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신의 대발해 6 - 불심과 진신사리 ㅣ 김홍신의 대발해 6
김홍신 지음 / 아리샘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독서보고] 김홍신의 『대발해』 6권, 불심과 진신사리 – 문왕 대흠무의 치세, 흑수 정벌과 충신의 죽음, 상경 천도와 대당 질서의 균열

1. 대발해 6권 전체 개요

가. 목적
ㅇ (핵심요약) 대발해 6권에서 3대 황제 대흠무(문왕)의 치세가 본격화되는 과정, 흑수말갈 정벌과 장문휴의 최후, 양소화의 재등용과 정치적 부상, 상경용천부 천도 구상, 진신사리 구득을 위한 무명선사의 천축행, 그리고 안녹산의 부상과 반란으로 이어지는 대당 질서의 동요를 종합적으로 검토함

나. 시대적 및 공간적 배경
ㅇ (시대적배경) 무황 대무예 사후 문왕 대흠무가 즉위하여 정복 국가를 수성 국가로 전환해 가는 시기이며, 북방에서는 흑수말갈의 위협이 이어지고, 대당 관계는 겉으로는 화친을 모색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긴장과 견제가 계속되는 국면임. 동시에 당나라에서는 현종 말기 궁정 문란과 안녹산 세력의 비대화가 겹치며 제국 질서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함
ㅇ (공간적배경) 발해 황도와 북방 영자성·자림성 일대, 흑수말갈 경계 지역, 서북압록부 등의 변방 통치 공간, 흘한해와 상경용천부 예정지, 당의 장안과 범양, 그리고 안서도호부·돈황·옥문관·총령·탄구령을 거쳐 천축으로 이어지는 서역 순례길이 주요 무대가 됨

다. 핵심요지
ㅇ (수성기로의전환) 6권은 무왕기의 정복과 공세를 넘어, 문왕 대흠무가 인사·군정·감찰·천도·불교 권위를 결합하여 국가 운영의 틀을 새로 세우는 수성기의 출발을 보여줌
ㅇ (충신의비극적완성) 장문휴는 황권 때문에 개인적 상처를 입고도 끝내 나라를 위해 흑수 정벌에 나서며, 죽음을 각오한 전투 끝에 전사함으로써 발해 충신 서사의 정점을 이룸
ㅇ (정치적포섭과체제정비) 대흠무는 장문휴 사후 영가혼례를 허락하고 양소화를 중용하는 한편, 수도 이전과 감찰 체계 정비를 추진함으로써 체제를 안정시키려 함
ㅇ (국제질서의흔들림) 발해를 둘러싼 대외 환경도 급변하여, 안녹산이 양귀비와 결탁한 궁정 특권 속에 세력을 키우고 끝내 반란을 일으키며 동북아 전체 질서가 새 국면에 접어듦

2. 주요 내용 전개

가. 흑수말갈의 준동과 양소화의 북정
ㅇ (북방위기) 흑수말갈 수령 오소걸몽은 발해 북방 방어선의 허점을 노리고 영자성·자림성으로 이어지는 요충지를 흔들며 준동함. 문왕은 이를 단순한 국경 분란이 아니라 북방 질서를 위협하는 중대한 도전으로 인식함
ㅇ (양소화등용) 대흠무는 북방을 수습하기 위해 양소화를 북정군 통수로 임명함. 발해 역사상 보기 드문 여성 대장군의 전면 배치는 문왕 치세 초반 군사 지휘 체계를 새로 짜는 상징적 인사로 제시됨
ㅇ (초기성과와좌절) 양소화는 처음에는 적이 강을 건너지 못하게 하고 유연한 전술로 전황을 주도하나, 흑수 쪽의 반격과 오소걸몽의 기민한 대응으로 자림성을 빼앗기고 전황은 급격히 불리해짐
ㅇ (분노의무리수) 양소화는 요충지 상실에 분기탱천하여 부하들의 만류에도 자림성 탈환을 서둘러 강행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군사를 잃으며 북정군은 심각한 타격을 입음

나. 장문휴의 귀환과 자림성 수복
ㅇ (은둔한충신의복귀) 장문휴는 대흠무에게 정혼자를 빼앗긴 뒤 태백산 일대에 물러나 있었으나, 나라의 위기 앞에서는 끝내 등을 돌리지 못하고 발해인·말갈인·사냥꾼·화전민까지 아우른 민병 약 5천을 규합하여 다시 전장에 나섬
ㅇ (민심이따른장수) 장문휴에게 태백산 일대 사람들이 몰려든 것은 단지 무용 때문만이 아니라, 오랜 세월 보여준 법도 있는 인품과 명성 때문으로 그려짐. 이는 장문휴가 무력뿐 아니라 덕망까지 갖춘 장수였음을 드러냄
ㅇ (전략적탈환) 장문휴는 정면 돌파보다 적의 심리와 지형을 읽는 전술을 택해 자림성을 다시 수복하고, 무너졌던 북방 전선을 재정비함
ㅇ (복권의계기) 양소화가 조정에 진상을 올리고 신석정 등이 이를 받치면서 장문휴는 다시 공적으로 평가받고, 보국대장군에 준하는 위상을 회복하며 발해 최정예 장수로 재등장함

다. 흑수 깊숙한 추격과 장문휴의 죽음
ㅇ (죽음을무릅쓴진격) 장문휴는 단순히 자림성을 되찾는 데 그치지 않고, 오소걸몽을 뿌리 뽑기 위해 흑수 깊숙한 적진까지 밀고 들어감
ㅇ (오소걸몽제거) 장문휴는 끝내 오소걸몽을 추격해 제거하는 데 성공하나, 승리 뒤에도 물러서지 않고 계속 전진하다가 독화살을 맞고 치명상을 입음
ㅇ (충절의완성) 장문휴의 전투는 살아 돌아오기 위한 싸움이라기보다 이미 죽음을 각오한 결전처럼 묘사되며, 나라를 위해 개인의 삶을 모두 던지는 충절의 극한을 보여줌
ㅇ (영혼가례의허락) 양소화는 장문휴의 시신을 수습해 황제에게 영가혼례를 청하고, 대흠무는 이를 허락함. 이는 생전에 파괴된 인간적 관계를 사후에라도 정리하려는 조치이자, 황권이 충신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수습하는 방식이기도 함

라. 양소화의 감찰과 대신 등용
ㅇ (직접대신기용의난관) 대흠무는 양소화를 대신으로 기용하고자 하지만, 조정의 대신들은 출신과 전장 경력, 정치적 부담을 이유로 강하게 반대함
ㅇ (신석정의우회책) 이에 태사 신석정은 곧바로 대신으로 올리지 말고 감찰어사 직임을 맡겨 능력과 충정을 검증한 뒤 공을 세우면 상을 내리도록 하자고 건의함
ㅇ (서북압록부감찰) 양소화는 서북압록부 감찰어사로 파견되어 변방 통치 실태를 조사하고, 그 과정에서 도독 공심지가 백성 수탈과 군정 전횡, 불법 처형과 음란한 궁색 조성 등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있음을 밝혀냄
ㅇ (공심지제거) 공심지는 죄상이 드러나는 것을 막으려 군대를 동원해 양소화를 죽이려 하지만, 양소화는 천신만고 끝에 반격하여 공심지를 직접 처단함
ㅇ (선참후결의논란) 문제는 공심지가 황비 공사량의 오라비였다는 점이었으나, 양소화는 선참후결로 보고를 올림. 신하들은 그를 벌하자고 목소리를 높였으나, 신석정은 이런 경우마저 충신을 벌하면 나라에 충신이 남지 않는다고 간언함
ㅇ (대신으로의상승) 결국 대흠무는 양소화를 칭찬하고 대신으로 기용하며, 문왕 치세의 새 핵심 실무형 대신으로 세움

마. 수도 이전 구상과 상경용천부
ㅇ (남쪽치우침의인식) 대흠무는 기존 수도가 넓어진 강역을 다스리기에 지나치게 남쪽에 치우쳐 있다고 보고, 국토 중앙부에 더 가까운 새로운 통치 거점을 구상함
ㅇ (흘한해순방) 그는 흘한해를 순행하며 폭포·용천·평야와 요새 지형을 두루 살피고, 장안에 못지않은 도성을 세울 터전으로 상경용천부를 점찍음
ㅇ (북방중심국가의구상) 상경 천도는 단순한 수도 이전이 아니라, 북방 경영 강화, 행정 효율 제고, 대외 방어선 재편, 고구려의 옛 중심 회복이라는 뜻까지 겹친 장기 국가전략으로 제시됨
ㅇ (문왕적통치의형성) 이 과정에서 대흠무는 무왕기의 돌격형 군주와 달리, 넓어진 국가를 오래 지탱할 질서와 공간 구조를 만드는 제왕으로 형상화됨

바. 진신사리와 무명선사의 천축행
ㅇ (황제의원력) 대흠무는 나라의 안녕과 태평성대를 기원하며 무명선사에게 천축으로 가 진신사리를 구해 오도록 명함
ㅇ (죽음같은여정) 무명선사는 사실상 목숨을 걸고 상경을 떠나, 돈황·옥문관·총령·탄구령을 넘어 천축을 향하는 죽음 같은 순례길에 오름. 모래와 열기, 산적과 독충, 굶주림과 갈증이 이어지는 길은 인간의 힘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으로 그려짐
ㅇ (혜초와의만남) 무명은 장안에 머물던 혜초를 찾아가 천축의 길과 불법, 순례의 뜻을 듣고 마음을 다잡음. 혜초는 직접 걸어본 자의 언어로 천축 순례의 험난함과 의미를 전해 주며, 무명의 여정에 정신적 이정표가 됨
ㅇ (고선지의도움) 안서도호부의 절도사 고선지는 고구려 후손이라는 자의식과 서역 경략의 경험을 지닌 인물로 그려지며, 무명선사의 길을 돕고 발해와의 연을 이어 주는 존재로 등장함
ㅇ (진신사리의의미확장) 작품은 진신사리를 단지 부처의 육신 유물에만 한정하지 않고, 부처의 말씀과 지혜, 자비를 행하는 것 또한 진신사리라는 해석까지 제시함
ㅇ (귀환과봉안) 결국 무명선사는 진신사리를 무사히 가져와 대흠무에게 바치고, 이는 문왕의 통치가 군사와 행정뿐 아니라 불교적 권위와 성덕의 언어로도 정당성을 확보해 가는 모습으로 이어짐

