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 거주하는 24세 회사원 A씨는 대학 졸업 후 한 시스템 회사에 엔지니어로 입사했다. 회사 업무에도 슬슬 익숙해져 자극 없는 하루하루가 답답하던 차였다 - P-1

"창피한 이야긴데, 이른바 성인 사이트라는 데를 접속했어요. 요즘엔 동영상을 공짜로 볼 수 있는 사이트도 많잖아요. 물론 자랑할 건 아니지만요. 매일 자기 전에 그런 사이트 몇 군데 돌아다니는 게 일과였어요." - P-1

「산에 오지 않겠습니까? 감도 있습니다.」「늘 댓글을 달아주셔서 고맙습니다. ㅇㅇ(출연 배우의 이름)이에요. 댁이 어디신가요?」답글을 단 것은 재미있었지만 그뿐, 그날 이후 A씨는 그런 답글을 남겼다는 사실조차 잊었다. - P-1

다음에 그 일을 떠올린 것은 그 배우의 새로운 동영상이 올라왔을 때였다. 댓글 창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왜 안 오지? 계속 기다리고 있는데.」 - P-1

"댓글이 달린 동영상은 즐겨 보는 회사에서 한창 밀고 있는 신인 여자애의 데뷔작이었어요. 찾아냈을 땐 땡잡았다고 생각했죠. 다 보고 무심코 스크롤을 내렸는데 댓글 창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 P-1

그렇게 몇 달 후, 또 그 배우가 출연한 동영상이 올라왔고, 댓글 창에는 이런 댓글이 적혔다.
「산에 오지 않겠습니까? 감도 있습니다.」 - P-1

"벌써 두 번째 작품이 나왔구나, 하면서 봤는데 거기에 댓글이 또 달려 있더라고요."
「우리 집에 오지 않겠습니까? 감도 있답니다.」 - P-1

「귀엽네요. 우리 집에 오지 않겠습니까?」"처음 딱 봤을 때는 인터넷 사용법을 잘 모르는 노인네가 썼나 했는데, 어쩐지 분위기가 묘한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 P-1

후로도 부정기적으로 올라오는 배우의 동영상에는 비슷한 문체의 댓글이 어김없이 달렸다. 댓글이 거의 달리지 않는 댓글 창에서 그 문장은 꽤 시선을 끌었다. - P-1

거기에는 이런 댓글이 달려 있었다.
「시집와.」 - P-1

「늘 댓글을 달아주셔서 고맙습니다. ㅇㅇ(출연 배우의 이름)이에요. 댁이 어디신가요? - P-1

(실제 주소이므로 가림)」"집이 아니었어요. 신사였어요. 그것도 시골에 있는 꽤 오래된 신사. 거리 뷰로 봤더니 야트막한 산에 있는 신사 같았어요. 산기슭으로 난 차도 옆길로 낡은 도리이1가 서 있고, 거기서 산 위 본전(本殿)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뻗어 있었죠. 본전도 황폐해서 폐허나 다름없었고요." - P-1

몇 년 만에 긴키 지방에 눈이 내린 그날, 소녀는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 P-1

즉, 골목 입구부터 집까지 고작 수십 미터 사이에 K양은 사라져 버린 것이다. - P-1

K양은 조금 더 주택가를 걸어야 집이 나오는 Y양, E양과 헤어지고 홀로 골목에 들어섰다. 골목 입구에서 K양의 집까지는 40미터밖에 되지 않지만, 그날 K양이 현관문을 여는 일은 없었다. - P-1

K양의 집을 포함하여 주위에 있는 집의 실내나 마당에 누군가 침입한 흔적이 없는 점, K양이 실종된 오후 4시 무렵에 주택가를 오가는 사람이 많았음에도 목격자가전혀 없다는 점으로 미루어 현대의 가미가쿠시2 아니냐며 방송에서 떠들썩하게 다루기도 했다. - P-1

1984년 2월, 나라현에 사는 8세 소녀 K양이 하굣길에 행방불명되고, 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발견되지 않고 있는 이 사건. 본지 애독자라면 머릿속에 바로 떠오를것이다. - P-1

그러고 얼마 뒤에 동네 파출소에 K양을 찾는 포스터가 붙어 있는 걸 봤습니다. 이름이랑 옷도 똑같았고요. 이런 이상한 이야기, 누구한테 해봐야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아서 잡지사에 연락했습니다.

애는 웃고 있었습니다. 만면에 웃음을 짓는다고 하죠? 활짝 웃는 얼굴로 눈만 위로 치뜨면서요. 그 표정이 정말이지 무서워서 무릎이 덜덜 떨렸습니다. 그래도 기를쓰고 "집은 어디야? 이름은 뭐야?" 하고 물으니까 그 표정 그대로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K는 있지, 신부가 됐어."

"안타깝지만 K양은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시 대상이 죽었다면 사진 속 인물이 희미하게 보여야 하는데, K양은 희미하게 흐려지지도 않습니다. 이런일은 처음이어서 놀랍네요. K양은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집안사람이 저지른 범행으로 추리하는 취재 경쟁을 견디다 못해 K양의 친족이 사건 발생 두 달 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도 사건을 더욱 인상 깊게 만들었다.

M씨에 관해 한 가지 더 언급할 할 점이 있다. M씨가 근무하던 시공 관리 회사는 주로 댐의 관리를 맡고 있는데, 거기에는어 있다. 그리고 관리 기사인 M씨가 1월부터 파견 나가 있던 곳이 바로 그에 있는댐도 포함되● 댐이다. M씨가 자살했을 때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보도에서는 친족으로만 밝히고 K양의 행방불명에 얽힌 비극의 단면으로 언급하는 선에 그쳤는데, 자살한 친족은 K양의 친삼촌뻘에 해당하는 M씨다.

제 기억에 슬슬 고개에 접어들던 때였습니다. 여자애가 있었어요. 책가방을 메고 분홍색 스웨터를 입은 여자애가요. 국도 가장자리에서 길을 등진 채 서 있었습니다.

자살한 친족은 K양의 친삼촌뻘에 해당하는 M씨다.
그러고 얼마 뒤에 동네 파출소에 K양을 찾는 포스터가 붙어 있는 걸 봤습니다. 이름이랑 옷도 똑같았고요. 이런 이상한 이야기, 누구한테 해봐야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아서 잡지사에 연락했습니다.

밤에일대에서 K양을 보았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증언을 들어보면 대체로 목격자가 K양에게 말을 걸지 않고 도망치거나, 목격자가 말을 걸기 전에 K양쪽에서 먼저 사라져 버린다.

일단 M씨는 K양 가족과 함께 살지는 않았다. 나라현 소재의 시공 관리 회사에 다니며 직장에 딸린 독신자 기숙사에서 지냈고, K양 가족과는 몇 개월에 한 번 가족끼리 만날 때 보는 정도였다. K양이 실종되기 3주 전쯤에 K양의 집에 초대받아 저녁 식사를 함께하기는 했지만, 평소에 특별히 친하게 지냈던 사이는 아니었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무분별한 일부 매체의 취재에 속을 썩다 자살했다고 하지만, 관계자에게 확보한 증언에 따르면 사정이 전혀 달랐다.

