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을 건너는 아이들
코번 애디슨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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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른 나라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한번은 꼭 가 보고 싶어하는 곳 가운데 한 곳이 인도가 아닐까. 그런데 사람들은 인도에서 일어나는 어두운 일을 알고 있을까. 나는 알고 있었을까. 지금 생각하니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저 얼마전에 읽은 책 때문에 비슷한 일이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밖에는 몰랐다. 이 책 속에서는 미국뿐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그 일은 세상에서 쉽게 없어지지 않을 일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인신매매, 아동 성노예, 이 말만으로도 무서운 느낌이 든다. 그런 일을 겪고 있는 아이들은 얼마나 괴로울까. 집안이 어려워서 다른 나라에서 일해서 돈을 벌려고 하는 동유럽 여자아이들은 속아서 프랑스와 미국에서 성노예가 된다. 인도 안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 여기에는 인도, 미국, 프랑스 세 나라만 나왔지만 어쩐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우리나라 아이들을 억지로 끌고가서 그런 일을 시키지는 않겠지만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은?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일어나지는 않겠지. 우리나라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니 괜찮다고 생각할 수만은 없기도 하다.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이렇게 책을 보고 그 일을 조금 아는 것밖에 할 수 없다.

 

사람 일은 한순간에 바뀌어버릴 수 있다. 열일곱 살, 열다섯 살인 아할리아 가이와 시타 가이는 인도 첸나이에서 상위 중산 계층 집안에서 행복하게 살았다. 크리스마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난 큰 지진은 인도 코로만델 바닷가를 해일로 뒤덮었다. 아할리아와 시타는 엄마 아버지와 아침을 먹고 바닷가를 걷다가 해일을 만났다. 아할리아와 시타는 살았지만, 엄마 아버지 집에 있던 할머니 그리고 집안일을 하던 자야는 죽었다. 죽은 사람이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이 그날 죽었다. 아할리아와 시타는 두 사람이 다니는 세인트메리 학교에 가려고 했다. 아무 일 없이 그곳에 잘 갔다면 좋았겠지만, 그곳에는 가지 못했다. 차를 태워준 사람은 아할리아와 시타를 어떤 사람한테 팔았다. 다시 아할리아와 시타는 뭄바이의 홍등가에 팔려갔다. 혼자가 아니고 둘이어서 조금은 나았을까. 아할리아는 시타를 자신이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한편에는 미국에서 변호사를 하는 토머스 클라크 이야기가 나왔다. 여기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토머스가 어떻게 아할리아와 시타와 관계있게 될까다. 토머스는 딸이 죽은 지 얼마 안 되었다. 그 일은 아내 프리야와 멀어지게 만들고, 프리야가 토머스를 떠나게 만들었다. 둘 다 슬픔에 빠져서 서로한테 마음을 쓰지 못했던 것이겠지. 프리야는 인도 사람으로 지금 인도에 있었다. 토머스는 회사에서 일어난 안 좋은 일 때문에 쉬거나 다른 일을 해야 했다. 이럴 때는 어떤 끌림의 법칙이 일어난다. 소설이기에 그럴 수 있기도 하지만 실제로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토머스는 우연히 열한 살을 맞은 여자아이 애비가 누군가한테 잡혀가는 모습을 보았다. 바로 앞에서 봤다면 도왔겠지만 차를 쫓다가 놓쳤다. 이 일 때문에 토머스는 인신매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비영리단체 CASE에서 일하기로 했다. CASE는 개발도상국의 인신매매와 성폭력에 맞서는 단체다. 때마침 자리가 난 곳이 인도 뭄바이였다. 그곳에는 아내인 프리야도 있었다. 토머스는 일도 하고 프리야와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곳에 간다.

