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사용안내서 - 건강한 영성은 건강한 몸에 깃든다
게리 토마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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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몸 사용 안내서


기독교 영성 서적 제목으로 “내몸 사용 안내서”는 꽤 시대에 부응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마치 XXX 사용 설명서 같은 표현이니 말이다. 정작 이런 재미난 표현을 이 책의 원 저자는 모를 것이다. 정작 원저의 제목은 Every Body Matters 이기 때문이다. 그냥 이 책의 부제목이 모든 내용을 설명한다 싶다. 바로 “건강한 영성은 건강한 몸에 깃든다”


Sound Body, Sound Mind!

Sound Mind, Sound Body!

Sound Soul, Sound Body!

Sound Body, Sound Soul!


육체와 정신, 영혼 중 무엇에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서 위의 구호 중에 하나가 선택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이 선택한 제목과 같이 <모든 것은 육체의 정욕이 문제이다>라고 간단히 설명한다.


글쎄, 나도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보고 몸짱도 되고 영짱도 될 수 있지 않나 싶어 꽤 흥미를 느꼈다. 매우 정욕이 가득한 생각이었다. 꿩먹고 알먹고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런 식이니 주객이 전도되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려던 은혜는 온데 간데 없게 된다. 주님께서 제목이야 어찌되었건 내가 영짱이 되기 위한 훈련의 기회를 주시려는데 난 사실 몸짱이 되는 것이 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을 보면 몸짱이 되는 것이 영짱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을 이야기하긴 하지만 근육이 좋은 그런 몸짱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병이 없고 건강하여 영이신 주님께서 거처하시기에 좋은 그릇을 가지란 뜻이다. 예쁜 그릇에 예쁜 음식으로 쉽게 볼 수 있지만, 좋은 그릇에 좋은 음식이 이 책의 내용과 일치한다.


이 책의 절반 정도는 비만이고 과식하며 자기 절제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성경 속의 경고를 이야기한다. 구약시대의 솔로몬 왕의 지혜의 잠언에도 상당히 이와 관련된 말씀이 있다.


사실 성경 속 유대 민족들은 당시에 대부분 가난하였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았고, 광야시기에는 배고픔의 연속이었다. 그런 민족들이 조금 여유가 생기니 먹고 마시기를 즐겨 했고, 게으름에 익숙해져 하나님을 멀리하기에 그들에게 경고를 하신 말씀들이 많이 있다.


현대의 우리는 어떨까? 과거 60~70년대의 어렵고 힘든 시기는 부모님의 시절이었다. 정작 그때를 기억하고 그때만큼 열심히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시절 우리 부모님들은 주일 하루만 쉬셨다. 그래도 병 없이 건강하게 하나님 축복을 받으며 지금의 우리와 이 시기를 만들었다. 그렇게 힘든 시절에는 아프지 않던 부모님들이 지금에 와서 아프기 시작했다. 그때와 같이 절절한 기도도 없다. 우리는 부모님들보다 더 심하다. 욕심은 많아 먹고 마시고 놀기에 바쁘다. 모두 육적인 것에 촛점이 맞춰져 있고 정욕에 익숙하다. 그래서 오늘 날의 우리 기도는 이뤄지지 않는다. 모든 기도와 바램이 정욕에 쓰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을 위한 기도는 이미 사라졌다.


이 책은 건강한 육체가 왜 필요하지를 말한 후에 건강한 영, 바른 영을 갇도록 훈계한다. 말씀에 바탕을 두어 거부할 수 없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과거에 축복받던 부모님 모두 주님과 동행하는 건강한 영을 회복하여야 한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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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맑아지는 낙서 명상, 젠탱글
카스 홀 지음, 김영수 옮김 / 인간희극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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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탱글


마음이 맑아지는 낙서 명상, 부제목이 확 마음에 와닿는다. 낙서만 해도 명상이 된다는 뜻이니깐 말이다. 표지에 나오는 소녀의 하트 그림처럼 책 속에는 하트와 동그라미, 부채살 무늬 등이 수도 없이 등장한다. 모두 낙서이다.


그런데, 낙서치고는 그 정교함과 규칙성이 참으로 놀랍다. 이런 이런, 낙서가 예술로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 설명한 미술책. 다시 보니 이런 설명이 가깝다. 하지만 낙서 조금에 마음까지 평온해진다면야 그저 좋다.


