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딤돌 초등 국사과 세트 4-1 - 전3권 - 국어.사회.과학, 2009년용
디딤돌 편집부 엮음 / 디딤돌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국어, 사회, 과학 3권 세트로 어린이들이 심심하지 않게 볼 수 있도록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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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기운이 살랑거린다. 파란 새싹처럼 싱그러운 책들은 어디서 피어나고 있을까?

 

 

 

 

그리스 문명이 검은 대륙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영향이 컸음을 말하는 책이 있다. <블랙 아테나>. 검고 도발적인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사례들이 동양의 뿌리에 서식하는 심리층들에게 어떤 위안을 줄 순 있겠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결국 흥미로운 주변의 풍경이 되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타당한 증거들이 지식의 표층을 새롭게 장악하리란 순진한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요새는 유행이다. 암울한..

지젝을 읽으면서 가라타니 고진도 함께 읽는데, 상당히 효과적인 '읽기'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중이다. 둘은 비슷하면서도 다른데, 뭔가 기존의 익숙한 지식의 말뚝을 제거하는 '태도 변경'을 독려한다는 점에선 실천적인 면이 있다. 어쨌든, 앞으로 고진을 (독서로써)고집할 생각인데, 그를 비판하기도 한 아즈마 히로키의 책을 하나 발견했다. 우선 이 책,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으로 만족해야겠다. 전에는 몰랐지만, 일본에는 제법 눈에 띄는 (지식) 검객들이 활동한다. 그 검술이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알아주는 모양인데, 우리나라로 눈을 돌리니 참 그렇다.  

 <- 아즈마 히로키에 관심이 있어 찾아보니까, <현대일본사상>이란 책이 보인다.  아사다 아키라의 <구조의 힘>(우리나라에선 <구조주의와 포스트 구조주의>로 나옴)에서부터 나카자와 신이치, 가라타니 고진 등 일본 열도의 지능적 힘줄을 훑어 볼 수 있다. 이상하게 일본 지식인들을 유럽이나 미국 학자들에 비해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들뢰즈 영화 이론에 대한 책은 몇 권 보이지만, 그것을 응용한 것은 찾기 힘들었다. <시각문화의 매트릭스>는 그래서 반갑다.           아마 들뢰즈와 라캉 사이에서 긴장된 읽기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을 터.. 나도 그런가?  들뢰즈의 형, 니체의 짜라투스트라 혹은 차라투스트라가 이번엔 '짜라두짜'로 등장했다. 여태의 번역과는 다른 새로움이 느껴지는데, 왠지 정이가는 니체의 흔적이다보니, 나도 곧 이 책을 손에 쥘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문맥에 맞지 않게도 앞에다 썼다) 라캉이나 지젝, 혹은 고진을 읽으려면 그들의 텍스트 군데군데 곰팡이처럼 따라다니는 제임스 조이스나 바흐친을 회피하기 어렵다. <조이스와 바흐친>이라니.. 두 마리를 하나에 가둔 책이 보인다. 셰익스피어도 결국은 본격적으로 읽어야 할 텐데, 우선 <한 권으로 읽는 셰익스피어 4대 비극 5대 희극>, 이런 책으로 잠시 무마해 볼 생각도 든다. 난 곰처럼 우직하게 읽기보단 요령을 피우니까 말이다.       <언어와 이데올로기>는 전에 <마르크스주의와 언어철학>으로 나온 적이 있다. 왜 원래 제목과 다르게 나와서 헷갈리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난 그것도 모르고, 절판된 이 책을 헌책방에서 열심히 찾았다.

<20세기 서양 철학의 흐름>이라.. 이렇게 종합적으로 모아 놓은 책들은 피했었는데, 요새 돌아가는 사상의 흐름에 점점 둔해지는 기분이다. 철학은 정말 끝없이 유혹하는 덫이 아닐까? 철학은 죽었다고 외치는데, 그것은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죽은 것들이 오히려 더 질긴 오염력을 갖는다. 그걸 안다고 벗어날 순 없는 문제다. 신이 그렇고 종교가 그렇지 않은가?

오늘 책 오디세이에서 좀 동떨어진 분위기의 책 <사라진 신들과의 교신을 위하여>. 제목 참 멋지다. 읽지 않고 괜히 섣불리 판단을 내리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런 책은 우리에게 '태도 변경'을 요청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자극적인 알갱이들, 그 풍부한 껍데기들로 우리를 유혹하는 책이 아닐까? 그래도 이 유혹으로 도피하고/들어가고 싶기도 하다. 모든 책이 전혀 새로운 품종의 씨앗들이라면, 우리의 눈은 곧 두려워할테니까. 세속의 못된 관성을 즐기고 싶은 히스테리 환자들이니까.. 우리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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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색다른 제플린의 초기 연주 모습이 담긴 영상이다.

전체 영상을 보면, 프랑스답게도 방송 진행이 약간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비일상적인 시도들 보여준다. 제플린 멤버들의 패션은 여기에선 좀 남다르다. 원색 계열의 울긋불긋한 복장을 하고 나타난다.

 

카메라가 그들이 무대로 나가는 것을 뒤에서부터 잡는다. 아주 흥미로운 카메라의 시선이다. 주로 뒤와 옆에서 제플린을 잡는다. 날것의 느낌이 난다. 그리고 그 우렁찬 보컬과 싱싱한 연주.. 

