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 살아 있는 이들을 위한 열네 번의 인생 수업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살림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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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속에 만난 동네 친구

— 비에 젖은 대전의 어느 일요일(’26.10.18.), 세월이 흘러도 이어지는 관계와 만남의 소중함

1. 대전에 오는 동네 친구

오랜만에 고향 동네 친구가 대전에 놀러 온다고 했다.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함께 다닌 친구다. 같은 동네에서 자랐으니 알고 지낸 세월만 해도 반세기에 가깝다. 그런데 이 친구는 나뿐 아니라 아내와도 인연이 있다. 아내에게도 중학교 동창이기 때문이다.

친구가 일요일에 온다고 하자 아내가 토요일에 오라고 했다. 일요일에는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는 일기예보에 비가 저녁부터 온다고 했다며 부득불 일요일에 오겠다고 했다.

그렇게 일요일로 약속이 정해졌다.

모처럼 찾아오는 친구를 어디로 데리고 갈까 고민했다. 하필 날씨가 좋지 않으니 야외 나들이도 마땅치 않았다. 그래도 대전에 왔으니 이것저것 구경시켜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쯤에서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 더 해야겠다.

이 친구에게는 우리 부부와 관련된 특별한 이력이 있다.

바로 우리 부부의 중신애미라는 사실이다.

그렇다. 나와 아내를 맺어준 사람이 바로 이 친구다. ㅋㅋ

2. 하늘거리지 않는 코스모스

친구를 만나 먼저 갑천변 코스모스 꽃밭으로 향했다.

분홍색과 흰색 코스모스가 넓은 들판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꽃밭 너머로는 엑스포다리가 보였다. 잿빛 하늘 아래 펼쳐진 코스모스는 제법 아름다웠다.

그런데 꽃밭을 보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코스모스가 너무 작았다.

내가 기억하는 코스모스는 저렇지 않았다. 사람 허리춤을 훌쩍 넘기는 가느다란 줄기 끝에 꽃을 매달고, 가을바람이 불면 하늘하늘 흔들리던 꽃이었다.

바람이 세게 불면 쓰러질 듯 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섰다. 꽃잎이 예쁜 것도 좋았지만, 코스모스는 그렇게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더 좋았다.

요즘은 키가 작은 왜성 품종을 많이 심어서인지 예전처럼 훤칠한 코스모스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꽃은 촘촘하고 화려하지만 하늘거리는 맛이 없다. 꽃밭은 풍성해졌는데 운치는 오히려 줄어든 것 같다.

어린 시절 고향의 가을 풍경이 떠올랐다.

그때는 길가에도 코스모스가 흔했다. 누가 심었는지도 모르는 꽃들이 가을이면 피어났고, 가느다란 줄기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특별히 가꾸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그 시절 우리는 그런 풍경 속에서 자랐다.

같은 동네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이제는 쉰 살을 훌쩍 넘겼다. 그때는 매일 마주치던 얼굴들이었는데, 이제는 서로 다른 곳에서 살면서 이렇게 날을 잡아야 만날 수 있다.

코스모스 구경을 마치고 꿈돌이와 꿈순이도 만나러 갔다.

대전의 마스코트인 꿈돌이와 꿈순이를 보니 1993년 대전엑스포가 생각났다. 그때 우리 나이 스무 살 무렵이었다. 어느덧 30년이 훌쩍 지났으니 꿈돌이도 우리와 함께 세월을 먹은 셈이다.

우산을 쓰고 사진도 찍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날씨가 영 고약했다.

3. 비 맞은 개꼬라지

일기예보에는 저녁부터 비가 온다고 했지만, 비는 저녁까지 기다려 주지 않았다.

그것도 적당히 내리는 비가 아니었다. 대차게 쏟아졌다.

우산을 받쳐 들어 머리와 윗몸은 어느 정도 비를 피했지만, 바짓가랑이와 신발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빗물이 튀고 바닥에 고인 물을 밟을 때마다 바짓단이 젖어 들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길도 온통 구적구적했다.

