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썰록
김성희 외 지음 / 시공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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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많이 본 건 아니지만, 좀비가 나오는 영화도 많겠지. 예전에 한번 본 적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산 사람은 다 어떻게 됐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한국에서 만든 드라마도 본 적 있다. 그 드라마는 본 지 좀 됐다. 좀비와 뱀파이어는 한번 죽고 다시 살아난다는 건 같지만 다르다. 뱀파이어는 피만 먹고, 좀비는 피뿐 아니라 산 사람을 먹는구나. 먹는 게 달라서 다른 걸까. 좀비나 뱀파이어 이야기가 자주 나오면 사회가 어떻다는 말 본 것 같기도 한데, ‘어떻다’가 뭔지 잘 모르겠다. 그리 좋은 건 아니겠지(경제가 안 좋다고 했던가). 이야기가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과 상관있을 때도 있지만, 그런 소설로 말하고 싶은 게 있기도 하겠지. 이 책은 좀비와 고전을 재미있게 보라고 쓴 것 같다.

 

 마지막 이야기 황순원 소설 <소나기>를 차무진은 <피, 소나기>로 썼다. 죽은 여자아이가 돌아왔다. 예전과 다른 여자아이였는데도 남자아이는 여자아이를 예전과 똑같이 대했다. 그러면서도 여자아이가 예전처럼 이야기 하기를 바랐다. 여자아이는 죽었으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남자아이는 무덤에서 나온 여자아이를 시귀라 했다. 여자아이는 무덤을 파고 나왔을까. 그렇겠지. 이건 조금 무서웠다. 사람이 아닌 다른 게 된 여자아이가 아니고. 여자아이를 잡아다 묶어놓고 다시 죽이려는 사람들 모습이. 여자아이 하나만 그래서 그렇게 했구나. 죽었다 살아나고 산 사람을 잡아 먹으려는 게 많았다면 사람들은 벌써 달아났을 텐데. 아니 달아나지 못하고 그 사람들도 시귀(좀비)가 됐을까. 여자아이는 한번 더 죽는다. 남자아이는 더 슬펐을지도.

 

 처음에 마지막에 실린 걸 말했구나. 첫번째 <관동별곡>과 두번째 <만복사 저포기>는 잘 모른다. <관동별곡>이야 제목은 들어봤지만. 이건 새로운 이야기를 썼다 말해도 될지도. 조금 웃기기도 하다. 처음에는 집중이 안 되기도 했는데, 다시 보니 괜찮았다. 정철이 정말 여기 나오는 정 대감 같았을지. 작가는 다르다고 했구나. <관동행 : GAMA TO GWANDONG>(김성희)은 정 대감이 강원도 관찰사가 되어 임금한테 인사하고 한양에서 강원도로 떠나면서 좀비를 만나는 이야기다. 여기에서는 걸귀라 한다. 정 대감은 걸귀가 나타나면 재채기를 하고 몸에 두드러기가 났다. 근데 그게 도움이 됐다. 정 대감도 무언가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다니. 앞에서는 정 대감을 쓸모없는 양반이라 말하기도 했다. 걸귀를 물리치는 건 김치였다. 이것도 재미있구나. 걸귀를 물리치는 김치에는 무언가를 넣어야 한다.

 

 두번째 ‘만복사 저포기’는 <만복사 좀비기>(정명섭)라는 제목으로 썼다. 본래 소설에서도 양생이 주사위로 부처와 내기를 하는가 보다. ‘만복사 좀비기’에서 양생은 어머니하고만 살았는데, 왜구가 쳐들어 와서 땅에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숨어 있었다. 어머니는 죽었나 보다. 왜구가 쳐들어 온 것도 큰일인데 병까지 퍼졌다. 양생은 구덩이에서 나오고 병에 걸린 사람을 피해 만복사로 간다. 양생은 겨우 그곳에 있게 된다. 거기에 있으면서도 양생은 부처한테 혼인할 아가씨를 보내달라고 한다. 어머니는 양생이 혼인하기를 바랐다. 양생은 자신이 혼인하면 어머니한테 효도한다고 생각했겠지. 신기하게도 그곳에 아가씨가 나타난다. 절 스님과 다른 사람은 아가씨를 쫓아내야 한다고 하지만, 양생은 안 된다고 한다. 그 뒤 양생과 아가씨가 혼인하고 잘살았다로 끝났다면 좋았겠지만, 이 이야기 제목은 ‘만복사 좀비기’다. 뒤에는 반전이 기다린다. 그걸 보면 다 놀랄 거다.

