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이야기 비룡소 걸작선 29
미하엘 엔데 지음, 로즈비타 콰드플리크 그림, 허수경 옮김 / 비룡소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변화의 집에서 몇 날 며칠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름이 이어지고 있었다. 바스티안은 여전히 아이처럼 아이우올라 부인한테 응석을 부리는 것을 즐겼다. 부인의 과일도 처음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아주 맛있었지만, 갈수록 엄청난 식욕은 진정되었다. 바스티안은 덜 먹었다. 부인은 그걸 알아차렸지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부인의 보살핌과 애정도 받을 만큼 받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욕구가 줄어드는 것과 같은 정도로 마음속에서 아주 다른 종류의 갈망, 지금까지 바스티안이 거의 느끼지 못했고 모든 면에서 지금까지의 모든 바람들과 다른 욕망이 깨어났다. 바로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었으면 하는 갈망이었다. 바스티안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고 슬펐다. 하지만 그 바람은 점점 더 커졌다.  (629쪽)

 

 

지금까지 책을 보다가 끝이 나서 아쉬웠던 적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끝났구나 했던 것 같기도 해. 책이 아닌 만화영화가 끝났을 때는 아주 아쉬웠어.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어릴 때 그것을 더 좋아했어, 만화영화. 어릴 때부터 책을 보고 벌써 끝났구나 하고 아쉬워했다면 좋았을까. 사람은 하지 못한 일을 아쉬워하는데 바보 같은 일 같기도 해.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는데 말이야. 잘 생각해보면 만화영화와 책 아주 다르지 않아. 둘 다 재미있는 이야기잖아. 그래, 난 재미있는 이야기를 좋아해. 나를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데려다주는 그런 이야기. 이 ‘끝없는 이야기’는 우리를 환상 세계로 이끌어줘. 책 자체가 바로 환상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기도 해. 나와 네가 책을 보는 것은 언제나 환상 세계에 가는 것이야. 너는 환상 세계 좋아해. 그런데 이 책 어린이책 맞아, 왜냐구, 이 책을 보면 조금 생각해야 할 것 같아서. 내가 어린이를 얕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린이도 나름 생각하고 느끼겠지. 이야기가 그저 재미있기만 한 것은 아니다고.

 

오래전에 한번 이 책을 봤어. 오래돼서 다 잊어버렸는데 다시 보니 아주 조금 생각나기도 했어. 환상 세계가 무너져가고 있고 그것은 어린 여왕이 아파서였어. 어린 여왕한테 새 이름을 지어주어야 병이 낫는다고 했어. 이름을 지을 수 있는 것은 사람 세상에 사는 사람뿐이었어. 이것을 알게 된 것은 아트레유야. 아트레유가 행운의 용 푸후루와 모험하는 이야기를 바스티안이 보고 있었어. 조금 복잡한가. 바스티안은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괴롭힘 당했어. 바스티안은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을 피해 어느 고서점에 들어가. 그곳에서 바스티안은 ‘끝없는 이야기’라는 책을 주인 몰래 외투에 숨겨서 가지고 나와. 바스티안은 조금 외로운 아이야. 아버지는 엄마가 죽고는 얼이 빠진 듯해서 바스티안한테 마음을 써주지 못했어. 어쨌든 그날 바스티안은 공부하기도 싫고 집에 가기도 싫어서 학교 창고에 숨어서 책을 읽어. 바스티안은 좀 통통한 아이로 책읽기와 이야기 만드는 것을 좋아했어. 좀 정리가 안 된 것 같네. 아이들은 자신을 괴롭히고 아버지는 자기한테 마음을 써주지 않으니 많이 쓸쓸했겠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바스티안은 바로 환상 세계에 가지는 못해. 그래도 결국 가. 바스티안 마음에는 지금 사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거지. 바스티안은 어린 여왕 이름을 새로 지어주었어. ‘달아이’라고. 그리고 환상 세계에서 모험을 해. 이름만 지어주고 환상 세계를 구했다 하면 재미없잖아. 이 책은 ‘끝없는 이야기’니까. 이야기는 자꾸 가지를 뻗어가지,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도 많겠지. 어딘가 떠나면 늘 본래 자리로 돌아와야 하잖아. 바스티안은 다시 자기 세계에 돌아가야 하는데 환상 세계에 있으려고 해. 아트레유와 푸후루가 옳은 말을 해주는데도 바스티안은 둘을 멀리하고 다른 사람 말을 들어. 마녀였구나. 그런데 마녀는 바스티안이 무엇을 하기를 바란 걸까. 그것은 잘 모르겠어. 환상 세계를 지배하려고 한 것 같지는 않은데. 여왕의 표시 아우린을 빼앗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환상 세계를 다시 위기에 빠뜨리려고 한 걸까. 혹시 너는 알아. 어쩌면 바스티안을 영원히 환상 세계에 가둬두려고 한 것일지도.

 

아우린에 모든 바람을 말하기 전에 바스티안은 알게 됐어. 자신이 그동안 한 게 모두 잘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바스티안은 환상 세계에서 이야기를 했어. 이야기를 하는 게 무슨 문제가 있을까 할지도 모르겠는데, 아우린을 바스티안이 갖고 있어서 바스티안이 한 이야기는 진짜 일어났어. 그러고 보니 생각났다. 바스티안은 달아이(여왕)를 만났을 때 모습이 바뀌었어. 그 뒤 바스티안은 힘이 세지기를 바라고 자기 이름이 널리 퍼지고 사람들이 자신을 두려워하기를 바랐어. 그냥 보통 사람이 아니고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지. 그런데 그게 좋을까. 바스티안이 바라는 일이 이루어질 때마다 바스티안은 사람 세상의 기억을 잊었어. 아트레유와 푸후루는 바스티안이 어떻든 친구로 남았어. 그렇다 해도 잠시 안 좋은 일이 있었지만. 생각해보면 바스티안은 그럴 수밖에 없었어. 왜냐하면 바스티안은 열살이나 열한살쯤 된 사내아이거든. 책을 읽고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런데 아트레유는 바스티안과 비슷한 또래인데 좀 어른스러웠다. 아트레유가 그랬던 것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많은 사람이 아트레유를 길렀기 때문일거야. 바스티안과 다르게 아트레유는 자기 자신을 좋아했어.

 

‘끝없는 이야기’지만 바스티안이 환상 세계에서 겪은 일은 끝이 났어. 그렇다고 바스티안 이야기가 다 끝난 것은 아니구나. 환상 세계에서 바스티안이 만든 끝나지 않은 이야기는 아트레유가 끝내주겠다고 했어. 아트레유는 지금도 그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트레유가 도와줘서 바스티안은 자기 세계로 가게 해주는 생명의 샘에 갔어. 거기에 가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자신한테 소중한 게 무엇인지 깨달았어. 그것은 바스티안을 기다리는 아버지야. 그리고 바스티안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좋아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어. 바스티안이 한 모험은 자기 자신을 바로 보는 거였어. 이야기에서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이런 말만 하면 ‘뭐야’ 할지도 모르겠어. 이런저런 일을 겪어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해야 한다고 깨닫는 거지. 이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것과도 비슷해. 어렸을 때는 경험이 없어서 실수도 많이 하고 쉽게 넘어지잖아. 나이를 먹으면 조금 나아지지. 하지만 어느 때든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더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해. 그래야 환상 세계와 사람 세계가 막히지 않지.

 

바스티안처럼 나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하고 싶어.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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