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일본 소도시 여행
두경아 지음 / 길벗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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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도쿄 여행기

여행 4일차, 2025.12.27.(토요일)
물의 고향 시라이토 폭포와 구름 사이 후지산(오후편)


13. 버스에서도 계속 따라오는 후지산

시라이토 폭포를 출발한 버스는 타누키호(田貫湖)를 향해 산길을 달렸다.

창밖을 바라보는데 또 후지산이 나타났다.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고,
조금 지나면 또 눈 덮인 정상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침 신칸센에서 처음 후지산을 본 뒤부터 계속 이렇다.

신후지역에서도 보고,
택시에서도 보고,
미노부선에서도 보고,
후지노미야에서 시라이토 폭포로 가는 길에도 봤다.

그리고 이제 타누키호로 가는 버스 안에서도 또 보고 있다.

오늘은 정말 후지산의 흰 머리를 질리도록 본다.

구름이 조금만 움직여도 산의 모습이 달라지고,
보는 위치가 달라질 때마다 또 다른 후지산이 나타났다.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오늘 하루 사진의 절반은 후지산이 차지할 것 같다.


14. 오전 10시 10분, 타누키호에 도착하다

오전 10시 10분경 타누키호(田貫湖)에 도착했다.

후지산 서쪽의 아사기리고원에 자리한 호수다.

동서 약 1km,
남북 약 0.5km,
둘레 약 3.3km.

크게 부담 없이 한 바퀴 걸을 수 있는 크기의 호수다.

버스가 떠나고 주변이 조용해졌다.

도쿄에서 들었던 자동차 소리와 사람들의 소음은 사라지고,
호수와 숲, 겨울 하늘만 남았다.

입구에는 TANUKIKO FUGAKU TERRACE

라고 적혀 있었다.

타누키호 후가쿠 테라스(田貫湖富岳テラス).

‘후가쿠(富岳)’는 후지산을 가리키는 또 다른 이름이다.

그러니 말 그대로 후지산을 바라보기 위한 테라스다.

이름 한번 참 제대로 지었다.


15. 호수와 후지산 사이를 걷다

호숫가 길로 들어섰다.

키 큰 삼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숲길을 지나자 타누키호가 바로 옆으로 나타났다.

겨울이라 나뭇잎은 대부분 떨어졌지만 오히려 시야가 탁 트였다.

호수는 잔잔했고,
파란 하늘에는 커다란 구름들이 빠르게 흘렀다.

낚시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타누키호는 헤라부나(ヘラブナ) 낚시로도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헤라부나는 일본에서 즐겨 낚는 붕어의 일종으로, 섬세한 찌의 움직임을 읽어 낚는 일본 특유의 붕어낚시 문화가 발달해 있다.

물 위에는 오리들이 떠다녔다.

도쿄에서 사흘 동안 사람에 치이고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가 이런 길을 걸으니 완전히 다른 여행에 온 것 같았다.


16. 구름이 열리자 다시 후지산

문제는 구름이었다.

타누키호에 도착했을 때 후지산은 대부분 구름 뒤에 숨어 있었다.

“아이고. 여기까지 왔는디 좀 보여주지.”

그런데 호숫가를 걷다 보니 구름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하얀 정상부가 다시 나타났다.

후지산이다.

이번에는 아침 신칸센에서 본 모습과 또 달랐다.

눈 덮인 산 정상 아래로 구름이 허리띠처럼 둘러져 있고, 그 아래에는 타누키호의 푸른 물이 펼쳐져 있었다.

산과 호수와 구름이 한꺼번에 한 화면 안에 들어왔다.

카메라를 들었다.

셔터를 누르고 또 눌렀다.


17. 손바닥 위에 후지산

마님과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후지산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기도 하고,
호수를 배경으로 둘이 셀카도 찍었다.

나도 손을 펼쳐 후지산을 올려놓았다.

마님도 똑같이 해봤다.

사진으로 보니 제법 그럴듯하다.

아까 신칸센에서 후지산 정상만 보여도 그렇게 흥분했는데,
이제는 호수 앞에 서서 후지산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놀고 있다.

하루 만에 후지산하고 많이 친해졌다.


18. 구름과 후지산의 숨바꼭질

후지산은 계속 모습을 바꿨다.

구름에 완전히 가렸다가,
정상만 빼꼼 내밀었다가,
잠시 뒤에는 거의 산 전체가 드러났다.

조금 지나면 다시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다 또 나타났다.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면 구름이 덮이고,
포기하고 걸어가면 다시 모습을 보여준다.

후지산하고 숨바꼭질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운이 좋았다.

완전히 가려져 보지도 못한 것이 아니라,
기다리면 계속 다시 나타나주었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후지산의 흰 머리를 정말 질리도록 봤다.

그런데도 카메라는 계속 후지산 쪽을 향하고 있었다.


19. 타누키호에서 바라본 후지산

호수 건너 후지산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잠시 멈췄다.

푸른 호수,
겨울빛의 갈대,
검은 숲,
그 뒤에 하얀 후지산.

구름이 산허리를 감싸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 모습도 멋있었다.

완전히 맑은 날의 후지산만 좋은 것은 아닌 것 같다.

구름 사이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후지산은
보일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 카메라를 들게 만들었다.

오늘 처음 본 산인데 벌써 수십 번을 본 것 같다.

책으로 보고,
사진으로 보고,
플래티넘 #3776 만년필로 모아두었던 후지산.

그 산이 오늘 하루 종일 눈앞에 있다.

참 묘한 기분이다.


20. 모토스호는 다음에

타누키호에서 조금 더 서쪽으로 가면 모토스호(本栖湖)가 있다.

플래티넘 후지오호(富士五湖) 시리즈 만년필 가운데 하나인 ‘모토스(本栖)’의 바로 그 호수다.

만년필로는 이미 가지고 있는 이름이니 실제 호수도 한번 보고 싶었다.

“여기까지 왔는디 모토스호도 가볼까?”

마음 같아서는 바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은 대중교통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돌아가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일정이 맞지 않았다.

아쉽지만 포기했다.

만년필 속 모토스호는 가지고 있지만 실제 모토스호는 다음 여행으로 남겨두었다.


21. 타누키호를 떠나 다시 후지노미야로

호숫가를 계속 걸었다.

뒤를 돌아봐도 후지산,
조금 걷다 고개를 들면 또 후지산이었다.

구름 사이로 하얀 정상이 보일 때마다 또 사진을 찍었다.

평생 한 번도 직접 본 적 없던 후지산을 오늘 하루에 몰아서 보는 것 같았다.

시라이토 폭포에서는 무지개를 봤고,
타누키호에서는 후지산을 질리도록 봤다.

마님과 둘이 호숫가를 걷고,
사진을 찍고,
또 후지산을 바라봤다.

멋진 하루다.

오전 11시 30분경.

이제 타누키호를 떠날 시간이 됐다.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가 후지노미야 방면 버스를 기다렸다.

잠시 뒤 버스가 도착했고 마님과 함께 올라탔다.

버스가 타누키호를 벗어나 산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창밖에는 또 후지산이 따라왔다.

구름에 가려졌다가,
잠시 뒤 다시 흰 정상을 보여주었다.

아침부터 실컷 보았는데 떠나는 길까지 후지산이 배웅해주는 것 같았다.

타누키호는 조금씩 멀어졌다.

이제 다시 후지노미야로 돌아간다.


22. 이제 다시 도쿄로

오전 11시 30분경 타누키호를 출발한 버스는 후지노미야를 향해 산길을 내려갔다.

아침부터 그렇게 많이 본 후지산인데 돌아가는 길에도 자꾸 창밖으로 눈이 갔다.

구름 사이로 흰 정상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주택가 지붕 너머로 보였다가 커다란 구름 속으로 숨어버리고, 조금 더 달리면 또 하얀 머리를 슬쩍 내밀었다.

아침 신칸센에서 처음 발견했을 때의 흥분과는 조금 달랐다.

이제는 후지산이 오늘 하루의 배경처럼 느껴졌다.

버스는 산기슭을 내려와 다시 후지노미야 시내로 들어왔다.


23. 오후 12시 40분, 후지노미야에서 간단히 먹을 것을 사다

후지노미야역(富士宮駅)으로 돌아왔다.

역 앞 세븐일레븐에 들러 돌아가는 길에 먹을 것들을 샀다.

영수증 시간은 오후 12시 40분.

참치마요네즈 주먹밥과 샌드위치 등을 챙겼다.

아침부터 계속 돌아다녔지만 제대로 점심을 먹을 만한 시간은 없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이런 날도 있다.

맛집 찾아 앉아서 천천히 먹는 날이 있는가 하면, 기차시간 맞추느라 편의점 주먹밥 하나 들고 뛰는 날도 있다.

오늘은 후자다.


24. 오후 12시 49분, 미노부선으로 후지역까지

후지노미야역 전광판에는 미노부선(身延線) 후지역(富士駅) 방면 열차가 표시되어 있었다.

우리가 탈 열차는 오후 12시 49분 출발 후지역행 보통열차.

아침에는 후지역에서 8시 6분 열차를 타고 후지노미야로 왔으니 이제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되돌아가는 셈이다.

오후 12시 49분 열차에 올랐다.

아침에는 앞으로 펼쳐질 하루가 궁금해 창밖을 내다봤다면 돌아가는 지금은 조금 느긋했다.

시라이토 폭포도 봤고, 무지개도 봤고, 타누키호도 걸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후지산을 오늘 원 없이 봤다.


25. 후지역에서 다시 택시를 타고 신후지역으로

미노부선을 타고 후지역까지 돌아왔다.

아침과 마찬가지로 후지역과 신후지역은 철도로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아침에는 신후지역에서 후지역까지 택시를 탔고, 돌아가는 길에는 반대로 후지역에서 다시 택시를 탔다.

신후지역(新富士駅)으로 이동했다.

아침에는 하루를 시작한다는 생각에 정신없이 지나갔던 길인데 돌아올 때는 한 번 지나온 길이라 훨씬 익숙했다.

신후지역에 도착해 도쿄 방면 신칸센 승강장으로 올라갔다.


26. 신후지역에서 먹는 늦은 점심

신칸센을 기다리며 아까 세븐일레븐에서 사온 먹을 것을 꺼냈다.

참치마요네즈 삼각주먹밥.

그리고 달걀샌드위치.

마님과 각자 하나씩 들고 사진도 찍었다.

화려한 음식도 아니고 특별한 지역음식도 아니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시라이토 폭포와 타누키호를 돌아다닌 뒤 먹으니 이것도 맛있다.

신후지역에서 마님과 주먹밥과 샌드위치로 늦은 점심을 때웠다.