무크라는 명칭이 낯선 이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무크란 잡지(MAGAZINE)와 책(BOOK)을 합한 명칭이고, 별책 등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정기적으로 나오는 잡지가 아니라 단발에 그치는 잡지, 편의점 판매용 서적 같은 게 여기에 해당한다. 내가 배속된 무크 편집부에서도 지역 한정의 식도락 잡지, 인기 아이돌 특집 잡지 등장르를 가리지 않고 폭넓게 작업을 했다.

나는 어떤 사람을 찾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 사람에 관한 정보가 있다면 누구라도 부디 연락을 주었으면 좋겠다.

‘어느 장소, 엄밀히는 ‘여러 지역에 걸쳐 있는 어느 일대. 그것은 이 책의 제목대로 긴키 지방에 있다.

실종된 지인, 세노 지히로와 나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였다.
이 책을 만드는 데는 프리랜서 편집자이자 작가인 그녀의 힘에 기댄 바가 크다.
내가 왜 제멋대로 구는지를 설명하려면 세노와 나의 관계를 비롯하여 내 이야기를 많이 할 수밖에 없다.

나, 오자와 유야는 도쿄의 한 출판사에서 편집 일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이 책에 실린 글은 내가 일하는 출판사에서 과거에 발행했던 잡지를 중심으로 다양한 매체에서 발췌한 것이다. 그리고 그 대부분이 ‘어느 장소‘와 관련이 있다.

이유는 오컬트 애호가나 호러 애호가 중에 아직도 열광적인 고정 팬이 있기 때문이다. 부수가 적다고는 해도, 간행하면 크게 실패하지도 않는다. 예산 조정이나 편집부마다 부과된 출판 점수를 맞추기에 편리한 프로젝트였기에 지금까지 별책으로서 근근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딱히 음식에 까다로운 편은 아니어서요."
그 말이 인상적이었다.

제가 다니던 사립중학교는 2학년이 되면 숲속 학교 같은 데 며칠 묵으면서 야외 활동을 해요. 선배들은 오카야마 쪽으로 갔다던데 저희부터는 장소가 바뀌어서에 있는 휴양소라고 하나요? 암튼 그런 곳으로 가게 됐어요. 아, 아시네요. 뉴스에 자주 나오긴 했죠.

긴키의 명문 사립 중학교는 2002년에 수련회 집단 히스테리 사건이 보도되며 전국에 이름을 알렸다. 학생을 비롯해 많은 목격자가 증언한 내용은 상식적으로 믿기 힘든 것이었다.

그 건물은 정문 현관은 국도 쪽에 면해 열려 있었지만, 저희가 자는 방은 산에 면한 안쪽에 있었어요.

이건 아마 우리 학교 애들밖에 모를 텐데, 그 일이 있고 나서 그 반장 여자애가 조금 이상해졌어요.

귀를 기울여 보니까 확실히 숲 안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오는 거예요.
ㅁ"01-01-."
도움을 요청하는 느낌이 아니라 누군가를 부르는 것처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소리가 들렸어요. 아마 남자 목소리였을 거예요.
그런데 좀 나대는 성미의 다른 반 남자애가 까분답시고 "어이, 어이!" 대꾸하는 거예요. 그랬더니 또 그쪽에서 똑같이 "어ㅡ이", 대답하고요. 거기다 대고 그 남자애는 계속 어ㅡ이, 어ㅡ이, 외치면서 친구들이랑 낄낄 웃더라니까요.

"어쩐지 가까이 온 거 같지 않아?"
그러고 보니 처음엔 들리는 둥 마는 둥 하던 소리가 이제는 확실히 들리는 거예요. 하지만 빛이라고는 방 안의 전등불뿐이어서 베란다에서 보이는 숲은 고작 몇 미터가 다였어요. 근데 직감적으로는 낮이었으면 확실하게 보일 거리까지 뭔가가 다가온 게 느껴졌어요.

"무슨 일 있어요?"
ㅁ그 애는 다른 반 반장이었는데, 학생회에도 입후보해서 저도 얼굴을 알았어요. 걔라면 아마 놀리려고 그런 게 아니라 정말 무슨 일인지 확인하려는 목적이었을 거예요.

나중에 학교에서 이 사건에 대해 설명회가 열려서 저희 엄마도 가셨는데요, 수상한 사람이 있던 흔적은 없었대요. 또 하굣길에 기자나 뭐 그런 사람들이 이런저런 질문을 해도 대답하지 말라고도 들었고요.

"이리오렴 여기로 와 감이 있단다."
또렷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어요.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하나. 영혼이 없달까? 진짜 무슨 국어책 읽는 그런 느낌 있잖아요. 덧붙이자면 말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 소리를 내는 느낌? 사람 흉내를 내는 동물이 말하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잠시 불빛이 숲속을 이리저리 비췄는데, 한순간 무언가 보였어요.
지금도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람 아니었을까요?
전신이 보인 건 아니에요. 불빛에 발치만 보였거든요. 이상하리만치 희고 큰 발, 신발도 안 신은 맨발이었어요.

수업 중에 갑자기 일어나서 산에 가고 싶다고 막 소리를 질렀다나요. 그러다 학교도 점점 안 나오게 되었고, 몇 달 지나 죽고 말았어요. 선생님이 확실하게 설명은 안해주셨는데, 자살했다나 봐요. 빈소에 갔다 온 걔네 반 애 말로는 관이 완전히 닫혀 있어서 얼굴도 못 봤다고 해요.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도시를 떠나 아이를 키우기 위해 이주해 온 가족이 대부분으로 낮이면 공원에 엄마들이 어린아이를 데리고 모이거나 이웃을 방문해 차를 마시는 등, 입주와 더불어 일찌감치 엄마들의 공동체가 여기저기서 형성되었다.

딸이 조금 이상해졌다.
전에도 떼를 쓰는 일은 있었지만, 그 아파트로 이사하고 나서는 양상이 조금 달랐다. 기르는 고양이의 꼬리를 일부러 짓밟거나 슈퍼마켓 신선 식품 매장의 토마토를꽉 쥐어 으스러뜨리는 등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행동이 두드러졌다. 그 자리에서 야단치면 일단 고분고분 말은 듣지만, 조금 지나면 다시 똑같은 장난을 치는 바람에A씨는 골치가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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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비행 ㅣ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18
생 텍쥐페리 지음, 배영란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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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비행』 ― 승리라는 무거운 짐, 그리고 돌아오지 못한 사람

생텍쥐페리의 『야간 비행』을 읽고

(앞서 그림책으로 읽고 남긴 글에 이어, 이번에는 원작을 끝까지 읽은 감상을 적는다.)

1. 그림책에서 원작으로, 달라진 리비에르의 얼굴

처음 『야간 비행』을 접한 것은 그림책을 통해서였다. 밤하늘을 가르는 항공기, 악천후 속에서도 임무를 수행하려는 조종사, 그리고 그들에게 엄격한 규율을 요구하는 책임자 리비에르. 이야기는 비교적 단순하게 다가왔다. 인간의 도전정신을 그린 작품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조직의 목표를 위해 사람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지도자의 이야기처럼 보였다.

