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촛불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을 조사하고 다닌단다. 전북 전주시의 한 고등학교에 경찰이 들이닥쳐 한국지리 수업 중이던 고3 학생을 끌어다가 - 말 그대로 끌어다가 - 생활지도부로 데리고가 어디 소속이며, 누가 지시했으며, 인터넷 모임의 운영자는 누구인지 등을 물었다고 하는데, 뭐하는 짓거리인지 모르겠다. 영문도 모른채 귀를 잡힌채 끌려간 학생 입장에서야 자신이 마치 범죄를 저지르기라도한양 경찰이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물으니 쫄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 학생은 이후 다른 교사들로부터 '사고친 학생'이라는 힐난을 들어야 했다고.

  교육청은 공문을 내려보내(?) 학교 교사들로 하여금 사전 교육(?)을 시키고, 시위 현장에서 학생들을 단속하며 참여하지 못하도록 했다고도 하는데, 도대체 경찰이며 교육청이며 선생이며 무슨 생각으로 사는건지 모르겠다. 개념 좀 차리시라. 국가가 '지시'하는대로 놀아나는 꼴이라니. 경찰이야 국가 권력에 빌붙어 밥먹는 이들이니 어쩔 수 없다 하자. (이것도 사실 말도 안되지만.) 교육청과 선생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게냐. 소위 교육자라는 사람들이 자기주관과 소신없이 위에서 시킨다고 고대로 하고 앉았다. 이명박이 자신을 포함한 국가 공무원은 국민의 머슴이라고 했는데, 알고보니 교육청 직원과 학교 선생들은 정부의 머슴이 아닌가.

  경찰이 학교에 들이닥쳤을 때 선생이 취해야 할 자세는, 시킨다고 학생의 귀를 잡아끌어다 생활지도부에 앉혀 추궁을 받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이 학생은 자신의 판단 하에 나름의 사회적 문제 사안에 대한 행동을 한 것이므로, 그것이 범죄 행위가 아니라면 최대한 학생의 권리를 존중하고 보호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이 학생이 무엇을 잘못했느냐, 그게 왜 잘못이냐를 따져묻고 잘못이 아니라면, 당연히 경찰의 조사를 받지 못하도록 학생의 편에서 옹호해줘야 할 것이다. 시키면 시킨다고 귀를 잡아끌어다 데려다놓고, 그 학교 선생이란 작자들은 다같이 뭉쳐서 해당 학생을 문제아 취급이나 하고. 뭘 잘못했는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 멀쩡한 학생 하나 병신만든격. 
  
  경찰이 관련자를 처벌하고, 교육청이 선생들 풀어 집중단속하기 시작하면서, 촛불시위에 참가하는 학생의 숫자가 오분의 일 가량으로 줄었다고 하는데, 학생들이야 불법이라면 겁을 먹는 것이 당연하고, 더군다나 학교 선생들이 자기들을 단속/적발하고 심지어는 성적에 영향을 미치는 벌점까지 부과하겠다고 하니 쫄 수밖에 없다. 어른들이 대통령 하나 잘못 뽑아서 이 지경이 됐는데, 이제는 그걸 바로잡겠다고 나선 투표권도 없는 학생들마저 범죄자로 취급하고 있다. 애들을 단속하고 적발하는 구체적인 이유가 뭐냐. 어떤 행위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려면 분명 '잘못'과 '잘못하지 않음'을 구분짓는 경계선, 즉 기준이 있을텐데, 그게 뭔지를 명확히 제시하라.  

  먹고 싶으면 쇠고기는 먹고 싶은 녀석들끼리 미국에서 택배로 배달받아 쳐드시고, 먹기 싫다는 이들은 안 먹을 수 있게 해달라. 애들 먹기 싫단다. 먹기 싫다는데 왜 강제로 먹이려고 하냐. 애들이 소냐 돼지냐. (그럼 소나 돼지는 아무거나 처먹어도 된다는 말? 이런 종차별적인 발언을!) 먹기 싫다고 시위하는 애들 잡아다 족치지 말고 당신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모르는 스스로를 족쳐야 할 것이다. 모든 경찰과 모든 선생을 싸잡아 비난하자는 게 아니다. 개념있는 경찰과 선생들은 개념없는 동종업계 동료들이 '개념없는 짓'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현장에서 막아줘야 할 것이다. 아이들이 자신의 소신과 주관을 바로 펼 수 있도록 그들을 보호하고 존중해야 할 것이다.  

