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2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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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건축 잘 모른다. 건축만 모르지 않지만, 어떤 건 잘 몰라도 이야기에 빠져들기도 한다. 건축 이야기를 지금까지 봤는지 어땠는지 잘 모르겠지만 거기에 빠지지는 못하는 것 같다. 이건 내 성격 탓이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좋아하고 자주 가는 공간이 있다고 하는데 난 그런 곳 없다. 집이 멋지고 살기 편하면 좋기는 하겠지만, 난 그저 조용하고 잠 자고 지내기만 해도 괜찮다. 이래서 내가 정리를 못하는구나. 지금은 괜찮아도 시간이 더 가면 안 좋을 텐데. 늘 정리해야지 생각만 한다. 책 본 다음에 쓰는 건 괜찮은데 왜 이렇게 움직이기 싫은지. 한번 하면 조금만 하지 않을 거다. 집은 갈수록 낡는데 딱히 하는 거 없이 산다. 그런 걸 해야 한다는 생각도 안 했다. 여기에서 오래 살았는데 이 집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조금 아쉬운 건 있다. 낮아서. 좀 높은 곳이었다면 여름에 비 오면 덜 걱정할 텐데.

 

 책 제목은 본래 《화산 자락에서》(책날개에 쓰인대로 썼다)인데 한국에서는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로 바꿨다. 한국에서 지은 제목이 더 좋기는 하다. 이 소설을 쓴 마쓰이에 마사시는 출판사에서 일하다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기도 했다. 마쓰이에 마사시는 예전부터 건축을 좋아해서 그런 책을 읽었단다. 자신이 관심 갖고 알아두면 그게 언제 어디서 도움이 될지 모른다. 난 관심 가진 게 별로 없다. 책도 거의 소설만 보니. 소설을 쓰는 데도 전문지식이 있으면 훨씬 좋을 거다. 앞에서 건축 이야기 봤는지 안 봤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는데, 소설은 아니어도 미술로 말하는 건축은 몇번 본 듯도 하다. 거의 서양 성당이나 교회 지은 얘기였다. 아직도 다 짓지 않은 성당 있지 않은가. 그렇게 오랫동안 짓다니 대단하다.

 

 옛날 한국도 건축이 지금보다 아름답지 않았나 싶다. 한옥 말이다. 한국은 풍수지리에 따라 지었던가. 자연과 어우러지게 하려 했다. 지금은 빨리 짓는다. 그거 괜찮을까. 빨리 지어서 아파트 층간소음 문제가 많은 것 같다. 층간소음 나지 않게 지으면 좋을 텐데. 아파트라 해도 아주 빨리 짓지 않고 시간을 들여 지으면 안 될까. 돈도 덜 들이려 하겠지. 이건 한국만 그런 건 아니다. 일본 드라마에도 높은 건물을 설계도대로 짓지 않는 게 나왔다. 건설회사는 그걸 숨기려 했다. 큰 지진이라도 일어나면 어쩌려는 건지. 그건 그저 소설, 드라마일 뿐이면 좋겠지만. 아파트 설계도 건축가가 하겠지. 여기 나온 무라이 슌스케는 그런 일은 안 하겠다. 큰 공사는 건축회사에서 하려나. 설계도 개인이 하는 사무소와 회사가 있겠다. 그런 건 거의 생각하지 않아서 잘 몰랐다.

 

 이야기가 참 천천히 흐른다. 사카니시 도오루는 마지막으로 무라이 설계사무소에 들어갔다. 마지막이라 한 건 무라이 슌스케 나이가 많아 일할 사람을 더는 뽑지 않았는데, 사카니시 도오루를 일하게 했다. 그때 국립현대도서관 설계 경합에 무라이 설계사무소가 나가서였다. 설계사무소도 그런 데 나가기도 하는구나. 무라이 슌스케는 일을 빨리 하지 않고 천천히 했다. 그런 게 더 좋지 않나 싶은데. 집을 지어달라는 사람과 이야기를 오래 나눴다. 무라이 슌스케가 다른 말은 잘 안 했지만 사람이 살 집 이야기는 오래 했구나. 집만 지은 건 아니지만. 교회도 지었다. 무라이 슌스케는 거기에 다닐 사람을 생각하고 교회를 설계하고 지었다. 건축가는 예술가기도 하다고 하는데, 무라이 슌스케는 건축은 예술이 아닌 현실이다 말한다. 사람이 편안하게 살 집과 편안하게 갈 곳을 지어서 그렇게 생각했겠다.

