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습관이다 - 부정의 나를 긍정의 나로 바꾸는 힘
박용철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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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부정의 나를 긍정의 나로 바꾸는 힘’이라는 말 때문에 이 책을 보았습니다. 제가 어느 때는 괜찮은데 그런 마음은 잠시뿐 바로 마음이 가라앉기도 합니다. 부정이 아닌 긍정의 마음을 갖고 싶습니다. 자신한테 안 좋아도 오랫동안 버릇이 들어버리면 고치기 아주 어렵잖아요.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오래된 버릇이라고 해도 고칠 수 없는 것은 아니기도 합니다. 감정도 버릇이라고 하더군요. 긍정의 감정을 가진 사람은 안 좋은 일이 있어도 바로 좋은 감정으로 돌아가고, 부정의 감정을 가진 사람은 좋은 일이 있어도 잠시 시간이 지나면 안 좋은 감정으로 돌아간다는군요. 감정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뇌, 마음. 언젠가 뇌가 우리를 속인다는 말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 책이 있다는 것만 알고 읽어보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에도 그런 비슷한 말이 있더군요. ‘뇌는 유쾌하고 행복한 감정이라고 해서 더 좋아하지 않는다. 유쾌한 감정이건 불쾌한 감정이건 익숙한 감정을 좋아한다. 불안하고 불쾌한 감정일지라도 그것이 익숙하다면, 뇌는 그것을 느낄 때 안심한다. (21쪽)’ 즐거운 감정버릇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즐겁고, 우울한 감정버릇을 가진 사람은 늘 우울하다니. 뇌는 마음을 배신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군요. 우울한 사람도 늘 우울하고 싶지 않기도 하잖아요. 낯선 것보다 익숙한 것을 좋아하는 것은 뇌 때문인가봅니다.

 

힘들게 살던 사람이 편해지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도 하잖아요. 지금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다시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을 하는 겁니다. 이것도 그동안 익숙한 감정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라는군요. 칭찬받는 것보다 혼나서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도 있답니다. 믿기 어렵기는 하지만, 아주 믿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그런 모습을 한번도 못 본 것은 아니니까요. 제가 자주 우울해지는 것도 제 표준감정이 이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보면서 나는 어떤 감정버릇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보았는데 중간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평소에는 그런 것 같은데 어떤 일이 일어나면 안 좋아질 때가 더 많습니다. 아무래도 안 좋은 쪽인 것 같군요.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 기분이 안 좋아지고, 좋은 일이 일어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군요. 그런데 저는 안 좋은 일이 아닌데도 기분이 안 좋아진다는 겁니다. 저도 이런 제 마음 때문에 기분이 나쁩니다. 어쨌든 기분이 안 좋을 때는 그 감정이 지나가기를 바랍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더군요. 이렇게 보니 역시 저는 중간인 듯하군요. 안 좋은 쪽에 아주 조금 기운.

 

어떤 사람은 자기한테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을 자꾸 만나기도 하잖아요. 이런 것은 텔레비전 드라마 같은 데서 보기도 한 거군요. 그런데 그것도 감정버릇과 같다더군요. 첫눈에 반했다는 사람도 자신한테 버릇이 든 사람을 바로 알아보는 것이라는군요. 다른 사람, 그러니까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을 만나면 편하지 않게 느끼기도 하지요. 그것은 새로운 감정버릇을 들여가는 것이라는군요. 저는 그런 경험은 없지만, 어떤 사람은 자꾸 사기를 당하기도 하잖아요. 그것도 감정버릇 때문이 아닐까 싶군요. 자신도 모르게 그런 사람이 익숙해진 것이지요. 처음부터 사람을 의심할 수는 없고, 남을 속이는 사람이 어떤지는 저도 잘 모르지만 자신한테 편하다고 해서 다 좋지는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아주 편하게 여기는 사람이 거의 없군요. 실제 만나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대인관계에서 뇌는 친밀감을 채우려고 한다는군요. 친밀감에는 폭식형, 포기형, 거식형이 있는데 저는 폭식형, 포기형이 다 있는 듯합니다. 포기형에 더 가까운 듯. 이런 생각이 들기는 해도 그런가 보다 할 뿐입니다. 바뀌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을 안 하는 거죠. 이것도 익숙한 감정을 바꾸지 않으려는 거군요. 사실 저는 제가 게을러서 그런 것인가 했습니다. 아니, 게으른 것도 뇌가 그것을 익숙하게 여기기 때문이겠습니다.

 

자신은 어디에 해당하는지 한번 보십시오. 하나도 없는 분도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폭식형에서 만들어지는 대인관계버릇

 

- 상대의 관심을 지나치게 바란다.

- 버림받을 것을 걱정해 자주 애정을 확인하려 한다.

- 상대의 의견에 조건없이 따르고 상대한테 지나치게 의존한다.

- 자신이 결정하지 않고 덮어놓고 상대가 결정해주는 대로 따르고 상대한테 종속되려 한다.  (124쪽)

 

 

포기형에서 만들어지는 대인관계버릇

 

- 자신은 어디에도 잘 어울리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 자신은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 소외감을 자주 느낀다.

- 남들이 자신에 대해 모두 알면 떠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스스로 모자란 점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125쪽)

 

 

거식형에서 만들어지는 대인관계버릇

 

- 상대 뜻에 대해 늘 의심하고 믿지 않는다.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 다른 이 생각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위주의 행동을 한다.

- 사무적이고 일과 관계된 것에만 집중한다.

