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인문학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 연구자들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인기 있는 대중 강연은 심층 연구가 토대가 되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인문학 관련 전공 서적의 출판은 제안하기도 어려운 처지이다. (•••) 다른 한편, 인문학을 삶의 방편으로 삼기 점점 더 어렵게 되어 각 대학의 인문대학원은 거의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 - P6
유학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과거 전통사회에서 그 영향력이 지대했던 철학사상이다. 그 영향력 안에는 인간에 대한 이해도 당연히 포함된다. 유학적 전통 안에서, 인간은 도덕적 의미, 즉 도덕 실천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실현하고 이를 바탕으로 시공간에 얽매이지 않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른바 성인이 바로 그런 존재이다. 이런 가치관과 인간관은 과거처럼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없겠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하나의 선택지로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인간은 유한하지만, 자신을 창조해가는 존재라고 우리가 믿는다면 말이다. - P16
맹자가 주장하는 "성선"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공자의 인학을 보다 체계적으로 설명해낸 것일 뿐이다. 흔히 맹자의 성선을 인간의 본성이 선한 것으로 이해하거나 설명한다. 결코, 그렇지 않다. 본성이 선하다는 말은 본성이라는 존재가 있고 그 속성으로서 선함이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성선은 인간의 본질이 선이라는 선언이다. "사람의 실질에 따른다면 선을 실현할 수 있는데, 이것이 이른바 (성)선이다." 이것이 성선에 대해 맹자가 유일하게 직접 설명한 내용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실질이란 곧 본성을 가리킨다. 다만, 그 본성이란 잠재되어 있는 것으로 외부의 여러 조건에 따라 실현될 수도 혹은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도토리는 잘 자라서 참나무가 될 수도 있지만, 훨씬 많은 경우 참나무가 되지 못한다. 사람들이 주워서 묵을 만든다거나 다람쥐의 먹이가 된다거나 등등. 그러나 도토리가 자라나면 반드시 참나무가 되지 다른 어떤 나무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의 본질이 온전히 표현되면 그것은 선일 뿐이지 그 밖의 다은 어떤 것일 수 없다. 그래서 《맹자》에는 단 한 번도 ‘악‘이라는 글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세상에 악은 없다. 단지, 아직 선이 실현되지 않은 모습이 나타날 뿐이다. 이처럼 맹자의 "성선"은 공자의 인학을 보다 명확하게 설명하여, 사람의 내재 도덕성을 강조한 주장이다. - P20
최종적인 목표가 "안인"인데, 그것이 가능한 근거는 "수기와 마찬가지이다. 바로 도덕심이다. 그래서 공자는 "인정"을 주장했고 맹자는 "왕도정치", 순자는 "예"를 강조했다. 이는 모두 도덕에 근거한 정치, "덕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안인"에 관한 이론은 "수기"만큼 충분하지 못했다. "수"하면 따라오는 것이 "안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도덕과 정치에는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도덕적으로 훌륭하다고 해서 반드시 정치적 업적을 성취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하는 사람의 도덕적 품격이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이후의 어떤 유학자도 이런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송대 신유가철학자들도 이런 문제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는 진행되지 않았다. - P23
즉, 천이 명령한다는 것은 어떤 인격신이 있어서 그가 의지를 갖고 주재한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자신의 원리에 따라 객관적으로 운행하는 법칙과 같은 것이 있음을 전제할 뿐이다. 그래서 천을 반드시 인격신과 같은 존재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주관과 상관없이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어떤 것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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