관객들의 반응은 마치 클래식 공연 감상을 하는 듯이 조용하고 썰렁하다. 그 당시 이례적인 사운드에 대한 조심스러운 탐색이 아니었을까? 일단 관객들은 즐기기에 앞서 이 새로운 음악에 대한 감상부터 하는 것이다. 비틀즈에 익숙한 분위기에서 제플린의 굉음은 아직 낯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외면이 아닌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고, 점차 그들의 몸에도 새로운 반응점들이 자라난다. 그리고 제플린은 승승장구한다.

곡명은 'Communication Breakdown' 이어서 'Dazed and Confused'가 이어진다. 여기서도 지미 페이지는 활로 기타를 만지작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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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YouTube)에서 발견한 레드제플린 초기 라이브 모습이군요.

곡명은 'Communication breakdown'입니다.

 

이 곡은 다른 블루스에 기반한 제플린 곡과 달리, 빠르고 거침없는 하드락의 본보기를 보여줍니다. 이렇게 속도감을 가진 곡이 제플린에겐 드문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 달라붙은 옷을 입은 것 처럼 훌륭하게 소화해 내고 있군요.

영상으로 이렇게 젊은 제플린 시절의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죠. 특히 보컬인 로버트 플랜트의 모습이 상당히 매력있습니다. 자신만의 컨셉을 잡기 전이라 세련된 맛은 보이지 않지만..

소규모 실내 공연으로 이루어졌는데, 관객들의 모습도 좀 신기합니다. 몇몇은 헤드벵잉을 머리를 살짝 위아래로 끄덕이면서 하는데, 하고 싶은 사람만 스스로 내키면 알아서 하는 분위기군요. 음악에 비해 곽객들의 반응은 정적이지만 뭔가 속으로 음미하는 듯한 표정들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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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크백 마운틴에 출연했던 배우 히스 레저(Heath Andrew Ledger)가 최근에 죽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는 내 짐작보다는 많은 영화에 나왔다. <그림 형제-마르바덴 숲의 전설(2005)>과 <몬스터 볼(2001)>에도 나왔다는데, 이 영화들을 볼 당시엔 그를 몰랐고, 이제서야 그의 출연작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역시 다른 영화들에 비해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그의 존재감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이십대에 그런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좀 놀랍다. 영화 처음에 파트너로 나오는 배우 제이크 질렌홀과 만나는 장면은 약간 어리버리하면서도 은근한 재미가 있었다. 근데, 여기서 약간 뻔질하게 나오는 이 배우(제이크 질렌홀)가 최근 영화 <조디악>에서는 너무도 진지하고 차분한 표정으로 나온다. 배우란 정말 높고 낮은 서로 다른 빛깔의 음을 지니고 다니는 괴물스런 악기?들이 아닐까..

 

 

 

 

 

<와호장룡>으로 유명한 이안 감독의 <브로크 백 마운틴>은 도발적인 주제인, 동성애를 다룬 영화이지만 그것의 자극성에 쉽게 탑승해서 흘러가는 영화는 아니다. 긴 시간 동안 두 남자의 정서가 마치 수채화 혹은 동양화처럼 포개지는 부두러운 점과 선의 미학이 있다. 결국 초점은 두 남자이고, 이들을 가장 자연스럽게 품는 배경은 바로 양들이 풀을 뜯는 한가로운 산 '브로크 백 마운틴'이다. 이 산에서 그들은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지만, 양들 대신 사람들의 눈이 살아있는(타인들의 주시) 마을에서는 그냥 평범한 남자의 모습으로 위장하며 살 수 밖에 없다.  그들은 불쾌하고 이질적인 종자로 낙인이 찍혀서 제거되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여기서의 '거세'는 정신분석학적인 거세가 아니라, 정말 현실적이고 물리적인 폭력이고, 이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 남자들이 더욱 곤혼스러운 것은, 이들은 오리지널 게이들이 아니다. 차라리 그랬다면, 선택은 한적한 곳에서 둘이 같이 목장을 운영하며 오붓하게 살면된다. 물론 여기에도 위험이 있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사회에서는 누구보다 거칠고 남성미가 흐르는 남자들. 미친듯이 날뛰는 황소를 타고, 사무실이 아닌 드넓은 땅 위에서 말을 타고 일하는 이들이, 단 둘의 세계에서는 어쩔 수 없이 고대 그리스의 그 무언가를 되물려 받은 듯한 감전을 느껴야 하는 비극을, 운명을 겪어야 한다. 

이 둘이 게이인가, 양성애자인가?는 어쩌면 중요하지 않다. 그런 일반적인 성적 범주보다는 오히려 개별적인 만남의 사례에 속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에니스(히스 레저)와 잭(제이크 질렌홀)의 만남에서 우연히 점화된 성적 사건이고 그것의 지속이 아닐까?. 이들은 자신들이 게이가 아니라면서 게이처럼 행동한 것 뿐이다.          이런 역설을 가능하게 만든 바탕화면(오브젯)이 바로 브로큰백 마운틴이라는 바다와 같이 고요한 산이었다.

 

이런 아름다운? 영화를 만든, 이안 감독은 <헐크>에서 약간 어긋난다. 헐리우드의 유혹에 장단을 맞추지 말고, 자기에 맞는 영화를 고집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끝으로, 히스 레저의 출연작을 모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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