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 4
최명희 지음 / 매안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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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이라고 해서 이야기만 따라가야 하는 건 아니겠지만, 《혼불》 4권, 2부 평토제는 이야기가 많이 나아가지 않았다. 혼례를 치르고 얼마 안 되어 남편이 죽은 청암부인은 이씨 종가 며느리로 살았다. 청암부인은 기울어가는 이씨 종가를 일으켜 세우기도 했지만, 일제 강점기가 오고 가뭄이 들고 저수지가 말랐다. 이 일은 창씨개명을 하고 난 뒤였다. 청암부인은 집안을 지키지 못했다 여기고 손자인 강모가 부청 돈을 횡령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쓰러졌다. 지난 《혼불》 3권에서 청암부인은 세상을 떠났다. 그 뒤 이야기는 참 천천히도 흐른다.


 강모는 사촌 강태를 따라 만주로 달아난다. 강모가 큰 뜻이 있어서 만주에 가는 건 아니다. 종손이라는 게 부담스러워서 달아나는 거였다. 강모가 일하는 곳에서 횡령한 돈으로 기생집에서 빼낸 오유키가 기차에 있었다. 오유키는 어떻게 그 기차에 탔을까. 강모가 떠난다는 걸 알고 강모를 따라간 건지. 그건 잘 모르겠다. 기차에서 오유키는 강모한테 아무 말하지 않았다. 강모는 오유키가 어딘가에서 내리지 않을까 했는데 내리지 않았다. 기차표 검사할 때 오유키는 차표가 없어서 차장실에 가야 했다. 강모가 그 모습을 보고 함께 갔다가 돈을 낸다.


 청암부인은 자신의 장례를 치를 때 음식을 많이 하고 많은 사람과 나눠 먹으라 했다. 그런 건 좋은 거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번 ‘혼불’ 4권 맨 앞부분에는 노비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 게 왜 나오려나 하는 생각을 하고 보았다. 노비 신분 세습이 조선 전기에는 부모에서 하나만 천인이어도 자식은 천인이 되었다. 한때는 종부법(從父法)을 시행하고 아버지 신분에 따라 자식 신분이 정해졌다. 그 일을 양반이 반발해서 종모법(從母法)이 시행되고 어머니가 종이면 아들은 노(奴)가 되고 딸은 비(婢)가 되었다. 이 책 《혼불》 시작은 1930년 후반으로 이제 노비는 없어졌는데, 아주 사라지지 않은 곳이 매안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에 거멍굴 옹구네가 춘복이한테 강실이를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춘복이가 강실이를 넘보는 건 종모법 때문이겠지. 강실이가 양반이고 강실이가 자기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양반이니.


 미국에 노예제도가 있지 않았나. 그런 거 보면서 참 너무한다 싶은 생각을 했는데, 한국 아니 조선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뭐가 다르지 않았냐면 양반이 종을 자기 마음대로 하고 아이를 갖게 한 일이다. 그런 건 예전에 드라마에서 보기도 했구나. 백인이 흑인 노예를 성폭행하는 건 끔짝하게 여기면서 양반이 여자 종을 성폭행하는 건 그렇게 끔찍하게 여기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어떻게 그랬는지. 이씨 종가에 사는 우례는 어릴 때 기채 동생 기표한테 성폭행 당하고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는 봉출이로 지금 열다섯이다. 다들 용출이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가 보다. 봉출이도 그런 말 들었겠다. 우례는 언젠가 꼭 봉출이가 자기 성을 찾기를 바랐다. 앞으로 봉출이가 나올지. 우례 이야기 하기 전에 어머니가 종이고 아버지가 양반이었던 유자광 이야기가 나왔다. 유자광은 서얼이었지만 잘됐다고 한다. 죽을 때와 죽고 난 뒤는 안 좋았지만.


