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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세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ㅣ 무라카미 라디오 3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평점 :
이 책을 읽고 잠을 잤는데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꿈속에서 읽었다. 이 책과 같은 내용을 본 것인지, 다른 것을 본 것인지 확실히 알 수 없는 게 조금 아쉽기도 하다. 예전에는 읽던 책 다음 내용이 꿈에 나오기도 했는데, 그게 책과 같았는지 달랐는지 잘 모르겠다. 깨어나서 바로 잊어버렸으니까. 읽던 책에 대한 꿈을 자주 꾸는 것은 아니다. 책 때문에 안 좋은 꿈을 꾸는 일도 없다. 아니, 있었지만 내가 잊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구나. 프랑스 작곡가 베를리오즈가 꿈속에서 교향곡을 작곡했다는 이야기 때문에 이런 말을 쓴 것인지도. 베를리오즈는 아픈 아내 때문에 꿈속에서 작곡한 교향곡을 잊어버려야 했다고 한다. 교향곡을 쓰면 다른 일을 할 수 없게 되어서 아내 약을 살 수 없었다.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끔 반대가 되는 일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기억하고 싶은 것은 잊어버리고, 잊어버리고 싶은 것은 자꾸 생각나는. 그래도 결국 자신의 뜻대로 잊고 싶은 것은 잊고,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 것은 잊어버리지 않기도 하겠지. 그것에 대한 생각이 크다면.
책 제목이 재미있다. 지난번 책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는 책속에 있는 글 제목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에 대한 이야기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런 이야기는 없다. 거의 드문 일에 대한 비유였다. 그런데 정말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가 없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자신보다 힘없는 동물을 잡아먹는 사자만 있을까. 언젠가 육식동물도 가끔 풀을 먹는다는 말을 본 것 같기도 한데. 우연히 풀을 한번 먹은 사자가 그 풀에 맛을 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풀만 먹고 살아간다, 는 이야기는 재미있지 않을까. 그런 사자를 생각하니 다른 사자나 다른 동물한테 따돌림 당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사자가 무리지어 다니던가. 힘이 가장 센 수사자가 다른 사자들을 이끌었던 것 같다. 어쨌든 다른 사자들과 함께 다닌다면 자신의 비밀이 들키지 않게 조심해야 할 것이다. 다시 생각하니 자신과 달라서 따돌리는 일은 사람만이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가 잘 살아가기를 바란다.
내 경우, 고양이와 음악과 채소 이야기가 아무래도 많다. (212쪽) 이 말처럼 이번에도 고양이 이야기가 여러 번 나왔다. 고양이 이름 짓기,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고양이와 놀다보면 한주가 다 가 버린다는 말. 그러고 보니 이 말은 다른 말을 하면서 쓴 것이다. 그리고 어릴 때 기르던 새끼고양이 이야기. 오페라 가수의 고양이 이야기도 있구나. 예전에 읽었던 책에도 고양이 이야기가 나왔다. 고양이가 잠꼬대를 했는데 사람이 하는 말 같았다고. 그리고 그 고양이가 새끼를 낳을 때 하루키가 앞발을 잡아주기도 했단다. 고양이가 잘 따르는 사람이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새끼 때부터 기르면서 길들인다면 따를지도 모르겠지만, 처음 보는 사람을 잘 따르는 고양이도 있다. 아주 가끔 길에서 길고양이와 마주칠 때가 있는데 늘 도망친다. 언제나 사람을 보면 달아나는 길고양이인지도 모르겠지만. 먹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사람 가까이에 올 까닭이 없겠구나. 그래도 조금 관심을 가지고 나를 보는 것도 있다. 아기다. 본래 아기는 처음 보는 사람한테 관심을 갖는 것이기는 하겠지. 나를 보고 달아나는 것(아기는 그럴 수 없겠다)만 있는 게 아니어서 다행인가.
예전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상실의 시대(노르웨이 숲)》에 하루키 자신의 이야기도 넣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하루키한테 그것을 물어본다면 ‘그렇지 않다’고 할 것 같다. 경험이 들어가 있건, 아니건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구나. 지금까지 쓴 게 저마다 다른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런 점을 이제와서 고치기는 어렵겠다. 하루키의 무라카미 라디오 시리즈에 실린 글은, 진지한 얼굴로 조금 웃기는 이야기를 해주는 느낌이다. 첫번째는 예전에 읽어서 거의 잊어버렸지만. 잠깐 다른 글을 봤는데 어떤 사람이 하루키는 아직도 어린이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슬쩍 본 것이어서 그게 언제인지는 모르겠다(그 책 읽어보고 싶어지기는 했는데 언제쯤 볼 수 있으려나). 쉰이 넘었을 때였던 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많이 다를 것 같지는 않다. 나이를 먹어서 상처받는 일은 적어졌다 해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언제나 빛날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상처 잘 받지만.
