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은 시선이 결핍된 커뮤니케이션이다. 스카이프 10주년에 발표된 한 에세이의 필자는 이렇게 말한다. "화상 통화는 곁에 있다는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이로써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을 좀더 잘 견딜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는 없어지지 않으며 그 사실은 언제나 느껴진다. 어쩌면 미세한 위치의 어긋남에서 그 점은 가장 명백하게 드러나는지도 모른다. 스카이프에서는 서로 눈을 맞추는 것이 불가능하다. 우리가 모니터 속 상대의 눈을 보고 있으면 상대는 우리가 약간 아래쪽을 보고 있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카메라가 모니터 위쪽 가장자리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바라보는 것이 언제나 누구에게 바라보이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되는 직접 대면의 멋진 특징은 사라진다. 스카이프의 시선은 비대칭적이다. 스카이프 덕택에 우리는 하루 24시간 내내 가까이 있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줄곧 서로 다른 데를 쳐다보고 있는 셈이다." 서로 다른 데를 보고 있어야 하는 이유는 비단 카메라의 각도 때문만은 아니다. 문제는 오히려 시선의 근원적인 부재, 타자의 부재에 있다. 디지털 매체는 우리에게서 점점 더 타자를 빼앗아간다. - P148

터치스크린을 만지작거리는 손가락의 움직임은 타자와의 관계에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 이 운동은 타자를 다른 존재로서 구성하는 거리를 제거한다. 우리가 그림을 직접 눌러 건드릴 수 있는 것은 그림이 이미 시선과 얼굴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타자를 손가락으로 집어서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다. 우리는 손가락으로 툭 쳐서 타자를 지워버리고 그 자리에 우리의 거울상이 나타나게 한다. 라캉이라면 아마 터치스크린이 그림과 다르다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림은 나를 타자의 시선에서 막아주는 동시에 그 시선이 드러나게 하는 스크린이기 때문이다. 반면 스마트폰의 터치스크린은 투명한 스크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터치스크린은 시선이 없다. - P149

이른바 파리 신드롬은 대체로 일본인 관광객에게 찾아오는 급성 심리 장애다. 환자는 환각, 현실감 상실, 이인증, 불안 등에 시달리며 현기증, 발한, 격렬한 심장박동과 같은 심신상관적 증세를 나타낸다. 파리 신드롬을 촉발하는 것은 일본인들이 여행 전에 파리에 대해 품은 이상적 이미지와 이 이미지에서 한참 동떨어져 있는 도시의 현실 사이의 격차다. 그렇다면 강박적으로, 거의 히스테리컬하게 사진을 찍어대는 일본인 관광객의 행태는 이미지를 통해 끔찍한 실재를 몰아내려는 무의식적인 방어 반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사진이 보여주는 이상적 이미지가 그들을 더러운 현실에서 지켜주는 것이다. - P153

오늘날 우리는 우리를 노예처럼 부리고 착취하던 산업 시대의 기계에서 해방되었지만, 디지털 기기가 낳은 새로운 강제, 새로운 노예제에 직면하고 있다. 디지털 기기는 이동성을 무기로 모든 곳을 일터로, 모든 시간을 일의 시간으로 만듦으로써 우리를 더욱 효과적으로 착취한다. 이동성이 가져온 자유는 어디서나 일해야 한다는 치명적인 강제로 돌변한다. 기계의 시대에는 기계가 한자리에 고정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이미 일과 일이 아닌 것이 명백히 구분되어 있었다. 일터는 일하지 않는 공간과 확실히 떨어져 있었고, 일하기 위해서는 일부러 일터로 가야만 했다. 오늘날 많은 분야에서 이러한 경계는 완전히 철폐되었다. 디지털 기기는 노동 자체에 이동성을 부여한다. 모두가 일터를 몸에 지고 다닌다. 이동식 노동수용소를 지고 다니는 사람들은 더 이상 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 P163

