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포스터 정말 잘 만들었다. 영화의 장 장면을 캡쳐해놓은 것이기도 하지만, 이 포스터 한 장이 영화의 모든 생각들을 담아내고 있다고 봐도 좋다. 근두운 탄 손오공도 아니고 구름 위를 두둥실 떠나니는 천쪼가리와 단추로 만든 망아지 인형하며, 그 위에 탄 바람에 휘날리는 두 남녀는 이 영화의 모든 것이다. "사랑은 왜 꿈처럼 되지 않았을까요?" 사랑에 관한 꿈과 현실을 이야기하는 이 영화는, 한 남자가 어머니의 말에 따라 취직하기 위해 파리로 돌아오고, 옆집에 이사온 자신의 이름과도 비슷한 스테파니라는 한 여성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전개된다.

  스테판은 꿈과 현실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인물이다. 그에게 있어 잠이란 것, 그리고 꿈이란 것은 지금의 나의 현실의 울분과 자신감 부족과 상상의 산물을 마음껏 재현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나의 머리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적어도 스테판이 잠을 자고 있는 사이 그의 머리 속에선 참으로 다양한 생각들이 뭉글뭉글 피어나는 듯 하다. 인간의 뇌 구조를 대뇌와 소뇌 혹은 좌뇌와 우뇌로 나누지 않고 온갖 키워드의 집합으로 본다면, 스테판의 머리 속엔 '회사가기 싫다' '내가 달력 디자이너로 성공할 경우 수상소감을 뭐라고 하지' '내일 스테파니에겐 어떤 선물을 줄까' '사실은 스테파니보다는 조이가 얼굴은 더 이쁜데' '아까 스테파니에게 키스했던 것이 현실이었을까' 등등이 떠돌아다니고 있을 터.

* 하늘에서 두둥실도 모자라 이제는 배에 숲을 꾸미고 셀로판 바다위를 두둥실.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인생은 어쩌면 행복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평소 눈을 뜨고 자는 나는 검은 눈동자가 왔다리갔다리 한다는 곁에 있는 누군가의 발언에 따르면 꿈을 꾸는 듯 한데 꿈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가끔 아주 가끔씩 깨어나기 직전에 아주 행복하고 황홀한 꿈을 꾸기도 하지만, 또 그것을 약간은 기억하기도 하지만, 아 그 단절의 아쉬움이란. 누구나 꿈 속에서는 바라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짝사랑하는 여자와 혹은 남자와 키스를 할 수도 있고, 가지고 싶은 값비싼 오디오를 가질수도, 자동차도 마음대로 몰 수 있고, 내가 사회적으로 이름을 떨쳐 많은 이들로부터 부러움과 칭송을 받을 수도 있다. 꿈과 현실의 구분이 어렵다면, 적어도 나는 현실 속에서도 꿈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있는거 아냐? 물론 그 정반대도 가능하지만, 스테판에겐 꿈이 현실은 아니고 현실은 꿈이 될 수 있는 듯 하다. 그의 엉뚱하고 황당한 행동들은 이를 증명해준다. 결코 누구도 현실 속에서 그만큼 엉뚱하고 황당하기란 어려우므로.

* 너네 지금 뭐하는거니. 응 이거 텔레파시 장치인데. 재밌어 해봐. 너 지금 야한거 보고 있지? 어캐 알았어?

  전혀 창의적인 일을 하지 않는 직장에서 나를 달달 볶는 그 배불뚝이 아저씨를 커다란 손으로 뭉개버릴 수도 있고, 별로 매력적이진 않지만 직장에 있는 그 여자상사와 사장실에서 욕탕을 설치하고 안에서 섹스를 할 수도 있고, 나를 무시한 사장놈을 창문으로 내다버려 거리의 청소부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아 스테파니. 스테파니. 스테파니를 빼먹을 순 없지. 나의 사랑. 나의 사랑. 오 나의 사랑. 스테파니. 그녀를 기쁘게 하기 위해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 텔레파시 장치를 만들어, 1초 타임머신 장치를 만들어 그녀를 기쁘게 해줄테야. 아 그녀가 간직하고 있는 그 망아지. 그걸 달리게 할 수 있다면, 그녀가 돌아와 그걸 보고 즐거워한다면 그녀는 날 사랑하게 될거야. 하지만 어쩌니. 꿈속에서는 그렇게 잘 되던 것이 현실로 돌아오면 왜 이 지경인지. 나는 안돼, 안돼. 좌절. 우울. ORZ. 흙흙. 그녀를 향한 나의 사랑은 나에 대한 그녀의 좌절로 환원되고 사라은 실패했네. 에헤라디야.