그래도 이왕 나온 김에 구경은 계속했다.

마침 엑스포과학공원 일대에서 대전 빵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비가 그렇게 쏟아지는데도 행사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우산을 든 사람들이 천막 사이를 오가며 빵을 구경하고 있었다.

우리도 그 틈에 섞여 돌아다녔다.

대전의 빵축제라면 역시 성심당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성심당 부스에 가보니 줄이 드럽게 길었다.

비까지 맞아가며 그 긴 줄에 서 있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빵이 아무리 맛있어도 그렇지, 신발까지 젖어 가며 기다릴 일은 아니었다.

결국 축제장 성심당 부스의 긴 줄은 포기했다. 대신 그 근처에 있는 성심당 DCC점 튀소정거장으로 향했다.

친구는 그곳에서 빵을 한 보따리 샀다. 우리야 대전에 사니 언제든 사 먹을 수 있지만, 멀리서 찾아온 친구는 기왕 온 김에 넉넉히 사 가고 싶었을 것이다.

친구가 산 빵은 내가 대신 들었다. 한 손에 빵 봉지를 잔뜩 들고 젖은 길을 걸어가는 모습이 사진에도 남았다.

그동안 비는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신발 속까지 물이 들어왔다. 아내도 친구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셋 다 비 맞은 개꼬라지가 되었다. ㅋㅋ

토요일에 오라고 했던 아내의 말을 들었더라면 이런 고생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와서 누구를 탓하겠는가.

4. 비에 젖어도 즐거운 하루

몸은 고단했지만 참 재미있었다.

어릴 적에는 친구를 만나는 일이 특별하지 않았다. 같은 동네에 살았으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서로 시간을 맞추고 먼 길을 오가야 한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어도 만나면 반갑고 편안하다. 오랜 친구 앞에서는 굳이 지난 시간을 하나하나 설명할 필요가 없다. 서로의 어린 시절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 그날 찍은 사진들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비에 젖은 풍경도, 우산을 쓰고 돌아다니던 모습도 사진 속에 남아 있었다.

다음에는 날씨가 좋은 날 다시 만나면 좋겠다.

하지만 이번처럼 궂은 날씨에 고생한 하루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어쨌든, 비는 실컷 맞았어도 친구는 참 잘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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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손장섭, 강연균, 임옥상 같은 호남의 화가들이 풍경 속에 그리는 시뻘건 들판이 남도의 역사적 아픔과 한을 담아낸 조형적 변형인 줄 알았는데, 여기 와보니 그것 자체가 리얼리티였네요. 정말로 강렬한 빛깔이네요."
나의 학생들은 이처럼 시각적으로 감성적으로 정직하고, 무엇인가 느낄 줄 아는 답사의 모범생들이었다. 대학생 시절 나 역시 처음 남도땅을밟았을 때, 나에게 다가온 가장 큰 감동은 남도의 포근한 들판과 느릿한산등성이의 곡선 그리고 저 황토의 붉은빛이었다. - P16

월출산 도갑사
월출산의 대표적인 절집 도갑사(寺)의 정취는 아침나절 산안개가 걷힐 때 가장 아름답다고 기억한다. 매표소에서 돌담을 끼고 계곡을따라 조금 가다보면 비스듬히 출입문이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해탈문(解脫)은 국보 제50호로 일찍부터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초기의 목조건축으로 집의 생김새가 특이하고 주심포. 다포 양식의공존이라는 건축사적 의의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 정도 건물에 국보라는 가치를 부여한 것에 나는 선뜻 동의할 수가 없다. 시대가 오래되고드물다고 해서 국보가 되는 것은 아니리라. - P18