그때 내가 주목했던 것은 리비에르의 냉혹함이었다. 야간 항공우편이라는 새로운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조종사들에게 위험한 비행을 요구하는 모습이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도전과 발전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사람의 목숨보다 앞설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작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정확히 말하면, 생명의 가치에 대한 내 생각이 바뀐 것은 아니다. 달라진 것은 리비에르라는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그림책에서는 쉽게 지나쳤던 그의 고뇌와 외로움, 인간적인 연민, 그리고 자신이 추구하는 일의 의미에 대한 깊은 질문들이 원작 곳곳에 숨어 있었다. 그는 단순히 성과를 위해 부하를 몰아붙이는 냉혹한 관리자는 아니었다. 자신이 내린 결정 때문에 누군가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을 계속 걸어가려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그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이유로 그의 모든 판단에 동의하게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수록, 책임자의 결정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2. 늙은 기술자의 자부심, 그리고 리비에르의 냉혹함

리비에르는 나이 든 직원을 해고한다. 그 노인은 아르헨티나 노선 항공기의 최초 조립에 참여했다는 자부심을 지닌 사람이었다. 자신이 몸담은 항공사업의 시작을 함께했고, 오랜 세월 그 일을 해왔다는 사실은 그에게 단순한 경력 이상의 의미였을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잡역부로 일하라는 요구가 내려진다. 노인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처음에는 이 장면을 조직의 규율을 위해 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냉혹한 결정으로 읽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노인이 거부한 것은 단순히 다른 종류의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에게는 기술자로서 살아온 세월과 자부심이 있었다. 자신이 평생 바쳐온 일에서 밀려나는 것도 서러운데, 이제는 그 일과 무관한 일을 맡으라는 요구가 얼마나 가혹하게 느껴졌을까.

물론 항공기 정비처럼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업무에는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 안전에 필요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경험이 아무리 풍부하더라도 업무를 조정해야 할 수 있다. 다만 이 노인에게 어떤 구체적인 문제가 있었고, 그것이 직무 변경과 해고를 불가피하게 만들었는지는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만으로 능력이 부족해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령 업무를 바꿔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하더라도, 위험한 업무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과 그 사람의 존엄까지 지켜주지 못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평생 쌓아온 경험을 후배들에게 전수하게 하거나, 기술자로서의 자부심을 살릴 다른 역할을 찾을 수는 없었을까. 당시 조직의 여건에서 그런 선택이 가능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책임자라면 적어도 고민해 볼 만한 문제다.

리비에르에게 연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해고당한 노인의 얼굴과 손을 떠올린다. 해고를 취소한다면 그가 얼마나 기뻐할지 상상하고, 이미 작성한 공문을 찢어버릴까 망설인다. 그 역시 인간적인 온정과 우정 속에서 살아가고 싶어 한다.

그런데도 결국 조직의 규율을 선택한다.

나는 이 장면에서 리비에르의 모순을 본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일을 통해 삶의 의미를 얻는다고 믿었다. 그러나 자신이 이룩하려는 항공사업의 역사에 오랜 세월을 바친 노인이 지켜온 자부심 앞에서는 조직의 질서를 우선했다. 그 노인에게도 자신이 지켜온 세계가 있었다. 리비에르가 자신의 세계를 지키려 했듯, 노인 역시 자신의 세계를 지키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리비에르 자신도 언젠가는 늙지 않겠는가.

오늘은 자신이 다른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고 해고를 결정하지만, 언젠가는 자신도 누군가에게 평가받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지금은 누구보다 명석하고 강인하다고 믿어도 세월 앞에서는 예외일 수 없다.

나 역시 어느덧 오십을 넘겼다. 젊었을 때와 똑같은 체력과 판단력을 평생 유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랫동안 쌓아온 경험이 어느 순간 새로운 기술과 시대의 변화 앞에서 충분하지 않게 느껴지는 날도 올지 모른다. 그때 누군가가 내게 이제 예전만큼 일을 잘하지 못하니 다른 일을 하라고 한다면, 나는 어떤 마음이 들까.

리비에르는 과연 자신이 그 노인의 처지가 되었을 때도 같은 판단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조직에는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기준을 적용하는 사람 역시 세월 앞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오늘 누군가에게 내린 판단이 내일 자신의 운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조금 더 신중하고 인간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을 이끄는 지도자가 정말 위대하려면, 강한 사람을 더 강하게 만드는 능력뿐 아니라 약해져 가는 사람의 존엄을 지켜주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리비에르의 고뇌를 이해한다. 그러나 고뇌했다고 해서 모든 결정이 옳다고 생각되는 것은 아니다.

3. 밤하늘의 조종사와 지상의 책임자

폭풍 속에서 길을 잃은 파비앵은 사방이 막히고 시야가 사라진 상황을 알리며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다. 이 장면에서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조종사의 용기가 아니라 그의 절박함이었다.

리비에르는 조종사들이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고 믿었다. 미지의 세계에 맞서고, 어둠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신념은 당시 항공 개척의 시대정신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과 위험을 통제하는 것은 다르다. 아무리 용감한 조종사라도 보이지 않는 폭풍을 의지만으로 없앨 수는 없다.

그런데 원작을 읽으며 리비에르에 대한 또 하나의 선입견이 깨졌다. 그는 조종사에게 무조건 용감하라고 명령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파비앵의 구조 요청을 놓치지 않도록 2,000km 이내의 모든 무선국에 지시를 내리고, 연락이 잡히면 30초 안에 보고받아 대피할 수 있는 장소를 알려주려 했다.

그 역시 파비앵을 살리려 애쓰고 있었다. 이 장면에서 리비에르는 냉혹한 명령권자가 아니라, 자신이 보낸 조종사를 어떻게든 돌아오게 하려는 책임자로 보였다.

그렇지만 구조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이 처음의 운항 판단까지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위험이 발생한 뒤 얼마나 열심히 대응했는가와 그 위험을 사전에 얼마나 신중하게 판단했는가는 서로 다른 문제다.

나는 오랫동안 도로와 교량의 설계와 공사 현장에서 일했다. 공사에는 언제나 일정과 예산, 품질과 안전이라는 여러 과제가 뒤따른다. 그 가운데 어느 하나도 가볍게 다룰 수 없지만, 사람의 생명과 맞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하천을 횡단하는 가교의 복공판 철거 시점을 두고 고민했던 일이 있다. 집중호우가 예보된 상황에서 나는 안전을 위해 철거를 서둘러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하루라도 더 작업하기를 원했다. 감리단과 시공사의 의견을 듣고 여러 상황을 고려한 끝에, 하루만 더 작업한 뒤 철거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다행히 비는 예보보다 늦게 내렸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내 결정이 옳았다는 증거로 삼지 않는다. 운이 따랐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그 결정에는 분명 내 책임이 있었다. 감리단과 시공사의 의견을 반영했지만, 최종적으로 판단한 사람은 나였기 때문이다. 만약 예보대로 집중호우가 쏟아졌다면 어땠을까. 그때도 나는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었다는 이유로 내 결정을 정당화할 수 있었을까.

그 경험을 떠올리면 리비에르의 고뇌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책임자는 때로 불완전한 정보 속에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결과가 좋았다고 해서 그 결정이 반드시 옳았던 것도 아니며, 결과가 나빴다고 해서 모든 판단이 잘못이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중요한 것은 결정을 내리던 당시 무엇을 알고 있었고, 어떤 위험을 검토했으며, 사람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어떤 선택을 했는가이다.

4. 다리 하나가 사람의 목숨보다 값질 수 있는가

작품에는 교량 건설 현장의 엔지니어가 리비에르에게 던지는 질문이 나온다. 다리 하나가 한 사람의 으깨진 얼굴만큼 가치가 있느냐는 물음이다.

