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식물 - 그들에게 내가 꼭 필요하다는 기분이 소중하다 아무튼 시리즈 19
임이랑 지음 / 코난북스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에, 나리가 죽었다. 죽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는데 어쩔 수 없이 인정을 할 수밖에 없는 지금이라는 시간이 도래했다. 나리는 내 이름을 따서 “나무리라”라는 이름을 지어준 4월에 우리 집에 온 해피트리 친구였다. 무엇이 이유였는지는 모르겠다. 어느 날 시름시름 앓았는데, 이전처럼 햇빛이 강해서 그런가 보다. 물을 좀 주면 괜찮아지겠지. 리나도 그랬었는데 지금은 예쁘게 살아있잖아.라는 생각으로 물을 담뿍 주었다. 그랬는데도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볼 때마다 물을 주며 제발 살아줘...라고 말하고 있는 날 발견했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나리는 아마 무식한 양육자의 물들로 인해 과습으로 죽은 것 같다. 가지를 다 잘라주고, 지금은 뿌리만 남았는데 물을 주지 않은지 꽤 됐음에도 불구하고 뿌리에 물이 한가득 묻어 나오니까. 물로 인해 뿌리가 뚝뚝 끊어지고 있으니까.

 

    

 

 

 

 

이후 결혼기념일을 맞아 꽃집에 간 나는 다정한 꽃집 사장님께 여쭈었다. 데리고 있던 해피트리가 있는데, 죽어버렸다고. 아무래도 가능성이 없는 것 같다고. 그러다가 인터넷에서 구매했다는 내 말에, 아마 뿌리가 이리저리 움직여 몸살을 앓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하셔서 나는 놀라서 “집에 온 지 8개월인걸요.”라고 했는데, 잘 살다가 한순간에 죽음을 맞이하는 식물도 있다고 하셨다. 나리는 말을 할 수 없거니와 또 죽었기에 도대체 무엇 때문이냐고 물을 수는 없다. 그저 내 탓이랄 수밖에.

 

    

 

 

봄까지 기다려보라는 꽃집 사장님의 말씀도 있으셨지만, 나는 나리에게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나리의 뿌리를 빼내지 못했다. 미안해서. 뿌리를 빼내지 않는 것이 더 미안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계속 미안해서. 내가 식물을 죽인 것은 이번이 처음도 아닌데 더 애틋한 까닭은, 내가 힘들 때에 데려온 친구가 리나와 나리였기 때문일 것이다. 볼 때마다 마음이 아릿아릿해져서 내 손으로 쟤를 자연으로 돌려보낼 수 있을까.. 싶은 것이다.

 

 

 

 

 

그 사이에 내가 꽃꽂이를 할 때 만든 새(bird) 모양의 토피어리가 죽었다. 2018년이면 2년도 다 되어가는데 그 친구가 죽은 것. 나는 그 친구에게 별 애정이 없었지만, 물을 주는 이는 항상 J였기에 J는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갑작스러운 이별이 있다는 것을 너무 자주 알게 된다는 사실이 슬프다. 그래서 9월에 사두고 읽지 못했던 (아니, 초반까지 읽다가 다른 책을 읽으며 까먹어서 완독하지 못했던) <아무튼, 식물>을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실은 바로 이전에 <초록이 가득한 하루를 보냅니다>라는 책을 읽어서 한 템포 쉬어가고 싶기도 했는데, 그와는 결이 다르니 괜찮을 것이었다.

 

 

 

 

 

 

 

13. 신기하게도 나는 이 시기에 식물에 깊이 매료되었다. 아무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우리는 금방 친구가 되었다. 나를 소개할 필요가 없었고, 스스로를 치장하거나 즐거운 표정을 짓지 않아도 괜찮았다. 식물들은 내가 애정을 쏟은 만큼 정직하게 자라났다. 그 건강한 방식이 나를 기쁘게 만들었다.

 

내가 식물을 들여놓은 이유였다.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거기에 덧붙이자면 내가 원하는 때에 초록을 보는 것이 좋아서.