- 소위 왕자병, 공주병이라고 하는 행동들을 보인다. 곧 남들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만 생각하는 느낌을 준다.  (126~127쪽)

 

 

다음에는 이것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에 대한 말이 있습니다. 공통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 익숙한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과도 관계를 맺고 그것을 이어갈 수 있게 하라는군요. 그리고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을 곁에 두라는 말도 있습니다. 자기한테 익숙한 사람이 안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런 사람한테 상처를 받으면 안 좋은 것이지요. 지금까지 자신이 어떤 사람한테 상처를 받았는지 잘 생각해보면 비슷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번 잘 생각해보십시오. 그런 것을 생각해도 사람은 알기 어렵습니다. 제가 생각했을 때 좋은 것은 남한테 기대지 않고 홀로 잘 있는 겁니다. 그리고 많이 기대하지 않기, 자기 자신을 좋아하기. 이런 것은 알고 있어도 잘 하기 어렵기도 합니다.

 

사람이 기쁨과 즐거움을 느낄 때 뇌에서는 도파민과 세로토닌이 나온다고 합니다. 도파민은 짜릿한 쾌감을 느낄 때, 세로토닌은 일상에서 작은 즐거움을 느낄 때. 도파민이 필요없는 것은 아니지만, 세로토닌이 더 자주 나오게 해야 한답니다. 짜릿함은 갈수록 세기가 커져야 느낄 수 있지만, 작은 즐거움은 심심하지만 자주 느낄 수 있고 마음이 편안하잖아요. 세로토닌이 나오게 하는 방법은 걷기, 햇빛쐬기, 고마워하는 마음 갖기, 자연과 함께 하기랍니다. 이것을 한꺼번에 하려면 날씨 좋은 날 둘레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생각하면서 걷는 것입니다. 어렵지 않지요. 걸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세로토닌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을 모르고도 했다니 신기합니다. 본래 사람은 자기한테 좋은 게 무엇인지 아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술이나 담배에 빠져드는 사람도 있군요. 이것은 나쁜 감정버릇 때문이겠지요. 스트레스를 술, 담배로 풀지 않아야 한다는군요. 이것보다 안 좋은 것은 마약이겠군요. 자신은 술을 마셔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스트레스를 푸는 게 아니고 긴장을 쭉 지키는 것이랍니다. 안 좋은 버릇은 고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고칠 수 있다고 합니다. 고치려고 하다가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겠군요. 어쩌다 이렇게 흘러갔는지.

 

좋은 감정버릇을 들이는 방법을 보니 명상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그리고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애를 많이 써야 한다는 거예요. 뭐든 쉽게 되는 것은 없기는 하군요. 사람마다 느끼는 행복은 다릅니다. 자신이 어떤 때 좋은가를 잘 들여다보는 게 좋겠지요. 아니, 그것보다는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즐거움을 좋아해야 합니다. 자극이 크지 않은 것으로. 성공하고 크게 좋은 일이 터져야 즐거울 수 있다는 생각은 안 좋습니다. 걱정하는 시간을 정해놓고 하라고 하더군요. 감정수첩에 잠깐 느낀 기쁨과 고마운 일을 적고 자주 들여다보기는 저도 해 보고 싶습니다. 자기 감정을 자주 확인해보는 것도 좋다고 합니다. 늘 같은 날이지만 다르기도 합니다. 이것을 잊지 않고 긍정의 생각을 하고 자주 웃는다면 좋겠지요. 좋은 일이 없어도 웃으면 기분이 좋아진다잖아요.

 

 

 

희선

 

 

 

 

☆―

 

일상이 지겹고, 사소한 즐거움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돌아보면 작은 즐거움이 떠오르지 않나요?

 

그저 기다리지만 말고 작은 뜻이라도 주고, 내 삶 속에서 오늘 하루가, 작은 그 일이 어떤 가치를 가질 수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되풀이되는 하루라도 돌아보면 작은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뜻 없이 되풀이되는 당신 생활이 뜻을 갖게 될 것입니다.  (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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ビブリア古書堂の事件手帖 2 ?子さんと謎めく日常 (メディアワ-クス文庫) (文庫) ビブリア古書堂の事件手帖 (文庫) 2
미카미 엔 지음 / アスキ-·メディアワ-クス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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ビブリア古書堂の事件手帖 2  栞子さんと謎めく日常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2  시오리코 씨와 수수께끼에 싸인 나날)

 

 

 

책 이야기뿐 아니라 어떤 이야기도 잘할 수 없는 나는 무엇보다 책 이야기를 즐겁게 하는 시노카와 시오리코가 부럽다. 고우라 다이스케 말에 따르면 시오리코는 책 이야기를 할 때면 아주 다른 사람이 된다고 한다. 스위치가 켜진 듯. 첫번째 책에서 시오리코는 병원에만 있었다. 끝에서는 병원을 나왔다. 어쨌든 비블리아 고서당에 나가서 일을 한 건 고우라 혼자였다. 가끔 시오리코 동생 아야카가 책방을 보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시오리코와 고우라가 같은 공간에 있었다. 그렇다 해도 아주 다른 점은 없다. 시오리코는 책으로 벽을 만들어두고 그 안에서 컴퓨터로 홈페이지를 보거나 책을 보기도 했다. 비블리아 고서당에 찾아오는 손님은 고우라가 맞았다. 고우라가 없었을 때 시오리코는 어떻게 했을까. 그때는 또 어떻게든 했을지도. 책방에 바로 오는 사람보다는 인터넷으로 알아보고 책을 사는 사람이 더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고우라가 일하게 되고 알게 된 사람은 가끔 찾아오기도 할 것이고. 책방을 하려면 책뿐 아니라 사람도 좋아해야 한다고 하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어쩌면 이것은 소설이기에 있을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어딘가에 실제로 비블리아 고서당 같은 곳이 있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이곳 시간이 멈추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 것 같다. 그래도 시간은 흐른다.

