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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 개미지옥 - 2007년 문학수첩작가상 수상작
서유미 지음 / 문학수첩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간혹 서점 나들이를 하다보면, 아무 이유없이 확 눈에 띄는 책들이 있다. 나에게는 '판타스틱 개미지옥'이 그런 책중 한권이었다. 계속 읽고 싶다고 생각하여,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좋은 기회를 얻어 읽어볼 수 있었다.

이 책은 얼마전에 읽은 '은행원 니시키씨의 행방'을 떠올리겠다. 한정된 공간에서 그 안의 사람들이 각각의 이야기가 한데 엉켜 벌어지는 사건. 다만 '판타스틱 개미지옥'은 세일이라는 한정된 기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다.

이 책의 시작은 청소부 아줌마가 화장실에서 쓰러진 여성을 발견하는데서 시작한다. 도대체 그 여자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았던 것처럼 이야기는 다시 백화점의 한 직원에게 맞춰진다. 그리고 그 직원에 연이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려져 나간다. 여성들이 꿈꾸는 공간이니만큼,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무궁무진 한듯 싶다. 무리한 다이어트를 하는 지영, 어렵지만, 명품을 사서 어쩔 수없는 소영, 학력 컴플렉스에 시달리는 미선과 이상한 유혹을 받는 정민.

각각의 이야기에 100% 공감하기는 어렵지만, 회사생활을 한다면, 백화점에 간다면, 살이 쪘다면, 학교를 제대로 못다녔다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들이 소용돌이 친다. 여기에 조금쯤은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만다. 그들의 욕심과 감정이 결코 비현실적인 것들이 아니기에- 이 책은 빠른 전개와 재미나는 에피소드로 책을 완성한다. 결국 그런 이야기들은 다 한데 모이게 되고-

이 책에서 내가 가장 높이 사고 싶은 점은 일상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이다. 내가 얼마나 아무생각없이 사는지도 느낄 수 있었다. 똑같은 사물을 보고 저런 생각을 하다니- 특히 제일 충격적이었던 것은 매점 부부의 이야기. 백화점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야- 일어날법 하다 느꼈지만, 매점부부의 이야기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저런 상상을 할 수 도 있구나.

오랜만에 재미있는 한국소설을 읽은 것 같아 기쁘다. 유명한 사람들 이외의 소설은 잘 접하지 않게 되었는데 이 책을 통해 마음에 드는 소설가를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이 책에서 등장한 한 명, 한 명의 직원이 언젠가 개미지옥을 빠져나올 수 있길 바란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모든 장소 역시 다른 모양의 개미지옥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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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빙화
이선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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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역사를 바탕으로한 사랑이야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역사소설이라기엔 뭔가 부족하고, 사랑이야기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와닿지 않는 배경 때문이 아닐까-.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도, 아름다운 표지 때문에 욕심 내었던 것과는 달리, 왠지 멈칫 거리게 되었다. 하지만 읽기시작한 이야기는 역사도, 사랑 이야기도 아니었다. 다만 여린 여인이 자신의 삶을 강하게 개척해나가는 이야기였다. 생김새는 물론, 인생 자체가 아름다웠던 그녀의 이야기에 푹 빠져버렸다.

이야기는 고구려의 황녀와 고대문 장군의 딸이 대조영의 손에 맡겨져 길러지며 시작한다. 이들을 둘러싸고, 황녀를 지키는 무사 무, 대조영의 아들 대무예, 그리고 고구려를 위협하는 수많은 적들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황녀로서의 강한 의지와 성격, 그리고 분위기를 지닌 학아는 누구보다 강하지만, 자신의 위치때문에 자신의 사랑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미령은 그와 반대로 여리디 여리게 크고 그녀 역시 학아를 향한 대무예의 모습에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들은 수도 없이 많은 적들을 만나고, 학아는 강하게 자신과 다른이들을 지켜나간다. 

줄거리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이 이야기에는 사랑이야기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녀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작가는 우리에게 강하고 아름다운 여자 주인공을 선사한다. 자신보다 남 때문에 더 아파하고,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는 강하고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에 나 역시 더 안타까웠고, 마음 아팠다. 이 책은 비단 주인공인 학아 뿐 아니라 다 서로에게 상처입히면서도 서로에 대해 아픈 마음을 감추고, 위하는 그런 마음 아픈 사람들로 가득하다. 현재에 자신의 이득을 위해 서로를 위해하는 우리들의 아픔과는 다른 아름다운 모습들이다.