 

 

 

 

 

58. 내가 돌보는 것들은 적어도 내 거실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고사리들처럼 내가 원해서 돌보는 것들이었으면 좋겠다.

 

나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식물을 좋아했다. 분명하게 생명이 있지만 나를 성가시게 하지 않아서. 물론 때가 되면 물도 줘야 하고, 환기도 시켜줘야 하고, 볕도 보게 해주어야 하지만 어디에도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들어있지 않아서. 그래서 나의 경우에는 시간을 내어서 식물들을 돌본다기보다 시간이 날 때 양껏 예뻐해 준다. 이와 같은 조금은 나태한 양육자의 손에서도 잘 커주어서 고마울 따름이다.

 

 

 

 

 

43. 나를 돕기 위해, 나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존재하는 친구들을 형편없이 대접하지 않기로 한다.

 

조금 반성이 되던 문장이었다. 나는 내 친구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에 대해. 하지만 반성한다고 달라질 것 같진 않다.

 

오늘은 그동안 예뻐해 주지 못한 만큼 더 예뻐해 줘야지, 하고 다짐하는 편이 더 빠르다.

 

 

 

 

 

113. 매일 아침 물을 주고 새순이 올라오는 것을 구경하는 게 즐거웠다. 그들에게 내가 꼭 필요하다는 기분이 소중하다.

 

한동안 새순이 많이도 올라왔다. 새순이 올라올 때마다 사랑이 피어난다고 말을 하기도 했다. 그 말은 실제로도 효과가 있었고, 그래서 새순을 볼 때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들이 눈 녹듯 사라졌다. 대신 그 새순들을 보며 소원을 하나씩 빌었다. 매일매일 다른 타인들의 건강들을.

 

 

 

 

 

60. 매일같이 공을 들이고 최선을 다해 키워도 결코 자라나지 않는 것, 슬프지만 그런 것들은 엄연히 존재한다. (...) 어렴풋이 모르는 척 계속 해나가고 싶은 마음. 결국 벽에 부딪혀 멈추게 되더라도 계속 키우고 싶은 간절한 마음.

 

쉽게 자라는 것들과 아무리 공을 들여도 자라지 않는 것들이 뒤섞인 매일을 살아간다. 이 두 가지는 아무래도 삶이 쥐여주는 사탕과 가루약 같다.

 

이번 생은 한 번뿐이고 나의 결정들이 모여서 내 삶의 모양이 갖춰질 테다. 그러니 자라나지 않는 것들도 계속해서 키울 것이다. 거대하게 자라나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내 삶 속에 나와 함께 존재하면 된다. 물론 달콤한 사탕도 포기하지 않는다. 입속에서 사탕을 열심히 굴리면서 가루약을 조금씩 뿌려 먹는 삶을 살아가야지. 아무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고단하고 행복한 매일이다.

 

저자는 완벽하게 죽은 것이 확인되면 바로 치우는 편이라고 했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식물을 데려와야지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엔 그게 잘 안된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생각해볼 뿐. 새 친구를 들여야지. 그리고 다른 친구들에게 인사도 시켜야지. 깍지벌레가 생기면 안 되니까, 깍지벌레가 가까이 갈 수 없는 정도의 거리는 두고 ‘반갑다 친구야’를 해줘야지. 함께 같이 살아가야지.

 

 

 

 

 

 

 

123. 식물의 삶이란 가끔 매우 끈질겨서 아름답다. 소리 없이 죽어가기도 하지만 비밀스럽게 다시 살아나기도 한다. 마른 나뭇가지에서 새순이 돋아나는 그 마법 같은 순간은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는 나무를 몇 개월씩이나 정성껏 돌보게 만들 정도로 중독적이다.