책의 부록으로 예쁜 노트도 포함되어 있다. 낙서, 아니 젠탱글 연습장이다. 벌써부터 나의 두 아들들은 내 책상 위 볼펜통에서 이런 저런 볼펜들을 꺼내 들고 있다. 자기들 스케치북이 이미 여백이 없으니 그 예쁜 공책을 내 놓으란 심사다. 뭐 가족들과 함께 낙서하면서 주말을 여유롭게 보내고자 한 것이 나의 계획이니 그냥 주었다.


아직까지 노트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스케치북 한 권을 일 주일이면 분해시켜 버리는 녀석들이 왠지 이 노트는 얌전하게 다룬다. 나도 노트를 펴고, 젠탱글 책을 폈다. 예전 컴퓨터 그래픽 시간에 만들어본 프랙탈을 연상시킨다. 프랙탈이란 간단히 말해 무한 반복 패턴이다. 자연의 모든 것들은 일정한 흐름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 프랙탈이 그런 걸 상징하는 것 같다. 해안선이나 고사리의 무늬 같은 그림을 무한히 그려서 축소하면 전체 그림의 일부가 된다.


어쩌면 젠탱글도 사람의 마음 속에 오랫동안 유전된 영원, 무한 등의 의식들을 추구하는 낙서이기에 명상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냥 그리는 듯하지만 종국에는 내가 원하는 어떤 대상이나 마음가짐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현재 이루지 못하고 망설이거나 답답해 하는 것이 표현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표출로 인해 좀더 적극적인 태도를 갖게 되는 효과도 있지 않을까 싶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 나는 말을 잘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이 무수히 많았지만 결코 잘 하지 못했다. 그때 생긴 버릇 중에 빈 공책에 낙서를 무의식적으로 하는 것이다. 나도 지금 말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끼어드는 것 같지 않게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마음이었다. 지금도 회의 시간에는 이런 버릇이 있다. 덕분에 졸지는 않는다. 하지만 회의가 끝나면 내 노트는 의미없는 낙서로 인해 정리가 필요하다. 그런 낙서 속에 글씨들도 낙서와 함께 움직이는 그림처럼 보인다.


회의란 대세에 동참하지 못하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나 스스로 생산하는 느낌이다.


젠탱글, 스스로 버릴 수 없는 자신만의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예술로 승화시킨 것은 아닐까? 좀더 미술적 재능과 기술이 가능하다면 이런 젠탱글을 친구나 가족, 연인에게 스카프나 수건으로 만들어 주면 무한한 연의 고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이들과 낙서하는 것이 즐거울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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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응답받는 바른 기도
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즈 지음 / 미성문화원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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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응답받는 바른 기도


참으로 많은 기도 관련 책을 보았다. 꼭 이루고 싶은 꿈과 소망이 있었다. 지금은 그걸 위해 기도하기 보다 하루하루에 감사하며 기도한다. 뭔가를 달라는 기도를 더 이상 할 수가 없다. 너무도 부끄러워서 그렇다. 내가 지은 죄가 점점 쌓여 가는데 나는 뻔뻔 스럽게 늘 요청한다. 하나님께. 예수님께. 주님께.


그런데, 여전히 난 바른 기도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꼭 배우고 싶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항상 기뻐해요. 쉬지 말고 기도해요. 범사에 감사해요’란 말을 속으로 되내이면서 쉬지 말고 기도하는 방법이 있을까 생각했다. 그만큼 열심히 하란 뜻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에는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기도원에 가서 특별 기도를 해야만 뭔가 힘든 일들이 해결되고 큰 일을 할 것 같았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이제는 그런 의무감과 부담감에서 벗어나서 진정한 기도를 할 수 있어 기쁘다.


무엇이 다를까? 이 책에서 말하는 바른 기도는 무엇일까?


우리는 기도를 영혼의 호흡이고 하나님과의 대화며, 매일매일 거르지 말아야 할 것으로 이야기한다. 어떤 이들은 기도와 명상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마치 도를 닦듯 경건하고 바른 자세에서 집중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이 틀렸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본질을 놓치고 형식에 메이는 것 같다.


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즈 목사님은 매우 심플하다. 그의 말씀과 그의 참다운 기도관은 진정 단순하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다. 하나님은 늘 우리와 이야기하길 원하신다. 죄인의 겸손함으로 기도를 멀리하거나 하나님이 두려워 그저 듣기만을 소원해서는 안된다. 죄를 자백하는 것만으로 하나님은 우릴 인정하신다. 스승과 부모님, 형과 누나에게 이야기하듯 하루의 고민과 즐거움을 말씀드리면 된다. 응답이 없다고 포기할 필요는 없다.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시고 양심이 성숙되면 바로 응답을 받게 된다.


