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화가의 몰락 
어느덧 렘브란트의 인생에도 어둠이 깊어집니다. 렘브란트가 야간순찰을 그린 1642년, 부인 사스키아가 갑자기 세상을 떠납니다. 아들 티투스가 한 살도 되기 전에 아내를 먼저 떠나 보내면서 그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합니다. 티투스를 돌보려고 고용한 보모와 관계를 맺으면서 법정 소송에 시달리고, 밝고 화사한 이탈리아 고전주의 화풍으로 유행이 바뀌면서그림 주문마저 끊깁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애인 헨드리케마저 1663년에 세상을 떠나고, 외아들 티투스도 렘브란트보다 한 해 먼저 숨을 거둡니다.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1656년 50세에 접어든 렘브란트는 개인파산을신청합니다. 전성기 시절에 초호화 저택을 매입했다고 말씀드렸죠. 이 저택은 4분의 1만 렘브란트 소유였습니다. 잔금을 연 5퍼센트씩 나누어 갚는 조건으로 계약했거든요. - P440

렘브란트, 클라우디위스 시빌리스의 음모, 
1661~1662년경, 스웨덴 국립미술관 
로마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던 네덜란드 지도자들의 모습을 대담한 필치로 그려냈지만 당시 시 정부는 이 그림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 P444

마지막 기회마저 허무하게 날아갔군요.
렘브란트는 여기서 좌절을 넘어 최악의 모욕을 느꼈을 겁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를 지켜주던 가족마저 잃은 렘브란트는 1669년 63세의 나이로 쓸쓸히 생을 마감합니다. - P444

프란스 할스도 말년이 고달팠나요?
맞습니다. 1652년 프란스 할스는 개인파산을 신청했는데요. 재산 경매 목록을 보면 그의 빈곤함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렘브란트의 경매 목록에는미술 걸작과 값비싼 물품이 가득했지만, 할스는 매트리스 세 개, 테이블하나, 그림 다섯 점이 전부였으니까요. 파산 이후, 할스는 다행히 정부로부터 연금을 받아 근근이 생활하게 됩니다. - P447

신비한 분위기가 보는 이의 마음을 단번에 잡아끄는 명작입니다. 얼핏 평범한 초상화처럼 보이지만 특정 인물이 아닌 이상적인 인물을 상상해서그런 것 같습니다. 살짝 벌어진 입술과 빛나는 눈동자가 매력을 더합니다. 그림의 백미는 진주 귀걸이죠. 큼지막한 진주 귀걸이는 평면에 그려졌는데도 매끄러움이 느껴질 정도로 입체적인데요. 페르메이르는 작은점을 겹겹이 찍어 질감을 살리는 유화 기법으로 귀걸이를 강조했습니다.
빛에 반짝이면서도 입체감이 살아있는 귀걸이 때문일까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로도 불립니다. - P467

글쎄요, 진리에 정답이 있을까요? 시대가 변하여 새로운 해석이 나올 수있겠지만, 새로움이 더 진리에 가까운 건 아닐 겁니다. 마찬가지로 과거라고 해서 진리로부터 뒤떨어졌다고 볼 수도 없고요. 분명한 건 각각의시대에 걸맞은 방식이 있겠죠. 르네상스는 르네상스만의 방식이 있고, 바로크는 바로크 시대에 맞는 방법이 있었듯이 말이죠. 우리는 르네상스 하면 원근법을 떠올리죠. 바로크에도 이에 대응하는 강력한 시선이 있었습니다. - P469

네덜란드는 80년간 스페인과 독립 투쟁을 벌였습니다. 이후, 독립에 성공한 북부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루고 공화국을 건설합니다. 네덜란드 황금기는 시민들의 정치적 자유를 기반으로 종교와 이념의 차이를 극복하는 시기였습니다. 네덜란드인들은 개인과 공동체가 힘을 합쳐 이뤄낸 하루하루의 평화로운 일상을 소중히 여겼죠. 그걸 그려낸17세기 네덜란드 미술은 조금 과장하자면 탈종교, 탈이념을 지향했다고볼 수 있습니다. 평범한 일상을 그린 그림이 유독 많은 이유입니다. - P475

미술은 특정 단어로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세계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 세력의 정치적 자유가 미술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믿습니다. 르네상스가 추구한 인간 중심 문화가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에서한층 높은 단계로 완성된 이유입니다. - P475

