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러포즈 없이도 행복해지는 법

프러포즈는 필요없어
나카무라 우사기 지음, 류지연 옮김 / 책이좋은사람 / 2007년 9월

 
사실, 나카무라 우사기의 이름은 눈에 익었다. 그녀의 쇼핑이력에 관련한 다른 책들을 섭렵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평범한 학생이었던 나는 내가 상상도 못하는 쇼핑을 해대곤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혀를 차기도 하고 또다른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않았나 싶다. 그랬던 그녀가 우리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소설을 들고 내 앞에 나타났다.

최근 30이 가까워진 노처녀들의 고군분투 이야기는 이제 너무 많이 들어서 질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프러포즈는 필요없어]의 치즈루는 그래도 밝고 힘을 주는 캐릭터다. 거기다가 마음에 콕콕 박혀오는 대사와 묘사는 얼마나 절묘한지. 하나 하나 적다보니, 수첩 한페이지가 빽빽할 정도다.

각자의 삶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나는 계속 발걸음을 옮겼다. 어떤 인생을 선택해도 행복한 때와 그렇지 않은 때가 있다. 그 당연한 사실을 나는 자주 잊곤한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 행복하건 아니건 자신이 선택한 길이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음에 긍지를 가지자. 자기가 선택한 인생을 걸어가는 자만의 그 긍지를 가질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들의 병은 꽤 깊다. 떨릴 정도의 행복감도, 가슴을 쥐어뜯을 만큼의 절망감도 없는 하루를, 그저 막연히 흘려보내고 있는 가벼운 만성우울증의 여자들

이 책은 주인공이 남자친구에게 차이면서 시작된다. 열혈 커리어우먼인 치즈루는 그동안 사귀어온 남자친구의 양다리를 발각해냄과 동시에, 이별을 통보 받는다. 그녀는 좌절하지만, 그에 지지 않고 자신의 삶을 찾아 힘을 내어 앞으로 나아간다. 일이든, 결혼이든 여기 나오는 모든 이들은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진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서로를 부러워하고, 자기 합리화를 끊임없이 한다. 이 모습이 어떻게 남의 모습이라 생각하고 모른척 할 수 있겠는가.

서울이든, 도쿄든, 런던이든 현대 일하는 여성들의 불안함은 어디에서나 공통적인가보다. 세계곳곳에서 이런 소설을 찾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 증거 아닐까. 어찌보면 한심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책들을 통해 우리 역시 그나마 우리의 머리를 식히며 한발더 떨어져 내 인생을 바라보고, 엉뚱한 꿈도 꿔보는게 아닐까 싶다.

[프러포즈는 필요없어]는 가볍고 즐겁다. 분명 나와 크게 다를 바 없이 불안해 하는 그녀가 책 안에 있지만, 치즈루의 친구가 말했듯 우리는 그녀의 모습에서 힘을 얻는다. 피곤한 일상... 화장실에서 킥킥대면서 읽은 그녀의 모습은 적어도 오늘 하루 나를 구해줬다.

드라마보다 더 재밌는...

이산 정조대왕 1
이병훈.최완규 기획, 김이영 원작, 류은경 지음 / 디오네 / 2007년 9월

지난 한달간 너무 바쁜 나머지 유명하다고 하는 사극, 드라마는 본방은 물론 재방송도 꿈도 못 꿨다. 오만석이 나오는 '왕과나'는 그래도 초기에 몇편 봤었는데, '이산'은 아예 시작도 못 봤다. 그러던 와중, 소설을 접하게 되었다. 사실 드라마의 인기를 업고 나오는 책들에 대한 불신이 있기에 썩 기대하지 않으며 이 책을 펼쳤다.  

[이산 정조대왕]은 1,2권으로 나뉘어져는 책으로, 드라마를 기반으로 쓴 소설이었다. 그만큼 드라마에 충실하게 쓰여졌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잠깐 중간부분을 본 드라마와 매우 진행이 똑같았다. 놀라웠던 것은 나의 기대와는 달리 흡인력, 진행속도도 드라마 못지 않게 흥미진진하고 재밌었다. 1권은 어린시절이 주를 이루고, 끝부분에서만 어른이 된 정조대왕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사도세자의 이야기와 함께 1권 마지막 부분에서는 마음이 짠해 울뻔했다.

현재 드라마 '이산'이 인기를 얻으며, 정조대왕 이야기라고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은 드라마 원작이라고 당당하게 나서고 있다. 얼핏 못 미덥기도 하지만, 그 인기에 부끄럽지 않게 무척 재미있게 이야기를 끌어간다. 어린 산과 대수, 송연의 이야기도 어린아이들답지 않게 흥미진진하다. 무엇보다 사도세자와 산 그리고 영조의 관계는 말로 못할 정도로 긴장감을 유발 시킨다. 한 때 누그러지나 싶으면 다시 땡겨지는...그러한 관계가 1권의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싶다.  