 

비블리아 고서당을 그만두고 일자리를 찾던 고우라는 다시 비블리아 고서당에서 일하기로 했다. 나이 많은 분이 자기 이야기를 하면 책 몇 권은 된다고 하는데, 고우라도 이 말과 같은 말을 했다. 비블리아 고서당에서 일하게 되고 그만두고 다시 일하게 된 이야기를 하면 책 한권은 된다고. 나는 마음속으로 ‘그 이야기 책 한권으로 나왔는데’ 했다. 이 책은 고우라가 이야기하는 것이라기보다 쓰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말이 있기도 하다. 다시 생각하니 이야기하는 것이나 쓰는 것이나 같겠다. 내가 쓰는 것도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까. 어떻게 하면 잘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책을 읽고 그것에 대해 쓰는 것은 해도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데도 무엇이든 써야 한다는 마음 때문인지도. 그래도 아주 가끔은 이것저것 생각나기도 한다. 이야기가 잠깐 다른 곳으로 흘렀다. 책을 읽고 쓰는 것을 나는 여전히 어렵게 느끼는데 시오리코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려운 책을 읽고 감상문도 아주 잘 썼다. 시오리코가 초등학생 때 자전거를 타고 여러 책방에 다니면서 책을 샀다고 하니, 고우라는 그때의 시오리코를 보고 싶다고 했다. 두 사람은 초등학생 때 스쳐지나간 적이 있을까.

 

자매와 형제는 사이가 아주 좋을 수도 있지만 아주 나쁘기도 하다. 자매와 형제 사이가 좋고 나쁜 것은 부모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을지도 모르겠다. 부모 탓만 하기는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자매여도 서로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쪽만 마음을 닫기도 한다. 마음을 닫는 쪽은 거의 동생이다. 경험은 없지만, 지금까지 본 책을 생각하면. 언니와 동생 가운데 마음의 여유가 있는 것은 언니 쪽이다. 고스가 나오와 고스가 유이 두 사람 가운데서도 동생인 유이는 언니가 남자친구를 사귀고(실제는 차였는데) 이런저런 책을 읽는 것을 보고 언니가 자신보다 앞서간다고 느꼈다. 자기도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다 해서는 안될 일을 했다. 그것이 무슨 일인지는 책에서 확인하기를. 골이 깊어져서 다시 좋은 사이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도 있지만, 고스가 나오와 고스가 유이는 사이가 좋아졌다. 둘이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해서겠지. 이제는 가장 좋은 친구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중학생도 읽기 어려워하는 책을 시오리코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읽고 감상문을 썼다. 시오리코는 어렸을 때부터 책에 둘러싸여 살았을 테니 책을 많이 읽었을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을 때는 집에 안 좋은 일이 있었다. 그때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데 어떤 일은 잊지 않기도 한다. 제대로 말을 하지 않으면서 왜 이런 말을 꺼냈을까. 초등학교 4학년이라는 말 때문이다. 집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4학년 겨울방학을 보내고 5학년으로 올라갔는데 그때 나는 어떻게 지냈을까. 타임머신이 있다면, 무엇인가를 바꾸기 위해서라기보다 그냥 어느 때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보러 가고 싶기도 하다. 어렸을 때 일을 소설로 쓰는 사람은 그때 일을 잊어버리지 않고 모두 기억하고 있는 걸까. 그런 사람도 부럽다. 자기한테 일어난 일을 잘 기억하는 사람. 지금부터라도 잘 잊지 않도록 하면 좋겠지만. 그때는 ‘잊지 않을 것이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그런 일이 있었던가’ 한다. 사람은 잊을 수 있기에 살아간다고 하지만 생각하면 슬프기도 하다.

 

고우라와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고 대학교 1학년 때까지 사귄 여자친구 아키호가 비블리아 고서당에 죽은 아버지가 남긴 책을 팔게 된다. 비블리아 고서당에 책을 팔게 한 사람은 아키호 아버지다. 고우라와 아키호 그리고 또 다른 친구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이야기가 조금 나왔다. 고우라가 떠올린 일이다. 그건 그렇고 시오리코는 아키호 아버지가 남긴 책을 보고 아키호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말하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책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 취미, 직업에 나이까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정말 그럴까. 예전에는 나도 책 사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보면서는 많이 사지 않게 되었다(이 책은 빌려볼 수 없어서 샀고 책이 많으면 좋겠지만 짐이 늘어서). 나와 같은 사람은 가지고 있는 책을 봐도 알 수 있는 게 적지 않을까 싶다. 이 세상에 시오리코와 같은 사람이 많지 않기를. 시오리코는 거의 탐정에 가깝다. ‘책탐정’이라고 하면 어떨까. 시오리코는 아키호 아버지 책으로 아키호 아버지가 아키호한테 하려고 한 말을 알아냈다. 다른 때보다 조금 늦었던 것은 감기기운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과는 다르게 말하기도 한다. 자기 마음을 제대로 나타내기 어려워서일 것이다. 그런 마음을 모르지는 않는다. 그래도 어떤 말은 살아있을 때 해야 하지 않을까.

 

일본에서는 아주 친하지 않는 한 상대를 성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시오리코는 고우라와 아키호가 성이 아닌 서로의 이름을 말하는 것을 보고 부러워했다. 그러고는 고우라를 ‘다이스케 씨’라고 했다. 고우라도 시오리코한테 시노카와가 아닌 시오리코라고 해도 되느냐고 물어봤다. 시오리코는 친구가 별로 없어서(거의 없을지도) 그런 것을 부러워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것을 보고 두 사람 사이가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세번째 이야기에서 시오리코는 고우라한테 엄마 이야기를 하고는 자신은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다. 드라마 같은 데서 들을 법한 말. 책이나 드라마나 다르지 않을까.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나간 일은 시오리코한테 충격이었던 것 같다. 엄마와 많이 닮은 자신도 엄마처럼 하는 것은 아닐까 했다. 그래도 시오리코는 엄마가 자신한테 무슨 말을 하지 않았을까 하고 엄마가 남겨준 책을 찾고 있다. 이것은 고우라가 알아냈다. 고우라는 따로 시오리코와 만나고 싶어했는데, 시오리코는 무엇보다 헌책방에 가 보고 싶다고 했다. 다른 사람 마음은 아주 잘 알아도 정작 자기 마음은 잘 모르는 사람도 있는데 시오리코도 그런 듯하다. 어디에서든 책만 생각하는 시오리코. 무엇인가 하나를 아주 좋아할 수 있어서 좋겠다. 나는…….