15세기에 출발한 인간을 향한 관심은 17세기에 더욱 확장됩니다. 그 열망이 정치적·사회적·경제적으로 들끓던 시대의 에너지와 만나 네덜란드에서 독창적인 미술로 탄생한 겁니다.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은 종교와 신화속 이야기를 현실과 맞닿게 재해석한 걸로도 유명합니다. 시민들이 일군 풍경과 정물을 그림의 소재로 적극 채택하고, 자신들의 세계를 익숙하면서도 평화로운 일상으로 시각화한 거죠.
지금까지 플랑드르와 네덜란드의 바로크 미술을 만났습니다. 이제 바다건너 스페인으로 향할 텐데요.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미술이 펼쳐지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 P476

황홀한 영광도 잠시, 타오르는 한낮의 태양처럼 이글거리던 스페인 황금기도 어둠이 내려앉는다. 영원히 빛날 듯했던 제국은 서서히 몰락의 길을걷는다. 그러나 저무는 해가 오래도록 세상을 얇게 물들이듯이 스페인 바로크 미술은 찬란한 시대의 잔상으로 남아 세계로 퍼져갔다.
-마드리드 왕궁, 스페인 - P483

바로크 미술을 이야기하며 스페인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스페인 바로크미술은 이탈리아와 네덜란드 미술을 아우를 뿐만 아니라 여기서 한 발 더나아가 바로크 미술의 새로운 정점을 찍었으니까요. - P485

펠리페 2세의 통치 철학은 ‘가톨릭 군주‘였습니다. 가톨릭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대제국을 가톨릭 신앙으로 묶고자 했죠. 그래서 엘 에스코리알수도원같이 조용한 종교 공간에서 일하기 좋아했습니다. 마드리드를 비롯한 스페인 곳곳에 궁전을 보유했는데도 말이죠. - P488

그는 29살인 1556년 왕위에 올라 1598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42년간 스페인을 통치합니다. 16세기 후반의 스페인은 펠리페 2세의 시대였다고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 P488

펠리페 2세는 아메리카 잉카제국을 정복하고 포르투갈과 합병하는 등 큰업적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자랑하던 무적함대가 1588년 영국과 네덜란드 연합에 패배하면서 바다에서의 패권을 잃게 됩니다. 신교도를 탄압하여 네덜란드 독립전쟁을 부추긴 것도 뼈아픈 실책이었습니다. 1568년부터 1648년까지 80년간 벌어진 네덜란드와의 기나긴 전쟁으로 스페인은 전쟁의 늪에 빠집니다. 신대륙에서 들여온 막대한 은으로 전쟁 비용을 감당했지만, 비효율적인 관료 시스템마저 겹치며 나라가 파산하고 맙니다. 스페인은 펠리페 2세가 재위하는 동안 네 차례나 국가 파산을 선언하는 수모를 겪습니다. - P489

비록 통치력을 둘러싼 평가는 엇갈리지만 미술에 대한 업적은 이견이 없습니다. 스페인 미술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기념비적인 건축물 엘에스코리알수도원 덕분이죠. 펠리페 2세는 즉위한 이듬해 1557년에 숙적 프랑스에게 큰 승리를 거둡니다. 그날이 성 로렌스의 축일과 같아서 엘 에스코리알을 성 로렌스에게 봉헌합니다. - P489

당시 스페인의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반종교개혁 운동에 앞장선 스페인은 트리엔트공의회가 선언한 미술 강령을 엄격히 지키려 했습니다. 이 때문에 스페인에서 종교미술은 어떤 곳보다 명확하고 단순하며 지적이어야 했고, 사실적이면서도 신앙에 좋은 자극원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엘 그레코의 그림은 어수선해 보였을 겁니다. - P518

‘크레타는 그에게 생명을 주고, 이탈리아는 그에게 붓을 주고, 스페인은그에게 정신을 주었다‘는 어느 미술사가의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크레타에서 태어난 그에게 이탈리아는 그리는 재능을 주었지만, 그 능력을 정서적으로 끌어낸 건 스페인이었으니까요. 이 점이 우리가 엘 그레코를 스페인 화가로 부르는 결정적 이유입니다. - P528