"디지털"이라는 단어는 본래 손가락이라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 digitus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세는 손가락이다. 디지털 문화는 세는 손가락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역사는 이야기다. 역사는 세지 않는다. 셈은 포스트역사적 범주다. 트윗도 정보도 하나의 이야기로 통합되지 않는다. 타임라인도 삶의 역사 또는 전기를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타임라인은 서사적이기보다 가산적이다. 디지털 인간은 끊임없이 세고 계산한다는 의미에서도 손가락질하는 인간이다. 디지털은 수와 셈을 절대화한다. 페이스북 친구들도 무엇보다 숫자로 세어진다. 하지만 우정은 이야기다. 디지털 시대에는 가산적인 것, 셈하기, 셀 수 있는 것이 전부가 된다. 심지어 애착과 호감도 ‘좋아요‘의 형식으로 세어진다. 서사적인 것은 급격히 의미를 상실한다. 오늘날 모든 것이 셀 수 있게 가공된다. 그래야만 성과와 효율성의 언어로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셀 수 없는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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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제의 한가운데로 뛰어듦
무엇보다도 불교인들은 문제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불교가 겪고 있는 위기상황은 불교의 가치관과 대립되는 여러 가지의 이질적인 가치관들 속에 싸여 있는 데서 시작되었다. 이 이질적인 것들이 함께 있으면서 부단히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만큼, 이것들과 정면 대응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출발점이다. 정면 충돌을 피하면서 문제를 외면 또는 회피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이것은 부처님이 가르친 해결 방법이 아니다. 부처님은 문제를 외면하거나 피하는 것으로 해결을 삼지 않고 정면으로 대결하여 자기 속에서 남을 보고 남에게서 자기를 봄으로써 자기와 남이라는 장벽을 뛰어넘어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식이었다. 가령, 인생의 괴로움을 문제삼을 때도 괴로움을 피하지 않고 대결하면서 괴로움의 정체를 파악하고, 마침내는 괴로움이 꼭 괴로움만은 아니라는 경지에 이르러 괴로움과 함께 사는 것으로 열반을 삼았다. 그래서 그는 남들과 똑같이 늙고 병들어 마침내 사망했다. 부처님이 생로병사를 극복하는 법은 그런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도 불교와 다른 이질적인 가치관을 피하는 식의 해결방법을 버리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것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정체를 파악하는 방법을 택해야 할 것이다. 사실, 한국불교의 세계화란 한국의 불교인들이 이질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의 세계로 자진해서 들어간다는 의미도 들어 있는 것이다.
필자는 앞에서 불교는 자본주의를 외면할 수 없으므로 오히려 그 속으로 뛰어들어가야 한다고 하였다. 기독교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것과 정면으로 대결해야 한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오히려 자기들의 신앙체계와 판이한 여러 가지 다른 종교를 많이 연구해 왔다. 그러나 불교인들 가운데 누가 그들처럼 철저하게 다른 종교를 연구했는지 모르겠다. 불교인들 역시 기독교에 대한 철저한 연구가 필요하다. 불교의 논리 속에서 기독교를 조화시킬 수 있는 영역은 무엇이며, 또 결코 조화시킬 수 없는 부분은 무엇인가를 정면대응을 통해서 밝혀 내야 할 것이다. 마르크시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실 민중 불교인들의 일부는 마르크시즘과 불교를 조화시키려는 시도를 하였다. 그러나 과연 마르크시즘과의 정면 대응을 통하여 조화를 시도했는가는 의문이다. 시대적인 사상의 조류에 비주체적으로 휩쓸린 감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불교인들은 불교를 둘러싸고 있는 이런 모든 것들과 정면대응을 통해서 불교의 체를 바탕으로 용의 세계를 넓혀 나가야 할 것이다. 체용 논리를 적용하면서 그것들이 지닌 문제점들을 한편으로 깨뜨리면서 갈등을 해소해 나가야 할 것이다. 불교와 자본주의, 공산주의, 기독교 사이의 벽을 무너뜨리고 이질적인 가치체계와 믿음체계를 가진 사람들과 21세기를 함께 염려하고 우리의 세계화를 함께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 P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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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레 이 세상에 달랑 나 혼자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녀는 딸이 하나 있었으면 싶다.
부산에서 식모살이를 할 때 그녀를 쫓아다니던 총각이 있었다. 남자라면 몸서리가 쳐졌지만 자식을 낳을 수 있으면 그 남자와 살림이라는 걸 차려 남들처럼 살아보려고 산부인과에서 진찰을 받아보았다. 산부인과에서는 그녀에게 다른 소리는 하지 않고 자궁이 한쪽으로 돌아가서 애를 낳기 어려울 거라고 했다. 자신이 만주라는 데를 다녀왔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어서 그녀는 총각 모르게 부산을 떠나왔다.
월경은 마흔 안 되어 끊어졌다.
월경이 끊어질 즈음 아래가 통째로 쏟아지는 것처럼 무겁고 퉁퉁 부었다. 서서 설거지를 하는 것도 힘들어 그녀는 식모 살던 집을 나왔다. 아래가 붓기 시작하면 허리를 굽히지도 펴지도 못했다. 호박도 삶아 먹고, 잉어도 고아 먹고, 한약방에서 약도 지어다 먹었지만 낫지 않았다. 기왓장이 좋다는 소리를 듣고 깨진 기왓장 조각을 구해다 그걸로 아랫배를 찜질했지만 그때뿐이었다. 티브이에서 사람들이 싸우거나 총소리만 나도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얼른 채널을 돌렸다. 누가 노래하는 것도 시끄럽고, 노는 것도 싫고, 다 싫었다.
경산 하양에 찜질로 여자들 병을 고치는 집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무작정 내려가 석 달을 있다 오기도 했다. 온돌방 바닥에 굵은 소금을 뿌린 뒤 솔잎을 푹신푹신하게 깔고 가마니를 덮었다. 그 위에 사람을 눕히고는 목부터 발끝까지 또 가마니를 덮었다. 온돌방이 절절 끓도록 하루 종일 장작을 때어대다가 저녁때가 되어서나 사람을 꺼내주었다. 찜질을 한 지 닷새째 되던 날 그녀의 몸 여기저기서 살점이 저절로 툭툭 떨어지고 고름처럼 누런 진물이 찔끔찔끔 나왔다.
그 집에는 그녀 말고도 다른 여자들이 와 있었다. 그녀는 그중 한 여자도 자신처럼 위안부였을 것 같다. 울산이 고향이라던 그 여자는 정작 경상도 말은 안 쓰고 서울말과 강원도 말과 일본 말을 섞어 썼다. 그 여자는 그녀에게 한탄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했다. 어려서 일본에 돈 벌러 갔다가 병신이 되어서 돌아왔다고. 남들이 볼 때는 멀쩡해 보이지만 안 아픈 데가 없다고.
"죄 지은 것도 없는데 만날 쫓기는 심정이야. 혼자 가만히 있다가도 심장이 벌벌벌 떨려. 그럴 때는 막걸리라도 한 사발 마셔야지 그만 딱 죽을 것 같아. 언제부턴가 막걸리가 저녁이야. 내가 길을 걸어가면서 주먹으로 가슴을 때려대니까 덴뿌라공장에 다니는 여자가 그러데. 그거 울화병이라고." - P176