사. 대문예 계열의 잔재와 대청천 사건
ㅇ (반란의대물림) 무왕 대의 반란 중심이었던 대문예의 계열은 문왕 치세에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잔존함
ㅇ (대청천암살기도) 대문예의 아들 대청천은 당 조정 실세 고력사와 연결되어 대흠무를 암살하려 하나 끝내 실패함
ㅇ (왕실불안의지속) 이는 발해 내부의 왕실 갈등과 외세 개입이 세대를 넘어 계속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문왕 치세의 안정도 결코 저절로 온 것이 아님을 드러냄

아. 당 현종, 양귀비, 안녹산과 이합비
ㅇ (당궁정의문란) 당 현종은 양옥환을 후궁으로 삼아 궁정 기강을 흐트러뜨리고, 안녹산에게 범양·하동절도사 등의 막강한 권한을 맡겨 제국 내부의 균형을 무너뜨림
ㅇ (안녹산의비대화) 안녹산은 양귀비를 어머니로 모시게 해 달라고 청하며 궁중 출입의 특권까지 누리고, 황제의 신임을 등에 업은 채 군사적 기반을 키워 감
ㅇ (이합비의공작) 작품은 발해 여인 이합비가 안녹산을 유혹하고 부추겨 발해 대신 당 내부를 향한 야심을 키우도록 만드는 서사를 넣음으로써, 발해가 무력만이 아니라 첩보와 심리전까지 구사하는 국가로 묘사됨
ㅇ (조짐에서현실로) 안녹산의 야심은 점차 노골화되고, 위서를 둘러싼 의혹과 황실 내부 혼란이 이어진 끝에 결국 반란으로 폭발함

자. 안녹산의 반란과 국제질서의 균열
ㅇ (반란의발생) 안녹산은 마침내 군사를 일으켜 장안으로 진격하고, 짧은 시간 안에 칭제건원하며 연국을 선포함
ㅇ (당질서의붕괴) 이는 당의 혼란이 더 이상 궁정의 문란에 머물지 않고 제국 전체를 뒤흔드는 내전으로 번졌음을 뜻함
ㅇ (발해의새국면) 발해로서는 당의 직접 압박이 느슨해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만, 동시에 동북아 전체 질서가 흔들리면서 더 예측하기 어려운 대외 환경과 마주하게 됨

3. 인물 및 통치 평가

가. 대흠무의 군주상
ㅇ (수성군주의형상) 대흠무는 흑수 대응, 양소화 발탁, 감찰 정비, 상경 천도 구상, 진신사리 구득을 통해 수성기 군주로서의 면모를 뚜렷이 드러냄
ㅇ (권력의냉혹함) 그러나 그는 장문휴의 삶을 무너뜨린 장본인이기도 하며, 생전의 상처를 사후 예우로 수습하려는 군주라는 점에서 여전히 황권의 냉혹함을 품고 있음
ㅇ (정치적유연성) 그럼에도 실리를 위해 양소화를 중용하고, 지역과 공간 구조까지 재편하려는 점에서는 무왕과 다른 문왕형 통치술을 보여줌

나. 장문휴의 역사적 위상
ㅇ (충절의정점) 장문휴는 개인적 원한을 나라 앞에 접어 두고, 민병을 이끌어 무너진 북방 전선을 수습하며, 적진 깊숙한 곳에서 죽음으로 충절을 완성하는 인물로 그려짐
ㅇ (비극적영웅) 특히 정혼자를 빼앗기고도 황제를 향한 노골적 반역으로 가지 않고, 끝내 나라를 위해 몸을 던진다는 점에서 발해 서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비극적이고도 웅대한 장수상으로 남음

다. 양소화의 부상
ㅇ (실패를딛는인물) 양소화는 무리한 공격으로 병력을 잃는 실책도 범하지만, 이후 진상 보고와 감찰 임무, 공심지 처단을 통해 다시 능력과 충성을 증명함
ㅇ (무장형대신) 그는 전장 경험과 행정 감각, 결단력까지 갖춘 인물로 자리잡으며, 문왕 치세가 요구하는 새로운 유형의 실무형 대신으로 성장함

라. 무명선사의 상징성
ㅇ (불교적권위의매개) 무명선사는 단순한 승려가 아니라, 문왕 치세가 왕권의 종교적 정당성과 국가적 염원을 결합하는 통로로 기능하는 인물임
ㅇ (고난의수행자) 죽음을 무릅쓴 천축행은 문왕의 원력과 국가의 대의를 몸으로 짊어진 수행자의 희생을 보여주며, 6권의 서사를 전쟁에서 수행과 구법의 길로 확장시킴

4. 거시적 고찰 및 역사적 함의

가. 정복국가에서 수성국가로의 전환
ㅇ (통치문법의변화) 6권은 발해가 무왕기의 정복과 공세만으로 유지되는 나라가 아니라, 북방 방어·감찰·천도·불교 권위까지 포괄하는 수성 국가로 바뀌어 가는 모습을 보여줌
ㅇ (문왕체제의정립) 문왕은 전쟁 영웅이 아니라 제도와 공간, 인사와 정당성을 설계하는 군주로 제시되며, 국가 운영의 문법 자체가 바뀌고 있음을 드러냄

나. 충신의 희생과 황권의 부채
ㅇ (장문휴의희생) 장문휴의 죽음은 발해가 흑수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얻은 가장 큰 공훈이지만, 동시에 황권이 끝내 갚지 못한 부채이기도 함
ㅇ (사후수습의한계) 영가혼례와 예우는 생전의 상처를 완전히 지워 주지 못하며, 오히려 문왕 체제가 충신의 희생 위에 서 있음을 더 선명히 보여줌

다. 불교와 왕권의 결합
ㅇ (사리의정치성) 진신사리 구득은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왕권을 불교의 성덕과 연결하여 국가 질서의 도덕적 권위를 강화하는 장치로 기능함
ㅇ (문왕치세의정당화) 천축행과 사리 봉안은 문왕이 무력 중심 통치에서 한 걸음 나아가, 성왕의 언어와 불법의 상징까지 끌어들이려 했음을 보여줌

라. 동북아 국제질서의 재편
ㅇ (당의내부붕괴) 안녹산의 반란은 당이 더 이상 안정된 중심 질서가 아님을 뜻하며, 발해를 둘러싼 외교 환경도 근본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음을 의미함
ㅇ (발해의기회와불안) 발해는 당의 약화를 틈타 공간을 넓힐 수도 있으나, 반대로 질서 없는 국제 환경 속에서 더 복합적이고 위험한 선택을 강요받게 됨

마. 대조영의 두 아들과 엇갈린 운명
ㅇ (혈통의분기) 대발해 6권은 개국황제 대조영의 혈통이 시간이 흐르며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갈라지는 모습을 보여줌. 한쪽 계열은 대무예를 거쳐 대흠무로 이어지며 황통을 계승하고 나라의 중심이 되지만, 다른 한쪽 계열은 대문예와 대청천으로 이어지며 끝내 당과 결탁한 반란과 암살 기도로 나타남
ㅇ (왕조의아이러니) 이는 같은 뿌리에서 갈라진 형제의 후손이 한쪽은 나라를 지키는 황제가 되고, 다른 한쪽은 대를 이어 나라를 흔드는 역적이 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줌. 결국 6권은 국가의 위기와 외부의 침략 못지않게, 왕실 내부의 균열이 얼마나 오래 깊은 상처를 남기는지를 드러냄
ㅇ (개국자의비극) 더 나아가 이는 대조영 개인의 비극으로도 읽힘. 아버지의 눈으로 보면 두 아들 모두 나라의 기둥이 되었어야 하나, 현실에서는 한 혈통이 제국의 황통이 되고 다른 혈통은 멸문의 불씨로 남았다는 점에서, 개국의 영광 뒤에 숨은 가장 쓰라린 그림자를 보여줌

5. 종합 결론

가. 문왕 치세의 본격화
ㅇ (체제정비의시대) 대발해 6권은 대흠무가 흑수말갈을 제압하고, 양소화를 중용하며, 상경 천도와 불교 권위 확보를 병행함으로써 문왕 치세의 본격적인 틀을 마련하는 과정을 보여줌

나. 장문휴 서사의 마무리와 시대 전환
ㅇ (영웅세대의퇴장) 장문휴는 흑수 정벌이라는 대업을 이루고도 살아 돌아오지 못함으로써, 개국·정복기의 영웅 세대가 역사의 전면에서 퇴장하는 상징적 인물로 남음. 그의 죽음은 발해가 이제 개인 영웅의 무용보다 제도와 통치로 버텨야 하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음을 뜻함

다. 새로운 질서의 문턱
ㅇ (새국면의도래) 상경용천부 구상, 진신사리 구득, 대문예 계열의 잔재, 안녹산의 반란은 모두 발해가 안팎의 긴장 속에서 새로운 도약과 새로운 불안을 동시에 맞는 문턱에 서 있음을 보여줌
ㅇ (6권의의미) 결국 6권은 문왕 대흠무 시대가 단순한 평화의 시대가 아니라, 전쟁의 상처를 안은 채 질서를 다시 짜고, 권력을 재배치하며, 국제 격변 속에서 발해의 방향을 다시 세우는 전환기였음을 드러내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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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이처럼 누추한 안국사까지 왕림하셨으니 감은부복하나이다."
대흠무 일행은 승려를 따라 절 마당으로들어섰다. 앞뜰에 30척이나 높이 솟은 9층석탑이 있고 그 옆으로는 온통 꽃밭이었다.승려는 탑 앞에 합장하고 낭랑한 목청으로고했다.
"나무 아미타불, 혜명선사시여! 제자 무명은 10년을 기다려서 효감금륜성법 대왕을 모셨나이다. 굽어 살피소서."