아침에도 신칸센을 타며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고, 돌아가는 길에도 다시 신칸센을 기다리며 간단하게 배를 채운다.

오늘은 참 기차여행다운 하루다.


27. 오후 1시 40분경, 다시 신칸센을 타고 도쿄로

오후 1시 40분경.

신후지역에서 도쿄 방면 신칸센에 올랐다.

우리가 이동할 구간은 신후지에서 도쿄·시나가와까지다.

아침에는 후지산을 보러 내려왔고 이제 다시 거대한 도시 도쿄로 돌아간다.

기차에 자리를 잡으니 비로소 몸이 좀 풀렸다.

아침 5시에 일어나 여기저기 갈아타며 하루 종일 돌아다녔으니 피곤할 만도 했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오늘 보고 싶었던 것은 다 봤다.

차창 밖으로 도시와 풍경이 차례로 지나갔다.

후지산 기슭의 숲과 호수는 점점 멀어지고 다시 빽빽한 건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8. 다시 도쿄, 그리고 시부야로

도쿄로 들어오자 다시 사람이 많아졌다.

기차에서 내리고 JR 야마노테선(山手線)으로 갈아타 시부야로 향했다.

조용한 타누키호에 있다가 시나가와역과 야마노테선의 사람들 틈에 들어오니 같은 날 맞나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달라졌다.

며칠 동안 계속 봐왔던 도쿄인데도 오늘은 유난히 복잡하게 느껴졌다.

아침에는 마님과 둘이 호텔을 나섰지만 이제 시부야로 돌아가 아들과 다시 합류할 시간이다.

딸래미는 아직 일본 친구를 만나고 있었고, 자연을 보고 싶다던 아들은 예정대로 호텔에서 요괴워치를 잡으며 하루를 보냈다.

아들과 합류하고 나니 슬슬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됐다.


29. 오후 4시 29분, 오늘 저녁도 역시 기다림

마님과 나, 아들까지 셋이 저녁을 먹으러 나섰다.

딸래미는 아직 일본 친구를 만나고 있어 돌아오지 않았다.

찾아간 곳은 스시만(すし萬).

오후 4시 29분.

가게에 도착해 웨이팅을 걸었다.

인원은 3명.

우리 번호는 137번이었고, 화면에 떠 있는 호출번호는 125번이었다.

그러나 앞에 기다리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또 기다린다.

이번 여행은 먹으려면 일단 기다려야 하나 보다.

아키하바라에서 로스트비프를 먹을 때도 기다렸고, 규카츠를 먹을 때도 한참 기다렸다.

오늘 초밥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렇게 약 50분을 기다렸다.

오후 5시 20분경이 되어서야 가게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젠장.

밥 한번 먹기 참 힘들다.


30. 아들아, 광어가 없다

드디어 자리를 잡았다.

기다리느라 지칠 대로 지쳤지만 이제 초밥만 맛있게 먹으면 된다.

마님과 나, 아들까지 셋이 자리에 앉았다.

마님과 나는 생맥주를, 아들은 음료를 앞에 놓고 일단 한숨을 돌렸다.

자, 이제 먹어보자.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광어가 없다.

정확히는 거의 다 떨어지고 몇 개 남지 않았단다.

“뭐?
광어가 없다고?”

아이고.

50분이나 기다려서 들어왔는데 하필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광어가 거의 떨어졌다니.

오늘 하루 후지산을 보고 기분 좋게 돌아왔는데 여기서 갑자기 열이 받는다.

“아니, 초밥집에 광어가 떨어지믄 우짜자는겨.”

그래도 여기까지 기다려서 들어왔는데 다시 나갈 수도 없다.

남아 있는 광어 몇 점부터 챙겨 먹고 다른 초밥들을 주문했다.

참치도 먹고, 새우도 먹고, 이것저것 접시는 계속 쌓였다.

광어 때문에 시작은 좀 거시기했지만 마님과 나, 아들 셋이서 늦은 저녁을 잘 먹었다.


31. 다시 시부야의 밤거리로

저녁을 먹고 밖으로 나왔다.

낮의 후지노미야와는 정말 다른 세상이다.

대형 전광판에서는 광고가 쏟아지고 건물마다 불빛이 번쩍였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흘러다녔다.

그리고 우리는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 쪽으로 걸어갔다.

며칠 동안 시부야를 계속 돌아다녔지만 오늘 밤 사람 숫자는 또 달랐다.


32. 워매, 세계 사람들이 여기 다 모였나

스크램블 교차로에 도착했다.

워매.

사람이 정말 어마어마하다.

맞은편 횡단보도 끝이 사람으로 꽉 찼다.

옆쪽도 사람.

대각선 건너편도 사람.

어디를 봐도 사람뿐이다.

“세계 사람들은 여기 다 모였나벼.”

진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신호가 바뀌었다.

그 순간 사방에서 사람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앞에서 오고, 옆에서 오고, 대각선에서도 온다.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부딪히지 않으면서 교차로 한가운데를 가로질렀다.

사람 속에 들어가 있으니 내가 길을 걷고 있는지, 사람 물결에 떠밀려 이동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며칠 전 도쿄 스카이트리에서 사람이 정말 많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의 인파는 차원이 달랐다.


33. 수천 명이 움직이는 도쿄의 풍경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자 그렇게 많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인도로 빠져나갔다.

잠시 뒤 자동차들이 교차로를 차지한다.

그리고 다시 신호가 바뀌면 사람들이 쏟아진다.

이 장면이 계속 반복된다.

스크램블 교차로를 사진이나 영상으로는 많이 봤다.

그런데 실제로 그 한가운데 들어가 보니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주변을 둘러싼 거대한 전광판과 네온사인, 높은 빌딩, 버스와 자동차, 그리고 그 사이를 가득 채우는 사람들.

도쿄라는 도시가 가진 에너지를 그대로 보는 것 같았다.

오늘 아침에는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민 후지산을 보고 흥분했다.

낮에는 시라이토 폭포의 물소리를 듣고 타누키호의 조용한 길을 마님과 걸었다.

그리고 지금은 시부야 한가운데서 끝없이 밀려드는 사람들을 보고 있다.

하루 사이에 이렇게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여행의 재미다.


34. 후지산에서 시부야까지, 참 멋진 하루

스크램블 교차로를 몇 번이나 바라보고 사진도 실컷 찍었다.

아침부터 사진을 참 많이 찍었다.

후지산을 찍고,
시라이토 폭포를 찍고,
무지개를 찍고,
타누키호를 찍고,
마님을 찍고,
다시 후지산을 찍었다.

그리고 하루의 마지막에는 사람을 찍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

아침의 주인공이 후지산이었다면 밤의 주인공은 시부야의 사람들이었다.

평생 한 번도 직접 본 적 없었던 후지산을 오늘 처음 만나 원 없이 바라봤다.

그리고 저녁에는 시부야로 돌아와 아들과 합류해 함께 밥을 먹고 밤거리를 걸었다.

광어가 거의 떨어져서 잠깐 열받은 것만 빼면 말이다.

아침 5시부터 시작한 긴 하루였다.

후지산의 흰 머리도 질리도록 봤고, 시라이토 폭포의 무지개도 봤고, 타누키호도 걸었다.

그리고 하루의 끝에는 세계 사람들이 다 모인 것 같은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 한가운데 서 있었다.

멋진 하루였다.

이제 숙소로 돌아가자.

내일은 벌써 도쿄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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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경아 지음 / 길벗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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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도쿄 여행기

여행 4일차, 2025.12.27.(토요일)
물의 고향 시라이토 폭포와 구름 사이 후지산(오전편)


1. 새벽 5시, 결국 마님과 둘이 떠나다

새벽같이 일어났다.
아직 밖은 깜깜했다.

어젯밤 자연을 보고 싶다던 아들에게 후지노미야에 가자고 했더니 몇 시에 일어나야 하느냐고 물었다.

“5시에는 일어나야 헐틴디.”

그 한마디에 아들은 바로 포기했다.

“못 일어납니다.
차라리 호텔에서 하루 종일 게임할랍니다.”

딸래미는 일본 친구를 만나러 가기로 했고, 결국 오늘 후지산을 보러 가는 사람은 마님과 나 둘뿐이다.

졸린 눈을 비비며 준비를 마치고 숙소를 나섰다.
새벽의 시부야 거리는 지난 며칠 동안 보았던 모습과 또 달랐다.

밤마다 사람으로 넘쳐나던 시부야가 아직 잠에서 덜 깬 듯 조용하다.
오전 5시 20분경 시부야역(渋谷駅)에 도착해 JR을 타고 도쿄역으로 향했다.

오늘은 도쿄를 벗어난다.
목적지는 후지산 기슭의 후지노미야(富士宮)다.


2. 새벽의 도쿄역, 고다마를 기다리며

오전 6시가 조금 넘어 도쿄역에 도착했다.

도카이도·산요 신칸센(東海道・山陽新幹線) 승강장으로 들어서자 전광판에는 이른 아침부터 열차들이 줄줄이 떠 있었다.

노조미(のぞみ), 히카리(ひかり), 고다마(こだま).

이름도 일본답다.

노조미(のぞみ)는 ‘희망·바람’,
히카리(ひかり)는 ‘빛’,
고다마(こだま)는 ‘메아리’라는 뜻이다.

도카이도 신칸센에서는 이름뿐 아니라 역할도 서로 다르다.
노조미는 도쿄·나고야·교토·신오사카 등 주요 도시를 빠르게 연결하는 최속달 열차이고, 히카리는 노조미보다 정차역이 많으며, 고다마는 도카이도 신칸센의 모든 역에 정차한다.

우리가 탈 열차는 오전 6시 30분 출발 고다마 701호(こだま701号).

도쿄에서 나고야 방향으로 내려가는 도카이도 신칸센이다.

오늘 목적지인 신후지역(新富士駅)은 노조미가 서지 않는다.
우리는 신후지에 정차하는 고다마를 타고 간다.

열차에 오르기 전 아침거리도 준비했다.

샌드위치와 부드러운 카츠샌드.
그리고 플랫폼에서 따뜻한 커피도 샀다.

한겨울 이른 아침의 신칸센 플랫폼.
손에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들고 열차를 기다리니 이제야 조금씩 잠이 깨는 것 같았다.


3. 오전 6시 30분, 고다마 701호 출발

오전 6시 30분.

고다마 701호가 도쿄역을 출발했다.

역시 신칸센이다.

도쿄를 벗어나자 열차는 말 그대로 쌩쌩 달렸다.

마님과 나란히 앉아 준비해온 샌드위치와 카츠샌드로 아침을 먹고 따뜻한 커피도 마셨다.
아직 잠이 완전히 깨지 않은 상태였지만 창밖 풍경이 도시에서 산과 들로 바뀌기 시작하자 조금씩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은 나에게 조금 특별한 날이다.

