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은 시선이 결핍된 커뮤니케이션이다. 스카이프 10주년에 발표된 한 에세이의 필자는 이렇게 말한다. "화상 통화는 곁에 있다는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이로써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을 좀더 잘 견딜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는 없어지지 않으며 그 사실은 언제나 느껴진다. 어쩌면 미세한 위치의 어긋남에서 그 점은 가장 명백하게 드러나는지도 모른다. 스카이프에서는 서로 눈을 맞추는 것이 불가능하다. 우리가 모니터 속 상대의 눈을 보고 있으면 상대는 우리가 약간 아래쪽을 보고 있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카메라가 모니터 위쪽 가장자리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바라보는 것이 언제나 누구에게 바라보이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되는 직접 대면의 멋진 특징은 사라진다. 스카이프의 시선은 비대칭적이다. 스카이프 덕택에 우리는 하루 24시간 내내 가까이 있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줄곧 서로 다른 데를 쳐다보고 있는 셈이다." 서로 다른 데를 보고 있어야 하는 이유는 비단 카메라의 각도 때문만은 아니다. 문제는 오히려 시선의 근원적인 부재, 타자의 부재에 있다. 디지털 매체는 우리에게서 점점 더 타자를 빼앗아간다. - P148
터치스크린을 만지작거리는 손가락의 움직임은 타자와의 관계에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 이 운동은 타자를 다른 존재로서 구성하는 거리를 제거한다. 우리가 그림을 직접 눌러 건드릴 수 있는 것은 그림이 이미 시선과 얼굴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타자를 손가락으로 집어서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다. 우리는 손가락으로 툭 쳐서 타자를 지워버리고 그 자리에 우리의 거울상이 나타나게 한다. 라캉이라면 아마 터치스크린이 그림과 다르다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림은 나를 타자의 시선에서 막아주는 동시에 그 시선이 드러나게 하는 스크린이기 때문이다. 반면 스마트폰의 터치스크린은 투명한 스크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터치스크린은 시선이 없다. - P149
이른바 파리 신드롬은 대체로 일본인 관광객에게 찾아오는 급성 심리 장애다. 환자는 환각, 현실감 상실, 이인증, 불안 등에 시달리며 현기증, 발한, 격렬한 심장박동과 같은 심신상관적 증세를 나타낸다. 파리 신드롬을 촉발하는 것은 일본인들이 여행 전에 파리에 대해 품은 이상적 이미지와 이 이미지에서 한참 동떨어져 있는 도시의 현실 사이의 격차다. 그렇다면 강박적으로, 거의 히스테리컬하게 사진을 찍어대는 일본인 관광객의 행태는 이미지를 통해 끔찍한 실재를 몰아내려는 무의식적인 방어 반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사진이 보여주는 이상적 이미지가 그들을 더러운 현실에서 지켜주는 것이다. - P153
오늘날 우리는 우리를 노예처럼 부리고 착취하던 산업 시대의 기계에서 해방되었지만, 디지털 기기가 낳은 새로운 강제, 새로운 노예제에 직면하고 있다. 디지털 기기는 이동성을 무기로 모든 곳을 일터로, 모든 시간을 일의 시간으로 만듦으로써 우리를 더욱 효과적으로 착취한다. 이동성이 가져온 자유는 어디서나 일해야 한다는 치명적인 강제로 돌변한다. 기계의 시대에는 기계가 한자리에 고정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이미 일과 일이 아닌 것이 명백히 구분되어 있었다. 일터는 일하지 않는 공간과 확실히 떨어져 있었고, 일하기 위해서는 일부러 일터로 가야만 했다. 오늘날 많은 분야에서 이러한 경계는 완전히 철폐되었다. 디지털 기기는 노동 자체에 이동성을 부여한다. 모두가 일터를 몸에 지고 다닌다. 이동식 노동수용소를 지고 다니는 사람들은 더 이상 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 P163
"디지털"이라는 단어는 본래 손가락이라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 digitus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세는 손가락이다. 디지털 문화는 세는 손가락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역사는 이야기다. 역사는 세지 않는다. 셈은 포스트역사적 범주다. 트윗도 정보도 하나의 이야기로 통합되지 않는다. 타임라인도 삶의 역사 또는 전기를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타임라인은 서사적이기보다 가산적이다. 디지털 인간은 끊임없이 세고 계산한다는 의미에서도 손가락질하는 인간이다. 디지털은 수와 셈을 절대화한다. 페이스북 친구들도 무엇보다 숫자로 세어진다. 하지만 우정은 이야기다. 디지털 시대에는 가산적인 것, 셈하기, 셀 수 있는 것이 전부가 된다. 심지어 애착과 호감도 ‘좋아요‘의 형식으로 세어진다. 서사적인 것은 급격히 의미를 상실한다. 오늘날 모든 것이 셀 수 있게 가공된다. 그래야만 성과와 효율성의 언어로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셀 수 없는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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