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초프 카프라(Fritjof Capra)의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이 이번에 개정판이 나왔다. 아마 호기심이 많은 독서가들은 젊었을 때, 이 책의 이름을 귀로 몇번은 받아 먹었을 것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도 여러 붐을 조성했는데, 긴 과학 전통이 약한 상황에서 서양에 대해 자존심 구기며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사람들에게는 고마운 하나의 메시지였다. 물론 이 책의 효과는 신과학에 대한 관심(국내학자들의 반응이 담긴 연구서 성격의 <신과학운동>에서 물리학자 김두철을 비롯 김용옥, 김용준 형제 등 여러 학자들의 글과 토론을 살펴 볼 수 있다)을 불러일으킨것과 더불어 나중에는 신흥 종교 들의 교리에 이상하게 들어가 양념으로도 종종 쓰였다. 자생적인 이론과 전통이 부족한 그 결핍의 구멍에 최신 과학 이론이라며-우리들과 닮은 것이라며 집어 넣기에 수월했음인지도 모른다. 겉으로만 해석하자면 대개는 비슷해 보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리고 덩달아 초라하고 사이비냄새나는 자신들의 모습을 잠시라도 숨길 수 있었을테니까.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
그러한 부정적인 기류가 있었음을 미리 밝히는 것이 오히려 나을 듯 하다. 왜냐하면 나로서는 그러한 신과학이 뿜어댄 지적 흐름이 단순한 이벤트로 끝났다고 종언하기엔 이르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신과학의 몸통이 계속 불어나길 기대하진 않는다. 하지만 '신과학'이 어느 순간 우리에게 날아와 움푹 팬 그 흔적이, 그 몸통은 검게 탄 불능의 고체가 되었다 하더라도, 흔적에서 새롭게 불붙는 또 다른 차원의 확장과 승화는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범양사 출판사에서는 '신과학 총서'라며 관련 도서들을 꾸준하게 번역 소개했다. 신과학 총서로 수십권이 나왔는데, 꼭 신과학 범주에만 속하는 것들이 아니라서 여러 장르의 과학책을 구경하는 재미가 컸다. 그리고 '과학사상'이라는 계간지를 통해서 철학과 과학이 버무러진 새로운 사상들을 전달했다(나도 몇년 정기구독을 했는데, 받아보는 재미가 쏠쏠했던 기억이 난다). 요새는 그러한 활동이 주춤하는 거 같아 아쉽다.
혼돈의 과학
현대물리학의 위대한 발견들
하느님은 주사위놀이를 하는가?
<현대 물리학의 위대한 발견들>은 뉴턴에서부터 물리학의 6가지 커다란 발견들 즉, 파동, 장 이론, 상대성 이론, 양자 이론 등을 시간 순으로 다룬 책이다. 수학을 몰라도 읽을 수 있게 꾸며졌는데(수식은 거의 드물게 나옴), 이 한권으로 현대물리학에 이르는 어떤 하나의 맥을 짚을 수 있다. <혼돈의 과학>은 책 자체가 매우 독특하다. 책의 앞과 뒤가 '우로보로스의 뱀'처럼 순환하듯 맞물린 구성을 가진다. 장자나 일본 화가 호쿠사이의 파도 그림 등 동양의 것들이 현대 과학의 비유적인 미소로 쓰인다. 특히 앞 부분에 엘리스가 거울을 바라보는데 그 거울에 용이 꿈틀데고 있는 장면이 재미있다. 켄 윌버의 <감각과 영혼의 만남>은 신과학 총서로 나오긴 했지만, 신과학에 어울리는 책은 아닌듯 싶다. 이 책에서 윌버는 합리적인 태도로 현대 사회에 만연한 주류 사상들을 비판한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내가 알기로는 윌버는 신과학에 대해서도 호의적이지 않은 거로 알고 있다.
그 외에도 지구를 거대한 하나의 생명체로 보는 '가이아 이론'으로 한때 풍미했던 러브록의 <가이아>, 프리고진의 탁월한 이론(가령 <혼돈으로부터의 질서>)에 영감을 받아 쓴 에리히 얀치의 장대한 과학 서사시 <자기 조직하는 우주>, 아서 케슬러의 <야누스> 등이 유명하다. 이밖에도 <유전자의 지혜 >, <희망,웃음과 치료 >, <물리학의 근본 문제들 > 그리고 신과학에 직접 속하지는 않지만, 연관지어 볼 수 있는 이언 스튜어트의 <하느님은 주사위놀이를 하는가?> 등 관련 책들이 다른 분야 못지 않게 많이 선보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최근에 이런 책들이 절판이나 품절 상태라 구하기 어렵다. 얀치와 케슬러의 책은 개인의 독창적인 과학에 대한 야심이 느껴지는데, 한번쯤 읽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분야를 좀 더 흥미롭게 맛볼 수 있게 정리된 책으로 <신과학 산책>이 있는데, 대표적인 외국 학자들의 글을 편집-수록해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카프라, 하이젠베르크, 데이비드 보옴, 프리고진, 셀드레이크, 그로프, 바렐라 등 여러 과학자들의 글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창조적인 맴돌이' 제목을 가진 바렐라의 글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런데 이책도 역시 절판이라 요새는 구하기 어려울듯 하다.
놀라운 대칭성 새로운 생물학
자연 현상에서 '대칭성'에 주목, 자연 설계에서 어떤 청사진이 숨겨져 있지 않을까를 탐색하는 <놀라운 대칭성>과 이와 어느 정도 맥락을 같이 하는, 우주의 보편적인 법칙에 관한 <밝혀지는 자연의 신비> 그리고 양자론 등 새로운 과학을 통해 다윈 생물학을 비판적으로 다루는 <새로운 생물학>이 있다. <카오스에서 인공생명으로>는 이번에 새롭게 나왔다. 내가 가진 구판에 비해 거의 100쪽이 늘어났는데, 차례를 보면 6장하고 8장 소제목이 바뀐 듯 하다. 산타페 연구소 과학자들의 '복잡성'에 관한 발견 과정을 이야기식으로 풀어 낸 책이다. 바로 어떤 이론이나 개념에 대한 설명이 궁금한 사람에게는 다소 지루할 수 있는 구성이다. 그러한 것들이 이야기 전체에 녹아 있기 때문에, 특정 부분을 찾아 보기가 까다롭다. 진득하니 처음부터 끝까지 봐야 효과를 볼 거 같다. 책 표지도 이번에 새롭게 바꼈는데, 훨씬 세련되고 나아 보인다. 브라이언 그린의 <우주의 구조>도 그렇고 표지에 푸른빛깔이 강조되는 것이 유행인가보다. 폴 데이비스의 <슈퍼스트링>도 엄밀히 말하면 신과학에 딸려 나올 책은 아닌데 신과학 총서 꼬리표를 달았다. '끈 이론'에 대한 대담 형식의 책인데,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