아직 1권 밖에 읽어보지 못했지만, 2권에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마냥 궁금하다.
오래만에 드라마를 보듯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한 재밌는 역사 소설을 읽었다.
기왕 내친김에 드라마도 보고 싶은데, 우선 책부터 얼른 읽어 호기심을 채워야겠다.

당신 옆의 과장이, 대리가 다르게 보일겁니다.

마돈나
오쿠다 히데오 지음, 정숙경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10월

 
오쿠다 히데오작 [걸]을 무척 재밌게 읽었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남성위주의 위계질서가 견고한 조직에서 소수인 여성들이 어떻게 적응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잘 그려낸 소설이어서 많이 공감하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화도 내면서 읽었다. [마돈나]는 [걸]의 대칭되는 듯한 소설이다. 남자위주의 조직에서 남자들이 어떻게 느끼고, 행동하고, 말하고, 고민하는지를 잘 그려냈다.

전체적으로 글들이 모두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졌기에, 오쿠다 히데오 특유의 웃음이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그 아쉬움은 섬세한 감정묘사와 재미난 대사들로 채워진다. 이 책에는 총 5가지 이야기가 실려있다. [마돈나], [총무는 마누라], [댄스], [보스], [파티오]... 변화하는 회사생활에서 직장인들이 느낄법한 감정을 잘 표현해내었다. [마돈나]에서는 후배사원을 좋아하게 되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댄스]에서는 회사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는 동료 혹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아들을 부러워하거나, 걱정하는 마음을, [보스]는 동갑인 여자상사를 바라보는 관리직의 마음이 잘 드러난다. 다 한편으로 있을법한 일이라고, 내 옆의 동료가 겪고 있지는 않을까라고 생각하게되는 에피소드들이었다.

오쿠다 히데오는 여전히 재치있는 대사로 우리를 즐겁게 한다. 마돈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어쩌면 이렇게 사람 마음을 잘 찝어낸 대사를 썼을까, 이런 묘사를 생각해냈을까 감탄하게 된다. 처음에는 변화하는 생활에 적응되지 못하고, 자신의 아들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화만 내는 이들을 보고는 씁쓸해하기도 했지만, 결국 그들의 방법대로 화해 하고 이해하고 다시 일상을 이어가는 모습이 반가웠다.

마돈나에 등장하는 아저씨들은 지금 바로 내 옆에서 컴퓨터로 스포츠 뉴스를 뚫어지게 보는 대리님일 수도, 기분좋게 술한잔 하자며 호기롭게 외치는 과장님일 수도 있다. 우리가 모르는 동안, 아니 알면서도 잊고 있는 동안, 이들도 수많은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소소한 일상들을 잘 정리한 일기장을 훔쳐본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그들을 조금은 다르게 볼 수 있게된 것 같다. 조금더 귀엽고 가까워진 느낌이랄까~

그녀 솔직히 자신을 드러내다.

리진 1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5월

그녀, 특이하다.

왠지 갑갑하게만 살았을 것 같은 조선의 여인들. 그러한 여인들 중, 남자도 가기 힘들었던 프랑스에 발을 디뎠던 여인이 있었다. 조선의 궁중무희, 리진이었다. 그녀는 한국에 주재하던 프랑스 공사와 사랑에 빠져, 그와 결혼하고, 프랑스로 건너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녀는 조선의 다른 일반적인 여인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그녀, 사람들을 만나다.

프랑스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그녀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녀의 남편인 콜랭을 시작으로, 모파상 등 파리 사회의 유명 문화인사들과 두루두루 교류를 나눈다. 또한 파리의 유일한 유학생 홍종우를 만난다. 한국에서는 그녀와 애틋한 정을 나누던 강연이 있고,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인 명성황후가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그녀를 만들고, 변화시킨다.

그녀, 머무르다.

그녀가 머물렀던 궁중, 파리... 그 어느 곳에서도 그녀는 궁색하거나 구차하지 않았다. 궁중에서는 누구보다 사랑받던 무희였고, 인정받는 공사와 결혼하여 건너간 파리에서도 그녀는 누구에게나 사랑 받는 아름다운 문화인이었다. 잘못하면 초라할 수 있었던 조선의 무희는, 그녀의 매력으로, 파리가 아닌 세계 어디에서도 당당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그녀, 나와 조우하다.