그이의 낙은 책을 읽는 것이다. 이웃이 이사를 가면서 버린 세계 전집을 가져다 읽기 시작하면서 책 읽는 재미에 빠졌다. 학교 운동장도 못 밟아본 그이는 서른 살 되던 해 스스로 한글을 깨쳤다.
그이가 작은방으로 가 책을 한 권 들고 나온다.
"제목이 ‘부활’이야. 소련 사람이 쓴 소설이지. 벌써 여섯 번째 읽는 거야."
그이는 갈색 천 소파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는다. 소파 옆 탁자에 놓아두었던 돋보기를 쓰더니 조곤조곤 소리를 내어 책을 읽는다.
"몇십만의 인간이 한곳에 모여 자그마한 땅을 불모지로 만드려고 갖은 애를 썼어도, 그 땅에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게 온통 돌을 깔아 버렸어도, 그곳에서 싹트는 풀을 모두 뽑아 없앴어도, 검은 석탄과 석유로 그슬어놓았어도, 나무를 베어 쓰러뜨리고 동물과 새들을 모두 쫓아냈어도, 봄은 역시…… 찾아들었다. 따스한 태양의 입김은 뿌리째 뽑힌 곳이 아니라면 어디에서고 만물을 소생시켜…… 틈새에서도 푸른 봄빛의 싹이 돋고…… 둥우리를 만들기에 바쁜 떼까마귀와 참새와 비둘기는 새봄을 맞아 아주 즐거워 보였고……."
그이가 책에서 눈을 들더니 여자에게 말한다.
"몇십만의 인간이 자그마한 땅을 불모지로 만드려고 갖은 애를 썼어도, 봄빛의 싹이 돋고 새들이 찾아든다니 얼마나 황홀해. 처음에 이거 읽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내가 원래 잘 안 울거든……."
그이는 여자를 향해 싱긋이 웃어 보이고는 계속 책을 읽는다.
"이 온갖 만불의 행복을 위해서 신이 마련해주신 세계의 아름다움……."
밤이 되자 그이는 혼자가 된다. 그이는 자주색 꽃무늬가 만발하듯 화사하게 수놓인 이불 속으로 들어가 눕는다. 그이는 누군가를 기다리듯 스탠드를 켜둔다. 그러나 아무도 그이의 옆으로 와서 눕지 않는다. 아무도 그녀의 옆으로 와서 눕지 않는 것처럼. - P190