도로와 교량을 만들어 온 내게 이 질문은 특별하게 다가왔다.

다리는 강을 건너기 위해 놓는다. 도로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지역과 지역을 이어주기 위해 만든다. 그것이 가져오는 편익은 분명 크다. 수많은 사람이 더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고, 지역의 삶도 달라진다.

그러나 그 모든 편익을 합친다 해도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한 사람의 목숨을 희생시켜도 좋다는 결론에 이를 수는 없다.

리비에르는 인간의 생명이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하더라도, 우리는 언제나 그보다 더 값진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이 질문은 쉽게 답할 수 없다. 실제로 인간은 자유와 정의, 사랑과 신념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걸기도 한다. 생명을 보존하는 것만이 인간이 살아가는 유일한 목적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반드시 구별해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는 것과,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를 위해 다른 사람에게 위험을 감수하도록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조종사가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고 위험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지휘자의 안전에 대한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발전을 위해 누군가의 생명이 희생되는 일을 단순히 불가피한 죽음이라고만 부르고 싶지 않다. 위험을 알면서도 충분한 예방 조치 없이 사람을 내보낸 결정이 있었다면, 그 죽음에는 누군가의 선택과 책임이 개입되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를 생각할 때 때로 ‘죽음’보다 ‘죽임’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물론 비극이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 누군가가 고의로 사람을 죽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불가피한 희생’이나 ‘발전을 위한 대가’라는 말이 인간의 결정과 책임을 가리는 데 쓰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발전은 죽임을 정당화할 수 없다.

이것은 내가 『야간 비행』을 끝까지 읽고도 바꾸지 않은 생각이다.

5. 결혼한 지 6주,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동료들

파비앵의 실종이 현실로 다가오자 로비노는 리비에르에게 그가 결혼한 지 겨우 6주밖에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리비에르는 일을 계속하라고 대답한다.

참으로 냉정한 장면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 대답을 단순한 무정함으로만 읽지 않는다. 리비에르가 파비앵의 처지를 모르거나 그의 아내를 불쌍히 여기지 않아서 그런 말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슬픔에 압도되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의 대답일 수도 있다.

그는 가능한 구조 조치를 취하고, 경찰에 신고하고, 이제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상황에 이른다. 그러면서도 남아 있는 항공우편 업무가 중단되지 않도록 지시한다.

작품은 죽은 자의 집에서도 질서는 유지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말이 얼마나 비정하면서도 현실적인가. 누군가에게는 삶 전체가 무너지는 비극이지만, 세상의 일은 계속된다. 비행기는 다시 떠나고, 우편물은 다른 항공기로 옮겨지며,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파비앵의 동료들이 그의 실종을 확인하는 장면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들은 많은 말을 나누지 않는다. 깊은 동지애에는 말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 침묵이 오히려 긴 애도보다 더 슬프게 느껴졌다.

사람은 조직에서 하나의 직책을 맡고, 하나의 업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그 직책과 업무가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다. 파비앵은 조종사이면서 누군가의 남편이고, 동료이며, 저마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한 인간이다.

업무는 다른 사람이 이어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삶까지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조직은 한 사람의 빈자리를 메우며 계속 움직일 수 있지만, 그 사람을 사랑했던 이들의 빈자리까지 메워줄 수는 없다.

6. 1931년의 승리, 그리고 그 무거운 짐

리비에르는 인간이 영원히 살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해온 일과 소중한 추억들이 갑자기 의미를 잃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한다. 파비앵이 사라진 뒤, 그가 일궈놓은 세계는 바람 없는 바다에 멈춰 선 고장 난 범선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움직이던 항공기와 무전, 명령과 보고가 어느 순간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그에게 죽음은 생명이 끝나는 사건인 동시에, 삶을 지탱하던 의미와 움직임이 사라지는 경험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다시 생각한다. 목적은 아무것도 정당화하지 못할 수 있지만, 행위는 인간을 죽음으로부터 해방시켜준다고.

이 구절을 읽으며 나는 생텍쥐페리가 말하려는 바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인간은 결과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를 만들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자신이 맡은 역할을 다하는 과정에서 살아 있음을 느낀다. 언젠가 모든 것이 끝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리비에르가 지키려 했던 것은 단순히 항공우편 사업의 성공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인간이 두려움과 상실 앞에서도 다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을 지키려 했던 것은 아닐까.

『야간 비행』은 1931년에 발표되었다. 항공기가 오늘날처럼 안전한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기 전, 인간이 밤하늘과 악천후에 맞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던 시대의 작품이다. 그 시대의 조종사들에게 비행은 단순한 직업 이상의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개척자였고, 위험에 맞서는 용기와 사명감은 중요한 가치로 받아들여졌다. 생텍쥐페리 자신도 항공우편 조종사로서 그 세계를 경험했으니, 리비에르의 신념과 조종사들의 용기를 깊이 이해하고 작품 속에 담아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그 시대를 오늘날의 안전관리 기준만으로 평가한다면 작품의 중요한 의미를 놓칠 수 있다. 그러나 시대를 이해하는 것과 그 시대의 모든 판단을 정당화하는 것은 다르다. 당시에도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한 질문은 존재했다. 교량 건설 현장의 엔지니어가 던진 물음이 바로 그 증거다.

그리고 마침내 소설의 마지막에서 생텍쥐페리는 리비에르를 위대한 승리자라고 부른다. 다만 그가 짊어진 승리는 무거운 짐이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다. 파비앵은 돌아오지 않았는데, 어째서 리비에르가 승리자란 말인가. 그러나 이제는 그 승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조금은 알겠다. 그것은 한 번의 비행에 성공했다는 뜻이 아니다. 인간이 실패와 상실, 두려움과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에 가까울 것이다. 리비에르는 파비앵을 잃었을지도 모르는 고통을 안고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다음 비행을 준비하고, 조직의 움직임을 이어간다. 그에게는 그것이 삶을 지키는 방식이다.

나는 그런 리비에르의 강인함을 존중한다. 그의 고독과 책임감도 이해한다. 그러나 행위가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사실이 그 행위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희생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계속해야 하는 이유가 인간의 삶에 있다면, 그 일을 계속하는 방식 역시 인간의 삶을 존중해야 한다.

그래서 그가 승리자라는 작가의 선언을 아무런 의문 없이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다. 그의 승리에는 파비앵의 실종이라는 무거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앞으로 나아가는 의지가 위대하다면, 그 과정에서 사라진 한 사람의 삶 역시 그만큼 무겁게 다뤄져야 한다.

같은 밤을 두고 누군가는 승리를 말하지만,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리비에르에게 그날 밤은 패배를 딛고 다시 일어서는 순간일지 몰라도, 파비앵의 아내에게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 밤이다. 한 사람의 승리가 다른 사람의 상실을 없애주지는 못한다.

패배를 딛고 다시 출발하는 용기는 존중할 만하다. 그러나 그 출발이 또 다른 파비앵을 만들지 않도록 하는 책임까지 다할 때, 그 승리는 더욱 온전해질 것이다.