 

 예전에 <사랑손님과 어머니>(주요섭)에 나온 옥희를 개그 소재로 쓰기도 했는데. 전건우는 <사랑손님과 어머니, 그리고 죽은 아버지>로 썼다. ‘사랑손님과 어머니’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모르겠다. 이건 생각 안 나도 내용은 대충 안다. 전건우는 어머니를 다르게 그렸다. 사랑손님과 함께 아픈 아버지를 죽이는 걸로. 어머니는 우물에 약을 넣고 마을 사람도 잘 안 되기를 바랐다. 어쩐지 무섭구나. 그 약은 무엇이 잘못됐는지 사람들을 좀비로 만들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옥희와 함께 집을 떠난다. <운수 좋은 날>(조영주)에는 현진건이 쓴 ‘운수 좋은 날’에서 인력거를 끌던 김 첨지가 나온다. 김 첨지는 옛날 사람인데 아직도 살아 있다니. 김 첨지, 이제는 김 씨로 좀비였다. 그것도 채소만 먹는. 김 씨는 차를 운전했다. 자기 차를 서울까지 김 씨한테 운전해달라고 하는 소설가 해환도 좀비가 되고 만다. 김 씨는 짧기는 해도 말 잘 한다. 좀비라고 이상한 소리를 내고 흐리멍덩한 눈으로 어슬렁거리기만 하지 않을지도. 어쩌면 ‘운수 좋은 날‘ 세계에서는 좀비가 되면 더는 고기를 먹지 못하게 되는지도. 이런 생각도 재미있구나.

 

 고전을 좀비 이야기로 썼다는 걸 알았을 때 김동인 소설 <감자>도 그렇게 쓰면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죽은 복녀가 좀비가 되고 자신을 죽게 한 남편과 왕 서방과 한의사를 죽이는. 복수하는 좀비는 못 본 것 같지만.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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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11-25 1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티브이를 통해 옛 영화로 봤는데 재밌더군요. 옥희, 이름을 보니 생각나요. 귀엽죠.
좀비와 고전의 결합! 어떨까요?

희선 2020-11-26 01:32   좋아요 1 | URL
예전 사람은 말투가 달랐죠 지금 들으면 참 이상하고 재미있지만 그때는 그게 보통이었겠습니다 지금 말투도 시간이 지나면 달라지겠습니다 이런저런 상상이 재미있습니다


희선
 
드립백 부룬디 뭉카제 - 10g, 5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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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 커피 이번이 다섯번째예요. 다른 때와 다르게 겉이 단순합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맨 앞에 있는 건 붙이는 거예요. 이걸 알았을 때, 이건 사람이 붙일까 기계가 붙일까 했습니다. 잠시 이걸 붙이지 않으면 무슨 커피인지 모르겠다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군요. 뒤쪽에 무슨 커피인지 인쇄되어 있어요. 앞은 스티커 뒤는 인쇄예요.

 

 

  

 

 

 

 지금까지 커피 이름 한글로 쓰여 있었는데, 이번에는 영어로 쓰여 있네요. 뒤에 한글로 쓰여 있어요. ‘부룬디 뭉카제’라고. 쌀쌀한 날씨에 어울리게 묵직하게 로스팅했답니다. 이런 말 봐도 잘 모릅니다. 그런가 보다 할 뿐입니다. 감귤, 호두, 구운밤맛을 느껴야 할까요. 이런 걸 보고 그걸 느끼려 하다니 조금 우습네요. 전 신맛이랑 조금 탄맛도 느꼈습니다. 탄맛이 아니고 쓴맛이라 해야 할지도. 혹시 그게 구운밤일까요.

