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글은 따로따로 쓴 것으로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함께 올려두기로 했습니다. 이런 설명은 하지 않아도 괜찮겠지만. 본래는 두 권에 대한 것만 올릴까 하다가 하나 더했습니다.
되풀이 함정에 빠져보아요
일곱 번 죽은 남자 七回死んだ男
니시자와 야스히코 이하윤 옮김
북로드 2013년 10월 25일
일본에는 아직 우리나라에 알려지지 않은 미스터리 작가가 많이 있을 것 같다. 니시자와 야스히코도 그 가운데 한사람이었을 텐데, 지난해 《일곱 번 죽은 남자》가 처음으로 나왔다. 그 뒤에 다른 시리즈 소설도 나오고 그 시리즈가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까 싶다. 이 소설은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대표작이고 일본에서 거의 20년(18년) 가까이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고 한다. 같은 사람이 시간이 지나서 또 보는 것일까, 시간이 지나 다른 세대도 이 책을 보는 것일까. 좋고 재미있는 책은 어느 때 보든 그것을 느낄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언제 나왔는가 하고는 상관없이 말이다. 이 책에는 그런 점이 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임 루프’다. 작가는 본격 미스터리로 썼다고 하는데 타임 루프 때문에 SF가 붙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것은 SF 신본격이 되었다고. 자신의 마음과 다르게 그 책을 본 사람이 그런 이름을 붙이는 일은 흔히 일어난다. 그게 나쁘지 않았는지 작가는 SF 신본격을 쓰는 게 좋다고 했다.
이 책 ‘일곱 번 죽은 남자’에서 나오는 타임 루프는 기계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런데 그것을 SF라고 할 수 있을까. 과학보다는 환상에 가깝지 않나 싶다. 타임 루프가 SF에 자주 나와서 타임 루프가 나오면 SF다로 굳어버린 것은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니 작가가 자신이 쓴 소설은 본격 미스터리라고 하는 말이 맞다. 타임 루프를 하는 오바 히사타로는 고등학교 1학년으로 열여섯살이다. 그런데 실제 나이보다 더 들어보인다고 한다. 히사타로 나이는 열여섯이지만 정신 나이는 서른 이상이라고 한다. 이것은 지금까지 히사타로가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하루를 오래 되풀이해서 살아서다. 본래대로 돌아가니까 아주 다르지는 않겠지만 다른 사람한테는 없는 기억이 히사타로한테는 남아 있을 테니 그럴 수밖에 없을지도. 히사타로는 자신이 어느 하루를 되풀이하는 것은 체질로 그것을 ‘되풀이 함정’이라 했다. 어렸을 때는 그것을 잘 몰라서 어리둥절해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게 어떤 법칙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다. 하루가 얼마나 되풀이되는지는 알아도 되풀이 함정에 빠지는 날을 히사타로가 정할 수 없다. 그것은 갑자기 일어난다. 전에 시간여행을 하는 체질을 가진 사람이 나온 소설을 본 적 있다. 거기 나온 사람은 자신이 역사를 바꿀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히사타로는 하루가 되풀이되는 마지막 날 어떻게 끝낼지 정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다 아는 그 하루를 늘 정확하게 기억할까. 헷갈릴 때도 있지 않을까.
하루가 자꾸 되풀이되는 것은 좋을까 안 좋을까. 그날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면 그 시간에 갇혀버린 듯해서 괴로울 것 같다. 히사타로는 되풀이 함정에 빠져도 아홉번째가 지나면 거기에서 빠져나온다. 아흐레도 그렇게 적은 날은 아니구나. 히사타로는 그런 자신의 체질 때문에 괴로워하기보다 즐기기로 한다. 운 좋게 시험 보는 날 되풀이 함정에 빠지기도 해서 고등학교 편입 때는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그 뒤에는 성적이 아주 나빴다. 한때는 히사타로가 체질을 이용해서 큰 사고를 막아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것은 쉽지 않을 듯해서 그만두었다. 여기저기에서 일어나는 일을 혼자 다 막을 수는 없다. 겨우 할 수 있는 것은 자기 둘레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을 바꾸는 것뿐이다. 지금까지는 큰일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히사타로가 되풀이 함정에 빠진 두번째에 할아버지(정확하게는 외할아버지다)가 누군가한테 죽임을 당한 것이다. 히사타로 식구들과 친척들은 새해를 맞아 모두 할아버지 집에 모였는데, 그렇게 새해에 할아버지 집에 모인 것은 할아버지가 가진 재산 때문이었다.
