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로드 2000㎞ - 광복 80주년, 일본에서 다시 만난 독립투사들
김종훈 지음 / 필로소픽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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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하는 일본 알펜루트 여행기

여행 1일차, 2026.05.22.(금요일)


1. 항일로드 2000km의 시작

이번 여행을 계획하게 된 데에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오마이뉴스 김종훈 기자의 『임정로드 4000km』를 읽으면서부터였다.

책에는 중국 곳곳에 흩어져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이 담겨 있었다. 책을 읽으며 언젠가는 그 길을 직접 찾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임정로드와 약산로드의 대부분은 중국 땅에 있어 마음먹은 대로 찾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반면 일본은 비교적 자주 여행하면서도 정작 우리 독립운동사의 현장을 제대로 찾아본 적이 없었다.

도쿄, 교토, 오사카, 히로시마, 시모노세키, 미야기, 나가사키, 후쿠오카….

그동안 여러 차례 일본을 다녔으면서도 그 도시 어딘가에 남아 있는 우리의 역사를 모르고 지나쳐버린 곳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했다.

앞으로 일본을 여행할 때마다 가능하면 그곳에 남아 있는 독립운동의 흔적을 하나씩이라도 찾아가 보자고.

그 첫 번째가 가나자와였다.

상하이 훙커우공원 의거 후 체포된 매헌 윤봉길 의사가 생의 마지막 밤을 보냈고, 결국 순국한 곳이 바로 가나자와였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의 후반부에는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나에게 여행의 첫 목적지는 윤봉길 의사의 마지막 발자취였다.

5월 22일.

사랑하는 마님과 함께 그 첫발을 내디뎠다.


2. 자정에 집을 나서 인천공항으로

집을 나선 것은 자정 무렵이었다.

한밤중 고속도로를 달려 새벽 3시경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출발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차 안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잠에서 깬 뒤 터미널로 들어가 출국수속을 시작했다.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공항은 크게 붐비지 않았고 수속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진행됐다.

이번 여행에는 카메라도 단단히 챙겼다.

가나자와와 도야마의 거리, 구로베 협곡, 그리고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까지 제대로 담아오고 싶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준비했다.

인천공항에서 소주 ‘처음처럼’ 한 병을 샀다.

윤봉길 의사님을 찾아뵐 때 빈손으로 갈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타국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분께 한국에서 가져온 술 한잔이라도 올리고 싶었다.

우리가 탈 비행기는 대한항공 KE2189편.

고마쓰공항으로 가는 오전 7시 30분 출발편이었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3. 활주로까지 갔다가 되돌아온 비행기

예정대로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는 탑승구를 떠나 이륙을 위해 활주로 쪽으로 이동했다.

이제 곧 뜨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엔진 이상이었다.

이륙하기 위해 활주로까지 나갔던 비행기가 결국 다시 돌아가야 했다. 잠시 뒤 견인차가 와서 비행기를 끌고 갔다.

“아이고, 첫날부터 일정 뻐그러졌네.”

원래 오전 7시 30분이었던 출발 시각은 오전 10시 20분으로 밀렸다.

거의 세 시간 지연이었다.

가나자와에서 보내야 할 귀중한 오전 시간이 인천공항에서 사라져버렸다.

처음부터 계획이 틀어졌다.

그래도 방법이 없었다. 여행이라는 것이 계획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 법이다. 그렇게 기다림 끝에 다시 비행기에 올랐고, 이번에는 무사히 일본을 향해 날아올랐다.

기내식도 먹고 창밖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구름 아래로 일본의 해안과 들판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비로소 멈췄던 여행이 다시 움직이는 것 같았다.


4. 자위대 전투기와 공룡이 반겨준 고마쓰공항

우여곡절 끝에 낮 12시 30분경 고마쓰공항에 도착했다.

착륙한 뒤 창밖을 바라보니 민간공항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활주로 건너편에 일본 항공자위대 군용기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고마쓰공항은 민간항공과 일본 항공자위대가 함께 사용하는 비행장이다. 그래서 민항기를 타고 도착하면서도 바로 옆 고마쓰기지의 군용기와 시설을 볼 수 있었다.

첫날부터 비행기 엔진 이상으로 세 시간 가까이 지연된 뒤 도착한 곳에서 전투기부터 마주하니 일반적인 관광공항에 도착한 것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그런데 공항 안으로 들어가자 이번에는 전혀 다른 녀석이 우리를 맞았다.

공룡이었다.

벽을 뚫고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커다란 공룡 한 마리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첫날부터 비행기 엔진 이상으로 세 시간 가까이 발이 묶여 지쳐 있던 우리를 보고

“인자 왔냐?”

하고 묻는 것 같았다.

뜻밖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고 자연스럽게 카메라부터 들었다.


5. 오후 1시 20분, 가나자와로

고마쓰공항 밖으로 나와 가나자와행 리무진버스를 탔다.

승차권은 1인 1,300엔.

오후 1시 20분경 고마쓰공항을 출발했다.

버스가 공항을 벗어나자 창밖으로 초여름의 호쿠리쿠 지방 풍경이 이어졌다.

물을 가득 댄 논에는 어린 모가 반듯하게 줄을 맞추고 있었고 낮은 집들과 농경지가 연이어 나타났다.

중간에는 바다를 바로 옆에 둔 대규모 공사현장도 지나갔다.

비행기가 늦어지면서 첫날 계획은 이미 크게 틀어졌지만, 이렇게 버스 창밖으로 일본의 논과 마을을 보고 있으니 그제야 일본에 들어왔다는 실감이 났다.

약 50분을 달려 오후 2시 10분경 가나자와역에 도착했다.


6. 하얏트 센트릭 가나자와에 짐을 풀다

가나자와역에 도착하자 우선 숙소부터 찾았다.

이날 묵을 곳은 하얏트 센트릭 가나자와(Hyatt Centric Kanazawa).

가나자와역에서 아주 가까웠다.

장거리 이동을 끝내고 캐리어를 끌고 한참 걸어야 하는 숙소가 아니라는 것부터 마음에 들었다.

객실 문을 열자 첫인상도 좋았다.

트윈베드와 소파, 테이블이 놓여 있는데도 답답하지 않을 정도로 방이 넓었다. 전체적으로 깔끔했고 시설도 쾌적했다.

자정에 집을 나와 새벽 3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하고, 비행기 고장으로 세 시간을 기다린 뒤에야 일본에 들어왔으니 이 넓고 쾌적한 방이 더욱 반가웠다.

하지만 아직 누워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짐을 내려놓고 잠시 숨을 돌린 뒤 다시 밖으로 나섰다.

이미 오전 일정은 날아갔지만 남은 시간이라도 최대한 활용해야 했다.


7. 가나자와역, 츠즈미몬과 매잡이 부녀

호텔을 나와 다시 가나자와역으로 향했다.

역 밖으로 나오자 가나자와를 상징하는 거대한 츠즈미몬이 눈앞에 나타났다.

굵은 목재가 서로 비틀리듯 솟아올라 커다란 지붕을 받치고 있었고 뒤편으로는 유리와 철골로 된 모테나시 돔이 이어졌다.

역 앞에는 물줄기로 숫자와 글자를 만들어내는 재미있는 분수도 있었다.

시각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다시 물줄기가 모여 ‘ようこそ金沢へ’, ‘가나자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글자를 만들어냈다.

안내석을 읽어보니 단순한 분수도 아니었다.

이곳에는 에도시대부터 가나자와 시내를 흘러온 다쓰미 용수의 물을 끌어다 사용하고 있었다.

가나자와에는 사이가와와 아사노가와 두 하천 외에도 총연장 약 150km에 이르는 55개의 용수가 도시를 그물처럼 흐른다고 한다.

그저 역 앞의 현대적인 분수인 줄 알았는데 그 물줄기 속에도 오래된 가나자와의 역사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역 앞에서 또 재미있는 광경을 만났다.

매를 데리고 나온 아저씨가 딸과 함께 사람들에게 매를 보여주고 있었다.

두꺼운 장갑 위에 올라앉은 매가 날개를 활짝 펼치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 멈춰섰다.

고마쓰공항에서는 공룡이 우리를 맞더니 가나자와에 오자 이번에는 매다.

여행 첫날부터 동물들과의 인연이 제법 많았다.


8. 오미초시장을 지나 오야마신사로

가나자와역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겼다.

보도에는 오미초시장까지 370m라는 안내표시가 붙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나자와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인 오미초시장이 나타났다.

당초 계획에는 이곳도 제대로 둘러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전에 비행기가 세 시간이나 지연되면서 여유가 없었다.

가나자와성과 겐로쿠엔까지 돌아봐야 했기 때문에 시장 안으로 들어가 이것저것 구경할 시간이 없었다.

결국 오미초시장은 그냥 지나갔다.

조금 아쉬웠지만 여행은 때로 버릴 것을 버려야 한다.

오미초시장을 지나 계속 걷다가 예정에는 없던 오야마신사에 들렀다.

가나자와성으로 가는 길목에 있었으니 그냥 지나치기 아까웠다.


9. 오야마신사, 그리고 연잎 위의 개구락지들

오야마신사는 가가번의 초대 번주 마에다 도시이에를 모신 신사다.

입구부터 평범한 일본 신사와는 조금 달랐다.

특히 독특한 모습의 신문은 일본 전통양식에 중국과 서양 건축의 요소가 섞인 독특한 건축물이었다.

경내에는 마에다 도시이에의 기마상도 있었고, 울창한 나무와 연못, 작은 다리 등이 어우러져 있었다.

신사라기보다 작은 정원에 들어온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 내 눈길을 가장 끈 것은 따로 있었다.

커다란 연잎 모양의 수반 위에 개구락지 세 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한 녀석은 몸을 앞으로 잔뜩 내밀고 있고, 가운데 녀석은 입을 쩍 벌리고 금방이라도

“개굴!”

하고 울어댈 것 같은 표정이었다.

옆 녀석도 연잎 가장자리에 매달려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근엄한 신사 안에 이런 익살스러운 개구락지들이 자리하고 있으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마님과 한참 들여다보며 사진을 찍었다.

유명한 문화재와 거창한 건축물만 여행의 기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예정에도 없던 신사에 들어갔다가 만난 개구락지 세 마리가 오히려 오래 기억에 남는다.


10. 가나자와성, 아름다운 성곽 뒤에 숨은 일본군 제9사단

오야마신사를 나와 가나자와성으로 향했다.

지금의 가나자와성은 잘 복원된 성곽과 넓은 잔디밭, 정원으로 관광객을 맞는다.

그러나 이곳에는 또 하나의 역사가 겹쳐 있다.

메이지유신 이후 가나자와성은 일본 육군의 군사시설로 사용됐고 제9사단의 거점이 됐다. 성 안에는 제9사단 사령부가 자리하고 있었다.

제9사단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참전했고 한반도에도 주둔하며 우리 민족을 짓밟았다. 1932년 제1차 상하이사변 때에는 상하이에 투입됐다.

당시 제9사단을 지휘했던 사람이 우에다 겐키치 중장이었다.

그리고 그 이름은 윤봉길 의사의 역사와 이어진다.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훙커우공원.

윤봉길 의사가 던진 폭탄은 일본군 수뇌부가 모여 있던 단상을 뒤흔들었다.

상하이파견군 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 대장은 중상을 입고 이후 사망했고, 제9사단장 우에다 중장 역시 크게 다쳤다.

그리고 의거 후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은 윤 의사가 그해 12월 마지막으로 이송되어 온 곳 역시 제9사단의 본거지였던 가나자와였다.

이 기막힌 연결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윤 의사를 굳이 제9사단의 본거지인 가나자와까지 옮긴 데에는 복수의 의미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것은 내가 이곳을 걸으며 떠올린 생각이다. 현재 확인되는 사료에는 가나자와 이송의 이유를 ‘우에다 중장에 대한 복수’라고 명시하고 있지는 않다.


11. 윤봉길 의사가 마지막 밤을 보낸 곳

가나자와성을 걸으며 내가 가장 찾아보고 싶었던 곳에 도착했다.

윤봉길 의사가 수감됐던 가나자와 위수구금소 터였다.

1932년 12월 18일 윤 의사는 오사카에서 가나자와로 이송돼 제9사단 위수구금소에 수감됐다.

그리고 이곳에서 생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다음 날인 12월 19일 아침, 윤 의사는 이곳을 떠나 당시 이시카와현 우치카와무라 미쓰코지 일대의 육군 작업장으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총살형으로 순국했다.

스물다섯 살이었다.

순국 후 유해는 노다야마 묘지 일대에 암장됐다.

해방 뒤인 1946년에야 유해가 발굴되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윤 의사가 마지막 밤을 보냈던 위수구금소 터를 찾아가 보니 지금은 화장실이 들어서 있었다.

참….

한동안 말이 나오지 않았다.

관광객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화장실을 드나들고 있었고, 주변은 너무나 평온했다.

바로 이 자리에서 스물다섯 살의 청년이 다음 날이면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고 마지막 밤을 보냈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마음이 참 묘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인천공항에서 사온 ‘처음처럼’ 한 병이 문득 생각났다.

아직 윤 의사님께 술을 올릴 곳은 남아 있었다.

가나자와성은 여행지였지만 내게는 이날부터 다른 의미의 장소가 됐다.

드디어 윤 의사님 참배길의 일부가 시작된 것이다.


12. 이시카와몬을 나서 겐로쿠엔으로

위수구금소 터를 마지막으로 가나자와성을 나왔다.

이시카와몬을 통과해 밖으로 나오자 바로 맞은편에 겐로쿠엔이 있었다.