 

 

 

+더하는 말

 

지난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일본에서 나오는 책을 알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게 나왔다. 고스가 나오 때는 신초사에서 나오는 문고책에만 있는 가름끈. 옛날에는 다른 데서 나오는 책에도 있었지만 지금은 신초사에서 나오는 문고책에만 있다고. 가름끈이 달린 책을 내는 출판사가 한곳 더 있다는 말은 만화책에 쓰여 있다. 여기에는 고스가 유이 때다. 책 사이에 끼워져 있는 전표(책속에서는 슬립이라고 했다, 일본에서도 그렇게 말한다)다. 이것은 만화책에도 끼워져 있다. 예전에 일본에서 나온 만화책을 처음 샀을 때 그것이 뭔가 했다. 그러고는 책갈피로 쓰라는 것인가 했다. 하지만 책갈피로 쓴 적은 없다. 고우라는 이 전표를 책에서 빼고 책을 다 읽은 다음 다시 끼워두는 사람은 없겠지, 했는데 그것은 잘 모르고 한 말이다. 그런 사람 있다. 바로 나다. 처음에는 그냥 뺐는데 다음부터는 그대로 끼워두었다. 이런 나도 참 이상하구나. 나는 책을 아주 깨끗하게 보는 편이다.

 

 

 

  

   왼쪽 분홍색이 슬립(전표) 옆에는 3권, 어쩐지 자랑하는 것 같다^^

 

 

 

*그냥 짧은 이야기, 친구

 

 

 

고등학생이 되고는 아침에 일찍 학교에 간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책을 읽으면 기분이 좋다. 집중도 잘되고 이야기가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 나홀로 교실에서 조용히 책을 읽는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다. 30분 남짓이다. 그 뒤에는 반 아이들이 하나 둘 학교에 온다.

 

한주가 지나고는 나홀로 교실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내 대각선 앞자리에 앉는 아이가 나보다 조금 뒤에 학교에 왔다. 그 아이도 학교에 일찍 와서 나처럼 책을 읽었다. 하루하루 가다보니 그 아이가 어떤 책을 보는지 알고 싶어졌다. 지금까지 책 이야기를 나눠본 친구가 없었는데, 어쩌면 그 아이와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두주가 지나고 다시 돌아온 월요일 아침에 나는 교문에 서서 그 아이를 기다렸다. 교실에 같이 들어가면서 잠깐 이야기해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5분, 10분이 지나도 그 아이가 오지 않았다. 그 아이는 다른 날보다 늦게 학교에 왔다. 교실에서 말을 해봐도 될 테지만 누군가한테 먼저 말하기 어려워하는 나여서. 뒤에서 보니 그 아이는 자기 짝하고는 조금 친해진 듯했다.

 

첫째 시간이 끝나자 그 아이는 가방에서 다음 시간 교과서와 다른 책을 꺼내서 그 책을 읽었다. 얼핏 보았는데 어디선가 본 듯한 책이었다. 나는 어쩐지 반가워서 그 아이 옆에 가서 말을 했다.

 

“너, 이름 김성민이지? 나는 박희진이야.” 성민이는 깜짝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이어서 말했다. “이 책 나도 요새 읽고 있어.” 성민이는 그 말에 반가운 듯 웃었다.

 

우리가 학교에 일찍 와서 읽은 책은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미카미 엔)이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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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 2014-01-03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ㅋㅋㅋ 사진 멋진데요, 풋. 이 시리즈는 결국 못읽었다는...ㅋㅋㅋㅋㅋㅋ ㅠㅠㅠㅠㅠㅠ

희선 2014-01-05 23:17   좋아요 0 | URL
책이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니니까 언젠가 볼 수 있겠죠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희선

2014-01-03 2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05 2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괴담 : 두 번째 아이는 사라진다 문학동네 청소년 13
방미진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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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못 위에서 형제가 사진을 찍으면 둘째가 사라진다.

 

― 연못 위에서 일등과 이등이 사진을 찍으면 이등이 사라진다.

 

― 연못 위에서 첫번째 아이와 두번째 아이가 사진이 찍히면 두번째 아이가 사라진다.  (40쪽)

 

 

이 세상에 가장 잘 알려진 두번째 사람은 모차르트를 샘하여 미워한 살리에리다. 살리에리도 나름대로 잘했을 텐데 모차르트 때문에 자신이 첫번째가 되지 못해서 괴로워했다. 아니, 첫번째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던가. 그것보다는 살리에리도 모차르트와 같은 천재가 되고 싶었던 것일지도. 살리에리는 어느 누구보다 모차르트를 인정했고 자신이 모차르트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살리에리는 차라리 모차르트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를 바랐다. 그러면 더는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니까. 모차르트가 힘들었던 때 살리에리는 모차르트한테 곡을 만들게 했다. 이것은 영화에서 본 것인데 실제로는 어땠을지. 모차르트가 그 곡을 끝냈는지 어쨌는지 잘 모르겠다. 그 곡을 쓰고 죽었던 것 같다. 그것은 진혼곡(레퀴엠)이었다. 천재라 해도 자기관리를 제대로 못하면 그렇게 되고 마는 것이다. 살리에리가 품은 나쁜 마음도 조금 영향을 미쳤을 테지만. 몸이 아픈 모차르트가 말해주는 것을 살리에리가 받아적었던 것 같기도 한데. 모차르트가 죽고 나서 살리에리는 좋았을까. 어쩐지 그 반대였을 것 같다. 모차르트는 살리에리한테 경쟁 상대였다. 모차르트는 살리에리를 어떻게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경쟁할 상대가 없어지면 재미없지 않을까. 살리에리는 모차르트가 죽어서 모든 게 덧없게 느껴졌을 것 같다. 자신을 불태웠던 감정이 사라졌을 테니까. 그것을 바랐던 것일까.