 

 여름이면 무라이 설계사무소는 해발 1000미터인 아오쿠리 마을에 지은 여름 별장으로 옮겼다. 여름 동안이기는 해도 난 그런 거 싫을 것 같다. 모두가 같이 생활하고 돌아가면서 밥을 해야 하니. 난 그래도 무라이 설계사무소 사람은 그때를 기다렸을지도 모르겠다. 사카니시는 겨우 한번밖에 거기서 지내지 못했다. 음식은 잘 모르겠고, 사카니시는 새 이름을 참 잘도 알았다. 건축가인데 그런 걸 잘 알다니 했다. 사카니시는 어렸을 때 들새를 찾아다니는 모임에 들어갔다고 한다. 여름 별장 둘레에는 들새가 참 많았다. 그런 새 지금도 있을까. 1982년 여름이어서 새가 많지 않았을까. 여기 나오는 시대는 좀 옛날이다. 1980년대여서 느긋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한국도 1980년대를 그리워하기도 하지 않나. 1980년대는 정치가 별로 안 좋았던가. 재개발이 많이 일어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건 1990년대쯤일까.

 

 다른 나라 건축가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그건 작가가 넣고 싶었던 건지도. 집을 천천히 짓는 모습을 글로 써도 괜찮을 것 같은데. 거의 비슷한 일만 해서 심심할까. 사람이 사는 데 큰일은 그렇게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사카니시는 여름 별장에서 보낸 시간을 오랜 시간 기억했다. 존경하는 선생님 설계사무소에서 일하고 여러 가지 배우고 높은 산에 있는 별장에서 지냈으니. 무라이 슌스케 조카인 마리코한테 마음이 가기도 한다. 어쩐지 그건 무라이 선생님이 사카니시와 마리코가 결혼하길 바란다는 말을 들어서인 듯하다. 두 사람 마음을 생각도 안 하고 결혼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무라이 슌스케는 여름이 다 가고도 사카니시한테 마리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결혼은 둘레 사람이 시키는 게 아니고 두 사람이 하는 거여서 그랬겠지. 그랬기를 바란다. 둘이 사귀는 듯하면서도 그 사이를 여러 사람한테 말하지 않았다. 둘은 결혼하지 않고 헤어진다. 사카니시는 마리코 집안이 부담스러웠을까. 잘 모르겠다. 여자 남자가 꼭 결혼을 생각하고 사귀지는 않겠구나.

 

 여름이 가고 시월에 무라이 슌스케가 쓰러진다. 그런 일이 일어나다니. 그다음 이야기는 어쩐지 쓸쓸하다. 사람은 다 나고 살다 가지만. 여름에 힘써서 준비한 현대도서관 설계는 다른 사람 쪽이 된다. 무라이 설계사무소에서 설계한 도서관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그렇다 해도 무라이 슌스케가 한 게 다 사라지지는 않겠지. 무라이 슌스케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다. 사람은 사람 기억속에 산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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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6 12: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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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7 0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모네는 런던의 겨울을 좋아했다는데 - 좋은 것들을 모으러 떠난 1년
조민진 지음 / 아트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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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민진, 처음 듣는 이름이다. 난 그래도 조민진이라는 이름 아는 사람 많을 것 같다. 조민진은 문화일보에서 시작해 지금은 JTBC 기자라 한다. 신문기자와 방송국 기자는 비슷하면서도 다를 듯하다. 텔레비전뿐 아니라 뉴스도 안 본 지 꽤 됐지만, 텔레비전 뉴스를 보다보면 현장에 있는 기자와 연결하기도 한다. 그게 다른 지방일 때도 있고 다른 나라일 때도 있다. 다른 나라에서 연결하는 사람은 방송국에서 다른 나라에 가서 공부도 하고 그쪽 소식도 알려달라고 한 것일지도. 일하는 데서 공부도 시켜주는 건 기회겠지. 그건 자기 방송국(회사) 앞날을 생각하고 돈을 쓰는 거(투자)구나. 기회가 왔을 때 잘 잡고 그걸 잘 살리는 사람도 있겠다. 난 아마 못하겠지. 빚지는 기분이 들 테니 말이다. 나중에 빚 갚아야 할 거 아닌가. 잘 못해서 더 안 좋아지면 어떡하나. 쓸데없는 상상이나 하다니, 공상인가.