7. 우리가 완수해야 할 진정한 임무

『야간 비행』을 덮고 나니 리비에르에 대한 생각은 달라졌지만, 사람의 생명을 대하는 나의 기준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인간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믿음은 소중하다. 새로운 길을 열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도전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는 의지는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하지만 그 모든 도전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도로와 교량을 만드는 일을 오래 해온 나는 이 소설을 덮으며 다시 한번 생각한다. 우리가 길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리를 놓고 터널을 뚫는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 사람이 더 안전하고 편리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 길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람의 생명을 가볍게 여긴다면, 우리는 목적과 수단을 뒤바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상에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러나 그 일을 반드시 지금, 반드시 이 방법으로 해야 하는지는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리비에르는 앞으로 나아가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것이 그가 믿는 용기였고, 생텍쥐페리가 그에게 부여한 위대함이었다.

나는 거기에 또 다른 용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멈추지 않는 것만이 용기는 아니다. 멈춰야 할 때 멈출 줄 아는 것도 용기다.

이것은 도전을 포기하자는 말이 아니다. 더 오래,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해 사람을 지키자는 말이다.

나는 앞으로도 어떤 일을 추진할 때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만 묻지 않고,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이 어떤 위험을 감당해야 하는지도 함께 묻고 싶다. 현장의 우려가 단순한 나약함으로 취급되지 않도록 귀를 기울이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일정과 성과보다 안전을 먼저 판단하는 책임자가 되고 싶다.

또한 지금은 능력이 부족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그가 오랜 세월 쌓아온 경험과 자부심을 함부로 가볍게 여기지 않으려 한다. 언젠가 나 역시 누군가의 배려가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생텍쥐페리는 패배 속에서도 다시 하늘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위대함을 그렸다. 나는 그 이야기를 읽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와 함께 살아서 돌아오는 일의 중요성을 생각했다.

그 비행을 시작한 사람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까지가 우리가 완수해야 할 임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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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 Antoine Marie Roger De Saint Exupery

■생애와 연보

1900년
6월 29일, 프랑스의 리옹에서 백작인 아버지 장 마리 드 생텍쥐페리와 프로방스 지역 명문가 집안 출신 어머니 마리 브와이에 드 퐁스콜롬브 사이에서 2남 3녀 중 셋째로 출생. 위로는 마리-마들렌(1897년 출생), 시몬(1898년 출생)이 태어났으며, 아래로는 프랑수아와 가브리엘이 태어남. 귀족 출신 집안에서 다섯 형제 자매들과 풍족한 생활을 보냄.

1904년
부친인 장 드 생-텍쥐페리, 열차 사고로 사망. 유년시절은 숙모의 저택인 생 모리스 드레망에서 보냄.

1909년(9세)
가족과 함께 르망으로 이사, 10월에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생 크루아 학교에 입학.

1912년(12세)
앙베리외 비행장에서 유명한 베르린과 우연한 기회에 비행기를 처음 타 보게 됨. 키엘뵈프 선생에게 처음으로 바이올린 교습을 받음.

1914년(14세)
동생 프랑수아와 함께 빌프랑슈 쉬르 손 시의 몽그레 중학교 입학. 그러나 첫 학기가 끝나자, 다시 스위스의 프리브루에 있는, 마리아니스트 수도회에서 경영하는 중고등학교로 전학해 이곳에서 1917년까지 수학함.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어머니는 앙베리외 역에서 부상병 간호에 종사함.

1917년(17세)
대학 입학 자격시험에 합격함. 여름에 동생 프랑수아 사망, 이 사건은 비극적인 결말로 장식된 <어린 왕자>의 모티브가 됨. 10월, 파리의 보쉬에 고등학교로 전학. 후에는 해군사관학교 입학 준비를 위해 루이 르 그랑 고등학교에서 공부함.

1919년(19세)
해군사관학교 입학시험에서 필기는 합격했으나 구술시험에서 낙방함. 생 루이 고등학교를 거쳐 미술학교 건축과 입학.

1921년(21세)
4월, 군에 입대. 스트라스부르 제2전투기 연대 배속. 6월, 모로코 라바트의 제37비행 연대에 배속. 병역을 마치고 그곳에서 조종사 자격증 취득함.

1922년(22세)
1월, 남프랑스의 이스토르로 견습 조종사로 파견됨 . 육군항공대 조종병이 되고 하사로 진급. 예비사관 후보생으로 아보르에 가서 예비 소위로 임관.

1923년(23세)
부르제의 제33비행 연대에 배속됨. 그러나 비행장에서 최초의 사고를 당하여 두개골 골절. 3월, 예비역 중위로 제대.(공군에 머무르려고 했으나 약혼녀 쪽의 반대로 이루지 못함.) 곧 약혼 취소. 부르통 타일 제조 회사의 제품 검사원으로 일하면서 시와 소설 습작에 몰두함.

1924년(24세)
소렐 자동차 회사에 입사. 2개월 연수 뒤에 몽뤼송 지역의 대표 판매원 됨. 18개월 동안에 판 차는 트럭 한 대가 전부였고, 주로 글 쓰는 일에 전념함.

1925년(25세)
사촌 누이 이본 드 레트랑주의 살롱에서 장 프레보, 지드 등을 알게 됨. 장 프레보는 잡지 <은선(銀船)> 지의 편집장으로 생텍쥐페리가 작품을 발표하는데 많은 도움을 줌.

1926년(26세)
<은선> 지 4월호에 단편소설 <비행사> 발표. 이는 그의 처녀작인 <남방 우편기>의 초고가 됨. 봄에 자동차 회사에 사표를 내고 프랑스 항공 회사에 입사함. 10월, 보쉬에 고등학교의 스승인 쉬두르 신부가 추천해 줌으로써 라테코에르가 설립한 항공 회사의 총지배인 레포 드 마시미를 알게 됨. 함께 일할 것을 권유받음. 그 무렵은 디디에 도라를 중심으로 정기 항공로가 개발되고 있을 때였고, 그는 조종사로 일할 것을 원했지만, 정비사로 채용됨.

1927년(27세)
툴루즈-카사블랑카 간, 다카르-카사블랑카 간 정기 항공기편의 조종사로 우편비행 담당함. 10월, 중간 기착지인 스페인령 사하라 쥐비 곶의 비행장 책임자로 임명되어 파견 근무. 18개월 동안 스페인 및 불귀순 무어인과의 외교적 임무 수행과 동료 비행사들의 비행사고 구조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함. <남방 우편기> 집필.

1929년(29세)
3월에 <남방 우편기> 원고를 가지고 귀국함. 사촌 누이의 살롱에서 알게 된 작가들을 통해 출판사와 연결됨. 이때 인연을 맺은 출판사 사장 가스통 갈리마르와 7편의 소설 계약. <남방 우편기> 출간. 동료 메르모와 기요메에게서 함께 일하자는 요청을 받고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감. 여기서 아르헨티나의 아에로포스탈 항공 회사 지배인 직책 맡음. <야간 비행> 집필 시작.

1930년(30세)
6월 13일, 안데스 산맥에서 행방불명된 가장 친한 동료 기요메를 찾기 위해 5일간 수색 비행. 쥐비에서의 공로로 레종 도뇌르 훈장 받음. 11월, 친구 소개로 훗날 그의 아내가 된 스페인 여성 콘수엘로 순신과 알게 됨. <야간 비행> 시나리오 썼으나 상연되지는 못함.