일본을 여러 번 여행했지만 지금까지 후지산을 직접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사진으로는 수도 없이 봤다.
일본을 상징하는 산이라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후지산을 소재로 한 물건도 좋아했다.

일본 플래티넘(PLATINUM)의 #3776 센추리 후지오호(富士五湖) 시리즈 만년필(万年筆)도 모았다.
후지산 주변의 다섯 호수를 하나씩 표현한 모토스(本栖), 쇼지(精進), 사이(西), 야마나카(山中), 가와구치(河口) 시리즈다.

‘#3776’이라는 이름부터 후지산의 높이 3,776m에서 따온 만년필이다.

그리고, 후지산과의 인연은 한번 엇갈린 적도 있었다.

재작년쯤 후지산을 등반하려고 하나투어 패키지여행까지 예약했었다.

이제 후지산을 보겠구나 했는데 출발을 앞두고 일이 생겼다.

마님이 사무실 체육행사로 대둔산에 갔다가 다리를 삐어서 돌아온 것이다.

결국 여행을 취소했다.

마님은 부상 때문에 취소수수료 없이 취소가 됐는데, 멀쩡했던 나는 위약금을 물고 취소해야 했다.

ㅠㅠㅠ.

그렇게 한번 만나려다 실패했던 후지산이다.

후지산을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정작 내 눈으로 직접 본 적은 없었다.

한번은 여행까지 예약했다가 가지 못했던 그 후지산을 오늘 드디어 만나러 간다.


4. “후지산이다!”

신후지역이 가까워지기 시작하면서 자꾸 창밖을 살폈다.

오늘 처음 만나게 될 후지산이 언제 나타날지 몰라 열차 진행 방향 오른쪽 차창에서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마침내 거대한 산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후지산(富士山).

처음에는 구름에 가려 산허리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구름 위로 정상 부분만 살짝 고개를 내밀었다.

“어? 저거 후지산 아녀?”

마님과 나 둘 다 창밖으로 시선이 꽂혔다.

열차가 조금 더 달리자 구름 사이가 열리면서 눈을 뒤집어쓴 정상부가 점점 선명해졌다.

워매.

후지산이다.

일본을 여러 번 다니면서도 한 번도 직접 보지 못했고, 한번은 여행까지 예약했다가 가지 못했던 후지산을 드디어 처음 만났다.

순간 완전히 흥분의 도가니였다.

카메라를 들고 연달아 셔터를 눌렀다.

구름 사이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던 후지산은 어느 순간 눈 덮인 정상부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사진으로 수없이 봐왔던 바로 그 모습이다.

하얀 눈을 뒤집어쓴 거대한 원뿔형 산.
그 아래는 구름에 잠겨 있고 정상만 하늘 위로 솟아 있었다.

책과 사진으로 보고, 만년필로까지 모았던 후지산이 지금 내 눈앞에 있었다.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길 잘했다.

아들아.
니가 이걸 놓쳤다.


5. 오전 7시 34분, 신후지역에 내리다

오전 7시 34분경 신후지역(新富士駅)에 도착했다.

고다마에서 내려 플랫폼을 걸으며 다시 후지산을 바라봤다.
역에서도 구름 사이로 눈 덮인 정상이 보였다.

그런데 여기서 바로 후지노미야행 열차를 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신후지역은 도카이도 신칸센 역이고, 우리가 타야 할 미노부선(身延線)은 후지역(富士駅)에서 출발한다.
두 역은 철도로 직접 이어져 있지 않다.

그래서 택시를 탔다.

오전 7시 38분경 신후지역에서 택시를 타고 후지역으로 이동했다.

택시 창밖으로도 후지산이 계속 따라왔다.
도시 어디에서 고개를 돌려도 저 거대한 산이 배경처럼 서 있는 풍경이 신기했다.


6. 신칸센에서 로컬열차로

후지역 남쪽 출구(富士駅南口)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JR 미노부선(身延線)을 타야 한다.

전광판에는 우리가 탈 열차가 정확하게 표시돼 있었다.

08:06.
보통(普通).
니시후지노미야(西富士宮)행.
2번 승강장.

두 량짜리 작은 로컬열차였다.

조금 전까지 시속 수백 킬로미터로 달리는 신칸센을 타고 왔는데 이제는 동네를 천천히 이어가는 작은 전철이다.

오전 8시 6분 열차가 후지역을 출발했다.

차창 밖으로 후지산 주변의 주택과 들판이 지나갔다.
도쿄에서 보던 풍경과는 완전히 달랐다.

아들이 그렇게 보고 싶다던 ‘자연’이 이제야 나타났다.

정작 그 녀석은 호텔에서 닌텐도를 하고 있겠지만.


7. 오전 8시 25분, 후지노미야에 도착하다

오전 8시 25분경 후지노미야역(富士宮駅)에 도착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라이토 폭포(白糸の滝)로 가는 버스가 오전 8시 30분에 출발한다.

환승시간은 불과 5분.

열차에서 내려 서둘러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다행히 버스를 놓치지 않았다.

오전 8시 30분.
후지노미야역을 출발했다.

신칸센에서 택시로, 택시에서 미노부선으로, 다시 버스로.

도쿄에서 이곳까지 오는 동안 교통수단을 몇 번이나 갈아탔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연결이 신기할 정도로 딱딱 맞았다.


8. 후지산본궁센겐타이샤를 지나 산 아래로

버스가 후지노미야 시내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곧 창밖으로 커다란 붉은 도리이가 나타났다.

후지산본궁센겐타이샤(富士山本宮浅間大社).

오늘은 버스에서 바라보며 그대로 지나갔지만 그냥 후지노미야에 있는 큰 신사 하나는 아니다.

후지산 자체를 신성한 산으로 숭배해온 일본의 후지산 신앙과 깊이 연결된 곳으로, 전국에 1,300여 곳이 있다는 센겐신사(浅間神社)의 총본궁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주제신은 고노하나노사쿠야히메노미코토(木花之佐久夜毘売命).
별칭으로 센겐다이진(浅間大神)이라 불리며 후지산의 신으로 숭배되어 왔다.

후지산은 지금 우리 눈에는 일본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산이자 관광지로 먼저 보이지만, 옛사람들에게는 언제 다시 불을 뿜을지 모르는 거대한 화산이었다.

두려움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신이 머무는 신성한 산이었다.

후지산본궁센겐타이샤의 기원 역시 후지산의 분화를 진정시키고 산의 신을 모시는 신앙과 연결되어 전해진다.
후지산 신앙이 널리 퍼지면서 이곳 역시 그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현재의 주요 사전 가운데 본전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보호 아래 1604년에 조영된 것으로 전해진다.

후지산과 이 신사의 관계는 산 아래에서 끝나는 것도 아니다.

후지산 정상부의 8부 능선 이상에는 후지산본궁센겐타이샤의 경내지로 여겨지는 구역이 있으며, 정상의 분화구 자체도 신성한 영역으로 인식되어 왔다.

말하자면 후지노미야 시내에 있는 이 신사와 멀리 솟아 있는 후지산은 서로 떨어져 있는 두 장소가 아니라, 오랜 후지산 신앙 속에서는 하나로 이어진 공간인 셈이다.

2013년 후지산이 ‘후지산-신앙의 대상과 예술의 원천’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을 때 후지산본궁센겐타이샤도 그 가치를 이루는 구성자산 가운데 하나로 포함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오늘 우리가 향하는 시라이토 폭포도 같은 후지산 세계문화유산의 구성자산이라는 점이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단순히 폭포 하나를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후지산을 신앙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던 사람들의 공간을 따라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오늘은 시간 때문에 버스 창밖으로 바라보기만 하고 그대로 지나쳤다.

커다란 붉은 도리이가 뒤로 멀어졌다.

도심을 벗어날수록 주택은 줄어들고 들판과 산이 가까워졌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후지산은 구름에 모습을 감췄다가 다시 조금씩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도쿄의 고층빌딩과 전철역을 돌아다니다 하루 만에 완전히 다른 일본으로 들어온 느낌이다.


9. 오전 9시, 시라이토 폭포

오전 9시경.

버스가 시라이토노타키(白糸の滝)에 도착했다.

도로 표지판에는 일본어와 영어뿐 아니라 한글로도

‘시라이토노타키’ 라고 적혀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폭포 쪽으로 걸었다.

안내판을 따라 숲길로 접어들자 물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리고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자 시라이토 폭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절벽 전체에서 수십, 수백 갈래의 가느다란 물줄기가 하얀 실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시라이토(白糸).

말 그대로 ‘흰 실’이다.

이름을 참 잘 지었다.


10. 땅속에서 솟아나 절벽을 타고 흐르는 물

시라이토 폭포가 신기했던 것은 단순히 예뻐서만은 아니었다.

물줄기가 위쪽 강에서 한꺼번에 넘어오는 것이 아니라 절벽의 지층 사이에서 물이 솟아나듯 흘러내리고 있었다.

후지산에 내린 비와 눈이 화산지층 속으로 스며든 뒤 오랜 시간 지하를 흐르다가 이곳에서 용출하면서 폭포를 만든다.

절벽의 검은 화산암 사이에서 물이 끊임없이 배어 나와 가느다란 흰 실처럼 떨어졌다.

폭 약 150m에 걸쳐 수많은 물줄기가 이어지는 모습은 다른 폭포에서는 쉽게 보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숲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서 폭포가 점점 가까워졌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가느다란 실 같던 물줄기들이 가까이에서는 엄청난 양의 물이 되어 쏟아지고 있었다.


11. 시라이토 폭포에 뜬 무지개

폭포 아래로 내려섰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정말 멋졌다.

왼쪽에서는 굵은 물줄기가 힘차게 떨어지고, 오른쪽 절벽 전체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가느다란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검은 화산암과 초록빛 이끼 사이로 하얀 물줄기가 이어졌고, 그 아래로 맑은 물이 흘렀다.

그리고 햇빛이 폭포의 물보라에 닿는 순간 희미하게 무지개가 나타났다.

“여보, 저기 무지개.”

폭포 한가운데 작은 무지개가 걸렸다.

겨울 아침의 차가운 공기.
파란 하늘과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
검은 절벽을 따라 수없이 흘러내리는 하얀 물줄기.
그리고 그 위에 잠시 나타난 무지개.

새벽부터 졸린 눈을 비비며 여기까지 온 보상을 한꺼번에 받는 기분이었다.


12. 마님과 둘이 맞은 멋진 아침, 그리고 타누키호로

폭포를 배경으로 마님과 사진을 찍었다.

둘이 셀카도 찍고, 서로 사진도 찍어주며 천천히 폭포 주변을 걸었다.