 

많은 사람이 생각하고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일등한테만 빛을 비춘다. 그 보기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네 해마다 열리는 올림픽이다. 세계운동회. 선수들은 올림픽에 나가기 위해 무척 애쓴다. 아마 거의 하루종일 운동과 그것만 생각하지 않을까. 거기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조금이고 이것은 어느 나라나 같을 것이다. 사실 올림픽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이다. 올림픽에 나갔으니 선수가 메달을 따고 싶어하고 따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메달 소식은 우리나라에도 알려진다. 방송에서는 금메달을 딴 사람을 더 잘 보여준다. 어쩌다 처음으로 메달을 딴 종목이면 은메달이든 동메달이든 상관하지 않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도 우리나라 선수가 금메달을 따면 더 좋기는 하다. 그러나 은메달도 동메달도 모두 값지다. 올림픽 같은 큰 경기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메달을 따는 것은 대단한 일 아닐까. 메달 색깔과는 상관없이 말이다. 보기만 하는 우리가 그렇게 생각해야 하지만 선수 자신도 그래야 한다. 메달을 따건 따지 못하건 올림픽에 나간 것 자체를 자랑스럽게 여기면 좋겠다.

 

내가 아는 괴담은 별로 없다. 들은 적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지금 바로 생각나는 것은 없다. 이 책을 보다보니 아야츠지 유키토의 《어나더》가 떠올랐다. ‘어나더’는 한 마을에 일어나는 일이어서 더 섬뜩하기는 하다. 그 책을 보고 그런 일이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다. <지옥소녀>도 생각났다. 누군가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은 ‘지옥소녀’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람은 0시가 다 되어갈 때 인터넷에서 지옥소녀 사이트를 찾는다. 0시가 되면 그곳에 접속한다(거기에는 0시에만 접속할 수 있다). 진심 반 호기심 반으로 찾아보고 그곳이 나오면 지옥에 보내고 싶은 사람 이름을 적는다. 잠시 망설이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에는 지옥에 보내기로 한다. 거의 누군가한테 괴롭힘을 당하다 참을 수 없어서 그곳을 찾았다. 어쩐지 그 안에는 두번째 사람도 있었을 것 같다. 자신이 첫번째가 되기 위해서. 여기에는 그런 사람이 나온다.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을 샘하고 미워해서 사라지기를 바라는 사람 말이다. 청소년 소설인데 이렇게 어둡다니(생각해보니 어두운 게 이것만 있는 것은 아니구나). 제목부터 ‘괴담’이니 이것은 어쩔 수 없는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사람 마음속 깊은 곳을 비추고 있다.

 

어떤 이야기에는 착한 사람만 잔뜩 나오기도 하는데, 여기에 나오는 사람은 반대다. 그렇다고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고 보니 착한 사람만 나온 이야기에서는 서로를 인정해주고 서로가 잘되기를 바랐다. 여기에서는 왜 자신이 더 사랑받지 못하고 가진 것이 없는가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게 학생만은 아니었다. 엄마는 자기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더 잘해야 했다. 그렇게 되게 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선생님은 학생을 샘하고 미워했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기 때문에. 그 아이를 괴롭히기 위해 다른 아이들을 끌어들였다. 책을 보고 실제로 이런 사람들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첫번째, 두번째는 되어본 적이 한번도 없다. 누군가를 샘하고 미워하는 것도 상대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그런 마음을 가져본 적이 한번도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저 그런 마음이 오래 가지 않을 뿐이다. 나 자신이 더 괴로우니까. 그리고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더 모자라잖아. 조금 슬픈가.

 

서로가 가진 것을 더 끌어올리기 위한 경쟁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사라지면 자신이 첫번째가 될 텐데 하는 생각은 잘못되었다. 사람은 다 다르고 가지고 있는 것도 다른데 왜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는 걸까. 이런 말을 하는 나도 그러기는 한다. 아주 부질없는 일인데, 그것을 더 빨리 알게 된다면 좋겠지만 어려운 일이다. 안다 해도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는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기도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인정해주고 자신이 가진 것을 찾아서 갈고 닦아야 한다.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첫번째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사회도 그렇게 바뀌지 않을까. 자기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사라지면 그걸로 끝일까. 그렇지 않다. 상대는 끊임없이 나타난다. 다른 사람을 샘하고 미워할 게 아니고 좋은 경쟁을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두번째 아이가 사라진다.

 

거짓말.

 

애초부터 모든 게 추측에 불과했다. 프리즘처럼 던져진 한 문장의 괴담이 있었을 뿐.

 

늘 사라지는 건 두번째 아이. 남는 건 첫번째 아이. 지연은 언제나 남았다. 하지만 지연은 한번도 첫번째 아이가 될 수 없었다. 두번째 아이가 눈앞에서 사라져 가는 그 순간조차도 지연은 자신이 첫번째 아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언제나 두번째 아이였다.

 

― 두번째 아이가 사라진다.

 

어쩌면 이 괴담 자체가 위험할 정도로 끝이 없는 거짓말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두번째 아이니까. 사라지는 것도 남는 것도 모두 두번째 아이.

 

남은 우리 역시 언젠가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지금 남아있는 건 그저 먹잇감을 끌어오는 미끼 노릇이 남아있어서일 뿐.  (238쪽)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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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 2014-01-03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의 세 문장이 정말 섬찟하네요...