그런 응답이 나의 사고가 만들어 내는 것이라 거부할 필요는 없다. 그 크신 하나님 음성을 듣고 싶어했다가 어쩌면 귀가 기능을 잃어 버릴지도 모른다. 내가 한 이 말처럼 우리는 어느 때부터 누군가에게 듣게 된 많은 지식들로 인해 사고가 굳어져 버렸다. 하나님께서 원하는 진정한 믿음보다 내 멋대로의 믿음이 강해져 버렸다.


연세가 지긋하신 신앙 선배님들은 기도를 정의할 때 소망을 풀어놓는 의식으로 말하시는 분이 많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분들 중에 기도의 은혜가 깊은 분들이 많다. 하나님께 요청만 하는 것은 주인과 종이 뒤바뀌는 상황인데 이 분들은 어떻게 은혜받고 소망을 이루는 것일까?


아마도 이야기하는 방법이 다를 것이다. 이것도 주세요. 저것도 주세요. 이것도 해 주세요. 저것도 해 주세요가 분명 아닐 것이다. 아마도 엄마에게 고민을 이야기하듯 나 지금 이런 문제가 있어요.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이런 식이 아닐까?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예수님께 어머니 마리아는 포도주가 떨어졌구나라고만 했지 포도주를 만들어 주렴이라고는 하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 소망은 그냥 현재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이뤄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참다운 지혜를 잘 배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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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의 선물 - 인생의 전환점에서 만난 필생의 가르침
에릭 시노웨이 & 메릴 미도우 지음, 김명철.유지연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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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의 선물

: 인생의 전환점에서 만난 필생의 가르침


사람들은 때때로 가던 길을 멈춘다. 잘 가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되돌아 보기도 한다.


제 때 출근하기 위해 자명종 시계의 알람을 맞춘다. 어느새 일어날 시간이 되었다. 일어나기 싫다. 좀더 자고 싶다. 그래서 시계의 알람을 끈다. 큰 일이다. 벌써 일어나야 할 시간이 1시간이나 지났다. 회사에 지각이다. 눈치가 보인다. 그럭저럭 내 자리에 조금 늦었지만 앉아 일을 시작한다.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 아침부터 왜 이러고 사는지 내게 되뭍는다. 그렇게 오전이 지나고 점심을 먹고 시곤증에 졸고 일어나니 오후가 시작되었다. 회의가 있어 열띤 토론을 벌이고 보니 배가 고프고 커피가 땡긴다. 간식이며 커피며 수다를 떨다보니 어느새 오후 5시이다. 적당히 하던 일을 정리하고 퇴근 준비를 한다. 오늘은 상사의 잔소리를 듣지 않은 것만으로 하루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뭔가 이것이 아닌데...


이런 때가 있다. 아니 이런 때가 항상이다. 초심을 잃었나 보다. 나에게 뭔가 자극이 되고 나에게 동기부여를 해 줄 뭔가가 누군가가 여건이 필요한데 없다. 그냥 아내와 아이들 생각에 그저 중간만 하면 된다 싶다.


이렇게 살던 사람이 어느날 심장마비로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겨 살아난다면 어떨까? 아마 정말 하고 싶었던 일들을 시작할지도 모른다. 망설이던 것들을 거침없이 하게 될지 모른다. 그 필요하던 동기부여와 여건이 제공된다. 하루하루가 감사하다. 생각해 보면 심장마비는 내게 큰 선물이다.


그런데 여기 어느 노 교수가 있다. 심장마비로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 그는 그 순간에도 이렇게 죽어도 여한은 없다 생각한다. 다만 자신이 쓰러진 주변의 여건과 사람들에게 감사해 한다. 내 바로 옆에 심장제세동기가 있었고 쓰러진 나를 바로 발견하여 심폐소생을 실시한 사람이 있었다. 이런 놀라운 경우는 세계 어디에서도 있기 어려운 1%의 기적이다. 그간 내가 깨달은 삶의 기혜를 나누고 떠나야 겠다.


다르다. 매일매일 허우적대다 죽기 억울해 욕을 하며 죽는 사람도 있는데 다시 시작하는 덤으로 받은 인생을 참으로 값지게 사용하려 한다. 그의 지혜를 나도 전하고자 한다.


이 책은 대화체 문장들로 가득해서 읽기가 참 쉽다. 심지어 책의 차례만 보아도 모든 내용이 파악된다. 잘 정리된 강의노트와 같다. 저자들과 저자의 스승인 하워드씨가 마침 교수이다. 자 간단히 차례를 이야기 해 본다.


1. 지금 걸려 넘어진 그 자리가 당신의 전환점이다.