 

나는 책을 읽고 생각했다. 우선 나리를 봄까지 보류해야겠다고. 뿌리가 썩어서 뚝뚝 끊어지는 것을 이미 목격했지만, 좀 더 잠시 곁에 있게 해도 괜찮을 것 같아서. 봄이 아니더라도, 이번 해까지만이라도. 그래야 내가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러고 보니, 끝까지 나는 나만 생각한다.

 

 

 


 

 

 

 

 

 

오탈자 111. 어느 새 절로 작물들이 자라나 ▶ 어느새 절로 작물들이 자라나 (or) 어느 새에 절로 작물들이 자라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간을 건너는 집 특서 청소년문학 17
김하연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문도 모른 채 새하얀 운동화를 갖게 된 네 명의 학생들. 그리고 운동화를 신은 사람에게만 보이는 파란 대문의 집. 자신을 따라오라고 말하던 할머니에게 의구심을 품지만 결국은 네 명의 아이들이 파란 대문의 집에 모이게 되고 그곳에서 더욱더 기괴한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운동화를 갖게 된 것은 집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이고, 집은 ‘시간의 집’이라고 하며 그들이 규칙만 잘 지킨다면 12월 31일에 과거-현재-미래 중 한곳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들이 지켜야 하는 규칙이라 함은 집과 운동화에 대해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집에 들러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의 집 앞에서 어느 시점으로 갈지 선택하기 이전에 소망 노트를 쓸 수 있지만, 집이 이루어줄 수 없는 소망이 있다는 것과, '죽음'에 대해서는 과거와 미래에도 바꿀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선택을 하면서는 모든 기억을 잃게 된다는 것도 명심해야 하는 부분이다.

 

 

아이들은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것을 믿으라는 것인지 대해 코웃음을 치지만 누군가는 암에 걸린 엄마가 쾌차하기를 바라고, 누군가는 학교 친구들에게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고 있고, 누군가는 사이코패스라는 별명으로 시니컬하게 살고 있기에 말도 안 되는 그 이야기들을, 한 번쯤 믿어보고 싶다. 하지만 그중 한 명, 지금 삶이 너무나도 만족스럽고 행복하기 때문에 왜 자신이 집의 선택을 받았는지 의아해하는 단 한 명이 있다는 것은 비밀이다.

 

 

 

 

149. 지난 일은 훌훌 털어 버리고 빨리 일어서라는 어이없는 말은 하지 않겠다. 어른도 그럴 수는 없으니까. 나는 네가 충분히 괴로워하고 아파하길 바란다. 그런 무시무시한 일을 겪었으니 힘들고 겁이 나는 건 당연한 일이야. 솔직히 난 우리의 삶이 ‘苦’라고 생각한다(이 정도 한자는 알고 있겠지?). 인생에는 씁쓸하고 괴로운 일이 가득하다는 뜻이야. 인생은 ‘苦’이지만, 그럼에도 ‘Go’ 해야 하는 것이란다. 이런 말을 해 봤자 지금은 와닿지 않겠지만, 이 세상은 진성여중 2학년 교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단다. 삶의 길을 걷다 보면 손을 잡고 함께 온기를 나눌 사람들을 분명히 만나게 될 거야. 네가 그런 사람들을 이미 만난 것처럼.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채기도 전에 각기 다른 아픔과 힘듦 속에서도 열심히 발버둥을 치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아픔이 어떤 식으로는 발가벗겨지고, 공유하면서 그들은 비로소 ‘친구’가 되었다. 아픔과 힘듦을 어떤 식으로 극복해야 하는지 아이들은 알지 못했지만, 그 속에서 진심으로 걱정과 위로를 주고받는다. 약점을 단점으로 악용하는 친구인 척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해보면, 참 눈물 나게 건강한 친구들이다. 읽으면서 마음이 짠해지며 나도 모르는 울음들이 몽글몽글 끓어올랐다. 그 끓어오르는 울음들은 수증기가 되어 증발되기를 바랐다. 그 수증기는 아이들의 얼굴을 더욱 뽀얗고 반들반들 거리게 해줄 것이라고 지금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내게도 이런 기회가 주어지면 어떨까. 과거와 현재, 미래 중 나는 어떤 것을 고르게 될까. 몇 달 전의 나는, 미래를 골랐을 것이 분명하다. 조금이라도 복기되는 슬픔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니까. 내가 했던 그 모든 것들이 내가 할 수 있던 최선이 아니라면 나는 분명 과거를 선택했겠지만, 그 슬픔을 다시 겪고 싶지는 않으므로 과거는 절대 선택하지 않을 것이었다. 나는 내 선택이 최선이었을 거라고 믿는다. 또 그래야만 내가 살아낼 수 있고, 그것만이 나를 살게 한다. 책의 집사도 말하지 않았나. ‘죽음’은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이라고. 과거로 갈 이유가 전혀 없다.