1931년(31세)
앙드레 지드의 서문을 붙여 <야간 비행> 출간. 3월, 콘수엘로 순신과 결혼. 5월, 카사블랑카, 포르에티엔 간을 야간 비행하여 프랑스와 남미를 연결하는 항로 개척. 12월, <야간 비행>으로 페미나 문학상 수상. <야간 비행> 영역판으로 출간되는 한편, 미국에서 영화로 만들어짐.

1933년(33세)
전 항공사가 통폐합 되면서 <에어 프랑스> 항공 회사 창립. 이 회사에 입사하지 못하고 라테코에르 비행기 제조 회사의 시험 비행사로 근무. 11월, 상 라파엘 만에서 수상 비행기 시험 비행 중 두 번째 사고를 당함.

1934년(34세)
4월, <에어 프랑스>에 입사. 유럽의 여러 나라뿐만 아니라 북아프리카 등으로 다니며 연수 및 강연 여행을 함. 7월, 사이공으로 출장 비행을 하다가 메콩 강 하류에 불시착, 부상당함. 이 무렵 에딩턴, 존스 등과 같은 과학자의 저서를 읽음. 착륙 장치를 개발하여 특허를 받는 등 그 후에도 발명을 계속하여 12개의 특허를 받음.

1935년(35세)
4월, <파리 스와르> 지의 특파원으로 모스크바에 파견되어 1개월간 체류하면서 르포 기사 연재함. 후에 <인생의 의미>로 출간됨. 12월, 기관사 프레보와 함께 파리와 사이공 간의 비행 기록 경신 수립을 위해 장거리 비행 시도, 리비아 사막에 불시착. 닷새 동안의 고투 끝에 한 대상(隊商)에 의해 기적적으로 구조됨.(이때의 체험이 <인간의 대지>와 <어머니께 보내는 글>에 기술됨.)

1936년(36세)
알렉산드리아로 돌아온 그는 8월, 스페인 내전을 취재하기 위해 <랭트랑지장> 지 특파원으로 바르셀로나에 파견. 동료 메르모가 남대서양에서 순직함.

1937년(37세)
<파리 스와르> 지 특파원으로 마드리드에 파견되어 에스파냐 내란 취재. 9월, ‘시문’ 기로 뉴욕에서 아메리카 남단, 태르 드 푸에고 섬 간의 비행 항로 개척. <마리안> 지에 <아르헨티나의 왕녀> 발표함.

1938년(38세)
2월 15일, 뉴욕과 남미 대륙 최남단까지의 장거리 시험 비행 도중 과테말라 공항에서 이륙 중에 속도 상실로 추락, 수일 동안 의식 불명이 될 정도로 중상을 당함. 3월, 귀국 후 스위스와 남프랑스 등지에서 요양. <인간의 대지> 집필. 아내와 별거 시작. 7월, 뉴욕으로 건너가 영문 번역자에게 <인간의 대지> 원고 제1부 넘김.

1939년(39세)
1월, 프랑스 국민훈장 수여. 2월,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인간의 대지> 출간. 4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소설대상 수상. 미국에서는 <바람과 모래와 별들>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되었고, 뉴욕에서는 ‘이 달의 양서’로 선정됨. 뉴욕에서 다시 귀국,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다시 대위로 소집되어, 오르콩트 2-33 정찰 비행단에 배속. 전투 조종사로 복무하면서 <어린 왕자> 초안 집필.

1940년(40세)
5월 22일, 아라스 지구 정찰 비행. 6월 20일, 보르도에서 알제리까지 기재를 수송하는 임무 수행. 8월 5일, 동원 해제. 마르세유로 돌아와 아게에서 <성채> 집필 시작. 11월 27일, 친구 앙리 기요메가 비행기에서 격추당하여 사망.

1941년(41세)
1월, 뉴욕에 도착해 정착함. 캘리포니아에서 외과수술 받음. 프랑스인의 분열에 대해 고뇌하면서 <전시 조종사> 집필.

1942년(42세)
2월 12일, <전시 조종사>가 <아라스 지구 비행>이라는 제목으로 뉴욕에서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됨. 독일 점령 당국에서 판매금지 조치함. 5월, 캐나다로 강연 여행. 11월 6일, 연합군의 북아프리카 상륙작전 성공으로, 다시 알제리의 2-33 비행단에 단 5회만 출격한다는 조건으로 복귀함. <프랑스인에게 고한다>라는 글을 써서 발표함으로써 프랑스인의 단결 호소. 11월, <전시 조종사> 파리에서 출판됨.

1943년(43세)
2월, <어느 볼모에게 보내는 편지> 뉴욕에서 출간. 4월, <어린 왕자> 출간. 5월, 알제리 우지다 기지에서 미군 사령관 휘하의 2-33 정찰 비행대에 복귀, 라이트닝 P38형기에 배속됨. 6월, 소령으로 승진. 7월, 조국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사진 촬영 정찰 비행으로 출격했다가 아게 상공에서 착륙에 실패하는 등 두 번의 사고 당함. 8월, 이것을 빌미로 미군 당국은 연령 제한을 들어(35세) 그를 예비역으로 편입시킴. 원대 복귀를 기다리며 우울한 나날 속에서 <성채> 집필.

1944년(44세)
5월, 원대 복귀가 실현되어, 제31폭격 비행대대 사령관 샤생 대령이 그의 부대 배속을 승인함. 2-33 정찰대대에 복귀. 6월과 7월 사이에 9차례에 걸친 프랑스 본토를 고공 촬영하기 위해 정찰 비행. 7월 31일 오전 8시 30분, 코르시카 섬 보르고 기지를 휘발유 6시간 분량으로 이륙. 오후 2시 30분, 그가 몰고 떠난 라이트닝 P38형기 행방불명됨. 독일 전투기에 의해 지중해에서 격추된 것으로 추측. 11월 3일, 프랑스 정부 수훈장 추서. 1935년부터 씌어진 작가 수첩 <사색 노트> 출간.

이 외에도 파리의 NRF 출판사에서 펴낸 <성채>와 1923년부터 1931년까지 쓴 서한집 <젊은이에게 보내는 편지>, <어머니에게 보내는 글>이 출판되었는데 <어머니에게 보내는 글>은 생텍쥐페리의 사후에 그의 어머니 J. M. de Saint Exupery가 서문을 달아 출판했음. 1940년부터 1944년까지 집필한 수상집 <인생의 의미>가 유고집으로 출간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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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안 보였어요. 물론 더 나갔다면 아마도……. 무선전신에서 그렇게 알려 왔지만, 하지만 계기판 램프가 너무 희미해 제 손조차 보이지 않았는걸요. 날개라도 보려고 현등을 켜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보이질 않더군요. 마치 빠져나오기도 힘든 커다란 구멍 깊숙한 곳에 놓여 있는 것 같았어요. 그때 엔진이 진동하기 시작했죠." - P-1

‘내 부하 중 가장 용감한 친구야, 그는. 그날 밤 그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비행을 잘했기 때문이야. 정말 훌륭했어. 하지만……. 나는 그를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어야 해.’ - P-1

