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당신의 추천 영화는?
그대
빛나는 것이라고 무조건 넋을 빼고 바라보지 마라
그 보잘것 없는 부스러기는 당신의 눈을 기다렸다
그 유혹에, 무심코 그것을 클릭하는 순간
운명의 프로그램은 어김없이 작동한다
대개 뭇사람을 유혹하는, 사람의 내재된 욕망을 은밀하게 꾀는 시스템은
그에 맞는 쾌감을 선사하는데, 그것은 보통의 즐거움보다 몇 갑절 큰 것으로
당신이 원하지 않지만 원하는 타나토스(의 영상)를 선사할지도 모른다
시스템적으로 말하자면, 파국(Catastrophe)이다
...
시스템에서 질서가 더는 감당 못하는 지나친 쾌감은
못된 작은 구멍의 급류에 휩쓸려 빠져 나갈 것이다.
매력적인 여배우 키이라 나이틀리가 세실리아 역으로 나오는 영화 <어톤먼트(atonement)>는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라는 너무도 단순한 말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시각'은 각 개인에게는 너무도 사실적이라 하더라도, 우리 모두에게 다 그러한 것은 아니다. 각 유기체의 독특함 만큼이나 마음의 작용도 미묘한 차이들이 있다. 그래서 사람 사는 세상에는 온갖 오해들이 소울 메이트가 꿈꾸는 투명한 소통의 다발들을 부지런히 오염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어린 소녀가 있다. 브리오니라는 이 소녀는 창을 통해 저 아래에서 언니와 젊은 일꾼의 묘한 행동을 우연히 보게 된다. 짧은 무성 영화같기도 한 장면인데, 두 인물의 모습은 극단의 감정이 실렸는지 동작이 크고 거세다. 그리고 물에 옷이 흠뻑 젖은 여자의 모습에서 성적 코드는 무리없이 자리잡는다. 어떻게 보면, 두 연인의 감정싸움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감정이 복받쳐 씩씩 거리는 이 여자가 바로 세실리아고, 젊은 일꾼은 그래도 명문 의대를 다니는 장래가 유망한 로비라는 청년이다(뭐 우리나라 드라마로 치자면, 사장집에 얹혀 사는 공부를 잘하는 운전기사의 아들 정도..).
영화는 친절하게도 소녀의 시선에 잡혔던 광경을 다시 한번 '실제는 이러했다'는 식으로 보여준다. 사실?은 아직 두 남녀는 서로 시큰둥한 사이였고, 세실리아가 오빠가 집에 오는 걸 환영하기 위해 연못에서 꽃병을 씻어 꽃을 넣으려고 하는데, 로비가 옆에서 도와준다고 설치다가 작은 사고가 난 것이다. 꽃병에서 살짝 작은 조각이 떨어지면서 연못에 풍덩 빠져버린다. 그 꽃병을 건지려고 세실리아는 물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이고(그래서 물에 흠뻑..), 그리고 격분해서 로비를 신경질적으로 밀치고 집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러니까 브리오니가 창을 통해 불확실하지만 대충 받아들인 인상하고는 많이 어긋난 이야기다. 즉 방의 창문은 이 어린 소녀에게는 하나의 필터 역할을 한 것인데, 그것은 그녀의 마음 속에서도 동시적으로 하나의 결론을 도출하는 오해의 필터를 제공한다. 하지만 어쨌든, 그녀는 스스로 미진하지만 하나의 이해에 도달한 것이다.
하필 왜 그런 인상을 받았을까? 순전히 제한된 정보로 인한 우연이라고만 볼 수 없는게, 영화를 계속 보면 알겠지만, 과거에 이미 브리오니의 마음에는 그런쪽으로 흘러갈 만한 싹(로비에 대한 감정)이 뿌려져 있었다.
벌써 두시가 넘었다. 나머지는 내일 써야지.
자기 전에, 이 영화의 원작이 바로 이언 매큐언(Ian McEwan)의 속죄(Atonement)라는 소설이다. 아직 소설은 보지 못했지만, 영화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느낀 건, 어떤 우연의 짧은 순간에 잠복해 있는 운명의 갈래질에 대한 묘사가 꽤 섬세하고 순발력이 있는 거 같다. 그래서 아주 커다란 사건이 아니더라도, 그 마디 마디를 잇는 운명의 힘이 소리 없이 보는 사람의 가슴에 두터운 흔적을 남긴다. 그래서 결말이, 아니면 늙은 할머니가 된 소녀의 고백이 설득력을 갖는지도 모르겠다.
이언 맥큐언(이안 맥이완?)의 소설들.
많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