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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슬럼버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ㅣ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평화의 시대에는 누구나 정론을 뱉어낸다. 인권을 주장하고 정공법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폭풍이 일면 이성을 잃는다. 무엇이 옳은지 생각할 여유조차 없이 소동에 휩싸인다. 다 그런법이리라. (P.69)
이사카코타로- 사신치바로 만나 마왕을 거쳐서 골든 슬럼버까지 왔다. 그리고 읽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의미도 없다고 생각했던 일들, 하루가 늘 다른 하루처럼 지나가던 한 남자의 삶이 느닷없이 예상 밖으로 흘러간다. 도대체 그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일본의 젊은 총리가 센다이에서 피살당한다. 최첨단 보안 시스템이 도입된 곳에서 곧 한 사람이 범인으로 지목되고- 이 책은 그렇게 3일 동안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다. 독특하게 사건의 시작, 사건의 시청자, 사건, 사건의 석달뒤, 사건의 20년뒤가 시간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목차로 제시된다. 과연 그 사건 속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08년 일본 서점대상 수상작이고, 이사카 코타로의 대표작이라는 선전문구를 내세운 책. 한 남자의 이야기면서도 우리의 모습과 비슷한 그의 주변사람들과 우리의 국가와 흡사한 그의 국가까지 다루는 책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아무리 큰 사건이 터져도, 회사에 가고, 일도 하고 말이야. 전기 뱀장어 구경도 가고. 전쟁이 터졌다고 해도 결국 그날 미팅은 그대로 추진될 것 같고. 개인 생활과 세계란 완전히 별개가 됐어. 사실은 이어져있는데 (P.153)
마왕에서도 그러했지만 이사카 코타로는 사회를 좀 더 비판적으로 바라봐 대중을 일깨우려는 개개인의 노력과 모습, 그리고 그에 비해 너무나 크고 무겁게 다가오는 권력 집단들을 다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적인 재미인 사건의 흐름을 적절하게 이끌어나간다. 좋은 소설을 읽으면 감동과 함께 현재의 내 모습을 반성하고, 변화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마치 직설적인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과 같지만, 보다 더 마음 깊숙한 곳을 움직여 만들어내는 변화가 아닐까 싶다.
눈물을 흘리는 슬프도록 아픈 표지. 온 세상을 적으로 돌린 한 남자의 아픔이 절절히 느껴진다. 만약 내가 그였다면, 그의 친구였다면, 그의 부모였다면- 읽는 내내 내 자신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다른 인물들에 대입시켜 머리 아프게 고민해보았다. 하지만 그를 지나치는 대중들의 모습이 나와 가장 가깝지 않았나 싶다. 쫓기기 전의 그가 그랬듯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말이에요. 멍하게 있는 동안에 법률은 만들어지고, 세금이나 의료 제도는 바뀌고, 그러다 또 어디서 전쟁이 나도 그런 흐름에 반항할 수 없도록 되어 있잖아요. 좀 그런 구조라구요. 나 같은 놈이 멍하게 있는 사이에 자기들 마음대로 다 밀어붙이죠. 전에 책에서 읽었는데, 국가란 국민의 생활을 지키기 위한 기관이 아니래요. 듣고 보니 그렇더라구요. (P.400)
지금 우리나라는 쇠고기 파동, 북핵 문제 등으로 그 어느때보다 뜨거운 사회적 이슈들을 안고 가고 있다. 그러나 나는 당장 야근과 윗 상사의 한마디에 안달복달하는 지극히 평범하고 무지한 시민일 뿐이었다. 이런 식으로 정말 개인과 세상이 연결되어진 곳에서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나도 모르는 새에 내 삶의 큰 방향은 틀어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마왕을 읽었을 때도 그랬지만, 참 무지하고 무관심한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마지막으로 그래도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간이 가진 최대의 힘, 무기에 대한 작가의 생각에 무척 공감할 수 있어 기뻤다. 예전 '잠수종과 나비'를 보고 인간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건 유머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마음이 여유를 아직은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도 역시 그와 같은 생각을 읽을 수 있어 반가웠다.
인간의 최대 무기는 습관과 신뢰라고 했던 모리타의 말을 떠올린다. 야, 모리타, 그게 아니라 인간의 최대 무기는 오히려 웃을 수 있다는 것 아닐까? 그렇게 대꾸해주고 싶었다. 제 아무리 곤경에 빠지고 비참한 상황에 놓여도, 그래도 만약 웃을 수만 있다면, 분명 웃을 수 없겠지만, 웃을 수만 있다면 무언가가 충전된다. 그것도 사실이다. (P.455-456)
이 책을 덮고도 난 여전히 웃기보다는 조금 무뚝뚝한 표정으로 회사 일에 임할 것이고, 또 일상생활에 치이다보면 결국 또 사회일을 알아가는데 조금 게을러져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이 책을 다시 펴볼 때마다- 온 세상이 적이 되어버린 한 남자를 생각하면 뜨끔하며 다시 노력을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생각의 변화와 감동을 동시에 전해준 이책. 무엇으로도 정의하기 힘든 이 책- 만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