   이 영화는 누구나 경험해 본 첫사랑의 느낌을 전해준다. 아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 첫눈에 팍 필이 꽂혀버렸는데 어떻게 고백하지, 고백하면 그 다음은 어쩌지, 이런 멍청이 나의 고백을 받아주기나 할까. 아 너무 설레여 잠도 안와. 누가 내게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전수해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영화 속 스테판의 온갖 유치찬란하고 엉뚱한 생각과 행동들은 내가 그때 저질렀던 그것과 너무나 흡사하다.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고백하기 위해 몇날며칠을 편지를 썼다지웠다 썼다지웠다 아 글씨가 못생겨서 다시 쓰고 편지를 어떻게 전해주지, 학원에서 아무도 없을 때 전해줘야할텐데. 아 근데 그런 때가 거의 없잖아. 전해주고는 어쩌지. 용기있게 말도 건네 아니면 달랑 주고 빠져 등등의 이런 생각들. 나의 경험이다.

   영화 속 스테판의 모습은 너무나도 사랑스럽기 그지 없다. 귀엽고 깜찍하고 그런 엉뚱한 생각과 행동을 저질러놓고 매번 후회하는 그이지만 그 시도가 너무나 사랑스럽다. <수면의 과학>은 처음 사랑에 빠진 그와 그녀들을 위한 영화이다. 그때 당신이 했던, 행동하고 후회했던 그것들이 당신만 그런것이 아니었단 사실을 일깨워주는 영화다. 공감공감. 로맨틱 코미디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정말 신선하고 유쾌한 상영시간 내내 실실 웃고 쪼개다 나오는,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닌, 그런 영화이다. 로맨틱 코미디에 대한 기존의 편견은 버려.

   하나.

   이 영화는 감독 본인의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불행히도 아직까지 그 최고의 영화라는 <이터널 선샤인>을 보지 못했지만, 감독 개인의 프로필을 살며시 들여다보면, 그는 원래 밴드의 드러머였고, 이보다는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더 유명해졌으며, 그의 뮤직비디오는 최초로 밴드의 연주 모습이 나오지 않는 유치뽕짝찬란한 초딩용 애니메이션과 같은 느낌을 주는 뮤직비디오였다고. 그러나 많은 밴드들이 그에게 뮤직비디오를 의뢰했고 그러다보니 직업이 뮤직비디오 감독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는 이로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무한한 아이디어와 상상력을 영화에 재현시키기에 이른다. 그의 영화는 <이터널 선샤인>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대중에게 알려진 작품은 없지만 각각의 영화들이 감독의 상상력의 산물임을 증명해준다. 2008년에 개봉할 영화 <시간과 공간의 지배자>에서는 이번 영화의 주연이었던 스테판 역의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 열연할 것이라 전해진다.

2008 <시간과 공간의 지배자> _루디 루커 소설 원작
2007 <비 카인드 리와인드> _잭 블랙, 미아 패로 주연
2006 <수면의 과학> _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샬롯 갱스부르 주연
2005 <블록 파티>_샤펠, 모스 데프, 카니에 웨스트 등 뮤지션들
2004 <이터널 선샤인>아카데미 각본상 _짐 캐리, 케이트 윈슬렛 주연
2003 <감독의 작품: 미셸 공드리>DVD 출시
2001 <휴먼 네이쳐> _팀 로빈스, 패트리샤 아퀘트 주연

  둘. 여자들이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과 같은 남자는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해졌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캐릭터는 아닌데, 내가 볼 땐 너무 귀엽고 깜찍해서 볼따구라도 꼬집어주고 싶었거든.

 


댓글(8)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7-01-01 18: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짱꿀라 2007-01-01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고 갑니다. 리뷰를 읽으니 보고만 싶어지네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07-01-01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감독은 뮤직비디오가 굉장히 유명하다네요. 보고 싶은 영환데 볼 수 있을런지-:)

마늘빵 2007-01-01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 이 영화 재밌습니다. 유쾌하고 시종일관 웃음짓다 나오는데 마냥 웃기기만 하는 영화도 아니에요.
산타님 / ^^ 네 기회되면 한번 보세요. 후회하시지 않을 겁니다.
마음을 데려가는 인님 / 네 뮤직비디오로 굉장히 유명해졌다가 이제 영화 좀 건드려볼까 하고 이쪽으로 오게 됐다고 하네요. 자신의 무한한 상상력을 영화로 실현시켜보기 위해.

백년고독 2007-02-25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보았는데 재미있더라고요. ㅎㅎㅎ 왜 이런 영화가 좋을까요 ^^

마늘빵 2007-02-25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렇습니다. 씨네큐브 영화는 실망시킨 적이 없어요.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고 보더라도 무조건 일단 보고 봐요. 이런 영화관이 씨네큐브 밖에 없는게 안타깝습니다. 舊 허리우드와 現 스폰지하우스도 괜찮지만, 영화 고르는 안목은 씨네큐브가 훨 나은거 같아요. 시설도 그렇고.

독주가 2007-09-29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드리의 <휴먼네이처> 무척 재미있답니다..제가 몸에 털이 많아서인지 여주인공에게 확~~마음이 가더라구요.확실히 이 감독, 심각한 것을 안 심각하게 만드는 데 재주가 뛰어난 듯.

마늘빵 2007-09-29 09:05   좋아요 0 | URL
아 그 영화는 못봤어요. 음... 근데 저도 신체적 환경이 님과 비슷하겠군요. ㅋㅋ 공드리 좋아합니다. <이터널 선샤인>을 특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