엘 그레코는 스페인의 정신을 대표하는 화가다. 엘 에스코리알 프로젝트를 맡•았으나 왕실과 교회의 미감을 충족시키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톨레도에서예술 세계의 전환점을 맞이한 그는 회심의 역작 오르가즈 경의 매장을 탄생시켰다. 이후 엘 그레코가 톨레도에서 여생을 보내며 그린 풍경화는 후대 작가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 P529

작곡가 로시니가 이탈리아 사람이기 때문에 세빌리아로 제목을 지었지만, 스페인어에 따라 세비야로 부르는 게 옳습니다.
세비야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에 위치한 도시로, 17세기 바로크 시대에는 수도 마드리드만큼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1600년 마드리드 인구가3만 명이었는데요. 당시 세비야의 인구는 15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사실상 규모면에서 세비야는 당시 스페인의 경제 수도였습니다. 얼마나위용이 대단했는지 ‘세비야를 보지 않고 세상을 보았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입니다. - P531

세비야는 콜럼버스가 항해를 시작한 항구로 유명합니다. 이후 대항해 시대가 열리면서 스페인이 아메리카와 교역할 때 가장 중요했던 항구가 바로 세비야였습니다. 스페인의 황금기를 이끈 막대한 부가 바로 이곳을 거쳐 들어온 겁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세비야는 바다에서 약 60킬로미터떨어진 내륙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 P532

아니, 그렇게 안쪽에 자리한 도시가 어떻게 항구가 될 수 있었나요?
과달키비르라는 강 덕분입니다. 세비야를 가로지르는 과달키비르강은수심이 깊고 강폭도 넓어 큰 배들이 강을 따라 세비야와 대서양을 오갔습니다. 왼쪽 위의 그림을 보면 과달키비르강을 통해 수많은 배들이 세비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17세기 후반부터 강에모래가 퇴적되면서 세비야는 항구 기능을 점점 잃게 됩니다. - P5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야간 비행 ㅣ 세계문학그림책
이산호 지음, 구남훈 그림,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원작 / 고래의숲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야간 비행
Vol de Nuit
『야간 비행』은 생텍쥐페리가 자신의 비행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로, 항공 조종사들의 삶과 그들이 직면하는 끊임없는 도전을 다룬 소설이다.
이 소설에는 초창기 항공 업계의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당시 항공 업계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거나 정기 노선을 개설하는 데 주력했는데, 생텍쥐페리는 그 위험한 임무를 수행했다.
또한 추락 사고를 다섯 번이나 겪으면서도 자신의 임무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처음 입사한 항공사에서 업무를 지휘하던 디디에 도라를 만났고, 『야간 비행』의 리비에르라는 인물을 착상 했다. 『야간 비행』이 디디에 도라에게 바치는 헌사로 시작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야간 비행』은 생텍쥐페리가 항공 일을 하면서 겪은 사건과 시련,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한 진실을 시인의 서정으로 기록한 작품이다. 아울러 야간 비행의 위험성과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심리적, 물리적 고통, 어둠과 날씨의 변화 속에서 길을 찾아가는 조종사의 능력과 용기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생텍쥐페리는 『야간 비행』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항공우편 서비스의 복잡하고도 인간적인 갈등을 보여 주었다. 리비에르는 항공우편 회사의 엄격하고 냉철한 책임자로, 안정적인 항공 노선 운영과 조종사들의 안전 사이에서 고뇌하며, 불가피한 결정을 내리는 인물이다. 그는 조종사들과 직원들에게 엄격하지만, 그들이 안전하게 임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책임감 있는 지도자이다. 또한 남미 대륙에서 처음으로 야간 비행을 시도하고, 정기 항로를 개척하기까지 수많은 자연재해와 인간의 약점을 극복하며 악전고투하는 굳건한 의지와 결단력의 승리를 보여 준다.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오직 전진하는 그의 한결같은 의지는 개인을 넘어선 삶의 의미를 드러내며, 죽음을 초월하는 행동적 휴머니즘의 본질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부하인 로비노는 항공 회사의 관리자로서 리비에르의 지시를 충실히 따르는 인물이다.
파비앙은 용감한 조종사로, 야간 비행 중 위험한 안데스산맥을 넘으며 최악의 태풍을 만나 극한의 도전에 직면한다. 그의 아내 시몬은 남편의 위험한 직업에 대해 불안해하면서도 그를 사랑하고 지지해 주는 여인이다.
생텍쥐페리는 『야간 비행』에서 항공 비행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통해 인간 정신의 깊이를 드러 내며,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유사한 갈등과 선택의 순간을 성찰하게 만든다. 또한, 조종사 들이 임무를 수행하면서 겪는 고독과 고립, 서로에게 느끼는 동료애와 연대감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이 모든 요소가 결합한 『야간 비행』은 단순한 항공 모험 이야기를 넘어,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탐구하는 문학 작품이다.

