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제의 한가운데로 뛰어듦
무엇보다도 불교인들은 문제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불교가 겪고 있는 위기상황은 불교의 가치관과 대립되는 여러 가지의 이질적인 가치관들 속에 싸여 있는 데서 시작되었다. 이 이질적인 것들이 함께 있으면서 부단히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만큼, 이것들과 정면 대응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출발점이다. 정면 충돌을 피하면서 문제를 외면 또는 회피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이것은 부처님이 가르친 해결 방법이 아니다. 부처님은 문제를 외면하거나 피하는 것으로 해결을 삼지 않고 정면으로 대결하여 자기 속에서 남을 보고 남에게서 자기를 봄으로써 자기와 남이라는 장벽을 뛰어넘어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식이었다. 가령, 인생의 괴로움을 문제삼을 때도 괴로움을 피하지 않고 대결하면서 괴로움의 정체를 파악하고, 마침내는 괴로움이 꼭 괴로움만은 아니라는 경지에 이르러 괴로움과 함께 사는 것으로 열반을 삼았다. 그래서 그는 남들과 똑같이 늙고 병들어 마침내 사망했다. 부처님이 생로병사를 극복하는 법은 그런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도 불교와 다른 이질적인 가치관을 피하는 식의 해결방법을 버리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것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정체를 파악하는 방법을 택해야 할 것이다. 사실, 한국불교의 세계화란 한국의 불교인들이 이질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의 세계로 자진해서 들어간다는 의미도 들어 있는 것이다.
필자는 앞에서 불교는 자본주의를 외면할 수 없으므로 오히려 그 속으로 뛰어들어가야 한다고 하였다. 기독교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것과 정면으로 대결해야 한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오히려 자기들의 신앙체계와 판이한 여러 가지 다른 종교를 많이 연구해 왔다. 그러나 불교인들 가운데 누가 그들처럼 철저하게 다른 종교를 연구했는지 모르겠다. 불교인들 역시 기독교에 대한 철저한 연구가 필요하다. 불교의 논리 속에서 기독교를 조화시킬 수 있는 영역은 무엇이며, 또 결코 조화시킬 수 없는 부분은 무엇인가를 정면대응을 통해서 밝혀 내야 할 것이다. 마르크시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실 민중 불교인들의 일부는 마르크시즘과 불교를 조화시키려는 시도를 하였다. 그러나 과연 마르크시즘과의 정면 대응을 통하여 조화를 시도했는가는 의문이다. 시대적인 사상의 조류에 비주체적으로 휩쓸린 감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불교인들은 불교를 둘러싸고 있는 이런 모든 것들과 정면대응을 통해서 불교의 체를 바탕으로 용의 세계를 넓혀 나가야 할 것이다. 체용 논리를 적용하면서 그것들이 지닌 문제점들을 한편으로 깨뜨리면서 갈등을 해소해 나가야 할 것이다. 불교와 자본주의, 공산주의, 기독교 사이의 벽을 무너뜨리고 이질적인 가치체계와 믿음체계를 가진 사람들과 21세기를 함께 염려하고 우리의 세계화를 함께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 P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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