"영감이 열 살이나 어린 여자하고 살았는데, 일 나간 사이에 똥오줌도 못 가리는 아들을 방문 문고리에 묶어두고는 도망을 가버렸잖아요. 늦기 전에 팔자를 바꾸고 싶었겠지요. 남편은 늙었지, 아들은 천치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팔자를 고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겠지……. 아무튼 잃어버린 지 석 달인가, 넉 달 만에 아들을 찾아서 데리고 왔는데, 그때도 말이 분분했어요. 아들을 버렸다가 뒤늦게 죄책감이 들어 되찾아 온 거라고 끝까지 우기는 사람도 있고, 잃어버렸던 게 맞나 보다 하는 사람도 있고……."
"설마 버렸을까……."
"왜요, 버렸을 수도 있지요? 버렸다가 뒤늦게 죄책감이 들어 찾아 데리고 왔을 수도……인간이 뭔 짓은 못하겠어요?"
"그렇지, 인간이……."
그녀는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겨우 열세 살이던 자신을 하루아침에 만주에 데려다 놓은 것도 인간이었다. - P204

양파망이 회색 철 대문 기둥에 걸려 흔들리고 있다. 뭔가 이상하다. 새끼 고양이가 그 안에 들었다면 저렇게 가볍게 흔들릴 리 없다.
그녀는 주저하면서도 철 대문 가까이 다가가 양파망을 들여다본다. 양파망은 비었다.
누군가 양파망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새끼 고양이를 꺼내준 것이다.
누굴까? 누가 새끼 고양이를 양파망에서 꺼내 놓아주었을까? - P205