히사타로는 할아버지가 죽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애쓴다. 이 책을 읽는 사람도 히사타로가 빠진 되풀이 함정에 빠지고 만다. 히사타로는 범인이 누구일거라 짐작하고 움직이지만 할아버지는 자꾸만 죽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범인이 바뀔까 하는 생각이 지금 든다. 끝까지 봐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지도. 1월 2일 밤에 히사타로가 식구들과 집에 돌아가는 게 마음에 조금 걸렸는데. 그리고 다른 것도. 그냥 그런 생각만 하고 그게 무엇인지 확실히는 몰랐다. 히사타로가 말하는 게 다 맞다고 생각했으니 그럴 수밖에. 그게 바로 속임수구나. 다 보고서야 그렇구나 했다. 히사타로 할아버지는 어쩌다 돈이 많아져서 식구들이 싸움을 하게 되었다. 첫째딸, 셋째딸, 그리고 손자, 손녀도. 히사타로만은 할아버지 돈에 별로 관심이 없지만, 다른 사람들의 안 좋은 면을 보고 만다. 그런 모습을 보면 사람이 싫어질 것 같기도 한데. 그동안 되풀이 함정에 빠졌던 게 그런 모습을 멀리에서 볼 수 있게 해준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히사타로는 자신의 체질을 믿어주는 사람도 만났다.
사람이 죽는 일이 나오지만 재미있게 보았다. 히사타로는 어떻게 할아버지가 죽지 않게 할 것인가 하면서. 할아버지는 예전에 딸들한테 잘해주지는 못했지만 첫째딸과 셋째딸이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부모는 자식한테 조금이라도 더 무엇인가를 주고 싶어한다. 그런데 자식은 그런 마음을 잘 모르기도 한다. 자신이 부모가 되면 부모 마음을 알게 된다고도 하는데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닌 듯하다. 부모한테 받으려 하기보다 스스로 살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희선
☆―
SF 신본격은 많이 써도 뜻이 없다, 그런 것은 자꾸 쓰는 것 자체에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기에 더더욱 불타오르는 것입니다. 아이디어가 이어지는 한, 아니, 설령 아이디어가 말라버리더라도 새빨간 거짓말을 날조해서라도 써주마, 그렇게 생각합니다. 왜 그런지는 저로서도 알 수 없지만 그런 오기가 제 창작 의욕을 뒷받침해주고 있다는 것이겠죠. (작가의 말에서, 314쪽)
- 소설도 재미있지만 뒤에 있는 작가의 말도 좀 재미있다
먼저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좋아하기
실내인간
이석원
달 2013년 08월 08일
이 말은 전에도 생각한 적 있다. 사람은 다른 사람한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한다고. 그 마음이 아주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이 있을까. 이것은 아닌가. 크기와 상관없는 것인가. 예전에 다른 사람한테 인정받고 사랑받기 전에 자신이 먼저 자신을 인정하고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게 쉬운 일일 수도 있지만 어려운 일일기도 하다. 자신은 언제나 다른 사람보다 못나 보이니까. 그러면 이 말이 나오겠다. 남과 자신을 견주지 마라는. 남과 자신을 견주기는 우리가 나면서부터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갓난아기였을 때는 스스로 그것을 할 수는 없겠지만, 부모와 둘레 사람이 하지 않을까. 자기 자식이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고 하는 사람도 많지만, 첫째와 둘째를 견준다거나 남의 집 아이와 견준다거나. 그런 말을 아이가 듣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 아이는 부모 마음에 들기 위해 다르게 행동한다. 그게 좋은 것이라면 괜찮지만, 언제나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면 어떨까. 어렸을 때부터 그런 버릇이 들면 어른이 되어서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자기 마음을 보기보다 다른 사람 얼굴만 살피지 않을까. 그런 일을 아주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어렸을 때 좀 그랬던 듯. 아파도 참고 돈을 받으면 안 쓰기 정도. 이것은 지금까지도 그렇다.