어제까지는 네 식구가 도쿄의 사람들 틈에 섞여 바쁘게 돌아다녔다.

오늘은 마님과 둘뿐이다.

딸래미는 일본 친구를 만나고 있고, 자연을 보고 싶다던 아들은 호텔에서 게임을 하고 있다.

결국 마님과 내가 둘이서 후지산 아래까지 왔다.

신칸센 차창에서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후지산을 처음 보고 흥분했고, 시라이토 폭포에서는 절벽을 따라 흰 실처럼 흘러내리는 물줄기와 무지개까지 만났다.

새벽 5시에 일어난 보람이 있었다.

마님과 둘이 맞은 후지산 아래의 아침은 참 좋았다.

폭포를 충분히 둘러본 뒤 다시 위쪽으로 올라왔다.

돌아가는 길에서도 시라이토 폭포가 내려다보였고, 다리를 건너며 아래로 흐르는 물을 바라봤다.

이 물길은 시바가와(芝川).

후지산에서 흘러나온 물을 품고 흐르는 강이다.

하늘에는 새 떼가 무리를 지어 날아다녔다.

폭포 입구 쪽으로 돌아와 버스 시간표를 다시 확인했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타누키호(田貫湖).

시라이토 폭포에서 조금 더 후지산 쪽으로 들어가면 만날 수 있는 호수다.

정류장에는 타누키호와 휴가촌 후지(休暇村富士) 방면으로 이어지는 버스 시간표가 붙어 있었다.

오늘은 렌터카도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대중교통으로 움직이는 날이다.

신칸센을 타고,
택시를 타고,
미노부선 로컬열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시라이토 폭포까지 왔다.

이제 다시 버스를 타고 후지산 아래의 호수로 들어간다.

타누키호.

그보다 조금 더 서쪽으로 가면 모토스호(本栖湖)도 있다.

플래티넘 후지오호(富士五湖) 시리즈 만년필 가운데 하나인 ‘모토스(本栖)’의 바로 그 호수다.

만년필로는 이미 가지고 있는 이름이라 실제 모토스호도 한번 가보고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타누키호에서 조금 더 가서 모토스호까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은 대중교통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돌아가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일정이 맞지 않았다.

아쉽지만 이번에는 포기했다.

만년필 속 모토스호는 가지고 있지만 실제 모토스호는 다음 여행으로 남겨두었다.

버스가 올 시간이 가까워졌다.

정류장 앞에서 기다리다 타누키호 방면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시라이토 폭포가 뒤로 멀어졌다.

이제 다음은 타누키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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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셀프 트래블 - 2023-2024 최신판 ㅣ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김미정.백진수 지음 / 상상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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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도쿄 여행기

여행 3일차, 2025.12.26.(금요일)
백제의 흔적을 지나, 긴자와 도쿄타워의 불빛 속으로(오후편)


13. 오후 2시 50분, 이제 긴자로

오후 2시 50분경 우에노공원 산책을 마치고 다시 우에노역으로 향했다.
도쿄메트로 긴자선(東京メトロ銀座線)을 타고 다음 목적지 긴자(銀座)로 향했다.

오후 3시 10분쯤 긴자역에서 밖으로 나왔다.
우에노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대형 백화점과 명품점, 유리와 금속으로 번쩍이는 건물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우에노에서 오래된 일본을 보고 왔다면 긴자는 완전히 현대의 도쿄였다.


14. 마님과 딸은 쇼핑, 나와 아들은 커피

긴자에 도착하자 자연스럽게 가족이 둘로 나뉘었다.
마님과 딸은 쇼핑을 하러 가고, 나와 아들은 커피나 한잔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여자들은 쇼핑허고, 우리는 커피나 묵자.”

처음 찾아간 곳은 EXITMELSA(イグジットメルサ)였다.
건물 안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잔하며 기다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드럽게 많다. 앉을 자리가 하나도 없다.

“아이고, 여기는 안 되겄다.”
결국 다시 밖으로 나왔다.


15. 긴자 식스, 츠타야 서점으로

다음으로 향한 곳은 GINZA SIX(ギンザ シックス)였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긴자 츠타야 서점(銀座 蔦屋書店)으로 올라갔다.

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었다.
넓은 공간을 가득 채운 책과 미술·디자인 관련 서적, 각종 전시물이 함께 어우러져 있었다.

그 안에도 스타벅스가 있었다.

“여기서는 앉을 수 있겄지.”

그런데 여기도 사람이 많다. 역시 자리가 없다.

긴자에서 커피 한잔 마시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결국 커피는 포기했다.
아들과 함께 서점을 둘러보다가 근처 의자에 앉아 마님과 딸이 쇼핑을 마칠 때까지 시간을 보냈다.


16. 끝없이 달리는 사람들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내다가 GINZA SIX 중앙 아트리움에 설치된 재미있는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계속 달리고 있었다.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노란색의 단순한 선으로 표현된 사람들이 LED 화면 위를 끝없이 뛰어다녔다.

영국 현대미술가 줄리언 오피(Julian Opie)의 《Marathon. Women.》이라는 작품이었다.
여성 달리기 선수들의 움직임을 단순한 선과 색으로 표현한 영상작품이다.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여러 개의 화면에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달리고 있으니 단순하면서도 묘하게 눈길을 끌었다.

커피는 못 마셨지만 아들과 의자에 앉아 서점도 구경하고, 달리는 사람들도 구경하면서 시간을 때웠다.


17. 오후 4시 7분, 긴자에서 도쿄타워로

마님과 딸도 쇼핑을 마치고 돌아왔다.
오후 4시 7분경 GINZA SIX에서 가까운 히가시긴자역(東銀座駅, A11)으로 이동했다.

히가시긴자역에서 도에이 아사쿠사선(都営浅草線)을 타고 다이몬역(大門駅, A09)으로 향했다.
오후 4시 20분경 다이몬역에서 전철을 내렸다.

긴자의 명품거리에서 전철을 타고 불과 10여 분 이동했을 뿐인데 밖으로 나오니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부터는 조조지(増上寺)를 지나 도쿄타워까지 걸어갈 차례다.


18. 다이몬을 지나 조조지로

다이몬역에서 나와 조조지 쪽으로 걸었다.
곧 길 한가운데 커다란 붉은 문이 나타났다.

다이몬(大門).

말 그대로 ‘큰 문’이라는 뜻으로 조조지로 들어가는 길목을 상징하는 문이다.
조조지의 바깥쪽 총문에 해당하는 문으로, 지금은 이 일대의 지명과 지하철역 이름에도 ‘다이몬’이라는 이름이 그대로 남아 있다.
현재의 다이몬은 에도시대의 문이 그대로 남은 것은 아니고, 옛 문을 본떠 1937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조조지가 1598년 지금의 시바(芝)로 옮겨올 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성에서 사용하던 문을 조조지의 정문으로 내주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다이몬을 지나자 멀리 나무 사이로 도쿄타워의 붉고 흰 철골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현대식 빌딩 사이에 오래된 절의 문이 서 있고, 그 너머로 다시 도쿄타워가 보이는 풍경이 묘하게 어울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긴자의 명품매장과 GINZA SIX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몇 정거장 옮겼을 뿐인데 전혀 다른 도쿄가 나타났다.


19. 도쿠가와의 절, 조조지

다이몬을 지나 조조지(増上寺)로 들어갔다.
정식 명칭은 산엔잔 고도인 조조지(三縁山広度院 増上寺)로, 정토종의 대본산 가운데 하나다.

조조지의 역사는 에도 막부보다도 오래됐다.

1393년 유요쇼소(酉誉聖聰) 상인이 지금의 도쿄 지요다구 일대에 창건했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에 들어온 1590년 도쿠가와 가문의 보리사가 되었다.

1598년에는 현재의 시바(芝)로 옮겨왔다.

어제 에도성을 걸으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에 막부를 세우고 이 도시를 일본의 중심으로 키워가는 이야기를 떠올렸는데, 오늘은 그 도쿠가와 가문의 절에 와 있는 셈이다.

에도시대 조조지의 규모는 지금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컸다.

약 25만 평에 이르는 경내에 48개의 부속 사찰과 100여 개의 학료가 들어서 있었고, 약 3,000명의 수행승이 머물렀다고 한다.

교토의 지온인(知恩院)과 함께 정토종을 대표하는 거대한 사찰이었다.

특히 조조지는 도쿠가와 쇼군들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2대 히데타다(秀忠), 6대 이에노부(家宣), 7대 이에쓰구(家継), 9대 이에시게(家重), 12대 이에요시(家慶), 14대 이에모치(家茂), 모두 여섯 명의 쇼군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14대 쇼군 이에모치의 부인이었던 황녀 가즈노미야(和宮)의 묘도 이곳에 있다.

에도성을 정치의 공간이라고 한다면 조조지는 그 권력을 쥐었던 도쿠가와 가문의 죽음과 제사를 품은 공간인 셈이다.

어제 에도성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오늘 조조지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조조지로 들어가는 산게다쓰몬(三解脱門)도 그냥 지나칠 문이 아니었다.

‘삼해탈문’이라는 이름에는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이라는 세 가지 번뇌에서 벗어난다는 불교적 의미가 담겨 있다.

현재의 문은 1622년에 재건된 것이다.

높이 약 21m, 폭 약 19.5m의 거대한 2층 목조건축물로,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1945년 도쿄대공습 때 조조지의 많은 건물들이 불타 사라졌지만 산게다쓰몬은 살아남아, 에도 초기 조조지의 모습을 전하는 대표적인 건축물로 남았다.

2층에는 석가삼존상과 십육나한상, 조조지 역대 고승들의 상이 모셔져 있다고 한다.

그 문을 지나 조조지 안으로 들어서자 전혀 다른 시대의 두 풍경이 한눈에 겹쳐졌다.

앞에는 오래된 사찰의 기와지붕.
그 바로 뒤에는 붉고 흰 철골의 도쿄타워.

에도의 도쿠가와와 현대의 도쿄가 한 화면 안에 함께 들어왔다.

이 풍경이 참 인상적이었다.


20. 시바공원에서 바라본 도쿄타워

조조지를 지나 시바공원(芝公園) 쪽으로 걸었다.
오후 5시가 가까워질 무렵 도쿄타워가 시야를 거의 가득 채웠다.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훨씬 크다.

도쿄타워는 높이 333m로 1958년에 완공됐다.
전후 일본의 성장과 함께 오랫동안 도쿄를 대표해온 상징물이다.

가족끼리 번갈아 도쿄타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나도 한 장 찍고, 마님과 애들도 사진을 남겼다.