별안간 거문고 줄이 툭 끊겼다. 무명은거문고를 내려놓고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귀인이 엿들으면 줄이 끊어진다 했나이다. 엿듣는 귀인은 어디 계시옵니까?"
대흠무는 기척하고 무명 앞으로 나섰다.
"폐하, 어찌하여 홀로 들으셨사옵니까?"
"거문고 소리가 짐의 마음을 헤집으니어찌 잠들 수가 있으리오. 달은 밝고 경치는 수려하니 춤이라도 추고 싶소."

"혜명선사께서 세속에 나와 백성을 구원하고 나라를 강건하게 하셨음을 아시오?"
"스승께서는 혜안이 있으시니 능히 그러셨을 거라 짐작되옵니다."
"혜명선사의 수제자이니 응당 짐을 도와나라와 백성을 구원해야 하오."
무명은 고개를 저었다.

"개국 황제이신 성무고황제께서는 유지를 남겨 부처님 나라 천축에 가서 진신사리를 구해 나라의 안녕을 도모하라 하셨소.만천하를 둘러보아도 멀고 험한 천축까지다녀올 만한 승려는 무명뿐이오. 짐이 안국사까지 달려온 것은 무명에게 대임을 맡기기 위함이오. 이는 또한 혜명선사의 가르침이기도 하오. 혜명선사는 짐이 올 것을 미리 알았듯 무명이 대임을 맡게 될 것도 알았소이다."

황제가 애원하는 것은 정녕 보기 드문광경이었다.
"소승은 어리석어 제 한 몸 추스르지 못하는 승려이옵니다."
대흠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두손을 모으고 무명에게 절을 올렸다. 한 나라의 주인이요, 지엄하기가 하늘과 같다는황제가 승려 앞에 꿇어 엎드렸으니 천하가놀랄 일이었다.

대흠무의 곡진한 간청을 더 물리는 일이불충임을 깨달은 무명은 황제 밑을 파고들듯 땅바닥에 엎드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 이 한 목숨을 바쳐 성은에 보답하겠나이다."

"그러하옵니다. 폐하께서 강역을 넓혀사방이 4천 리나 되옵나이다. 중경은 남쪽에 위치하였으나, 상경은 국토의 중심이옵니다. 서로는 요하를 경계로 당나라가 있고, 북으로는 속말수를 경계로 거란이, 흑수를 경계로 흑수가 있으며, 남으로는 패수를경계로 신라가 있나이다. 이렇게 강성해진발해의 도읍지는 홀한수를 끼고 번성해야하옵니다."

배를 버들방천에 매어두고 뭍에 오르자, 호숫가를 따라 버드나무가 울창했다. 그 길을 따라가니 천하를 희롱하는 듯 웅장한 금경(경박)폭포가 나왔다.

거연히 솟은 소나무 밑에 선 황제 일행은 마치 거센 눈발처럼 물보라가 휘날리는폭포를 바라보며 누구라 할 것 없이 감탄했다. 천하 장관이었다. 흡사 하늘에서 수백 마리 백룡이 내리꽂히듯 했고, 용궁에서수많은 은룡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 천년이끼 자란 바위 위에서 홀한해의 맑은 물이쏟아지고 있었다.

높이가 390여 척이요, 너비가 1,300여 척이나 되는 푸른 소에 쿵쿵 떨어지는 폭포의 울부짖음은 산악이 무너지고 하늘이 진동하듯 요란했다. 홀한수(목단강)는 홀한해와 옛 화산의 분화구였던 이 깊고 깊은 곳에서 솟아나오는 끝없는 샘물이 시원이 되고 원천이 되어, 수백 리 화산석 벌판을 적시며 유유히 동으로 흘렀다.

이튿날 아침, 황제 일행은 부지런히 지하삼림을 향했다. 지하삼림은 지금으로부터78년 전 대흠무의 증조부이자 고구려 유장인 진국장군 대중상이 고구려 멸망 뒤 패잔병과 저항군을 규합하여 개국의 발판으로삼았던 곳이다.
"정말 감회가 깊도다."

"폐하, 이곳이야말로 꿈에 용이 승천한곳이니, 용천이 틀림없고 황도로 손색이 없사옵니다. 이런 길몽이 어디 있겠사옵니까.사람이 생존하자면 물과 곡식이 있어야 하옵니다. 저 너른 들에 양식이 풍성하고 용천이 있어 세세연년 물 걱정은 아니 해도되니 이런 길지가 어디 있겠사옵니까. 이곳을 상경용천부로 삼고 도읍하소서."

"당나라 장안의 황성 못지않게 축성하되고구려의 혼을 잊어서는 안 되니 옛 평양성을 본뜨게 하라. 10만 호가 살 만큼 성역을넓히고 발해의 장구한 역사가 자리 잡게하라. 결코 서둘러 축조하지 말고 10년 동안 짓되 천년 동안 보전케 하라."

"상경은 개활지여서 상호 왕래가 편한땅이요, 땅이 기름지고 기후도 따뜻하며 홀한수가 있어 농사짓기도 좋고, 마소 기르기도 좋나이다. 백리 석판벌에 홀한수가 흐르고 높은 산들이 병풍인 양 둘러쳐 천년 요새를 이루고 있어 나아가면 진공할 수 있고물러서면 방어할 수 있는 요충지이옵니다.더욱이 북방으로 강역을 넓혀 나가기 위해서는 국토의 가운데에 자리 잡아야 하옵니다."

무명선사가 황명을 받들어 부처님 진신사리를 구하기 위해 상경을 떠난 것은 병술(746)년 5월이었다.
"선사를 사지로 내모는 것 같아 짐의 마음이 편치 못하오. 그러나 이는 발해의 대업이자 숙원임을 잊지 마시오."

초기의 순례자들 가운데 이름이 널리 알려진 고승은 동진시대의 법현이었다. 뒤를이어 북위 왕조 때 호태후의 명을 받고 불전을 수집하기 위해 송운이 순례를 떠났다.그로부터 한 세기 뒤에는 당나라의 현장법사가 천축국을 다녀왔고, 의정도 뒤따랐다.바람결에 들리는 얘기로는 신라의 승려 혜초가 천축에 다녀와서 지금 장안에 머물고있다고 했다.

천복사에서 금강지 선사는 이미 5년 전에 입적했다는 애석한 소식을 들었다. 금강지의 법통을 이은 승려가 신라에서 건너온 혜초라는걸 알고 그를 만나보기로 했다.
무명은 혜초가 묵는 처소로 찾아갔다. 단아한 표정으로 손을 맞는 혜초는 따스한 웃음이 얼굴에 가득했다.
"소승, 문안 여쭙니다."
혜초가 합장한 채 반가운 낯으로 물었다.
"누추한 곳을 어찌 찾아주시었소?"
"천축을 순례하려 합니다. 금강지 선사께 가르침을 받고 싶어 왔으나, 이미 입적하셨다고 하여 스님을 찾아뵈었나이다."
"천축에 가신다니 큰 뜻을 세우셨습니다."
"스님께서도 천축에 다녀오신 걸로 알고있습니다."
"부처님의 가피로 다녀왔습니다."
"부처님의 자비가 소승을 이곳으로 인도했습니다. 부디 가르쳐 주십시오."

"천축으로 향한 것은 소승의 나이 스무살 때였습니다. 스물네 살에 돌아왔으니, 4년 정도 걸린 셈입니다. 자그마치 5만 리길이었으며, 모래폭풍과 모든 것이 다 말라비틀어지는 혹독한 더위, 느닷없이 길을 막는 산적 떼와 가도 가도 알 수 없는 길들…… 세상 모든 것이 순례의 길을 막는 악귀같았습니다. 부처님의 가피로 천축에 당도해 부처님의 자취를 순례할 수 있었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혜초는 계해(723)년에 금강지의 권유로광주를 떠나 약 4년 동안 곤륜(동남아시아)과 불서(수마트라), 사자주(스리랑카)와 오천축, 북천축 등 서역 여러 지방을 순례했다. 그리고 정묘(727)년 11월에 안서도호부의 소재지 구자를 거쳐 장안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천축에 가는 것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뜻을 세워 가는 것이고,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가피로 가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어려울 때마다 먼저 그 길을 다녀온 선사들을 떠올리고, 발해 황제의 간절한 염원과 백성들이 기다리는 정법을 되새겨야만 합니다."

옥문관은 한나라 무제가 장성 서쪽 끝에설치한 관문이었다. 후에 무제가 하서4군을 설치하고 서역을 지배하던 거점이기도했다. 당시 서역 여러 나라에서 옥을 가져올 때 이곳을 통과했기 때문에 옥문관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난주에서 옥문관을 거쳐 돈황까지는 2천9백 리나 되는 먼 길이었다. 천축에 가는순례자들은 대부분 돈황을 거치는 여정을택했다. 왜냐하면 돈황에는 석굴사원 천불동과 막고굴이 있기 때문이었다.