 

인도 뭄바이에서 일어나는 인신매매와 미성년을 매춘에 이용하는 일을 알고 토머스는 놀란다. 경찰도 썩어서 포주를 쉽게 감옥에 넣지 못했다. 토머스는 이런 말도 들었다. 뭄바이 도시가 홍등가라는. 어느 부족으로 태어난 여자아이는 모두 매춘을 하게 된다고. 그게 몇 백 년이나 이어지고 있다고.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도에는 아직 계급이 있을 것이다. 인도는 사람이 살아가기에 좋은 곳이기도 하지만, 어둠도 깊다. 어디에나 빛과 어둠이 있기는 하지만. 토머스는 미성년 몇 사람 구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느냐고 했다. 그래도 바로 앞에 보이는 사람을 구해야 하지 않느냐고 상대는 말했다. 이것은 맞는 말이다. 조금씩이라도 바꾸어가야 하는 것이다. 경찰이 모두 썩은 것만은 아니었다. 제대로 일하는 사람도 있었다. CASE와 경찰은 미성년을 데리고 있는 곳을 기습하려고 했다. 그곳은 아할리아와 시타가 팔려간 곳이었다. 아할리아는 그곳에서 벗어났지만, 안타깝게도 시타는 그날 다른 사람한테 팔려갔다. 잠시라도 그런 곳에 있으면 정신이 이상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아할리아는 수녀원에서 보호받게 되었는데 임신하고 말았다. 그래도 시타를 다시 만나기 위해 연꽃 씨를 심었다. 아할리아는 토머스한테 시타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언젠가 다른 책에서 본 적 있다. 그것은 콘돔에 넣은 마약을 사람이 삼켜서 다른 곳에 옮기는 것이다. 돈을 받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시타는 억지로 그 일을 해야 했다. 시타는 마약을 프랑스로 옮기고, 프랑스의 인도 식당에서 일하게 되었다. 얼마 뒤에는 다른 곳에서 청소를 했다. 그 집에는 동유럽에서 온 여자아이들이 있었다. 갇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서는 성인 비디오를 찍고, 밤에는 여자아이들을 데리고 어딘가에 나갔다 동이 트기 전에 돌아왔다. 시타를 마약 옮기는 일에 쓴 사람이 뭄바이에서 잡혔다. 그런데 쉽게 풀려났다. 그래도 시타를 프랑스로 데리고 갔다는 말을 한 뒤였다. 그 일 때문에 시타는 인도 식당이 아닌 청소하러 갔던 집에 있어야 했다. 무엇인가 일이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것을 알게 된 시타는 그 집에서 도망치려고 했지만 잡혔다. 그 뒤 시타는 미국으로 팔려갔다. 토머스는 프랑스에서 시타를 찾을 뻔했는데 놓쳤다. 한 사람을 찾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정말 있기를 바란다. 다시는 찾을 수 없다고 그만두지 않기를. 어둠속에서도 작은 빛을 찾아낼 수 있기를.

 

시타는 어떻게 되었을까. 미국 FBI에서는 아동 포르노 사이트를 하는 인신매매단을 쫓고 있었는데 그곳에 시타 사진이 있었다. 토머스도 시타를 구하는 일을 함께 했다. 시타뿐 아니라 다른 여자아이들도 구했다. 그런데 애비(토머스가 인도 뭄바이에 가도록 마음먹게 한)는 죽었다. FBI 요원 프릿쳇은 인신매매범들을 감옥에 처넣기만 한다고 해서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고, 남자들이 여자 사는 짓을 그만둬야 인신매매를 아주 뿌리 뽑을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 이것은 바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여자를 사는 남자들이 없어지는 날이 올까. 아할리아는 자신과 시타를 산 포주에 대해 증언했다. 토머스와 프리야도 다시 좋은 사이로 돌아갔다. 토머스는 유혹에 잘도 넘어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프리야를 사랑한다면서 그러다니. 내가 어떻게 해도 알 수 없는 마음이다. 책 속에서는 일이 잘 해결됐지만, 어딘가에서는 아직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시타처럼 다시 식구와 만나는 여자아이들이 많아진다면 좋겠다.

 

 

 

희선

 

 

 

 

☆―

 

“그 여자들은 베디아 부족이에요. 그 카스트의 여인들은 몇 백 년 전부터 매춘부들이었습니다. 다들 아름답지 않던가요?”