참 기막힌 위치였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쪽에는 윤 의사가 마지막 밤을 보낸 일본군 주둔지가 있었고, 맞은편에는 일본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정원 가운데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윤 의사의 마지막 밤을 생각하며 마음이 먹먹했는데 몇 걸음 옮기자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윤 의사님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뒤로하고 겐로쿠엔으로 향했다.


13. 일본 3대 정원, 겐로쿠엔

입구의 나무 간판에는 ‘특별명승 겐로쿠엔(兼六園)’이라고 적혀 있었다.

겐로쿠엔은 가나자와성과 나란히 자리한 다이묘 정원으로, 일본 3대 정원의 하나로 꼽힌다. 가가번을 다스린 마에다 가문이 여러 세대에 걸쳐 조성하고 가꾼 정원이다.

안으로 들어서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정원을 참 기가 막히게 꾸며놓았다.

연못과 물길, 오래된 소나무와 고목, 작은 다리와 석등, 이끼 낀 땅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분명 사람이 오랜 세월 손질한 곳인데도 억지로 꾸민 느낌이 거의 없었다.

나무 한 그루와 돌 하나까지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풍경 속에 녹아 있었다.

철쭉도 한창이었다.

둥글게 다듬어진 철쭉나무에는 분홍빛 꽃이 빼곡하게 피어 있었고, 짙은 녹색의 소나무와 연못 사이에서 유난히 선명했다.

굵은 소나무 가지들은 물 위로 길게 뻗어 있었다.

세월을 이기지 못한 가지마다 나무 지지대를 받쳐놓았는데, 그 모습조차 정원의 한 부분처럼 느껴졌다.

연못 건너편으로 오래된 건물들이 비치고, 물가를 따라 걷다 보면 작은 다리와 숲길이 다시 나타났다.

조금 걸으면 또 다른 풍경이 나왔다.

정원이 한눈에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걷는 방향과 위치에 따라 계속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마님과 나도 연못 앞에서 사진을 남겼다.

높은 곳에서는 가나자와 시내도 내려다보였다.

조금 전까지 윤봉길 의사의 마지막 흔적을 따라 무거운 마음으로 걸었던 것이 사실인데, 눈앞의 정원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 대비가 오히려 마음을 더 복잡하게 했다.

한쪽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전쟁과 침략의 역사가 있었고, 그 바로 옆에서는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고 가꾸었다.

아름답다는 생각과 씁쓸하다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그래도 정원 자체만 놓고 보면 역시 이름값을 했다.

일본 3대 정원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14. 일본에 오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스타벅스

겐로쿠엔을 충분히 둘러본 뒤 가나자와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역에 도착하자 그냥 숙소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스타벅스가 눈에 들어왔다.

일본에 오면 이상하게 스타벅스를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익숙한 초록색 로고인데, 일본 여행 중에 만나면 괜히 한 번 들어가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싶어진다.

결국 가나자와역 스타벅스에 들어가 커피를 한 잔씩 마셨다.

자정부터 시작된 긴 하루였다. 비행기 고장으로 인천공항에서 세 시간을 허비했고, 일본에 도착해서는 가나자와 시내를 쉬지 않고 걸었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앞에 놓으니 긴장이 조금 풀렸다.

마님도 이제는 완전히 지친 표정이었다.

이날 마님과 함께 가나자와성과 겐로쿠엔 등을 돌아본 기록은 총 9.8km였다.

이동시간은 2시간 49분 39초, 평균속도는 3.9km/h였고, 최고점은 170m, 누적 상승고도는 283m였다.


15. 가나자와역 도시락으로 때운 저녁

스타벅스를 나와 가나자와역에서 저녁으로 먹을 도시락 두 개를 샀다.

다시 밖으로 나가 식당을 찾아다닐 기운도 없었다.

도시락을 들고 하얏트 센트릭 가나자와로 돌아왔다.

객실에 들어와 마님과 마주 앉아 도시락으로 저녁을 때웠다.

거창한 저녁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정에 집을 나선 뒤 비행기 지연에, 고마쓰공항에서 가나자와까지 이동하고, 오미초시장과 오야마신사, 가나자와성, 겐로쿠엔까지 돌아다닌 뒤 먹는 저녁이었다.

마님은 이미 체력이 바닥난 상태였다.

손으로 얼굴을 받친 채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오늘 하루 얼마나 고단했는지 그대로 드러났다.

이제 마님에게는 오늘 일정이 끝났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직 한 곳이 남아 있었다.


16. 다시 혼자 길을 나서다 ― 윤봉길 의사 유해안치소 터

도시락으로 저녁을 먹은 뒤 나는 혼자 다시 숙소를 나섰다.

마님은 방에서 쉬게 하고, 윤봉길 의사님의 유해가 한때 안치되었던 장소를 찾아가 보기 위해서였다.

낮에 가나자와성의 위수구금소 터를 찾아가 윤 의사님이 생의 마지막 밤을 보낸 자리를 확인했다.

그것만 보고 하루를 끝내기에는 마음 한구석에 허전함이 남아 있었다.

윤 의사님이 순국하신 뒤 그 육신이 거쳐간 자리 역시 직접 찾아보고 싶었다.

유해안치소로 향하기에 앞서 가나자와역에 먼저 들렀다.

다음 날 아침 찾아갈 곳은 윤 의사님이 순국하신 미쓰코지의 옛 육군 연습장이었다. 처음 가보는 곳인 데다 아침부터 버스를 타고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미리 승강장을 확인해두는 편이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역 앞 버스승강장을 하나씩 확인했다.

미쓰코지 방면으로 가는 21번 버스.

타는 곳은 9번 승강장이었다.

“오케이. 내일은 여기서 타믄 되겄네.”

9번 승강장의 위치를 눈에 확실히 익혀두었다.

낯선 여행지에서 다음 날 아침부터 버스 타는 곳을 찾아 우왕좌왕하지 않기 위한 일종의 사전정찰이었다.

내일 윤 의사님의 순국지를 찾아가는 첫 동선까지 확인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놓였다.

그제야 가나자와역을 떠나 유해안치소 터를 향해 걸었다.

낯선 가나자와의 저녁거리를 혼자 걸었다.

낮에는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도시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차분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윤 의사님의 유해안치소가 있었던 곳에 도착했다.

하지만 옛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은 병원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자동차가 드나드는 평범한 주차장.

이곳이 윤봉길 의사님의 유해가 한때 안치되었던 자리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그냥 지나쳐버릴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낮에 찾아간 위수구금소 터가 지금은 화장실로 사용되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마음이 무거웠는데, 이번에는 유해안치소 터가 병원 주차장으로 남아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건물이 없어지고 도시의 모습은 바뀌었지만, 그곳에서 있었던 역사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은 자리에 직접 서보니 이런 장소를 찾아보고 기록하는 일이 더욱 의미 있게 느껴졌다.

한동안 그 자리를 바라보다가 숙소를 향해 돌아섰다.


17. 천하영웅 윤봉길 의사를 찾아가는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숙소에서 유해안치소 터를 찾아갔다 돌아오는 길은 생각보다 길었다.

이날 저녁 혼자 이동한 거리는 6.3km.

이동시간은 1시간 49분 54초, 평균속도는 4.2km/h였고, 최고점은 132m, 누적 상승고도는 213m였다.

낮에 마님과 함께 가나자와성과 겐로쿠엔 등을 돌아본 9.8km의 기록과는 별개의 거리였다.

하루 종일 걸어 이미 몸은 피곤했지만 이상하게 이 길만큼은 그냥 걸어야 할 것 같았다.

윤 의사님의 마지막 흔적을 찾아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숙소로 돌아오면서 내일의 일정을 생각했다.

버스를 탈 가나자와역 9번 승강장도 이미 확인해두었다.

내일은 그곳에서 21번 버스를 타고 윤봉길 의사님께서 순국하신 미쓰코지의 옛 육군 연습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일제가 의사님의 유해를 몰래 묻었던 노다야마 암장지도 찾아갈 예정이다.

인천공항에서부터 챙겨온 ‘처음처럼’ 한 병도 그때 비로소 꺼내게 될 것이다.

윤 의사님께 직접 술 한 잔 올리러 간다.

항일로드 2000km의 시작.

가나자와에서의 첫날이 그렇게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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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황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9
이노우에 야스시 지음, 임용택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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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하는 일본 북알프스 여행기 - 특별기고]

히다의 산과 사람을 글로 남긴 여덟 문인
― 히다민속촌 문학산책로에서 만난 작가들


히다노사토로 향하던 길은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았다.

다카야마 시가지를 벗어나자 논이 펼쳐지고, 그 너머로 낮은 산과 산촌마을이 이어졌다. 파란 하늘 아래 초록빛 논이 펼쳐져 있었고, 길가에는 한여름의 수국이 아직 남아 있었다. 보라색과 연보랏빛 꽃이 초록빛 논과 숲을 배경으로 피어 있는 모습이 제법 잘 어울렸다.

산길로 조금씩 올라가면서 산악자료관(山岳資料館)을 지나고, 옛 노쿠비가 주택(旧野首家住宅)과 향창(郷倉) 같은 오래된 건물도 만났다. 낡은 목조건물의 지붕 위에는 돌들이 올라가 있었다. 히다노사토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이 지역 사람들이 산과 눈, 바람 속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조금씩 보여주는 것 같았다.

길은 울창한 나무 그늘 속으로 이어졌다.

한쪽으로는 논과 산촌마을이 내려다보이고, 길가에는 수국이 피어 있었다. 한여름 아침 햇볕은 벌써 따가웠지만 나무 아래로 들어가면 잠시나마 시원한 그늘이 이어졌다.

그런데 걷다 보니 길바닥에 이상한 표시들이 눈에 들어왔다.

‘EC.9’, ‘NO.12’.

십자표시와 함께 측량점으로 보이는 표시들이 길을 따라 찍혀 있었다.

“여그 또 길 넓히거나 공사헐라는 건가?”

나중에 알아보니 이 문학산책로는 실제로 2023년 측량설계를 시작으로 정비공사와 부지조성, 공원정비가 이루어졌고, 2024년에는 포장공사까지 시행된 곳이었다.

다만 내가 본 측량표시가 앞으로 또 다른 공사를 하기 위한 것인지, 앞서 시행한 정비사업이나 유지관리를 위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그렇게 산책길을 따라 걷다가 ‘文学散歩道’(문학산보도), 문학산책로라고 적힌 나무 안내판을 만났다.

안내판에는 여덟 명의 문인이 적혀 있었다.

① 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
② 후쿠다 유사쿠(福田夕咲)
③ 하야후네 치요(早船ちよ)
④ 에마 슈(江馬修)
⑤ 에나쓰 미요시(江夏美好)
⑥ 다나카 스미에(田中澄江)
⑦ 오도리 유키오(小鳥幸男)
⑧ 다키이 고사쿠(瀧井孝作)

처음에는 그냥 다카야마와 관련 있는 작가들의 문학비를 모아놓은 산책로인가 보다 했다.

그런데 여행을 다녀온 뒤 한 사람씩 찾아보니 이 여덟 명은 단순히 ‘다카야마 출신 작가’라는 공통점으로 묶인 사람들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태어나 평생 히다의 역사와 문화를 글로 남겼고, 누군가는 어린 시절의 히다를 문학의 원풍경으로 삼았다. 또 누군가는 북알프스와 호타카를 작품으로 남겼고, 누군가는 다카야마라는 도시 자체를 찬미했다.

그중 안내판을 보는 순간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이름은 따로 있었다.

“어, 이노우에 야스시네.”


1. 이노우에 야스시 ― 『둔황』의 작가를 다카야마에서 다시 만나다

여덟 명 가운데 내가 바로 알아본 사람은 이노우에 야스시였다.

나는 그의 작품을 딱 한 권 읽었다.

『둔황』.

오래전에 읽었지만 지금도 꽤 강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소설이다.

주인공은 송나라 사람 조행덕(趙行徳)이다. 과거시험을 보러 갔다가 시험을 치르지 못한 그는 우연히 서하 여인을 만나고, 그녀가 지니고 있던 낯선 문자를 접한다. 그 문자가 서하문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조행덕은 서하와 서역에 관심을 갖게 되고, 결국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꾸는 먼 길을 떠난다.

서역으로 간 조행덕은 그곳에서 한족 무장 주왕례(朱王礼)를 만나고, 서하를 세운 이원호(李元昊)의 세력이 팽창해가는 전쟁과 권력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간다. 송과 서하, 위구르 등 여러 세력이 맞부딪치는 서역의 역사 속에서 조행덕 개인의 삶도 거대한 시대의 흐름에 휩쓸려간다.

소설의 무대는 결국 둔황으로 이어진다.

내게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막고굴의 장경동에 수많은 불경과 문서가 보존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된 역사적 수수께끼를 이노우에 야스시가 소설적 상상력으로 풀어낸 부분이었다.

실제로 둔황 막고굴 장경동에서는 20세기 초 수만 점에 이르는 고문서와 불경, 그림 등이 발견됐다. 이노우에 야스시는 ‘그 많은 문서는 왜 동굴 속에 감춰졌을까’라는 역사적 사실의 빈틈에 조행덕이라는 가공의 인물을 집어넣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역사적 사실과 허구의 인물이 뒤섞이는데도 읽다 보면 정말 그 시대 어딘가에 조행덕이 있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둔황』은 오래전에 딱 한 권 읽은 이노우에 야스시의 작품이지만 작가 이름만큼은 머릿속에 확실하게 남아 있었다.