무명 일행은 돈황이 서역으로 통하는 또하나의 큰 관문이자 성지이나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그 먼 길을 갔다가 다시 돌아 나오기에는 시일이 많이 소요될 것 같았다.

천축을 비롯 서역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거쳐야 할 거대한 장벽은 바로 총령(파미르고원)과 탑극랍마간(타클라마칸) 사막이었다. 죽음의 대장벽, 지옥의 대장벽이라불리는 이곳은 죽음을 불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넘나들었다. 법현, 현장, 혜초 모두그 지옥의 대장벽을 넘은 순례자들이었다.
무명은 사막으로 들어서기 전에 한번 더다짐했다.

사람들은 하나둘 지치기 시작했다. 발해에서 가장 강건하고 용맹한 자들인데도 이글거리는 태양을 견디지 못해 쓰러졌다.
"들으시라. 태양이 아무리 이글거려도 사람을 태울 수 없으며 더구나 사람의 마음은 결코 태울 수 없습니다. 이제부터 마음을 부처님께 모으고, 관세음보살을 부르시오."

"아! 이 사막의 끝이 있기는 있습니까?"
검두밀이 물었다.
"세상에 처음과 끝이 없는 것이 어디 있으리오. 가고 또 가면 사막이 끝날 것이오."
무명은 믿고 있었다. 선험자들의 발자취를 믿기 때문이었다.

"늙은 몸을 섬겨야 하는 여인은 늘 삭일수 없는 애달픔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 애달픔을 채워 줄 남자는 천하에 대부뿐입니다. 귀비는 열일곱에 시집와 한창 물오른스물두 살에 황제를 만났으며, 8년 동안이나 오직 늙은 남자를 기쁘게 하기 위해 몸을 바쳤습니다. 지금 귀비는 자신의 몸을열락에 빠지게 할 남자가 절실합니다."

안서도호부는 경자(640)년에 당나라가토노번(투루판) 지방의 고창국을 멸망시키고 서주를 경략하기 위해 설치했다. 6도호부의 하나로 서역 경략의 거점이었다.
안서도호부의 절도사는 고구려 후손인고선지였다.
고려노였던 고선지의 아버지 고사계는하서군에 종군하여 여러 공을 세워 장군이되었다. 그 공덕으로 고선지는 장군의 반열에 올랐다.

"이곳에서는 고구려 후손이라면 어딜 가나 대우를 받습니다. 총령과 탄구령을 가장먼저 넘은 군사들이 바로 고구려 후손들이었습니다. 고선지 장군은 천하의 영웅으로추앙받고 있습니다."
"우리도 익히 소문을 들어 알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은덕으로 동족을 만나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장군께서는 늘 고구려 후손이 세운 나라가 자랑스럽다고 했습니다. 고구려의 혼을 일으켜 세우고 고구려 땅을 지키는 발해의 웅혼함을 부러워했습니다."
돈벌이를 하기 위해 길잡이를 하겠다던사내는 오히려 고선지 장군의 도움을 받으라고 권했다.
"고구려 후손이 절도사가 되었다면 그만한 공력이 있었겠지요?"
"부친 고사계 장군이 큰 공을 세워 사진십장을 거쳐 장군이 되었습니다. 그 아들도출중하여 장군에 오르고 공이 혁혁하여 절도사가 되었습니다.

성 밖까지 마중 나온 고선지의 위용은대단했다. 정예무사로 이루어진 겸종 30기의 늠름함은 마치 제후의 행차 같았다. 고선지를 호위하기 위해 늘어선 30기의 복색이 모두 선명한 붉은 색이어서 그런지 더욱당당해 보였다.
고선지는 말에서 내려 두 손을 모아 합장했다.
"어서 오십시오. 먼 길 오시느라 고초가많으셨습니다."

"제가 크고 작은 전쟁을 하면서 늘 저 자신을 괴롭히는 게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이미 짐작하셨겠지요?"
그리고는 좌우를 한번 둘러보았다.
"누구를 위해 싸우는 것인가입니다. 내나라를 멸망시킨 당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싸운다고 생각하면 맥이 풀리고 가슴 속에불덩이가 들어앉습니다. 아무리 큰 공을 세워도 저는 결국 고려노일 뿐입니다. 어떻게죽든 이민족이자 번병입니다. 곽국공 왕모중도 고구려 후손이었기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곳 총령은 피로 얼룩진 계곡입니다.오래전부터 수많은 전란의 현장이고, 산적떼가 숱하게 출몰하는 곳입니다. 이름 없이사라진 수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에서 산적에게 약탈당하거나 목숨을 빼앗겼고, 발을헛디뎌 천길 벼랑으로 떨어져 죽었습니다.그래서 계곡에는 늘 피가 마르지 않았다고합니다."
그렇게 험한 길인데도 순례자들이 끊임없이 지나다녔다면 부처의 정법을 갈구하는 사람이 수없이 많다는 뜻이었다. 무명은경외심으로 새삼 내딛는 걸음에 힘을 주었다.

"진신사리가 꼭 붓다의 몸에서 나온 사리만을 뜻하는 게 아니오. 붓다의 말씀이새겨진 경전도 진신사리요, 붓다의 법인 지혜와 자비를 행하는 것도 진신사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니어찌 하늘이 감동하지 않고, 불법이 감동하지 않겠습니까."

"정말 무서운 것은 사막도 험준한 벼랑도 아닙니다. 야수나 독충보다 더 조심해야할 것은 사람입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사람이 더 무서운것은 욕심 때문이 아니겠는가. 일행을 짓누르는 긴장감이 높아질수록 발걸음이 빨라졌다. 냇물을 건너 한나절쯤 가자, 수림이깊어지고 푸르른 골짜기가 나타났다.

무명은 사람들이 말리는데도 잘 벼린 단검으로 자신의 배를 그었다. 칼끝이 지나간자리에 붉은 선혈이 뚝뚝 배어 나왔다. 무명은 진신사리 2과를 갈라진 상처 속에 넣고 실로 꿰맸다. 무명은 생살을 갈라 사리를 넣고 꿰매는 끔찍한 일을 오히려 광영으로 여기는지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신라는 선덕여왕 재위 말년인 병오(646)년에 당나라로 유학 갔던 자장율사가 통도사를 창건하며 당나라에서 구해온 진신사리를 봉안했다. 자장은 진골 출신으로 속명은 김선종이었다. 당나라에 들어가 8년간불경을 닦고 돌아와 대국통이 되었다. 자장은 당나라 종남산 운제사의 문수보살상 앞에서 기도하며 정진한 끝에 사리를 구했다.그 사리는 통도사 외에 금성(지금의 경주)의황룡사탑과 울산의 태화사탑에 봉안되었다.

"가장 믿을 수 있는 심복을 궁중에 심어조정의 움직임을 신속하게 알아야 합니다.조정대신들과 황제의 근신들이 전하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변고가 생길 수있습니다. 고구려의 왕모중이 인신으로서는 더 오를 데가 없었는데 주검이 된 걸 모르십니까? 장안과 범양은 수천 리 길입니다. 그러나 장안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소상히 살핀다면 누가 감히 전하를 능멸하겠습니까?"

요서벌에서 누란의 위기가 꿈틀대고 있음을 모르는 이융기는 늙은 몸으로 양귀비에 빠져 헤어나지 못했다.

이튿날 새벽, 간밤에 은밀히 찾아왔던 심복 왕경유, 장경승, 이건묵이 모두 참살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망연자실한 안녹산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곁에 있는 이합비를쳐다보았다. 그녀의 표정이 차가웠다.
"그들은 죽어 마땅합니다."
"무슨 소리냐?"
이합비의 말에 더욱 놀란 안녹산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다그쳤다.
"발해를 공격하겠다고 20만 군사를 요청하는 순간 황제의 총애는 거두어집니다. 그러잖아도 조정에서는 20만 대군을 거느린전하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여차하면 전하를 제거하려고 합니다. 그들이 조정의 밀명을 받고 전하를 떠보기 위해 술수를 부린것을 왜 모르십니까?"

"폐하, 보구림은 안녹산에게 뇌물을 받고 거짓으로 상주했사옵니다. 안녹산을 조종하는 것이 첩 이합비인데, 발해 여인으로안녹산을 부추겨 역심을 품고 군사를 기르게 한 계집이옵니다. 폐하께서 입조를 명하시면 안녹산은 반드시 입궐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통촉하옵소서."

그런데 북방에 모진 추위가 몰아치던 그해 동짓달 초순, 황제 이융기가 극비리에보낸 사신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의 품에는 황제의 친필 밀서가 들어 있었다. 안녹산은 크게 놀라 심복 장수들을 불러들였다.
장수들도 경천동지할 황제의 밀조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역적 양국충이 모반을꾀하고 있으니, 충신 안녹산은 군사를 이끌고 장안으로 달려와 양국충과 그 무리를 주살하라는 밀명이었다. 거병할 날은 을미(755)년 동짓달 아흐레, 군사를 일으켜 장안으로 진격하면 충성스런 신하들이 응전하겠다고 했다.

황제의 밀서가 가짜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이합비와 둘째아들 안경서, 측근 심복엄장, 손효철, 가순, 여지희, 고수암 정도였다.

이융기는 황자 이완을 토적군 원수로, 고선지를 부원수로 삼았다. 그리고 급히 관고를 열어 가난한 백성들에게 곡식과 옷감을주어 군사를 충원했다. 급조된 오합지졸이었지만, 천무군으로 명명했다.