 

토머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혈통은 비밀에 싸여있어요. 하지만 사연은 똑같죠. 부모들이 딸들을 그렇게 키우는 겁니다. 십대 딸들을 데려와서 클럽 무대에 세워요. 그 여자들은 남부 사창가 여자들처럼 남들한테 휘둘리지는 않습니다. 자기 힘으로 살아가고, 쓸 돈도 가지고 있죠. 하지만 자유롭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게 사는 길밖에 모르니까요.”  (148쪽)

 

 

“네가 여기 있는 건 내가 매춘 장사를 즐겨서가 아니야. 남자들이 성매매를 즐기니까 그런 거지. 난 그저 중개인일 뿐이야. 어떤 사업가는 물건을 팔고, 어떤 사업가는 지식을 팔지. 난 환상을 팔아. 다 똑같은 거야.”  (4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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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방 모중석 스릴러 클럽 29
할런 코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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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런 코벤 소설은 이번이 두번째다. 처음 읽은 것은 2010년으로, 그때 읽은 책은 《결백》이다. 다른 책도 읽어볼까 하는 마음이 조금 들기는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결백》이 나한테 좀 맞지 않는 듯해서. 한권만 읽고 그런 생각을 하다니. 《아들의 방》은 예전과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같은 작가가 맞나 했다. 어쩌면 예전에 내가 잘 못 읽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백》을 읽고 쓴 게 있어서 찾아보고는 조금 놀랐다. 《아들의 방》에 나온 사람이 거기에도 나왔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수사과장으로 로렌 뮤즈다. 어쩐지 로렌 뮤즈는 다른 데도 나올 것 같다. 그렇다 해도 로렌 뮤즈가 앞에 나오는 것은 아닌 듯하다. 로렌 뮤즈가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기는 했다. 보이는대로 본 적도 있지만.

 

매리앤은 내시와 피에트라한테 끌려가서 고문당하고 끝내 죽임을 당한다. 내시는 카산드라라는 이름을 말했다. 카산드라의 복수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는데 그것은 아니었다. 내시는 매리앤 얼굴을 못 알아보게 때리고 매춘부처럼 꾸며서 쓰레기처럼 버렸다. 의사인 마이크 바이와 변호사인 티아는 아들 애덤 컴퓨터를 감시했다. 애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서. 그렇게 한다고 해서 알 수 있을지. 애덤이 엄마 아빠가 그런 일을 한 것을 알게 되면 실망할 텐데 말이다. 티아와 마이크가 애덤 컴퓨터를 감시하게 된 까닭은 애덤 친구 스펜서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애덤이 아주 달라졌기 때문이다. 스펜서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엄마 벳시. 죽어가는 아들을 살리려고 하는 엄마 수전 로리먼. 티아와 마이크 딸 질의 친구 야스민은 학교에서 선생님이 한 말 때문에 아이들한테 놀림을 당하게 되었다. 상관없어 보이는 이런 일들을 어떻게 연결할까 했는데 연결이 되었다. 큰 줄기는 두 개라고 할 수 있다. 내시와 피에트라가 여자를 끌고가서 죽이는 일과 마이크가 아들 애덤을 찾는 일이다.

 

두 가지 일이 일어나게 한 사람은 뜻밖의 사람이다. 아니 그렇게 뜻밖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런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도 했으니까. 어린이가 순수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증명해준 듯하다. 하지만 아이가 그렇게 된 것은 부모 탓도 있는 거 아닌가 싶다. 부모가 숨기는 일을 아이는 알고 싶어하고, 반대로 아이가 말하지 않는 일을 부모는 하면 안 되는 것까지 해서 알려고 하니 말이다. 사춘기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것은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다르지 않은가보다. 다르지 않은 게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부모와 아이가 서로의 목숨을 구해주려는 것이다. 이것은 당연한 것인가. 하지만 모든 부모가 아이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까지 아이가 무엇 때문에 힘들어했는지 몰랐던 부모도 있었다. 그런 일이 있어서 티아와 마이크가 애덤 컴퓨터를 감시했는데, 어떤 까닭이 있더라도 그것은 하면 안 되는 일이 아닌가 싶다. 말하지 않는 아이 입을 열게 할 방법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아이가 스스로 말하고 싶어할 때까지 부모가 애써야 하지 않을까.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보다 평소에 마음을 써야 한다.

 

미국에서 일어나는 문제도 알 수 있다. 그것은 부모가 처방받은 약을 아이들이 쉽게 손댈 수 있는 곳에 두는 것이다. 필요하지 않은데도 약을 처방받기도 했다. 이런 일 우리나라에도 있으려나. 나는 약 먹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약을 먹으면 정신이 맑지 않고 무기력해지는 듯해서. 약이 마약과 비슷한 것도 있는 것 같다. 본래 마약도 사람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사람들이 다른 데 쓰게 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작가가 사람들 관계를 먼저 정하고 썼을지도 모르겠는데, 실제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모르는 사람과 어떻게 관계되어 있을지 알 수 없으니 나쁜 관계가 되지 않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한테 성폭행을 한 나쁜 사람이어도 누군가한테는 소중한 오빠이기도 하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먼저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미국 사람도 성폭행 당한 일을 숨기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부모가 그렇게 시킬 때가 많겠지. 이런 알 수 없는 말을 쓰다니.