도갑사 관음32응신도
사실 도갑사의 불화로 말할 것 같으면 생각할수록 아쉬움이 남는 조선시대 불화의 최고 명작이 봉안되어 있었다. 지금은 일본 교토(京都)의 대찰인 지은원(知恩院, 지온인)에 소장되어 있는 <관음32응신도三十二應身圖)>다. 높이 2.3미터, 폭 1.3미터의 비교적 대작인 이 두루마리 탱화는 화려한 고려 불화의 전통과 조선 전기의 산수화풍이 어우러진 둘도 없는 명작으로 1550년 인종 왕비인 공의왕대비(恭懿王大妃)가돌아가신 인종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이자실(李)에게 그리게 하여이곳 도갑사에 봉안했다. - P20

이런 명화가 어떻게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을까? 나는 임진왜란, 또는 그 직전 이 일대에 빈발하던 왜변(倭變) 때 왜구들이 약탈해 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16세기 후반 강진. 영암 일대에 일어났던 왜변의 상황은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 제3권 양반편 마지막 장에 잘 그려져 있다. 활 잘 쏘는 이봉학이와 돌팔매질 잘하는 배돌석이가 재주 시합한 곳이 바로 영암성이었다. 왜구의 침입이 그렇게 잦았고 그들은 우리 사찰의 범종과 불화를 가져다 일본 사찰에 거금을 받고 팔아넘기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들이 이 그림을 반환해줄 리 만무인지라 잃어버린 문화유산의 이야기로만 남을 수밖에 없어 아쉽기 그지없다(근래에는 실물대 정밀 복사본을 만들어 도갑사 성보박물관에 전시해놓고 있다). - P22

이것으로 도갑사의 볼거리는 다 본 셈인데 사실 더욱 중요한 것은 따로 있으니, 월출산이 낳은 불세출의 인물 도선국사를 말하지 않는다면여기를 다녀간 의미가 반감된다. 그리고 영암 월출산이 내세우는 또 하나의 인물, 백제 왕인(王仁) 박사의 유허지가 도갑사 남쪽 성기동洞)에 있는데 한번은 가볼 만하다. 왕인박사는 백제 고이왕 52년(285)에 일본에 한문(천자문)을 전해주어 일본의 문명이 발전할 수 있는 인프라를제공했던 백제인이다. - P24

그러나 그가 영암 출신임을 크게 내세워 자랑하는 방식에 대해 나는조금은 생각을 달리한다. 왕인을 추앙할 사람들은 우리보다 일본인이다. 아펜젤러는 한국 개화사에서 이름난 것이지 미국 현대사에 족적을남긴 인물이 아닌 것처럼. 실제로 일본 도쿄의 우에노 공원을 거닐다가길가에 세워진 왕인 박사 추모비를 보면 일본 사람들의 고마워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영암의 왕인박사유적지도 이처럼 조용하고 차분한 사적지로 만들었으면 마음으로 생각게 하는 바가 더 깊고 그윽했을성싶다. 그러나 자못 거대한 기념관으로 치장해놓고 보니 혹시 식민지시절 일본에 당했던 아픔의 정신적 보상을 이런 식으로 찾으려는 것이아닌가 싶어 애처로운 마음에 오히려 발길이 한 번에 그치고 말았다. - P24