자신을 좋아하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안타깝다. 그런데 나도 그래서. 그러면서 나는 저사람보다는 덜 하잖아 한다. 나도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고 생각한다. 마음에 안 들면 바꾸려고 애쓰기라도 해야 하는데 그것도 잠시,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한다. 내가 좀 마음이 단단하지 못해서 말이다. 책속에 나오는 사람은 어쩌면 그렇게 쉽게 일을 하고 글도 쉽게 쓸까 싶다. 현실은 만만하지 않은데. 다 나오지 않았지만 책속 사람도 어려운 점이 있었겠지. 그저 쉬워보이는 것일 뿐. 잘된 사람도 그렇게 되기까지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고 겪었는지 볼 수 없고, 지금 잘된 모습만 볼 수 있다. 무엇이든 쉽게 이룰 수는 없으니까. 나는 이 책을 한번 읽는 데 다섯 시간 남짓 걸렸지만, 이석원은 이 소설을 쓰는 데 네해 남짓 걸렸다고 한다. 솔직히 조금 많이 걸렸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이런 말할 처지는 아니구나. 나는 아직 책 한권이 될 만한 이야기를 써본 적이 없으니까. 책 읽고 쓰는 것도 겨우 쓰고 있는데 말이다, 그것도 재미없게. 용휘가 용우한테 한 말이 갑자기 생각났다. 삶을 비관하면 엿 같은 일이 기다린다는. 내가 앞에서 삶을 잠깐 나쁘게 봤다.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 삶이 늘 술술 잘 풀리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무엇인가 하면 마법처럼 잘되어서, 나도 이런 것을 써서 대리만족이라도 할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나는 할 수 없으니 이야기속 사람이 잘되게 하는 거다,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쓰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 생각은 바로 그만뒀다. 이런 점이 내가 가진 안 좋은 점인가보다. 불씨가 나타났을 때 그게 꺼지지 않게 잘 보살피지 않고 바로 물을 부어서 꺼버리다니.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내 마음속에 아직 남아있는 불씨는 있다. 소설을 쓰는 것은 사람을 알기 위해서고, 소설을 읽는 것은 자신을 알기 위해서라고 어떤 작가가 말했다는데 어쩐지 이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나는 사람을 알기 위해 책을 보는 거다 생각했는데, 책을 보다 가끔 나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일이 자주 있는 일이 아니어서. 사실 나는 남다른 경험뿐 아니라 남과 같은 경험이 거의 없다. ‘누구나 하는~’ 하는 말이 있는데 그 누구나에 나는 들어가지 않을 때가 많다. 그때 나는 어쩌면 나도 이런 말을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서는 좀더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것은 시간이 흐르면 잊고는 한다. 어쩌면 이것은 아무도 나를 싫어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일지도. 내가 그런 말을 하건 하지 않건 아무도 관심없을 텐데 말이다.
여기 나온 용휘를 보니 《신월담》(누쿠이 도쿠로)에 나온 사쿠라 레이카가 떠올랐다. 두 사람이 다르지만 비슷한 게 있다. 그것은 자신이 더 잘난 사람이 되면 상대가 자신을 좋아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거다. 그런데 그 마음을 나도 안다. 그래서 조금 슬펐다. 두 사람과 내가 다른 점은 나는 안 한다는 거다. 그것보다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내가 잘난 사람이 된다 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나는 무엇이라도 한 사람을 부러워할까. 정말이지 이런 내가 웃긴다. 레이카는 성형중독이 되었지만 글은 자기 힘으로 썼다. 용휘는 그러지 않았다. 거짓으로 이름을 쌓아올렸다. 그렇게 한다 해도 상대는 돌아봐주지 않을 텐데. 그렇구나, 용휘는 그것을 알고 있었던 거였다. 하지만 그만둘 수 없었다. 아주 조금이라도 희망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 작은 희망도 깨어져버렸다. 그렇다고 삶이 다 끝난 것은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거짓이 아닌 진짜 자기 삶을 쌓아가면 된다. 좋아한 사람을 잊지 못하고 살아간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런 것까지도 좋아해주는 사람을 만난다면 좋지 않을까. 그런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조금 이상했다. 용우가 먼저 여자친구한테 헤어지자고 말했으면서 왜 거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것인지. 여자친구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다면 마음이 아프겠구나 했을 텐데. 아니, 내가 모르는 거지 헤어지자고 먼저 말해도 슬플지도 모르겠다. 사귀던 사람과 헤어지면 슬픔에서 빠져나올 때까지 사귄 만큼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누군가와 헤어지고 바로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은 좀 그렇겠지.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는 데는 까닭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알고 나면 별거 아닐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게 나쁘지는 않은데, 먼저 자기 자신부터 좋아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나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아주 많이 좋아하지 않는 것뿐이지. 이상한 말만 늘어놓았다. 여기까지다.