날이 서서히 어두워지면서 도쿄타워에 조명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낮에는 붉고 흰 철골이 선명하던 탑이 점점 따뜻한 황금빛으로 바뀌었다.

어제는 도쿄 스카이트리. 오늘은 도쿄타워.

도쿄를 대표하는 두 탑을 이틀 연속 만난 셈이다.


21. 오후 5시경, 아카바네바시에서 다시 시부야로

도쿄타워 구경을 마치고 아카바네바시역(赤羽橋駅, E21)으로 내려갔다.

오후 5시경 도에이 오에도선(都営大江戸線)에 올랐다.

아카바네바시역에서 아오야마잇초메역(青山一丁目駅, E24)까지 이동했다.

아오야마잇초메역에서 도쿄메트로 긴자선(東京メトロ銀座線)으로 갈아타 시부야역(渋谷駅, G01)으로 향했다.

아침에 시부야에서 출발해 도쿄역, 우에노, 긴자, 조조지, 도쿄타워까지 돌아다닌 뒤 다시 시부야로 돌아오는 길이다.

그런데 아직 오늘의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었다.

저녁이다.


22. 숙소 코앞인데, 규카츠 먹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오후 5시 20분경 시부야에 도착해 저녁을 먹으러 찾아간 곳은 규카츠 모토무라 시부야점(牛かつもと村 渋谷店)이었다.

시부야역 남쪽, 우리가 묵고 있는 JR EAST HOTEL METS SHIBUYA에서도 가까운 곳이었다.
밥을 먹고 숙소로 들어가기에는 위치가 딱 좋았다.

“밥만 묵고 숙소 들어가믄 되겄네.”

그런데 가게 앞에 도착하고 보니 또 줄이다.

워매.

어제는 로스트비프를 먹으려고 기다렸고, 오늘은 규카츠다.

오후 5시 20분쯤 줄을 서기 시작했다.
가게 안내에는 현재 대기시간이 약 40분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오래 기다렸다.

해는 지고 사람은 계속 늘어났다.
지하로 내려가는 좁은 계단 앞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일본 와서 밥 한번 먹기가 왜 이렇게 힘든겨.”


23. 한 시간 넘게 기다린 규카츠

오후 6시 반이 가까워져서야 드디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좁은 계단을 내려가 작은 매장 안에 자리를 잡았다.

잠시 뒤 규카츠 정식이 나왔다.

겉은 바삭하게 튀겨져 있었지만 안쪽은 붉은빛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테이블 위 작은 석판에 고기를 한 점씩 올려 원하는 정도로 더 익혀 먹는 방식이었다.

밥과 미소시루, 양배추, 여러 소스와 반찬도 함께 나왔다.

한 시간 넘게 기다렸으니 맛이 없으면 화날 판이다.

그런데 맛있다.

한 점씩 석판에 올려 지글지글 구워 먹으니 기다린 보람은 있었다.

영수증을 보니 오후 6시 54분.
4명 식사금액은 총 14,720엔이었다.

오늘 저녁도 결국 제대로 먹었다.


24. 오늘의 마지막 스타벅스

저녁을 먹고 마님은 바로 숙소로 향하고 아이들과 나는 시부야 거리를 조금 더 걸었다. 스타벅스에 들러서 커피를 사기 위해서다

오후 7시 10분경 다시 스타벅스에 들렀다.

커피와 말차라떼를 사서 숙소로 가져가기로 했다.

오늘 아침도 스타벅스에서 시작했다.
긴자에서는 스타벅스를 찾아 EXITMELSA와 GINZA SIX 두 군데나 돌아다녔지만 자리가 없어 결국 한잔도 못 마셨다.

그런데 마지막은 또 스타벅스다.

이번에는 매장에서 마시지 않고 음료를 들고 숙소로 돌아갔다.


25. 자연을 보고 싶다던 아들의 선택

오후 7시 50분경 숙소에 도착했다.
사온 커피와 말차라떼를 꺼내놓고 가족끼리 오붓하게 앉아 오늘 하루의 마지막 한잔을 마셨다.

오늘도 참 많이 돌아다녔다.

그런데 하루 일과가 끝나자 아들이 갑자기 불만을 털어놓았다.

“아빠, 나는 자연 같은 데도 보고 싶은데 계속 도시만 돌아다니잖아요.”

듣고 보니 그 말도 맞다.

이번 여행 들어 시부야, 도쿄역, 아키하바라, 아사쿠사, 긴자까지 계속 도쿄 도심을 돌아다녔다.

“좋아. 그러면 내일 후지노미야 가자. 후지산 보러.”

그러자 아들이 물었다.

“몇 시에 일어나야 돼요?”

“한 5시에는 일어나야 헐틴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못 일어납니다.”

아까 자연을 보고 싶다던 녀석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그럼 어쩔껴?”

“차라리 호텔에서 하루 종일 게임할랍니다.”

ㅠㅠㅠ.

녀석이 하겠다는 게임기는 2016년쯤 사준 지바냥 닌텐도였다.
1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가지고 있는데, 이번에 간만에 그 게임을 실컷 하고 싶단다.

딸래미는 내일 하루 일본 친구를 만나러 가겠다고 한다.

딸래미가 빠지니 아들과 함께 셋이서 후지산을 보러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자연을 보고 싶다던 아들은 새벽 5시 기상이라는 말 한마디에 후지산 대신 닌텐도를 선택했다.

그래.
놀러 왔으니 하고 싶은 것도 해봐야지.

내일은 딸래미는 일본 친구를 만나러 가고, 아들은 호텔에서 하루 종일 게임을 한다.

그리고 마님과 나는 둘이서 후지산 아래로 간다.

후지노미야(富士宮).

내일은 정말 오랜만에 마님과 둘만의 여행이다.

도쿄여행 3일차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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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셀프 트래블 - 2023-2024 최신판 ㅣ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김미정.백진수 지음 / 상상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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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도쿄 여행기

여행 3일차, 2025.12.26.(금요일)
백제의 흔적을 지나, 긴자와 도쿄타워의 불빛 속으로(오전편)

1. 애들과 함께하는 여행의 아침은 느긋하다

아침 9시경 기상.

마님과 둘이 여행을 왔으면
벌써 한참 전에 호텔을 나섰을 시간이다.

그런데 애들과 함께하는 가족여행은 다르다.

어제도 하루 종일 그렇게 돌아다녔으니
아침부터 서두를 이유도 없다.

느긋하게 씻고 준비를 마친 뒤
오전 9시 40분쯤 호텔을 나섰다.

크리스마스이브에는 비가 하루 종일 내렸고,
어제 스카이트리에 올라갔을 때도 밤이 되면서 다시 비와 안개가 몰려왔는데,
오늘 아침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이 맑았다.

자.

도쿄여행 3일차도 시작해보자.


2. 오늘 아침도 역시 스타벅스

오전 9시 50분경.

시부야의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커피와 샌드위치를 주문해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했다.

도쿄에 와서 스타벅스를 참 자주 간다.

첫날에는 비 내리는 청의동굴 앞에서 커피를 마셨고,
오늘 아침도 스타벅스에서 시작한다.

이쯤 되면 스타벅스가 우리 도쿄여행의 쉼터이자
중간중간 위치를 알려주는 이정표 같은 존재가 되어가는 것 같다.

커피 한잔 마시고, 샌드위치로 배를 채웠다.

오늘도 걸어야 할 길이 만만치 않다.


3. 유라쿠초역에서 내려 도쿄역으로

아침을 먹고 시부야역으로 향했다.

오늘 첫 번째 큰 목적지는 도쿄역 일대.

정확히는 딸래미가 낮 12시로 미리 예약해둔
초밥집을 찾아가는 길이다.

전철을 타고 유라쿠초역(有楽町駅)에서 내렸다.

유라쿠초역은 도쿄역 바로 남쪽에 있는 역으로,
도쿄국제포럼(東京国際フォーラム)과도 가까운 곳이다.

역에서 나와 도쿄역 방향으로 걸었다.

도쿄국제포럼과 철길을 옆에 두고 걷다 보니
고가 위로 열차와 신칸센이 계속 오갔다.

어제 그렇게 헤맸던 도쿄역을 오늘 또 찾아왔다.

그래도 오늘은 목적지가 확실하다.

딸래미가 예약해둔 초밥집이다.


4. 딸래미가 예약해둔 오늘의 점심

오전 11시 50분경.

예약시간보다 10분 정도 일찍 식당에 도착했다.

오늘 점심은

아사쿠사 스시바 히나토마루 도쿄역 중앙점
(浅草寿司場 ひなと丸 東京駅中央店).

예약시간은 낮 12시.

어제 아키하바라에서는
로스트비프를 먹으려고 한참 줄을 서고 기다렸는데,
오늘은 딸래미가 미리 예약해둔 덕분에 편하다.

창밖으로 도쿄역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초밥이 나왔다.

야에스 스시(八重洲寿司) 2인분에
참치 5조각 주먹밥, 가리비, 광어, 찐 새우,
다시 국물 계란말이까지 이것저것 푸짐하게 주문했다.

참치부터 여러 종류의 초밥과 미소시루가 함께 놓였다.

마님 앞에는 생맥주가 놓이고, 내 앞에는 콜라가 놓였다.

나는 콜라.

일본에 왔으니 초밥도 한번 제대로 먹어줘야지.

한 점 한 점 집어 먹는데 맛이 좋았다.

딸래미가 식당 하나는 잘 골랐다.

그렇게 네 식구가 맛있게 먹은 점심값은 모두 14,980엔.
4명으로 나누면 1인당 3,745엔이었다.

아침에는 커피와 샌드위치, 점심에는 초밥.

오늘도 한참을 돌아다녀야 하니
배부터 든든하게 채워놓았다.


5. 다이마루 도쿄점에서 잠깐 아이쇼핑

맛있게 점심을 먹고 나왔다.

곧장 우에노로 간 것은 아니다.

도쿄역에 붙어 있는
다이마루 도쿄점(大丸東京店)에 들어가
잠시 아이쇼핑을 했다.

매장은 여러 층으로 나뉘어 있었고,
식품과 의류, 잡화, 생활용품 등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우리는 이것저것 구경하며 천천히 매장을 돌아봤다.

식품매장에서는 생와사비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또 하나 눈에 띈 것이
헬로키티 모양의 어묵이었다.

분홍색 포장 안에
헬로키티 캐릭터가 그려진 어묵이 들어 있었는데,
일본답게 이런 평범한 식품에도 캐릭터를 입혀놓은 것이 재미있었다.

결국 생와사비와 헬로키티 어묵도 사고,
이것저것 구경하며 잠시 시간을 보냈다.

관광지만 찾아다니는 것도 재미있지만
이렇게 현지 백화점이나 식품매장을 구경하는 것도
여행의 또 다른 재미다.