  국가가 창의적인 사고, 다양한 사고, 열려있는 사고를 강조하는 교육을 하자면서, 정작 이런 교육을 받고 있는 - 실제로 정말 그런 교육을 받고 있는지의 의문 - 아이들의 주체적인 판단과 사고, 그로부터 나아간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이 모순된 상황을 어찌 봐야 할 것인가. 지금 뭐하자는건지 도통 이해가 안 되니 누가 날 좀 이해시켜줬으면 한다. 나름 나도 고등교육까지 받은 녀석인데 돌아가는 꼬라지가 영 납득이 되지 않는다. 내가 멍청한건지 아니면 저들이 몰상식한건지 - 이건 비상식이 아니라 몰상식이다 - 누가 날 좀 이해시켜줬으면 좋겠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상황이 '몰상식'이라는 단어 이상으로는 해석이 되지 않는다.

  자기주관과 판단을 범죄시하는 교육은 필요없다. 이따위 '사상교육'을 하려거든 아예 대한민국의 교육철학은 사상교육임을 선언하거나, 교육을 하지 말라. 그들이 각자의 소신과 판단에 따라 살 수 있도록 고삐를 풀어달라. 고삐를 조이며 그들에게 너그들의 생각과 철학을 주입하지말고 그들을 해방시키라. 이 불쌍한 아해들이 부디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 수 있도록 내버려두라. 세상사에 관심없이 공부만 잘하는 모범생이 되고 싶지 않다. 자기 할 말 못하며 그저 성적 좋고 예의 바른 학생이 되고 싶지 않다. 공부 못해도 성적 안 좋아도 '수능 점수 높은' 대학 안 가도, 자기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개인이고자 한다. 그들은 하나의 개인이 되고자 한다. 알을 깨고 세상으로 한 발짝 내디디려는 아해들을 강제로 알 속으로 집어넣고 본드질하고 코팅포장하고 헝겁으로 둘둘 말아 자루에 담지말라. 제발.

 


댓글(7)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Arch 2008-05-15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받아서 펄쩍 뛸 것 같아요. 대체 무슨짓들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하는건지.

웽스북스 2008-05-15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거꾸로 되돌아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네요

BRINY 2008-05-15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5년이 가면 얼마나 더 날뛸까요? 역사와 경제 교과서 전면개정한다는 소리에 또 깜깜해집니다.

Mephistopheles 2008-05-15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대로 된 선생님이라면...
뒤에 어찌 되던 호통을 치며 경찰을 교실에서
몰아내야 했었어요. 완벽한 교권침해잖아요.

마늘빵 2008-05-15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니에님 / 많이 열받았습니다. 지금 2008년도 맞습니까? -_- 악령이 살아온 기분입니다.웬디양님 / 거꾸로 많이 갔죠. 서서히 가지 않고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브라이니님 / 네 가판대에서 봤어요. 중앙일보 기사였나 대문짝만하게 실었던데. -_-
메피스토님 / 왜 경찰들은 제대로 된 선생한테는 안 가는걸까요? -_- 그랬다면 그 선생님은 경찰에게 호통 한번 쳤을텐데.

marr 2008-05-15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라는 조직이 좀 골치 아픈 거 같아요. 안타깝게도 세월이 그렇게 흘렀는데 학교는 여전히 불신과 억압의 상징이자 바로 그 사례로 남아있어요. 나이를 막론하고 옛날 초중고등학교 이야기하면 좋은 일보다 그렇지 않은 기억이 더 많은 게 사실입니다. 학교를 안다닐 수도 없고, 그래서 더 골치 아픈 곳입니다. 뭐 요즘은 백화점에서 금실, 은실 수놓은 촌지봉투가 불티나게 팔린답니다.

마늘빵 2008-05-16 00:00   좋아요 0 | URL
네. 촌지 많이 없어졌고 안받으려는 선생님들도 많은데 아직도 대놓고 요구하는 녀석들도 많죠. 학생부는 생활지도부로 바뀌었고, 열린학교, 열린교육을 외치고 있지만, 현장은 사실 그렇지 못합니다. 직접 경험해본 바로는. 물론 아이들이 '기본'을 지키지 않는 문제도 심각합니다. 하지만, 애들이 그런다고 교사도 똑같이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