*미처하지못한말
몇해 전에 알게 된 친구(지금은 연락이 끊긴)가 언니네이발관을 좋아해서 나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줄리아하트도. 이 소설을 쓴 이석원은 언니네이발관에서 기타 치고 노래를 한다. 예전에 언니네이발관 홈페이지에 가서 이석원이 쓴 일기를 보기도 했다. 잠깐 보다가 말았다. 용휘라는 이름을 그곳에서 본 것 같기도 했는데 아니었던가보다. 이 책을 보고 오래전 일기를 찾아보니 다른 이름이었다. 이름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보통의 존재》는 예전에 나왔을 때 사두고 아직도 읽지 않았다. 그것을 먼저 봤다면 더 좋았을까, 모르겠다. 남자라서 여자라서 하는 말 좋아하지 않는데, 이 소설은 남자 처지에서 쓴 듯하다. 보통 여자 마음도 잘 모르지만.
언니네이발관을 하다가 줄리아하트, 지금은 가을방학을 하는 정바비도 책을 낸다고 한다.
희선
☆―
“고통을 견디는 법은 한가지밖에 없어. 그저 견디는 거야. 단, 지금 아무리 괴로워 죽을 것 같아도 언젠가 이 모든 게 지나가고 다시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순간이 오리라는 믿음. 그거만 저버리지 않으면 돼. 어쩌면 그게 사랑보다 더 중요할지도 몰라.” (64쪽)
당신에게 어느 날 절대로,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은 무언가 생긴다면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갖겠는가. (262쪽)
잊지 못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누굴 좋아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될 수는 없다고. (270쪽)
“정말 사랑했던 사람하고는 영원히 못 헤어져, 용우 씨. 누굴 만나도 그저 무덤 위에 또 무덤을 쌓는 것뿐이지.” (284쪽)
+덤
저는 드라마를 안 봐서 모르겠는데, 이 책이 드라마에 나왔다고 하더군요. 지금도 아주 안 쓰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줄거리를 더 많이 썼습니다. 이것도 책을 보고 자세하게 썼더군요. 아마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그랬을 거예요. 그것보다는 다른 사람한테도 어떤 이야기인지 알려주고 싶었던 것인지도. 가끔 그럴 때 없나요, 어떤 이야기는 다른 사람도 알았으면 하는 때 말이에요. 앞으로 책을 봐야지 하는 분은 밑에 글은 안 보는 게 좋을 겁니다. 책 볼 시간은 없고 어떤 이야기일까 알고 싶으신 분은 보십시오. 줄거리가 자세하다 해도 책을 읽는 것과는 다를 겁니다.
에드워드가 참된 사랑을 깨달아가는 모습 한번 만나보세요.
사랑을 배운 에드워드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
The miraculous journey of Edward Tulane
케이트 디카밀로 배그램 이바툴린 그림 김경미 옮김
비룡소 2009년 02월 17일
옛날, 이집트 어느 거리에 몸이 거의 모두 도자기로 만들어진 토끼가 있었습니다. 몸 안에 철사가 있어서 팔과 다리를 구부릴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주인인 애빌린 툴레인이 움직여줘야 했어요. 키는 1미터 남짓이었습니다. 그래도 에드워드는 보고 들을 수는 있었습니다. 에드워드는 애빌린의 열살 생일 때 주려고, 할머니가 주문해서 만들게 한 것입니다. 에드워드는 애빌린한테 사랑받으며 살았지만 그것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애빌린과 어른들이 식탁에서 말하고 있으면 그냥 듣는 척만 했어요. 어느 날 애빌린과 엄마, 아빠가 배를 타고 이집트를 떠나 런던에 간다고 했습니다. 애빌린은 에드워드도 데리고 갈거냐고 물었습니다. 물론 같이 가기로 했죠. 펠리그리나 할머니는 같이 가지 않는다고 했어요. 밤에 애빌린은 할머니한테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습니다. 펠리그리나 할머니는 애빌린과 에드워드한테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공주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공주는 마녀를 만나서 검은멧돼지가 되고 왕의 부하들에게 잡혀서 요리로 만들어지고 맙니다.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펠리그리나 할머니는 에드워드한테 자신을 실망시킨다고 말했습니다.