그런 작가의 이름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다카야마의 아침 산책길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찾아보니 이노우에 야스시는 내가 여행하고 있던 일본 북알프스와도 깊은 인연이 있었다.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빙벽(氷壁)』은 호타카다케를 무대로 한다.

나일론 자일이 끊어져 등반자가 추락한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쓴 장편소설로, 호타카의 험준한 산을 배경으로 인간의 우정과 사랑, 죽음을 다룬 작품이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걸었던 가미코치에서 고개를 들면 바로 호타카 연봉이 보였다.

나는 『둔황』으로 이노우에 야스시를 알고 있었지만, 정작 이번 여행의 핵심 무대인 호타카와 그가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문학산책로를 걷고 난 뒤에야 알았다.

다카야마와의 직접적인 인연도 있었다.

그는 1990년 다카야마를 위해 「飛騨高山・讃」, 즉 ‘히다 다카야마 찬’을 남겼다.

다카야마를 인간이 만들어온 오래된 역사와 문화의 도시이자 크고 작은 산맥에 둘러싸인 산악도시로 바라본 글이다.

그러고 보면 묘한 인연이었다.

오래전 『둔황』 한 권으로 알게 된 작가의 이름을, 북알프스를 여행한 마지막 아침 다카야마의 산책길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대표작 : 『둔황』, 『빙벽』, 『천평의 용마루(天平の甍)』, 『투우(闘牛)』, 『시로반바(しろばんば)』, 『공자(孔子)』


2. 후쿠다 유사쿠 ― 다카야마 문단의 구심점

후쿠다 유사쿠는 다카야마에서 태어난 문인이다.

젊은 시절 도쿄에서 문학활동을 했지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고향으로 돌아왔고, 이후 다카야마의 문예활동과 향토문화 발전에 힘을 쏟았다.

시와 단가뿐 아니라 히다의 민속과 풍습, 고고학까지 연구했다.

특히 『山都年中行事』에는 히다 다카야마의 옛 풍속과 연중행사가 기록되어 있다.

단순히 이곳에서 태어난 시인이 아니라, 다카야마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글로 남긴 향토문화 기록자이기도 했다.

고산시립도서관 근대문학관에서도 그를 다카야마를 대표하는 네 명의 근대문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다루고 있다.

대표작 : 『春のゆめ』, 『山花一束』, 『山都年中行事』


3. 하야후네 치요 ― 히다에서 시작된 여성의 삶

하야후네 치요는 현재의 히다시 후루카와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부터 다카야마에서 성장했다.

작가로서 가장 유명한 작품은 주물공장 도시의 노동자 가족과 청소년의 삶을 그린 『キューポラのある街』이다.

하지만 그녀의 문학적 뿌리에는 히다가 있었다.

『峠』를 시작으로 한 ‘ちさ・女の歴史’ 연작에서는 히다 지방을 무대로 고단한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을 그렸고, 『ふるさと飛騨』, 『わたしの飛騨』처럼 고향 히다를 직접 제목으로 삼은 책도 남겼다.

어린 시절 보고 듣고 경험한 히다가 평생 문학의 밑바탕에 남아 있었던 셈이다.

1989년에는 바로 이 히다민속촌 문학산책로에 그녀의 문장비가 세워졌다.

대표작 : 『キューポラのある街』, 『峠』, ‘ちさ・女の歴史’ 6부작, 『ふるさと飛騨』, 『わたしの飛騨』


4. 에마 슈 ― 히다의 역사를 소설로 만든 사람

에마 슈는 다카야마에서 태어났다.

이 사람의 히다와의 인연은 특히 깊다.

젊어서 고향을 떠나 도쿄에서 작가생활을 했지만 1932년 대표작 『山の民』을 쓰기 위해 가족과 함께 다시 다카야마로 돌아왔다.

그리고 단순히 책상 앞에서 소설만 쓰지 않았다.

히다의 옛 자료를 조사하고, 지역 노인들을 찾아가 옛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고고학 연구에도 몰두했고, 향토연구지 『ひだびと』를 발간하기까지 했다.

대표작 『山の民』은 메이지유신 전후 히다에서 실제 일어난 우메무라 소동을 소재로 한 장편 역사소설이다.

한 작품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와 사람들을 만나고 역사를 조사한 뒤, 40년 넘게 계속 고쳐 썼다.

히다의 역사를 자신의 평생작으로 만든 사람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것 같다.

대표작 : 『山の民』, 『受難者』, 『本郷村善九郎』, 『氷の河』


5. 에나쓰 미요시 ― 오쿠히다에서 태어난 ‘산의 아이’

에나쓰 미요시는 지금의 히다시 가미오카에서 태어났고 다카야마에서 학교를 다녔다.

이후 여러 지역을 옮겨 살았지만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돌아간 곳은 고향 히다였다.

대표작 『下々の女』에서는 메이지·다이쇼·쇼와 세 시대를 살아간 한 여성의 생애를 히다의 역사와 풍속을 배경으로 그렸다.

그녀는 고향을 무대로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飛騨雪解』에 실린 글에서는 맑은 날 산 위에서 야쿠시다케와 기타노마타다케를 바라보며 자신이 ‘오쿠히다에서 태어난 산의 아이’라는 사실을 기뻐하는 대목도 나온다.

이번 여행에서 직접 바라본 북알프스의 산들을 이 지역 출신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고향 풍경으로 보고 살았던 것이다.

대표작 : 『下々の女』, 『脱走記』, 『流離の記』, 『飛騨雪解』


6. 다나카 스미에 ― 산을 통해 히다와 만난 작가

다나카 스미에는 히다 출신이 아니다.

도쿄 출생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였지만 무엇보다 산을 무척 좋아한 사람이었다.

오랫동안 일본의 산을 직접 걸었고, 산에서 만난 꽃과 풍경을 기록했다.

대표작 『花の百名山』에는 서호타카다케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 그녀와 히다의 인연은 출생지가 아니라 북알프스의 산을 통해 이어졌다.

문학산책로에 세워진 문학비에서도 다카야마의 오래된 목조건축과 그곳에 살아온 사람들의 역사와 마음을 바라본 글을 만날 수 있다.

히다에서 태어난 사람은 아니지만, 산을 사랑하고 다카야마라는 오래된 도시가 가진 아름다움을 글로 남긴 문인이었다.

대표작 : 『花の百名山』, 『新・花の百名山』, 『夫の始末』


7. 오도리 유키오 ― 히다를 기록한 향토문화인

오도리 유키오는 다른 작가들과 성격이 조금 다르다.

소설가라기보다는 향토사가이자 하이쿠인, 지역문화인이라고 하는 편이 맞다.

오가키에서 태어났지만 다카야마의 오도리 집안으로 들어왔고, 이후 다카야마시 공무원과 지역 언론인, 문화단체 활동을 하며 평생 이 지역과 함께했다.

다카야마시문화협회 회장을 역임했고, 하이쿠 잡지 『飛騨』의 대표도 맡았다.

『飛騨百景』, 『図説飛騨の歴史』 등을 통해 히다의 역사와 풍경을 기록했고, ‘히다의 장인’에 관한 연구에도 참여했다.

문학산책로에 그의 비가 있는 것은 유명한 소설 한 편 때문이라기보다 히다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데 평생 힘을 보탠 지역문화인이라는 의미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대표 저작 : 『飛騨百景』, 『図説飛騨の歴史』


8. 다키이 고사쿠 ― 히다 장인의 아들

다키이 고사쿠 역시 다카야마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목수의 동량이었고 아버지는 목수에서 사시모노 장인이 된 사람이었다.

말 그대로 ‘히다의 장인’ 집안의 아들이었다.

젊어서 고향을 떠났지만 이후에도 다카야마와 노리쿠라, 히다 지역을 여러 차례 찾았다.

작품 속에서도 어린 시절 고향의 겨울풍경과 가족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대표작 『無限抱擁』은 일찍 세상을 떠난 첫 번째 아내와의 삶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며, 『父』에는 장인이었던 아버지의 모습도 담겨 있다.

1971년에는 다카야마시 명예시민이 되었고, 히다노사토에는 그의 문학비도 세워졌다.

고향을 떠나 살았지만 그의 글 속에는 평생 히다가 남아 있었다.

대표작 : 『無限抱擁』, 『父』, 『積雪』, 『野趣』, 『俳人仲間』


9. 문학산책로가 보여준 히다의 또 다른 얼굴

여덟 사람을 하나씩 들여다보고 나니 이 길의 의미가 조금 달리 보였다.

후쿠다 유사쿠, 에마 슈, 다키이 고사쿠처럼 다카야마에서 태어난 사람이 있었고, 하야후네 치요와 에나쓰 미요시처럼 히다에서 보낸 시간과 풍경을 자기 문학의 뿌리로 삼은 사람이 있었다.

오도리 유키오는 히다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했고, 다나카 스미에는 산을 통해 이곳과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이노우에 야스시는 호타카를 『빙벽』의 무대로 삼고, 다카야마를 위한 글까지 남겼다.

그러고 보니 히다는 단순히 산이 높은 곳만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눈 많은 산속에서 집을 짓고 살았고, 장인들은 나무를 다뤘으며, 그 속에서 누에를 기르고 농사를 지으며 한 세대를 다음 세대로 이어갔다.

그리고 작가들은 그 산과 사람, 생활과 역사를 글로 남겼다.

히다노사토로 이어지는 문학산책로는 어쩌면 옛집을 만나기 전에 먼저 그 집과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로 만나는 길이었던 셈이다.

여행 당시에는 안내판 앞에서 이노우에 야스시 한 사람만 알아봤다.

“어, 이노우에 야스시네.”

그 한마디가 전부였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온 뒤 여덟 명을 하나씩 찾아보고 나니, 그 안내판 하나에도 내가 모르고 지나쳤던 히다의 이야기가 꽤 많이 들어 있었다.

여행은 현장에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그때는 그냥 지나쳤던 표지판 하나, 이름 하나가 집에 돌아와 다시 찾아보고 읽는 순간 또 다른 여행이 된다.

이번 북알프스 여행도 그렇게 조금 더 길어졌다.


― 아내와 함께하는 일본 북알프스 여행기 특별기고

[참고자료]

※ 문학산책로의 여덟 문인 명단은 2026년 7월 20일 현장에서 직접 촬영한 「飛騨民俗村 文学散歩道」 안내판을 기준으로 하였다.

1. 高山市図書館 煥章館 近代文学館
- 다카야마를 대표하는 근대문학자 소개
- 다키이 고사쿠, 에마 슈, 후쿠다 유사쿠, 하야후네 치요 관련 자료
- https://www.library.takayama.gifu.jp/

2. 岐阜県図書館
- 기후·히다 출신 문인 자료
- 하야후네 치요, 에마 슈, 에나쓰 미요시, 다키이 고사쿠 등의 생애와 작품세계 확인
- https://www.library.pref.gifu.lg.jp/

3. 高山市
- 히다민속촌 문학산책로 정비공사, 측량설계, 포장공사 관련 자료
- https://www.city.takayama.lg.jp/

4. 井上靖記念文化財団
- 이노우에 야스시 작품 및 발표자료
- 「飛騨高山・讃」의 다카야마시 시비문 관련 기록 확인
- https://www.inouezaidan.or.jp/

5. 新潮社
- 이노우에 야스시 『氷壁』 및 작품 해설
- 호타카 산악지대와 『빙벽』의 관계 확인
- https://www.shinchosha.co.jp/

6. 国立国会図書館サーチ
- 후쿠다 유사쿠 등 각 문인의 저서와 출판기록 확인
- https://ndlsearch.ndl.go.jp/

7. CiNii Research
- 오도리 유키오 등 향토문화인과 관련 저서·연구자료 확인
- https://cir.nii.ac.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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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나고야 - 다카야마·게로·시라카와고, 2026~2027년 최신판 ㅣ 리얼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
최영근.나보영 지음 / 한빛라이프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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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하는 일본 북알프스 여행기, 끝.

여행 4일차, 2026.07.20.(월요일)

1. 새벽 4시, 월드컵 결승전으로 시작한 마지막 날

여행 마지막 날은 새벽 4시부터 시작됐다.

2026 FIFA 월드컵 결승전, 스페인과 아르헨티나의 경기였다.

이번 월드컵이 시작되고 나서야 나는 마님이 이렇게 월드컵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처음 알았다. 여행을 와서 알게 된 것이 아니라, 대회가 시작한 뒤 집에서도 거의 매일 경기를 챙겨봤다. 특히 메시와 아르헨티나를 응원하는 팬이었다.

반면 나는 이번 대회 경기를 한 번도 보지 않았다. 결승전이 처음이었다.

막상 경기를 보니 내 눈에는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몸이 전체적으로 무거워 보였다. 스페인은 젊은 선수들이 계속 움직이며 짧게 공을 돌렸지만 아르헨티나는 긴 패스가 많았고, 공격이 풀리지 않으면 다시 골키퍼에게 공을 돌리는 시간이 길었다.

“아르헨티나는 왜 이렇게 안 뛰어. 스페인은 발발이처럼 뛰어댕기는디.”

마님이 응원하는 팀이니 나도 당연히 아르헨티나를 응원했다. 거기에 아르헨티나가 과거 스페인의 식민지였다가 독립한 역사까지 떠올리니, 옛 지배국과 옛 식민지가 월드컵 결승에서 맞붙는 구도도 묘하게 아르헨티나 쪽에 마음이 더 가게 했다. 아르헨티나는 1816년 에스파냐 왕정으로부터의 정치적 독립을 선언했다.

하지만 경기는 영 시원치 않았다.

결국 아르헨티나는 한 명이 퇴장당한 뒤 연장전까지 가서 0대 1로 석패했다.