 조선에 노비가 없어졌다 해도 노비였던 사람은 그게 싫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돈을 벌고 신분세탁한 사람도 있을 거다. 춘복이가 그걸 바라는 건 아닌가 싶다. 신분상승인가. 옹구네는 춘복이 마음을 눈치채고 자신을 버리면 춘복이가 강실이를 넘본다는 소문을 내겠다고 한다. 자신을 버리지 않고 죽 산다면 촌복이를 돕겠다고 한다. 옹구네 무섭구나. 그것보다 춘복이가 뭐가 좋다고. 옹구네는 양반인 강실이가 자신이 사는 곳에 오는 걸 보고 싶다 했구나. 강모가 자기 마음을 참았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강모가 강실이한테 한 것도 성폭행 아닌가. 그런데도 강실이는 강모가 와서 자신을 도와주길 바라는 듯하다. 강모는 희망이 없다. 자기만 힘들다고 떠나지 않았나.


 종부뿐 아니라 종손도 쉽지 않겠다. 그 뒤에도 조선, 한국은 첫째아들을 더 생각했다. 지금은 아이가 하나거나 아예 없는 사람도 있구나. 이제는 대를 잇는 걸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아이가 살기 좋은 나라여야 사람들이 아이를 낳을 텐데. 그것보다 결혼 안 하는 사람이 더 많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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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드립백 홀더 - 커피 드립백 홀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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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립백 커피를 조금 편하게 내리고 싶어서 이걸 샀다. 드립백을 손으로 들지 않아도 돼서 좋기는 하다. 마지막엔 들어올려야 하다니. 컵이 작아서 그렇구나. 물을 덜 부어야 커피가 맛있을 텐데, 물을 많이 붓는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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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3
최명희 지음 / 매안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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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누구나 나고 살다 죽는다. 그런 일이 자연스럽다 해도 오래 가까이 살던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무척 슬프겠다. 아프지 않다 자다가 세상을 떠나도 그러겠지. 이씨 종가에 온 김씨부인은 잠을 자다 세상을 떠났다 한다. 청암부인은 남편과 시아버지가 없는 종가 종부로 왔다. 그나마 시어머니보다 덜 무서운 김씨부인이 있어서 의지하고 살았다(이 김씨부인은 보쌈당했다. 옛날에 그런 게 있었다니. 이건 거의 사람을 억지로 끌고 오는 거 아닌가. 그런 게 죄가 되지 않는 시대였다니. 여성은 아무 말 못하고 그대로 살아야 했겠다). 두 사람이 서로 의지했다고 해야겠구나. 혼례를 치렀다 해도 남편이 죽으면 그 집에 안 가도 됐다면 좋았을 텐데, 옛날엔 그런 게 없었구나. 남편이 죽어도 여자는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고 했던가.


 이번 《혼불》 3권은 2부다. 혼불은 모두 5부고 두 권씩이다. 강모는 집에 오고 사랑에 갇혀 있었던가 보다. 강모는 부청 돈을 기생 때문에 횡령했다. 강모가 집에 오고 청암부인을 만났을 때 청암부인은 강모가 횡령한 돈 삼백원을 주었다. 청암부인은 아파서 거의 잠으로 보냈는데, 강모가 왔을 때 잠시 눈을 뜨고 그걸 전해주었다. 그런다고 강모가 정신차릴까. 강모는 자신이 종가를 이어야 하는 걸 부담으로 여겼는데. 강모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기를 바랐다. 종가에서 태어나지 않고 가난한 집안에 태어났다면 어땠을지. 그때는 그때대로 불평했겠지. 거멍굴에 사는 춘복이였다면. 사람은 자신이 가진 걸 고맙게 여겨야 하거늘 그러지 못한다.


 거멍굴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옹구네는 춘복이한테 강실이 이야기를 한다. 춘복이가 자신한테 마음을 안 줘서 그런 건지. 춘복이는 결혼하고 자식을 낳지 않겠다고 했다. 자신처럼 제대로 살지 못할 걸 생각하고. 춘복이가 노비는 아닌 것 같은데. 옹구네가 강실이 이야기를 하자 춘복이는 강실이를 생각했다. 강실이는 양반집 딸이다. 지금까지 멀리서 보기만 했지 넘본 적은 없었다. 강모와 강실이 이야기는 거멍굴에 퍼지고 춘복이도 알았겠지. 춘복이는 그 일을 약점으로 잡고 강실이를 넘보게 됐다. 기회를 잡으려는 것 같다. 왜 옹구네는 강실이 이야기를 한 건지. 그러지 않아도 강실이 혼사 이야기가 잘 안 됐다. 다른 사람은 다 아는 걸 강실이 부모는 아직도 모르는가 보다. 등잔 밑이 어둡구나. 강모는 강태가 떠난다고 하는 말을 듣고 자신도 따라가기로 한다. 달아나는 거구나. 아버지가 음악하는 걸 반대했지만 강모도 거기에 큰 뜻은 없었다.


