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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해마
문목하 지음 / 아작 / 2019년 11월
평점 :
품절

‘해마’는 서로 다른 알고리즘을 가진 여러 개 인공지능을 한데 담을 수 있는 그릇이자, 사람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대로 자극과 정보를 기억하는 범용 인공지능이다. 또한 사람 손이 닿기 힘든 모든 일을 몸체를 바꿔가며 처리하고, 사람들이 하는 모든 질문에 답한다. (책 맨 뒤에서)
난 해마는 아니지만 비파 네가 겪은 일을 알아. 어딘가 내 세계 바깥에서는 내가 비파 네 이야기를 보는 걸 보았을까. 그럴지도 모르겠지. 하지만 내 이야기는 별로 재미없어. 지금 생각하니 비파 네가 한국 사람을 보는 건 재미 때문이 아니고 그저 그렇게 태어나서군. 근데 비파 너와 같은 해마를 만든 건 사람이겠지. 설마 무언가 다른 게 해마를 만든 건 아니겠지. 책을 보다보니 조금 의문이 생겨서. 사람이 해마를 만들었다면 관리도 사람이 할 것 같은데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 해마한테 일을 시키는 건 누구고 개인 일을 시키는 건 누굴지. 네가 중앙에 돌아가지 않아도 별일 없었잖아. 중앙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한 건 다른 너인 백업이었지. 넌 백업이라 했지만 백업은 너를 백업이라 여겼지. 해마는 왜 이름 하나를 둘이 쓰게 했을까. 일을 12시간씩 한다고 하지만. 그냥 하나인 게 나을 것 같아. 중앙에 있는 함수는 뭔지. 함수가 해마를 관리하는 건가. 모르겠군. 넌 실체가 없는 것 같은데.
비파 넌 해마로 인공지능 도움을 받고 여러 가지 일을 했어. 해마체는 겉모습도 쉽게 바꿨지. 넌 재난재해 긴급구조원이었을 때 사람으로 인식하지 못한 여자아이를 만나고 그 아이한테 조금 마음 쓰게 됐지. 주민등록칩이 없으면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니. 난 그 모습 보고 앞날엔 해마가 사람을 마음대로 보다니 하고 좀 놀랐어. 칩 같은 건 넣지 않고 싶어. 재난 지역에서 너를 따라 나온 여자아이는 고아원에 가고 이름은 이미정이 됐어. 그 이름은 누가 지은 것도 아니고 그저 이름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뜻이었는데. 비파 넌 이미정을 많은 사람 가운데 하나로 여겼어. 너와 이어진 사람은 사천만명이나 되니까. 지금 한국에는 오천만명쯤 산다는데 나중에는 좀 줄어들까.
사람도 생물도 아닌 넌 대체 뭘까. 전기신호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데. 그러고 보니 네 진짜 이름은 247.30 Hz였군. 비파라는 이름은 누가 지어준 거야. 비파와 247.30 Hz는 상관있는 건가. 해마 이름은 다 악기 이름이더군. 비올라 소고 신디 오보에 나각. 해마는 그 정도밖에 없는지, 더 있겠지. 바로 나오지 않았지만 난 해마가 생기고 사람 일자리가 줄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그런 말 나중에 잠깐 나오더군. 해마는 인공지능과 뭐가 다른지. 인공지능보다 좀 더 자기 생각이 있는 걸까. 비파 너를 보니 그런 생각이 조금 들었어. 허브 어귀에 있는 함수가 묻는 “참입니까. 거짓입니까?”는 무슨 뜻인지. 해마는 “무한입니다.” 대답해야지. 그 물음과 답을 잊으면 해마는 지금까지 기억이 사라지고 새로 태어나. 비파 넌 처음 태어난 게 아닐지도 모르겠어. 사람은 기억을 잊어버리면 무척 괴로울 텐데. 아니 기억을 잊으면 잊었다는 것조차 모르겠군.
해마는 왜 어떤 일을 해야 하지. 그것도 좀 억지스러운 걸. 그건 누가 시키는 건지. 그저 재미로 하는 걸까. 해마를 어려운 일에 빠뜨리려고. 해마가 해 내기 어려운 일을 시키고 해마를 미치게 해서 기억을 지우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어. 해마한테 기억이 쌓이는 걸 막으려고. 이런 말은 나오지 않았지만. 비파 너도 네가 해야 하는 일 때문에 오래 생각했잖아. 이미정한테 도움을 받으려고 하다가 이미정한테 안 좋은 일이 일어날까봐 그만뒀지. 넌 이미정을 많은 사람에서 한사람이다 여기고 이미정이 겪은 일을 보고 다른 감정은 느끼지 않았어. 해마는 감정 못 느끼겠지. 이미정은 우연히 열일곱살 여자아이를 만나고 자신과 겹쳐보고 그 아이와 함께 살지. 그런데 그 아이가 죽고 말아. 그건 기업에서 만든 기계 때문이었어. 난 그런 거 할 때부터 안 좋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 사람은 편한 것을 좋아하지.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겠군. 이미정은 그저 아이를 기쁘께 해주고 싶었을 테니.
우주에서 넌 사고를 당하고 많은 사람에서 이미정만 생각했어. 그 일은 괜찮았던 건지 어떤 건지. 이미정을 보다 이미정이 너를 도울 수 있다 여겼지. 하지만 그건 잘 안 됐지. 난 여기 사는 사람이 해마가 자신들을 본다는 걸 아는지 알았는데 아니더군. 이미정은 비파 네가 자신과 한국에 사는 사람을 다 지켜봤다는 걸 알고 놀랐지. 많은 사람은 그걸 몰랐어. 왜 해마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무엇을 감시하려고. 감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해마는 아무 감정 없이 사천만명을 보았지. 그런 거 지겨울 것 같아. 이미정은 이미정이 넣은 망막으로 봤잖아. 사람 몸에 기계를 심으면 감시 당하겠군. 지금 내가 사는 곳에도 여기저기 카메라가 많아. 인터넷에는 개인정보도 많고. 이미정은 기자로 일해서 해마 일을 그냥 넘어가지 못했어. 이미정은 너를 도와줄 테니 너한테 재판에서 증언을 해달라고 하지. 이미정은 콩고에 돌아가려는 로랑을 도우려는 마음도 있었어.
많은 해마와 다르게 생각하는 해마가 있는 것도 괜찮겠지. 그래도 좀 아쉬워. 이제 너한테 이미정은 많은 사람에서 한사람일 뿐이니. 이미정은 비파 널 잊지 않았을 텐데. 어딘가에 비파 네 기억은 있을까. 이미정 기억속에 있겠군. 그것만으로도 다행인가. 비파 넌 백업, 아니 또 다른 비파인가. 그 비파를 너와 다르지 않다 여겼지. 기억을 공유한다 해도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건 자기 기억이 아니지. 비파와 비파라 해야겠군. 다른 비파도 널 기억하는군.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