여행 마지막 날 아침부터 마님은 응원하던 아르헨티나가 지는 것을 봐야 했다.


2. 마지막 호텔 조식, 김치 한 조각이 아쉬운 밥상

경기가 끝난 뒤 오전 7시가 조금 넘어 호텔 2층 식당으로 내려가 조식을 먹었다.

도큐 스테이 히다 다카야마 무스비노유에서 먹는 마지막 아침이었다.

달걀말이와 생선, 몇 가지 반찬, 미소된장국을 가져오고 흰밥을 한 그릇 담았다. 일본을 여행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쌀밥 자체는 꽤 맛있다. 이날 아침밥도 윤기가 돌고 밥맛이 좋았다.

그런데 역시 내 입맛에는 밥하고 같이 먹을 만한 반찬이 조금 부족했다.

“김치만 있으믄 딱인디.”

이럴 때는 한국 사람이라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아침을 먹은 뒤 마님은 호텔 대욕장에서 목욕을 하며 쉬겠다고 했다. 전날 노리쿠라다케 산행까지 마쳤으니 마님에게는 쉬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혼자 마지막 아침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목적지는 히다노사토(飛驒の里)였다.


3. 혼자 나선 마지막 아침 산책

7시 40분쯤 호텔을 나섰다.

아침이라고는 하지만 햇볕이 벌써 강했다. 히다노사토까지는 천천히 걸어서 가기로 했다.

호텔이 다카야마역 바로 옆이니 다카야마역을 기준으로 보면 히다노사토까지 도보거리는 약 2.2km, 걸어서 대략 30~35분 정도다. 단순 왕복으로만 계산하면 약 4.4km에 걷는 시간은 1시간~1시간 10분 정도다.

호텔 주변에는 머큐어 호텔과 다카야마 오완 같은 숙박시설이 보였고, 조금 더 걸어가자 다카야마역과 철길도 내려다보였다.

도심을 벗어나면서 풍경은 조금씩 달라졌다.

노히버스 차고지도 지나갔다.

초록색 무늬가 들어간 노히버스들이 여러 대 줄지어 서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참 신세를 많이 진 녀석들이었다.

가미코치로 갈 때도, 히라유에서 움직일 때도, 노리쿠라다케로 오갈 때도 노히버스를 이용했다. 여행의 중요한 이동마다 이 버스가 함께했다.

차고지에 가지런히 서 있는 녀석들을 보니 괜히 정이 갔다.

“니들 덕분에 여기저기 잘 댕겼다.”

이제 여행을 마치고 다카야마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사흘 동안 그렇게 신세를 졌던 노히버스 녀석들과 헤어지는 것마저 조금 아쉬웠다.

다카야마역 주변의 현대적인 건물과 상가를 지나자 곧 주택가와 작은 수로가 이어졌다.

그 뒤로는 논과 밭이 나타나고, 아침햇살을 받은 벼가 선명한 초록빛을 띠고 있었다.

다카야마의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났는데도 금세 산촌 분위기가 났다.

길가에는 오래된 목조 창고가 있었고, 집과 논 사이로 좁은 수로가 흐르고 있었다.

파란 하늘 아래 집과 논, 산이 이어지는 모습이 한가로웠다.

그러다 도로 안내표지판에서 반가운 글자를 발견했다.

백천향(白川郷), 시라카와고.

지난해 1월 겨울여행 때 다녀왔던 곳이다. 눈 덮인 합장촌을 돌아다녔던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 전혀 다른 계절에 다카야마 외곽을 걷다 도로표지판에서 그 이름을 다시 보니 반가웠다. 백천향, 시라카와고.

“어, 백천향이네.”

이번에는 그쪽으로 가는 길이 아니었지만 표지판의 ‘白川郷’ 세 글자만으로도 지난해 여행의 장면들이 잠깐 떠올랐다.

조금 더 걸어가다 이번에는 무궁화꽃을 만났다.

일본의 산골 마을을 걷다가 뜻밖에 무궁화를 보니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보던 꽃인데 이국땅에서 만나니 느낌이 전혀 달랐다. 멀리 일본에 와서 우리나라 꽃을 마주하니 괜스레 반갑고 감개가 무량했다.

아침 산책이라고 하기에는 날씨가 벌써 꽤 더웠지만, 이런 동네 풍경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4. 문학산책로에서 만난 이노우에 야스시

히다노사토로 이어지는 길에서 히다민속촌 문학산책로(飛驒民俗村 文学散歩道) 안내판을 만났다.

안내판에는 다카야마와 히다 지역에 인연이 있는 문인들의 문학비가 산책로를 따라 세워져 있었다.

안내판에 적혀 있는 문인은 모두 여덟 명이었다.

후쿠다 유사쿠(福田夕咲), 하야후네 치요(早船ちよ), 에마 슈(江馬修), 에나쓰 미요시(江夏美好), 다나카 스미에(田中澄江), 오도리 유키오(小鳥幸男), 다키이 고사쿠(瀧井孝作), 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

대부분 나에게는 낯선 이름이었지만 그중 하나는 바로 알아봤다.

이노우에 야스시.

그의 작품은 딱 한 권, 『둔황』을 오래전에 감명 깊게 읽었다.

주인공은 송나라 사람 조행덕(趙行徳)이다. 과거시험에 실패한 조행덕이 우연히 서하 여인과 인연을 맺고 서하문자를 접하면서 서역으로 향하게 된다. 그곳에서 주왕례(朱王礼), 서하의 이원호(李元昊) 등과 얽히며 전쟁과 권력의 소용돌이를 겪고, 점차 둔황의 역사 속으로 들어간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은 것은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둔황의 방대한 경전과 문서들이 어떻게 남게 되었는지를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상상력을 엮어 풀어냈다는 점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다카야마의 아침 산책길에서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의 작가를 다시 만났다.

여행하다 보면 이런 우연한 만남도 생긴다.


5. 히다노사토, 실제 살던 집 안으로 들어가다

오전 8시 30분 무렵 히다민속촌 히다노사토(飛驒民俗村 飛驒の里)에 도착했다.

입구 안내판에 적힌 관람정보는 다음과 같았다.

운영시간 08:30~17:00, 연중무휴
입장료 성인 700엔, 초·중학생 200엔

입장료 700엔을 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히다노사토는 단순히 옛날 집 모양을 새로 만들어놓은 민속촌이 아니었다. 히다 지방에서 실제 사람들이 살았던 전통가옥을 옮겨 보존한 야외민속박물관이다.

근대화와 댐 건설, 산촌 인구 감소, 생활방식의 변화로 오래된 민가들이 철거되거나 사라질 처지에 놓이자 보존가치가 있는 가옥들을 이곳으로 옮겨 복원했다. 사라질 뻔했던 실제 집들을 한곳에 모아 히다 산촌의 생활문화를 함께 보존한 곳인 셈이다.

입구를 지나자 고아미 연못 주변으로 초가지붕을 얹은 집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한여름의 짙은 녹음 속에 오래된 집들이 흩어져 있었고, 연못 주변과 초가지붕에는 칠석 장식이 매달려 있었다.

고아미 연못 주변에 배치되어 있는 갓쇼즈쿠리 가옥들을 보니 시라카와고의 축소판처럼 보였다.

나는 원래 갓쇼즈쿠리, 즉 합장조 가옥과 합장촌을 좋아한다.

지난해 시라카와고에 갔을 때도 마을 풍경 자체가 무척 좋았다. 그때는 실제 가옥 안을 제대로 들어가 보지 못했다.

히다노사토에서는 문이 열린 집은 신발을 벗고 직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일부 가옥은 2층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이게 특히 마음에 들었다.

밖에서는 거대한 삼각형 초가지붕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그 지붕 아래에 어떤 생활공간을 만들고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6. 합장조 가옥의 속살을 보다

특히 구 니시오카가 주택(旧西岡家住宅)이 기억에 남았다.

안내판에 따르면 시라카와고 가즈라 지역에 있던 실제 집으로, 에도시대 후기에 지어진 합장조 가옥이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굵은 나무기둥과 보가 전체 구조를 받치고 있었다.

천장을 올려다보면 목재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지붕 안쪽에서는 굵은 새끼줄로 목재를 단단히 묶어놓은 부분이 그대로 보였다.

못이나 금속철물에 의존하지 않고 목재와 새끼줄을 이용해 큰 지붕구조를 만들어낸 것이 인상적이었다.

2층까지 올라가봤다.

급경사의 지붕 아래인데도 내부에는 생각보다 넓은 공간이 있었고, 이곳에서는 누에를 길렀다.

양잠에 사용했던 시설과 도구, 옛 사진들이 전시돼 있었다. 지붕 아래쪽에는 판을 촘촘히 깔아 누에를 치던 공간이 있었고, 통풍과 채광을 위한 구조도 보였다.

농경지가 넉넉하지 않은 산간지역에서 집의 상층부까지 생업공간으로 활용했던 것이다.


7. 이로리부터 농기구, 소 외양간과 똥통까지

집 안을 돌아다니는 재미가 상당했다.

한가운데에는 이로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어떤 집에서는 지금도 이로리에 실제 불을 피우고 있었다.

검게 그을린 기둥과 천장 아래에서 작은 장작불이 타고 있었고, 그 위에는 솥을 걸 수 있는 시설이 있었다. 주위로는 사람들이 둘러앉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집 안에는 다다미방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짚으로 만든 옷과 신발, 바구니, 농기구, 목재 운반도구, 눈길에서 사용하던 썰매 등이 곳곳에 전시돼 있었다.

농기구도 상당히 다양했다.

써레와 비슷한 도구, 괭이, 목재를 운반하던 장비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눈이 많은 지역답게 짐과 목재를 실어 나르던 썰매도 보였다.

집 옆 외양간에는 소 모형도 만들어놓았다.

“소도 집에서 같이 키웠구먼.”

더 돌아보니 옛 화장실과 분뇨를 모으던 시설까지 남겨놓았다.

“똥통도 있네. ㅋㅋ”

깨끗하게 꾸민 옛집만 보여주는 곳이 아니었다.

밥을 짓고, 불을 피우고, 누에를 치고,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고, 배설물을 처리했던 공간까지 실제 삶의 방식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다미방과 게다 같은 옛 신발, 각종 생활도구까지 함께 보고 있으니 당시 사람들이 이 집에서 어떻게 살았는지가 훨씬 구체적으로 느껴졌다.


8. 눈의 고장 히다에서 살아가는 방법

가옥들을 둘러보다 보니 눈 많은 히다에서 살아가기 위해 집과 생활방식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자연스럽게 보였다.

긴 겨울을 보내려면 눈에 견딜 수 있는 지붕뿐 아니라 땔감을 마련하고 목재를 옮기는 방법, 농사를 짓기 어려운 계절에 생계를 이어가는 방법도 필요했다.

양잠이 집의 위층까지 올라간 것도 그런 생활의 한 모습이었고, 목재와 짚으로 만든 여러 생활도구 역시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최대한 활용한 결과였다.

밖에서 보는 합장조 가옥이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면, 안에서 보는 합장조 가옥은 눈 많은 산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낸 생활의 공간이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종루와 신사, 도리이도 있었고, 고아미 연못 건너편에서는 초가지붕 집들이 숲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보였다.

시라카와고가 지금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합장촌 전체의 풍경을 보는 곳이라면, 히다노사토는 가옥 안으로 직접 들어가 구조와 생활공간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는 곳이라는 차이가 있었다.

나한테는 이 점이 상당히 좋았다.


9. 관람시간 40~50분, 시간이 부족해 남은 아쉬움

문제는 시간이었다.

집 하나만 제대로 보려고 해도 1층을 살피고 2층까지 올라가 지붕구조와 전시된 생활도구를 하나하나 봐야 했다.

그런데 이날은 여행 마지막 날이었다.

호텔로 돌아가 체크아웃을 해야 했다.

짐은 아침에 일어나서 이미 거의 다 정리해놓은 상태였지만, 돌아가 샤워도 해야 하고 남은 물건도 챙겨야 했다.

결국 히다노사토 관람시간은 40~50분 정도였다.

들어가 보지 못한 집도 많았고, 들어간 집에서도 안내판과 전시물을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지는 못했다.

그게 아쉬웠다.

나는 원래 이런 옛집을 좋아한다.

특히 일본 북알프스처럼 눈이 많이 내리는 산간지역에서 사람들이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어떤 집을 만들고,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이 재미있다.

시라카와고에서는 제대로 하지 못했던 집 내부 관람을 히다노사토에서는 해볼 수 있었다.

다음에 다시 이곳을 찾을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조금 더 천천히 보지 못한 것이 더욱 아쉽게 남았다.


10. 한여름 다카야마의 더위, 스타벅스를 거쳐 호텔로

히다노사토를 나와 호텔 방향으로 다시 걸었다.

아침 산책으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아침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더웠다.

햇볕이 따갑고 그늘을 벗어나면 열기가 그대로 몸으로 올라왔다.

돌아오는 길에는 다시 주택가와 논길을 지났다.

수로에는 풀이 무성했고, 파란 나팔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길에서 맞은편으로 혼자 걸어오던 서양인 여성 여행자를 만났다.

눈이 마주치자 먼저 밝게 인사를 했다.

“Hello!”

나도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별것 아닌 한마디였지만 낯선 여행지에서 모르는 여행자와 이렇게 인사를 주고받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스타벅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땀이 잔뜩 났다.

매장에 있던 직원들은 모두 젊은 여직원들이었는데 하나같이 친절했고, 무엇보다 인사성이 너무 밝았다.