 

여기에는 이런 것도 있다. 우리 식구만 안전하면 된다는. 어쩌면 이런 생각은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을 것이다. 예전에 읽은 《결백》에도 그런 게 나왔다. 이것은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희선

 

 

 

 

☆―

 

티아는 이 집 식구가 조금 전에 끔찍한 소식을 들었다는 걸 깨닫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정성을 다해 위로의 말을 전하고 함께 슬픔을 나누는 게 마땅했지만, 티아가 진정으로 바라는 건 딸애 손을 끌어당겨 이 집을 벗어나고 아들과 남편을 찾아내서 자신의 집 안으로 밀어넣고 대문을 영원히 잠가버리는 것이었다.  (476쪽)

 

 

신뢰라는 건 그런 것이다. 좋은 뜻으로 깬 거라도, 한번 깨지면 영원히 되돌릴 수 없는 법이다.  (5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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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우주 최강 울보쟁이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Friends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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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해 쓰는 게 쓸데없는 일 같기도 합니다. 책은 실제 읽어봐야 어떤지 알 수 있으니까요. 어쩌면 이것은 책 이야기를 잘 쓰지 못해서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읽고 느낀 것을 조금이라도 잘 나타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이 책은 슬프고 재미있고 감동스럽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아닌 아버지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다르지 않겠죠. 나타내는 게 좀 다르겠죠. 어머니 아버지하고는 상관없이 사람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요. 제가 잘 몰라서 이렇게 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모가 되면 달라진다고 하는 말을 듣기도 했거든요. 결혼하고 세 해 만에 아내인 미사코가 임신을 하자, 야스는 달라졌습니다. 그동안은 일이 끝나고 집에 갔다가 다시 술을 마시러 가거나, 파친코에 가거나, 마작을 하러 갔습니다. 얼마 뒤 아버지가 되는 야스는 이제는 집에 가면 밤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야스가 집에 갔다가 다시 나왔던 까닭은 미사코와 둘이서 있는 게 쑥스러워서였어요. 결혼을 했는데도 부끄러워한 거죠. 어쩌면 미사코는 그런 야스 마음을 알았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야스와 미사코는 둘 다 일찍 부모와 헤어졌습니다. 그래서 식구라는 것을 더 크게 생각했습니다. 아키라가 태어나고 한동안은 행복했습니다. 쉬는 날이면 야스는 미사코, 아키라 셋이서 놀러가서 사진도 많이 찍었습니다. 그런데 야스가 아키라와 동물원에 가기로 한 날 비가 내렸습니다. 그런 날은 그냥 집에서 쉬면 좋은데. 야스는 전날 남겨둔 일이 생각나서 일하러 갔습니다. 미사코는 아키라한테 야스가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면서 야스를 따라갔어요. 그날 그곳에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키라가 야스한테 수건을 가져다 줄 때 수건을 돌렸는데 그게 쌓여 있던 화물에 걸렸습니다. 화물이 무너질 때 미사코가 아키라를 감쌌습니다. 아키라는 살고 미사코는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행복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군요. 아버지가 혼자 아이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겠죠. 걱정거리도 하나 있었습니다. 미사코가 어떻게 죽었나에 대해서 언젠가 아키라한테 말해줘야 한다는 거죠.

 

책 한 권에 나타낼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일 수도 있고,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나온 시간은 20년 이상입니다(30년 가까이일지도). 그래서 시간이 빨리 흐릅니다. 그게 좀 아쉽게 느껴지더군요. 본래 아이가 태어나서 자라기까지는 순식간인지도 모르겠네요. 야스와 아키라는 두 식구지만 둘레에 좋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미사코의 빈 자리를 채워주었습니다. 엄하지만 정이 깊은 가이운 스님, 아들인 쇼운은 야스와 죽마고우였습니다. 쇼운과 아내인 유키에 사이에는 아이가 없어서 아키라를 아들처럼 많이 아껴주었습니다. 작은 술집 ‘저녁뜸’을 하는 다에코는 야스를 어릴 때부터 봐서, 아키라도 돌봐주었습니다. 이 책 속에 나온 때는 옛날로 남 일도 자기 일처럼 여기던 때입니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때가 있었는데 말입니다. 야스 혼자였다면 아키라를 키우기 어려웠을 겁니다. 아키라를 키운 사람은 아주 많았습니다.