나도 알고 싶었던 것이 있다. 그것은 한해 동안(한주마다) 글을 쓸 때 쓸거리가 없지는 않을까 하는. 그런 일은 없다고 한다. 먼저 쓸거리를 정해두고 그 안에서 골라서 쓰다가,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도 쓴다고. 내 생활은 아주 단순하다. 그래도 그 안에서 쓸거리를 찾으려면 둘레를 잘 살펴봐야 할 텐데. 잘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지만 잠깐이었다. 늘 잊어버린다. 그리고 들쭉날쭉한 감정도 문제다. 또 다른 이야기로 빠졌다. 여기까지만 써야겠다.
희선
☆―
나이 먹는 것을 여러 가지를 잃어가는 동안으로 보는가, 혹은 여러 가지를 쌓아가는 동안으로 보는가에 따라 삶의 질은 한참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뭔가 좀 건방진 소리 같지만. (115쪽)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그 일이 일어나고 벌써 열세 해가 흘렀다.
이 동물원에는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가 있다. 어떻게 보면 내가 그렇게 만들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부모님과 동물원에 놀러왔다. 그런데 동물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동물을 보다가 나는 부모님과 떨어졌다. 부모님이 어디에 있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에는 사람도 얼마 없었다. 둘레가 어두워진 듯하여 하늘을 올려다보니 비구름으로 덮여있었다. 곧 비가 내렸다.
나는 비를 피할 곳을 찾아서 뛰었다. 조금 가니 울타리 대신 심은 나무 사이에 나 한 사람이 들어갈 만한 자리가 있었다. 수풀 동굴처럼 보였다. 나는 그곳으로 들어갔다. 잠시 앉아 있으니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나뭇잎을 헤치고 나타난 것은 새끼사자였다. 비를 맞고 떠는 것 같아서 나는 새끼사자를 안았다. 그때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얘, 너 혹시 먹을 거 없어?”
“어디에서 들리는 목소리지?”
“바로 밑이야.”
나는 새끼 사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나 배고파. 먹을 것 좀 줘.”
내 윗옷 주머니에는 작은 토마토가 하나 있었다. 그것을 새끼사자한테 주었다. 새끼사자는 토마토를 맛있게 먹었다.
“이거 처음 먹어보는 건데 뭐야?”
“토마토야.”
“그렇구나. 너 이름이 뭐야?”
“난 하루키야.”
“하루키, 너 나한테 가끔 토마토 갖다주지 않을래?”
“응? ……그건 별로 어렵지 않은데 여기 자주 오기 어려워. 한달에 한번쯤 와도 괜찮을까?”
“그래, 그렇게 해.”
갑자기 새끼사자가 내 품에서 땅으로 내려갔다.
“하루키, 비 그쳤으니까 그만 여기에서 나가. 어른 사자가 오고 있어.”
나는 깜짝 놀라서 그곳에서 나왔다.
“하루키, 나중에 보자.”
내가 비를 피하러 들어가 있던 수풀 울타리는 사자 우리 끝이었다. 잘 보니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곳에서 내가 나오자 빈틈이 없어졌다. 꼭 꿈을 꾼 것 같았다. 그 뒤 나는 바로 부모님과 만났다.
한달이 지난 뒤에 나는 새끼사자와 만났던 나무 울타리 앞으로 갔다. 빈틈없던 나무 사이에 구멍이 생겼다. 구멍으로 들여다보니 건너편에 새끼사자 한 마리가 있었다. 하지만 나한테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나는 새끼사자한테 토마토와 다른 채소도 주었다. 나는 새끼사자한테 토마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토마는 그 이름이 마음에 드는 듯했다.
토마토가 언제나 있는 게 아니어서, 나는 철마다 다른 채소를 토마한테 갖다주었다. 그 안에서 토마는 양배추와 토마토를 함께 먹는 것을 좋아했다. 토마가 좋아하는 것은 채소라기보다 샐러드였다.
열세 해가 흐른 지금도 나는 토마한테 샐러드를 갖다준다. 토마는 이제 새끼사자가 아니다. 어쩌면 내가 한 말을 믿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 세상 어딘가에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가 한 마리쯤 있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토마야, 그동안 잘 지냈어? 오늘은 더 맛있는 샐러드야.”
*내가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가 있는 이야기를 써버렸다, 울타리로 심은 나무 이 부분 조금 이상하지만, 있다고 생각하면 있는 거다 사자 우리가 다 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인 것은 아니다 끝부분만 그렇다 샐러드 하면 양배추밖에 떠오르지 않는 나... 어쩔 수 없다 이런 말도 안 쓰고 시침을 떼야 하는 것인데...^^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