영성은 고선지가 자신의 은밀한 청을거절한 데 앙심을 품고 허위사실을 들어 황제에게 밀고했다. 고선지가 섬주 땅 수백리를 버렸을 뿐 아니라, 뱃놀이를 즐기며국고의 관물을 도적질했다는 것이었다. 황제 이융기는 적을 앞에 두고 호화롭게 뱃놀이를 즐겼다는 말에 격노했다. 고선지가 적의 기습에 대비하여 강을 둘러본 일은 어이없게도 화근이 되었다. 늙은 황제의 흐린분별은 결국 고선지를 참하라는 어이없는명을 내렸다.
드디어 충역지자 안녹산이 낙양에서 칭제건원하고 연국을 선포하고 황위에 오르니, 때는 병신(756)년 정월 초하루였다.

하늘과 땅이 세상 만물을 만들어 내고,사람이 그것을 취해 생존하옵니다. 밭에 씨앗을 뿌려 곡식을 얻는 것도 햇빛과 물과흙이 조화를 부렸기 때문이옵니다. 천지만물은 하늘과 땅이 만들고 사람이 먹을 뿐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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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흠무가 즉위한 뒤 발해는 무왕 시기의 공세 국가에서 문왕 시기의 수성 국가로 넘어가는 길목에 들어선다. 그러나 그 출발은 결코 평온하지 않다. 흑수말갈이 다시 세력을 떨치며 북방을 위협하자 대흠무는 양소화를 북정군 통수로 내세워 이를 막으려 한다. 양소화는 초반에는 기세를 잡지만 요충지 자림성을 오소걸몽에게 빼앗기고, 이를 만회하려 무리하게 공격하다 큰 피해를 입는다. 이때 대흠무에게 정혼자를 빼앗기고 태백산에 물러나 있던 장문휴가 민병 5천을 이끌고 돌아와 전세를 뒤집는다. 장문휴는 자림성을 수복하고 오소걸몽을 추격해 끝내 제거하지만, 승세를 멈추지 않고 적진 깊숙이 들어갔다가 독화살을 맞고 전사한다. 장문휴의 죽음은 나라를 구한 충신의 승리이자, 황권이 끝내 감당하지 못한 비극으로 남는다.

이후 대흠무는 장문휴의 죽음을 영가혼례로 예우하고, 양소화를 다시 불러들여 감찰과 정치를 맡긴다. 양소화는 서북압록부 감찰어사로 나가 도독 공심지의 악행을 밝혀내고, 결국 그를 선참후결로 처단한다. 공심지가 황비 공사량의 오라비였음에도 대흠무가 양소화를 벌하지 않고 오히려 대신으로 중용한 것은 문왕 치세가 혈연보다 체제 정비와 실무 능력을 앞세우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대흠무는 기존 수도가 남쪽에 치우쳤다고 판단해 흘한해 일대를 순행하고, 국토 중심에 가까운 상경용천부 건설과 천도를 구상한다. 이는 발해가 더 넓어진 강역을 안정적으로 다스리기 위한 장기적 재편의 출발점이 된다.

이와 함께 대흠무는 무명선사에게 천축으로 가 진신사리를 구해 오게 하여 왕권의 종교적 권위까지 다지려 한다. 무명선사는 돈황, 옥문관, 총령과 탄구령을 넘어 천축으로 향하는 극한의 순례길에 오르고, 그 과정에서 혜초와 고선지를 만나 도움을 받는다. 결국 진신사리를 무사히 가져와 바침으로써 문왕의 통치는 군사와 행정만이 아니라 불교의 상징과 성덕의 언어로까지 확장된다. 그러나 왕실 내부의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대문예의 아들 대청천은 당과 연결되어 대흠무 암살을 시도하고, 이는 대조영의 두 아들 가운데 한 계통은 황통으로 이어지고 다른 한 계통은 대를 이어 반란으로 흐르는 비극을 드러낸다. 동시에 당에서는 현종의 궁정 문란과 안녹산의 비대화가 심화되고, 발해 여인 이합비의 공작까지 겹치면서 안녹산의 난이 현실화된다. 결국 6권은 문왕 대흠무가 북방의 위협, 충신의 희생, 체제 정비, 천도 구상, 불교 권위 확보, 그리고 대당 질서의 붕괴 조짐 속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 6권의 내용이다.

무혜비가 태자 이영과 황자 이요, 이거에게 사람을 보내 궁중에 적란이 일어났으니 급히 구원해 달라고 청했다 하옵니다.무혜비의음모를 알 리 없는 태자가 두 황자와 함께 군사를 모아 궁중으로 달려가자무혜비가 다급히 황제에게 고하기를 태자와 두 황자가모반을 꾀해 군사를 일으켰다고 하옵니다. 환관을 내보내 확인해 보니사실이어서 재상 이림보와 상의 끝에 태자를 폐출하는 칙지를내렸다 하옵니다.

호색의 당제 이융기는 무려 서른 명의황자와 스물아홉 명의 공주를 두었다

당나라의 후궁 제도는 수나라의 제도를 본떠 황후 이외에 귀비, 숙비, 덕비, 현비를 둘 수있고, 소의, 소용, 소원을 비롯한 아홉명의빈을 두었으며, 첩여, 미인, 재인을 각각 아홉 명씩 두었다. 그 아래 보림, 어녀, 채녀가 각각 스물일곱이나 되어 후궁 숫자만121명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통칭 3천 궁녀라고 불리는 궁녀들이 궁궐을 가득 메웠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태자를 포함하여친아들 셋을죽였으니 어찌 참화가 아니겠는가.

이듬해인 무인(738)년 6월에 충왕 이형이 태자로 책봉되었다. 당나라에서는 뒤늦게 대흠무의 등극에 경하 사절로단수간을파견하여 금은옥향과 비단과 명마를 바쳤다. 대흠무는 답례로 담비가죽과 약재, 마른 문어와 포를 보내며 한서, 삼국지,진서,
십육국춘추, 당례의 필사를 요구했다.대흠무는 묵은 원한을 딛고 일어서 당나라와 당당하게 겨루기 위해 그들의 학문과문물을배우고 익혀 맞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학생을 파견하여 당나라 문물도 배워오게 할 작정이었다.

대흠무가 당나라 문물에 관심을 쏟기 시작한 것은 정묘(727)년, 신라 승려 혜초가천축(인도)의 성적을 순례하고 왕오천축국전 세권을 지었다는 소식을 들은 뒤였다.혜초는 남해에서 바다로 천축에 이르러동, 중, 남, 서, 북의 다섯 천축을 두루 돌아부처의 성적을찾아 참배하고 마지막에 총령을 넘어 10년 만에 당나라로 돌아왔다고한다.

개국 황제 대조영이 부처의 나라 천축에가서 진신사리를 구해, 탑을 쌓고 나라의 안녕과 태평성대를 축원하라는 유지를 남겼지만,
아직 그 유지를 받들지 못했다. 돌궐과 거란의 와해로 당나라와 발해 지경에서 완충 역할을 하던 세력이 사라졌기에, 발해는 당나라와직접 부딪쳐야 했다.

신이 알기로는 보통 두 가지 방법이 있나이다. 하나는 아편으로 마취한 후 대나무집게로 고정시켜 예리한 칼로 고환을 빼내거나,
옥경을 절단한 부위에 식물에서 짠기름을 뜨겁게 하여 붓고 기름 적신 천으로환부를 압박하는 방법이나이다. 다른 하나는 뜨거운호초탕(후추나무의 열매로 만든 탕)으로 마취하여 절단한 뒤 백납의 심지를요도에 삽입하고, 냉수에 적신 한지로 환부를 압박하는방법이나이다.

"경들의 뜻이 갸륵하여 내시를 두기로했노라. 다만 궁중에 항시 기거해야 하는내시는 충절이 깊고 총명하며 신뢰할 수 있어야 하니,
경들의 아들 중에 가려 뽑을 것이로다. 스스로 기꺼이 천거하라. "황제의 옥음이 이러하자 편전은 삽시에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일부 대신들의얼굴은 흙빛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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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이 알기로 권신들이나 변방의 성주와장수들이 사사로이 죄인을 궁형에 처한다고 들었도다. 이는 당나라의 못된 제도를본뜬 것이요, 국법을 어긴 것이니 마땅히문죄하겠노라."
추상 같은 옥음은 곧장 변방의 뇌옥에까지 전달되었다. 이로써 죄인을 궁형으로 다루던 관습이 일거에 사라지게 되었다.

북정군 본진을 영자성에 설치한 양소화는 동쪽으로 군진을 넓혀 월희 말갈의 동태를 파악했다. 흑수와 인접해 있으면서 흑수의 완력에 복종하거나 눈치를 보는 부족이었다. 월희 쪽을 주시한 것은 월희를 먼저장악하여 흑수를 고립시켜야 하기 때문이었다. 동양 대해를 정복한 장문휴가 어느정도 토평했지만 완전히 굴복시키지는 못했는데 그가 사직하고 떠난 뒤에는 흑수의조종을 받았다.

"적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게 해서는 안된다. 명심하라!"양소화는 진병하는 순간에도 결코 적이강을 건너지 못하게 하라는 장령을잊지 않았다.

남흑수의 맹장 오소걸몽은 발해의 북정군 통수가 여장군이라는 데 놀라움과 함께승리를 자축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북흑수의 수령낙길몽과 연합하여 발해를 치기로하고 월희부의 발문계와 발기계 형제에게선봉에 서서 발해군을 유인하게 했다.

오소걸몽이 발해 군사가 강병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대일하가 영자성을 지키고 있을 때만 해도 감히 발해 지경을 넘볼 생각조차못했다. 그러나 황제가 바뀌고 여장군이 북정군 통수가 되었다니 흑수의 존재를 부각시킬 호기라 여겼다. 발해를무찌르기만 하면당나라의 지원을 받을 수있고 발해의 집요한 공격도 피할 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은 잠깐이었다. 영자성으로부터 생각지 못한 흉보가날아들었다. 영자성 북동방의 전진기지인자림성이 흑수의침공을 받아 함락됐다는급보였다. 군사를 보호하기 위해 적을 유린하느라 여러 날 지체한 사이에 흑수군이 발해의 요충지인 자림성을침공한 것이다."아! 내가 어리석었도다."