들어갈 때부터 주문하고 나올 때까지 마주치는 직원들마다 환한 표정과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상큼하고 발랄하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아가씨들이었다.

억지로 친절한 표정을 짓는 느낌이 아니라 매장 전체 분위기 자체가 밝았다. 뜨거운 햇볕 아래 한참을 걷고 들어갔는데 그렇게 환하게 인사를 받으니 기분도 덩달아 좋아졌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벤티, 호텔에서 기다리고 있을 마님 것은 그란데로 주문했다.

스타벅스에 앉아 마신 것은 아니었다.

커피 두 잔을 받아 들고 그대로 호텔을 향해 다시 걸었다.

10시가 되기 전에 호텔에 도착했다.

마님은 대욕장에서 목욕도 하고 쉬고 있었고, 나는 히다노사토까지 왕복으로 걸어갔다 온 덕분에 완전히 땀범벅이었다.

이날 아침 산책을 기록한 자료를 확인해보니 총거리 7.5km, 소요시간 2시간 15분 04초, 평균속도 3.4km/h였다. 히다노사토를 향해 올라갔다 내려온 길답게 최고고도 709m, 총 획득고도 228m도 기록돼 있었다.

여행 마지막 날 아침이라고 가볍게 나선 산책이었지만, 막상 기록을 놓고 보니 꽤 제대로 걸었다.

커피를 내려놓고 곧바로 샤워부터 했다.

그렇게 다카야마에서의 마지막 아침 일정이 끝났다.


11. 체크아웃, 다카야마와 작별하다

샤워를 하고 아침에 미리 정리해놓은 짐에 남은 물건들을 마저 챙겼다.

사흘 동안 머물렀던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했다.

가미코치와 노리쿠라다케를 오갈 때 계속 이곳으로 돌아왔고, 아침마다 이곳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숙소를 나서니 이제 정말 여행이 끝나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카야마역으로 향했다.

역 앞 광장 분수대에는 비둘기 두 마리가 물속에 들어가 있었다.

녀석들도 더웠던 모양이다.

사람만 더운 게 아니었다.

분수대 물속에 발을 담그고 돌아다니는 비둘기들을 보니 웃음이 났다.


12. 특급 히다 8호, 산을 내려가다

우리가 탈 열차는 특급 히다 8호였다.

다카야마 11시 35분 출발, 나고야 도착 예정시각은 14시 04분.

좌석은 8호차 14C와 14D였다.

운임과 특급요금을 포함해 두 사람 표가 각각 6,340엔이었다.

플랫폼으로 내려가니 특급 히다 8호는 이미 들어와 얌전히 대기하고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짐을 끌고 온 승객들도 하나둘 열차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출발시간이 되어 열차에 올라 자리에 앉았다.

다카야마에서 나고야까지 다시 산을 내려가는 길이었다.

차창 밖으로는 논과 마을, 산이 계속 이어졌다.

강가에서는 물속에 들어가 릴낚시를 하는 사람도 보였다.

큰 바위 사이로 물살이 세게 흐르는데, 한 사람이 물속에 서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야, 이렇게 더우니께, 저 션헌 물에 들어가 낚시를 허니 을매나 좋을까나? ㅎㅎ”

철교와 작은 마을, 산골 풍경이 빠르게 지나갔다.


13. 기후를 지나며 다시 만난 국보 이누야마성

열차가 기후 주변으로 내려오면서 풍경은 점점 도시로 바뀌었다.

그러다 달리는 열차의 차창 너머로 낯익은 성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국보 이누야마성(犬山城)이었다.

지난해 1월에 직접 다녀왔던 곳이다.

이누야마성은 1537년 오다 노부나가의 숙부인 오다 노부야스(織田信康)가 기존 기노시타성을 옮겨 현재의 위치에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기소강을 사이에 두고 오와리와 미노가 맞닿는 전략적 요충지였던 만큼 전국시대에는 여러 차례 전투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옛 모습을 간직한 일본의 현존 12천수 가운데 하나이며, 천수는 국보로 지정돼 있다.

지난해 찾아갔을 때는 성 아래 성하마을을 지나 직접 천수각까지 올라갔다.

천수각 안의 계단은 좁은 데다 경사도 상당히 급했다. 거의 기어오른다는 느낌으로 가파른 나무계단을 타고 한 층 한 층 올라가 마지막 꼭대기에 닿았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올라간 뒤 밖으로 나서는 순간에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발아래로는 이누야마 성하마을이 내려다보이고, 성 바로 북쪽 절벽 아래로는 기소강(木曽川)이 넓게 흘렀다. 강 너머로는 기후 쪽 땅이 펼쳐지고 멀리 기후성 방향까지 시야가 이어졌다.

높은 천수각 위에서 사방으로 탁 트인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정말 장쾌하고 시원했다.

그러면서 문득 지금 내가 서 있던 곳이 단순히 전망 좋은 관광지가 아니라 전국시대의 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기소강 건너에서 적군이 강을 건너 공격해오고, 성 아래에서는 이를 막아내려는 군사들이 뛰어다녔을 것이다.

잠시 상상을 하고 있으니 강을 건너오는 적들의 함성과 성을 지키는 군사들의 고함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듯했다.

그때 그렇게 천수각 꼭대기에서 내려다봤던 이누야마성을 이번에는 기차를 타고 가다 차창 너머로 멀리서 다시 만난 것이다.

“자기야, 저기 이누야마성이네. 작년에 우리 올라갔었자너”

작년에 내 발로 성하마을을 지나 천수각 꼭대기까지 올라갔던 성을 이번 여행에서는 달리는 기차의 차창 너머로 스쳐 지나가며 보게 되니 더욱 반가웠다.

같은 장소를 다른 계절, 다른 위치, 다른 방식으로 다시 보는 것도 여행의 재미다.


14. 나고야에서 먹은 마지막 일본 점심

오후 2시가 조금 넘어 나고야역에 도착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 JR 나고야 다카시마야 13층으로 올라갔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돈가스 전문점 게이테이(恵亭)였다.

나는 미소 히레카츠를 주문했다. 2,080엔.

마님은 로스카츠 정식을 주문했다. 1,800엔.

합계 3,880엔이었다.

나고야니까 마지막 점심으로 미소카츠를 먹는 것도 괜찮았다.

두툼한 돈가스에 진한 미소소스가 올라갔다.

아침부터 히다노사토까지 걸어갔다 오고, 열차를 타고 산을 내려왔으니 점심도 제법 맛있게 먹었다.


15. 다시 뮤스카이를 타고 중부국제공항으로

점심을 먹은 뒤 메이테쓰 나고야역으로 이동했다.

공항으로 가는 뮤스카이 시간표를 확인했다.

15시 49분 출발하는 뮤스카이가 있었다.

열차를 타고 중부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여행 첫날에도 이 열차를 타고 공항에서 나고야로 들어왔는데, 나흘 만에 반대방향으로 다시 타게 됐다.

나고야 도심을 빠져나가자 창밖으로 다시 바다와 항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중부국제공항은 바다 위 인공섬에 있는 공항이라 열차가 공항으로 접근할수록 주변 풍경이 완전히 바뀐다.

바다와 항구, 작은 배들이 보였고, 공항섬에 가까워질수록 수면이 넓게 펼쳐졌다.

멀리 바다 위로 작은 배가 달리며 흰 물보라를 만들고 있었다.


16. 중부국제공항, 여행의 마지막 대기

공항에 도착해 출국수속을 했다.

탑승할 항공편은 진에어 LJ348편. 인천행이었다.

내가 흔히 ‘청바지항공’이라고 부르는 진에어였다.

이번 항공편은 대한항공과 공동운항으로 표시된 편이기도 했다.

예정 출발시각은 오후 7시였다.

탑승구 전광판에는 18시 40분부터 탑승을 시작한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수속을 마치고 공항 안에서 기다렸다.

창밖으로 해가 천천히 내려앉고 있었다.

구름 사이로 붉은 햇빛이 번지더니 주기장에 세워진 일본항공 여객기 뒤편으로 해가 걸렸다.

며칠 동안 그렇게 맑고 뜨거웠던 여름 하늘이 여행을 마치는 순간에는 주황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17. 20분 늦은 출발, 비와호 상공으로

비행기는 예정시각보다 약 20분 늦게 이륙했다.

활주로를 이동하는 동안 창밖에서는 다른 항공기 한 대가 석양을 배경으로 착륙하고 있었다.

어둠이 내려앉기 직전의 하늘과 활주로의 불빛이 겹치면서 여행의 마지막 장면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비행기는 고도를 높이며 일본 열도 위로 올라갔다.

아래 도시에는 하나둘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해안과 항구의 윤곽도 점점 불빛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비행기는 비와호 상공을 가로질렀다.

비와호 역시 낯선 곳이 아니었다.

지난해에는 교토를 거쳐 직접 비와호까지 다녀왔다.

그때 찾아갔던 시라히게신사에는 붉은 도리이가 실제로 비와호 물 위에 서 있다.

육지에서 호수 쪽을 바라보면 넓은 물 한가운데 도리이가 서 있고 그 뒤로 비와호가 끝없이 펼쳐지는 풍경이었다.

비와호 주변은 우리 역사와도 인연이 깊은 곳이다.

고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도래인들이 정착했던 지역 가운데 하나이고, 오미 일대에는 백제를 비롯한 한반도계 도래인과 관련된 흔적과 이야기가 여러 곳에 남아 있다.

일본 고대사에서 말하는 도래인은 단순히 바다를 건너온 사람이 아니라 당시 한반도의 기술과 문화, 지식을 일본으로 전했던 사람들이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를 알고 비와호 주변을 돌아보니 지난해에도 이 지역이 단순한 일본의 큰 호수로만 보이지 않았다.

작년에는 그 호숫가를 직접 걸었고 시라히게신사의 물 위 도리이를 바라봤다.

이번에는 북알프스 여행을 마치고 그 비와호 위를 비행기로 날아갔다.

참 묘한 기분이었다.

아래 도시의 불빛은 점점 더 선명해졌고, 날개 너머 수평선에는 붉은 노을이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


18. 오후 9시 인천공항, 대전 집까지 마지막 여정

비행기는 오후 9시쯤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한국에 돌아왔으니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마지막 고비가 남아 있었다.

짐이 안 나왔다.

착륙부터 수하물을 찾는 데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겨우 짐을 찾았다.

공항을 빠져나오니 이미 밤이 깊었다.

이제 집까지 가야 했다.

인천공항에서 집까지는 다시 두 시간 반.

그래도 밤이라 도로에는 차가 많지 않았다.

“가자. 인자 집에 가는겨.”

차를 몰고 고속도로에 올라갔다. 차도 별로 없었다.

그리고….머 빠지게 밟았다. ㅎㅎ

집에까지 두시간 걸렸다.

물론 안전하게 갈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부지런히 달렸다.


19. 북알프스 안녕

새벽 4시 월드컵 결승전으로 시작했던 여행 마지막 날.

아침에는 혼자 다카야마 거리를 걸어 히다노사토의 옛집 안으로 들어갔다.

가는 길에는 이번 여행 내내 신세를 많이 졌던 노히버스 녀석들이 모여 있는 차고지를 지나고, 지난해 겨울 찾아갔던 백천향이라는 글자가 적힌 도로표지판도 다시 만났다.

이국땅에서 만난 무궁화도 반가웠고, 문학산책로에서는 뜻밖에 『둔황』의 작가 이노우에 야스시의 이름도 발견했다.

히다노사토에서는 눈 많은 산속에서 사람들이 어떤 집을 짓고 살았는지, 어떻게 누에를 키우고, 소를 기르고, 불을 피우며 겨울을 견뎠는지를 직접 볼 수 있었다.

아침 산책이라고 가볍게 나섰지만 돌아와 기록을 확인해보니 7.5km를 걸었다. 여행 마지막 날까지 참 부지런히도 돌아다녔다.

다시 호텔로 돌아와 마님과 다카야마를 떠났다.

특급 히다를 타고 산을 내려오며 강과 논, 마을을 바라봤고, 지난해 다녀온 국보 이누야마성도 달리는 기차의 차창 너머로 다시 만났다.

나고야 JR 다카시마야 13층 게이테이에서 마지막 점심으로 미소카츠를 먹고, 뮤스카이를 타고 중부국제공항으로 향했다.

해 질 무렵 청바지항공 진에어에 올라 일본을 떠났다.

그리고 작년에 찾아갔던 비와호를 이번에는 하늘에서 지나쳤다.

그렇게 3박 4일 동안의 여행이 하나씩 뒤로 밀려났다.

가미코치의 안개 낀 다이쇼이케.

갓파바시와 아즈사가와.

도쿠사와까지 이어진 숲길.

소나기가 쏟아지던 다케자와습원.

노리쿠라다케의 높은 능선과 구름.

그리고 마지막 아침에 만난 히다노사토의 오래된 합장조 가옥.

이번 여행은 산만 본 여행은 아니었다.

산을 오르고, 계곡을 따라 걷고, 오래된 집 안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도 들여다봤다.

무엇보다 마님과 함께였다.

여행은 끝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밤늦게 집으로 달리는 차 안에서 아마 마음속으로 한 번쯤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잘 놀다 간다.”

그리고 마지막 인사.

북알프스 안녕.