 

 

좋은 일과 슬픈 일은 짝꿍이라서 함께 오는 것이라면,

 

 

과거는 과거 대로 좋았고,

현재는 현재 대로 좋고,

미래는 미래 대로 좋겠지.

 

 

 

현재의 나는, 꽤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

사소하고 시시하게 행복하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내가 고민하고 고민하고 고민한 걸과 값이라 믿는다.

그냥 만들어지는 것은 없으니까.

과거의 삶도, 미래의 삶도 결국은 내가 만드는 것임을 모르지 않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현재를 선택한다.

지금에 최선을 다하며 현재를 충실하고 촘촘하게 살아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들로 산다는 건 아빠로 산다는 건 -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자식을 키우며 어른이 되었습니다
배정민 지음 / 왓어북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몇 년 전에 어디선가 본 영상을 떠올렸다. 자녀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과 같은 류의 질문들에 답을 쓰는 것이었는데 아버지인 그들은 대체로 수월하게 써나갔다. (사실 이것도 자녀가 어릴 때나 질문에 답하는 게 가능한 것이라는 반문은 조금 하고 싶지만 그게 쟁점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 대상이 자녀에서 아버지로 바뀌며 그들의 펜은 주춤거리는 시간이 길어졌고 곤란해했다. 우리가 생각보다 부모님에 대해 아는 것이 없구나,라는 것을 보여주는 짤막하지만 강렬한 영상이었다.





18. 아버지는 좋게 말해 지방 중소기업의 관리자였고, 까놓고 말하면 건설업 먹이사슬 끝에 있는 손바닥만 한 하청업체에서 사장과 직원들 사이에 끼인 채 고생하는 월급쟁이였다.



내가 일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아버지의 어깨에 실린 무게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그래서 현재 남녀 차별에 대해 오가는 이야기들 중 여성은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 유리천장이 존재한다.라는 말에는 동의를 하지만, 남성과 여성을 비교하는 순간부터는 좀 다른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남성은 남성들 대로 고충이 있기 마련이니까.



나의 아버지는 이와는 조금 다른 일을 하시지만, 역시 여느 아버지들처럼 세상의 험한 구석들을 매만지고 다니시느라 손이 새카맣게 더러워지는 것도 잊으며 일을 하신다. 일의 특성상 이런 분들을 가까이에서 자주 만나 뵐 수가 있다. 나는 그때마다 나의 아버지가 생각이 나서 조금 더 살뜰하게 챙겨드리려고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지만, 말이라도 상냥하게 하려고 한다든가, 내 몫으로 들어온 간식을 나눠드린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어떤 이유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는 마음으로. (물론 예외는 있지만.) 가장의 노동(육체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다시 목격하게 되니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이 곤란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기도 했다. 듣기가 곤욕스러울 땐 실제로 도망쳐있기도 했고.





저자는 여느 자식처럼 아버지가 만들어둔 울타리에서 무럭무럭 자라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 다시 아버지가 되었다. 하지만 3년 전에 영면하신 아버지를 다시 살릴 수는 없으니, 기억으로라도 아버지를 회상하여 추억한다. 경험해보지 않은 입장에서 쉬이 말할 수는 없지만 언제나 한결같이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대상에 대한 부재를 선뜻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웠을지 가만히 짐작만 해볼 뿐이다.