영자성의 방어벽이자 흑수를 경략하는 제일 요충지가 오소걸몽의 수중에떨어졌기에 앞으로 적잖은 희생을 각오해야 했다. 자림성수성장 방철은 끝내 순절했고 포로가 된 군사만도 5백 명이 넘었다.

"대장군께서는 여자니까 행여라도 전공을 크게 세워야 한다고 고심하십니까? 대화인 장군께서는 적을 물리침에 힘보다는지혜를빌렸다고 들었습니다." 심복 장수 왕치장이 끝내 듣기 거북한소리를 했다.

태백산 일대의 사냥꾼과, 화전을 일구며칩거해 있던 현사들이 장문휴를 따르기로한 것은 법연스님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3백 명밖에안 되었지만 날이 갈수록 수효가불어나 북쪽으로 진병할 때는 1천여 명이나 되었다. 넉넉하지 못한 대로 군자금도충당되었고 군마와군막, 병장기와 수레도

모양새를 갖추었다. 발해의 제일 맹장이요보국대장군이었던 장문휴는 1천여 기밖에안 되는 민병으로 소소한 말갈 부족을 차례차례•굴복시키며 북진했다.

"우리가 쳐부숴야 할 적은 흑수가 아니냐. 흑수와 가장 가까운 부족이 월희와철리와 불열이 아니겠느냐. 그들을 앞세우면 흑수를가볍게 공략할 수 있을 것이다."장문휴가 발해인보다 말갈인들을 선호하고 중용하는 까닭을 알게 된 양두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쯤 양소화가 얼마나 노심초사하고있을까 걱정했다. 발해 역사상 두 번째 여자 대장군이지만 북정군 통수가 된 것은 정말 대단한일이었다. 임무를 완수하면 응당황성으로 올라가 중신의 반열에 오르게 될것이다. 그런 막중한 임무를 띠고 북방으로와서 요충지를적에게 내주었다니 지금쯤마음의 고통이 크리라고 생각했다.

"아, 속았구나!"
낙수몽은 말달리기 어려운 험로에 들어선데다 수효를 짐작할 수 없는 복병을 만났고, 뒤에는 추격병이 무서운 기세로 덤벼드는 걸 보고 맥이 풀렸다. 군사들은 제멋대로 도망치느라 경황이 없었다.
"혈로를 뚫어라!"

혈로를 뚫기 위해 장검을 들고 앞장선 낙수몽은 산자락에 우뚝 선 장수를 보았다.
"발해 대장군 장문휴가 낙수몽의 목을가지러 왔다. 항복하면 살려주겠지만 거역하면 몰살하겠다!"

쩌렁쩌렁 울리는 저 우렁찬 목소리, 발해제일 명장이요 당나라를 놀라게 한 그의 용맹은 신화처럼 떠돌았다. 동양 대해를 평정하고 말갈 제부를 속복케 한 대장군이 아니던가. 보국대장군이 전장에 나섰으면 적어도 수만 군사가 따르고 있을 것이다.

적장이 장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낙수몽도 장창을 꼬나잡고 말을 달렸다. 낙수몽이 뒹굴었다. 장문휴의 칼날에는 무서운 힘이 실렸다. 칼자루를 잡은 손이 얼얼할 만큼 상대의 장력이 느껴졌다.
낙수몽은 항복을 선언하고 군사들에게도 도망가지 말고 병장기를 버리라고 소리쳤다.

"나라의 근간을 바로잡고 태평성대를 구가하려면 무릇 밖으로는 변방이 조용해야하고, 안으로는 충절이 가득해야 합니다.당나라가 두려워하는 대장군께서 군권을쥐고 천하를 호령해야 나라의 안녕을 도모합니다. 저를 믿고 기다려 주십시오."

젊은 시절, 그들은 서로 좋아하면서도 황자대문예 때문에 결합할 수 없었다. 그 시절이 지나자 양소화는 장문휴를 오라버니 대하듯 했고, 장문휴 역시 누이 대하듯 정을나누었다.

"하룻밤만이라도 제 가슴 속에 살아 있는 연정을 달래 주십시오."
장문휴는 그제야 양소화가 못 마시는 술을 부러 마셨다는 걸 알았다. 그녀도 이제서른 중반의 여인이었다. 장문휴는 말없이양소화를 끌어안았다. 건장한 사내의 품에안긴 여인은 기다림에 매여온 지난 세월이서러운지 나지막이 흐느꼈다. 장문휴는 그런 양소화를 힘주어 끌어안았다. 대문예가아니었던들 두 사람은 혼례를 치르고 자식도 낳았을 것이다.

"폐하, 세상에 널리 알려진 대로 장문휴는 천하 명장이옵니다. 장문휴가 군권을 다지면 밖으로는 당나라를 견제하고 번족들의 경거망동을 막으며, 안으로는 충직한 장수를 널리 중용하는 성덕이 되옵니다. 지난날 성무고황제께서는 장군기만 휘날려도당나라 군사들이 지레 겁을 먹었사옵니다.사해를 다스리기 위해서 장문휴가 폐하의곁을 지켜야 하옵니다."
대신 미발계는 오히려 장문휴를 중용하라고 간했다.

"장문휴의 선대를 살펴보아도 충직하지않은 자가 없었나이다. 부친 장사무는 선제를 모시고 비사성을 빼앗고 장렬히 전사했으며, 조부 장작명은 반당투쟁으로 목숨을버린 충신이었나이다. 장문휴의 피 속에는반심이 있을 수 없으니 장문휴을 곁에 두옵소서."
태사 신승도 미발계와 같은 뜻을 피력했다.

"황명의 지엄함을 어찌 모르십니까?"
양소화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장문휴를전장에 내보내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이번전투가 그에게는 마지막 교전이 될지도 모른다. 도성으로 올라가 군권을 쥐게 되면다시는 일선에서 직접 칼을 휘두르지 않을것이다. 그렇기에 온몸을 던져서라도 흑수를 물리치고 오소걸몽을 사로잡으려는 것같았다.

적장을 사로잡은 장문휴는 추격을 늦추지 않았다. 오소걸몽의 본진을 섬멸하는 것은 오소걸몽을 사로잡는 것만큼 긴요했다.

양소화가 비보를 접한 것은 저녁 무렵이었다.
"아, 하늘이시여! 아니 됩니다. 아니 됩니다."
양소화의 울부짖음이 너무 처절해 보는이도 눈물을 쏟게 했다. 당나라를 놀라게했던 일세의 영웅 장문휴가 적이 쏜 독화살에 쓰러졌으니 하늘이 무심했다. 비로소 대수령을 사로잡아 남흑수를 토평했거늘 어찌하여 일세의 영웅을 거두어가는가. 부친장사무가 장렬히 전사하며 비사성을 되찾아 발해 품에 안겨주었듯이, 유복자로 태어나 불굴의 의지로 무시에 장원급제하고 수군을 길러 당나라를 거침없이 침공한 대장군은 독화살을 뽑지 못한 채 한세상을 마감했다.

"나라의 봉공을 받는 대장군은 법도를지켜야 하고 황상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아니 됩니다. 군국대사라면 바른 진언과 간쟁을 할 수 있지만, 이것은 정녕 사사로운 것입니다."
"황제는 사사로이 남의 여인을 취해도그만이고 대장군은 법도를 따라야 하느냐?법도란 물이 흐르는 것과 같아야 한다."
신달미는 양소화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표문을 어람한 대흠무는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양소화의 청을 받아들였다.
"양소화의 표문은 방자할 정도로 당돌하지만 밉지 않은 수작이로다. 술관 선수종은태사와 의논하여 영가혼례를 주선하라."

예상치 못한 대흠무의 찬찬한 배려에 모두 놀랐다. 지나간 일이지만 비빈 공사량과장문휴와의 인연도 그렇고, 양소화의 표문이 법도에 없는 간청이었음에도 황제가 친히 영가혼례를 주선하는 걸 보고 모두마음을 쓸어내렸다. 누가 보아도 도량이 넓은황제임에 틀림없었다.

대흠무는 국기를 바로세우고 부국강병을 꾀하기 위해 관제를 정비하고, 드넓은강역을 다스리기 위해 5경과 부, 주, 현을정비하기로 했다. 이는 당나라와 맞설 수있을 만큼의 치세를 굳건히 하기 위한 수순이었다.
황제를 보필하는 최고의 통치기관으로정당성을 두고, 그 아래에 선조성과 중대성을 두었다. 그 밑으로는 좌육사인 충부,인부, 의부와, 우육사인 지부, 예부, 신부를두어 당나라 관제와 겨루어도 모자람이 없었다.

3성 6부 외에도 1대, 9시, 1원, 1감, 1국을 두어 문관의 작제를 보강했다. 무관 작제도 과거보다 2위를 늘려 좌맹분위, 우맹분위, 좌웅위, 우웅위, 좌비위, 우비위, 남좌위, 남우위, 북좌위, 북우위, 10위를 두었다.
각 위에는 대장군, 장군, 도장, 낭장이 있어 군사들을 통솔했다.

고구려 때보다 강역이 넓어졌고 호구도많이 늘어난 터라 대흠무는 치세를 원활히하기 위해 다섯 개의 도읍지를 두었다. 5경은 숙신 땅의 상경 용천부와 조선 땅이자지금의 도성인 중경 현덕부, 예맥족이 살던곳으로 바닷가와 가까워 일본 가는 길로 통하는 동경 용원부, 옛 옥저 땅으로 신라 가는 통로인 남경 남해부, 고구려 때 국내성이 있던 곳으로 당나라 가는 통로인 서경압록부였다.