희선 2014-01-05 23:13   좋아요 0 | URL
어떤 것 무생물 이런 이야기도 그런 것에 가깝잖아요 시간이 흐르면 그 이야기 자체에 어떤 힘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절로 움직여서 그런 말이 필요한 사람한테 나타나는 거예요 그렇구나 하고 덥석 물어버리면 안 될 듯합니다^^

도박을 하는 사람의 마음을 먹고 사는 바쿠치간이 생각나기도 하는군요


희선
 
비트겐슈타인 평전 - 천재의 의무 Meaning of Life 시리즈 8
레이 몽크 지음, 남기창 옮김 / 필로소픽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뵙겠습니다, 비트겐슈타인 님. 저세상에서 비트겐슈타인 님은 잘 지내고 있습니까. 저는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제가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게 언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철학자라는 것도요. 언젠가 우연히 알았던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그 뒤로도 그냥 이름만 알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한국에는 ‘비트겐슈타인’이라는 밴드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때 제가 이름을 기억한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음악은 어땠더라, 안 들은 지 오래돼서 거의 잊어버렸습니다. 그래도 그거 재미있지 않나요. 밴드 이름이 ‘비트겐슈타인’이라는 것. 아마 그 밴드를 만든 사람이 비트겐슈타인 님을 좋아했을 거예요. 저는 지금까지 철학과 관계있는 책은 거의 안 봤는데, 제가 철학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중학생 때예요. 그저 관심만 갖고 어떻게 알 수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학교 다닐 때 윤리 시간에 철학자에 대해 배웠던 것 같습니다. 철학을 깊이 배운 게 아니고 아주 조금이었습니다. 그때 배운 것은 거의 잊어버렸습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제가 아는 이름이라곤 이 정도뿐입니다(나중에 더 생각났지만). 비트겐슈타인 님 평전을 보다보니 괴테가 문학뿐 아니라 철학도 했나 했습니다. 제가 너무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괴테와 니체를 함께 떠올렸던 것 같습니다.

 

처음 생각한 것보다 오래 걸려서 비트겐슈타인 님 평전을 읽었습니다. 어쨌든 끝까지 읽었지만 다 알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올해 읽다 만 책이 몇 권 있는데, 비트겐슈타인 님 평전은 보다가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이것만으로도 기뻐해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조금 부끄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서. 비트겐슈타인 님은 자신의 평전이 나온다는 것을 알았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사실과 다르게 쓰는 것은 없을까 하는 걱정은 되지 않던가요. 비트겐슈타인 님은 세상에 이름을 남긴 사람이니 평전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평범한 사람한테 관심 갖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요. 아니, 식구들은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두달전에 저는 ‘카프카 평전(이주동)’을 보았습니다. 카프카 소설을 읽어본 적도 없었는데 말이에요. 한국사람이 써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비트겐슈타인 님 평전도 한번 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는데 ‘카프카 평전’과는 아주 다르더군요. 카프카 평전을 보면서도 생각했던 게 있는데 그게 맞았습니다. 카프카가 조금 일찍 세상에 나왔지만 비트겐슈타인 님과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거예요. 그때 살았던 사람 가운데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많이 있군요.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비트겐슈타인 님한테도 유대인 피가 흐른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그저 독일 사람이겠지 생각했거든요. 제2차 세계전쟁 때 비트겐슈타인 님은 어떻게 했을까 하는 걱정도 했습니다. 그것보다 전쟁에 나갔을 때를 더 걱정해야 했는데 말입니다.

 

비트겐슈타인 님은 어렸을 때부터 철학을 하였더군요. 그때는 자신이 철학을 한다는 생각을 못했을 것 같습니다. 여덟아홉 살 아이는 그저 밖에서 노는 데 마음이 더 갈 텐데. 형제들도 아주 많은 집안의 막내였지요. 그러면 더 철이 없을 것 같은데 비트겐슈타인 님은 그러지 않았군요. 집안 분위기가 비트겐슈타인 님을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아니, 다른 형제들은 음악에 더 관심을 가졌던가요. 그게 비트겐슈타인 님한테 어떤 영향을 미쳤을 테지요. 공학을 공부하다 철학을 하게 된 것은 버트런드 러셀을 만나서였지요. 러셀은 비트겐슈타인 님을 천재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비트겐슈타인 님은 아홉해 동안 해온 죽고 싶다는 생각에서 벗어났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도 그런 생각을 아주 안 한 것은 아니군요. 책을 내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잖아요. 그때 저는 에드거 앨런 포가 떠올랐습니다. 포는 자신이 일찍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장편보다는 단편을 더 많이 썼다고 합니다. 포를 많이 아는 것은 아니고 우연히 라디오에서 들은 거예요. 비트겐슈타인 님이 케임브리지에 다닐 때 사귄 친구 핀센트와 함께 어디에 간 이야기는 재미있었습니다. 비트겐슈타인 님은 핀센트와 있을 때 편했겠지만 핀센트는 조금 달랐다고 하더군요. 누구보다 친했던 친구가 먼저 죽어서 마음이 아팠겠습니다. 전쟁이 끝나면 다시 만나서 어딘가에 함께 가자고 했잖아요.

 

전쟁이 끝나고 비트겐슈타인 님은 많이 달라졌다면서요. 전쟁에 나간 게 자신이 바뀌기를 바라서였군요. 전쟁터에서 글을 쓰고 그 글들로 책을 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지요. 그 뒤에 비트겐슈타인 님은 초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지요. 저는 수학을 잘 못했습니다. 제가 수학문제를 푼 것은 중학교 3학년 때까지였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1학년 때도 조금 풀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저도 나름대로 공부한다고 했는데 잘 안 되더군요. 며칠전에는 수학시간에 앞에 나가서 문제를 풀어야 하는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재미있는 일입니다. 제가 그 꿈을 언제 꾸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 꿈을 꾸고 나서 비트겐슈타인 님 평전을 보게 되었어요. 그런데 비트겐슈타인 님 학생들을 때렸다면서요. 좀더 부드럽게 아이들을 가르쳤다면 좋았을 텐데.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다시 철학을 하기로 해서 다행입니다. 철학 연구를 할 때 비트겐슈타인 님은 마치 소설쓰기에 푹 빠진 작가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대학에서 학생들한테 철학을 가르치고 연구해야 해서 힘들지 않았습니까. 누군가를 만나고 강의한 것이 책으로 묶이기도 하고 여러가지 일이 있었군요. 왜 비트겐슈타인 님이 쓴 글을 스스로 타이핑하지 않고 타자수한테 시킨 건가요. 이런 것을 물어봐도 대답을 들을 수는 없겠군요. 타자수가 타이핑한 것을 비트겐슈타인 님이 다시 읽어봤겠지요.