 

 이 책을 쓴 조민진은 열네해 동안 일하고 한해를 자유롭게 지내기로 한다. 난 그저 조민진이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건가 했는데 꼭 그런 건 아니 듯하다. 방송국은 조민진이 잠시 쉬면서 공부도 하기를 바란 듯하다. 연수라는 말을 하는 걸 보니. 그렇다 해도 한해 동안은 기자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 조민진이 결혼하고 아이도 함께 사는지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아이는 친정 부모님이 맡았다. 조민진 일이 바쁠 때는 아이를 만나지 못했겠지만 쉴 때는 자주 만나러 갔겠지. 다 그런지 모르겠지만 부모와 떨어져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사는 아이는 어쩐지 철이 빨리 드는 듯하다. 조민진 딸도 그렇게 보였다. 아직 어린데 엄마가 집에 있기보다 일하기를 바랐다. 내가 보기에 조민진은 사람 복이 있다. 부모를 시작해 남편에 자식 복까지. 영국 런던에서 조민진이 엄마와 딸과 지낼 때는 엄마하고 딸한테 조금 섭섭하게 생각했다. 그런 마음 어떨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엄마한테는 딸이고 싶고 딸한테는 엄마이고 싶었을 텐데. 엄마랑 딸이 더 친해 보였다. 그런 감정은 잠시였겠다.

 

 한국에서도 잠시 다른 지방에 가야 한다면 이런저런 걱정이 들 텐데, 조민진은 영국 런던에서 지내려 했다니 대단하다. 그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한해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도 됐을 텐데, 일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안 하지 못하는 듯하다. 그게 일이 아닐 때도. 조민진은 런던에서 여러 가지를 배웠다. 런던에서 영국 사람과 말하고 싶어서 프랑스말을 배우러 다니고 그림 그리기와 그림과 상관있는 강좌도 들었다. 조민진은 그림 보기를 좋아했다. 런던에 있을 때도 그림을 자주 보러 간 듯하다. 런던에서는 유럽 다른 나라에 가기 쉽다. 조민진은 프랑스 파리와 이탈리아 로마에도 여러 번 갔다. 엄마와 딸 동생 그리고 남편이 한국에서 영국으로 조민진을 만나러 가다니 식구들이 사랑이 가득하다는 느낌이 든다. 한해 지나면 돌아올 텐데 그렇게 멀리까지 만나러 갔다. 식구가 모두 한국에서 런던에 가는 것도 괜찮겠지만 런던에서 만나는 건 다른 느낌일 것 같다. 그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구나.

 

 내가 어딘가에 가는 일은 거의 없지만 내가 사는 곳에서 처음 가는 곳도 있다. 모르는 곳에 어떻게 가야 할지 몰라도 걷다 보면 나오기도 한다. 이건 대충 어디쯤인지 알았을 때구나. 어떤 곳은 다른 데로 옮긴 지 모르고 예전에 있던 곳으로 갔다. 그날 참 많이 걸었다. 아주 반대쪽이어서. 조민진은 런던에서 지도를 보고 어딘가에 가는 연습을 했더니 지도만 있으면 어디든 가게 됐다고 한다. 그런 거 아무리 해도 모르는 사람도 있을 텐데. 조민진은 런던에서도 규칙있게 살았다. 사람은 다 똑같지 않더라도 살다보면 자신만의 규칙이 생긴다. 조민진은 나처럼 널널하게 지내지 않고 긴장하고 살았겠구나. 계획을 세우고 그걸 제대로 이루는 듯하다. 그런 게 있었기에 기자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뭐든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이 책을 쓰기도 하고 조민진은 운동도 다녔다. 조민진은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하는 듯하다. 그런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보인다. 조민진은 한주에 한번 만나는 사람이 있다는 걸 기쁘게 여겼다. 프랑스말 선생님, 그림 선생님, 운동 가르치는 트레이너. 그건 누군가를 만나는 것과 조금 다를까. 지금은 조민진한테 런던 삶이 꿈 같을 것 같다. 한해 길면서도 짧은 시간이다. 그래도 조민진 나름대로 많은 걸 마음에 새기고 틈틈이 꺼내 보겠지. 그런 게 힘이 되기도 할 테니. 시간이 흐르고 언젠가 다시 런던에 갈지도. 그때는 또 어떤 느낌일까. 시간이 흘러도 런던 사람은 여전히 친절할 것 같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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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한테 돌아오려고 떠나지만

