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이 살랑거린다. 파란 새싹처럼 싱그러운 책들은 어디서 피어나고 있을까?

 

 

 

 

그리스 문명이 검은 대륙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영향이 컸음을 말하는 책이 있다. <블랙 아테나>. 검고 도발적인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사례들이 동양의 뿌리에 서식하는 심리층들에게 어떤 위안을 줄 순 있겠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결국 흥미로운 주변의 풍경이 되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타당한 증거들이 지식의 표층을 새롭게 장악하리란 순진한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요새는 유행이다. 암울한..

지젝을 읽으면서 가라타니 고진도 함께 읽는데, 상당히 효과적인 '읽기'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중이다. 둘은 비슷하면서도 다른데, 뭔가 기존의 익숙한 지식의 말뚝을 제거하는 '태도 변경'을 독려한다는 점에선 실천적인 면이 있다. 어쨌든, 앞으로 고진을 (독서로써)고집할 생각인데, 그를 비판하기도 한 아즈마 히로키의 책을 하나 발견했다. 우선 이 책,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으로 만족해야겠다. 전에는 몰랐지만, 일본에는 제법 눈에 띄는 (지식) 검객들이 활동한다. 그 검술이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알아주는 모양인데, 우리나라로 눈을 돌리니 참 그렇다.  

 <- 아즈마 히로키에 관심이 있어 찾아보니까, <현대일본사상>이란 책이 보인다.  아사다 아키라의 <구조의 힘>(우리나라에선 <구조주의와 포스트 구조주의>로 나옴)에서부터 나카자와 신이치, 가라타니 고진 등 일본 열도의 지능적 힘줄을 훑어 볼 수 있다. 이상하게 일본 지식인들을 유럽이나 미국 학자들에 비해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들뢰즈 영화 이론에 대한 책은 몇 권 보이지만, 그것을 응용한 것은 찾기 힘들었다. <시각문화의 매트릭스>는 그래서 반갑다.           아마 들뢰즈와 라캉 사이에서 긴장된 읽기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을 터.. 나도 그런가?  들뢰즈의 형, 니체의 짜라투스트라 혹은 차라투스트라가 이번엔 '짜라두짜'로 등장했다. 여태의 번역과는 다른 새로움이 느껴지는데, 왠지 정이가는 니체의 흔적이다보니, 나도 곧 이 책을 손에 쥘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문맥에 맞지 않게도 앞에다 썼다) 라캉이나 지젝, 혹은 고진을 읽으려면 그들의 텍스트 군데군데 곰팡이처럼 따라다니는 제임스 조이스나 바흐친을 회피하기 어렵다. <조이스와 바흐친>이라니.. 두 마리를 하나에 가둔 책이 보인다. 셰익스피어도 결국은 본격적으로 읽어야 할 텐데, 우선 <한 권으로 읽는 셰익스피어 4대 비극 5대 희극>, 이런 책으로 잠시 무마해 볼 생각도 든다. 난 곰처럼 우직하게 읽기보단 요령을 피우니까 말이다.       <언어와 이데올로기>는 전에 <마르크스주의와 언어철학>으로 나온 적이 있다. 왜 원래 제목과 다르게 나와서 헷갈리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난 그것도 모르고, 절판된 이 책을 헌책방에서 열심히 찾았다.

<20세기 서양 철학의 흐름>이라.. 이렇게 종합적으로 모아 놓은 책들은 피했었는데, 요새 돌아가는 사상의 흐름에 점점 둔해지는 기분이다. 철학은 정말 끝없이 유혹하는 덫이 아닐까? 철학은 죽었다고 외치는데, 그것은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죽은 것들이 오히려 더 질긴 오염력을 갖는다. 그걸 안다고 벗어날 순 없는 문제다. 신이 그렇고 종교가 그렇지 않은가?

오늘 책 오디세이에서 좀 동떨어진 분위기의 책 <사라진 신들과의 교신을 위하여>. 제목 참 멋지다. 읽지 않고 괜히 섣불리 판단을 내리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런 책은 우리에게 '태도 변경'을 요청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자극적인 알갱이들, 그 풍부한 껍데기들로 우리를 유혹하는 책이 아닐까? 그래도 이 유혹으로 도피하고/들어가고 싶기도 하다. 모든 책이 전혀 새로운 품종의 씨앗들이라면, 우리의 눈은 곧 두려워할테니까. 세속의 못된 관성을 즐기고 싶은 히스테리 환자들이니까.. 우리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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