아버지를 추모하고 상실감을 위로하는 방식으로 저자는 글을 썼다. 일상을 지내며 문득문득 생각나는 아버지와의 모든 것들을 브런치와 페이스북에 올렸고, 그 글들을 다듬어 이 책이 탄생하였다고 하니, 이 글은 ‘아버지께 바치는 글’이라 하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더 이상 아버지와 함께 이야기를 할 수도 없고 손도 잡지 못하고

아버지가 만든 닭볶음탕을 먹을 수도 없다.

하지만 아버지와 함께 관람한 한화는 여전히 남아있고,

아빠가 한 음식 중 제일 맛있는 것은 콘푸라이트라고 말하는 아들이 있다.



소중했던 사람을 기리며 추억하되

소중한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누리기를.





다만,

자신의 할머니를 ‘어미‘(p260) 자신의 아버지를 ‘아비’(p273)라고 표현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눈살이 좀 많이 찌푸려졌다.

아무리 단순 지칭이라고 하더라도 애정 있는 단어는 아니다. (어미와 아비는, 사전으로 어머니와 아버지를 낮춘 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키다리 아저씨 Art & Classic 시리즈
진 웹스터 지음, 수빈 그림, 성소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가장 좋아했던 동화는 <폴리애나>와 <키다리 아저씨>였다. 폴리애나와 주디(제루샤 애벗)는 꽤 닮아있어서 둘 중 누군가를 더 편애하는 일은 없었다. 폴리애나는 폴리애나 대로, 주디는 주디 대로 사랑스러웠다. 타고난 성격이 그러지 못한 나는 언제나 폴리애나와 주디를 닮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그들 덕분에 세상을 살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불만족스러운 환경에서도 기쁨을 찾는 일이라는 사실을 품고 자라난 어른이 되었다.




<폴리애나>는 유년기에 몇 번이나 읽고 이후에는 읽지 않던 책이라면, <키다리 아저씨>는 청소년기에 읽고 그 이후에도 두어 번 더 읽기도 했었는데 예쁜 일러스트가 입힌 예쁜 책으로 다시 읽을 기회가 생겼다.



그런데 이건 예상 밖의 일이었다. 그럴 줄 몰랐다. 상상도 못했다. 이제껏 그런 적이 없으니까.

주디의 마지막 편지를 읽으며 마음이 난데없이 벅차오르고 눈물이 그렁그렁 해질 것이라고는.

나의 주디가 행복해지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니까.




너무 유명한 이야기라서, 줄거리를 적어야 하나 고민했지만 짤막하게 적어보기로 한다.

매달 첫 번째 수요일에는 존 그리어 고아원에 후원 재단 임원들이 방문한다. 그곳에서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제루샤 애벗의 글을 읽고 그녀를 대학에 보내 작가로 키울 생각으로 후원을 하겠다고 나선 이가 있었다. 그렇게 후원을 받게 되고 그에 대한 보답은 후원자인 존 스미스 씨에게 편지를 쓰는 것.

제루샤가 본 존 스미스 씨의 특이점은 키가 크고, 부유하고, 여자아이를 싫어하는 것인데 그중 누구도 모욕하지 않을 수 있는 키가 큰 것을 내세워 ‘키다리 아저씨’라고 애칭을 붙인다. 이후로는 계속해서 제루샤의 아니, 주디가 키다리 아저씨에게 쓰는 편지로 이야기를 읽어나갈 수 있다.







61. 아저씨도 저만큼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초반에 자신이 고아원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들을 하며 얼마나 신이 나 있는지에 대해 쓰여있는데, 주디가 얼마나 기뻐하는지 그 부분을 읽을 때마다 나는 내가 후원자라도 되는 양 매우 뿌듯해진다. 그러면서 키다리 아저씨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뚝뚝 묻어 나오는지.



