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경고 (아래글 18禁)
영화배우 김민정을 좋아하고, <스캔들>이후 야한사극(?)이고, 음란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주는 제목으로 꼭 보고 싶었던 영화였지만 뒤늦게 접했다. 극장개봉 당시 이 영화를 봤던 지인들의 평가에 따르면 그다지 재미도 없고 음란하지도 않다고 하는데 역시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그 말이 맞다. '음란서생'이란 제목과 저 야릇한 포스터는 역동적인 줄거리와 장면 전환, 현란하고 화려한 야한 색감을 자랑할 것만 같지만 제목 잘 짓고 포스터 잘 만들고 캐스팅 잘 했다고 해서 영화가 흥행하는 것은 아니다. 지나친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광고는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온다.
공맹의 도를 읊어대는 사대부 집안의 명문장가 윤서는 권력과 당파싸움에 관심이 없고 어느 곳에도 속해있지 않으려 하지만 누군가의 모함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사건을 맡게 되었다. 사건조사차 들른 저자거리의 유기전에서 생전 처음 보는 난잡한 책을 접하게 되고, "음경이 여성의 축축한 음부를 파고들어갔다"라는 대목에서 움찔한다. 공맹을 읊는 사대부로서 어찌 이런 음란한 글귀를 읽을 수 있단 말인가. 에이잇. 하지만 그날 밤부터 그의 작업은 시작됐다. '추월색'이라는 그럴듯한 필명까지 만들어가며 야설을 쓰기 시작한다. 추월색의 음란소설은 장안의 화제거리가 되었고, 하지만 1인자가 되고픈 욕심에 지금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방법으로 삽화를 넣기로 마음먹고는 그림 좀 그린다 싶은 의금부의 광헌을 꼬셔 '글 윤서, 그림 광헌'의 작품을 탄생시킨다. 아 노골적이고 적나라하며 세밀한 장면묘사와 탄탄한 스토리, 게다가 마치 튀어나올 것만 같은 저 음탕한 그림들하며. 책은 당연히 화제를 몰고 다니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둘만 아는 비밀이 있었으니, 윤서는 왕의 여인 정빈과 몰래 내통해 뜨거운 정사를 치루며 그리기 어려운 체위를 몰래 문틈으로 광헌에게 보여준다. 사실감있는 그림은 이로부터 탄생했다.
* 김민정. 어쩜 이렇게 이쁠 수가. 그녀의 외모와 말투는 차가움과 도도함이 함께 느껴지면서도,
어딘가 여린 상처받은 마음을 숨기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하나. 야설에 관하여
배경은 조선 시대이지만 이야기는 오늘날과 다를 바 없다. 어제 한국일보에도 소개되었지만 신춘문예에 당선된 어느 시인은 당선되기 전에 먹고 살기 위하여 야설을 썼다고 한다(나는 문단의 누군가로부터 간접적으로 들어서 그 시인이 누군지 알고 있지만 밝히지 않겠다). 머리를 쥐어짜내 밤새 야설을 써서 원고를 보내면 사무실에 있는 에로배우겸 여직원이 그랬다고 한다. "넌 이거 보고 꼴리냐" 그래 야설은 꼴려야 제맛이다. 그런데 안 꼴리니 야설이라 할 수 없지. 온갖 음란한 단어와 상황을 설정해도 야설의 첫번째 조건은 '꼴려야 한다' 이다.
소싯적 인터넷이란 것도 없었으니 음란물을 접할 기회가 지금보다 축소되었던 그때, 직접 비디오대여점에서 야한 비디오도 못빌리고, 야한 잡지도 살 수 없는 나로서는 가끔 보게 되는 스포츠 신문의 야한 여배우의 사진이나 피씨통신을 통해 야설을 보는 것이 기껏 내가 음란물을 접할 수 있는 경로였다. 꼬레 또 학교에서는 얌전한 모범생이었던 나는 몇몇 노는 친구들끼리 모여 음란물을 보는 무리에 끼어들기도 어려웠다. 이미지가 있지 내가 어찌 감히. 그러니 혼자서 야설 다운 받아 읽는 것이 유일한 길이었다. 야설은 사진보다 자극적이었다. 아 그 노골적인 성행위 묘사와 다양한 스토리는 나를 음란한 상상력의 공간으로 이동시켰고, 이러면 안돼 공부해야지, 이러면 안돼, 하면서도 하루 건너 또 보고 하루 건너 또 보고, 질린다 싶으면 다른 거 또 다운받고. 이랬더랬다. -_-
<음란서생>은 야설작가에 관한 영화다. 아무리 천한 문학(?)으로 취급된다고 하지만, 엄연히 야설도 문학이다. 그러나 그때는 지금보다 야설을 쓰고 읽는 것이 금기시되었던지라 쓰는 이나 베포하는 이나 읽는 이나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필명을 사용하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더 꼴리게 할 것인가 고민하고, 잘나가는 야설에 대해서는 팬층도 생긴다는 점에서 지금과 다를 바 없다. 심지어는 책을 보고 감동 받은 독자들은 책 뒤에 나름의 감상문 격인 서평도 썼다지. 적어도 영화에서는. 모든 면에서 밖으로 드러내지만 않았지 지금 우리가 하는 행위들과 다를 바 하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고 감동받은 이들이 서평을 쓰고 인기작가에 대해서는 대량주문이 들어오는 시스템.