한편 대흠무는 태백산에서 발원하여 서쪽 바다로 흐르는 마자수를 압록수로, 동쪽바다로 흐르는 통문하를 두만하로 고쳐 부르게 했다.

대흠무가 크게 흥한다는 뜻으로 대흥이라 연호를 정한 것도 다 까닭이 있었다. 당나라를 경계하고 신라가 발호하지 못하게하기 위해서는 당나라와 화의하고 일본과화친해야 했다.

예인 이구년을 불러 가무를 즐기던 이융기는 문득 구룡전 연못에 비친 여인의 치맛자락을 보고 환관 고력사에게 풍류를 아는여인인 듯하니 데려오라 일렀다. 여인은 태자위에 오를 뻔했던 수왕 이모의 비인 양옥환이었다. 예전에 수왕과 같이 알현하던 자리에서도 잠시 느꼈지만 과연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천하절색이었다. 스물두 살의 여인을 반갑게 맞은 황제의 나이는 쉰여섯이었다

사사로이는 며느리요, 맺어져서는 아니 될 여인에게 한눈에 반해버렸으니, 이비극 서린 만남이 훗날 경국지색의 참화가될 줄 누가 알았으랴. 옛날 한나라의 성제가 조비연에게 빠지고, 은나라 주왕이 달기에게 빠져 나라가 기울었던 걸 외로운 황제가 어찌 기억했겠는가.

양옥환은 남방의 촉 태생으로 촉주사호양현염의 딸인데, 아버지가 일찍 죽어 숙부인 양현교 밑에서 자랐다. 풍만한 몸집이어디 한군데 빠진 데 없이 고르게 균형이잡혔으며 오관이 바르게 놓였고, 크고 해맑은 눈이 보석처럼 빛나는 여인이었다. 입술은 단물이라도 흐를 듯 촉촉이 젖어 미소가잔잔히 묻어나며, 희고 고른 치아가 유난히돋보였다. 살결은 희다 못해 푸른빛이 날정도여서, 마치 막 잠을 잔 누에가 고치를지을 때처럼 핏줄마저 투명했다. 엷고 붉은연지와 풀어놓은 머리채가 탐스러웠고 사향각시를 품었는지 향긋한 향내가 풍겼다.
"천하절색이 아니더냐?"

영남도호부가 있는 광주(광동성)는 도성에서 남쪽으로 수만 리 떨어져 있어 오가는데 오랜 시일이 걸렸다. 다행히 수왕 이모는 싫어하는 내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황제의 신임을 얻어 대임을 잘 마무리하면 태자위에 오를 수 있다 생각했다.
그것이 천하 대란의 시발이 될 줄 누가알았으랴.

여인은 금세 새로운 요지경에 빠진 듯신음소리로 사내의 애욕에 불을 지폈다. 입술과 혀끝으로 이융기의 몸을 핥아 자지러지게 만들었다. 천하의 음탕이 무슨 수로양태진의 육신에 스며들었는지 모르지만 황제의 늙은 몸을 펄펄 살아 움직이게 했다. 황제는 중원을 호령했지만 양태진은 그런황제를 옥문과 혀와 입술, 눈웃음과 자지러지는 신음, 금방 숨이 넘어갈 듯한 교태와온몸을 불사르는 열정으로 휘어잡았다.
그 무렵 동방의 전략기지 유주에서는 야심가인 안녹산이 평로병마사가 되어 동방의 맹주 발해를 노려보고 있었다.

발해를 둘러싸고 있는 당, 거란, 흑수, 신라와 항시 부딪혔다. 국운을 건 대전이 언제 벌어질지 모른다. 그러니 부지런히 군마를 늘려야 했다. 말을 강건하게 조련시켜전장에 나서면 당연히 승산이 높아질 것이다. 대흠무는 친히 봉희대까지 달려가 군사들을 독려하고 군마와 비둘기들을 살폈다.

"폐하, 때로는 바다 속 암초같이 모습을감추었다가 큰 파도 칠 때 모습을 드러내고, 때로는 바람 앞의 버드나무처럼 세상과같이 흔들리며, 때로는 돌밭을 경작하는 소처럼 우직하게 밀어붙이고, 때로는 진흙 밭에서 싸우는 개처럼 악착같이 적을 이겨야하며, 때로는 큰 바위 밑에 오래 된 불상처럼 꿈쩍하지 않으셔야 하옵니다."

사방에서 상주문과 표문이 올라오면 반드시 고력사가 먼저 본 뒤에 황제에게 올렸고, 고구려 후손으로 황제의 권위에 도전했던 왕모중을 제거한 실력자였다. 간사한재상 이림보조차 고력사를 두려워했으니고력사의 위세는 나는 화살도 멈추게 할 정도였다.
"그대는 발해 황제가 되고 싶지 않은가?"

당나라는 5년간이나 끌어오던 안서 땅을평정하고 이제 동쪽으로 눈을 돌렸다.
북방의 대초원을 지배하던 서돌궐의 한부족 돌기시 가한 궐특근이 사망하자 세력이 약해진 틈을 타 소록이란 걸출한 인물이등장했다. 소록은 백성들을 따뜻하게 보살피며 근면하고 검약하여 존경받았다. 전쟁에서 획득한 재화를 모두 부하에게 나누어주었으니 소문이 근동으로 퍼져 나가 여러부족이 충성을 바쳤다. 하지만 5년 동안이나 당나라와 맞서 싸우면서 많이 쇠락해졌다.

"전하, 거대한 동쪽의 용 한 마리를 낚아채는 데 울안에 기르는 어여쁜 고기 한 마리쯤 낚시에 걸어두는 게 천하 장부의 묘책임을 아십니까?"

그곳에는 과부나 이혼녀, 기녀로 입적하지는 않았지만 자유분방하게 즐기려는 처자들과 서방 몰래 정념을 풀려는 여인들까지 이른바 여자도사라는 이름으로 거룩한채 좌정하고 있었다. 여도사들의 기묘한 음행을 묵인하며 짭짤하게 이득을 챙기는 도관 중에 함의관은 제일 소문난 곳이었다.

격노한 신하들은 끝까지 추격해 대청천을 사로잡아 능지처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신 명림무흥은 대청천을 주살하여국기를 바로세우기를 강력히 주청했다.
"폐하, 공이 있는 자에게는 상을 내리는것이 좋은 규범이고, 죄가 있는 자는 주형하는 것이 선제의 영전이옵니다. 기릉과 무염이 극에 달해 흉사한 자를 잡아들이고,난역에 가담한 무리들을 징치하는 것은 천하의 도리이옵니다. 다행히 천지의 살핌과종묘 신령의 힘을 입어 옥체를 보전하실 수있었으나, 효경(어미를 잡아먹는 새와 아비를 잡아먹는 짐승)과 같은 흉측한 자들을 결코살려두어서는 아니 되옵니다."

닷새 만에 안녹산은 또 다시 이징관의 집을 찾았다. 별채에 마련한 술상 앞에서 안녹산은 이합비의 손을 덥석 잡았다.
"네 소원을 들어 주기로 했다."
이합비가 곱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
"소녀의 꿈은 드넓은 황궁에서 3천 궁녀, 3천 내시와 뭇 신하들이 머리를 조아리게하는 것입니다. 온 천하를 둘러보아도 천번지복하여 황룡 위에 앉을 분은 절도사 어른밖에 없습니다. 제 한목숨 언제든지 바칠수 있으니 기꺼이 밟고 용상에 오르셔야 합니다."

"발해의 운명을 네 마음과 몸으로 짊어진 것이니 어떤 신고가 따르더라도 이겨내거라. 목숨 바칠 일이면 기꺼이 바치고 몸바칠 일이면 아끼지 마라. 이합비의 충절은사관의 일필로 후세에 기록될 것이다."
난삼의 말을 가슴에 새기며 이합비는 안녹산의 마음과 몸을 사로잡기 위해 비법을배우고 익혔던 것이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연모하는 정인을 두고 당나라 땅에서 초개와 같이 목숨을 버리게 될 것을.

위기의 순간에 양소화를 구한 것은 놀랍게도 금군장수 임도빈이었다. 양소화가 어사를 제수받고 도성을 떠날 때부터 은밀히그녀를 뒤따르며 지키라 명한 것은 태부 신석정이었다. 양소화는 얼른 말에서 내려 동쪽을 향해 세 번 절을 올렸다.

그 순간 소리를 지른 것은 뜻밖에도 서경압록부의 운휘장군 검두삭이었다. 백전노장이지만 자원하여 변방 장수로 나가 젊은 장수들에게 규범을 보여주던 덕장이었다. 비록 공심지의 아랫자리에 있지만 청렴하고 결백하여 군사들이 어버이 섬기듯했다. 군사들이 머뭇거리자 검두삭은 또 한번 소리 질렀다.
"이 칙서는 가짜다. 죄상이 드러날까 두려워한 공심지가 꾸며 만든 것이다. 알겠느냐? 모두 무기를 내려놓아라!"

"탐관오리는 백번 죽어 마땅하옵니다.기군망상의 죄상은 반드시 참해야 국기가바로 서며 척신 공심지의 죄상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많고 크나이다. 지금양소화를 징치하면 반드시 어질지 못한 무리들이 음흉한 간계로 날뛸 것이옵니다. 멀리 보신다면 오히려 양소화에게 후한 상을내리심이 마땅하옵니다. 그러하면 척신과근신은 물론이고 탐관오리들이 사라질 것이옵니다."