‘사랑받으려면, 동정심을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나는 결코 동정하지 않는다. 아니면 이를 숨기거나. 하지만 나 역시 인간으로서의 온정이나 우정 같은 것에 둘러싸여 살고 싶다. 의사는 간혹 온정이나 우정이 발휘될 수 있는 직업이다. 하지만 나는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내가 저들을 잘 훈련시켜야 어떤 상황에 처하든 제대로 대처할 수 있게 된다. 저녁때, 여기 내 사무실에 항공지도를 펴놓고, 혼자 앉아서 비행 보고서를 읽고 있으면, 이 막연한 법칙이 느껴진다. 내가 긴장을 풀고, 또 잘 조율된 일들이 그저 흐름에 따라가도록 내버려두면, 신기하게도 꼭 사건이 터지고 만다. 항공기가 운항 중에 부서지거나 혹은 가고 있는 우편기가 폭풍으로 인해 지연되거나 하는 것이 오로지 내 의지 하나에 달려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가끔은 내가 가진 힘에 나 스스로도 놀랄 때가 있다.’ - P-1

‘나는 그를 두려움에서 구해준 거다. 나는 그를 공격했던 게 아니었다. 그를 통해, 미지의 세계 앞에서 사람들을 무력하게 만드는 그 방해요소를 공격한 것이었다. 내가 그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고, 그에게 동정심을 보여줬다면, 그리고 그가 겪은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줬다면, 아마도 그는 자신이 미지의 세계에서 돌아온 것이라고 여길 것이고, 사람들은 오직 이 미지의 세계만을 두려워하게 된다. 사람들은 이 어두컴컴한 우물 속으로 내려가 봐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다시 위로 올라와 자신은 아무것도 마주친 게 없었다고 얘기해야 한다. 이 친구는 어둠이 짙게 깔린 밤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내려가야 하며, 손이나 날개만을 비추어줄 광부용 소형 램프 하나 없이도 딱 벌어진 어깨로 미지의 세계를 헤치고 나와야 한다.’ - P-1

"코모도로 알림. 귀항 불가능함. 폭풍."
그는 안데스 산맥의 코르디예라 산계에서 바다 쪽으로 별안간 방향을 바꾸었던 이 범상치 않은 폭풍의 공세를 가늠해보기 시작했다. 태풍은 그가 닿기도 전에 마을 전체를 완전히 휩쓸어버릴 것이다. - P-1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이렇게 보고하게. ‘사방이 꽉 막혔음. 1,000km 앞에서 폭풍 전진, 가시( ╉ )거리 제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려주기 바람.’" - P-1

지도 상에는 연락이 두절된 지역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다. 소도시들에는 이미 태풍이 불어 닥친 상태였고, 모든 문이 닫혔으며 거리마다 각각의 집들은 불빛 하나 없이 세상과 동떨어진 채 밤바다에서 길을 잃은 선박 신세였다. 이들을 해방시켜 줄 건 오로지 새벽뿐이었다. - P-1

2,000km 내의 모든 무선국에, 혹 비행기에서 구원을 요청하는 무전이 잡히면, 30초 안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 통보하라고 지시해둔 상태였다. 그러면 파비앵에게 대피할 만한 곳의 위치 정보를 전달해 줄 수 있을 것이다. - P-1

별들은 여전히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환하게 비춰주고 있지만 이는 한순간의 오아시스에 불과했다. 뿐만 아니라, 그 오아시스는 파비앵이 아무리 손을 뻗쳐도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었다. 악의를 품은 바람이 건드려서 더럽히는 위협적인 밤이었다. 정복하기 힘든 밤이었다. - P-1

언젠가 교량 건설 현장 부근에서 엔지니어 하나가 리비에르에게 이런 말을 건넸었다.
"이 다리가 한 사람의 으깨진 얼굴만큼의 값어치가 있는 겁니까?"
이 길을 이용하는 농부들 중에는, 다음 다리로 돌아가는 수고를 덜기 위해 다른 사람의 얼굴을 이처럼 끔찍하게 만들어도 좋다고 생각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다리를 건축하고 있다. 엔지니어는 덧붙여 이렇게 말했다.
"공익이라는 건 개개인의 이익으로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정당화해주지 못합니다." - P-1

"하지만 인간의 삶이 그 값을 따질 수가 없을 만큼 값어치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항상 인간의 생명보다 더 값진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 않던가. 그게 뭐란 말인가?" - P-1

파비앵은 운명에 맡기기로 결심했다. 충돌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아무 데나 착륙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최소한 야산과의 충돌만은 피하기 위해 그는 하나밖에 없는 조명탄을 쏘았다. 조명탄은 불꽃을 터뜨리고 뱅뱅 돈 뒤 어느 평원을 비추고는 꺼졌다. 그곳은 바다였다. - P-1

그 순간 그는 생각했다. ‘다 틀렸다. 40도나 오차를 잡아놓고 비행했는데도 편류하고 말았어. 이건 태풍이다. 육지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지? - P-1

별이 보여주는 지표 덕분에 파비앵은 소용돌이를 보다 잘 견제하며 올라갈 수 있었다. 희미한 별빛은 그를 자석처럼 끌어당겼다. 빛을 찾으려고 너무도 오랫동안 고생을 한 터라 이제는 아무리 희미한 빛이라도 놓치지 않을 생각이었다. 희미한 여관 불빛 하나로도 풍족했던 그는 자신이 그토록 갈망했던 이 빛의 신호 주위를 죽을 때까지 뱅글뱅글 돌았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그는 빛의 영역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것이었다.

구름 사이로 솟아오름과 동시에 비행기는 단번에 놀라울 정도의 평정 상태를 되찾았다. 기체(機體)를 출렁이게 하는 그 어떤 파동도 없었다. 둑을 지나는 거룻배처럼 그는 저수지로 들어갔다. 파비앵은 축복 받은 섬들의 만처럼 하늘 어딘가에 숨어 있는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간 셈이었다. 비행기 아래에서는 돌풍과 폭우, 번개를 동반한 폭풍이 두께 3,000m의 다른 세상을 이루고 있었지만, 그 사나운 폭풍도 별들이 있는 쪽에서는 수정처럼 맑고 백설같이 빛나는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폭풍권의 3,800m 상공에 갇힘. 바다 위쪽에서 표류하다가 내륙을 향해 정서(正西)로 비행 중. 아래쪽은 완전히 봉쇄되었음. 지금도 바다 위인지 확실치 않음. 폭풍권이 내륙까지 확장되었는지 통보 바람."

"제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저는 아직 받아들일 수가 없네요. 정말 힘들게 하는 건 아주 사소한 것들이에요. 우연히 눈에 띄는 아이의 옷가지며, 한밤중에 잠이 깨었을 때 가슴속에 끓어오르는 아이에 대한 애정 같은 거요. 아이에게 더 이상 물릴 수가 없어 쓸모가 없어진 제 젖처럼, 아이에 대한 애정 또한 부질없기는 마찬가지인데 말이에요……."

‘우리는 영원하길 바라는 게 아니다. 이런저런 행동들이, 누군가와의 추억이 서려 있는 이런저런 것들이, 갑자기 그 의미를 잃어가는 걸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빈 공간이 모습을 드러내고 마니까…….’
리비에르의 시선이 다시 전보를 향했다.
‘지금 우리에게서는 여기 이 전보를 통해 죽음이 스며드는 것이겠지. 이 전보들은 이제 아무 의미가 없어져 버렸으니까…….’

삶이 굴러가는 속도가 느려졌다. 리비에르는 생각했다. ‘죽음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그가 일궈놓은 세계는 이제 한 대의 고장 난 범선처럼 느껴졌다. 바람 한 점 없는 바다 위에서 고장이 난 범선 같았다.