어머니가 아파 죽어간다…… 어머니가 죽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차를 두고 고향으로부터 두 통의 전보를 받은 분선은, 고향으로 더는 전보를 부치지 않았다.
분선은 어머니와 목화를 따다가, 일본 헌병들에게 강제로 끌려왔다. 분선이 열네 살 때였다.
우리 애기를 데리고 가려면 나를 죽여놓고 데리고 가라.
분선은 붙잡고 매달리는 어머니의 배를 헌병들이 군화 신은 발로 내리찍었다. 어머니가 비명을 지르며 목화밭을 구르던 모습이 분선은 잊히지 않는다 했다.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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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어떻게, 세상에 어떻게 자신을 비하시키는 감정 그 자체에서 쾌락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이 자신을 존경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지금 어떤 감상적인 후회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보통 나는 이렇게 말하는 것을 참을 수 없다. <미안해요 아빠, 앞으론 그러지 않겠어요.>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와 반대로, 아마도 바로 내가 이런 말을 너무 쉽게 또한 능숙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때떄로 꿈에서든 정신적으로든 내게 잘못이 없을 때에도, 나는 마치 의도적인 것처럼 그런 상황에 처하곤 한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비열한 일이다. 그리고 이럴 때도 역시 나는 다시 기분이 감상적으로 변해서 후회하고 눈물을 흘리고는 내 자신을 속인다. 비록 결코 내가 꾸미려고 한 짓은 아니지만 웬일인지 내 마음이 그런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자연의 법칙조차도 비난할 수 없다. 비록 자연의 법칙이 끊임없이 인생 내내 나를 모욕했어도 말이다. 이 모든 것을 회상하기란 혐오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그 당시 또한 혐오스러웠다. 흔히 그렇듯이 1분 정도 지난 후에 나는 이미 화가 나서 깨닫곤 했다. 이 모든 것은 거짓말이고, 혐오스럽고, 꾸며낸 거짓말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즉, 그런 모든 후회들, 그런 모든 감동들, 새로 태어나겠다는 모든 맹세들이 단순히 거짓말이란 걸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고 만일 나에게 무엇 때문에 그렇게 자신을 일그러뜨리고 괴롭혔느냐고 당신이 물어본다면, 나는 팔짱 끼고 앉아 있기가 매우 지루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바보 같은 기행에 몰두하게 되었다. 정말이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당신 자신들을 봐라. 신사 양반들, 그러면 당신은 그렇군, 하고 이해하게 될 것이다. 적어도 삶 비슷한 것을 살기 위해, 나는 모험들을 생각해 냈으며, 나 자신의 삶을 만들어 냈다. 얼마나 많이, 별다른 이유도 없이 모욕감을 느끼곤 했는가. (중략) 의식의 직접적이며 당연하고 솔직한 결말은 정말 이 무기력이다. 즉 의식적으로 팔짱을 끼고 앉아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위에서 이미 언급했다. 반복하지만, 강조해서 반복하지만, 모든 직선적인 사람들과 활동가들은 그들이 멍청하고 편협하기 때문에 행동하는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여기에 그 답이 있다. 그러한 편협함 때문에, 그들은 근시안적이고 이차적인 원인들을 가장 근본적인 원인들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마찬가지 방식으로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 쉽게 자신들의 행동을 위한 흠잡을 데 없는 기초를 발견했다고 확신하고 안도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결국 행동하기 위해서 당신은 당신의 마음을 미리 완전히 편안하게 만들어야 하고 어떤 의심도 남아 있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당신은 어떻게 내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 것이라고 기대하는가? 나를 지탱할 만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들은 어디에 있고, 어디에 기초들이 있을까? 어디에서 그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사색하는 데에 단련이 되어 있고 따라서 하나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을 끌어내게 마련이다. 이것이 모든 의식과 사고의 정확한 본질이다. 다시 한번, 이때 우리는 자연의 법칙을 따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마지막으로 어떤 결과를 갖게 되는 것인가?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런 식으로 한없이 계속된다. 얼마 전에 내가 복수에 관해서 말했던 것을 상기해 주기 바란다. (당신은 아마도 그것을 깊이 규명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은 복수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정당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가 가장 근본적인 원인과 기초를 발견했다는 것, 즉 정당성을 찾았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그의 마음은 모든 면에서 편안해졌으며, 이제 그는 침착하고 성공적으로 복수를 할 수 있다. 자신이 가장 정직하고 정의로운 일을 하고 있다고 확신하면서……. 그러나 나는 이것에서 어떤 정의도 볼 수 없고, 어떤 종류의 미덕도 찾을 수 없다. 따라서 만일 내가 복수를 한다면, 나는 그것을 오직 악의 때문에 하게 될 것이다. 물론 악의는 나의 모든 의심을 극복할 수도 있고, 성공적으로 나의 근본적인 원인을 대신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안에 어떠한 악의도 없다면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나는 얼마 전에 바로 여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러한 빌어먹을 의식의 법칙들 때문에, 나의 악의는 다시 또 화학적으로 분해되어 버린다. 그래서 바로 눈앞에서 악의의 대상이 사라져 버리고, 이성들도 증발해 버리고, 원인 제공자 또한 발견되지 않고, 모욕도 더 이상 모욕이 아닌, 급기야는 치통처럼 운명적인 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원망할 수 없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다시 한번 예전과 똑같은 방법만 남게 된다. 즉 벽을 가능한 한 힘껏 아프게 들이받는 일이다. 이렇게 당신을 체념하게 된다. 왜냐하면 당신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의식을 억누르면서 맹목적으로 생각 없이, 가장 근본적인 원인도 없이 당신의 감정에 휩쓸리려고 해보라. 또 증오하거나 사랑하려고 해보라, 단순히 팔짱 끼고 앉아 있지 않기 위해서. 아무리 늦어도 이틀만 지나면 당신은 당신 자신을 경멸하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당신은 알면서도 자신을 속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결과로 무엇을 얻는가? 비누 거품과 무기력이다. 아, 신사 양반, 내가 자신을 현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유일한 이유는, 내 전생애를 통해 어떤 것도 시작하지 않았고 끝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좋다, 좋다, 그래 나는 수다쟁이다, 해롭지 않은 화가 난 수다쟁이다. 그러니 이제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만일 모든 현명한 사람들의 직접적이고 유일한 목적이 지껄이는 것이라면, 즉 의도적으로 허튼소리를 늘어놓는 것이라면……? - P455

