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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로 산다는 건 아빠로 산다는 건 -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자식을 키우며 어른이 되었습니다
배정민 지음 / 왓어북 / 2020년 10월
평점 :
몇 년 전에 어디선가 본 영상을 떠올렸다. 자녀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과 같은 류의 질문들에 답을 쓰는 것이었는데 아버지인 그들은 대체로 수월하게 써나갔다. (사실 이것도 자녀가 어릴 때나 질문에 답하는 게 가능한 것이라는 반문은 조금 하고 싶지만 그게 쟁점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 대상이 자녀에서 아버지로 바뀌며 그들의 펜은 주춤거리는 시간이 길어졌고 곤란해했다. 우리가 생각보다 부모님에 대해 아는 것이 없구나,라는 것을 보여주는 짤막하지만 강렬한 영상이었다.
18. 아버지는 좋게 말해 지방 중소기업의 관리자였고, 까놓고 말하면 건설업 먹이사슬 끝에 있는 손바닥만 한 하청업체에서 사장과 직원들 사이에 끼인 채 고생하는 월급쟁이였다.
내가 일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아버지의 어깨에 실린 무게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그래서 현재 남녀 차별에 대해 오가는 이야기들 중 여성은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 유리천장이 존재한다.라는 말에는 동의를 하지만, 남성과 여성을 비교하는 순간부터는 좀 다른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남성은 남성들 대로 고충이 있기 마련이니까.
나의 아버지는 이와는 조금 다른 일을 하시지만, 역시 여느 아버지들처럼 세상의 험한 구석들을 매만지고 다니시느라 손이 새카맣게 더러워지는 것도 잊으며 일을 하신다. 일의 특성상 이런 분들을 가까이에서 자주 만나 뵐 수가 있다. 나는 그때마다 나의 아버지가 생각이 나서 조금 더 살뜰하게 챙겨드리려고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지만, 말이라도 상냥하게 하려고 한다든가, 내 몫으로 들어온 간식을 나눠드린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어떤 이유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는 마음으로. (물론 예외는 있지만.) 가장의 노동(육체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다시 목격하게 되니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이 곤란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기도 했다. 듣기가 곤욕스러울 땐 실제로 도망쳐있기도 했고.
저자는 여느 자식처럼 아버지가 만들어둔 울타리에서 무럭무럭 자라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 다시 아버지가 되었다. 하지만 3년 전에 영면하신 아버지를 다시 살릴 수는 없으니, 기억으로라도 아버지를 회상하여 추억한다. 경험해보지 않은 입장에서 쉬이 말할 수는 없지만 언제나 한결같이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대상에 대한 부재를 선뜻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웠을지 가만히 짐작만 해볼 뿐이다.
아버지를 추모하고 상실감을 위로하는 방식으로 저자는 글을 썼다. 일상을 지내며 문득문득 생각나는 아버지와의 모든 것들을 브런치와 페이스북에 올렸고, 그 글들을 다듬어 이 책이 탄생하였다고 하니, 이 글은 ‘아버지께 바치는 글’이라 하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더 이상 아버지와 함께 이야기를 할 수도 없고 손도 잡지 못하고
아버지가 만든 닭볶음탕을 먹을 수도 없다.
하지만 아버지와 함께 관람한 한화는 여전히 남아있고,
아빠가 한 음식 중 제일 맛있는 것은 콘푸라이트라고 말하는 아들이 있다.
소중했던 사람을 기리며 추억하되
소중한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누리기를.
다만,
자신의 할머니를 ‘어미‘(p260) 자신의 아버지를 ‘아비’(p273)라고 표현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눈살이 좀 많이 찌푸려졌다.
아무리 단순 지칭이라고 하더라도 애정 있는 단어는 아니다. (어미와 아비는, 사전으로 어머니와 아버지를 낮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