 

 쌀쌀할 때는 커피가 어울리지요. 그것도 따듯한 커피가. 쌀쌀한 날씨에도 차가운 커피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전 반대로 더운 날씨에도 따듯한 커피가 더 좋아요. 이 말 전에도 했군요. 더울 때 아주 가끔 차가운 커피 마시고 싶기도 한데, 집에 얼음이 거의 없어요. 그런 것도 부지런해야 하겠습니다(이건 저만 그럴지도. 물을 얼리려면 먼저 끓이고 식혀야 하니, 그거 좀 귀찮잖아요). 그저 제 체질이 차가운 것보다 따듯한 게 맞는 걸지도.

 

 앞에서 별말을 다했네요. 저는 이번 커피 괜찮았습니다.

 

 갑자기 <커피가 식기 전에>라는 영화가 떠오르는군요. 이 영화는 커피가 식을 때까지 돌아가고 싶은 지난날로 가는 거예요. 그렇다고 지난날을 바꾸지는 못해요.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건 아니고 지난날로 돌아갈 수 있는 커피집에 예전에 온 적이 있어야 해요. 지난날에 머무는 시간은 제목처럼 커피가 식기 전까지예요. 바꾸지도 못하는 지난날로 가면 뭐 하나 싶지만, 그렇지도 않은 듯해요. 그때 몰랐던 걸 예전으로 되돌아가고 알게 되거든요. 지난날로 돌아갔던 사람은 마음의 상처가 낫는 듯해요.

 

 커피가 식기까지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겠습니다. 어쩌면 짧기에 더 소중하게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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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은 부드럽다가도

어느 날은 매서워지는

봄바람

 

가끔 부드럽게 뺨을 스치고

때론 꽃보라를 일으키는

봄바람

 

따스하면서도

잘 토라지는

봄바람

 

해마다

잊지 않고 찾아와서

고마워

 

 

 

 

*또 때에 맞지 않는 글, 실제로는 봄에 썼다. 늘 그때가 아닌 걸 쓰려고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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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11-25 1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괜찮습니다. 꼭 지금의 계절과 일치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봄바람을 다른 걸로 상상해서 읽으면 되니까요. 또는 지금 봄이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되니까요. ㅋ

희선 2020-11-26 01:31   좋아요 0 | URL
페크 님 고맙습니다 지난번에도 그런 말씀을 해주셨는데... 꼭 그때에 맞는 글을 만나지는 않지요 소설도 시도 보다보면 그때가 아닌 이야기도 있으니... 그럴 때는 그런가 보다 하는군요


희선
 
나무를 심은 사람들 - 이 땅에 누가 왜 나무를 심었을까?
고규홍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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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는 사람보다 오래 살고, 사람보다 먼저 지구에 살았겠지. 은행나무는 4억년 전부터 있었다고 한다. 아주아주 오래전 지구에는 나무가 많았겠다. 그런 때는 어떤 모습일까. 그런 모습 상상 못할 건 없기는 하구나. 나무 키는 아주 크고 줄기는 굵겠지. 그런 나무가 많은 숲에는 새나 동물 곤충이 많이 살겠다. 조선시대에는 여우나 호랑이 반달곰도 살았는데 이제 그런 짐승은 거의 없다. 반달곰은 있던가. 그렇다고 그걸 보러 가면 안 될 듯 싶다. 사람을 보면 공격할지도 모를 테니 말이다. 반달곰은 자기가 살 곳에서 잘 살기를 바란다. 북극곰은 먹이를 구하지 못해 사람이 사는 곳에 나타나기도 했다던데. 지구가 안 좋아져서 살기 힘든 건 사람만이 아니다. 동물은 더하다. 지구를 더 안 좋게 만들지 않아야 할 텐데.