돌아와도 마음 붙일 곳이 없어

다시 떠나는 사람

 

한 곳이 아닌

여기 저기가

자신의 집이라 하네

 

집을 이고 다니는

달팽이 같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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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9-25 14: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돌아올 집이 있어야 좋은 거죠. 포근하고 휴식처를 제공하는 집이요.
집을 이고 다니는 건 어떨지 상상하게 되네요. ㅋ

희선 2020-09-26 00:07   좋아요 0 | URL
돌아오려고 어딘가에 떠난다고도 하죠 그렇게 자신이 돌아올 곳이 있어서 마음을 놓는 사람도 있겠지만, 돌아와도 다시 떠나는 사람도 있는 듯해요 그런 사람은 어쩔 수 없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희선
 

 

 

 

닫힌 마음을 열 열쇠는

무얼까

 

마음은 쉽게 닫히고

아주 작은 것에도 열려

 

따스한 바람이 불고

꽃이 피면

마음은 저절로 열리지

 

닫힌 마음을 열 열쇠로

가장 좋은 건

따스한 마음이야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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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해마
문목하 지음 / 아작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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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마’는 서로 다른 알고리즘을 가진 여러 개 인공지능을 한데 담을 수 있는 그릇이자, 사람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대로 자극과 정보를 기억하는 범용 인공지능이다. 또한 사람 손이 닿기 힘든 모든 일을 몸체를 바꿔가며 처리하고, 사람들이 하는 모든 질문에 답한다.  (책 맨 뒤에서)

 

 

 난 해마는 아니지만 비파 네가 겪은 일을 알아. 어딘가 내 세계 바깥에서는 내가 비파 네 이야기를 보는 걸 보았을까. 그럴지도 모르겠지. 하지만 내 이야기는 별로 재미없어. 지금 생각하니 비파 네가 한국 사람을 보는 건 재미 때문이 아니고 그저 그렇게 태어나서군. 근데 비파 너와 같은 해마를 만든 건 사람이겠지. 설마 무언가 다른 게 해마를 만든 건 아니겠지. 책을 보다보니 조금 의문이 생겨서. 사람이 해마를 만들었다면 관리도 사람이 할 것 같은데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 해마한테 일을 시키는 건 누구고 개인 일을 시키는 건 누굴지. 네가 중앙에 돌아가지 않아도 별일 없었잖아. 중앙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한 건 다른 너인 백업이었지. 넌 백업이라 했지만 백업은 너를 백업이라 여겼지. 해마는 왜 이름 하나를 둘이 쓰게 했을까. 일을 12시간씩 한다고 하지만. 그냥 하나인 게 나을 것 같아. 중앙에 있는 함수는 뭔지. 함수가 해마를 관리하는 건가. 모르겠군. 넌 실체가 없는 것 같은데.

 

 비파 넌 해마로 인공지능 도움을 받고 여러 가지 일을 했어. 해마체는 겉모습도 쉽게 바꿨지. 넌 재난재해 긴급구조원이었을 때 사람으로 인식하지 못한 여자아이를 만나고 그 아이한테 조금 마음 쓰게 됐지. 주민등록칩이 없으면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니. 난 그 모습 보고 앞날엔 해마가 사람을 마음대로 보다니 하고 좀 놀랐어. 칩 같은 건 넣지 않고 싶어. 재난 지역에서 너를 따라 나온 여자아이는 고아원에 가고 이름은 이미정이 됐어. 그 이름은 누가 지은 것도 아니고 그저 이름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뜻이었는데. 비파 넌 이미정을 많은 사람 가운데 하나로 여겼어. 너와 이어진 사람은 사천만명이나 되니까. 지금 한국에는 오천만명쯤 산다는데 나중에는 좀 줄어들까.