월남리에서 강진 쪽으로 불과 3킬로미터. 길가에는 ‘국보 제13호‘라는 큰 글씨와 이발소 그림풍의 관음보살상 입간판이 오른쪽으로 화살표를 해놓고 있다. 여기서 월출산 쪽으로 다시 3킬로미터.
우리는 이 입구부터 걸어가야 옳았다. 비탈길을 계단식 논으로 경작해 흙과 함께 살고 있는 농부들의 일하는 모습, 그 일하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동그만 마을과 마을. 그리고 저 위쪽 마을, 오래된 한옥과 연꽃이 장엄하게 피어난다는 백운동(洞)의 연못도 구경하고, 가다가 모정(亭)에 쉬면서 촌로의 강한 남도 사투리도 들어보았어야 했다. 그러다 산모퉁이를 도는 순간 월출산의 동남쪽 봉우리가 환상의 나라입간판처럼 피어올랐을 것이다. 우리는 이 행복한 40분간의 산책로를,
무감각하게도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여 5분 만에 지나 무위사 천왕문 앞에 당도해 버렸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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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월출산과 남도의 봄
잃어버린 옛 정취의 미련국토의 최남단, 전라남도 강진과 해남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1장 제1절로 삼은 것은 결코 무작위의 선택이 아니다. 답사라면 사람들은 으레 경주·부여·공주 같은 옛 왕도의 화려한 유물을 구경 가는 일로생각할 것이며, 나 또한 답사의 초심자 시절에는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지난 세월 내가 답사의 광)이 되어 제철이면 나를 부르는곳을 따라가고 또 가고, 그리하여 나에게 다가온 저 문화유산의 느낌을확인하고 확대하기를 되풀이하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수없이 여러번 다녀온 곳이 바로 이 강진·해남땅이다. - P13

강진과 해남은 우리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무대의 전면에 부상하여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본 일 없었으니 그 옛날의 영화를 말해주는 대단한 유적과 유물이 남아 있을 리 만무한 곳이며, 지금도 반도의 오지로 어쩌다 나 같은 답사객의 발길이나 닿는 이 조용한 시골은 그 옛날은둔자의 낙향지이거나 유배객의 귀양지였을 따름이다. - P13

남도의 황토, 남도의 들판나주평야의 넓은 들 저편으로는 완만한 산등성의 여린 곡선이 시야로 들어온다. 들판은 넓고 평평한데도 산은 가깝게 다가오니 참으로 이상스럽다. 나는 이곳을 지날 때마다 마치 길게 엎드려 누운 사람의 등허리 곡선처럼 느슨하면서도 완급과 강약이 있는 리듬을 느낀다. 말끝을당기며 "~잉" 소리를 내는 남도사투리의 여운과도 같고, 구성진 육자배기의 끊길 듯 이어지는 가락같이도 느껴진다. 그것은 나만이 느끼는 별스런 감정이 아니었다. 김아무개라는 졸업생이 내게 이렇게 말을 걸어온다.
"남도땅의 산등성은 참으로 포근하게 감싸주는 아늑함이 있네요.
경산의 압량벌이나 안동 쪽에서는 펑퍼짐하거나 육중한 것이 가로막아 저런 따스함을 못 느끼거든요."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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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두 번째 기록 ㅣ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세스지 지음, 전선영 옮김 / 반타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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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가 아니라 슬픔이었다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두 번째 기록』 — 세스지

책 소개

* 지은이 : 세스지(背筋), 일본의 공포소설 작가
* 옮긴이 : 전선영
* 출판사 : 반타
* 출간일 : 2026년 6월 22일
* 분량 : 364쪽
* 장르 : 일본 공포소설, 모큐멘터리 호러
* 작품 특징 : 잡지 기사, 인터뷰, 인터넷 게시글, 목격담 등 다양한 기록을 엮어 긴키 지방의 특정 장소에서 발생한 괴이한 사건들을 추적하는 작품
* 특이사항 : 2025년 국내 출간된 동명 소설을 일부 개작한 작품. 기본 줄거리는 유지하면서 인물 설정과 주제, 결말 등을 변경한 일본 문고판을 『두 번째 기록』이라는 제목으로 국내 출간.

⸻

책을 읽는 내내 무섭지 않았다.

산속에서 들려오는 정체불명의 목소리,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람들, 기괴한 행동을 하는 여자, 수상한 종교 집단과 저주를 부르는 스티커까지. 실제로 이런 일을 겪는다면 공포스러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활자로 읽는 이야기는 전혀 무섭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야기가 산만했다.