언제 다시 올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다시 오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다이쇼이케의 물안개와 노리쿠라다케의 하늘, 히다의 오래된 집들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아내와 함께한 일본 북알프스 3박 4일 여행, 이렇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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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나고야 - 다카야마·게로·시라카와고, 2026~2027년 최신판 ㅣ 리얼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
최영근.나보영 지음 / 한빛라이프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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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하는 일본 북알프스 여행기

여행 3일차, 2026.07.19.(일)
연휴 인파를 뚫고 오른 노리쿠라다케, 겐가미네와 후지미다케, 다이코쿠다케

ㅇ 소요시간: 3시간 29분 46초
ㅇ 이동거리: 7.5킬로미터
ㅇ 평균속도: 시속 2.4킬로미터
ㅇ 기록상 최고고도: 3,072미터
ㅇ 실제 최고지점: 겐가미네 3,026미터
ㅇ 총 획득고도: 510미터
ㅇ 주요경로: 다타미다이라→쓰루가이케→가타노코야→고다마다케→겐가미네→가타노코야→후지미다케→다이코쿠다케→다타미다이라
ㅇ 버스 대기시간: 호노키다이라 상행 1시간 20분, 다카야마행 약 47분

1. 여행 3일차, 다시 산으로

여행 3일차는 노리쿠라다케로 가는 날이었다. 전날 가미코치에서 다이쇼이케부터 도쿠사와까지 22.4킬로미터를 걸었지만, 아침부터 다시 산으로 향했다.

다카야마에서 호노키다이라로 이동한 뒤, 그곳에서 해발 2,702미터의 다타미다이라로 올라가는 버스로 갈아타는 일정이었다.

일본 3연휴 둘째 날이라 사람이 몰릴 것을 예상해 다카야마 노히버스센터에 일찍 나가 줄을 섰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미코치와 노리쿠라다케, 신호타카 방면으로 가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났다.

“사람 겁나 많어.”

그래도 우리는 일찍부터 줄을 서 있었기 때문에 다카야마에서 버스를 타지 못할 걱정은 하지 않았다.

2. 가미코치행 예비차와 호노키다이라행 버스

승객이 많아지자 노히버스 직원들이 승강장에 나와 목적지별로 사람들을 안내했다.

가미코치로 가는 승객들을 위한 예비차도 투입됐다. 예비차는 사람들이 올라타자 곧바로 만차가 됐고 먼저 출발했다.

우리가 탈 호노키다이라행 버스도 비슷한 시각에 승강장으로 들어왔지만, 정해진 출발시각이 남아 있어 잠시 더 대기한 뒤 출발했다.

버스가 다카야마 시내를 벗어나자 산과 숲이 가까워졌다. 하늘에는 파란색과 흰 구름이 섞여 있었고, 아래쪽 날씨만 보면 산행하기에 더없이 좋아 보였다.

3. 호노키다이라를 가득 채운 인파

호노키다이라에 도착하자 다카야마에서 보았던 것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광경이 펼쳐졌다.

다타미다이라행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승강장 앞과 주차장 일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붉은 지붕의 버스승강장 건물 앞부터 여러 겹의 대기줄이 길게 이어졌다.

주변에는 푸른 스키장 사면과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었지만, 풍경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끝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의 행렬이었다.

“이게 대체 몇 명이여.”

다카야마에서 일찍 출발했으니 비교적 순조롭게 산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호노키다이라에 모여 있던 인파는 예상 범위를 훨씬 넘어섰다.

4. 버스가 계속 떠나도 그대로인 대기줄

다타미다이라행 버스가 승객들을 가득 태우고 한 대씩 출발했다.

첫 번째 버스가 떠나고, 두 번째와 세 번째 버스까지 산으로 올라갔다. 그래도 우리 앞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남아 있었다.

“이제 세 대 갔는디, 앞으로 세 대는 더 가야 탈 수 있을 거 같어.”

호노키다이라에 도착한 지 30분이 넘었지만 탈 차례는 쉽게 오지 않았다. 버스가 한 대 출발할 때마다 줄은 조금씩 앞으로 움직였지만, 뒤에서는 새로운 사람들이 계속 도착했다.

여러 대의 버스가 사람들을 가득 태우고 떠났는데도 전체 대기줄의 길이는 거의 그대로였다.

우리가 실제로 탄 버스는 호노키다이라에서 출발한 일곱 번째 다타미다이라행 버스였다. 버스 한 대에 탑승한 인원을 감안해 단순하게 계산하면, 당시 호노키다이라에는 대략 350~400명가량이 계속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셈이었다.

기다리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고 있었다. 원래 계획한 봉우리들을 모두 돌아볼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젠장, 빌어먹을.”

산에 발을 들여놓기도 전에 기다림으로 진이 빠지기 시작했다.

5. 1시간 20분 만에 일곱 번째 버스 탑승

호노키다이라에 도착한 뒤 1시간 20분이 지나서야 다타미다이라행 버스에 탈 수 있었다.

앞서 여섯 대의 버스가 승객들을 태우고 올라간 뒤에야 우리 차례가 돌아온 것이다.

버스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니 우리가 기다렸던 자리 뒤로도 여전히 긴 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일곱 대의 버스가 출발했는데도 대기 행렬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이제 탔다. 한 시간 이십 분 웨이팅.”

버스가 움직이자 그제야 노리쿠라다케로 가고 있다는 실감이 났다. 호노키다이라의 건물과 주차장이 멀어지고, 버스는 산비탈을 따라 이어지는 좁은 도로로 들어섰다.

6. 터널과 사면보강공사가 이어진 오름길

호노키다이라를 출발한 버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공사구간을 만났다.

도로 한쪽에는 교통을 통제하는 안내원이 서 있었고, 터널공사와 사면보강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터널 입구에는 대형 환기설비가 연결되어 있었고, 주변에는 크레인과 공사장비, 안전시설이 빼곡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급경사 사면에는 낙석과 붕괴를 막기 위한 철망과 보강시설이 이어졌다. 산악지대에 도로를 만들고 유지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설과 관리가 필요한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공사구간을 지나자 도로는 본격적으로 고도를 높였다. 산허리를 따라 짧은 간격으로 방향을 바꾸며 끝없이 올라갔다.

이동경로를 기록한 지도에서도 도로가 수없이 겹쳐진 지그재그 선으로 나타났다.

“이 길은 구절양장이라는 말로도 표현이 안 될 만큼 꼬불꼬불혀.”

7. 낭떠러지 위의 산악도로

버스는 급커브를 만날 때마다 속도를 크게 낮추었다.

도로 한쪽에는 가파른 산비탈이 솟아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깊은 계곡과 낭떠러지가 펼쳐졌다. 조금 전 지나온 도로가 한참 아래에서 다시 꺾여 이어지는 모습도 내려다보였다.

낭떠러지 가장자리를 통과하는 구간에서는 버스 안에 앉아 있어도 긴장감이 느껴졌다.

“낭떠러지 옆을 지날 때는 참 쫄깃허구먼.”

구름은 산허리를 타고 빠르게 움직였다. 잠시 계곡과 숲이 선명하게 보이다가도 곧 구름이 밀려와 시야를 가렸다. 도로는 그 구름 사이를 뚫고 계속 위로 올라갔다.

반대편에서는 다타미다이라를 출발한 버스가 좁은 도로를 따라 내려왔다. 서로 마주친 두 버스는 속도를 낮추고 조심스럽게 비켜 갔다.

8. 자전거로 오르는 사람들

그 험한 오르막을 자전거로 올라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파른 도로에서 몸을 앞으로 숙인 채 천천히 페달을 밟고 있었다. 급커브와 긴 오르막, 낭떠러지가 이어지는 길을 자신의 힘만으로 오르는 모습은 놀라웠다.

“참내, 여기를 자전거로 올라가는 사람도 있네. 대단허구먼.”

버스로 올라가면서도 아찔하게 느껴지는 길이었다. 그 길을 자전거로 오르는 사람들을 보니 산의 높이와 도로의 경사가 더욱 실감났다.

도로를 따라 터널과 옹벽, 낙석방지시설과 사면보강시설이 계속 나타났다. 아름다운 풍경 못지않게 그 산을 뚫고 길을 낸 사람들의 노력이 눈에 들어왔다.

“이 길을 만든 일본 토목기술자와 근로자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오랫동안 도로를 설계하고 공사를 감독했던 경험 때문인지, 산의 풍경과 함께 도로의 선형과 구조물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다타미다이라로 올라가는 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토목구조물이었다.

9. 바람이 몰아치는 해발 2,702미터 다타미다이라

굽이진 산악도로 끝으로 다타미다이라의 건물과 버스주차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타미다이라는 해발 2,702미터에 자리하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호노키다이라와는 공기와 풍경이 완전히 달랐다.

산 위에는 차가운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었다. 아래쪽에서는 한여름 날씨였지만, 해발 2,700미터가 넘는 다타미다이라는 제법 추웠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가방에서 바람막이를 꺼내 입었다.

산 위에는 안개와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다. 주변 봉우리는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구름 사이로 일부만 보였다.

다타미다이라 입구의 쓰루가이케는 짙은 녹색빛 물을 담고 있었다. 주변에는 낮은 관목과 고산식물이 퍼져 있었고, 돌과 자갈 사이에서는 분홍색 꽃들이 피어 있었다.

사면에는 한여름인데도 넓은 잔설이 남아 있었다. 눈 위에는 스키를 타거나 설원을 오르는 사람들도 보였다. 7월의 여름 산에서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눈밭을 바라보는 독특한 풍경이었다.

10. 늦어진 산행, 겐가미네 우선

원래 계획은 겐가미네뿐 아니라 다타미다이라 주변의 여러 봉우리를 연결해 걷는 것이었다.

그러나 호노키다이라에서 1시간 20분을 기다리면서 산행시간이 크게 줄었다. 우선 노리쿠라다케의 최고봉인 겐가미네를 확실히 다녀오는 것으로 계획을 바꾸었다.

나머지 봉우리는 겐가미네에서 내려온 뒤 남은 시간을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오늘은 겐가미네만 다이렉트로 빼야겄어.”

다타미다이라를 출발해 가타노코야와 겐가미네 방향으로 향했다. 초반에는 비교적 완만한 길이 이어졌지만, 고도를 높일수록 길은 돌과 자갈이 많은 산길로 바뀌었다.

11. 가타노코야와 겐가미네 등산로 입구

가타노코야 부근에 도착하자 주변 풍경이 더욱 거칠어졌다.

길옆에는 ‘肩の小屋’와 ‘剣ヶ峰口’라고 적힌 안내판이 서 있었다. 이곳부터 본격적인 겐가미네 등산로가 시작됐다.

초반에는 낮은 관목 사이로 길이 이어졌지만, 조금 올라가자 식생은 줄어들고 크고 작은 화산암이 뒤섞인 비탈이 나타났다.

등산객도 엄청나게 많았다. 연휴 인파가 다타미다이라 버스승강장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산길까지 그대로 이어진 셈이었다.

호노키다이라에서 잃은 시간을 만회하려고 평소보다 걸음을 조금 재촉했다. 전날 가미코치에서 22.4킬로미터를 걸었던 마님에게는 결코 쉬운 일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마님은 힘든 내색 없이 계속 잘 따라왔다.

“어제 힘들었을틴디 잘 따라와줘서 고맙구먼.”

12. 거친 돌길과 끝없는 등산객 행렬

경사가 가팔라질수록 발밑의 돌도 커졌다.

흙길은 거의 사라지고 검은색과 갈색의 바위가 뒤엉킨 길이 계속됐다. 일부 구간에는 나무계단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대부분은 돌 사이에서 발 디딜 곳을 찾아 올라가야 했다.

올라가는 사람들의 행렬은 능선을 따라 길게 이어졌다. 내려오는 등산객도 끊이지 않아 산 전체가 사람으로 가득한 것처럼 보였다.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보이다가 갑자기 안개가 밀려왔고, 조금 전까지 보이던 능선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다 바람이 불어 안개가 걷히면 정상부와 화산암 사면이 다시 선명하게 나타났다.

13. 화구호와 한라산 백록담의 기억

고도를 높이자 능선 아래 화구 안쪽으로 커다란 곤겐이케가 나타났다.

호수 주변에는 한여름에도 잔설이 남아 있었다. 검은 화산암과 흰 눈, 푸른빛을 띤 물이 한곳에 겹쳐진 풍경은 장관이었다.

산 위에서 내려다본 화구호와 화산지형은 한라산 백록담을 오르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한라산 백록담 올라가는 거랑 분위기가 비슷허구먼.”

진달래밭대피소를 지나 백록담 정상부로 올라가던 길과 닮아 있었다. 나무가 사라진 사면과 화산암, 정상까지 길게 이어진 사람들의 행렬, 화구 안쪽을 내려다보며 걷는 모습이 비슷했다.

다만 노리쿠라다케의 날씨는 잠시도 한 모습으로 머물지 않았다.

곤겐이케가 온전히 모습을 드러낸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안개가 밀려와 수면을 덮었다. 다시 바람이 불면 구름이 갈라지고 호수와 잔설이 나타났다.

“산 날씨가 참 변화무쌍혀. 안개가 왔다가 사라졌다 허는구먼.”

14. 정상까지 이어진 긴 행렬

겐가미네 정상이 가까워지자 산길은 더욱 좁고 가팔라졌다.

멀리 정상 위의 작은 건물과 도리이가 보였지만, 그곳까지 올라가는 길에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정상 부근에는 올라가는 길과 내려오는 길이 따로 구분되어 있었다. 하지만 등산객이 워낙 많아 양쪽 길 모두 긴 행렬이 이어졌고, 큰 바위가 놓인 구간에서는 한 사람씩 조심스럽게 통과해야 했다.

호노키다이라에서 버스를 기다린 데 이어, 해발 3,000미터가 넘는 정상 바로 아래에서도 다시 차례를 기다렸다.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주변 바위 위에도 사람들이 가득했다. 산 아래에서 보았던 연휴 인파가 모두 이곳으로 올라온 것 같았다.