오, 단지 게으름 때문에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더라면, 주여 그랬더라면, 나는 얼마나 나 자신을 존경했을 것인가. 나는 내가 게으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존경했을 것이다. 그 게으름이 스스로 믿어 의심치 않는 단 한 가지의 긍정적인 자질이기만 하다면 말이다.
질문: 그는 누구인가?
대답: 게으름뱅이다.
자신에 관해서 그러한 말을 들었다면 대단히 신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그것은 나에 관하여 무엇인가 말할 것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게으름뱅이>, 그것은 신분이자 사명이며 약력이다. 농담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 그렇다. - P459

모든 바라는 것과 사유하는 것은, 실제로 미리 계산될 수 있기 때문에 ㅡ 언젠가 우리는 자유 의지라고 부르는 것의 법칙들을 확실히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ㅡ 그때에 모든 농담들을 제외하고는 도표 같은 것이 준비될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실제로 그 도표에 따라 모든 것을 원하게 된다. 예를 들어 만약에, 언젠가 그들이, 내가 어떤 사람을 조롱하는 손가락질을 했을 때 그것이 내가 그 짓 이외에 다른 짓은 할 수 없다는 정확한 이유 때문이며, 그 짓은 바로 이 손가락으로 행해져야 했다라고 나에게 계산해서 입증한다면, 그때에 내 안에 자유롭게 남아 있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특히 내가 배운 사람이고 어딘가에서 학업을 마친 상태라면 말이다? 나는 아마 향후 30년의 내 모든 인생을 미리 계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인생이 이런 식으로 준비되어 있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이 순간과 정확히 같은 상황하에서 자연이 우리에게 의견을 물어보지 않음을 쉴새없이 스스로에게 반복하면서 우리가 상상하는 자연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실제로 그 도표와 달력대로 나아가게 된다면, 심지어는 시험관으로라도 가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으며 시험관까지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심지어 당사자 없이도, 그것은 계속될…….」 - P471

여기에 항상 만나게 되는 그런 종류의 것이 있다. 당신도 알다시피, 인생에는 그토록 예의 바르고 분별 있는 사람들이 항상 나타나게 마련이다. 자신들의 인생 전체를 통해 가능한 한 예의 바르고 지각 있게 행동하는 것을 자신들의 목표로 삼고 있는, 바로 그런 현인들과 박애주의자들이 있는 것이다. 그들은 형제들에게 실제로 이 지구상에서 예의 바르면서 동시에 분별 있게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엄격한 목적을 위하여, 빛을 전파하기 위하여 애쓴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예견하건대, 이러한 박애주의자들 중 많은 이들은 조만간, 그들의 인생의 말미에서 무엇인가 바보 같은 일을 함으로써, 때때로 아주 꼴사나운 어떤 짓을 저지르기까지 함으로써, 그들의 목표를 저버릴 것이다. - P474