 

아키라가 아들이기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되어서 아버지가 자신을 얼마나 힘들게 키웠는지도 알게 됩니다. 모두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은 그렇게 부모가 되어서야 부모 마음을 조금은 알게 되는 거겠죠. 아키라가 결혼하려고 한 상대 유미는 아키라보다 나이가 많았고 한번 결혼했다 헤어지고 아이까지 있었습니다. 야스가 그 일을 알고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야스는 피가 이어지지 않았다 해도 자기 첫 손자는 겐스케(유미가 데리고 온 아들)라고 했습니다. 조금 무뚝뚝한 야스지만 아키라는 사랑으로 키웠다는 느낌이 듭니다. 야스는 아키라한테 잘 자라주었다는 말도 했습니다. 이 말도 맞는 말이죠.

 

좀 더 정이 깊었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때만을 나타내지는 않습니다. 지금은 결혼했다 헤어지고 다시 결혼하는 사람이 많기도 합니다. 아이가 없는 사람도 있지만,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이에 대해 야스가 겐스케를 생각하는 것처럼 많은 사람이 그러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요.

 

 

*본래 제목을 보니 솔개(とんび 톤비)였습니다. 언젠가 우연히 본 일본 드라마 제목이 <솔개>였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것은 진짜 솔개와 관계있는 것인가 했는데, 이 책으로 만든 드라마였습니다. 책 속에 보면 솔개가 매를 낳았다는 말이 나옵니다. 부모보다 나은 자식이라는 뜻일까요.

 

 

 

희선

 

 

 

 

☆―

 

“알겠나, 야스야. 넌 바다가 되는 거다. 바다가 돼야 한다.”

 

“…… 무슨 소린지 모르겠습니다, 스님.”

 

“눈은 슬픔이다. 슬픈 일이 이렇게 자꾸자꾸 내린다, 그렇게 생각해봐라. 땅에서는 자꾸 슬픈 일이 쌓여가겠지. 색도 새하얗게 바뀌고. 눈이 녹고 나면 땅은 질퍽질퍽해진다. 너는 땅이 되면 안 된다. 바다다. 눈이 아무리 내려도 그걸 말없이, 모른 체 삼키는 바다가 돼야 한다.”  (99쪽)

 

 

“식구가 진짜 가짜가 어디 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끼리 함께 있으면 그게 식구지. 함께 안 있어도 식구고. 내 목숨하고 바꿔서라도 지켜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상대는 다 식구지. 그거면 된 거지.”  (311쪽)

 

 

“나, 하나도 외롭지 않았어.” 하고 말했다. “아버지가 있었으니까 하나도 안 외로웠어…….”

 

“나도 그랬다.” 얼굴은 보지 않는다. “나도 아키라가 있어줘서 외롭지 않았다.”  (367쪽)

 

 

“하나만 말하자. 겐스케도 그렇고 태어날 애도 그렇고, 행복하게 해 줘야 한다고 너무 생각할 거 없다. 부모란 게 그래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조금 더 일찍 태어났고 조금 짊어진 게 많은 거, 그 차이다. 애를 키우다 보면 틀린 것도 억수로 많다. 아쉬운 걸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그래도 아키라는 똑바로 잘 커 줬다. 네가 네 힘으로 똑바로 큰 거다.”

.

.

.

 

“부모가 자식한테 꼭 해 줘야 하는 거는 딱 하나밖에 없다.”

 

“…… 뭐?”

 

“애를 외롭게 하지 마라.”

 

바다가 돼라.

 

먼 옛날 가이운 스님이 한 말이다.

