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들>을 리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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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들 - 비밀스러운 종교의 역사
에두아르 쉬레 지음, 진형준 옮김 / 사문난적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신비주의에 관한 책이면서도, 저자 스스로가 신비주의 태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즉 신비주의라는 대상을 객관적 거리에서 살피는 일반 책들과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최근에 우리가 접하기 힘든 매우 이질적인 서술 방식을 보여주는데, 마치 인문학의 원시적인 형태가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한다.
하지만, 이 책이 약 100년 전에 나오기는 했지만, 같은 시기 프랑스 다른 사상가들의 책, 가령 베르그송의 책들이 엄격한 형식으로 선을 보이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역시나 이례적인 모습을 가진 책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접신론에 입각한 신비주의를 옹호하는데, 자신도 이 책에 마치 접신을 하듯, 지나친 몰입 상태로 흘러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객관적인 자료를 가지고 어떤 빈 곳을 개연성을 가지고 채우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주관적인 상상력으로 거리낌 없이 색을 칠한다. 그래서 일반 서술의 형태로 나아가다가, 어느새 소설처럼 바뀌는 '텍스트의 변신'이 있다. 여기가 아까 말한 어떤 원시적이고 엄격미가 떨어지는 텍스트의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러니 개인적으로 이 책의 내용보다는 오히려 서술방식, 저자의 심리 태도를 텍스트 차원에서 연구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이 책은 라마, 크리슈나 등 인도의 신비주의와 헤르메스, 오르페우스 등 서양 신비주의의 기둥을 포함한다. 그리고 모세와 예수라는 서양 종교의 뿌리와 신비주의자이면서 고대 위대한 철학자인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을 다룬다. 거대하게 여러 신비주의를 모은 것 같으면서도, 그렇다면 왜 불교나 이슬람을 뺐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게 한다. 저자는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신비주의를 마치 궁극적으로는 하나이지만 현상적으로는 다른, 역시나 신비주의적인 시각에서 바라본다.
피타고라스 부분이 의외로 양이 많고, 플라톤은 상대적으로 적다. 마치 플라톤은 전체 흐름에 생뚱맞게 끼어든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전체적으로 책의 구성이 짜임새가 덜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 당시 이단 취급을 받았다고 하는데, 예수 부분에서 성령 잉태가 아니라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남을 인정하는 듯한 것을 볼 때,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겠다.
전체적으로 저자의 비판적이고 합리적인 모습을 보기 어려웠지만, 가끔 예리한 시선을 발견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불규칙적인 돌출 몇 개가 책의 큰 흐름을 역전시키기엔 역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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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옛 선지자들이 이미 초월적 진리들을 깨우치고 있었다. 브라만교도들은 전생과 후생의 열쇠까지 발견했으며 윤회의 법칙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저세상에 너무 깊이 빠져 영원한 존재를 응시하고 명상하다가 그것의 지상에서의 실현인 개인적 사회적 삶을 등한시하였다. (p.5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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