그러나 그는 언제나 자신의 뜻대로 할 것이다! 세상에 저주를 퍼부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저주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이기 때문이다(이것은 그의 특권이기도 하며, 다른 동물들과 가장 현저하게 인간을 구별짓는 것이기도 하다). 장담컨대 그는 저주하면서 자신의 뜻대로 할 것이며, 그는 정말로 자신이 인간이며 피아노 건반이 아니라는 것을 자신에게 확신시킬 것이다! 만일 당신이, 모든 것들이 ㅡ 혼돈, 어둠, 저주 ㅡ 그 도표에 의해 계산될 수 있어서 그 예비 계산의 가능성이 모든 것을 멈추게 하고 이성이 우위를 점할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때 인간은 이성을 갖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하기 위해서 일부러 자신을 미치게 만들 것이다. 나는 이것을 믿으며, 이것을 책임질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의 일이란 정말로 매순간마다 그가 톱니바퀴가 아니라 인간임을 자신에게 입증시키는 데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 P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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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8-17 2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하로부터의 수기, 가 이렇게 페이지 수가 많은 책이었나 의문이 들었는데. 다른 작품과 같이 실린 것이군요. 지하로부터의 수기, 의 팬입니다.
주인공이 꼭 저의 분신처럼 생각하면서 읽었거든요.^^

베텔게우스 2023-08-17 22:24   좋아요 1 | URL
네, 두 작품의 합본이에요. 저도 페크님 댓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정말 놀라운 작품 이더라구요..
 

외양상의 덕이 항상 진정한 덕은 아니다
군주가 앞에서 말한 것들 중에서 좋다고 생각되는 성품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면, 그야말로 가장 칭송받을 만하며, 모든 사람들이 이를 기꺼이 인정할 것이라는 점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갖추는 것이 가능하지 않고, 게다가 인간의 상황이란 그러한 성품들을 전적으로 발휘하는 미덕의 삶을 영위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신중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권력기반을 파괴할 정도의 악덕으로 인해서 악명을 떨치는 것을 피하고, 또 정치적으로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 악덕일지라도 가급적 피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후자의 악덕은 별다른 불안을 느끼지 않고 즐겨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악덕 없이는 권력을 보존하기가 어려운 때에는 그 악덕으로 인해서 악명을 떨치는 것도 개의치 말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신중하게 고려할 때, 일견 미덕으로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의 파멸을 초래하는 반면, 일견 악덕으로 보이는 다른 일을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고 번영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 P110

칭송과 비난을 받을 만한 덕과 악덕
사람들을, 특히 (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군주들을 논할 때, 그들은 다음과 같은 성품을 가졌다고 칭송받거나 비난받게 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즉 어떤 사람은 인심이 후하고, 다른 어떤 사람은 인색하다는 평을 받습니다. 베푸는 사람과 탐욕적인 사람, 잔인한 사람과 자비로운 사람, 신의가 없는 사람과 충직한 사람, 여성적이고 유약한 사람과 단호하고 기백이 있는 사람, 붙임성이 있는 사람과 오만한 사람, 호색적인 사람과 절제하는 사람, 강직한 사람과 교활한 사람, 유연한 사람과 완고한 사람, 진지한 사람과 경솔한 사람, 경건한 사람과 신앙심이 없는 사람 등으로 평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 P110