자고로 충성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애국은 맹세를 저버리지 않는 법이로다. 근자에서경압록부 도독 공심지가 간악하고 요사스런 꾐에 빠져 국고금을 훔쳐 사욕을 채우고,백성들의 골육을 짜낸 뇌물로 사방을 어지럽혔으며, 국법을 어기고 기군망상하여 그 폐해가 극심했더라.
또한 공공연히 인륜을 어기고 무수한 여인들을 농락하며 음란을 자행했고, 국법으로 금지한 사형을 자행하매 죄 없는 남자들을 강제로 고자로 만드는 만행을 저질렀도다. 범법이있는 곳에 악이 따르고, 악이 있는 곳에 벌이따르게 마련이라. 짐은 양소화를 어사로 삼아국기를 엄히 다루게 했으며, 죄를 다스리매먼저 행하고 후에 장계하라 명했도다. 이에 어사 양소화가 위급한 지경에 공심지를 참한 것은 짐의 명을 따르고 법을 지켰으며 예를 벗어나지 않았다. 어찌 자식의 잘못이 부모의 죄가 되겠느냐만, 사공 공진방은자식의 죄를 감추고 짐을 속였으니 멀리 안변부로 귀양 보내 지은 죄를 씻게 하겠노라. 이에 짐은 조서를 내리니 진신들은 함부로공론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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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쿠사이, 그림에 미친 노인
프랑수아 플라스 지음, 김희경 옮김 / 이숲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책소개] 프랑수아 플라스 『호쿠사이, 그림에 미친 노인』

1. 개요
• 도서명 : 호쿠사이, 그림에 미친 노인
• 출판사 : 이숲
• 출간일 : 2015년 2월 15일
• 저자 : 프랑수아 플라스, 1957년 프랑스 출생으로 글과 그림을 함께 작업해 온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임
• 역자 : 김희경
• 작품 성격 : 일본 에도 시대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삶과 그림 세계를 소년 도지로의 눈으로 따라가는 그림책 형식의 문학 작품임

2. 책의 기본 내용
• 내용 개요 : 이 책은 에도에서 쌀 과자를 팔며 살아가던 소년 도지로가 호쿠사이를 만나면서 시작됨. 도지로는 호쿠사이가 유명한 화가라는 정도만 알고 있다가, 과자 배달 중 호쿠사이 집에서 벌어진 소동을 계기로 그의 집과 그림 세계에 들어가게 됨
• 주요 내용 : 도지로는 처음부터 화가가 되겠다고 호쿠사이를 찾아간 인물이 아님. 우연히 호쿠사이를 만나고, 뜻밖의 사건에 휘말리면서 그의 곁에 머물게 됨. 이후 호쿠사이의 집과 판화 작업실을 드나들며 그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고, 조금씩 그림을 배우는 제자 같은 자리로 들어감
• 공간적 범위 : 19세기 전반 일본 에도를 중심으로, 거리와 집, 판화 작업실, 에도 사람들의 생활공간을 오가며 전개됨
• 전개의 방식 : 호쿠사이의 생애를 연보처럼 설명하기보다, 도지로가 낯선 노화가를 만나 그의 그림 세계로 들어가는 흐름으로 전개함
• 핵심 흐름 : 처음에는 허름하고 괴팍한 노인처럼 보이던 호쿠사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그림 하나에 평생을 건 예술가로 다가오는 흐름을 가짐

3. 책의 특징
• 도지로의 시선 : 호쿠사이를 처음부터 위대한 화가로 소개하지 않고, 한 아이가 낯선 노인을 만나 조금씩 알아가는 방식으로 풀어냄
• 호쿠사이의 인간적인 모습 : 호쿠사이는 허름하고 괴팍하며 고집도 센 인물로 나옴. 그래서 오히려 실제 사람처럼 느껴지고, 그 안에 있는 그림에 대한 집요함이 더 잘 보임
• 그림을 배우는 과정 : 도지로는 처음에는 심부름 때문에 호쿠사이의 집을 오가지만, 점차 판화 작업실을 보고 그림 수업도 받게 됨. 도지로에게 호쿠사이는 이상한 노인에서 점차 스승 같은 사람으로 바뀜
• 우키요에와 에도 분위기 : 책에는 에도 거리, 판화 작업실, 사람들의 생활이 함께 나옴. 호쿠사이의 그림이 방 안에서 혼자 나온 것이 아니라, 그가 살던 거리와 사람들, 자연을 오래 보고 만들어진 것임을 짐작하게 함
• 문체/분위기 : 어렵지 않고 차분하게 읽히는 편임. 그림책 형식이라 부담은 적지만, 다 읽고 나면 한 사람이 자기 일을 끝까지 붙들고 산 태도가 묵직하게 남음

4. 읽어볼 만한 이유
• 호쿠사이를 쉽게 만나는 책 :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로 익숙한 호쿠사이를, 작품 설명이 아니라 이야기 속 인물로 만날 수 있음
• 예술가의 집념 : 호쿠사이는 이미 이름난 화가였지만, 자기 그림을 쉽게 완성된 것으로 여기지 않았음. 더 오래 살 수 있다면 더 나은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하는 태도가 오래 남음
• 그림을 다시 보게 하는 책 : 파도와 후지산 그림을 단순한 유명 이미지가 아니라, 오랜 관찰과 집념 끝에 나온 그림으로 다시 보게 함

5. 종합 평가
• 평가 : 『호쿠사이, 그림에 미친 노인』은 호쿠사이의 대표작을 설명하는 책이라기보다,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의 태도와 집념을 보여주는 책임
• 인상 : 가장 오래 남는 것은 호쿠사이가 백서른 살, 백마흔 살이 되어서야 점 하나와 획 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경지에 이를 것이라고 말한 대목임. 이미 뛰어난 화가였지만, 자기 부족함을 알고 끝까지 배우려 했다는 점이 인상 깊음
• 한줄 정리 : 괴팍한 노화가의 삶을 따라가며, 유명한 그림을 그린 사람을 다시 보게 하는 책임


<그림보다 먼저, 그림을 그린 사람이 남는 책>
이상한 노인을 따라가다 보면 예술가의 집념이 보이는 이야기

프랑수아 플라스의 『호쿠사이, 그림에 미친 노인』은 일본 에도 시대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를 다룬 책이다. 이 책은 호쿠사이를 처음부터 위대한 화가로 소개하지 않는다. 에도에서 쌀 과자를 팔며 살던 소년 도지로가 호쿠사이를 만나고, 그 인연으로 호쿠사이의 집과 그림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처음에는 유명 화가의 이야기라기보다, 한 아이가 이상한 노인을 만나게 된 이야기처럼 읽힌다.

도지로는 호쿠사이가 이름난 화가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러다 과자 배달 중 호쿠사이 집에서 벌어진 소동을 계기로 그의 집을 드나들게 된다. 이 시작이 자연스럽다. 도지로가 처음부터 화가가 되겠다고 찾아간 것이 아니라, 우연히 만나고 어쩌다 휘말리면서 그 사람 곁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도지로가 호쿠사이를 알아가는 과정도 억지스럽지 않다.

호쿠사이는 허름하고 괴팍한 노인이다. 성격도 만만하지 않고, 생활도 반듯한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그림 앞에서는 무서울 정도로 집요하다. 뭐든 오래 보고 또 보며, 그것을 어떻게 그림으로 옮길지 생각한다. 도지로는 처음에는 심부름 때문에 그 집을 오갔지만, 차츰 판화 작업실을 보고 그림도 배우게 된다. 그러면서 도지로에게 호쿠사이는 이상한 노인에서 스승 같은 사람으로 바뀐다.

책을 읽다 보면 우키요에와 에도 분위기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거리의 사람들, 판화 작업실, 생활 속 풍경이 함께 나오기 때문이다.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도 다시 보게 된다. 거대한 파도 아래 작은 배가 있고, 멀리 후지산이 보인다. 전에는 그냥 유명한 그림으로만 보았다면,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그 그림을 오래 보고 또 보며 그려낸 사람이 먼저 떠오른다.

가장 오래 남는 부분은 호쿠사이가 자기 그림 인생을 돌아보며 한 말이다. 그는 여섯 살에 자연을 그리기 시작했고, 쉰 살에 명성을 얻었지만, 일흔 살 전에 했던 것은 모두 쓸모없는 짓이었다고 말한다. 또 백서른 살, 백마흔 살이 되어서야 자신이 그린 점 하나와 획 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경지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이 말이 참 대단하다. 이미 이름을 얻은 화가가 자기 그림을 완성이라고 여기지 않고, 아직도 더 배워야 한다고 말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호쿠사이가 어떤 사람인지 가장 잘 보인다. 그림 한 장이 제대로 살아 움직이려면 재능만으로는 부족하고, 오랜 노력과 고난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뛰어난 예술가였기 때문에 오히려 자기 부족함도 더 잘 알았던 사람 같다. 그래서 호쿠사이의 말은 자랑처럼 들리지 않고, 끝까지 배우려는 사람의 겸손으로 남는다.

이 책은 호쿠사이를 너무 멋있게만 포장하지 않는다. 허름하고 괴팍하고 고집스러운 모습까지 함께 보여준다. 그래서 오히려 실제 사람처럼 느껴진다. 위대한 예술가라는 이름 뒤에, 한 가지를 끝까지 붙들고 산 사람이 있었다는 점이 잘 보인다.

결국 『호쿠사이, 그림에 미친 노인』은 호쿠사이의 대표작을 설명하는 책이라기보다, 유명한 그림을 그린 사람을 보게 하는 책이다. 도지로가 호쿠사이의 집으로 들어가듯, 읽는 사람도 괴팍한 노인을 따라가다가 그의 그림과 집념을 조금씩 알게 된다. 책을 덮고 나면 호쿠사이라는 유명한 이름보다, 늙어서도 그림 앞에서 계속 배우려던 노인의 모습이 더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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