6. 교바시역에서 우에노로

이제 우에노공원으로 갈 시간이다.

도쿄역 일대에서 교바시역(京橋駅)까지 걸었다.

오후 1시 30분경.

도쿄메트로 긴자선(東京メトロ銀座線)
교바시역(G10)에서 전철을 탔다.

목적지는 우에노역(上野駅, G16).

오후 1시 40분경 우에노에 도착해
우에노공원(上野恩賜公園) 산책을 시작했다.

이날 우에노공원에서 걸은 거리는 약 3.0km.

한 시간 남짓 공원 곳곳을 돌아봤다.

그리고 오늘 이곳에서 내가 특히 보고 싶었던 것은 왕인박사비였다.


7. 우에노에서 다시 만난 교토의 기억

우에노공원을 걷다가 기요미즈 관음당(清水観音堂)을 만났다.

1631년에 세워진 건물로, 교토의 기요미즈데라(清水寺),
우리에게 익숙한 청수사를 본떠 만들었다.

‘기요미즈’라는 이름을 보는 순간 오래전 내 첫 해외여행이 떠올랐다.

내 생애 최초의 해외여행지가 바로 오사카와 교토였다.

그때 교토역에서 버스를 타고 찾아갔던 곳 가운데 하나가 청수사였다.

처음 청수사에 도착해 건물을 보았을 때의 느낌이 아직도 남아 있다.

“우와…….”

산비탈에 저렇게 거대한 목조건축물을
어떻게 만들어 놓았을까.

특히 절벽 쪽으로 내민 기요미즈의 무대와
그 아래를 받치고 있는 수많은 목재 기둥을 보면서
참 많이 감탄했다.

자리 또한 기가 막혔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이는 교토 시가지와
산자락에 자리 잡은 절의 풍경이 어우러져 있었다.

내 첫 해외여행에서 그렇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청수사를
세월이 흘러 도쿄 우에노에서 다시 떠올리게 될 줄은 몰랐다.

물론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은 교토의 청수사가 아니다.

에도 사람들이 교토의 기요미즈데라를 본떠 만든
우에노의 기요미즈 관음당이다.

교토에서 처음 만났던 일본의 기억이
도쿄 한복판에서 다시 이어졌다.


8. 도쿄 한복판에서 만난 왕인박사

그리고 내가 오늘 우에노공원에서 특히 보고 싶었던 곳에 도착했다.

왕인박사비(王仁博士の碑).

일본 도쿄 한복판, 그것도 우에노공원에서
왕인박사의 이름을 만나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왕인(王仁)은 백제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학문과 문화를 전한 인물로 전해진다.

일본의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에도
왕인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일본서기』에서는 왕인이 백제에서 건너온 시기를
오진천황(応神天皇) 때로 기록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대체로
백제 아신왕(阿莘王, 재위 392~405) 무렵의 인물로 설명된다.

왕인이 『논어』와 『천자문』을 일본에 전했다는 이야기도
널리 알려져 있다.

다만 왕인의 정확한 활동연대와 『천자문』 전래 문제 등은
사료의 성립 시기와 연대 문제 때문에 오늘날에도 그대로 역사적 사실로 단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일본의 고대 사서에 백제에서 건너온 학자로 왕인이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비석 앞에는 일본어와 영어뿐 아니라 한글로 된 설명도 마련되어 있었다.

한참을 읽어보고 왕인박사비 앞에서 사진도 남겼다.

어제는 에도성에서 일본의 역사를 따라 걸었고,
오늘은 우에노에서 그보다 훨씬 오래전
백제와 일본이 교류했던 흔적을 만났다.

도쿄 한복판에서 만난 우리와도 이어지는 역사였다.


9. 꼭 한번 와보고 싶었던 우에노공원 스타벅스

공원을 걷다 보니 또 하나 내가 찾아보고 싶었던 곳이 나타났다.

스타벅스 커피 우에노온시공원점
(スターバックス コーヒー 上野恩賜公園店).

사실 이 스타벅스도 한번 와보고 싶었던 곳이다.

넓은 우에노공원 안에 자리 잡은 매장이라
도심 한복판의 스타벅스와는 또 다른 분위기가 있었다.

“여기서 커피 한잔 마시면 좋겠구만.”

그런데 자리가 없다.

사람이 가득하다.

결국 매장을 둘러보고 사진만 열심히 찍은 뒤 나왔다.

아침에 이미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셨으니
오늘은 구경한 것으로 만족하자.


10. 붉은 도리이에서 떠오른 이누야마성

공원을 계속 걷다가
붉은 도리이가 줄지어 이어진 길을 만났다.

하나조노이나리신사(花園稲荷神社) 쪽이다.

도리이(鳥居)는 일본 신사의 입구에 세우는 문으로,
신성한 영역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경계다.

붉은 도리이가 연달아 늘어서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곳은
교토의 후시미이나리가 아니었다.

작년 1월 겨울여행 때 갔던 이누야마성(犬山城)이 생각났다.

이누야마성으로 올라가는 길에서도 붉은 도리이가 좍 이어져 있었다.

겨울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그 도리이 사이를 지나 성으로 올라갔던 기억이 우에노에서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이곳에서 마님과 애들이 아주 신났다.

도리이 사이에서 포즈를 취하고,
서로 장난도 치고,
이쪽에서도 한 장,
저쪽에서도 한 장.

사진을 겁나게 찍었다.

유명한 건축물이나 역사적인 장소도 기억에 남지만
가족여행에서는 이런 순간들이 또 오래 남는다.

붉은 도리이 사이에서 가족 넷이 실컷 웃고 놀았다.


11. 겨울의 시노바즈 연못

붉은 도리이를 지나 시노바즈노이케(不忍池) 쪽으로 내려갔다.

겨울의 연못은 여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연꽃이 무성했을 자리는
말라버린 줄기와 잎으로 갈색빛을 띠고 있었다.

연못 가운데에는
시노바즈노이케 벤텐도(不忍池弁天堂)가 자리하고 있었다.

물 위에는 오리배가 떠다니고, 새들도 모여들었다.

그리고 나무 사이 멀리
도쿄 스카이트리(東京スカイツリー)가 보였다.

어젯밤 비와 안개 속에서 올라갔던 바로 그 스카이트리다.

오늘은 맑은 겨울 하늘 아래 우에노에서 멀리 바라보고 있다.

하루 사이에 같은 건물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시 만났다.


12. 우에노에서 만난 ‘라스트 사무라이’

우에노공원 산책의 마지막에는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가 기다리고 있었다.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서 있는
우에노공원의 유명한 사이고 다카모리 동상이다.

사이고 다카모리는 사쓰마번(현재 가고시마현) 출신으로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유신을 이루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새로 만들어진 메이지 정부와 갈등한 끝에 정부를 떠났고, 1877년 세이난전쟁(西南戦争)에서 사쓰마의 옛 사무라이들을 이끌고 정부군과 싸웠다.

그리고 마지막 격전지였던 가고시마 시로야마(城山)에서 생을 마쳤다.

그래서 사이고 다카모리는 일본에서 흔히
‘마지막 사무라이’의 상징적인 인물로 이야기된다.

여기까지 오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영화가 하나 있다.

《라스트 사무라이(The Last Samurai)》.

톰 크루즈가 출연했던 2003년 영화다.

영화에서 와타나베 겐이 연기한
사무라이 지도자 가쓰모토 모리쓰구는
사이고 다카모리를 그대로 옮긴 실존인물은 아니지만,
그의 삶과 세이난전쟁에서 영향을 받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영화 마지막, 죽어가는 가쓰모토는
흩날리는 벚꽃을 바라보며 말한다.

“Perfect. They are all perfect.”

완벽해. 모두가 완벽해.

영화 초반부터 이어져 오던
‘완벽한 벚꽃’에 대한 그의 생각이
죽음의 순간에 완성되는 장면이었다.

그러니 우에노공원에서 사이고 다카모리 동상을 보고
《라스트 사무라이》가 떠오르는 것도 당연했다.

그런데 동상에서 눈에 띄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사이고 옆에 서 있는 개다.

사이고 다카모리는 실제로 사냥을 즐기고
개를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에노의 동상도 사냥하러 나선 사이고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옆에 함께 서 있는 개까지 그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요소가 되었다.

메이지유신을 이끌었던 사람이 결국 자신이 만드는 데 힘을 보탠 새 정부와 싸우다 죽었다.

막부를 무너뜨린 혁명의 주역이면서 근대화 과정에서 사라져가던 사무라이의 상징이 된 사람.

그의 삶은
《라스트 사무라이》라는 영화가 떠오를 만큼 극적이었다.


13. 오후 2시 50분, 이제 긴자로

오후 2시 50분경.

약 한 시간 동안의 우에노공원 산책을 마치고
다시 우에노역으로 향했다.

오늘 일정은 아직 끝나려면 멀었다.

다시 도쿄메트로 긴자선에 올랐다.

다음 목적지는 긴자(銀座).

오전에는 시부야에서 출발해 도쿄역으로 갔고,
점심을 먹은 뒤 우에노에서 에도와 백제,
그리고 메이지 일본의 흔적까지 둘러봤다.

이제 도쿄에서도 가장 화려한 거리 가운데 하나인 긴자로 간다.

아직 오후 3시도 되지 않았다.

오늘도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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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셀프 트래블 - 2023-2024 최신판 ㅣ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김미정.백진수 지음 / 상상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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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도쿄 여행기

여행 2일차, 2025.12.25.(목요일)
에도성에서 시작한 크리스마스(오후편)

15. 워매, 인자 뱃가죽이 등에 붙겄다

『스즈메의 문단속』 성지를 보고 다시 아키하바라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침에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나온 뒤,
에도성을 걷고 도쿄역까지 걸어와 다시 아키하바라까지 넘어왔으니
이제는 슬슬 배고픈 정도가 아니었다.

“워매, 인자 뱃가죽이 등에 붙을 지경이네.”

시계를 보니 오후 1시 30분쯤.

오늘 점심은 아키하바라에서 먹기로 했다.

목적지는 로스트비프 전문점,

ローストビーフ大野 秋葉原店
(로스트비프 오노 아키하바라점).

아키하바라 거리를 따라 10분 정도 걸어
오후 1시 40분쯤 식당 앞에 도착했다.


16. 아니, 밥 한 끼 먹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식당을 찾아왔는데
도착했다고 바로 밥을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줄이 길었다.

바로 옆에는 ‘STEAK HOUSE ステーキロッヂ’라는 커다란 간판이 붙은 스테이크집이 있었고, 우리가 찾아온 로스트비프 오노는 그 옆의 붉은색 출입구였다.

