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심은 사람들 - 이 땅에 누가 왜 나무를 심었을까?
고규홍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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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는 사람보다 오래 살고, 사람보다 먼저 지구에 살았겠지. 은행나무는 4억년 전부터 있었다고 한다. 아주아주 오래전 지구에는 나무가 많았겠다. 그런 때는 어떤 모습일까. 그런 모습 상상 못할 건 없기는 하구나. 나무 키는 아주 크고 줄기는 굵겠지. 그런 나무가 많은 숲에는 새나 동물 곤충이 많이 살겠다. 조선시대에는 여우나 호랑이 반달곰도 살았는데 이제 그런 짐승은 거의 없다. 반달곰은 있던가. 그렇다고 그걸 보러 가면 안 될 듯 싶다. 사람을 보면 공격할지도 모를 테니 말이다. 반달곰은 자기가 살 곳에서 잘 살기를 바란다. 북극곰은 먹이를 구하지 못해 사람이 사는 곳에 나타나기도 했다던데. 지구가 안 좋아져서 살기 힘든 건 사람만이 아니다. 동물은 더하다. 지구를 더 안 좋게 만들지 않아야 할 텐데.

 

 지금도 있지만 이제는 쉬는 날이 아닌 나무 심는 날에 나무 심은 사람 많았을까. 예전에는 있었을 것 같지만, 지금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기후가 바뀌어서 나무를 사월이 아닌 그것보다 더 빨리 심어야 한다는 말도 하던데. 이 책 제목을 보니 끝에 한 글자만 다른 장 지오노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이 생각났다. 어떤 한사람이 오랫동안 도토리를 심어서 숲을 만든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했는지는 잊어버렸다. 그건 예전에 만화영화로도 만들었다. 우연히 텔레비전 방송으로 할 때 봤다. 괜찮았던 것 같다. 나무 씨앗을 땅에 심어 숲을 만드는 이야기 하나 더 있다. 《씨앗 편지》다. 풍선에 씨앗과 편지를 매달아 날렸더니 그걸 주운 아이가 그 주소로 편지를 썼다. 그게 소설일 뿐인지 실제 있었던 일인지는 잊어버렸다. 남자아이가 심은 나무 씨앗은 나무로 잘 자랐는데, 한번 불이 난다. 다행하게도 다시 숲은 살아난다. 자연의 힘은 대단하다. 아니 돌고 돈다고 해야 할까.

 

 

              

 

 

 

 무언가를 기념하려고 지금 사람도 나무를 심겠지만, 예전에는 그런 일이 더 많았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부모가 죽었을 때 나무를 심었다. 이걸 보니 소나무 은행나무 매실나무 느티나무가 많이 보였다. 앞에서 말한 나무를 심은 사람은 한국에도 있었다. 1944년 여름 임성국이 농사 짓던 장성 지역에 큰비가 내려 물난리가 나고 산사태가 일어났다. 임성국은 산에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심었다. 지금 그곳에는 편백나무 참나무 일본잎갈나무가 있단다. 치유의 숲이라 이름 붙였단다. 본래 미국 사람이었던 민병갈(칼 페리스 밀러)은 충남 천리포 땅을 사서 여러 나무와 식물을 심었다. 1970년대에 천리포수목원으로 등록했다. 한국에 생긴 첫번째 사설 수목원이다. 오랫동안 일반 사람은 못 갔나 보다. 일반 사람이 가게 되고는 좀 안 좋은 일도 있었다. 나무만 보러 가지. 그런 사람이 더 많다고 생각하고 싶다. 나무가 많은 곳을 걸으면 마음이 편하다. 난 이제 나무 모습이 아니지만 예전에는 나무였던 책 숲을 걷는다. 진짜 나무는 가끔 만난다.