이 책은 일반 조선여성과는 다른 삶을 살았던 궁중무희인 리진의 삶을 다루고 있다. 작가는 100년 전의 여성을 마치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사람인 마냥, 나에게 소개해주었다. 답답해 하던 조선을 떠나고, 파리에서 즐기다가, 다시 향수병에 걸려 한국을 그리워하고...언뜻 보면 변덕스러워 보이는 그녀의 감정은 현재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변화와 크게 다르지 않아 친근감을 준다.

이 책은 그녀를 사모하는 수많은 남자들을 다루고 있지만, 그 누구보다 그녀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아마 명성황후가 아닐까 싶다. 흡사 어머니와 같은 존재로 이 책에 등장하는 명성황후는 그녀의 인생 한걸음, 한걸음을 바꾸어 놓는 존재이다.

언뜻 보면 너무 약해 보이고 변덕스러운 그녀는 어찌 보면 가장 능동적으로 그녀의 인생을 받아들이고 결단을 내리지 않았나 싶다. 뒤돌아봄 없이 파리로 향하고, 다시 돌아와 자신의 운명을 받아 들인다. 그러한 그녀의 모습이 책을 읽는 내낸 오히려 더 애달프게 마음에 다가온다.

현재에도 세련되게 느껴지는 그녀의 모습, 파리의 생활, 조선 궁중에서의 생활- 화려하고 변화가 많은 장소에서 그녀는 우리를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 정신없이 그녀와 함께 한 생애를 살고 나면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아름다움을 그리워 하게 된다.

그녀, 떠나 보내다.

그녀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냈듯- 이 책을 덮으면, 우리 역시 그녀에게서 멀어진다. 하지만, 그녀가 그녀의 삶을 통해 보여 준 삶에 대한 자세와 태도는 끊임없이 우리를 따라다닐 것이다. 분명 고달프고 힘든 삶이었음에도, 아니 오히려 그런 삶이었기에 더 진한 향기를 남기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강력추천 : 지금 일분이 간절해질지도 모릅니다.

일 분만 더
하라다 마하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9월

 
당신의 일분 놓치지 마세요-

이 책을 덮고 한숨이 나왔다. 나와 아이의 모습이 닮아서였을까? 소중한 걸 알면서도, 다른 사소한 이유로 그 소중한 것들을 외면하는 모습이...

이 책을 읽으면서 눈물이 나왔다. 질투가 났다. 리라를 가진 아이가 부러워서-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인 아이가 부럽고, 그녀를 기다리는 리라가 안타까웠다.

[일분만 더]... 이 책을 폈을 때는 나는 요즘 유행하는 Chic-lit이나 독특한 일본 연애소설을 상상했었다. 특히 따뜻한 색이긴 하지만, 분홍색과 유행할법한 일러스트...일에 열중하는 여자, 왠지 미진한듯한 남자친구- 너무 평범한 구성이었다. 등장하는 강아지 역시 특별할 것 없는 소품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특별하다. 훨씬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주인공 아이는 프리랜서인 남자친구 고스케와 골든리트리버인 리라와 함께 산다. 일에 치여 살던 그녀는 결국 남자친구와 헤어지게 되고, 리라와 둘이 살게 된다. 하지만 일에 열중인 그녀에게 둘의 삶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그러던 중, 그녀는 마음아픈 일을 겪게 된다. 지극히 평범하고 진부할지도 모르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일에 치여사는 아이에 우리의 모습이 투영되어, 리라에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여서 마음이 아파진다. 누구인들 자신의 삶에 지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 한번 입히지 않으면 살겠는가.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따뜻하다. 동병상련인 편집장, 후배 나쓰코, 헤어진 남자친구 고스케, 도그런의 친구 유리... 동물이라는 사람을 말랑말랑하고 부드럽게 만드는 주인공을 가운데 둬서인지... 이 책은 모두 착하고, 서로를 배려한다.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사람들도, 일어나는 사건들도 하나같이 소소하게 행복을 느끼게 하고, 읽으면서 만족감을 준다. 거기다가 작가가 던져주는 대사, 마음에 기쁨이 가득차 오르게 한다.

최근 한참동안 일에 치이고, 정말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 내가 가장 힘들고, 다 나한테 잘못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나에게 틀렸다고 말한다. 아이가 고스케의 소중함을 느끼듯, 나 역시 다 잃고 그 소중함을 깨달을지 모른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더 따뜻하고, 상냥하게 대해야겠다. 매일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말에 코웃음 치지 말고, 내 소중한 사람들을 우선시 해야겠다. 조용히 마음 먹었다.

날씨가 갈수록 싸늘해지고...먹고 살기 힘들어 빡빡해지는 요즘. 정말 마음 따뜻해진 이야기를 만났다. 올 겨울, 이 책 한권이면 정말 한겨울 따뜻하게 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 강력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