 

자식의 슬픔을 삼키고 자식의 외로움을 삼키는 바다가 되어라.  (3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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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누구나의 인생 - 상처받고 흔들리는 당신을 위한 뜨거운 조언
셰릴 스트레이드 지음, 홍선영 옮김 / 부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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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렸을 때 라디오 듣는 것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그때와 달라진 것은 라디오를 듣는 시간입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늦은 밤을 좋아합니다. 지금은 밤에도 환해서 예전만큼 조용한 느낌은 없지만, 그래도 아직 낮보다 밤에 훨씬 조용합니다. 늦은 밤에 책을 읽으면 더 집중할 수 있을 텐데. 아니, 책은 낮이든 밤이든 이야기에 빠져들면 집중할 수 있기는 합니다. 이상한 게 하나 있는데 책을 읽기 시작하면, 다른 소리들은 거의 들리지 않지만 음악소리만은 들린다는 겁니다. 모든 소리가 다 지워지면 좋을 텐데 잘 안 되는군요. 제가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좋아한 것은 이런저런 게 있는데, 가장 첫번째는 음악(우리나라 노래)이기는 했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 노래 나오는 방송은 거의 안 듣는군요. MBC FM에서 하는 ‘음악캠프’를 듣습니다. 그저 틀어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랫말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도 들을 수 있거든요. 가끔 재미있거나 들어두면 좋겠다 하는 말이 나오면 잠시 책 읽기를 쉽니다. 그리고 ebs도 잘 듣습니다. 지금은 ebs에서 거의 책을 읽어줘서, 제가 책을 읽을 때는 듣지 않습니다. 책을 읽지 않을 때 틈틈이 듣고, 듣고 싶은 게 하면 책을 안 보는 거죠.

 

라디오 방송에서 제가 잘 들으려고 했던 게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괴로워서 속태우는 일을 라디오를 듣는 사람이 보낸 것을 진행자가 읽고, 그것에 대해 도움말을 해줄 때입니다. 이런 것은 여전히 있을 겁니다. ebs에서는 늦은 밤 12시에서 새벽 2시까지 <경청>이라고 하는 상담방송을 합니다. 다른 방송에서는 아주 잠깐 하는 것을 여기에서는 두 시간 동안 하는 거죠. 먼저 인터넷 게시판에 자기 이야기를 쓰겠죠. 방송에서는 전화로 이야기를 합니다. 이 방송은 몇 번밖에 안 들어봤는데 괜찮은 듯합니다. 진행하는 사람은 날마다 다릅니다. 제목이 한자말 ‘경청(傾廳)’이라는 게 조금 마음에 안 들지만, 청소년과 청년들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으로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 《안녕, 누구나의 인생》은 괴로워서 속태우는 일이 있는 사람이 슈거한테 보낸 전자편지와 슈거가 그에 대해 도움말을 써준 것을 묶은 겁니다. 저뿐 아니라 사람들이 라디오 방송이나 이런 책으로 다른 사람이 괴로워서 속태우는 이야기를 듣고 읽어보는 것은 왜일까요. 누구한테나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문제가 일어나고 아파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자기와 비슷한 일은 없을까 찾아보기도 하겠죠.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 해도 이런 글을 보면 마음이 괜찮아지기도 합니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군요. 그냥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힘을 받는 것은 아닌지.

 

전자편지를 받고 답장을 써주는 슈거는 작가인 셰릴 스트레이드입니다. 4000킬로미터를 걸었던 일을 적은 《와일드》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읽지 않았지만. 셰릴 스트레이드는 작가지 전문가가 아닙니다. 예전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심리치료사나 정신과 의사는 다른 사람 말을 들어주기만 해야 하는데, 그 사람들 마음은 누가 낫게 해줄까 하는. 어쩌면 전문가가 되어가면서 벌써 나았는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문제는 일어날 텐데. 전문가는 어떤 문제에 대해 자신의 주관보다는 한발짝 떨어져서 봐야 합니다. 모두가 다 그러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은 한발짝 떨어져 있는 사람보다는 바로 옆에서 말을 들어주고 함께 느껴주기를 더 바랄 겁니다. 때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군요. 어느 쪽이 더 좋다고 말하기 어렵군요. 둘 다 필요하겠죠. 셰릴 스트레이드가 하는 슈거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자기 이야기까지 하면서 도움말을 해줍니다. 전자편지를 보낸 사람도 도움을 받았겠지만, 슈거도 도움을 받았을 것 같습니다.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잘 들여다보려고 했으니까요. 이야기를 읽다 보니, 사람들이 자신이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는지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괴로워서 속태우는 일이 있다 해도 글로 쓰지 못하기도 하거든요. 자기 문제를 잘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반은 해결된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리고 슈거는 사람들이 좀 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게 도와줍니다. 답은 자기 안에 있으니까요.