 남편도 없이 종가 종부가 되고 집안 어른이 된 청암부인이 세상을 떠났다. 청암부인은 집안 재산도 늘렸다. 그게 갈수록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효원은 청암부인이 세상을 떠나서 무척 슬펐다. 효원은 강모와 잘 지내지 못해도 청암부인이 있어서 살았는데. 청암부인은 효원을 자신과 비슷하게 여긴 듯도 하다. 며느리한테는 마음을 잘 주지 않은 것 같았는데. 강모 어머니인 율촌댁은 시어머니한테 눌리고 살았다 여겼다. 효원을 보고 자신이 눌릴 것 같아서 처음부터 기를 누르려 했다. 꼭 그렇게 눌러야 할까. 청암부인이 죽은 건 이씨 문중이 기우는 것과 같을까. 저수지도 마르고. 이기채보다 동생인 기표가 여러 가지 일을 맡아서 했는데, 어쩐지 걱정스러워 보인다. 땅을 사고 땅값을 제대로 안 주다니. 아니 기채가 준 돈을 기표가 가운데서 가로챘다. 그런 일이 한두번이 아닐 것 같다. 형제도 다 소용없나 보다.


 예전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혼불’은 1930년대 후반부터 나온다. 그때가 더 힘들었으려나. 일본이 조선에서 쌀을 다 가져가고 남자는 군인이나 탄광에 여자는 일본군 위안부나 공장 일을 시키려고 끌고 갔으니. ‘혼불’은 조선이 독립한 뒤도 나올지. 이때 가뭄이 이어져서 굶어죽는 사람이 많았다. 소작인은 거의 받는 것도 없었다. 일본이 다 빼앗아가서. 창씨개명을 했다면서 양반이 어디 있나 하는 사람도 있다. 이씨 집안은 어떻게 되려나. 효원이 집안을 지키려 할 것 같기는 한데, 청암부인처럼 하지는 못하겠다. 강모는 아주 돌아오지 않을까. 앞으로 보면 알겠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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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8 12: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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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0 2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넬로페 2023-11-08 2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몇 년전에 전주에 있는 최명희문학관에 가 본적이 있어요. 아기자기하면서 예쁘더라고요.
혼불 리뷰 읽으니 그때가 생각났어요.

희선 2023-11-10 23:41   좋아요 1 | URL
저는 혼불 문학관하고 최명희 문학관 같다고 여겼나 봅니다 전주에도 그게 있구나 했네요 혼불 문학관은 남원에 있더군요 최명희 문학관은 전주였다니... 그런 게 한 곳에 있는 게 아니군요 지금 찾아보니 거기에 느린우체통 있다는 말이 나왔어요


희선

stella.K 2023-11-08 2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혼불 읽고 계시는군요.
이 책 오래된 책인데...
저는 1권인가, 2권 읽고 다시 못 읽고 있습니다.
희선님은 완독하시길.^^

희선 2023-11-10 23:44   좋아요 1 | URL
이것보다 먼저 《토지》를 봐서 이것도 한번 볼까 하고 보게 됐습니다 앞으로 잘 안 나가요 책 이야기도 그렇고 책 읽는 속도로 잘 안 나요 천천히라고 봅니다 한권 보는 데 며칠이나 걸리다니... 다른 이야기도 중요할 텐데, 그런 건 조금 지루하게 여기는군요