혼돈의 시대
『야간 비행』이 쓰인 1930년대는 혼돈의 시대였다. 1929년 미국을 덮친 경제 공황의 매서운 바람이 프랑스에도 불어닥쳤고, 대공황은 공화제의 핵심 지지층인 중산층을 몰락시켰다. 1934년 파리에서는 극우파에 의한 반민주주의 폭동으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이어 독일에서 히틀러가 집권하면서부터는 전쟁의 기운마저 감돌기 시작한다.
1차 세계대전 이후 10년간의 평화와 번영의 시대가 저물어 가며, 전쟁 전야의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는데, 이러한 변화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 죽음도 불사하는 영웅적 행동주의 문학이 등장한다. 위대한 행동을 찬양한 몽테를랑과 혁명적인 행동을 주창했던 앙드레 말로, 그리고 행동적 휴머니즘을 보여 준 생텍쥐페리가 이 시대의 대표적인 행동주의 작가들이다.
비행을 소재로 한 작품들
생텍쥐페리의 『야간 비행』 외에도 비행이라는 특별한 상황 속에서 모험, 고독, 인간의 한계 등의 주제를 다루면서 독특한 서사와 감정을 전달하는 작품들이 있다.
생텍쥐페리의 가장 유명한 작품, 『어린 왕자(The Little Prince)』는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와 소행성에 사는 어린 왕자와의 만남을 통해 우정, 사랑, 책임감을 그린 소설이다. 그의 또 다른 작품 『인간의 대지(Wind, Sand and Stars)』는 항공우편 조종사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위험한 비행 임무, 사막에서의 추락 생존, 인간 정신의 진정한 가치에 관해 쓴 에세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사하라 사막에서의 추락 사고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고난 속에서 발견한 인간애와 연대감을 감동적으로 묘사하였다.
또 리처드 바크의 『땅에 낯선 자(Stranger to the Ground)』는 작가의 자전적인 작품이 있다. 저자가 항공기를 조종하면서 겪은 고독과 고립, 그리고 하늘과 땅 사이에서의 경험이 표현되어 있다. 어니스트 K. 개노의 『운명은 사냥꾼(Fate Is the Hunter)』은 항공 사고와 그 원인을 탐구하여 항공 조종사의 삶을 들여다보고, 야간 비행의 위험과 아름다움을 세밀하게 묘사한 작품이 다. 이 작품은 항공기의 기술적 실패와 인간의 실수, 그리고 운명적인 요소들이 어떻게 결합되어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 주며, 운명이라는 불가항력적인 힘 앞에서 인간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존 길레스피 맥기가 쓴 시 「고공비행(High Flight)」은 야간 비행과 고도에서의 독특한 체험을 서정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이 시는 존 길레스피 맥기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영국 왕립공군 조종사로 복무하며 쓴 작품으로, 비행에 대한 열정과 자신이 경험한 자유를 표현하여 항공 조종 사들과 비행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야간 비행 : 세계문학그림책 | 이산호 저자(글) · 구남훈 그림/만화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원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앙트완 드 생텍쥐페리
Antoine de Saint-Exupery
생텍쥐페리는 1900년 프랑스 리옹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4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친척들의 성에서 시를 쓰거나 작은 모험들을 하면서 자유분방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12 살에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경험을 하고, 기숙사에서 독서와 고독을 즐기며 문학에 눈뜨기 시작했다. 1921년 제2 전투비행 연대에 소속되어 군 복무를 시작했는데, 처음엔 정비부대 소속이었으나 개인 교습으로 조종 면허를 취득하여 조종사가 된다.
1926년 민간 항공사에 입사한 생텍쥐페리는 프랑스와 아프리카에서 다양한 항공 업무를 경험 했고, 이 시기에 항로 개척자들의 노력과 희생을 기록한 『남방 우편기』를 집필한다. 1929년 아르헨티나의 항공사로 이직하여 파타고니아 노선 확장에 참여하고, 1931년 『야간 비행』으로 페미나상을 받으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어 1936년 <파리 스와르> 신문의 마드리드 특파 원으로 스페인 내전을 취재하는데, 이를 계기로 『인간의 대지』를 쓰고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소설 대상을 받는다.
전쟁이 임박했음을 직감한 생텍쥐페리는 공군에 입대하여 여러 작전에 참여했으며, 『전시 조종사』를 발표한다. 그리고 1940년에 미국으로 이주하여 『어느 인질에게 보내는 편지』, 『어린 왕자』, 『성채』 등을 집필한다.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자, 프랑스 공군으로 모로코에 있는 항공 부대에 복귀했는데, 연합군의 프로방스 상륙작전을 앞두고 1944년 7월 31일 정찰 비행에 나섰으나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 훗날 생텍쥐페리 이름이 새겨진 팔찌와 정찰기의 일부 잔해들이 남프랑스 마르세유의 지중해 연안에서 잇달아 발견되었다.