5월에 에드워드는 애빌린의 식구들과 배를 타고 떠났습니다. 애빌린이 안고 있는 에드워드를 신기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었지만 장난을 치는 남자아이도 있었어요. 남자아이 둘이 에드워드를 던지며 주고받는 것을 막으려고 애빌린이 남자아이를 밀었을 때 에드워드는 그만 배 밖으로 날아가 바다에 빠져서 가라앉고 맙니다. 에드워드는 이때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에드워드는 애빌린이 자신을 찾으러 올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애빌린은 오지 않았습니다. 에드워드는 별 보는 것을 좋아했는데 바닷속에서는 별을 볼 수 없었어요. 바닷속에 있은 지 이백구십칠 일이 되는 날 폭풍이 불어 에드워드는 바다 위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습니다. 그렇게 떠다니다 어부의 그물에 걸렸습니다. 에드워드는 어둡고 외로운 바닷속에서 나온 것이 기뻤습니다. 늙은 어부 로렌스는 에드워드를 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집에는 로렌스의 아내 넬리가 있었어요. 넬리는 에드워드를 보고 기뻐하며 수잔나라고 이름 짓고 옷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에드워드는 여자 옷이고 평범한 것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바닷속에 있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어요.
넬리는 에드워드한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집안 일을 했습니다. 에드워드는 전과 다르게 넬리가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그리고 로렌스는 에드워드를 어깨에 앉히고 밖에 나가서 별자리를 가르쳐주었어요. 굉장한 일은 없었지만 평화롭고 따스한 날들을 지냈습니다. 그곳에 로렌스와 넬리의 딸 롤리가 나타나 에드워드를 쓰레기통에 넣어 가지고 나왔습니다. 에드워드는 로렌스와 넬리와 헤어지는 것이 마음 아팠습니다. 에드워드는 쓰레기장에 버려졌습니다. 쓰레기가 쌓여서 에드워드는 묻혀갔습니다. 처음에는 롤리한테 복수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절망했어요. 쓰레기장에 있은 지 백여든 번째 날 무엇인가가 쓰레기장을 파헤쳐서 에드워드는 다시 밖으로 나왔습니다. 부랑자 불의 개 루시가 에드워드를 꺼낸 것입니다. 에드워드는 불과 루시와 함께 여행을 떠났습니다. 루시가 에드워드의 몸에 주둥이를 올려놓고 자면, 밤새도록 낑낑대고 으르릉 대는 루시의 소리가 에드워드의 몸속에 울렸습니다. 에드워드는 불이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에드워드는 불과 루시가 잘 때 혼자 깨어 밤하늘을 보며 이름을 떠올렸어요. 애빌린, 로렌스, 넬리, 불, 루시 다시 애빌린. 다른 부랑자들한테 에드워드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 에드워드한테 부랑자들은 자신의 아이들 이름을 속삭였습니다. 에드워드는 이제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았거든요.