 

조금 신기한 일이 있더군요. 비트겐슈타인 님이 미스터리 소설을 즐겨읽은 겁니다. 어쩌면 미스터리가 논리학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런 것은 거의 생각 안 하고 책을 보기도 하거든요. 비트겐슈타인 님은 자신을 좋게 바꾸는 게 세계를 바꿀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다고 했잖아요. 맞는 말입니다. ‘내가 바뀌니 세상이 바뀌었다.’는 말도 있으니까요. 비트겐슈타인 님이 저세상에 가기 전 두해는 친구와 제자들 집에서 살았군요. 마지막에 비트겐슈타인 님이 ‘멋진 삶을 살았다.’고 말하였는데, 그렇게 말할 수 있어서 좋았겠습니다. 그 말을 보고 저도 그런 말을 할 수 있게 살아야 할 텐데 했습니다. 비트겐슈타인 님이 쓴 글을 거의 못 봤고 앞으로도 볼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비트겐슈타인 님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아서 좋았습니다. 비트겐슈타인 님 평전을 볼 동안은 기분이 조금 좋지 않았지만요. 그것을 비트겐슈타인 님 탓으로 돌리면 안 되겠지요. 저는 다 알기 어려웠지만 비트겐슈타인 님 평전이나 비트겐슈타인 님이 남긴 책을 보고 잘 알려고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편히 쉬십시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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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0 17: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21 0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2 - 아스카.나라 아스카 들판에 백제꽃이 피었습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저는 옛날에 우리나라 백제였던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백제 때 쓰던 지역 이름이 지금 얼마나 남아 있을까요. 저도 잘 모릅니다. 설마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니겠지요. 한때 일본은 우리나라가 쓰고 있던 것을 많이 바꾸어버렸습니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도 있고, 그런 것은 없애야 한다 하고 본래 이름을 되찾은 곳도 있을 겁니다. 대충만 알고 혼자 생각한 것을 이렇게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일제강점기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부끄러운 때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한 그때 생긴 것을 없애려고 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요. 우리나라가 독립을 하고 다시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 가운데 친일파도 많았다는 게 지금 떠올랐습니다. 일본 하면 이런 것을 생각 안 할 수가 없군요. 아무리 시간이 흐른다 해도 이 일은 지워지지 않을 거예요. 이것은 우리 피 안에 새겨져 있고 앞으로도 이어지겠지요. 하지만 이제는 마음을 열고 힘을 합쳐서 함께 세상을 살아가야 할 때입니다. 이런 말을 하니까 일본과 우리나라 사이가 아주 안 좋은 것 같기도 하군요. 그런 사람은 아주 많지 않을 거예요. 서로의 문화, 예술을 나누며 지내는 사람도 많잖아요. 이 책 일본말로도 나온다는군요.

 

우리나라 사람도 일본에 많이 가겠지요. 이 책을 보고 그곳에 가 보는 사람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가는 것보다 조금 알고 가면 느낌이 많이 다르겠지요. 아스카는 나라현 다카이치군 아스카촌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촌’으로 작아졌지만 먼 옛날에는 지금과 달랐다고 합니다. 이런 일은 그곳에만 있는 일이 아니기는 합니다. 어디에나 있는 일입니다. 5세기에는 가야에서 건너간 사람이 일본에 철과 말, 그리고 가야 도기를 전해주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가까운 아스카’에 자리를 잡았답니다. 6세기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을 때 백제에서 많은 사람이 왜로 건너갔다고 합니다. 가야도 백제도 살아갈 곳을 잃은 사람이 새로운 곳을 찾아나선 것으로 어떻게 보면 슬픈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억지로 끌려간 사람들보다는 나았겠습니다. 왜에 불교와 문자를 전해준 것은 백제 왕실입니다. 왜는 백제뿐 아니라 고구려 문화의 영향도 받았습니다. 나중에는 당나라 문화를 받아들이지요. 아스카라는 지명은 40곳이나 있고 오사카의 아스카를 ‘가까운 아스카’ 나라현의 아스카를 ‘먼 아스카’라고 했습니다. 아스카시대가 열린 곳은 ‘먼 아스카’입니다. 아스카는 우리나라 부여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일본사람이 우리나라 부여에 와서는 아스카를 떠올렸다고 하더군요. 나라를 잃고 새로운 땅에 가서도 고향을 잊지 못해 고향과 닮은 땅을 백제 사람들은 찾아내서 살았던 거예요.

 