이 책은 5년전에 출간된 책을 재출간 한것이라 한다. 하지만, 5년이 지났음에도 스토리의 빠른 전개와 매력적인 인물들은 결코 퇴색하지 않았다. 현재와는 동떨어진 시대이지만, 학아의 강인함은 본받고 싶은 매력이다. 항상 남의 행복만 바라고, 끝까지 강인했던 그녀가 이 책의 끝에서만큼은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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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세다 1.5평 청춘기
다카노 히데유키 지음, 오유리 옮김 / 책이좋은사람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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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의 화자는 와세다대 앞의 허름한 하숙집 (너무 작고 낡아, TV나 신문에 실릴정도임)에 거주하는 다카노군이다. 이 책은 아무래도 저자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하여, 실화라는 느낌이 강하다. 노노무라에 사는 사람들은 어찌나 하나같이 다 특이한지, 바퀴벌레 소리에 잠을 설치는 수전노, 하나도 엄격하지 않은 주인 아줌마, 냉정하지만, 어느순간 프로레슬링에 빠져버리는 나카에. 이러한 사람들이 펼치는 일상의 나날들은 나와는 달리 어찌나 재미나고, 신기한지. '무슨 재밌는 일 좀 없나'라고 투덜대는 나에게는 정말 부러운(?) 곳이었다.

일부 소제목들을 살펴보면 '신종 마약 도전기', '열다섯 시간 의식 불명', '주인아줌마는 명탐정' 하나같이 어떤 일들일까 궁금증을 유발하는 제목들 뿐이다. 버섯, 식물들을 채집, 시식하여 환각효과를 살펴보고, 묵은 쌀과 햅쌀이 바뀌는 사건을 해결하고- 정말 언뜻보면 어이없기만하다. 이 책을 보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내가 과연 저런 사람들 혹은 저런 사건들을 대했더라도, 이 사람처럼 유쾌하게 받아들였을까? 였다. 나였다면, 짜증을 내지 않았을까, 귀찮아하지 않았을까 하는 사건들도 많았는데- 아무래도 '보통' 시간의 흐름과 '대세'에 따르지 않는 노노무라 주민들을 나름대로 이를 즐겁게 그리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풀어나갈 수 있게 되었지 않나 싶다.  

다른 사람들이 결국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현실로 돌아가는 모습을 다카노는 책의 마지막까지 지켜보고, 노노무라를 혼자 지킨다. 그런 그의 모습을 노노무라를 떠나간 사람들이 부러워하듯이 나 역시, 그의 모습을 현재의 용기없는 내 모습과 비교해보면,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그의 태평한 성격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와세다 1.5평 청춘기]에서 만난 사람들과 벌어진 일들은 내가 경험해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경험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런 일들 뿐이었다.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순수함에 잠시 전염될 수 있었던 시간은 무척 즐거웠고, 기뻤다. 다카노군은 책의 마무리에 못다한 이야기들에 대한 아쉬움을 표한다. 그의 이야기처럼, 언젠가 그가 못다한 이야기들을 들어볼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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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테러리스트
애니 최 지음, 정경옥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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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보통 교포2세 혹은 이민자들이 쓴 책은 왠지 어려움과 고난 겪고 꿋꿋하게 일어나 성공한 스토리일 것 같다- 라는 선입견이 무색해진 책이다. 패션테러리스트는 표지 부터 일반 Chic lit 처럼 밝고 명랑하다. 하지만, 내용은 분명 우리 교포들이 겪을 법한 이야기들을 담았다. 분명 애니 최처럼 이민가 생활하면서 한국 문화와 맞부딪히면서 이렇게 재밌고 웃긴 에피소드들도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한국문화를 대표하는 듯한 어머니와 미국문화를 대표하는 듯한 애니의 충돌과 화합 등을 크게 다루고, 그에 곁가지로 다른 가족들과 친척들의 이야기도 담고 있다. 제목에서도 나왔듯이 옷입는 방법, 채식주의 등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이 재미나게 펼쳐진다. 일부는 문화적 차이에서 발생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부모와 자식관계는 다 비슷비슷한 법인지, 엄마와 나의 모습이 떠올라 킥킥대면서 읽었다.