희선
 
글쓰기, 당신의 초능력 잠금 해제
민혜 지음 / 해드림출판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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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이야기를 쓰면 책이 여러 권이다, 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쓰면 한권도 안 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그걸 쓰지는 못하겠네요. 어릴 때 일은 생각나는 게 별로 없어요. 초등학교 글쓰기 시간에 학교에 다니기 전 이야기 하나를 쓴 적 있는데, 그건 지금도 기억해요. 어릴 때 이런저런 글을 썼다면 기억하는 일이 더 많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아쉽네요. 학교 다닐 때 글쓰기 시간 싫었습니다. 그런 시간이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글쓰기 시간이 아니고 국어에 글쓰기가 있어서 썼을지도 모르겠네요. 일기 검사 받은 기억도 있어요. 이것도 자주는 아니었어요. 방학 때 한번인가 두번인가. 그 일기도 밀려서 썼네요. 방학숙제는 방학이 끝나기 며칠 전에 부랴부랴 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음엔 꼭 방학 시작하면 숙제 일찍 끝내야지 생각했어요.


 방학 끝나기 며칠 전에 숙제 하던 거 생각하니, 마감 시간이 생각나네요. 작가가 글을 쓰는 건 마감 시간이 있어서다고도 하잖아요. 그게 없었다면 글 쓰지 못할 작가 많았다고 하지요. 예전에는 그런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는데, 지금은 아니군요. 어릴 때는 책을 읽지도 않고 글도 즐겨 쓰지 않던 제가 책을 보고 글을 쓰게도 됐어요. 저는 거의 마감하고 상관없이 읽고 씁니다. 어릴 때는 남(선생님)한테 제가 쓴 글 보여주기 싫었는데, 지금은 봐주길 바라는군요. 왜 저는 달라졌을까요. 이상한 일입니다. 사람이 늘 같지는 않겠네요. 마음이나 생각은 자주 바뀌기도 하지요. 바뀌는 것도 있고, 바뀌지 않는 것도 있겠습니다.


 앞에서 저는 남한테 제가 쓴 글 보여주기 싫다고 했잖아요. 일기 검사 받기 싫었어요. 시간이 흐르고 그때 선생님이 일기 읽지 않았을 것 같더군요. 현실은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죠. 바쁜 선생님이 어떻게 아이들 일기를 하나 하나 봤겠어요. 그때는 그런 생각 못했네요. 신기하게도 일기 검사 받지 않아도 됐을 때는 마음대로 일기를 썼어요. 편지도 썼군요. 저는 사춘기 별 일 없이 지냈다 여겼는데, 그때 일기 쓰고 편지를 썼네요. 쓰기만 하고 책은 못 봤습니다. 책이란 거 잘 몰라서. 제가 책을 읽어야지 한 건 고등학교를 마치고부터예요. 책을 읽기는 했지만, 감상은 안 썼습니다. 책을 보다 보니 재미있어서 저도 재미있는 이야기 쓰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어요. 시간이 더 흐르고서야 책을 읽고 뭐든 남기게 됐습니다.


 이번에 《글쓰기, 당신의 초능력 잠금 해제》(민혜)를 만났습니다. 글쓰기를 말하는 책이에요. 책을 읽어야 글을 쓰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쓰기가 먼저였네요. 그건 아닌가. 책은 읽지 않아도 다른 걸 봤겠습니다. 제가 살아가는 거, 그게 책읽기 대신이었을지도. 얼마전에 이 책 제목 보고 난 초능력 없는데 했습니다. 그러면서 책을 보면 초능력이 생기고 글을 잘 쓰려나 하는 생각이 조금 들었어요. 책을 본다고 바로 글을 잘 쓰지는 않겠지요. 그건 저도 잘 압니다. 글은 잘 쓰든 못 쓰든 자꾸 써야 조금이라도 나아집니다. 글을 쓰다 보면 어느 날은 별로고 어느 날은 좀 괜찮은데 하기도 합니다. 여기에서도 ‘글을 쓰고 또 쓰자’고 하네요. 물건이 말을 걸어오면 그걸 쓰고 메모도 잘 해두라고 합니다. 제가 잘 못하는 게 메모군요. 메모는 따로 안 하고 한다 해도 제대로 살려 쓰지 못하지만 제 머릿속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죠. 정말 그러면 좋을 텐데. 책을 볼 때는 조금 적기도 하는데, 글 쓸 때 별로 도움이 안 됩니다. 메모를 잘 못해서겠지요.


