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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들의 제국주의 - 한.중.일을 위한 평화경제학 ㅣ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3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6월
평점 :
작년 겨울 <88만원 세대>로 시작된 우석훈의 한국경제 대안시리즈가 막바지 작업을 향하고 있다. 집필은 끝난 듯 하고 출판사에서 마지막 편집 작업을 하고 있단다. <88만원 세대>,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에 이은 세번째 대안 시리즈 <촌놈들의 제국주의>는 전쟁 없는 평화의 경제학을 이야기한다. 우석훈에 의하면 지금의 불안한 한중일 체제는 그다지 오래가지 못한다. 30년 이내에 평화 시스템을 정착시키기 못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극단적으로는 전쟁까지 생각해둬야 한다.
중국 베이징에서 세계 각국의 선수들과 응원단, 관객들이 모여 축제를 즐기는 동안, 러시아는 그루지야를 폭격했다. 벌써 2,000명이 사망했고, 수만명이 부상당했다고 한다. 그루지야 대통령은 군대를 철수하고 휴전을 제안했지만 러시아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러시아의 실세 푸틴 총리는 이명박의 부채질을 받으며 시원하게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러시아-그루지야 전쟁의 원인은 두 가지로 분석된다. 하나는 인종(민족) 문제, 하나는 석유 자원.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나 아프가니스탄 침공, 러시아의 그루지야 침공 등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사태를 보면 석유를 둘러싼 전쟁이 지금보다 더 노골적으로 더 자주 발생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쟁이 발발할 수 있는 원인은 이 같은 핵심 자원을 둘러싼 분쟁이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사례인데, 이미 한국, 중국, 일본 사이에서도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일본은 보통국가라는 가면을 쓰고 세계 곳곳에 그들의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움직임을 노골적으로 보이고 있는데, 최근 한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한 영토 분쟁이 그 예다. 한국은 멀쩡한 우리의 영토인 독도를 일본에 빼앗길 위험에 처해있고, 중국도 등신 외교를 하는 한국을 얕잡아 보고 이어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기고 있다. 동북공정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 국가들로부터 등신 소리들어가며 왕따 당한 한국은 결국 빌붙을 곳이 미국 밖에 없는데, 미국 마저도 이런 등신 한국의 상황을 눈치채고서 어떻게 하면 더 빼먹고 버릴까를 고민하고 있는 형국이다.
결국 중국 옆에 붙어 여기저기서 등신 취급받는 한국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짓은 미국에 들러붙어 떡고물이라도 떼어먹는 방법 밖에는 못찾았는지, 받은 것도 없으면서 미국에서 미친 쇠고기 수입하고, 지도에서 독도를 원상태로 돌려놓는 대신 아프가니스탄 파병 약속을 하고 있다. 이미 이전에 이라크에도 파병시켜 미국의 우방 역할을 톡톡히 하며 욕은 욕대로 다 처먹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군사력이 막강해 미국처럼 석유 자원 있는 곳에 가서 폭격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식민지에 해당하는 다른 나라를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우석훈은 노무현이 한미FTA 카드를 만지작 거린 것은 이 같은 상황을 벗어날 카드가 그것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경제영토의 확장. 그것이 "식민지 경영의 경험도 없고 식민지를 만들어낼 능력도 없으면서, 식민지가 요구되는 제국주의화에서 생존의 돌파구를 찾을 수밖에 없는" 한국이 찾은 유일한 소 제국주의를 건설할 선택이었던 것이다. 우석훈은 이것을 '촌놈들의 제국주의'라 명명한다. 제 능력도 안되면서 경제적 제국주의를 건설하고자 하며, 국제 깡패 미국에 들러붙었지만 깡패는 아닌 척 평화를 내세우는 한국이 바로 '촌놈'이다. FTA는 과연 세계적인 흐름이고,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우리가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마지막 선택지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가 국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밝은 미래를 위해 선택해야 할 것은, 小美化가 아닌 한중일의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한국 교회가 잘하는 폭력적인 해외 선교 방식을 국제 관계에 적용했다간 병신되기 십상이다. 한류 열풍도 해외에서 돈 끌어모은다고 좋게만 볼 게 아니다. 일본이고, 중국이고, 베트남이고, 필리핀이고 가서 한국의 가수와 배우들이 돈을 쓸어담으면 '빠'가 된 일부 팬층을 제외한 대다수는 결국 제국주의적인 한국에 反韓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지금 돈을 쓸어담는다고 그게 언제까지 계속 갈 것도 아니고, 그 시기를 조금 늦춘다고 해서 한류가 제국주의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무조건적인 해외로의 경제영토 확장 방식은 한국을 국제 사회에서 왕따로 만들 뿐이다. 결국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은 장기적인 평화를 위한 기반 활동을 구축하는 것이다.