사랑을 느끼게 하는 것보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
그런데 사랑을 느끼게 하는 것과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 중에서 어느 편이 더 나은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었습니다. 제 견해는 사랑도 느끼게 하고 동시에 두려움도 느끼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둘 다 얻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굳이 둘 중에서 어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저는 사랑을 느끼게 하는 것보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인간 일반에 대해서 말해줍니다. 즉 인간이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러우며 위선적인 데다 기만에 능하며 위험을 피하려고 하고 이익에 눈이 어둡습니다. 당신이 은혜를 베푸는 동안 사람들은 모두 당신에게 온갖 충성을 바칩니다. 이미 말한 것처럼, 막상 그럴 필요가 별로 없을 때, 사람들은 당신을 위해서 피를 흘리고, 자신의 소유물, 생명 그리고 자식마저도 바칠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정작 그러한 것들을 필요로 할 때면, 그들은 등을 돌립니다. 따라서 전적으로 그들의 약속을 믿고 다른 대책을 소홀히 한 군주는 몰락을 자초할 뿐입니다. 위대하고 고상한 정신을 통하지 않고, 물질적 대가를 주고 얻은 우정은 소유될 수 없으며, 정작 필요할 때 사용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자보다 사랑을 베푸는 자를 해칠 때에 덜 주저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일종의 감사의 관계에 의해서 유지되는데, 인간은 악하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을 취할 기회가 생기면 언제나 그 감사의 상호관계를 팽개쳐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려움은 항상 효과적인 처벌에 대한 공포로써 유지되며, 실패하는 경우가 결코 없습니다. - P118

미움을 피하는 방법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명한 군주는 자신을 두려운 존재로 만들되, 비록 사랑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미움을 받는 일은 피하도록 해야 합니다. 미움을 받지 않으면서도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는 군주가 시민과 신민들의 재산과 그들의 부녀자들에게 손을 대는 일을 삼가면 항상 성취할 수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의 처형이 필요하더라도, 적절한 명분과 명백한 이유가 있을 때로 국한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는 타인의 재산에 손을 대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어버이의 죽음은 쉽게 잊어도 재산의 상실은 좀처럼 잊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재산을 몰수할 명분은 항상 있게 마련입니다. 약탈을 일삼으며 살아가는 군주는 항상 타인의 재산을 빼앗을 핑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목숨을 앗을 이유나 핑계는 훨씬 더 드물고, 또 쉽게 사라져 버립니다. - P119

다수는 외양에 따라서 판단한다
따라서 군주는 그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들이 앞에서 이야기한 다섯 가지 성품들로 가득 차 있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를 대면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지극히 자비롭고 신의가 있으며 정직하고 인간적이며 경건한 것처럼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특히 경건한 것처럼 보여야 합니다.
이러한 문제에 관해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손으로 만져보고 판단하기보다는 눈으로 보고 판단하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볼 수는 있지만,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밖으로 드러낸 외양을 볼 수 있는 반면에 당신이 진실로 어떤 사람인가를 직접 경험으로 알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소수는 군주의 위엄에 의해서 지지되는 대다수의 견해에 감히 도전하지 못합니다. 모든 인간의 행동에 관해서, 특히 직접 설명을 들을 기회가 없는 군주의 행동에 관해서 보통 인간들은 결과에만 주목합니다.
군주가 전쟁에서 이기고 국가를 보존하면, 그 수단은 모든 사람에 의해서 항상 명예롭고 찬양받을 만한 것으로 판단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통 사람들은 외양과 결과에 감명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사람들은 대다수가 보통 사람들일 뿐입니다. 대다수와 정부가 하나가 될 때 소수는 고립되기 마련입니다. 이름을 굳이 밝히지는 않겠지만, 우리 시대의 한 군주는 실상 평화와 신의에 적대적이면서도, 입으로는 항상 이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가 이를 말 그대로 실천에 옮겼더라면, 그는 자신의 명성이나 권력을 잃었을 것이며, 그것도 여러 번 잃었을 것입니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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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8-17 2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흥미롭게 읽은 책입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배우게 해 줍니다.^^

베텔게우스 2023-08-17 22:29   좋아요 0 | URL
동감입니다.

몇 년간 틈틈히 메모해 둔 문장들을 올해부터 매일 조금씩 서재에 올리고 있습니다. 군주론이 아마 마지막 작품이 될 것 같네요... ㅎㅎ

2023-08-18 1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18 1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