 

 지금도 있지만 이제는 쉬는 날이 아닌 나무 심는 날에 나무 심은 사람 많았을까. 예전에는 있었을 것 같지만, 지금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기후가 바뀌어서 나무를 사월이 아닌 그것보다 더 빨리 심어야 한다는 말도 하던데. 이 책 제목을 보니 끝에 한 글자만 다른 장 지오노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이 생각났다. 어떤 한사람이 오랫동안 도토리를 심어서 숲을 만든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했는지는 잊어버렸다. 그건 예전에 만화영화로도 만들었다. 우연히 텔레비전 방송으로 할 때 봤다. 괜찮았던 것 같다. 나무 씨앗을 땅에 심어 숲을 만드는 이야기 하나 더 있다. 《씨앗 편지》다. 풍선에 씨앗과 편지를 매달아 날렸더니 그걸 주운 아이가 그 주소로 편지를 썼다. 그게 소설일 뿐인지 실제 있었던 일인지는 잊어버렸다. 남자아이가 심은 나무 씨앗은 나무로 잘 자랐는데, 한번 불이 난다. 다행하게도 다시 숲은 살아난다. 자연의 힘은 대단하다. 아니 돌고 돈다고 해야 할까.

 

 

              

 

 

 

 무언가를 기념하려고 지금 사람도 나무를 심겠지만, 예전에는 그런 일이 더 많았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부모가 죽었을 때 나무를 심었다. 이걸 보니 소나무 은행나무 매실나무 느티나무가 많이 보였다. 앞에서 말한 나무를 심은 사람은 한국에도 있었다. 1944년 여름 임성국이 농사 짓던 장성 지역에 큰비가 내려 물난리가 나고 산사태가 일어났다. 임성국은 산에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심었다. 지금 그곳에는 편백나무 참나무 일본잎갈나무가 있단다. 치유의 숲이라 이름 붙였단다. 본래 미국 사람이었던 민병갈(칼 페리스 밀러)은 충남 천리포 땅을 사서 여러 나무와 식물을 심었다. 1970년대에 천리포수목원으로 등록했다. 한국에 생긴 첫번째 사설 수목원이다. 오랫동안 일반 사람은 못 갔나 보다. 일반 사람이 가게 되고는 좀 안 좋은 일도 있었다. 나무만 보러 가지. 그런 사람이 더 많다고 생각하고 싶다. 나무가 많은 곳을 걸으면 마음이 편하다. 난 이제 나무 모습이 아니지만 예전에는 나무였던 책 숲을 걷는다. 진짜 나무는 가끔 만난다.

 

 이 책을 보다보니 난 나무에서 가장 좋아하는 게 없다는 걸 알았다. 그런 나무가 딱 하나라도 있다면 좋을 텐데. 신사임당은 매실나무를 좋아했다. 이황도 그랬구나. 선비는 소나무와 매실나무 좋아했겠다. 소나무 숲으로는 소수서원 들어가는 곳이 좋단다. 소수서원은 주세붕이 짓고 이황이 임금한테 편액을 받았다. 서원은 거의 자연으로 둘러싸였다. 나무를 보고 공부하고 마음도 닦으라는 거겠지. 한옥은 나무와 잘 어울린다. 집을 짓고도 나무를 심었겠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구나. 내가 나무를 많이 보는 곳은 아파트 둘레에서다. 내가 사는 곳은 아니지만. 그런 곳을 지나면서 이런저런 나무를 본다. 이름을 아는 나무는 별로 없지만. 아파트 둘레에 심은 건 어딘가에서 사오는 걸까. 산 아무데서나 가져오는 건 아니겠지. 좋아하는 나무가 딱 하나 있는 것도 좋겠지만, 그냥 나무 자체를 좋아해도 괜찮겠다.