야간 비행 : 세계문학그림책 | 이산호 저자(글) · 구남훈 그림/만화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원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사람의 목숨이 가치를 매길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고 해도 우리는 항상 그것보다 더 가치 있는 뭔가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비행기 아래로 보이는 야산들은 황금빛 노을 속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들판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빛으로 반짝였다.
조종사 파비앙은 남쪽 끝 파타고니아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향해 갔다.
이따금 그는 인적 없는 대초원 위를 날다가 외딴 농가를 만나면 날개를 흔들어 인사를 보내곤 했다.
그는 행복한 정박지로 들어가고 있었다.

칠레와 파라과이발 우편기들도 오고 있었다.
이들이 도착하면 오늘도 마무리될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비행기를 출발시켜야 하는 총책임자 리비에르는 쉴 수가 없었다.
리비에르는 처음으로 자신이 늙고 지쳤다고 느꼈다.
그는 삶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들을 노년에 시간이 날 때로 조금씩 밀쳐내고 있었다.
언젠가는 정말로 시간이 날 것처럼.

‘규칙이란 부조리하게 보이지만 인간을 만드는 종교 의식과 같다.’ 정당하냐 부당하냐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리비에르에게 인간이란 새로 빚어야 할 밀랍과 같았다.
그는 이 재료에 영혼을 불어넣었고, 의지를 창출해냈다.
그 결과 직원들은 날씨가 호전되기만을 기다리는 것을 수치로 여겼다.
그들은 구름의 틈새라도 발견하면 서로 소리쳤다.
"북쪽이 개었다. 자, 출발!"

리비에르는 조종사 펠트랭과 외출했던 감독관 로비노를 호출했다.
"펠트랭과는 좀 가까워졌나?"
그는 입가에 서글픈 미소를 띠며 호통치듯 말했다.
"자네는 그 조종사에게 위험한 비행을 하도록 명령을 내릴 수도 있네.
그 조종사는 자네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하네.
만약에 그가 우정 때문에 자네의 명령에 복종한다면 자네는 그를 기만하는 것과 다름없어."
그는 당부했다.
"부하들을 사랑하게. 그러나 그것을 결코 입 밖으로 내선 안 되네."

리비에르는 나이 든 정비사 로블레를 해고했다.
아르헨티나 노선 초창기에 비행기를 조립한 20년 경력의 정비사였지만, 그가 책임을 다하지 못해 비행기 고장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한번만 다시 생각해 주십시오. 저는 평생을 바쳐 일했습니다."
리비에르는 나이 든 정비사의 쭈글쭈글한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본보기입니다. 본보기로 희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매정하게 내쫓은 것은 그 정비사가 아니라, 그로 인해 발생한 잘못이었다.
그것은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것이 분명했다.
‘잘못의 매개자를 발견했는데도 그냥 넘어간다면 그것은 범죄 행위이다.’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깬 조종사의 아내는 그를 좀 더 자게 두었다.
남편의 휴식은 곧 돌격해야 할 예비군의 불안한 휴식 같은 것이었다.
한 시간 후면 남편은 유럽행 우편 항공기의 운명을 짊어지게 될 것이다.

