니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 저멀리 마을 주민의 집에 맨발로 왔다갔다 하는 것도 꺼리지 않는다. 그에게는 오직 어머니만이 있을 뿐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어찌할꼬. 동네 이장님은 그런 기봉이가 너무나 기특하다. 한편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어찌될까 걱정도 된다. 그의 나이 40이니 어머니는 이제 많이 늙으셨다. 예전의 기봉이 어머니가 아니다. 이젠 늙어 이빠진 할머니다. 움직이기도 수월치 않다. 이런 어머니에게 틀니를 사주기 위해 기봉이는 이를 악물고 마라톤에 출전하고...

***

  부모님께 효도해야된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나이부터 지금까지 수도 없이 들어왔다. 하지만 정작 부모에게 잘 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 불효까지는 아니지만 그냥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살면 되는거지 하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많다. 나도 그렇다. 풍족한 집안에서 자란 건 아니었지만 부모님은 내게 베풀 수 있는 만큼의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비록 월 40 월세집에 살며 근근히 한달한달을 버텨나가고 있지만 아직도 어머니는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일을 하시며 생계를 책임지고 계시다. 그래도 10년전에는 이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아버지께서 경찰에 근무하실 때는 말이다. 그러나 퇴직후 퇴직금 다 주식으로 날려먹으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경제적 하락은 가정의 불화를 일으키는 주요요인이 된다. 이건 각종 사건 뉴스만으로 충분히 증명이 된다. 돈 때문에 부부가 동반자살하고, 가장이 온 집안 식구 다 죽이고 자기도 자살하고 하는 사건이 어디 한 둘이었는가. 우리집의 불화도 어쩌면 경제적인 문제, 돈에 기인하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돈을 많이 벌어다주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항상 불만이었고, 아버지는 맨날 돈돈 하는 어머니에게 신물이 났었다. 동생과 나는 남들 누리는 만큼 이것저것 누리지 못해 불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누릴 것 다 누리지 못했다고 말하면 그것은 거짓말. 없는 집안이지만 없는 것에 비해선 많이 베풀어주셨다. 그래서 그 고마움 알고 있다. 그러나 그 고마움을 제대로 표현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집들 중에선 행복한 가정이 많은 듯 하다. 물론 많이 배우고 가진 것 많은 집안 중에서도 행복한 가정은 있겠지만 그들의 행복과 전자의 행복은 좀 다른 듯 하다. '비록 없음에도 불구하고' 뭐가 그렇게 좋은건지. 기봉이와 어머니는 두 사람이 함께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두 사람의 사는 모양새를 보고 연민을 느낄 것이다. 감독도 그것을 의도하고 영화를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 실제 두 사람에겐 주변 사람들의 그런 감정은 전혀 의식할 필요조차 없는 부분이다. 우리 두 사람이 행복하면 된 것을. 왜 우리 사는 꼴을 보고 그런 불쌍한 눈으로 쳐다본담. 진짜 행복을 아는 사람들은 아무 것에도 연연해 하지 않는다. 행복은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지고 많이 누리는 것에 있지 않다. 내 마음 속에 있다. 우리를 향해 불쌍한 시선 던지고 눈물 흘리는 당신들은 행복한가?

***
기봉이를 열연한 신현준씨에게 박수를. <은행나무 침대>에서와 같은 멋있는 역할만 하더니 언젠가부터 그가 망가지기 시작했다. <가문의 위기2>를 시작으로 그랬던가. 그 훤칠한 키와 잘생긴 얼굴, 탄탄한 몸을 가지고 망가진 연기를 하기는 쉽지 않았을텐데. 배우라면 다들 뭔가 뽀대나는 멋있는 연기를 하고 싶었을텐데 그는 망가진 연기를 꺼리지 않았다. 이것이 진짜 배우가 아니고 무엇. 그는 정말 실감나게 잘 했다. <말아톤>의 조승우 만큼이나 잘 했다.

더불어 할머니 연기를 한 김수미씨와 이장 임하룡, 이장 아들 탁재훈, 사진가 김효진도 각각의 인물에 어울리는 캐스팅이었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다소 지루했으며 뭔가 밋밋했다. 감동이 복받쳐 오르는 그런 영화는 아니었다. 그냥 기봉씨의 사는 이야기를 가까이서 천천히 보여주는 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오히려 작위적인 감동보다는 살며시 내던져 보여주는 식이 더 잘한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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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5-21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영화 열심히보시네요..볼려고 하면 시간이 없고, 시간이 남으면 볼 영화가없고..

마늘빵 2006-05-21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네. <다빈치코드>도 곧 쓸거에요. 쓰는 속도가 보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안쓰게 되서요 보면 일주일 이내에 쓰려고 애쓴답니다. 쓰기 싫은데 흔적은 남기고 싶고해서 대충 쓸 때도 있지만.

반딧불,, 2006-05-21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744484

 

언제 44444는 지나갔죠?

 

갠적으로 신현준이 넘 싫어서^^;;


하늘바람 2006-05-21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대단한 영화광이시네요

마늘빵 2006-05-21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님 / 44444는 새벽에 지나갔나봐요. ^^ 아쉽게두. 신현준 싫어하는 사람 많더라구요. 전 그냥 그래요. 좋지두 싫지두.
하늘바람님 / ^^ 영화보는거 좋아하는 것 뿐이죠 머.

비로그인 2006-05-21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현준 극중에서는 좋아하는데.장군의 아들에서의 하야시 멋지잖아요.근데 신현준이 실제로는 여성스럽다고 하던데요...

비로그인 2006-05-21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현준 이거 연기 참 잘한 것 같아요.
이렇게 망가질 수 있는 배우가 몇이나 되겠어요.

마늘빵 2006-05-21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뽀뽀님 / 저도 여성스러운데. -_-;;
나를 찾아서님 / 네 제대로 망가지고 있어요. <가문의 위기2>부터 시작해서. 김수미도 망가지는 연기로 접어들고 있는 듯. 티비 안녕 프렌체스카에서도 그랬구요. 여기선 망가진건 아니었지만요.

비로그인 2006-05-21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스러운 남자가 더 매력이 있답니다.
김수미도 좋아요.ㅎㅎㅎ
근데 연기스타일이 거의 같아서 약간 식상해지고 있긴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