전쟁은 침체된 국가 경제를 살려주는 좋은(?) 계기가 된다. 미국의 군수산업체는 그동안 만들어둔 무기를 썩히게 되자 꼬투리를 삼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일방적 침공했고, 그간 쌓아두었던 무기를 소모하고 신속하게 만들며 24시간 공장에 불을 켰다. 침체된 미국 경제가 되살아났음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뻔한 사실. 한국은 수출로 먹고 사는 국가이고, 해외에 무조건 뭐든 많이 팔아 이윤을 남겨야 성장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러니 좁은 땅 덩어리에서 벗어나 해외로 뻗어나가려는 것은 자연스럽다. 한국이 전쟁을 하게 된다면, 전쟁이 벌어지는 지역이 한국땅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경제는 활성화 될 것이다. 과거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한국 전쟁에서 일본이 그 덕을 많이 봤음은 명확하지 않은가.
그러나, 전쟁으로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사회는 매우 슬프다. 경제살리기를 위해 도덕과 윤리를 땅에 파묻은 것도 모자라 경제를 위해 전쟁까지 불사하는 사회는, 돈이라면 전쟁에도 참가하겠다는 사람들의 인식은 너무 슬프다. 이미 우리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국민 과반수의 지지로 참전을 결정한 바 있다. 우리에게 뭔가 떡고물이 떨어질 거란 기대하에, 먼 나라에서의 전쟁으로 돈을 만져보고자. 그래서 우석훈은 평화를 위해선 첫째, 전쟁으로 덕을 보게 될 사람들이 직업군의 50%를 넘어서는 안 된다고, 둘째, 전쟁이 벌어지면 "쫄딱 망한다"라고 할 사람들이 50%를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두 가지를 기본으로 사회 전반에 평화에 대한 광범위한 지지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평화 산업 없이는 만들어내기 어렵다 한다.
30년을 잡는다. 우석훈이 학자로서 활동할 수 있는 남은 시간이 30년이요, 경제학에서의 장기가 세 번 반복될 수 있는 기간이 30년이요, 한 시민의 경제활동 기간이 통상적으로 30년이라 한다. 앞으로 30년간 우리는 전쟁보다 평화로 운용될 수 있는 평화 산업을 구축하고, 평화에 대한 사회 전체적인 지지를 끌어내야 한다. 단순히 전쟁이냐 평화냐 물었을 때 사람들은 평화를 선택하지만, 그것이 우리땅이 아닌 남의 땅에서의 전쟁이라면, 그 전쟁으로 막대한 이윤을 취할 수 있다면, 그들은 그래도 평화를 선택할까 생각해보면 대답은 부정적이다. 단순히 평화냐 전쟁이냐의 물음으로 그쳐서는 안되고, 우리는 막대한 돈을 버리고서라도 평화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내 피가 아닌 타인의 피라하여 손쉽게 그 길을 택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중일과 주변국가의 평화 시스템 구축을 위해 우석훈은, 유럽의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을 한 예로 들고 있다. 최대한 많은 학생들이 몇몇 인근 국가에 머물면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인데, 이를 통해 타국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문화 습득이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한 국가만의 공공성이 아닌 전체 시스템에 얽혀있는 다수 국가의 공공성을 만들어 낼 수 있고, 그 공공재는 곧 평화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한국이 실질적으로 '불안한 30년' 이내에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이 같은 시스템 구축이며, 이를 통해 경제협력과 평화라는 공공재를 동시에 얻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우석훈은 자신의 경제 대안 시리즈가 "우리 모두 불행해진다"는 상황인식 위에 서 있다고 말하지만, <촌놈들의 제국주의>는 <88만원 세대>만큼 암울하지 않다. 그건 어쩌면 그가 실질적인 대안을 내놓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암울하게 읽기 시작한 이 책을 덮으며 약간의 희망이나마 갖게 된 것은, 정부가, 시민이,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실현 불가능한 대안이라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88만원 세대>에서 결국 난국을 타개할 방법은 구덩이에 빠진 세대의 연대였지만, <촌놈들의 제국주의>에서는 그보다 구체적인 해결책을 보여줬다. 이명박식 불도저 정책으로는 국내에서도, 국제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소통하지 않는 불도저식 제국주의는 결국 주변국가와의 불화와 전쟁을 더 빨리 불러올 것이다. 어쩌면 이미 전쟁이 시작됐는지도. '이명박과 아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