2. 멈추고, 인생의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시작하라.

3. 위대한 도전자들은 용감한 것이 아니라 단지 용기를 선택했을 뿐이다.

4. 인생은 어려울 때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5. ‘되고 싶은 나’를 향한 삶의 균형 잡기.

6. 당장의 만족보다는 ‘남기고픈 유산’을 향해 나아가라.

7. 당신을 노리고 있는 달콤한 착각들.

8. 당신의 능력은 ‘세상의 평가’보다 더 높은 곳에 있다.

9. 당신에게 맞지 않는 신발은 과감히 버려라.

10. 그대는 그대의 삶, 그대로를 살아라.

11. 당신 인생에 투자할 진정한 멘토를 찾아라.

12. 당신을 위해 구덩이로 뛰어들 사람은 누구인가?


이상이다. 구지 이 책을 사서 보면 좋지만 이 차례만으로 자신에 대해 깊은 성찰할 기회를 갖지 않을까 싶다. 나 또한 깊은 성찰의 기회에 특별히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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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 헌터.금요일밤의 순례자
이반 로딕 지음, 박상미 옮김 / 윌북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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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헌터 – 금요일 밤의 순례자


작년 봄이었던가 이 책의 1편에 해당하는 페이스헌터를 처음 마주했다. 사람들의 표정과 옷차림이 주된 내용이라 생각된 책이다. 그런데 인위적이지 않고 매우 자연스러웠다. 또한 사람들의 일상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평상시에도 남다른 그런 사람들의 모습이다. 때로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평범한 복장일 수 있는 그런 모습이지만 작가와 같은 이방인들 눈에는 분명 색다른 모습들이었다.


그런 작가의 또 다른 작품집인 <금요일 밤의 순례자>가 있어 호기심에 또 한번 마주하게 되었다. 제목과 표지 사진으로 다소 불타는 금요일의 파티 장면을 연상하였다. 그래서 술에 취한 남년들과 약간은 흐리멍텅하고 다리 풀린 얼굴들을 연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나도 모르게 작가의 순수한 시각을 다소 퇴폐적인 방향으로 기대한 것 같다. 어쩌면 국내 출판사의 작전인지도 모르겠다.


이번 책은 이전 책과 달리 영국 런던에서 출발한 여행 경로가 세계지도와 함께 시작한다. 다시 생각해 보니 작가는 매주 금요일 밤마다 세계 각지로 여행을 떠난 것이 아닌가 추측하게 된다. 그래서 금요일 밤의 순례자가 책 제목이 된 것이 아닐까...


31개의 세계 여러 도시를 다니면서 생기있는 얼굴들을 사진에 담았다. 페이스헌터지만 그의 사냥 대상들에게는 모두 정중한 허락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모두 정확히 사진을 응시하고 있고 미소를 띄고 있다. 그래서 사진 하나하나가 마치 친구를 대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나 또한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고 눈을 마추고 싶다.


작가가 사진을 찍은 시간과 장소는 한정되지 않는다. 밤과 낮, 실외와 실내, 모두 가능하다. 그는 정중한 허락을 통해 매우 개인적인 공간과 모습도 담고 있다. 너무도 개인적인 경우다 싶을 때는 얼굴은 정면을 피했다. 대단한 언변을 가진 달변가가 아닐까 싶다. 이미 세계 곳곳에 유명인사가 되었는 지도 모르겠다.


왜 그 많은 사람들이 이 작가의 블로그에 방문하는지 새삼 이해하게 되는 아름답고 다양한 사진들이다. 각 도시의 얼굴도 담고 있다. 사람 뿐만 아니라 자연과 광고물, 건물 등도 함께 말이다.


이런 사진들을 통해 나도 떠나고 싶고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새로운 곳들이 찾아지는 것 같다. 레이캬빅(REYKJAVIK), 바투미(BATUMI), 키예프(KIEV) 등의 도시가 그렇다. 위치도 낯설고 발음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왠지 그곳은 나와 같은 이방인을 반갑게 맞아 줄 것 같다. 작가와 같이 사진기만 들고 있으면 말이다.


사진을 정신없이 보고 있으면 손에 얼룩이 생긴다. 왠지 다른 사람의 사진에 자국을 남긴 것 같아 얼른 닦게 된다. 이 책속의 사진들은 그렇다. 잠시 다른 사람의 사진을 빌려 보는 기분이다. 몰래 옅보는 기분이다. 하지만 뭔가 마음이 떨린다. 금새 사진 주인에게 돌려 줘야 될 것 같지만 좀더 보게 해 달라고 이야기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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