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맑아지는 낙서 명상, 젠탱글
카스 홀 지음, 김영수 옮김 / 인간희극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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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탱글


마음이 맑아지는 낙서 명상, 부제목이 확 마음에 와닿는다. 낙서만 해도 명상이 된다는 뜻이니깐 말이다. 표지에 나오는 소녀의 하트 그림처럼 책 속에는 하트와 동그라미, 부채살 무늬 등이 수도 없이 등장한다. 모두 낙서이다.


그런데, 낙서치고는 그 정교함과 규칙성이 참으로 놀랍다. 이런 이런, 낙서가 예술로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 설명한 미술책. 다시 보니 이런 설명이 가깝다. 하지만 낙서 조금에 마음까지 평온해진다면야 그저 좋다.


책의 부록으로 예쁜 노트도 포함되어 있다. 낙서, 아니 젠탱글 연습장이다. 벌써부터 나의 두 아들들은 내 책상 위 볼펜통에서 이런 저런 볼펜들을 꺼내 들고 있다. 자기들 스케치북이 이미 여백이 없으니 그 예쁜 공책을 내 놓으란 심사다. 뭐 가족들과 함께 낙서하면서 주말을 여유롭게 보내고자 한 것이 나의 계획이니 그냥 주었다.


아직까지 노트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스케치북 한 권을 일 주일이면 분해시켜 버리는 녀석들이 왠지 이 노트는 얌전하게 다룬다. 나도 노트를 펴고, 젠탱글 책을 폈다. 예전 컴퓨터 그래픽 시간에 만들어본 프랙탈을 연상시킨다. 프랙탈이란 간단히 말해 무한 반복 패턴이다. 자연의 모든 것들은 일정한 흐름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 프랙탈이 그런 걸 상징하는 것 같다. 해안선이나 고사리의 무늬 같은 그림을 무한히 그려서 축소하면 전체 그림의 일부가 된다.


어쩌면 젠탱글도 사람의 마음 속에 오랫동안 유전된 영원, 무한 등의 의식들을 추구하는 낙서이기에 명상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냥 그리는 듯하지만 종국에는 내가 원하는 어떤 대상이나 마음가짐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현재 이루지 못하고 망설이거나 답답해 하는 것이 표현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표출로 인해 좀더 적극적인 태도를 갖게 되는 효과도 있지 않을까 싶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 나는 말을 잘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이 무수히 많았지만 결코 잘 하지 못했다. 그때 생긴 버릇 중에 빈 공책에 낙서를 무의식적으로 하는 것이다. 나도 지금 말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끼어드는 것 같지 않게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마음이었다. 지금도 회의 시간에는 이런 버릇이 있다. 덕분에 졸지는 않는다. 하지만 회의가 끝나면 내 노트는 의미없는 낙서로 인해 정리가 필요하다. 그런 낙서 속에 글씨들도 낙서와 함께 움직이는 그림처럼 보인다.


회의란 대세에 동참하지 못하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나 스스로 생산하는 느낌이다.


젠탱글, 스스로 버릴 수 없는 자신만의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예술로 승화시킨 것은 아닐까? 좀더 미술적 재능과 기술이 가능하다면 이런 젠탱글을 친구나 가족, 연인에게 스카프나 수건으로 만들어 주면 무한한 연의 고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이들과 낙서하는 것이 즐거울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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