가게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고 우리도 그 뒤에 자리를 잡았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약 30분을 기다린 끝에 겨우 주문을 넣었다.

그런데 주문했다고 끝이 아니었다.

다시 20분가량을 더 기다린 뒤에야 드디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좁은 계단을 내려가니
밖에서 보던 것보다도 훨씬 아담한 공간이 나타났다.

주방을 마주 보는 카운터석을 중심으로
손님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크리스마스 장식까지 해놓은 작은 가게 안에서는
직원들이 계속해서 로스트비프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가족도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아이구야.

점심 한 끼 먹으려고 거의 50분을 기다렸다.


17. 기다린 보람은 있었던 로스트비프

잠시 뒤 음식이 나왔다.

그릇 위로 얇게 썬 로스트비프가
마치 산처럼 겹겹이 쌓여 있었고,
그 꼭대기에는 노른자가 하나 올라가 있었다.

고기 위로는 하얀 소스가 흘러내리고
옆에는 채소가 곁들여져 있었다.

국물과 작은 양념들도 함께 나왔다.

기다리는 동안 허기가 더 커져서인지
눈앞에 놓인 로스트비프가 더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이제 말이 필요 없었다.

먹자.

가족 넷이 나란히 앉아
약 30분 동안 제대로 점심을 먹었다.

아침부터 에도성과 도쿄역을 걸어 다녔던 탓인지
더 맛있게 느껴졌다.

그릇은 깨끗하게 비었다.

계산표를 보니 오후 2시 37분에 생맥주 한 잔 600엔이 추가됐고, 최종 합계는 10,595엔.

잘 먹었다.

밖으로 나왔는데도
로스트비프 오노 앞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우리는 이미 배부르게 먹었으니
그 줄도 이제는 여유롭게 보인다.

“룰루랄라.”

기다릴 때와 먹고 난 뒤의 세상은 이렇게 다르다.


18. 밥 먹었으니 아키하바라 구경 한번 해볼까

오후 3시 무렵.

식당에서 나오자 다시 아키하바라 거리가 눈앞에 펼쳐졌다.

전광판과 간판이 건물 벽을 뒤덮고 있었고,
전자제품과 게임, 애니메이션 관련 상품을 파는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다.

‘あきばお~(akibaoo)’,
‘らしんばん 秋葉原店’ 같은 가게에도 들어가 이것저것 구경했다.

진열대마다 피규어와 캐릭터 상품들이 빼곡했다.

건담도 있고, 원피스의 나미도 보인다.

밖으로 나오니 또 다른 곳에서는 JRA 관련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 JRA: Japan Racing Association의 약자로, 우리말로 하면 일본중앙경마회 정도 되겠다.

대형 화면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한쪽에는 웬 말 한 마리가 떡하니 서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때는 영락없는 진짜 말이었다.

“어? 여기 말도 데려다 놨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 가짜였다. ㅋㅋ

그런데 마님은 바로 앞까지 가서 보고도

“이거 진짜 말 아니야?”

한다.

“아니 여보. 가짜여, 가짜.”

멀리서 속은 나는 그렇다 쳐도
코앞에서 보고도 진짜 말인 줄 아는 마님 때문에 한바탕 웃었다.

역시 아키하바라답다.

거리로 나오면 또 다른 간판,
또 다른 캐릭터,
또 다른 가게가 나타났다.

어딜 쳐다봐도 볼거리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일정은 아직 한참 남아 있었다.

이제 센소지로 가야 한다.


19. 스에히로초역에서 긴자선을 타고 아사쿠사로

오후 3시 30분을 넘기면서
센소지로 이동하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末広町駅 스에히로초역.

도쿄메트로 긴자선의 G14번 역이다.

역 안내판에는

「上野・浅草方面」 우에노·아사쿠사 방면

이라고 적혀 있었다.

오후 3시 35분쯤 긴자선에 올라탔다.

아키하바라의 복잡한 거리를 빠져나와
이제 도쿄에서도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동네로 간다.

목적지는 아사쿠사.

그리고 센소지.


20. 오후 3시 50분, 아사쿠사에 도착하다

오후 3시 50분 무렵 아사쿠사에 도착했다.

역에서 나와 센소지 쪽으로 향하는 순간부터
사람들이 심상치 않았다.

“아이구야, 여기도 사람이 바글바글허네.”

어제 크리스마스이브의 시부야에서도 사람에 치였는데
오늘 아사쿠사 역시 만만치 않았다.

센소지로 이어지는 길에는
일본 사람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뒤섞여 있었다.

기념품점과 전통 물건을 파는 상점들이 늘어서고,
붉은 제등과 일본식 건물들이 이어졌다.

아키하바라에서 불과 얼마 전까지
전자제품과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보고 있었는데,
지하철 몇 정거장을 이동했을 뿐인데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나는 이 풍경을 보면서 교토가 떠올랐다.

오래된 절과 상점가,
전통적인 일본 건축,
그 사이를 가득 메운 관광객들.

“여기는 교토 분위기가 물씬 나는구먼.”

도쿄 한복판인데도 갑자기 다른 도시로 넘어온 듯했다.


21. 나카미세도리, 일본 냄새 물씬 나는 길

센소지로 들어가는 길 양쪽에는
기념품과 전통 과자, 각종 일본 상품을 파는 작은 가게들이
빈틈없이 늘어서 있었다.

이 길이 나카미세도리(仲見世通り)다.

센소지로 향하는 참배길을 따라 형성된 오래된 상점가로,
좁고 긴 길 양쪽에 수많은 점포가 줄지어 붙어 있다.

사람은 정말 많았다.

앞사람을 따라 한 걸음, 또 한 걸음.

가족이 서로 떨어지지 않도록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천천히 걸었다.

가게마다 일본다운 물건들이 가득했다.

그중에서도 자주 눈에 띄는 것이
다루마(だるま)와 마네키네코(招き猫)였다.

다루마는 달마대사를 본떠 만든 둥근 모양의 길상물로,
목표를 세울 때 한쪽 눈을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면 나머지 눈을 채워 넣는 풍습으로 잘 알려져 있다.

넘어뜨려도 다시 일어나는 모양 때문에
끈기와 소망 성취를 상징하기도 한다.

한쪽 앞발을 들어 올리고 있는 고양이,
마네키네코도 여기저기 보였다.

우리말로 하면 ‘복을 부르는 고양이’쯤 되는 물건이다.

들고 있는 앞발에 따라
손님이나 재물을 불러들인다는 의미가 붙어
일본의 상점이나 식당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다루마와 마네키네코,
부채와 전통 장식,
과자와 갖가지 기념품들.

거기에 붉은 제등과 붉고 흰 장식까지 이어지니
걷는 내내 일본 냄새가 물씬 났다.

그렇게 사람들 틈을 따라가다 보니
멀리 거대한 붉은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22. 센소지, 도쿄 한복판에서 만난 오래된 일본

센소지(浅草寺).

도쿄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알려진 곳이다.

센소지의 역사는 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전승에 따르면 628년,
스미다강에서 어부 형제가 관음상을 건져 올린 것이
센소지의 시작이 되었고,
645년 승려 쇼카이(勝海)가 관음당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우리가 걸어 들어간 곳에는
거대한 붉은 문과 오층탑,
그리고 본당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호조몬(宝蔵門)을 지나면서 올려다본
거대한 제등은 가까이에서 보니 더욱 압도적이었다.

그 너머로는 오층탑이 솟아 있었고,
센소지 본당 앞에는 향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본당으로 계속해서 올라갔다.

우리도 그 흐름을 따라 본당으로 향했다.

본당에 올라 뒤를 돌아보니
방금 지나온 호조몬과 나카미세도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사람이 많기는 정말 많다.

그래도 이 풍경은 좋았다.

현대적인 빌딩과 전철,
전자상가와 애니메이션으로 가득했던 아키하바라를 떠나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이렇게 오래된 일본의 풍경 속에 들어와 있었다.

아키하바라가 현대 일본의 한 얼굴이라면,
아사쿠사와 센소지는 그보다 훨씬 오래된 일본의 얼굴처럼 느껴졌다.

에도성에서 시작해 도쿄역을 지나고,
『스즈메의 문단속』 성지를 거쳐,
아키하바라에서 배불리 로스트비프를 먹고,
다시 센소지까지.

워매.

오늘 일정 한번 빡세다.

그래도 센소지는 천천히 둘러봤다.

오층탑도 보고, 본당도 둘러보고, 가족들과 사진도 남겼다.

사람에 치이면서도 구경할 것은 제대로 구경했다.

도쿄 한복판에서 만난 조금은 교토 같은 풍경이었다.


23. 도쿄에 왔으니 스미다강은 한번 봐줘야지

센소지를 천천히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다.

이제 오늘 일정도 슬슬 막바지로 접어든다.

하지만 아직 오늘의 가장 큰 일정이 남아 있었다.

도쿄 스카이트리(東京スカイツリー).

그 전에 스미다강(隅田川)으로 향했다.

도쿄에 왔는데 스미다강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않은가.

강변 쪽으로 걸어나가자
멀리 오늘 저녁 올라갈 도쿄 스카이트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회색 겨울 하늘 아래 높이 솟은 스카이트리의 꼭대기는
낮게 내려앉은 구름과 안개 속으로 살짝 들어가 있었다.

조금 있다 저 꼭대기 가까이까지 올라갈 것이다.

오늘 스카이트리 전망대는 미리 클룩에서 예약해두었다.

일부러 크리스마스에 도쿄까지 온 이유 중 하나도
도쿄의 크리스마스 야경을 제대로 보고 싶어서였다.

그 대가가 만만치는 않았다.

항공권도 비싸고, 호텔도 비싸고.

평소 같으면 훨씬 싸게 왔을 여행인데
크리스마스라는 이유로 비용이 확 뛰었다.

“아이고, 허리가 지게 진 것마냥 휘겄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봐야지.

크리스마스의 도쿄 야경을.


24. 스미다강과 스카이트리, 그리고 그 유명한 똥

스미다강변으로 내려섰다.

강 위로 철교가 지나고, 전철 한 대가 강을 가로질렀다.

강 건너에는 도쿄 스카이트리가 우뚝 서 있었다.

아들과 함께 스카이트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나도 혼자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 장 남겼다.

아이들은 앞서 걷고
우리는 강변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도심 한가운데를 흐르는 넓은 강과
철교를 건너는 열차,
그 뒤로 솟아 있는 스카이트리.

도쿄다운 풍경이었다.

그리고 스미다강에 오면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이 있다.

아사히맥주 본사 옆 건물 위에 얹혀 있는
거대한 황금색 조형물.

멀리서 보면 뭐랄까……

“저거 아무리 봐도 똥 같은디?”

ㅋㅋㅋ.