비행에 나가기 전, 머리를 손질하는 남편에게 아내가 말했다.
"당신 참 멋있어. 별들에게 잘 보이려고? 질투가 나네요."
그는 웃으며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그는 집을 나섰고, 그녀는 남겨진 꽃, 책, 온기를 슬프게 바라보았다.

리비에르가 그 조종사를 맞이했다.
"지난번 비행에서 큰 실수를 했더군. 무서웠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회오리바람까지 몰아쳤고, 엔진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니. 날씨는 좋았고 엔진도 아무 문제가 없었네. 자네 상상이 지나쳤어."
리비에르는 야간 비행에 대한 공포심을 없애 주기 위해 매몰차게 조종사를 다그쳤다.
그는 모든 사태에 대응하도록 직원들을 엄하게 단련시켜야만 했다.
‘남에게 사랑받으려면 동정심을 보여 주는 것으로 족하다.
그러나 나는 동정심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정부 관료들은 폭풍우와 안개, 밤의 온갖 장애물 속에서 비행하는 것을 군용 비행기나 할 수 있는 모험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야간 우편 비행이 실패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리비에르는 조종사들을 설득했다.
"우리에게 야간 비행은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우리가 낮에 기차와 배보다 앞섰던 거리를 밤마다 까먹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의 의지와 결단력 때문에 성공했다고 평가했으나, 그는 자신이 올바른 방향으로 전진했기 때문이라고 자평했다.
해 뜨기 한 시간 전에 비행기를 출발시키고, 해지기 한 시간 전에 무조건 착륙하게 하면서 야간 우편 비행을 정착시킨 것이다.

파타고니아 우편기는 폭풍우에 다가가고 있었다.
비행기는 난기류에 요동치며 곤두박질쳤다.
파비앙은 위험을 감지하고 회항하려 했으나 비행 각도를 1도도 바꿀 수 없었다.
무전사가 무전을 쳤다.
"사방이 막혔음. 1천km에 걸쳐 폭풍우가 발생하여 회귀 불가능."
파비앙은 삼십 초마다 나침반을 들여다보았지만, 비행기의 위치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암흑 속에 완전히 포위되어버린 것이다.

"응답이 없나요?"
무선국에서 정비사들은 실험하듯 기기를 만졌다.
"응답 없음."
파비앙의 목소리, 그의 웃음이 사라진 것이다.
연료가 바닥나서 더 이상의 비행은 불가능해졌을 것이다.
리비에르는 온몸에 힘이 풀리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로비노에게 지시했다.
"파타고니아 우편기를 기다릴 수만은 없네.
유럽행 우편기의 이륙을 준비시키게."

파비앙의 아내는 새벽 1시쯤 남편이 가까이에 와있는 것처럼 느꼈다.
하늘 위가 추웠을 거라 생각한 그녀는 식사와 따뜻한 커피를 준비했다.
그리고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파비앙 씨 착륙했나요?"
"악천후 때문에 늦어지고 있습니다."
"연착인가요? 그럼 몇 시에 도착하나요?"
침묵이 흘렀다.

"아! 날씨가 많이 나쁜가요?"
"무언가 소식이 오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이군요!"
비극적인 사건에서 감정적인 요소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사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람의 목숨이 가치를 매길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고 해도, 우리는 항상 그것보다 더 가치 있는 뭔가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것이 진짜 존재한다면 과연 무엇일까?
리비에르는 사랑보다 더 중대한 의무가 있다고 느꼈다.
그것을 영원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그는 잉카의 태양 신전을 떠올렸다.
‘산 위에 세워진 돌기둥이 없었다면 이 문명에 무엇이 남아 있겠는가?’ 옛 지도자는 개인의 고통보다 종족의 소멸에 대해 연민을 느끼고 사람들에게 사막에 매몰되지 않을 돌기둥을 세우게 했을 것이다.

