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오페라 관람이란걸 해봤다. 알고 지내는 누님으로부터 온 전화. 오페라 표 생겼다 가자. 그럼 당연히 가야지.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는 난데 가야지 그럼. 나의 기억을 떠올려보건데 아마도 오페라를 관람한 것은 처음이지 싶다. 클래식 계열에 무지한 나로서는 이쪽 분야에서 어떤 공연이 열리고 있는지, 어떤 유망주들이 있는지 별로 알지 못한다. 기껏해야 아주 유명한 피아니스트 동혁, 동민 형제나 장한나, 조수미 이런 사람들 밖엔 모른다.

  오페라가 아닌 성악공연을 본적은 있다. 둘째 큰아버지가 OO대 성악과 교수로 있는지라 큰 아버지의 단독 공연 때 - 그때가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혹은 입학전이었던 거 같은데 - 봤고, 이런 공연은 이번이 두번째다. 큰아버지가 성악을 해서, 막내 아들이었던 우리 아버지도 성악에 관심이 있었고, 어머니 말에 따르면 아버지도 성악을 하고 싶어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껏 아버지에게 그런 질문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러니 어머니 설에 따르면 그랬다는 것. 실제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 차에서 나비부인이나 기타 등등 - 난 잘 모르므로 - 의 음악을 틀어놓곤 했다. 내가 집에 없던 날은 내 방에 오디오에 파바로티와 쓰리 테너스 등의 음반을 꽂아놓고 두꺼운 귀마개 헤드폰을 끼고 어두운 방안에서 음악감상을 하는 모습도 두세차례 목격했다. 그리고 내가 들어가면 바로 나오셨다.

  둘째 큰 아버지의 공연을 보러 갔을 때 난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랜드 피아노 옆에서 멋진 이태리 양복 차림으로 노래부르던 큰아버지의 모습이 머리 속에 사진 한장 찍어놓은 듯 그 장면만이 남아있다. 그리고 공연전 나와 동생이 너무 어려서 들어갈 수 없다며 통제하던 어떤 누나의 모습도 떠오른다. 우리가 너무 어려서 공연에 들어가면 방해될까봐 그랬나보다. 하지만 난 너무나 조용한 아이였다. 쑥쓰러움 많고 부끄러워하고 누가 말시키면 엄마 치마 뒤로 숨어있던. 어찌하여 들어가게되었지만 뭐 그게 무슨 노래인지 내가 어캐 알어. 그리고 감상이나 할 줄 아나. 그냥 지겹다는 표정으로 끝나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그래도 꿋꿋이 얌전히 앉아있기는 했던 듯.

  한번은 둘째 큰아버지의 집에 머물때가 있었는데, 아마 이때가 엄마와 아빠가 싸웠을 때였는데, 난 그 당시에는 몰랐다. 그냥  나, 동생이 큰 아버지 집에 며칠 머물렀다. 엄마는 가고. 그때 그 집에서 불고기도 많이 먹고, 큰아버지가 고딩, 대딩 누나들 레슨하고 있으면, 문 앞에서 "아아아아아~" 따라 했던 기억이.

  내가 지금 이렇게 공연과 관련없는 나의 경험들을 늘어놓는 이유는 공연에 대해서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는 바 없는 건 역시 마찬가지고, 그냥 잘 들었다. 건대 입구에서 내려 촉박한 시간에 밥을 후딱 먹고는 빠른 걸음으로 갔더니 약간 늦었다. 그래서 맨 앞에 한 곡은 못듣고 그 다음에 입장. 나는 누님의 도움으로 공짜로 공연을 봤지만 이 공연의 관람료는 신문기상에 따르면 3만원에서 5만원 가량 한다고 한다.

 

  공연 순서는 이와 같다.

라보엠

-내 이름은 미미

-오 사랑스런 그대

-무젯타 왈츠

-안녕, 사랑하는 이여

 

토스카

-마리오, 어딨죠?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며

 

제비

-도레타의 아름다운 눈

 

나비부인

-어느 맑게 개인 날

 

잔니스키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투란도트

-들어보세요, 왕자님!

-이 궁전 안에서

-얼음장 같은 공주의 마음도

-아무도 잠 못 이루고

 

  이중에서 내가 아는 곡은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와 '아무도 잠 못 이루고' 뿐. 이 두곡은 워낙에 유명한 곡이라 누가 들어도 다 알 터. 씨에프에도 많이 나왔고 라디오 프로그램 같은데서도 쉽게 들을 수 있는 곡이다. 역시 내가 어린 시절에 아버지 차안에서 들었던 노래도 이 곡들이다. 그외의 곡들은 잘 모르지만 공연은 즐거웠다. 1시간 30분 정도의 길지 않은 시간 동안의 공연이라 지루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성악가가 피아노 옆에서 똑같은 자세로 계속 노래만 부르는게 아닌, 오페라였기 때문에, 더욱 재밌었다.

  중간중간 곡이 끝날 때마다 나와서 푸치니가 되어 자신의 삶과 생각을 풀어놓는 턴도 좋았다. 푸치니가 사랑한 여인들과의 관계, 푸치니가 이 바닥에서 유명하게 된 사연, 그리고 다른 오페라 작곡가들의 푸치니에 대한 생각 등등 해설자는 비록 컨닝페이퍼를 가지고 나와 보면서 연기하긴 했지만 공연을 이해하고 즐기는데 윤활유 역할을 해주었다. 푸치니 역을 맡은 사람은 테너 장신권이라고 하는데, 흠 목소리 멋있다. 하긴 성악하는 사람들 치고 목소리 안 멋진 사람이 어딨겠냐만.

  극중 '푸치니'에 따르면, 한국인들이 세계에서 열리는 콩쿨에서 단연 압도적이라고 한다. 또한 현재 한국 오페라에 있어서도 푸치니 오페라는 전 세계 어느나라에서보다도, 심지어 푸치니의 고장에서보다도,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으며, 푸치니 오페라가 한국의 오페라 문화에 기여한 바가 많다고 한다. 아름다운 선율과 드라마틱한 음악의 극적인 구조. 잘 모르는 장르이고, 잘 모르는 작곡가이긴 하지만, 또 앞으로도 잘 모를 듯 하지만, 무엇보다 공연에 가서 즐겁게 봤으면 그것으로 만족. 간만에 영화 아닌 다른 공연문화도 섭취해본 좋은 계기였다.

* 이걸 '팝콘&콜라'란에 넣은 것은, 달리 집어넣을 구석이 없기 때문. 오페라나 클래식 등을 자주 즐길 수 있는 처지도, 매니아도 아닌 나는 이걸 위해 새로 메뉴를 만들기는 어렵다. 흠. 비록 오페라 극장에 팝콘과 콜라를 들고 갈 수는 없지만 가장 근접한 메뉴가 여기이므로 이곳에 살짝 끼워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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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6-01-12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어... 문화생활도 하시고...

마늘빵 2006-01-12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이리스 2006-01-12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참 좋은 누님이시네 --;;

마늘빵 2006-01-12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

책방마니아 2006-01-17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지금 이렇게 공연과 관련없는 나의 경험들을 늘어놓는 이유는 공연에 대해서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란 표현 넘 웃기다. 나도 마땅히 할 말이 없으면 장황한 서론을 쓰곤 하는데 ㅋ 나도 뮤지컬, 오페라 안좋아하다가 최근 몇 년 사이에 관심이 생겼단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