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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그물 - 살아 있는 시스템들에 대한 새로운 과학적 이해
프리초프 카프라 지음, 김동광 외 옮김 / 범양사 / 1999년 1월
평점 :
카프라는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The Tao of Physics'75)> 이후 엇비슷한 책들을 통해 신과학의 얼굴 마담 역할을 해왔다. 그러한 활동이 기존 진영의 비판도 불러 일으켰지만, 하나의 '지적 사건'임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신과학의 도발성은 그후 점차 주춤해졌지만, 다른 학문 분야의 특정 학자들에게 어떤 새로운 돌파구를 여는 '모멘트' 혹은 참조 역할을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과학이 일시적인 불꽃놀이처럼 사그라들었다고 보는 건 섣부른 판단일 것이다. 아직 그 '전염성'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 책 <생명의 그물>은 카프라의 그 전의 책들보다 좀 더 세련되고 진화된 모습을 갖고 있다. 카프라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이론을 전개해 나가는 탁월함은 없지만, 그러한 뉘앙스들을 겹쳐서 모아 넣는 재주는 뛰어나다고 보인다. 이 책에는 '시스템 이론'이 '생명'과 '지식(인지 과정)'에 걸쳐 여러 눈부신 지식의 알맹이들을 주렁 주렁 매달아 놓는다.
그래서 쟁쟁한 이론과 지식인들을 만나 볼 수 있는데,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흩어지는 구조'의 프리고진에서부터 산티아고 학파?의 마투라나와 바렐라, 그리고 '마음'에 대해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는 베이트슨 등 등 말이다(개인적으로는 에리히 얀치와 아서 쾨슬러가 반가웠지만 너무 짧게 다룬 것이 아쉽다). 여기서 언뜻 알 수 있는 건, 뭔가 새로운 지적 흐름이 발생 했는데 그것을 하나의 분야에 말끔히 담아내지 못하는 버거움, 그로 인해 신과학, 시스템 이론, 생태학, 인지 과학 등이 각자 나름대로 반영하면서 서로를 비추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스스로가 거대한 그물 한 곳에 자리잡은 것처럼 말이다. 너무도 시스템적인 풍경이 아닌가?
'흩어지는 구조'에서 솟아 난 '자기조직'하는 패턴의 '끊임 없는 과정'이 곧 '생명'이자, '앎(인지)'의 과정임을 이 책은 말하려 하는 것 같다. 이를 위해 여러 다양한 지적 알갱이들을 가지고 하나의 즙을 내었는데, 그것이 건강한 지식의 즙인지는 앞으로 또 다른 지적 과정들을 기다려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그 즙을 맛보는 거 자체만으로도 지적 흥분을 자아내기에는 충분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