정식 명칭은 ‘플람 도르(Flamme d‘Or)’,
황금 불꽃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아사히맥주의 도전하는 정신과 불타는 마음을 표현한 조형물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뜻을 알고 봐도
내 눈에는 자꾸 똥처럼 보인다.

스미다강까지 왔으니 스카이트리도 보고,
그 유명한 황금색 ‘똥’도 봤다.

이 정도면 됐다.


25. 가까이 있는 스카이트리 가는데 왜 이렇게 힘들어

이제 스카이트리로 이동할 차례.

멀리서 보면 바로 코앞인데
막상 전철을 타려고 하니 또 일이 꼬였다.

아사쿠사역(浅草駅)은
도쿄메트로와 도에이 지하철, 도부철도 등
여러 노선의 타는 곳이 서로 나뉘어 있었다.

우리가 타야 할 곳을 찾느라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아이구, 또 시작이네.”

시부야역에서 헤매고,
도쿄역에서 헤매고,
이제 아사쿠사에서 또 헤맨다.

한참을 돌아다닌 끝에
도에이 아사쿠사선(都営浅草線)을 찾아냈다.

안내판에는

「押上・京成線・北総線・成田空港方面」
오시아게·게이세이선·호쿠소선·나리타공항 방면

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사쿠사역(A18)에서 전철을 타고
오시아게역(押上駅)으로 향했다.

가까운 거리라 전철 자체는 금방이었다.

오후 4시 40분 무렵 역에 도착했다.

그런데 역에 도착했다고
스카이트리에 도착한 것은 아니었다.

복잡한 통로를 따라 다시 한참 이동했다.

결국 스카이트리 타운까지 찾아가는 데
10분 가까이를 또 잡아먹었다.

오늘은 정말 이동할 때마다
미궁 하나씩 통과하는 기분이다.


26. 워매, 여기서 신발을 사자고?

드디어 도쿄 스카이트리 타운(TOKYO SKYTREE TOWN)에 도착했다.

크리스마스라 건물 안팎은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커다란 코카콜라 산타 장식도 보이고,
밖으로 나가자 스카이트리가 바로 머리 위에서 솟아 있었다.

해가 지면서 조명도 하나둘 켜졌다.

그런데 여기서 예상하지 못했던 복병이 나타났다.

딸래미였다.

아침부터 요상한 신발을 신고 하루 종일 걸어 다니더니
결국 발이 아프다고 한다.

“아빠, 나 신발 하나 사야 될 것 같아.”

“뭐?”

지금?

여기서?

사람은 미어터지고,
전망대 예약시간은 다가오는데
갑자기 신발가게를 찾아야 한다.

워매.

스카이트리 타운 안을 돌아다니며
신발가게 찾느라 진짜 죽는 줄 알았다.

여행이라는 게 그렇다.

아무리 계획을 세워놔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꼭 하나씩 튀어나온다.


27. 크리스마스의 스카이트리, 사람이 사람을 덮었다

신발 문제를 해결하며 돌아다니는 사이
밖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스카이트리 주변의 크리스마스 일루미네이션이
본격적으로 빛을 내기 시작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캐릭터 조형물,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
수많은 전구로 뒤덮인 나무들.

예쁘긴 정말 예뻤다.

그런데 사람은 더 대단했다.

크리스마스 행사장 주변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비까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면서
우산까지 하나둘 펼쳐졌다.

사람 사이를 뚫고 걸어가는 것 자체가 일이었다.

“워매, 여태까지 본 사람 중에 여기가 제일 많은 것 같은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는 몰랐다.

며칠 뒤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에서
이보다 훨씬 더한 사람 떼를 보게 될 줄은.

아무튼 오늘만 놓고 보면 최고 기록이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사진은 찍어야 했다.

마님도 찍고,
아들도 찍고,
딸도 찍고,
가족 넷이 모여 사진도 남겼다.

사람은 많고 비는 조금씩 내렸지만
크리스마스의 도쿄 한복판에 서 있다는 기분만큼은 제대로 났다.


28. 오후 6시, 드디어 도쿄 스카이트리 전망대로

오후 6시 무렵.

드디어 전망대 입구에 도착했다.

사람이 워낙 많아 입구 주변부터 북적였다.

미리 사둔 입장권을 확인하고
전망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리고 문이 닫혔다.

슝.

“어?”

금세 도착했다.

도쿄 스카이트리의 덴보데크(天望デッキ)는
지상 350m에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데는
체감상 정말 1분도 걸리지 않은 것 같았다.

350m를 이렇게 순식간에 올라오다니.

문이 열리자
금세 도쿄 상공 한가운데에 와 있었다.


29. 350m 위에서 만난 비 내리는 도쿄의 밤

기대했던 것은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도쿄의 화려한 크리스마스 야경이었다.

그런데 오늘 날씨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낮에는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밤이 되자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안개까지 끼었다.

350m 높이에서 바라보는 도쿄는
맑은 날처럼 깨끗하게 펼쳐지지는 않았다.

유리창 너머로 도시의 불빛들이
안개 속에서 흐릿하게 번졌다.

“아이고…….”

어제는 비 때문에 시부야 스카이 옥상에 올라가지도 못했는데
오늘은 스카이트리까지 와서 또 비다.

그래도 완전히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안개가 잠깐씩 걷힐 때마다
도쿄의 야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로를 따라 자동차 불빛이 길게 이어지고,
스미다강과 다리들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조금 전까지 우리가 걸었던 도시가
350m 아래에서 작은 모형처럼 펼쳐져 있었다.

비와 안개가 아쉽기는 했지만
그 덕분에 또 다른 분위기의 도쿄 야경을 만났다.

완벽하게 맑지는 않았다.

그래도 크리스마스 밤,
가족과 함께 도쿄의 350m 상공에 서 있었다.

그걸로 됐다.


30. 호쿠사이를 만나다

야경을 보고 전망대를 천천히 둘러보다가
내 발걸음을 딱 멈추게 한 것이 있었다.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

나는 우키요에(浮世絵)를 좋아하고,
그 작가중에서도 호쿠사이를 특히 좋아한다.

우키요에는 에도시대에 크게 유행한 일본의 서민 회화다.

배우와 미인, 명소와 풍경,
당시 사람들의 일상과 유행을 목판화로 찍어 널리 퍼뜨렸다.

한 점뿐인 그림이라기보다
여러 장을 찍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었던 대중미술에 가까웠다.

그 우키요에를 세계적인 풍경화의 경지까지 끌어올린 대표적인 화가가 바로 가쓰시카 호쿠사이다.

호쿠사이는 평생 수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후가쿠 삼십육경(冨嶽三十六景)』.

후지산을 여러 장소와 계절,
다양한 날씨와 시선으로 그려낸 연작이다.

그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
거대한 파도가 화면을 집어삼킬 듯 솟아오른

『가나가와 앞바다의 큰 파도(神奈川沖浪裏)』.

그리고 또 하나가

『개풍쾌청(凱風快晴)』,
흔히 ‘붉은 후지(赤富士)’라고 부르는 작품이다.

맑은 날 아침,
햇빛을 받아 붉게 물든 후지산을
단순하면서도 강렬하게 그려낸 그림이다.

그런데 스카이트리 기념품점에서
바로 이 두 작품을 입체적으로 만든 스노우볼을 만났다.

하나는 거대한 푸른 파도가 솟구치고
그 뒤로 조그맣게 후지산이 보이는
『가나가와 앞바다의 큰 파도』.

다른 하나는 붉게 물든 후지산이 중심에 서 있는
『개풍쾌청』.

워매.

이건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다.

하나만 살까?

두 개를 번갈아 보다가 결국 결론을 내렸다.

“둘 다 주쇼.”

ㅋㅋㅋ.

두 개 합해서 한 30만 원.

아이고 비싸다.

겁나 비싸다.

그런데 어쩌겄는가.

우키요에를 좋아하고,
거기다 호쿠사이를 좋아하는데
눈앞에 내가 좋아하는 두 작품이 스노우볼로 딱 나타나버렸으니.

점원에게 괜히 아는 영어까지 총동원했다.

“I love Hokusai.
Very excellent artist!”

ㅋㅋㅋ.

문법이고 뭐고 필요 없다.

내가 호쿠사이를 좋아한다는 뜻만 전해지면 됐다.

그렇게 『가나가와 앞바다의 큰 파도』와
‘붉은 후지’ 스노우볼 두 개를 품에 안았다.

비싸기는 정말 비쌌지만,
도쿄에서 산 기념품 가운데
아마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물건이 될 것 같다.


31. 내려오니 비는 더 세지고

전망대에서 내려오니
밖에는 비가 더 내리고 있었다.

유리창에도 빗방울이 가득했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크리스마스트리와 일루미네이션은
비를 맞으며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사람도 여전히 많았다.

비가 온다고 크리스마스를 즐기러 나온 사람들이
어디로 사라질 리가 없다.

우산들이 다시 행사장을 가득 채웠다.

그래도 우리는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언제 또 크리스마스에
도쿄 스카이트리 아래에서 비를 맞고 있겠는가.

사진으로라도 많이 남겨놓자.


32. 오후 6시 43분, 이제 집에 가자

이제 진짜 숙소로 돌아갈 시간이다.

오시아게역(押上駅)으로 내려갔다.

오후 6시 43분.

전광판에는
Oshiage ‘SKYTREE’ Z14 가 표시되어 있었다.

하루 종일 걸어 다닌 아이들도 이제 완전히 지쳐 있었다.

전철 좌석에 앉자 아들과 딸은 말없이 쉬었다.

아침 8시에 일어나 9시 40분쯤 호텔을 나선 뒤
에도성부터 시작해 도쿄역,
『스즈메의 문단속』 성지,
아키하바라, 센소지, 스미다강,
그리고 도쿄 스카이트리까지.

오늘 하루 정말 많이도 돌아다녔다.

오후 8시 무렵.

드디어 시부야 숙소로 돌아왔다.


33. 워매, 오늘 다들 고상 많았다

호텔에 들어오니 긴장이 한꺼번에 풀렸다.

오늘은 정말 빡센 하루였다.

에도성의 거대한 석축 위에서 시작해
도쿄역의 붉은 벽돌 역사를 보고,
히지리바시에서 『스즈메의 문단속』 속 빨간 전철을 기다렸다.

배가 등에 붙을 만큼 굶다가
아키하바라에서 로스트비프를 배불리 먹고,
사람으로 가득한 센소지를 지나
스미다강까지 걸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크리스마스 인파와 비를 뚫고
350m 높이의 스카이트리에서 도쿄의 밤을 내려다봤다.

워매.

다들 고상 많었다.

오늘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말자.

푹 자자.

내일 또 돌아댕겨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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