왜는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을 도래인이라고 했어요. 이 말도 역사책에는 ‘귀화인(천황의 덕을 흠모하여 귀순한 사람)’이라고 했다가 1975년 무렵부터 도래인으로 바꾸어 표기했다고 합니다. 아스카시대 때 도래인은 왜가 고대국가가 되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랬지만 정치를 하는 사람한테는 적이 많기도 하고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소가씨는 야마토 정권의 실권을 쥐고 있었고 도래인은 소가씨 편에 섰습니다. 그런데 ‘임신의 난’ 때 소가씨가 무너졌습니다. 도래인도 마찬가지였다는군요. 그렇다고 모두 죽지는 않았겠지요. 그 뒤에는 후지와라씨가 정권을 쥐게 됩니다. 어쩌다 보니 이번에는 이런 것을 쓰게 되었군요. 제가 잘 아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아스카 · 나라에서는 절, 불상을 많이 돌아본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일본은 불교를 하나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신도와 합친 신불습합이었습니다. 이름 있는 집안 소가씨와 후지와라씨는 자기들 집안 절을 짓기도 했습니다. 일본에 메이지유신이 들어섰을 때 불교와 신도를 나누는 신불 나누기 정책을 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절과 불상이 많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후지와라씨 절인 흥복사는 아주 넓은 땅을 차지했는데 지금은 나라 공원 안에 들어간 모습이 되었다는군요. 모든 게 다 사라지지는 않아서 다행이 아닌가 싶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곳에서 들어온 것을 따라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자기만의 것을 만들어냅니다. 일본 불교문화도 그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스카시대에는 도래인한테 영향을 받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당의 문화를 많이 받아들여 바뀌었습니다. 그게 불상에 드러난다고 합니다. 사진이 아닌 실제로 보면 다른 느낌이 들까요. 우리나라 절에도 거의 가 본 적이 없어서 절 모습이 어떤지 잘 모릅니다. 일본에서 문화유산도 볼 수 있지만 멋진 풍경도 볼 수 있습니다. 나라에는 요시노 사쿠라(벚꽃)가 잘 알려져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보는 벚꽃과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곳에 가는 길은 좁답니다. 그런 모습을 유홍준은 좋게 말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산을 깎고 길을 넓히고, 문화유산과 가까운 곳에 차를 세우게 만들어서 그곳 모습이 안 좋아진다고요. 이 말은 맞는 말입니다. 우리나라는 오래 잘 지켜가기보다 낡고 오래되면 부수고 다시 만들려고 할 때가 더 많고, 길은 좁은 채 놔두지 않고 넓히지요. 그래서 옛날의 정감있는 모습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아직 남아있는 것은 그대로 놔두면 좋겠습니다. 잘 아는 것도 아닌데 이런 말을 한 것 같기도 하군요. 아니, 제가 지금 살고 있는 곳만 해도 아주 많이 달라졌습니다. 빈 터를 그대로 두지 않고 무엇이든 짓더군요. 복잡하고 시끄러운 것을 제가 좋아하지 않아서 그래요. 예전에는 조용한 편이었는데.

 

일본에는 역사를 제대로 알고 전하려고 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지요. 우리가 일본에만 무엇인가를 바라면 안 될 것 같아요. 우리도 일본을 알고 일본이 가진 좋은 점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첫번째를 보고도 한 말이군요). 다른 나라에 가면 박물관에도 가 봐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지만 저는 그런 곳에 거의 가 본 적이 없습니다. 나라국립박물관에 갈 때는 어떤 특별전이 열리는지 알아보고 가랍니다. 정창원은 왕실 유물 창고로 우리나라에서 받은 것도 잘 가지고 있답니다. 덴리도서관에는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가 있다는군요. 일본에는 우리나라 보물이 많이 흘러가기는 했지요. 빼앗긴 것도 많고 누군가 몰래 팔아버린 것도 있겠지요.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앞으로 잘 풀어가기를 바랍니다. 일본 속에 있는 우리문화를 찾아보는 일은 멋진 일입니다. 이것은 일본 사람도 잘 모르고 우리나라 사람도 잘 모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책은 일본뿐 아니라 우리 자신도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거예요. 많은 사람이 보기를 바랍니다.

 

 

 

*미처하지못한말

 

제가 어디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가끔은 어딘가에 가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오래전에 처음 간 곳에서 저는 어떤 곳에 가야 했습니다. 처음으로 간 곳이어서 길은 하나도 몰랐습니다. 그런 때는 그곳에 사는 사람한테 물어보면 될 텐데, 제가 그런 거 잘 못합니다. 그때 시간이 많아서 저는 표지판을 보고 그곳을 찾아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제가 그렇게 한 게 한두번이 아니군요. 얼마나 말하는 게 어려우면 그럴까 하겠습니다(조금 귀찮기도). 네, 저는 모르는 사람한테 말 거의 못합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면 제 힘으로 다 하려고 합니다. 반대로 모르는 사람은 가끔 저한테 길을 물어봅니다. 저한테 물어본 곳을 알고 있으면 잘 가르쳐주는데 모르면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다른 나라는 잘 모르겠고 가까운 일본에는 한번 가 보고 싶기도 하네요. 이 책에 나온 아스카 · 나라뿐 아니라 일본 속 우리문화유산을 볼 수 있는 곳이라면 말입니다. 잠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말을 꼭 넣는군요.

 

 

 

희선

 

 

 

 

☆―

 

일본사람들은 불교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토착신앙 속에 녹여냈다. 그래서 쇼토쿠 태자는 신으로 격상됨과 동시에 부처님과 동격으로 숭배되었던 것이다. 일본사람들은 이런 결합을 단순히 복합 · 화합  · 융합이 아니라 습합(習合)이라고 했다. 곧 신불(神佛)습합이다. 삶 속에서 익히면서[習] 신도와 불교가 자연스럽게 저절로 합쳐진[合] 것이었다. 일본은 이런 습합의 귀재다.  (101쪽)

 

 

나는 순간 이것(월광보살과 일광보살)이 일본 나라시대 불상이라는 사실을 잊었다. 가슴속으로 한껏 이 두 보살상을 예찬했다. 우리와 일본의 미묘하고도 불편한 관계를 생각하면 나는 감정을 자제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감정의 정직성에 따르건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독일사람들이 미켈란젤로에 감동하고, 이탈리아사람들이 독일의 뒤러에 감동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또 일본 미술사가들이 우리 석굴암에 끝없는 찬사를 보내듯이 내가 이 두 불상 조각을 예찬하는 것이 하등 이상할 것이 없지 않은가.

 

위대한 예술은 이렇게 시공을 넘고 국적을 뛰어넘어 인류 보편의 가치로 다가오며 우리를 하나로 묶어낸다. 그렇다면 예술이야말로 과거사를 낫게 하는 가장 좋은 약재(藥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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