 

 사람도 생물도 아닌 넌 대체 뭘까. 전기신호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데. 그러고 보니 네 진짜 이름은 247.30 Hz였군. 비파라는 이름은 누가 지어준 거야. 비파와 247.30 Hz는 상관있는 건가. 해마 이름은 다 악기 이름이더군. 비올라 소고 신디 오보에 나각. 해마는 그 정도밖에 없는지, 더 있겠지. 바로 나오지 않았지만 난 해마가 생기고 사람 일자리가 줄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그런 말 나중에 잠깐 나오더군. 해마는 인공지능과 뭐가 다른지. 인공지능보다 좀 더 자기 생각이 있는 걸까. 비파 너를 보니 그런 생각이 조금 들었어. 허브 어귀에 있는 함수가 묻는 “참입니까. 거짓입니까?”는 무슨 뜻인지. 해마는 “무한입니다.” 대답해야지. 그 물음과 답을 잊으면 해마는 지금까지 기억이 사라지고 새로 태어나. 비파 넌 처음 태어난 게 아닐지도 모르겠어. 사람은 기억을 잊어버리면 무척 괴로울 텐데. 아니 기억을 잊으면 잊었다는 것조차 모르겠군.

 

 해마는 왜 어떤 일을 해야 하지. 그것도 좀 억지스러운 걸. 그건 누가 시키는 건지. 그저 재미로 하는 걸까. 해마를 어려운 일에 빠뜨리려고. 해마가 해 내기 어려운 일을 시키고 해마를 미치게 해서 기억을 지우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어. 해마한테 기억이 쌓이는 걸 막으려고. 이런 말은 나오지 않았지만. 비파 너도 네가 해야 하는 일 때문에 오래 생각했잖아. 이미정한테 도움을 받으려고 하다가 이미정한테 안 좋은 일이 일어날까봐 그만뒀지. 넌 이미정을 많은 사람에서 한사람이다 여기고 이미정이 겪은 일을 보고 다른 감정은 느끼지 않았어. 해마는 감정 못 느끼겠지. 이미정은 우연히 열일곱살 여자아이를 만나고 자신과 겹쳐보고 그 아이와 함께 살지. 그런데 그 아이가 죽고 말아. 그건 기업에서 만든 기계 때문이었어. 난 그런 거 할 때부터 안 좋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 사람은 편한 것을 좋아하지.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겠군. 이미정은 그저 아이를 기쁘께 해주고 싶었을 테니.

 

 우주에서 넌 사고를 당하고 많은 사람에서 이미정만 생각했어. 그 일은 괜찮았던 건지 어떤 건지. 이미정을 보다 이미정이 너를 도울 수 있다 여겼지. 하지만 그건 잘 안 됐지. 난 여기 사는 사람이 해마가 자신들을 본다는 걸 아는지 알았는데 아니더군. 이미정은 비파 네가 자신과 한국에 사는 사람을 다 지켜봤다는 걸 알고 놀랐지. 많은 사람은 그걸 몰랐어. 왜 해마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무엇을 감시하려고. 감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해마는 아무 감정 없이 사천만명을 보았지. 그런 거 지겨울 것 같아. 이미정은 이미정이 넣은 망막으로 봤잖아. 사람 몸에 기계를 심으면 감시 당하겠군. 지금 내가 사는 곳에도 여기저기 카메라가 많아. 인터넷에는 개인정보도 많고. 이미정은 기자로 일해서 해마 일을 그냥 넘어가지 못했어. 이미정은 너를 도와줄 테니 너한테 재판에서 증언을 해달라고 하지. 이미정은 콩고에 돌아가려는 로랑을 도우려는 마음도 있었어.

 

 많은 해마와 다르게 생각하는 해마가 있는 것도 괜찮겠지. 그래도 좀 아쉬워. 이제 너한테 이미정은 많은 사람에서 한사람일 뿐이니. 이미정은 비파 널 잊지 않았을 텐데. 어딘가에 비파 네 기억은 있을까. 이미정 기억속에 있겠군. 그것만으로도 다행인가. 비파 넌 백업, 아니 또 다른 비파인가. 그 비파를 너와 다르지 않다 여겼지. 기억을 공유한다 해도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건 자기 기억이 아니지. 비파와 비파라 해야겠군. 다른 비파도 널 기억하는군.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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