 

 이 책을 보다보니 난 나무에서 가장 좋아하는 게 없다는 걸 알았다. 그런 나무가 딱 하나라도 있다면 좋을 텐데. 신사임당은 매실나무를 좋아했다. 이황도 그랬구나. 선비는 소나무와 매실나무 좋아했겠다. 소나무 숲으로는 소수서원 들어가는 곳이 좋단다. 소수서원은 주세붕이 짓고 이황이 임금한테 편액을 받았다. 서원은 거의 자연으로 둘러싸였다. 나무를 보고 공부하고 마음도 닦으라는 거겠지. 한옥은 나무와 잘 어울린다. 집을 짓고도 나무를 심었겠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구나. 내가 나무를 많이 보는 곳은 아파트 둘레에서다. 내가 사는 곳은 아니지만. 그런 곳을 지나면서 이런저런 나무를 본다. 이름을 아는 나무는 별로 없지만. 아파트 둘레에 심은 건 어딘가에서 사오는 걸까. 산 아무데서나 가져오는 건 아니겠지. 좋아하는 나무가 딱 하나 있는 것도 좋겠지만, 그냥 나무 자체를 좋아해도 괜찮겠다.

 

 스님은 거의 지팡이를 심었다. 땅에 꽂아둔 지팡이가 이런저런 나무로 자랐다. 어느 어진 스님이 찾아간 마을은 평화로워 보였다. 스님은 언젠가 다시 그곳에 찾아오려고 우물가에 자신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두었다. 그 지팡이는 은행나무로 자랐다. 그 이야기에는 마을이 언제나 평화롭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겠다. 효를 생각하게 하는 나무도 있고 못 먹어 죽은 아기를 위한 나무도 있다. 이팝나무는 아이뿐 아니라 시어머니한테 구박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며느리 한이 서린 것이기도 하다. 며느리는 늘 잡곡밥만 지었는데 제사에 쓸 쌀밥을 지어야 했다. 밥이 잘됐나 하고 며느리가 조금 먹어본 걸 가지고 시어머니가 혼냈다. 며느리는 나무에 목을 매달고 죽고 이듬해에 며느리가 죽은 무덤가에 이팝나무가 자랐다. 난 한국에 공자 후손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들은 적 있을 텐데 잊어버렸을지도). 그런 걸 신기하게 여기다니. 한국에 사는 공씨는 거의 공자 후손일까. 중국 사람이 한국에 오고 여기 눌러 산 일도 심심치 않게 있었겠다. 그건 중국 사람만은 아니겠구나. 아주 오래전이어서 이젠 한국 사람이다.

 

 오랫동안 죽었다 살아난 나무도 있다. 그게 바로 공자의 64대손 공서린이 심은 은행나무다.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말 때문인지 한국에는 은행나무가 많다. 서당이나 서원에 많겠다. 공서린이 서당 앞에 심은 은행나무는 공서린이 죽고 말라 죽었는데, 250년이 지나 다시 싹을 틔웠다. 세상에는 그런 신비로운 일이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자라지 않은 백송도 있고 나라에 큰일이 일어나면 우는 나무도 있었다. 나무는 사람과 함께 산다. 나무는 사람한테 주는 게 많은데, 사람은 나무한테 받기만 하는 듯하다. 사람은 나무 없이 살기 어렵다. 나무는 자연이구나. 사람은 자연한테 많은 걸 받는 걸 고맙게 여기고 아끼고 함께 살면 좋겠다. 나무는 사람보다 오래 살고 사람을 바라본다. 나무에 담긴 이야기는 사람이 한다. 앞으로도 나무와 사람에 얽힌 이야기 많이 생기기를 바란다. 그 이야기는 지금 사람보다 앞날 사람이 듣겠지. 나무를 심는 건 지금보다 앞날을 생각해서다. 오래전 많은 사람이 그랬다.

 

 

 

희선

 

 

 

 

☆―

 

 사람도 바뀌고 풍경도 바뀌었지만 나무만큼은 끄떡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천 년 전 옛날을 고스란히 기억한다. 오래 바라보는 사람한테 나무는 아주 천천히 두런두런 옛이야기를 건네온다.  (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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