15. 해발 3,026미터 겐가미네 정상

마침내 해발 3,026미터 겐가미네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작은 신사와 나무 도리이가 세워져 있었다. ‘乗鞍岳 剣ヶ峰 3026M’라고 적힌 나무표지판 앞에는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우리도 차례를 기다렸다가 정상표지판을 함께 들고 사진을 남겼다.

전날의 가미코치 장거리 트레킹과 이날 아침부터 이어진 버스 대기, 가파른 돌길과 정상 직전의 긴 행렬을 모두 지나 도착한 정상이었다.

“아, 역시 산에 오르니 기분이 최고여.”

16. 정상에서 딸기우유와 멜론우유로 건배

정상 주변의 바위에 자리를 잡고 잠시 쉬었다.

딸기우유와 멜론우유를 꺼내 병을 서로 맞부딪치며 건배했다. 준비해 온 팥빵도 함께 먹었다.

해발 3,000미터가 넘는 정상에서 먹는 간단한 빵과 우유였지만, 산길을 올라온 뒤라 꿀맛이었다.

주변에는 쉬거나 식사를 하는 등산객들이 가득했다. 조금 전까지 파란 하늘이 보였지만 다시 안개가 밀려와 정상 주변을 덮었다.

아래로 내려다보이던 곤겐이케도 안개 속에서 희미해졌다. 바람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호수와 능선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정상에서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아직 하산해야 했고, 버스시간도 생각해야 했다.

17. 겐가미네에서 가타노코야로 하산

겐가미네에서 내려오는 길도 사람들로 붐볐다.

정상 부근에서는 하산로를 따라 내려갔다. 가파른 돌길에서는 발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걸어야 했고, 크고 작은 돌이 많아 속도를 내기도 어려웠다.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서 곤겐이케를 다시 바라봤다. 안개가 잠시 걷힐 때는 호수와 잔설이 뚜렷하게 보였고, 구름이 밀려오면 수면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고도가 낮아지자 돌뿐이던 사면에 다시 낮은 관목이 나타났다. 강한 바람과 눈을 견디며 자라는 나무들은 위로 높게 자라지 못하고 땅에 붙어 옆으로 퍼져 있었다.

가타노코야의 붉은 지붕이 가까워지면서 겐가미네 산행의 가장 가파른 구간도 끝났다.

18. 마님은 버스승강장으로, 나는 후지미다케로

가타노코야 부근까지 내려온 뒤 마님은 다타미다이라 버스승강장으로 먼저 향했다.

버스 대기줄이 얼마나 길어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먼저 내려가 줄을 서기로 했다.

나는 남은 시간을 확인한 뒤 주변 봉우리를 조금 더 오르기로 했다. 겐가미네만 다녀오는 것으로 계획을 줄였지만, 예상보다 산행이 빠르게 진행되어 시간이 조금 남아 있었다.

첫 번째로 향한 곳은 후지미다케였다.

후지미다케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짧았지만 돌이 많은 오르막이었다. 정상표지에는 ‘富士見岳山頂’이라고 적혀 있었다.

정상에서는 다타미다이라의 붉은 지붕 건물과 버스주차장, 쓰루가이케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안개가 걷히면서 다타미다이라 주변의 봉우리와 산길도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19. 후지미다케에서 내려다본 다타미다이라

후지미다케 정상에서 바라본 다타미다이라는 산 아래에서 보았던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버스터미널과 주차장, 쓰루가이케와 주변 탐방로가 하나의 작은 분지 안에 모여 있었다. 건너편 산사면에는 조금 전까지 안개에 가려졌던 길이 선명하게 이어졌다.

파란 하늘과 흰 구름, 초록빛 산사면과 붉은 지붕이 한 화면에 들어왔다.

구름은 여전히 주변 능선을 오가고 있었다. 한쪽 산은 햇빛을 받아 선명하게 보였지만 다른 쪽은 짙은 구름 속에 들어가 있었다.

후지미다케를 내려온 뒤에는 곧바로 다이코쿠다케로 향했다.

20. 마지막 봉우리 다이코쿠다케

다이코쿠다케를 알리는 나무표지판을 따라 다시 오르막을 올랐다.

다이코쿠다케 정상 역시 크고 작은 바위가 깔린 산봉우리였다. 주변에는 잠시 쉬거나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이코쿠다케 정상까지 오르면서 이날의 추가 산행을 마쳤다.

겐가미네와 고다마다케를 지나고, 하산한 뒤 후지미다케와 다이코쿠다케까지 올랐다. 다타미다이라 주변의 주요 봉우리 가운데 마오다케만 남긴 셈이었다.

“마왕악인지 먼지만 빼고 다 갔다 온 거 같어.”

더 욕심을 내 마오다케까지 오를 수도 있었지만 버스시간과 대기줄을 생각하면 그만 내려가는 것이 맞았다.

다이코쿠다케에서 다타미다이라로 내려가 마님이 기다리고 있는 버스승강장으로 향했다.

21. 다시 사람으로 가득한 다타미다이라 버스승강장

다타미다이라 버스터미널 앞에는 산행을 마치고 내려가려는 사람들이 다시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아침에는 호노키다이라에서 다타미다이라로 올라가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기다렸고, 오후에는 다타미다이라에서 내려가려는 사람들 사이에 다시 섰다.

주차장에는 여러 대의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고 직원들은 승객들을 차례로 안내했다.

마님은 내가 후지미다케와 다이코쿠다케를 다녀오는 동안 먼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산행을 마치고 그곳에 합류했다.

버스에 올라 다타미다이라를 떠났다. 창밖으로 조금 전까지 걸었던 봉우리와 산길이 멀어졌다.

22. 호노키다이라에서 다시 시작된 기다림

버스는 구절양장 산악도로를 따라 다시 호노키다이라로 내려왔다.

아침에 수많은 사람이 줄을 서 있던 승강장은 오후가 되면서 비교적 한산해져 있었다. 그러나 다카야마행 버스는 곧바로 오지 않았다.

호노키다이라에 내려온 뒤 이미 30분을 기다렸지만 오후 2시 46분 버스가 오려면 17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올라갈 때 1시간 20분을 기다린 데 이어 내려와서도 약 47분을 기다리게 됐다.

“산보다 버스를 더 오래 기다리는 거 아녀?”

이날 버스를 기다린 시간만 합해도 총 2시간 7분이었다. 산행시간 3시간 29분과 비교해도 상당히 긴 시간이었다.

23. 만석버스의 보조의자에 앉아 다카야마로

오후 2시 46분 다카야마 버스센터행 버스가 호노키다이라에 도착했다.

버스에는 이미 승객이 많았고 일반좌석은 모두 찼다. 결국 통로에 설치된 접이식 보조의자를 펼쳐 그곳에 앉아 다카야마까지 이동했다.

아침부터 버스를 기다리고 산을 오른 뒤라 편한 좌석은 아니어도 앉아서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 다행이었다.

나는 생각보다 크게 피곤하지 않았지만, 전날 가미코치에서 장거리를 걷고 이날 다시 겐가미네까지 따라온 마님이 고생했다.

그래도 함께 해발 3,026미터의 겐가미네 정상에 올랐고, 나는 고다마다케와 후지미다케, 다이코쿠다케까지 다녀왔다. 마오다케 하나만 남겼으니 제한된 시간 안에서는 충분히 성공적인 산행이었다.

24. 호텔의 무료 웰컴드링크

다카야마에 돌아와 호텔에 들어간 뒤 무료 웰컴드링크 서비스를 이용했다.

테이블에는 맥주와 초록색 탄산음료, 주스와 과일을 올려놓았다. 하루 종일 산을 오르고 버스를 기다린 뒤 마시는 차가운 음료는 정상에서 마신 딸기우유와 멜론우유 못지않게 반가웠다.

산행 뒤 호텔에 돌아와 편안하게 앉아 음료를 마시고 나서야 긴 하루가 끝났다는 실감이 났다.

“버스 기다리느라 진이 다 빠졌는디, 그래두 산은 제대로 탔구먼.”

일본 3연휴의 혼잡과 변화무쌍한 산 날씨를 온몸으로 겪었지만, 아내와 함께 해발 3,000미터가 넘는 노리쿠라다케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와 무료 웰컴드링크를 마시며 길고 힘들었던 하루를 기분 좋게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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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나고야 - 다카야마·게로·시라카와고, 2026~2027년 최신판 ㅣ 리얼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
최영근.나보영 지음 / 한빛라이프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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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하는 일본 북알프스 여행기

여행 2일차, 2026.07.18.(토)
처음 만난 가미코치, 다이쇼이케에서 도쿠사와까지, 다시 가미코치

ㅇ 소요시간: 6시간 29분 6초
ㅇ 이동거리: 22.4킬로미터
ㅇ 평균속도: 시속 3.6킬로미터
ㅇ 최고고도: 1,612미터
ㅇ 총 획득고도: 715미터
ㅇ 주요경로: 다이쇼이케→다시로이케·다시로습원→갓파바시→묘진→도쿠사와→묘진다리→묘진이케→다케자와습원→갓파바시→가미코치 버스터미널

1. 울리지 않은 알람, 새벽부터 시작된 소동

가미코치로 가는 날이었다. 다카야마에서 출발하는 오전 6시 첫 버스를 타기 위해 일찍 일어날 생각이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 먼저 잠에서 깬 마님이 시간을 확인하더니 말했다.

“늦었어. 다섯 시 팔 분이야.”

“머여,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 언능 준비허야겄네.”

눈을 뜨자마자 정신없이 씻고 옷을 챙겨 입었다. 느긋하게 아침을 먹을 여유는 없었다. 전날 저녁 편의점에서 준비해 놓은 샌드위치를 꺼내 폭풍 흡입했다. 마님은 버스 안에서 먹겠다며 자신의 몫을 챙겼다.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오전 5시 35분 호텔을 나섰다. 전날 저녁 산책을 하면서 버스정류장의 위치와 승차장을 미리 확인해 둔 덕분에 길을 헤맬 일은 없었다. 왕복 승차권도 전날 저녁 미리 사 놓았으니, 바로 승차장으로 가기만 하면 됐다.

2. 다카야마 첫차, 히라유온천으로

다카야마 버스터미널에는 예상했던 것보다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일본의 3연휴 첫날이라 첫차부터 붐빌까 걱정했지만, 버스 안에는 빈자리가 제법 남아 있었다. 다카야마를 출발한 버스는 시내를 벗어나면서 서서히 산속으로 들어갔다.

논과 밭 사이로 아침 햇살이 비치고, 길가에는 여름꽃이 피어 있었다. 조금 전까지 다카야마 시내에 있었는데 어느새 첩첩산중이었다. 산은 겹겹이 이어지고 도로는 계곡을 따라 굽이쳤다.

히라유온천에 도착한 뒤 가미코치행 버스로 갈아탔다. 승차장에는 가미코치와 노리쿠라다케 방면을 알리는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다음 날 가야 할 노리쿠라다케 승차장도 자연스럽게 다시 한번 눈에 들어왔다.

버스는 히라유온천을 출발해 산속 도로와 터널을 지나 가미코치로 향했다. 가는 길에 통과한 터널의 종단선형이 눈에 띄었다. 터널 안이 일반적인 볼록형 종단곡선이 아니라 가운데가 낮아지는 오목형 종단곡선이었다.

“터널에 오목 종단곡선을 넣었네. 일반적인 터널 건설은 아닌디. 볼록종단이면 몰라두, 지형상 원인이 있나?”

여행 중에도 오랫동안 도로를 설계하고 감독했던 버릇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무심코 지나갈 터널에서도 선형과 배수구조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3. 다이쇼이케에서 시작한 첫 가미코치

버스는 오전 7시 25분 무렵 다이쇼이케에 도착했다. 가미코치 버스터미널까지 가지 않고 다이쇼이케에서 내렸다. 이번이 처음 찾은 가미코치였고, 첫걸음은 다이쇼이케에서 시작됐다.

버스정류장에서 호수 쪽으로 내려가자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근사한 풍경이 펼쳐졌다. 수면 위에는 얇고 긴 아침 안개가 띠처럼 걸려 있었고, 그 뒤로 야케다케가 솟아 있었다. 바람이 거의 없어 산의 모습이 물 위에 그대로 비쳤다.

안개 위의 산과 안개 아래의 반영이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물과 산의 경계가 어디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고요했다. 가미코치에 도착한 지 몇 분 되지도 않았는데 이미 오늘 하루가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 끝내주는구먼.”

첫차를 타고 들어온 보람이 있었다. 이른 시간인데도 다이쇼이케 주변에는 이미 사람들이 있었지만, 풍경을 제대로 즐기지 못할 만큼 붐비지는 않았다. 호숫가를 따라 자리를 옮기며 안개와 반영이 가장 아름답게 겹치는 장면을 사진에 담았다.

아침 햇빛이 강해지자 수면 위의 안개는 조금씩 옅어졌다. 같은 자리에서도 몇 분 사이 풍경이 계속 달라졌다. 처음 보았던 신비로운 다이쇼이케가 서서히 밝은 여름 호수의 모습으로 바뀌고 있었다.

4. 다시로이케와 다시로습원을 지나

다이쇼이케를 충분히 둘러본 뒤 갓파바시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강가에는 홍수와 토사에 떠밀려온 나무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고, 물속에는 고사목이 서 있었다. 산 위로는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펼쳐졌다.

곰 출몰에 주의하라는 안내판과 베어벨도 보였다. 등산객들은 종을 한 번씩 울리고 숲길로 들어갔다. 길은 대체로 평탄했지만, 자갈길과 나무판길이 번갈아 나타났다.