파비앙은 심하게 진동하는 비행기를 통제하는 데 집중했다.
주변은 하늘과 땅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한 암흑이었다.
결국 그는 고도 감각을 상실하고 말았다.
덫 속의 치명적인 미끼처럼 별들이 폭풍의 찢긴 틈 사이로 반짝였다.
그쪽으로 올라갔다가는 다시는 내려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국 별을 향해 솟아올랐다.
보름달과 밤하늘의 별들이 아름다운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파비앙은 뒷좌석의 무선사를 돌아보았다.
"이제 우리는 끝났어."
그들은 보석이 가득 찬 방에 갇혀서 다시는 그 방을 빠져나올 수 없는 동화 속 도둑 같은 처지가 되고 말았다.

파비앙의 아내가 회사로 왔다.
리비에르는 그녀에게 기다리는 것 외에 달리 어쩔 도리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어깨를 살짝 들썩였다.
그것은 마치 ‘집에 가서 다시 보게 될 램프, 저녁 식사, 그리고 꽃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겸손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갔다.
"그들은 결혼한 지 6주밖에 되지 않았답니다……."
로비노가 말했다.
그녀가 남편의 죽음을 내일에서야 실감할 거라고 생각하며 리비에르는 울적한 기분으로 의자에 앉았다.
로비노는 리비에르를 위로할 적당한 말을 찾지 못했다.
"지시할 것이 있으신지요?"
"유럽행 우편 항공기를 이륙시키게."
리비에르가 손목시계를 보더니 딱 잘라 말했다.

조종사들은 파비앙의 행방불명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리비에르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다른 우편 항공기의 안전한 비행을 확인했다.
우편물들이 유럽행 비행기에 실렸다.
"다 실었나? 그럼, 출발!"
엔진에 시동이 걸렸다.
비행기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상공을 지나갈 것이다.
리비에르는 비행기의 엔진 소리를 듣고 싶어 유리창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그가 한 번이라도 출발을 중지시켰더라면, 야간 비행을 계속할 명분은 사라졌을 것이다.
오직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중요할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17세기 네덜란드는 빛과 어둠이 극명하게 교차한 시기였습니다. 스페인과 치열한 독립전쟁을 벌여 엄청난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지만, 투기 열풍이 불어 파산자도 속출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네덜란드의 국민화가 렘브란트도 이 시기 네덜란드에서 활동했습니다. - P421

드디어 렘브란트군요. 그의 작품 야간순찰이 라익스 뮤지엄 한가운데 멋지게 걸려 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맞습니다. 그는 격동의 시대를 지나온 네덜란드를 누구보다 생생하고 깊이 있게 그려냈죠. 덕분에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 세계 미술 애호가와 네덜란드 국민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습니다. - P421

않은 곳에서 방앗간을 운영했는데요. 렘브란트를 중등 교육기관인 라틴어학교와 대학에 진학시킨 것으로 미루어 교육 열정이 대단했던 듯합니다.
정작 렘브란트는 공부에 흥미가 없었나 봅니다. 대학을 금방 그만두고 그림 공부에 전념했거든요. 어릴 적부터 미술에 소질을 나타낸 렘브란트는레이던에서 선배 화가들에게 3년간 그림을 배웁니다. 그리고 암스테르담으로 옮겨 6개월간 기본기를 다지죠. 1625년 렘브란트는 레이던으로 돌아와 작업실을 열고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걷습니다. 그의 나이 19살이었습니다. 공방을 연 이듬해에 그린 그림을 볼까요. 다음 페이지에 있는그림입니다. - P423

렘브란트,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1632년, 마우리츠하위스
 암스테르담 외과 의사 조합은 매년 해부학 공개수업을 열고, 5~10년에 한 번씩 유능한 초상화가에게 그림을 의뢰했다. 렘브란트가 26세에 그린 이 작품에서그의 초기 초상화 실력을 엿볼 수 있다. - P425

렘브란트는 젊은 시절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50대 들어 재산을 몽땅 잃고 요즘으로 치면 신용불량자 같은 신세가 됩니다. 노년기의 자화상을 보면 젊었을 때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고 초라한 노인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때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우선 전성기 시절의 렘브란트부터만나보겠습니다. - P432

암스테르담에서 유명해진 젊은 렘브란트는 1634년 전직 시장의 딸 사스키아 오일렌부르크와 결혼합니다. 성공 가도를 달린 렘브란트의 삶은 선술집의 탕자라는 작품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결혼 이듬해에 그린 다음 페이지의 작품에서 렘브란트는 성경에 등장하는 돌아온 탕자를 주제로 삼있습니다. - P43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