1984년 소녀 실종사건에서 시작해 수련회 집단 히스테리, 인터넷 괴담, 아파트 투신사건, 미확인 생물, 기괴한 사진과 신흥 종교까지. 사건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하나의 이야기에 몰입할 만하면 또 다른 이야기가 끼어든다. 작가는 이 모든 사건에서 공통점을 찾아 하나의 장소로 연결하려는 것 같은데, 내게는 서로 다른 괴담을 이것저것 가져다 붙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반복되는 단서들이 조금씩 연결된다. 산과 댐, 신사와 도리이, 감과 신부, 그리고 마시라사마.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던 말들이 뒤에 가서 설명된다. 하지만 단서들이 연결된다고 해서 읽는 동안 끊겼던 몰입까지 되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사건의 연결 관계를 이해하는 것과 공포를 느끼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런데 후반부에 이르러 그동안 괴담 속에 가려져 있던 한 가족의 비극이 드러났다.

사람들을 두렵게 했던 빨간 여자는 한때 남편과 두 자녀를 둔 어머니였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종교에 빠져들었고, 그 과정에서 가족의 삶은 무너져 내렸다. 아키라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으며, 홀로 남은 세노는 평생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되었다.

그들의 사연을 알고 나니 귀신의 정체나 괴담의 진상보다 그 가족이 겪어야 했던 고통이 더 마음에 남았다. 그때까지 무섭지 않게만 읽었던 이야기에서 비로소 슬픔을 느꼈다.

결국, 가족인가.

가족을 갖고 싶었던 사람, 가족을 잃은 사람, 그리고 잃어버린 가족을 끝내 놓아주지 못하는 사람.

특히 빨간 여자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었다. 열 살 때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는 3남 1녀, 네 남매를 홀로 책임지셨다. 어린 자식 넷을 키우며 살아오신 세월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그럼에도 어머니는 힘을 잃지 않으셨고, 우리 네 남매를 끝까지 지켜주셨다.

그래서 빨간 여자의 이야기가 더욱 안타까웠다. 남편을 잃은 슬픔과 혼자 자식을 키워야 하는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고통 속에서 종교에 빠져들고, 결국 자식들마저 비극으로 몰아넣은 삶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만약 우리 어머니도 그랬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책꽂이에 꽂혀 있던 최인호의 『가족』 두 권을 찾아 꺼냈다.

1권의 표지에는 아버지가 어린아이를 목말 태우고 환하게 웃고 있다. 아이가 아들인지 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버지의 어깨에 올라탄 아이도 함께 웃고 있다. 아이를 목말 태운 아버지의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하다.

2권의 표지는 더욱 따뜻하다. 아버지가 아들의 뒤에서 두 팔로 가슴을 감싸 안고 있다. 아들은 아버지의 품에 안겨 해맑게 웃고, 아버지는 그보다 더 환하게 웃고 있다. 아이의 웃음이 아버지에게 전해진 것인지, 아버지의 행복이 아이에게 전해진 것인지 모를 만큼 두 사람의 표정이 밝다.

그래, 이게 가족의 모습이어야지.

아이를 어깨에 태워주고, 품에 꼭 안아주고, 함께 웃으며 살아가는 것. 자식에게 아버지의 어깨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이고, 아버지의 품은 가장 든든한 울타리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아키라와 세노의 아버지도, 나의 아버지도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

저 사진 속 아버지와 아이처럼 함께 웃고 살아갈 시간이 우리에게는 너무 짧았다. 아키라와 세노도 아버지의 빈자리를 안고 자라야 했고, 나 역시 열 살 이후로는 아버지의 어깨에 올라탈 수도, 아버지의 품에 안길 수도 없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떠난 뒤 남겨진 가족의 삶은 너무나 달랐다.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모두 채울 수는 없었겠지만, 적어도 우리 네 남매가 살아갈 울타리는 끝까지 지켜주셨다. 반면 소설 속 어머니는 남편을 잃은 뒤 종교에 의지했고, 가족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맞았다.