 책을 읽는 사람은 줄어들어도 글을 쓰려고 하는 사람은 많다고 하지요. 글을 써서 책을 내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죠. 저도 조금 욕심 있지만, 지구에 해를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 이름이 잘 알려지거나 책을 내지 않아도 글 쓰고 싶어요. 글은 누구나 써도 괜찮군요. 지금 생각하니 글쓰기는 평등하네요.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을지도. 인터넷이 생기고는 더 많은 사람이 글을 쉽게 쓰게 됐습니다.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되니 자기 감정을 푸는 사람도 있지만. 남을 공격하는 글보다 자신한테 도움이 되는 글을 쓰면 더 좋겠습니다. 요즘은 여러 가지에 반려라는 말을 붙이는데, 민혜는 글쓰기를 속정 깊고 뜻 있는 반려다 했어요. 책과 글은 사람을 떠나지 않네요. 책을 읽는 것보다 글쓰기가 조금 더 힘이 들지만. 쓰는 것보다 읽는 시간이 덜 걸리잖아요. 책도 잘 읽으면 시간 많이 걸릴지도. 책을 읽기만 하는 것보다 쓰기도 하는 게 나은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건 책을 읽고 쓰는 글은 아니군요. 어떤 글에든 적용해도 괜찮겠습니다.


 사람은 시간이 흐르면 잊어버립니다. 기억은 자꾸 되새기지 않으면 사라지지요. 단기기억, 장기기억이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글로 쓰는 건 기억을 붙잡는 거겠습니다. 글을 쓰고 좋아진 게 많다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딱히 상처를 낫게 하려고 글을 쓰는 게 아니어서. 이런 마음 없다 해도 글을 써서 나아진 거 있을 거예요. 글쓰기는 저한테 삶이기도 합니다. 숨쉬기보다 애써야 하는 거지만. 책읽기와 글쓰기에 중독된 걸지도. 다른 중독보다 낫지 않을까요. 쓸 게 없어도 쓰려고 하면 뭐든 씁니다. 저한테 꿸 구슬은 없지만, 글을 쓸까 합니다. 뭔가 떠오르는 거나 보고 듣는 거 잘 적어두면 글쓰기에 도움이 되겠지요. 글쓰기에는 초능력보다 꾸준함이 중요하겠습니다. 어쩌면 꾸준함이 초능력일지도.




희선





☆―


 귄터 그라스는 ‘작가란 과거의 시간에 생명을 불어넣는 사람, 사라져가는 시간에 거역해서 글을 쓰는 사람이다.’는 말을 했습니다.  (57쪽)



 그렇지 않아, 친구.

 창작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탄광 속에서 하루에 열여섯 시간을 일해도

 창작을 해내지.

 작은 방 한 칸에 애가 셋이고

 정부 보조금으로 생활해도

 창작을 해내지.

 마음이 분열되고 몸이 찢겨 나가도

 창작할 사람은 창작을 하지.

 눈이 멀고

 불구가 되고

 정신이 온전치 않아도

 창작을 해내지.


 -<공기, 빛, 시간, 공간>에서, 찰스 부코스키  (1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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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7 16: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09 0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本のエンドロ-ル
安藤 祐介 / 講談社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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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엔딩 크레딧

안도 유스케



 




 아직 난 못 봤지만 이제는 전자책을 보는 사람이 늘었다. 지구를 생각하면 종이책보다 전자책을 보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부자만 종이책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책이라는 게 나왔을 때도 가난한 사람은 못 봤는데. 인쇄술이 발명되고 누구나 쉽게 책을 보게 됐다. 인쇄술뿐 아니라 종이 발명도 있구나. 이 종이는 나무로 만드는 거고, 책을 찍으려고 나무를 베면 지구가 안 좋아지고. 슬프구나. 난 종이책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바란다고 될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종이책으로 볼 때 더 잘 기억한다고 하던데. 전자책도 갈수록 좋아지고 종이책 느낌이 들게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책 두께나 무게 감촉 냄새가 없겠다.