책의 도입부분은 책이 너무 가볍고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닌가 걱정스러웠는데, 책이 진행될 수록 맛깔스럽게 진행되는 이야기에 안심했다. 설악산에 간다거나, 큰절 올리는 법을 배우는 에피소드는 나와는 좀 거리가 멀었지만,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받아쓰기를 매일 연습해야했던 이야기들은 충분히 공감이 갔다. 왜 내가 연습하면 안되고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지- 도무지 거역할 수 도 없다.

솔직히 패션테러리스트라는 제목과 책내용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서 아쉬었다. 기대와는 조금 달랐지만, 엄마와 딸의 사랑이 팍팍 느껴지는 이야기들은 다른 의미에서 기대를 넘어 재밌었다. 갈수록 힘이 붙는 이야기- 애니와 그녀의 엄마가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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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하 진 지음, 김연수 옮김 / 시공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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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아하게 땋아내린 머리를 가진 표지- 왠지 숨막히는 듯한 고전미에 단숨에 매료되었다. 왠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펄벅을 떠올리며 이 책을 펼쳤다. 이 책은 오랜시간을 기다려 맺어지는 한 연인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기다림 뒤에 숨겨진 또다른 한 여인의 기다림-

그는 머릿 속이 텅 빈듯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질문 자체가 끔찍했다. 그 긴 세월동안 자신이 기다린 것은 안 좋은 결과였다는 소리니까.

군의관인 쿵린은 부모님의 뜻에 따라, 고향에서 수위를 신부로 맞이한다. 그 둘은 딸을 낳지만, 쿵린은 근무지에 따라 같이 살지 않고, 약 18년간의 별거가 시작된다. 그러던 와중, 쿵린은 간호사 우만나와 사랑에 빠지고, 쿵린은 수위와 이혼하기 위해 18년이란 세월을 기다리게 된다. 그동안 수도 없이 이혼을 시도하지만 매번 실패하고 결국 배우자의 동의없이도 이혼을 할 수 있는 18년이 지나고, 쿵린은 만나와 결혼한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 긴 기다림의 끝은 의외의 결과였다.

이 책은 쿵린의 시각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내게 더 흥미로웠던 사람은 우만나와 수위였다. 수위는 내가 알고 있는 대지의 오란과 비슷했다. 그래서 더 호감을 가지게 되지 않았나 싶다. 무엇보다 그 둘은 모두 한 남자로 인해 오랜 세월과 많은 고통을 감내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그들은 결국 한 남자를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했고, 기다림의 끝이 무엇이든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에 비해, 쿵린은 너무 나약해 보였다. 기다림이 지속되는 내내 그의 행동도, 기다림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태도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책은 정말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운 문체로 이야기를 참 담담하게 풀어나갔다. 쿵린의 나약함이 종종 드러나긴 했지만, 화자는 균형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저자의 문체가 무척 인정받고 유명하다던데, 그의 다른 작품은 원서로 읽고픈 욕심이 든다. 

기다림이란 제목부터 왠지 질겁하여 마음이 질질 늘어지는 느낌이 들 수도 있으나, 그들의 마음과는 달리 책은 금세 읽혔다. 다만, 그들의 기다림의 끝이 현실적이면서도 씁쓸했다. 어쩌면 우리 모두 무언가를 기다리는지도 모르고, 그 결과가 쿵린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사랑을, 더 나은 직장을, 좀 더 많은 돈을, 여유를 찾고 기다린다. 하지만, 우리의 기다림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항상 그렇듯 결과는 과정보다 우선시 되지만, 그들의 기다림 역시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하며 씁쓸함을 털어버린다.


그 세월동안 너는 몽유병자처럼 무기력하게 기다리기만 한거야.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끌려가면서 말이야. 외부의 압력에, 너만의 환상에, 스스로 내면화한 규정에 끌려가면서 좌절과 수동적인 태도때문에 너는 잘못된 길로 간거야. 자기한테 허용되지 않은 일이야말로 마음 속 깊이 원하는 일이라고 믿으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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