다시로이케와 다시로습원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빽빽한 숲과 넓은 습원이 차례로 펼쳐졌다. 숲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고, 멀리 호타카 연봉의 능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습원 위에는 키 작은 나무와 풀이 넓게 퍼져 있었고, 뒤편의 산줄기가 배경처럼 이어졌다.

다이쇼이케 주변에는 사람이 제법 있었지만, 그곳을 벗어나자 길은 한결 한산해졌다. 숲 사이에 마련된 긴 의자와 야영장을 지나고, 아즈사가와의 맑은 물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강물은 바닥의 돌이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투명했다. 흐름이 빠른 곳에서는 흰 포말이 일었고, 잔잔한 곳에서는 푸른빛과 녹색빛이 겹쳐 보였다. 나무판길 아래에는 습지가 이어졌고, 오래된 말뚝과 나무에는 짙은 이끼가 내려앉아 있었다.

5. 한산한 숲길 끝에 나타난 갓파바시

다이쇼이케에서 갓파바시로 이어지는 중간 구간은 비교적 조용했다. 앞뒤로 몇 사람씩 보이기는 했지만, 서로의 발걸음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숲길과 강변길을 번갈아 걸으며 가미코치의 풍경을 여유롭게 구경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갓파바시에 가까워지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강 건너로 호텔과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고, 다리 위와 강가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갓파바시 강게 사람이 바글바글허는구먼. 중간에는 한산혔는디.”

갓파바시는 가미코치의 중심답게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다리 위에서는 사람들이 차례로 사진을 찍었고, 강변 자갈밭에도 사람들이 내려가 있었다. 호타카 연봉과 아즈사가와, 갓파바시를 한 화면에 담으려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휴대전화와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다이쇼이케의 고요한 아침 풍경과는 전혀 다른 장면이었다. 하지만 다리 위에서 바라본 풍경만큼은 사람 수와 상관없이 장쾌했다. 맑은 아즈사가와 너머로 거대한 산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서 있었다.

6. 갓파바시에서 묘진관까지

갓파바시에서 잠시 머문 뒤 묘진 방향으로 다시 걸었다. 사람들이 몰려 있는 중심지를 벗어나자 길은 다시 숲속으로 이어졌다.

강가와 숲길을 따라 걷다 보니 야영장도 나타났다. 큰 나무 아래에 형형색색의 텐트가 놓여 있었다. 숲속에서 며칠을 머물며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공간이었다.

조금 더 걸어가자 숲속 작은 물길과 쓰러진 나무, 이끼 낀 바위가 이어졌다. 물은 숲의 나무 사이를 돌아 흐르며 작은 폭포와 웅덩이를 만들었다.

길에서는 일본원숭이 가족도 만났다. 어미와 새끼가 앞서 길을 건너갔고, 한 마리는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려 움직였다. 가까운 곳에 사람들이 있어도 크게 경계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강변으로 시야가 열릴 때마다 새로운 산봉우리가 나타났다. 날씨는 여전히 좋았고, 산 위에는 거대한 여름 구름이 피어올랐다. 묘진관에 도착한 뒤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잠시 쉬었다.

7. 묘진에서 시작된 고민

원래 묘진까지 오는 것은 기본 일정이었다. 문제는 여기에서 도쿠사와까지 더 갈 것인가였다. 묘진에서 도쿠사와까지는 약 3킬로미터, 안내상 한 시간 거리였다. 왕복하면 6킬로미터에 두 시간이 추가된다.

안내판에는 이곳부터 ‘트레킹 구역’이라고 적혀 있었다. 트레킹화와 등산 장비가 필요하고, 날씨 변화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안내였다.

이미 다이쇼이케에서 묘진까지 제법 걸어온 데다, 돌아갈 거리도 남아 있었다. 도쿠사와까지 갔다 오면 전체 일정이 훨씬 길어질 것이 분명했다. 잠시 안내판 앞에서 시간을 계산했다.

그러나 이곳까지 와서 도쿠사와를 남겨 두고 돌아가면 나중에 계속 생각날 것 같았다.

“온제 또 오겄어. 댕겨오는겨.”

결국 도쿠사와까지 다녀오기로 했다.

8. 묘진에서 도쿠사와까지 3킬로미터

묘진을 벗어나자 길은 한층 더 깊은 숲속으로 이어졌다. 초반에는 비교적 넓고 평탄한 흙길이 계속됐고, 작은 물길을 건너는 구간도 나타났다. 쓰러진 나무에는 짙은 이끼가 덮여 있었고, 길 양쪽에는 고사리와 풀들이 빽빽했다.

숲 사이로 맑은 계곡물이 흘렀다. 나무줄기로 만든 좁은 다리를 건널 때는 발을 조심해야 했다. 마님은 팔을 벌려 균형을 잡으며 한 걸음씩 건넜다.

길은 평탄하고 걷기 좋았다. 숲과 계곡이 계속 모습을 바꾸고, 햇빛이 나뭇잎 사이로 드나들어 같은 풍경이 반복된다는 느낌도 없었다. 묘진에서 도쿠사와까지 3킬로미터는 생각보다 길게 느껴지지 않았고, 지루할 틈도 없었다.

그러다 숲이 갑자기 열리면서 넓은 강변과 산줄기가 나타났다. 파란 하늘 아래 흰 구름이 솟아 있었고, 강 건너 산의 바위 능선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다시 숲길을 지나자 넓고 반듯한 잔디밭이 보였다. 잔디 위에는 여러 색의 텐트가 여유롭게 자리 잡고 있었다. 도쿠사와 야영장이었다.

9. 도쿠사와 롯지와 도쿠사와엔의 아이스크림

도쿠사와 롯지는 짙은 갈색의 목조 건물이었다. 건물 앞에는 이끼 낀 돌계단과 낮은 돌담이 이어져 있었고, 옆으로는 넓은 야영장이 펼쳐져 있었다.

한때 이곳에서 숙박하는 일정도 알아봤지만 예약하지 못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직접 와 보니 왜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도쿠사와엔에 들어가 아이스크림을 샀다. 긴 숲길을 걸어온 뒤 먹는 차가운 아이스크림은 꿀맛이었다. 마님과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고 사진도 남겼다.

“여기 안왔으먼 후회헐뻔혔구먼.”

왕복 두 시간을 더 걷기로 한 결정은 잘한 선택이었다. 도쿠사와의 넓은 잔디 야영장과 조용한 숲, 도쿠사와엔과 롯지가 어우러진 분위기는 갓파바시나 묘진과 또 달랐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잠시 쉬었지만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이제 다시 묘진을 거쳐 갓파바시까지 돌아가야 했다.

10. 다시 묘진으로

도쿠사와를 출발해 왔던 숲길을 되돌아갔다. 같은 길이었지만 반대 방향에서 바라보니 풍경이 조금씩 달라 보였다.

숲속 물길은 여전히 맑았고, 이끼 낀 나무와 바위가 초록빛으로 빛났다. 오전보다 구름이 많아지면서 햇빛은 조금씩 약해졌다.

돌아오는 길도 길거나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울창한 숲과 계곡, 이끼 낀 고목과 작은 물길이 끊임없이 나타났고, 갈 때 놓쳤던 풍경을 다시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도쿠사와를 보고 왔다는 만족감까지 더해져 발걸음도 한결 가벼웠다.

11. 묘진다리를 건너 묘진이케로

묘진에 돌아온 뒤 묘진다리를 건넜다. 굵은 나무기둥과 케이블로 만든 현수교 아래로 맑은 아즈사가와가 흘렀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니 강바닥의 돌과 물길이 선명하게 보였다.

묘진다리를 건너 묘진이케로 향했다. 입구에는 성인 500엔의 관람료가 적혀 있었다.

“호수 보는디 오백 엔을 받는겨?”

아까운 마음은 들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입구에서 돌아설 수는 없었다. 500엔을 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묘진이케의 첫 번째 연못에는 물 위로 작은 제단과 붉은 배가 놓여 있었다. 맑고 잔잔한 수면에는 맞은편 숲이 그대로 비쳤다. 관광객들이 나무데크 위에서 차례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바위와 작은 섬, 고사목이 흩어진 또 다른 풍경이 나타났다. 다이쇼이케가 넓고 장대한 호수였다면, 묘진이케는 숲속 깊은 곳에 숨겨진 신성한 연못 같은 분위기였다.

하늘은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아침의 맑은 파란색 대신 회색 구름이 산봉우리를 덮기 시작했다.

12. 다케자와습원에서 만난 소나기

묘진이케를 둘러본 뒤 갓파바시로 돌아가는 길은 아즈사가와의 반대편 숲길을 택했다. 이 길은 다케자와습원(岳沢湿原)을 지나는 자연탐방로였다.

숲은 울창했고, 나무 아래에는 조릿대가 넓게 퍼져 있었다. 땅 위로 드러난 나무뿌리와 습지 사이의 고사목이 독특한 풍경을 만들었다.

다케자와습원에 가까워지자 수면과 숲의 경계가 흐릿해졌다. 물속에서 나무들이 자라는 듯했고, 고사목과 살아 있는 나무가 뒤섞여 있었다. 맑은 물 아래로는 수초와 바닥이 훤히 보였다.

그 무렵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뭇잎에 몇 방울 부딪히는 정도였지만 곧 제법 굵은 소나기로 변했다. 우산을 꺼내 들고 나무판길을 걸었다.

우산을 들고 걷느라 사진을 찍거나 카메라를 다루기는 불편했다. 하지만 비가 내리자 숲과 습원의 분위기는 더욱 깊어졌다. 젖은 나무판길과 검게 변한 나무줄기, 수면에 번지는 빗방울이 한데 어우러졌다.

“우산 쓰니라 불편허기는 혀두, 비 오니께 운치는 더 있구먼.”

비구름이 산을 덮으면서 아침의 밝고 선명했던 가미코치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됐다. 하루 동안 맑은 하늘과 안개, 구름과 소나기까지 모두 만난 셈이었다.

13. 비 내리는 갓파바시와 버스터미널

숲길을 빠져나오자 다시 갓파바시가 나타났다. 다리 위에는 우산을 쓴 사람들이 가득했고, 계단과 강변에도 관광객들이 몰려 있었다.

아침보다 사람이 훨씬 많아져 있었다. 비가 내려도 갓파바시 주변의 혼잡은 줄지 않았다. 다리와 호텔, 상점 일대가 사람들로 빼곡했다.

버스터미널 방향으로 이동하자 인파는 더욱 많아졌다. 승차장마다 마츠모토와 히라유온천 등 각 방면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버스 한 대가 사람들을 태우고 먼저 출발했지만 대기 줄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잠시 뒤 예비차가 추가로 투입됐다. 연휴 첫날에 오후 시간까지 겹치면서 귀가 인파가 한꺼번에 몰린 모양이었다.

가미코치 버스터미널에 도착할 무렵에는 소나기도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덕분에 빗속에서 계속 서 있지는 않고 예비차에 올라 히라유온천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14. 히라유온천에서 다시 퍼부은 소나기

예비차가 투입되어 다행히 오래 기다리지 않고 버스에 탑승하여 가미코치를 빠져나왔다.

버스는 다시 터널을 지나 히라유온천으로 향했다. 가미코치 버스터미널에서는 잠시 잦아들었던 비가 히라유온천에 도착해 다카야마행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다시 거세게 퍼부었다.

주차장과 건물이 굵은 빗줄기에 가려지고, 차창과 지붕 위로 빗물이 쉴 새 없이 떨어졌다. 산도 구름과 비 속에 거의 모습을 감췄다.

다카야마행 버스가 출발할 무렵에는 소나기가 다시 잦아들었다. 버스는 히라유온천을 출발해 산길을 달려갔다.

15. 오후 3시 40분, 다카야마 귀환

다카야마에는 오후 3시 40분 무렵 도착했다. 새벽 5시 35분 호텔을 나선 뒤 약 열 시간이 지난 시각이었다.

다이쇼이케에서 시작해 다시로이케, 다시로습원, 갓파바시, 묘진, 도쿠사와, 묘진다리, 묘진이케, 다케자와습원까지 걸었다. 도쿠사와 왕복까지 더하면서 걸은 거리는 예상보다 훨씬 길어졌다.

아침에는 안개 낀 다이쇼이케와 야케다케의 반영을 보았고, 한낮에는 파란 하늘과 흰 구름 아래 호타카 연봉을 바라봤다. 오후에는 소나기가 내리는 다케자와습원을 걸었다.

힘들기는 했지만 가미코치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을 하루 동안 실컷 구경했다.

“아, 힘들긴 혀두 좋은 경치는 실컷 구경혔구먼.”

처음 찾은 가미코치에서 다이쇼이케부터 도쿠사와까지 직접 걸어 본 하루였다.

16. 이날의 트레킹 기록

이날 기록된 실제 트레킹 거리는 총 22.4킬로미터였다. 이동에 걸린 시간은 6시간 29분 6초였으며, 평균속도는 시속 3.6킬로미터였다.

다이쇼이케 부근 약 1,520미터에서 걷기 시작해 도쿠사와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서서히 고도를 높였다. 이날 기록된 최고고도는 1,612미터였고, 전체 구간의 총 획득고도는 715미터였다.

평탄한 산책로와 자연탐방로가 대부분이었지만, 왕복 22.4킬로미터를 걸었으니 결코 짧은 여정은 아니었다. 도쿠사와까지 다녀오기로 한 선택이 이날 전체 거리를 크게 늘렸지만, 그만큼 가미코치의 숲과 강, 습원과 산을 빠짐없이 둘러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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