물론 자신은 후원을 받는 입장이기에 어떤 것도 바라서는 안 되지만, 가끔은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편지를 쓴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때에는 통통 심술을 부리기도 하지만, 바로 뒤에는 후회가 담긴 편지를 쓰기도 한다. 당연하다. 후원을 해준다고도 하지만, 어떠한 물음에도 답이 없다면 실체가 있는 사람인지 의심을 하게 될 테니까.






94. 살면서 훌륭한 인격이 필요한 때는 커다란 곤경에 부딪혔을 때가 아니에요. 심각한 위기가 닥치면 누구든 용감하게 일어나서 참담한 비극에 맞설 수 있어요. 하지만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사소한 불행을 웃어넘기려는 그때야말로 진짜로 정신력이 필요하죠.

저도 그런 정신력을 기르려고요. 인생이란 최대한 능수능란하고 정정당당하게 승부해야 하는 게임일 뿐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그래서 만약 제가 지더라도 어깨 한 번 으쓱하고 그냥 웃어넘길 거예요. 이기더라도 마찬가지고요.

주디는 어떻게 이런 부분들을 알게 되었나, 경험이 그리 많지도 않을 텐데... 싶으면서도 내가 가진 경험과 그가 가진 경험은 분명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의 경험이 많거나 적거나 크거나 작거나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경험이 많지도 않은데’라는 말은 내가 오만을 떠는 것과도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이 점에 대해서는 주디보다는, 작가인 진 웹스터가 부유함을 넘어 풍요로운 생활을 했던 사람인데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싶은 것이었다.






203. 세상은 행복으로 가득하고, 모든 사람이 골고루 누릴 수 있을 만큼 충분하죠.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들을 기꺼이 맞을 자세만 갖추면 돼요. 그 비결은 유연한 마음가짐에 있답니다.

내가 청소년기에 주디에게 배웠던 것인데, 참 오래 잊고 있었다.

다가오는 것들을 기꺼이 맞을 자세, 유연한 마음가짐.





233. 정말로 중요한 건 대단한 기쁨이 아니에요. 소소한 기쁨을 한껏 즐기는 것, 그게 중요하죠. 아저씨, 제가 참된 행복의 비결을 알아냈어요. 바로 현재를 사는 거예요. 지나간 일을 영원히 후회하거나, 다가올 일을 미리 걱정하는 게 아니라 지금 바로 이 순간을 최대한으로 누려야 해요. 농사를 짓듯이요. 농사 방식에는 넓은 땅에서 대규모로 경작하는 조방적 농업과 좁은 땅을 일궈 최대한으로 생산하는 집약적 농업이 있어요. 앞으로 저는 집약적 삶을 살 거랍니다. 매 순간을 즐길 거고, 또 나 자신이 그렇게 즐긴다는 걸 의식하면서 살아갈 거예요.

사람들은 대부분 삶을 살지 않아요. 그저 경주할 뿐이죠. 저 멀리 지평선에 놓인 결승점에 도달하려고 온 힘을 짜내서 달려가기만 해요. 냅다 달리는 데만 열중하니까 숨이 가쁘고 헐떡거려서 주변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을 모두 놓치고 말아요. 그러다가 문득 깨닫는 거죠. 자기가 다 늙고 지쳤다는 사실을요. 또 결승점에 도달하고 도달하지 못하고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도요. 저는 길가에 앉아서 작은 행복을 많이 쌓기로 마음먹었어요. 위대한 작가가 되지 못한다고 해도요.

나는 일상에서 나의 기쁨들을 둘러보는 것들을 좋아했다. 여유롭고 내 삶이 만족할 때에도 나는 내 삶의 기쁨들을 찾아내는 것을 더 열심히 즐겼고, 힘이 들거나 지루해질 때에도 기쁨 찾기 놀이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언제나 그것은 내게 큰 힘이 되었다. 누군가는 합리화라고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내가 알지 못하던 삶에 대한 감사함을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했고, 내가 여전히 기뻐하는 일이 있구나 하며 안도하고 나를 일으켜 세우는 시간이 되기도 했었다.