 책을 생각하면 누가 가장 먼저 떠오르나. 난 작가다. 작가가 글을 써야 책이 나올 거 아닌가. 작가만 있다고 책이 될까. 글이 저절로 책이 되지는 않는다. 출판사 편집자가 있어야 작가가 쓴 글을 보고 그게 책이 될지 안 될지 알겠다. 책 디자이너도 있어야 하는구나. 그런 게 정해지면 다음엔 무엇을 해야 할까. 인쇄다. 난 책뿐 아니라 어떤 것도 인쇄되는 거 본 적 없다. 인쇄소에 가 본 적이 없다는 거구나. 내가 늘 쓰는 물건 만드는 곳은 다. 그런 게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문구점에서 사는구나. 책도 다르지 않다. 이 책 《책의 엔딩 크레딧(엔드 롤)》은 안도 유스케가 자기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생각하다 쓰게 됐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는 소설가가 써야겠지. 인쇄소에 가 본 작가는 얼마나 될까. 아주 없지 않겠지만 많지는 않을 거다.


 한국에서는 책 제목을 《책의 엔딩 크레딧》이라 했다. 본래 제목은 ‘책의 엔드 롤’이다. 이 책에는 많은 사람 이름이 담겼다. 인쇄회사 사람 이름이다. 책을 다 본 다음에 마지막을 보기도 하는데, 한국에서 나온 책에는 인쇄 제본 회사가 쓰인 것도 있고 쓰이지 않은 것도 있다. 일본에서 나온 책은 이 책과 다른 책을 보니 쓰여 있다. 이 책을 보고 책이 되려면 인쇄뿐 아니라 제본도 해야 한다는 거 알았다. 이 책은 인쇄와 제본 회사가 달랐다. 카도카와 출판사는 카도카와 제본, 인쇄 주식회사라 쓰여 있다. 큰 출판사는 인쇄 제본 회사도 있는가 보다. 인쇄하는 기계에는 제본까지 하는 것도 있다. 그런 거 보고 신기했다. 미국에서 그 기계로 페이퍼백을 많이 만든다고 한다. 만화책 인쇄도 그게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어떨지.


 책을 만드는 사람에서 인쇄나 제본하는 사람은 생각하지 못했다. 이 이야기는 도요스미 인쇄주식회사 영업부에서 일하는 우라모토 마나부가 출판사 편집자와 인쇄 기술자 사이를 이어주고 책을 만드는 거다. 인쇄회사 영업부에서는 무슨 일을 할까. 책 인쇄 일은 주문 받아야 인쇄기가 돌아가는구나. 자주 거래한다고 해서 또 같은 인쇄회사에 인쇄를 맡기지는 않겠다. 무슨 일이든 그렇겠다. 싸게 빨리 해준다면 다른 데서 하겠다. 우라모토가 일하는 도요스미 인쇄회사에는 특정한 색을 잘 보고 만드는 사람도 있다. 거의 장인이었다. 그런 건 기계가 나타내기 어렵단다. 도요스미 인쇄회사 라이벌은 월드 인쇄회사구나. 거기는 거의 기계가 하고 빨리 하고 돈도 적게 받는단다. 그런데 도요스미 인쇄회사에서 월드 인쇄회사로 스카우트 하려고도 하다니.


 인쇄가 이제는 저무는 일이구나. 몰랐다. 책이 아니어도 다른 거 인쇄하면 안 될까. 책을 많은 사람이 읽지 않는 지금은 출판사뿐 아니라 인쇄소도 일이 없어지다니. 어쩐지 슬프구나. 우라모토는 인쇄회사는 책을 만드는 곳이다 여겼다. 우라모토는 책을 만들고 싶어서 먼저 다니던 월드 인쇄를 그만두고 도요스미 인쇄로 옮겼다. 다른 사람은 처음에는 우라모토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쇄회사는 작가가 쓴 글을 편집자가 말하는대로 인쇄하면 된다고 여겼다. 그게 틀린 건 아니지만 그게 다는 아닐 거다. 인쇄회사가 책을 만드는 일을 한다고 여겨도 괜찮을 텐데.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인쇄회사 사람이나 우라모토와 함께 일하는 사람은 다르게 생각하게 된다. 인쇄 제본도 중요하지만 종이도 중요하다. 사전 만드는 소설에서는 그 사전에 맞는 종이를 개발하기도 했다.