불, 루시와 여행하고 일곱해가 지났습니다. 불과 루시가 빈화물칸에서 자고 있는 것을 들키고 맙니다. 거기에 온 사람은 루시를 발로 차고 에드워드를 멀리 집어던졌습니다. 에드워드는 루시를 도와줄 수 없어서 슬펐고, 또 불과 루시와 헤어져서 마음 아팠습니다. 언덕 위에 있던 에드워드를 나이 많은 여자가 집어 들었습니다. 이번에 에드워드는 밭을 지키는 허수아비가 되어야 했습니다. 에드워드한테는 아무런 희망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밭에 일을 하러 온 남자아이 브라이스가 에드워드한테 인사했습니다. 브라이스는 에드워드한테 데리러 오겠다고 했어요. 밤에 브라이스는 에드워드를 막대기에서 풀어서 자기 집에 데리고 갔습니다. 집에는 브라이스의 병든 여동생 사라 루스가 있었습니다. 사라 루스는 에드워드를 아기처럼 꼭 껴안고 흔들어 주었습니다. 에드워드한테는 그런 일이 처음이었습니다. 마음속에 뜨겁고 격렬한 감정이 생겨났어요. 하지만 사라 루스는 죽고 맙니다. 에드워드는 사라 루스가 죽어서 아주 많이 슬펐습니다. 브라이스와 사라 루스의 아버지가 찾아와서는 사라 루스를 자신이 묻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브라이스는 에드워드를 데리고 집을 떠났습니다. 브라이스는 에드워드한테 줄을 매달아서 춤을 추게 해서 돈을 벌 생각이었어요. 에드워드는 사라 루스가 아닌 다른 사람들 앞에서 춤추는 것은 하나도 즐겁지 않았습니다. 브라이스가 음식을 먹은 식당에서 돈이 모자라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브라이스는 에드워드가 춤을 추는 것을 식당 주인한테 보여주었어요. 하지만 식당 주인은 에드워드를 던졌습니다. 쨍그랑 소리가 나고 에드워드 눈앞은 캄캄해졌습니다. 에드워드는 스스로 걸어서 간 집에서 애빌린, 로렌스, 넬리 그리고 브라이스와 만납니다. 불과 루시도 있었겠죠. 사라 루스는 어디에 있느냐고 에드워드가 물으니 밤하늘의 별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때 에드워드한테 날개가 있었습니다. 에드워드는 날아서 하늘에 가려고 했어요. 그러자 모두가 가지 말라고 하며 에드워드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에드워드는 어딘가 낯선 곳에서 깨어났습니다. 에드워드 머리는 스물한 조각으로 부서졌고 그것을 인형 수선공 루시어스 클리크가 고쳤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고치는 대신 에드워드는 브라이스의 것이 아닌 루시어스 클라크의 것이 되었어요. 브라이스와도 헤어진 것입니다. 에드워드는 인형 수리공의 가게에 진열되었습니다.
다른 인형들은 자신을 사랑해 줄 사람이 오기를 기다렸지만 에드워드는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누군가를 좋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이 사랑받았다는 것만을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에드워드 옆에 아주 오래 살아온 인형이 옵니다. 그 인형은 누군가 올 것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무런 희망 없이 있을 바에는 산산조각 나서 부서지는 게 낫다고 했어요. 그 인형이 한 말은 에드워드 마음에 남았습니다. 철이 바뀌고 해가 바뀌고 봄비가 내리는 날 에드워드는 애빌린과 다시 만납니다. 먼저 에드워드를 갖고 싶다고 한 것은 애빌린 딸 매기였지만요. 에드워드는 다시 애빌린과 만나서 기뻤습니다. 사람이 옮겨줘서 여행을 한 에드워드는 여러번의 만남과 헤어짐을 겪고 애빌린과 다시 만났습니다. 에드워드는 누군가한테 사랑받는 것뿐 아니라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도 배웠습니다. 그게 마음 아프다는 것도. 하지만 또 누군가를 기다리고 사랑하게 된 다는 것을. 이렇게 쓰기는 했지만 좀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몇 해 전에 봐서 내용을 거의 잊어버렸는데 이것을 보니 생각나는군요. 사랑을 받았지만 사랑하는 것을 몰랐던 도자기 토끼 인형 에드워드. 여러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면서 기쁨과 아픔을 배웠군요. 에드워드 키가 1미터 남짓이라니, 어린이가 안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희선
☆―
“이번에는 누가 날 데려갈까 궁금해. 누군가 올 거야. 누군가 늘 오니까. 이번에는 누굴까?”
“누가 날 데리러 오든 난 마음 안 써.”
“하지만 그건 끔찍해.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사는 뜻이 없잖아. 뜻이 없어. 기대를 가져야지 희망을 가져야 하고 다음에는 누가 널 사랑하고 네가 누구를 사랑하게 될지 알고 싶어해야지.” (188쪽)
“넌 날 실망시키는구나. 날 아주 실망시켜. 네가 사랑하거나 사랑받을 생각이 없다면 어떤 여행도 아무런 뜻이 없어. 넌 지금 당장 이 선반에서 뛰어내려서 몇백만 조각으로 부서지는 게 낫겠다. 끝내 버려. 지금 끝내 버리라고.” (189쪽)
“마음을 열어. 누군가 올 거야. 누군가 널 위해 올 거라고. 하지만 네가 마음 문을 열어야 하지.” (19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