 

 스님은 거의 지팡이를 심었다. 땅에 꽂아둔 지팡이가 이런저런 나무로 자랐다. 어느 어진 스님이 찾아간 마을은 평화로워 보였다. 스님은 언젠가 다시 그곳에 찾아오려고 우물가에 자신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두었다. 그 지팡이는 은행나무로 자랐다. 그 이야기에는 마을이 언제나 평화롭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겠다. 효를 생각하게 하는 나무도 있고 못 먹어 죽은 아기를 위한 나무도 있다. 이팝나무는 아이뿐 아니라 시어머니한테 구박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며느리 한이 서린 것이기도 하다. 며느리는 늘 잡곡밥만 지었는데 제사에 쓸 쌀밥을 지어야 했다. 밥이 잘됐나 하고 며느리가 조금 먹어본 걸 가지고 시어머니가 혼냈다. 며느리는 나무에 목을 매달고 죽고 이듬해에 며느리가 죽은 무덤가에 이팝나무가 자랐다. 난 한국에 공자 후손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들은 적 있을 텐데 잊어버렸을지도). 그런 걸 신기하게 여기다니. 한국에 사는 공씨는 거의 공자 후손일까. 중국 사람이 한국에 오고 여기 눌러 산 일도 심심치 않게 있었겠다. 그건 중국 사람만은 아니겠구나. 아주 오래전이어서 이젠 한국 사람이다.

 

 오랫동안 죽었다 살아난 나무도 있다. 그게 바로 공자의 64대손 공서린이 심은 은행나무다.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말 때문인지 한국에는 은행나무가 많다. 서당이나 서원에 많겠다. 공서린이 서당 앞에 심은 은행나무는 공서린이 죽고 말라 죽었는데, 250년이 지나 다시 싹을 틔웠다. 세상에는 그런 신비로운 일이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자라지 않은 백송도 있고 나라에 큰일이 일어나면 우는 나무도 있었다. 나무는 사람과 함께 산다. 나무는 사람한테 주는 게 많은데, 사람은 나무한테 받기만 하는 듯하다. 사람은 나무 없이 살기 어렵다. 나무는 자연이구나. 사람은 자연한테 많은 걸 받는 걸 고맙게 여기고 아끼고 함께 살면 좋겠다. 나무는 사람보다 오래 살고 사람을 바라본다. 나무에 담긴 이야기는 사람이 한다. 앞으로도 나무와 사람에 얽힌 이야기 많이 생기기를 바란다. 그 이야기는 지금 사람보다 앞날 사람이 듣겠지. 나무를 심는 건 지금보다 앞날을 생각해서다. 오래전 많은 사람이 그랬다.

 

 

 

희선

 

 

 

 

☆―

 

 사람도 바뀌고 풍경도 바뀌었지만 나무만큼은 끄떡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천 년 전 옛날을 고스란히 기억한다. 오래 바라보는 사람한테 나무는 아주 천천히 두런두런 옛이야기를 건네온다.  (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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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써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도 쓴다. 쓰고 싶으니까. 쓸 때는 별로여도 시간이 흐르고 예전에 쓴 걸 보면 내가 쓴 거 맞나 싶은 생각도 든다. 이런 거 좀 우스울지도. 요새는 쓸 게 없다. 언제는 쓸 게 있어서 썼나. 쓸 게 없어도 그냥 썼구나.

 

 지금 이렇게 쓰는 것도 언젠가 한번 썼을지도 모르겠다. 같은 생각을 또 하고 그걸 쓰다니. 이런 일 처음은 아니구나. 다른 것도 비슷한 걸 조금 다르게 썼을 뿐이다. 쓰면서 예전에 썼던가 생각하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걸 쓸지. 누군가는 자꾸 썼더니 어떤 거든 쓰게 됐다던데, 난 그렇게 못하려나 보다.

 

 내가 생각하는 게 거기에서 거기라는 말 했는데, 하는 것도 거기에서 거기다. 단순한 생활이어서 더 쓸 게 없나 하는 생각도 든다. 아니 꼭 그건 아니구나. 바깥에 나가 자연을 만나고 거기에서 지금까지 못 본 걸 찾아야겠지. 그냥 지나치는 거 많다. 늘 보는 거여도 날마다 다를 거다. 조금씩 바뀌는 것도 알아채야 할 텐데. 마음도 그렇겠다.