 

우리나라와는 문화가 다르지만, 사람은 모두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누구든 자기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 편지를 쓰고 슈거한테 도움말을 듣는다고 해서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스스로 그렇게 되도록 애써야 합니다. 뒷이야기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모두 이 편지를 썼을 때보다 더 잘 살아가고 있다면 좋겠군요.

 

 

 

희선

 

 

 

 

☆―

 

무엇이 맞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시간이 말해주겠죠. 자존심 버리고 친구들 얘기를 끝까지 들어보세요. 친구들에게 비친 당신 모습이 어떤지 바라보세요. 도움이 될 거예요. 사실을 안 뒤에 열을 받을 수도 있어요. 이참에 그때 받은 쓰라린 상처를 이겨낼 수도 있고요. 우정이 복잡한 것은, 아무리 친한 친구들도 가끔 우리를 아주 잘못 보거나 반대로 누구보다 정확히 보는데 어느 쪽이 맞는지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76쪽)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한테 충실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세요. 한때 존중했던 여성이 당신한테 무례를 범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세요. 그 둘의 행동에 깊은 상처를 받았음을, 이번 일로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되었음을 받아들이세요. 슬픔과 갈등도 즐거운 삶의 한 부분임을 받아들이세요. 가슴속 화를 내려놓으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임을 받아들이세요. 지금 당신을 그렇게 힘들게 하는 아픔이 언젠가 분명 사그라질 것임을 받아들이세요.  (125쪽)

 

 

…… 이상하고도 가슴 아픈 사실은 제가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었기 때문에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는 겁니다.

.

.

.

 

당신한테도 슬픔이 가르침을 줬습니다. 당신한테 아들은 살아서도 가장 위대한 선물이었고, 죽은 뒤에도 가장 위대한 선물이에요. 이 사실을 받아들이세요. 죽은 아들이 당신한테 가장 큰 경이로움으로 남을 수 있게 하세요. 아들을 잃은 자리에 무언가를 만들어 내세요.  (292쪽)

 

 

우리는 살고, 경험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고, 또 사랑하는 사람을 잃습니다. 언제까지나 곁에 있을 것만 같은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고, 우리 삶에 들어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 걸어 들어오죠. 이런 삶에서 우리가 할 일은 신념을 지키는 일이에요. 상자에 넣고 기다리는 거죠. 언젠가 뜻을 알게 되리라 굳게 믿고, 그 평범한 기적이 우리 앞에 드러났을 때 그 자리에 있는 거예요. 예쁜 드레스를 입은 아기 앞에 서서 작은 일에 고마워하는 거예요.  (339쪽)

 

 

 

 

 ☆경청 홈페이지

 

*시간이 흘러서 이제 이 방송이 없어졌습니다 지금은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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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 2013-06-18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타루가 나오네요, 한 번 들어보고 싶네요.

희선 2013-06-20 01:00   좋아요 0 | URL
생방송으로 못 들어도 들을 수 있어요 다시듣기가 있으니까요 ebs에 가입하면 거의 들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지만 저는 다시듣기로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무엇인가를 설치해야 해서, 제가 그런 것을 싫어해요 하드디스크 때문에, 어쩌면 그렇지 크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그것보다는 라디오 방송은 라디오로 그때 듣는 게 더 좋아요) 아니면 월요일만 들어보세요 타루는 예전에 스위트피 노래 <떠나가지마>를 같이 해서 이름은 알고 있었습니다 ebs 다른 방송에 나왔을 때도 한번 들어본 것 같은데 어땠는지 생각은 잘 안 나는군요 노래 말하니까 들어보고 싶어졌습니다(들었습니다)

어제 새벽 1시까지 책을 보려 했는데(요새 게으르게 책을 읽고 있어서, 요새만 그런 게 아니군요) 12시 넘으니까 라디오 방송 생각났습니다(예전에는 책 읽고 나서 그것에 대해 쓰다보니 12시가 넘어서 듣게 되었던 겁니다 쓸 때도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이 들리면 집중이 안 되기도 하는데, 그래도 책을 읽을 때보다는 나아요 가끔 다른 방송 끝나고 나온 광고를 듣기도 했군요 라디오 많이 듣는 것 같은데 틈틈이입니다)
그래서 라디오 틀어서 들었더니, 책에서나 읽었던 이야기를 하고 있더군요 책을 읽으면서도 우리나라도 정말 심할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정말 그런가봐요 괴롭힘 당했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부터 듣지 않아서 어떤 식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대학생이고,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나봐요 지금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마음이 다 낫지는 않았겠죠 그래서 그렇게 전화를 해서 이야기를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방송 자주 듣지도 않는데, 어쩌다 한번 듣고서 이렇게 말했네요
청소년이 들으면 좋을 듯해요(본래 새벽 방송은 그렇던가) 아무한테도 말하기 어려운 일이 있는 사람은 용기를 내서 거기에 말해보는 것도 괜찮겠죠 바로 달라지지는 않더라도 조금은 마음이 편해질 테니까요