요즘은 인터넷에 아마추어 작가들이 각자 필명을 가지고서 활약하고 있는데, 이들도 이쪽 분야에서는 나름 팬을 확보하고 있다. 조선시대 저잣거리의 무대가 인터넷 안으로 숨어들어왔을 뿐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허나 인터넷 야설 중에서는 아직까지 삽화가 들어간 야설은 보지 못했다. 책으로 만들어진 야설은 내가 지하세계에 어두운 관계로 아직까지 보지 못했으니 삽화가 들어간 것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고, 적어도 어쩌다 가끔 봤던 인터넷 야설에는 삽화가 들어있는 건 없었다. 만일 누군가 새롭게 시도한다면 인기작가 반열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지 않을까 싶다. 내가 해볼까? 근데 필력이 없어서 영...
둘. 음란물에 관하여
다양한 방식의 음란물이 나온다고 하나,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발전해도, 음란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읽는 것과 보는 것, 다시 말하면 글과 그림이다. 전자는 야설을 의미하고 후자는 사진, 그림, 동영상을 의미한다. 야설로 분류되지 않는 일반대중소설 중에서도 야한 장면을 묘사한 부분을 읽을 때면 가끔 '머리'가 아닌 '아래'에서 명령을 내리는대로 행동을 하게 되기도 한다. 대개 읽는 방식은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이 선호하는 걸로 알고 있다.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머리 속에서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며 자신을 야설의 여주인공에 감정이입시키기 쉽고, 남자들은 자극이 시각으로 먼저 들어오는지라 그림이나 사진, 동영상에 흥분하기 쉽다. 읽고 보는 것 모두 눈으로 하는 활동이기는 하나, 전자가 상상력이 주가 되고, 눈은 그저 받아들이는 경로가 되는 반면, 후자는 상상력보다 눈 앞에 펼쳐지는 자극적인 체위나 이쁜 가슴, 목선, 잘록한 허리가 주가 된다. 고로 대개 야설을 찾는 사람들은 남자가 아닌 여자가 주가 된다. 여자들은 상황에, 남자들은 시각의 자극에 흥분하는 듯 하다. 그러나 요새는 여자들도 시각에 길들여지는 듯 하다. 야설보다 멋있는 근육질의 축구선수들의 누드달력이나 잘생긴 꽃미남들의 상체 노출 사진 같은 걸 찾는 이들이 느는 걸로 봐서는.
솔직히 야한 것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서로 드러내지 않아서 그렇지 다들 컴퓨터 안에는 몇 개의 동영상과 사진, 혹은 야설이 존재하지 않을까 싶다. 컴퓨터 안에 없다면 아마도 즐겨찾기에 주소가 저장되어있거나 그도 아니라면 들킬까봐 혹시나 누군가가 실수로 들어갈지도 모르니깐 머리 속에 저장하고 있거나 하지 않을까. 어떤 방식으로든.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아주 가끔(정말?) P2P를 통해 다운받아 보고 지우거나,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거나 한다. 왜 혹시 동생이 컴터하다 발견할까봐 (경험상 미디어플레이어 띄우면 제목이 뜨기 때문에 엉뚱한 제목으로 바꿔주면 좋다). 혹은 야한 사이트 찾아다니며 가끔 볼 때도 있다. 유명연예인 노출 동영상이나 누드 사진, 섹스비디오 돌려보는건 문제있지만, 일반 음란물 가끔 보는거야 굳이 숨길 필요 있나. 나 야한거 좋아하고, 가끔 본다. -_- 그래서 뭐. 솔직해져봐.
셋. 영화에 관하여
영화 <스캔들>을 만든 감독의 작품이지만 전작보다 카메라 이동이 느리고 러닝타임이 길어졌으며, 야함의 정도도 낮아졌고, 스토리 또한 긴장도가 덜하다. 전반적으로 <스캔들>보다 훨씬 못하며 음란하고 재밌어야 할 영화가 지루하고 슬퍼졌다. 김민정이 아니었다면 140분은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에이 노출도 하다 말면 어떡해. 제대로 보여줘야지. -_- 기대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