 

 잘 쓰기보다 꾸준히 쓰기,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다. 꾸준히 한다고 해서 잘하게 되는 건 아니다. 기대하지 않기. 글에도 기대하지 않아야 하는구나. 이제야 그걸 알았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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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0-11-24 0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매일 비슷한 이야기 씁니다.
매일매일 비슷하게 사는 모양이예요.
조금 더 나아지고 싶은데.
희선님 날씨가 많이 추워졌어요.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밤되세요.^^

희선 2020-11-24 01:41   좋아요 1 | URL
사람은 거의 날마다 비슷비슷하게 살 거예요 저도 거의 날마다 비슷하게 지내요 하루가 끝날 때, 오늘 별일 없어서 다행이다 합니다 이건 요새 그랬네요 좀 걱정이 많아서... 서니데이 님은 꾸준히 글을 쓰시는군요 그날 생각하고 본 것을 쓰시니, 나중에 글을 보면 그날을 떠올리기도 하겠습니다

어제 바람이 아주 차갑더군요 아직 가을이 다 가지 않았지만, 겨울은 겨울다우면 좋겠네요 그러면서 추우면, 춥다고 하겠습니다

서니데이 님 아직 날은 밝지 않았지만, 오늘 좋은 하루 보내세요


희선

페크pek0501 2020-11-24 1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페이퍼 쓰면서, 이거 언젠가 글 올린 적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길 때가 있어요. ㅋ

희선 2020-11-25 00:33   좋아요 2 | URL
저는 제가 쓴 거 시간이 지나고 예전에 비슷한 거 썼다는 거 알기도 해요 시간이 지나고 먼저 쓴 걸 잊어버리고 비슷한 걸 또 쓰다니... 그런 생각을 다시 해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쓴 것도 가끔 봐야 먼저 썼는지 안 썼는지 알겠네요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0-11-24 2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 재밌습니다. 희선님도 댓글 다신 분들도. 다들 비슷한가봐요. 저는 반백년 살았어요. 언젠가 보니 내 일기가 그말이 그말이길래 글을 놓아버렸어요. 에잇 신변잡기 따위!! 후회는 하지 않는데. 요즘 그냥 얼떨결에 쓰는 매일 시읽기 덕에 깨달은 것이 있다면, 아, 써야 또 쓸 게 생기는구나 하는 거예요.
희선님 꾸준한 글쓰기 응원해요~~~^^

희선 2020-11-25 00:39   좋아요 0 | URL
일기는 정말 그렇죠 카프카도 자신이 쓴 일기를 보고 비슷하게 썼다고 했으니... 그래도 카프카는 그걸 알고 다르게 썼겠습니다 저는 일기 가끔 쓰는데 시간이 지나도 비슷한 생각만 해요 몇 해 동안 비슷한 생각을 쓰고... 그런 건 안 하고 싶은데 잘 안 되는 듯합니다 잘 해결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일지도... 쓸 게 없어도 쓰려고 하면 떠오르기도 해요 여전히 유치하지만... 날마다 시를 읽고 그걸 쓰는 것도 쉽지 않겠습니다


희선

카알벨루치 2020-11-25 05: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기에서 거기...그 표현이 좋습니다 사람 사는게 다 거기에서 거기...글도 쓰다보면 잘 쓰고 싶지만 잘 쓸려고 하면 힘이 들어가고 때론 인용하나 만으로 문장 하나만으로 빛이나는 작가의 말과는 달리 내 말과 글은 나혼자 ‘이 연사 외칩니다’ 이러는거 같고 그렇네요 ㅎㅎ

희선 2020-11-26 01:29   좋아요 1 | URL
아주 다르게 사는 사람이 없지 않겠지만, 많은 사람은 날마다가 비슷한 날일 거예요 지금은 그런 날이 괜찮은 듯해요 별 일 없는 날, 그렇다고 늘 아무 일 없지는 않지만... 저는 거의 혼자 말하는 듯합니다 그런 게 괜찮으면 좋을 텐데 가끔 우울한 것도 있네요 그것도 몇번이나 안 써야지 하면서 시간이 가면 또 써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