희선
 

 

 

 

내가 무서운 이야기 하나 해줄게. 어쩌면 그렇게 무서운 이야기는 아닌지도 모르겠어. 그리고 처음에 생각한 것은 그쪽이 아니었거든. 조금 생각하다보니 마음이 바뀌었다고 할까. 사실 나는 무서운 이야기를 그렇게 잘하지 못해. 아니 무서운 이야기만 못하는 것은 아니군. 이야기를 잘 못해도 아주 가끔 무엇인가 말하고 싶어질 때가 있어. 응, 지금 말하고 싶어. 들어줄거야.

 

여자는 집에서 혼자 살고 있어. 어떤 집으로 할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공간이 나뉘어 있는 곳보다는 트여 있는 곳인 게 낫겠다 싶었어. 그래, 여자는 원룸에서 살고 있어. 자세하게 그려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냥 상상해. 늦은 밤 아마 새벽 12시쯤 되었을 거야. 여자가 잠을 자고 있는 집 안에 전화벨 소리가 울렸어. 처음에 여자는 조금 뒤척이기만 하다 다시 잠들었어. 조금 뒤 다시 전화벨 소리가 울렸어. 그때는 여자가 전화벨 소리를 들었는지 일어나서 전화를 받았어.

 

“여보세요.” 수화기 저편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 다시 여자가 “여보세요.” 말하자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어. “엄마.” 여자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말했어. “얘, 너 어디에 전화한 거야. 난 네 엄마가 아니야.” 다시 수화기에서 들리는 말은 여전히 “엄마.”였어. 여자는 아이가 조금 불쌍했지만 전화를 잘못 걸었다고 생각하고 끊었어. 그리고 다시 잠들었지.

 

여기까지 말해도 그렇게 무섭지 않군. 어떻게 하면 무서운 이야기가 될까.

 

다음날 밤 또 여자가 잠들고 새벽 12시가 되자 전화벨이 울렸어. 그리고 그 일은 며칠이나 이어졌어. 여자는 새벽에 잠을 설쳐서 그런지 늘 피곤했어. 그러고 보니 여자가 낮에 무엇을 하는지는 말 안했군. 나도 잘 모르겠어. 어딘가에 나갔다 오는 것 같기는 한데, 대체 무엇을 하고 오는 걸까. 혼자 먹고 살려면 무슨 일이든 하고 있겠지.

 

여자가 전화를 받으면 아이는 언제나 “엄마.”만 찾았어. 여자가 가끔 무슨 말을 물어봐도 아이는 다른 말을 하지 않는 거야. 여자는 조금 무서운 생각이 들었어. ‘이 아이는 대체 왜 나한테 날마다 전화를 하는 걸까’ 했지. 정말 아이는 왜 여자한테 전화를 하는 걸까. 아니 이 아이는 정말 사람일까. 혹시 전화기 속에 사는 귀신 같은 것은 아닐까. 이 말을 하니까 갑자기 내가 다 무서워지네.

 

미안해. 이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았어. 한 달 정도가 지나자 여자한테 더는 전화가 걸려 오지 않았어. 아니 그것보다 여자가 더는 전화를 받을 수 없게 됐어. 그 방에서 여자의 모습이 사라져 버렸거든. 여자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어. 아무도 모르게 그 집에서 떠났다, 와 어떤 힘 때문에 여자는 전화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서 지금은 전화선을 타고 다니고 있다, 야. 혹시 다른 생각이 있다면 나한테 말해줘도 괜찮아.

 

본래 생각했던 것하고는 다른 쪽으로 흘렀지만, 아주 조금 무섭다는 느낌이 드는데. 어때.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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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8 23: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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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0 00: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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