그 여자도 처음부터 그런 삶을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키라와 세노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사랑한다는 마음만으로 가족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책 표지 속 아버지와 아들의 웃는 얼굴을 다시 바라보았다.

이런 가족의 모습이었다면, 그 여자와 아키라, 세노도……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았다.

결국 책을 덮고 내 마음에 남은 것은 귀신도, 저주도 아니었다. 열 살에 아버지를 잃은 우리 네 남매의 곁을 끝까지 지켜주신 어머니였다. 그 세월의 무게를 이제야 조금 헤아려 본다.

어머니의 은혜는 하늘같다.

식상하고 상투적인 말이지만, 지금 내 마음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내게 이 책은 공포가 아니라 슬픔의 이야기였고, 어머니에 대한 감사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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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가운데 취재를 구실로 ●●●●● 현지에 가서 그 지역 사람들한테서 종교의 발상이라고 할 만한 이야기를 들은 거야. 그게 그 인터뷰 녹취. 너무나 하찮은, 불쌍한 남자 이야기. - P-1

우리가 산으로 꾀는 것이라고 부르는 그건…. 그래. 틀림없이 가족을 갖고 싶어 했을 거야. 그러니 집요하게 신부를 계속 구하지 않았겠어? 외톨이니까, 산속에서 손짓하면서. 그건 신 같은 게 아니야. 어디까지나 우리랑 같은, 그저 바보 같은 남자. - P-1

동시에 그 돌에 대한 것도 알게 됐어. 사교 집단이 숭배하던 남자는 그저 희생자이고, 모든 원인은 그 돌에 있었다는 걸 말이야.
하지만 이미 돌은 그 종교 시설에는 없어. 어머니가 훔쳐서 빼돌렸으니까. - P-1

발자취를 뒤쫓지는 않았지만, 아마 여전히 어딘가에서 새로운 희생자를 만들고 있겠지. 이를테면 종교 단체에서 다단계 판매 집단으로 껍데기만 바꿔서 말이야. - P-1

다단계 판매 집단이 외웠던 그 주문,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어. 그야 종교 단체 신자가 외운 것과 거의 같으니까. 잠입 보고 기사를 구멍이 뚫릴 만큼 읽었으니 잊을 리가 없지.
속여서 미안해. 처음부터 난 전부 알고 있었어. - P-1

바보 같지. 자기 어머니가 괴담이 되다니. 정말 웃기지도 않아.
하지만 나는 확인해야 했어. 유령이 된 어머니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그리고 아키라는 정말 되살아났는지. - P-1

하지만 어차피 한낱 괴담이니까 실체 따윈 없고. 폐허가 된 그 집에 가 봤지만, 어머니도, 아키라도 내 앞에는 나타나 주질 않았어. 그런 짓을 계속하는 걸 마음 한구석으로는 어리석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만둘 수가 없었어.

그러다 당신과 만났지. - P-1

새삼스럽지만 한때나마 이런 나와 가족이 돼줘서 고마워. 이제야 겨우 과거의 저주에서 풀려나는구나, 그땐 그렇게 생각했어.
아이가 생겼을 때는 정말 기뻤어. 하지만 난 그 아이를 세상에 내보내질 못했지. 아직 이름조차 없던 그 아이. 사랑하는 것조차 할 수 없다니 다정한 당신은 용서해 주었지만, 나는 나를 용서할 수 없었어. 아니, 아냐. 무서웠어. 유산하고 이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돼버렸으니까 당신에게 버림받는 게 아닐까 두려웠어. 그래서 내가 먼저 이혼해 달라고 부탁한 거야.
미안. 새삼스럽네, 참. 울지 말고.
당신이 말했잖아.
따뜻한 가족을 갖고 싶다고. 미안해. 나로선 그 바람을 이루어 줄 수 없었어. - P-1