올해 여름에 같은 출판사의 책이었던 <오즈의 마법사>를 읽으며 오즈를 만나면 나는 무엇을 달라고 할까, 고민했었다. 결론은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일상에서 즐거움을 찾는 일을 잃지 않게 해달라고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언제라도 ‘나’로 돌아올 수 있도록.






“Jamais Je Ne t'Oublierai.” (당신을 절대 잊지 않을게요.)

실천을 하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정말 힘이 들 때는 나도 모르게 잊고 있기도 했었는데 비로소 삶이 안정이 되는 시기가 되니 자연스레 일상의 기쁨들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지금의 나’는 ‘이전의 나’와는 조금 다른 결을 가지게 되겠지만, 나의 본질은 찾을 수 있게 되었음에 감사하다.

그런 점에서 어린 시절에 폴리애나와 주디를 만났다는 것은 내게 큰 행운이 아니었을까. 나의 네잎크로버. (책의 첫 번째 표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샛연두색이다.)

 

 


 

덧. -)

책에 그려져있는 일러스트도 예뻐서 몇 번이고 보게 된다.

그중 가장 좋아했던 그림들만 몇 추려서 올려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버 빈지 다이어트 - 100만 독자의 식습관을 바꾼 초간단 멘탈 트레이닝
글렌 리빙스턴 지음, 조경실 옮김 / 봄빛서원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한 번도 날씬했던 적이 없다. 살을 10kg를 뺐을 때에도 통통의 범주에 들어가 있었고, 지금은 뚱뚱의 범주에 너무 자연스럽게 흡수되어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 초, 3월에 나는 총 5kg가 빠졌었고, 그 체중은 고스란히 몇 달 뒤에 다시 그 체중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 상태에서 다시 5kg가 쪘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된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살들과, 누가 따라올까 무섭게 급하게 찐 살들이 나를 위협한다는 사실을 느꼈다. 현재 건강에는 문제가 없으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체감할 수 없지만, 내가 위협을 받는 것은 자존감 하락이었다. 지금이 여름이었다면 훨씬 더 심했을 텐데 지금은 가을_ 이런저런 옷을 입어 조금 둔해질 수는 있겠지만 기존에 맞던 바지가 맞지 않고, 기존에 입었던 원피스가 더 이상 예쁘다고 생각되지 않는 몸뚱어리를 보며 나는 극심한 좌절을 느꼈다.

 

 

먹지 말아야지, 간헐적 단식을 하자.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게 참 쉽지 않았다. 몇 년 전에 그 방법+운동으로 다이어트를 했기 때문에 혼자였으면 가능했을 일이, 지금은 가능하지 않다. 하려면 할 수도 있겠지만, 배우자가 곁에 있으니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내가 중심을 잡지 못하는 것도 한몫한다.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이유도 있고 방법도 아는데 실천이 안 되니 이게 참 나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한 번 사는 인생 그냥 막 살아보자! 하기에 나라는 사람은, 생각보다 (내 기준에) 예쁜 옷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하자’는 가설은 저자와 마찬가지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도 알아버렸다.

 

 

그래서 난생처음 운동을 글로 풀어놓은 책도 읽어보고, 다이어트에 관한 책도 읽게 되어버렸다. 살이 적당히 찌면 안 읽었을 텐데... 네버 빈지 다이어트(Never binge again)다. 책의 저자인 글렌 리빙스턴은 130kg에서 무려 40kg를 감량했다고 한다. 책은 운동에 대한 이야기보다 식이에 대한 이야기, 특히 binge(과식,폭식)에 대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그러니까, 저자는 과식 및 폭식을 하지 않은 비법으로 40kg를 뺐다는 것인데 그 비법이 궁금하다.