 코로나로 어디에 가지 못하는 사람은 책을 많이 읽기도 했다. 지금은 다시 책 보는 사람이 줄었으려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언제까지나 볼 거다. 작가와 편집자뿐 아니라 책을 손에 들게 해주는 인쇄 제본하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다. 책이 나온다면 인쇄 제본 일도 아주 사라지지 않겠지. 기계가 더 많은 일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걸 기계가 한다 해도 사람이 해야 하는 일도 있다. 있기를 바란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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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31 0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1-01 0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넬로페 2023-10-31 14: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보는 사람이 줄었는데도 매일 쏟아지는 신간은 또 엄청나더라고요.
새로운 기술로 인쇄업은 예전보다 못하지만 어느 것이 질적으로 더 좋은지는 잘 모르겠어요.
전자책을 읽다보면 편리한 것도 많지만 전체의 내용을 파악할 땐 종이책이 확실히 좋아요~~

희선 2023-11-01 02:35   좋아요 2 | URL
정말 책을 보는 사람이 줄어도 책은 여전히 나와서 신기하기도 합니다 책 찍는 건 많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쇄도 사람 기술보다 기계가 더 할 것 같군요 사람이 해야 하는 것도 있을 텐데... 그런 게 아주 없어지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전자책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뭐 찾을 때는 종이책이 편할 것 같아요 책은 바로 넘기면 되잖아요 전자책은 찾으려면 시간 많이 걸릴 듯합니다


희선

stella.K 2023-10-31 14: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원어로 읽었군요. 근데 원제는 엔드롤이었군요.
우리나라에선 롤 보다는 크레딧이 그나마 많이 알려진 용어라
그러지 않았나 싶네요.
저는 기대하고 봤는데 생각 보다 좀 지루했습니다. ㅋ

희선 2023-11-01 02:39   좋아요 2 | URL
이 책에는 뒤에 인쇄한 사람들 이름도 다 실렸어요 이야기가 인쇄 제본을 말해서 그랬을 듯합니다 한국에서 나온 책은 인쇄소 안 쓰인 책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예전에는 별로 생각도 못했군요 저는 나름대로 재미있게 봤습니다 책뿐 아니라 물건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잘 모르기도 하네요


희선

감은빛 2023-10-31 16: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본 원서도 읽으시는군요!!

제가 출판사에 다닐 때, 편집(주로 교정교열), 영업, 마케팅 등의 업무를 해봤는데,
거의 유일하게 잘 모르는 일이 제작 쪽 일입니다.
물론 편집자로서 인쇄 감리를 보러 간 일은 몇 번 있습니다.
영업자로서 파본 관리나 스티커 작업 등을 위해 간 적도 있구요.

우리나라도 인쇄 업계가 많이 어려운데, 일본도 마찬가지군요.
그래도 종이책이 사라지지는 않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전자책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이 있거든요.
종이를 직접 만지며 책장을 넘겨야 가능한 일들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희선 2023-11-01 02:44   좋아요 1 | URL
감은빛 님은 책이 만들어지는 거 조금 아시는군요 인쇄 제본은 잘 모르신다 해도... 책이 나오려면 작가만 있으면 안 되죠 여러 사람이 있어야 책이 만들어지고 그걸 팔겠습니다 영업이나 마케팅도 하셨다니 그런 경험해 본 것도 좋은 일이죠

일본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고 어느 나라나 책 보는 사람 줄었을 겁니다 일본은 사람이 많고 여러 계층이 책을 보는 것 같기도 해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종이책 사라지면 아쉬울 것 같은데, 아직은 그런 일 없겠지요 그러기를 바랍니다 종이책을 보는 건 내용만이 아니고 손으로 만지는 느낌도 중요하죠 냄새도...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