만약 이 세상에 사람이 하나도 남지 않고 사라져 버린다면 유령은 존재할 수 있을 거 같아?
인지하는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이 세상에 머무를 수 있지 않을까? 그만큼 모호하고 약한 존재라고 생각해 - P-1

유령으로서 어머니를, 아키라를 계속 존재하게 만들 생각이었어.
어리석고, 하지만 소중한 내 가족을. 마지막까지 가족이 될 수 없었던 내 가족을.
사랑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만큼 못 견디게 미우니까.
계속 존재시킴으로써, 바보 같은 가족의 모습을 계속 대중의 눈에 노출함으로써 복수하고 싶었어. - P-1

관계없는 당신을 끌어들여서 미안해.
나 말이야, 올해로 어머니가 죽은 나이가 되었어.
이제 이런 짓 그만두자고 생각했지. 질려버렸으니까. 하나부터 열까지 다. 어쩔 수 없는 과거를 죽도록 조사하는 것도, 어리석기 짝이 없는 농담 같은 이야기를 계속 써내려 가는 것도. 차라리 오컬트 작가 따위 때려치우고 어디 숨어서 죽어버릴까, 그런 생각도 했지. 그런데 당신한테서 연락이 오고 말았어. - P-1

나는 그저 그 아이를 찾고 있을 뿐이다.
이것을 읽고 그 아이를 보는 사람이 나타나리라 믿고 계속 썼다. 세노를, 지히로를 이해해 주기 위해서.
설령 아키라를 본 사람이 어떻게 되더라도. - P-1

괴이한 존재는 때로 우리에게 구원이 된다.
우리는 항상 죽음을 두려워한다. 자신이 죽고 나면 어떻게 돼 버릴까. 소중한 사람이 죽은 뒤 어떻게 돼버릴까 두려워한다.
심장이 움직임을 멈춘 육체는 내버려두면 썩어서 흙으로 돌아간다. 또는 화장장에서 고온의 불에 타서 재가 된다. 하지만 그런 잔혹한 ‘현상’으로서의 죽음은 우리에게서 살아갈 의미를 빼앗는다.
사후의 세계라는 것은 분명히 있다.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매달리면서 어떻게든 인생을 보내고 있다. - P-1

선을 행하면 틀림없이 천국에 갈 수 있다. 악인은 지옥에 떨어진다. 신은 언제나 우리를 지켜보고 있으며 사십구재까지는 현세에 혼이 머무르고, 음력 칠월 보름이면 피안에서 돌아온다. 그렇게 믿음으로써 죽음 너머에 있는 ‘무(無)’로부터 계속 시선을 돌렸다. - P-1

그것은 두려움을 낳으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사후의 구원을 넌지시 알려준다.
우리는 그것을 믿음으로써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약한 존재다. 허구를 계속 믿다 결국 사실로 만들어버릴 만큼 애처로운 존재다. - P-1

생각해 보면 당신과 나는 서로 닮은꼴이었을지도 몰라.
서로 이해하기를 회피하고 자신만 지키며 살아온 인간이니.
당신과 처음 만났던 그날, 마치 거울에 비친 나를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어.
그렇기에 더욱 당신에게 끌렸지.
나와 닮은 당신을 이해함으로써 그런 자신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으니까. - P-1

당신이 필사적으로 죽은 모친을 이해하려 했던 것처럼.
그리고 당신과 다시 가족이 되기 위해서.
줄곧 생각했어.
"겨우 그 아이가 내 눈에 보였어."
그렇게 당신이 말했을 때부터.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도 내게는 보이지 않아. 유령이. 당신의 동생이.
당신을 이해하고 싶어. 하지만 보이지 않아. - P-1

앞으로 당신이 이걸 읽는 날이 올까.
만약 내가 당신의 동생을 볼 수 있다면 그때는 다시 한번 가족이 돼줄까.

그때를 기다리고 있어. 계속.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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