 

 

나는 섭취하는 음식이 생각보다 적은 편이다. 밥을 두세 숟가락만 먹어도 금세 포만감을 느끼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살려면 충분히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술, 술이 문제다. 술이 들어가면서는 안주가 필요하다. 대부분 내가 과식 또는 폭식을 하는 것은 그때인 것 같다. 그리고 먹고 싶은 음식이니까 배가 불러도 미련하게 먹고 있다는 것. 정말 미련해. 과식과 폭식을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려운 문제다.

운동보다 식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깨달은 것은 8년 전의 일이고, 또 새로운 운동을 할 때마다 느끼기도 한다. 그동안 스트레칭을 해도, 스피닝을 해도, 수영을 해도, 필라테스를 해도, 살이 빠지지 않는 것은 식이가 병행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 내가 작은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으니. (엉엉)

 

 

저자는 말한다. 내 안에 꿀꿀이가 산다고 가정하고, 자신과 꿀꿀이를 분리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그리고 그 꿀꿀이가 꽥꽥대는 소리를 무시하는 것.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꿀꿀이는 과식&폭식을 하는 내 모습을 합리화하는 나 자신인데, 꿀꿀이라고 생각하고 꿀꿀이와 싸워서 이겨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걸 서술하는 방식은 조금 유치하다고 생각했지만,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꿀꿀이라는 이름 대신에 다른 이름을 지어줘도 된다고 해서 고민 중이다. 나는 새를 싫어하니 짹짹이라고 해볼까. 하고 방금 생각해봤다.

 

 

이 책을 읽은 효과로는, 과자가 먹고 싶거나 밥을 먹었는데도 허기가 진다면 80% 정도는 ‘지금은 밥 먹는 시간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게 됐달까. 하지만 나머지 20%는 ‘짹짹이가 배가 고프구나. 나도...’의 범주에 들어가기도 한다. 풋.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은, 저녁을 바나나 두 개로 간단히 요기하고 허기가 지고 있는데, ‘짹짹이 내일 아침에 밥 먹자.’하고 달랜다. 살뜰하게 보살피지 말라고 했지만, 달래지 말라고는 안 했으니 나는 좀 달래보려고 한다. 보나 마나 요즘 아침을 먹는 습관이 좀 무너져서(잠을 좀 더 자려고) 안 먹게 될 수도 있겠지만,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지금을 잘 견뎌야 한다. 그 와중에 배우자가 라벤더 차를 건네줘서 홀짝홀짝 마시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요즘의 짹짹이가 나한테 짹짹거리는 것이,

어차피 내일부터는 안 먹기로 했잖아. 오늘만 먹자.

오늘 하루 정도는 괜찮아.

맨날 이렇게 먹는 것도 아닌데 뭐.

와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어제도 과음을 했고, 과자도 탈탈 털어 넣었다.

으음... 할 말이 증발되어버렸다. 어제의 나 반성해!

 

 

48. 여러분이 성공할 유일한 방법은 내가 먹고 삼키는 모든 음식에 대해 100퍼센트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책에서 위의 문장과 더불어 식단을 계획할 때 제한사항을 너무 많이 두지 말라는 말도 함께 와닿았는데, (여전히 먹을 생각뿐) 조금은 느긋하게 시도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책에서는 강력하게 제지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난 평생을 그러고 살 자신은 없다. (난 나에 대해 너무 관대해. 살이 찌는 이유를 이렇게 알아간다...) 하지만 폭식이 한 번 무너지면 다시 늪에 빠져버리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작심삼일이라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책에서는 그게 아니라고 하지만.

 

 

책 덕분에 내 안에 살고 있는 짹짹이를 만날 수 있었고, 나를 되돌아보며 앞으로의 계획을 단단하게 수립하며 나 스스로를 단련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우선 나는 술을 당분간 끊어봐야겠다. 믹스커피도 몇 달 동안 안 마시고 있는데 술을 당분간 끊는 건 껌이지!라고 생각하기엔 연말이라 쉽지는 않겠지만, 노력해볼 생각이다. (꼭) - 짹짹아 당분간 좀 힘들 거야. 그럼 안녕!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