로비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본부장님…… 그 부부는 결혼한 지 6주밖에 안 됐습니다."
"일이나 계속하게."

‘아마 목적은 아무것도 정당화해주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행위는 죽음으로부터 해방시켜준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배가 있었던 덕에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전보 하나하나에 의미가 가득 담기고, 야근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걱정거리를 던져주며 조종사에게 비장한 목표를 부여해줄 때, 리비에르 역시 죽음과 맞서 싸워나갈 것이다. 바람이 바다에서 선박 하나에 다시 힘을 실어주듯 그 자신이 일궈가는 이 세계에서 삶이 다시 소생하게 된다면, 리비에르는 다시 죽음과 맞서 싸워나갈 것이다.

자신의 사무실에서 리비에르는 오직 엄청난 재앙이 있고 난 후에만, 그렇게 운명의 덫이 이제 사람을 풀어놓아 주었을 때에나 느껴지는 이완의 느낌을 맛보았다. 그는 전 지역 경찰서에 신고를 해놓았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죽은 자의 집에서도 질서는 유지되어야 하는 법이다. 리비에느는 로비노에게 손짓을 했다.
"북부 지역 기항지들에 통보하게. ‘파타고니아 노선 우편기가 상당히 연착될 것으로 예상됨. 유럽행 우편물이 지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파타고니아 우편물을 다음 편 유럽행 우편기 편으로 보내겠음.’이라고 말이네."

"파타고니아 우편기는 도착했나?"
"기다리지 않기로 했네. 실종됐어. 날씨는 좋은가?"
"날씨는 매우 좋다네. 그럼 파비앵이 사라졌다는 건가?"
그들은 파비앵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깊은 동지애는 말이 필요 없는 것이었다.

"조심하게! 밤이니까 말이야……."
그에게 동료의 충고가 들릴 리 없었다. 두 손을 호주머니에 찔러 넣고, 고개를 뒤로 젖힌 채 구름과 산들, 강물과 바다를 향해 웃기 시작했다. 조용한 웃음이었지만, 그의 얼굴에 퍼지는 희미한 웃음은 마치 산들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는 짜릿함을 느꼈다. 희미한 웃음이었지만 구름과 산들, 강물과 바다보다도 훨씬 더 강한 웃음이었다.
"왜 그러나?"
"그 바보 같은 리비에르가 글쎄…… 내가 겁먹은 줄 알고 있더라니까!"

승리, 패배……. 이런 단어들은 죄다 부질없는 것이다. 삶은 이런 이미지들을 초월하여 이미 다른 새로운 이미지들을 준비하고 있다. 승리는 한 나라를 나약하게 만들지만 패배는 그 나라를 새로 태어나게 만든다. 리비에르가 맛본 패배는 진정한 승리를 위해 한 번쯤 겪어야 하는 예정된 절차였는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오직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이다.
5분 후에 무선사는 기항지들에 경보를 발할 것이다. 그리고 15,000km에 걸쳐 힘차게 약동하는 삶의 맥박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다.
이미 비행기라는 오르간 선율이 하늘 속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리비에르는 완강한 시선으로 직원들을 굽어보며 그 사이를 지나 천천히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리비에르는 위대했다. 그는 승리라는 무거운 짐을 이고 가는 승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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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로비노 자네를 자네의 위치에 바로 놓아주겠네. 만약 자네가 지쳐 있을 때, 자네의 기운을 북돋워줄 사람은 그 부하직원들이 아닐세. 자네는 상사야. 자네의 나약함은 웃음거리밖에 안 되네. 자 쓰게나……." - P-1

"쓰게나. ‘감독관 로비노는 펠르랭 조종사에게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상의 처벌을 부과한다…….’ 그에 해당하는 이유와 처벌을 찾는 건 자네 몫이네."
"본부장님!"
"내 말대로 하게, 로비노. 부하 직원들을 아껴주게. 하지만 내색을 하진 말게." - P-1

하지만 일단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면, 리비에르에게 밤은 여전히 감동적이고 아름다웠다. 밤은 그 은밀한 곳에 생명을 잉태하고 있었고, 리비에르는 그 생명을 지키는 수호자였다.
"날씨가 어떤가?"
그는 무선사로 하여금 승무원에게 묻도록 했다. 10초 후 답신이 왔다. - P-1

그러나 무선사는 그 얼굴에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조종사가 폭풍우를 헤쳐 나가기 위해 결집시킨 그 모든 감정들, 꽉 다문 입술, 결단력, 노여움 등, 이 창백한 얼굴과 번쩍번쩍하는 짧은 섬광 사이에서 본질로써 주고받는 모든 것들을 무선사는 꿰뚫어볼 수가 없었다. - P-1

무선사는 어쨌거나 비행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은 조종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무선사는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말의 엉덩이에 걸터앉아 이 시커먼 형체가 저기, 자신의 앞에서 물질적으로, 부담스럽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표현해내는 것을 음미하고 있었다. - P-1

두대의 우편기가 비행 중인 상황에서, 전화 한 통화가 얼마나 위협이 되는지 아는가? 리비에르는 언젠가 저녁불빛 아래서 전보를 통해 소식을 전해 듣고 충격에 휩싸인 가족들의 생각이 떠올랐다 - P-1

리비에르는 밤의 무게를 함께 지고 있는 이 남자에게서 깊은 우애를 느꼈다. 그리고 생각했다. ‘전우 같은 친구군. 이렇게 함께 새는 이 밤이 우리 둘을 얼마나 하나로 긴밀히 엮어주고 있는지 저 친구는 아마 모르겠지.’ - P-1

‘고작 이러려고 그동안 그렇게 일을 해댄 건 아니었잖아. 이제 내 나이 쉰인데. 오십 년이란 세월을 나는 꽉꽉 채우며 살아왔다. 나 스스로를 단련하고, 세상과 사투를 벌여오며 일의 흐름을 바꿔놓기도 했었지. 이제 와서 이 따위 통증에 신경을 쓰면서 더 중요한 것들을 하찮게 여기려 하다니……. 정말 우습군!’ - P-1

‘나의 처사는 공정한가, 부당한가?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호되게 밀어붙이면 고장은 분명 줄어든다. 모든 사람을 다스리지 못하면 결코 우리 손이 닿을 수 없는 미지의 힘 같은 게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만일 내가 너무 공정하게 대했다면, 야간 비행은 번번이 목숨을 건 여행이 되었을 것이다.’ - P-1

‘지금 내가 매몰차게 해고시킨 것은 이 노인이 아니다. 그에게는 책임이 없지만 그를 통해 나타나는 골칫거리를 베어버린 거야. 사람은 일을 지휘하고 일은 순순히 그 지휘에 응해오며, 또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는 법이지. 사람은 또한 완벽하지 못한 존재라서 그릇된 일도 만들어내기 마련이야. 불행이 그러한 사람들을 통해 일어날 때에는 그 사람들을 멀리 배척해야 하는 거야.’ - P-1

‘나도 이 나이 먹은 친구의 얼굴을 좋아했는데…….’
그러자 그의 늙은 손이 다시 눈앞에 보였다. 그는 합장을 할 채비를 하고 있던 두 손의 미약한 움직임을 생각했다. ‘좋아, 됐네. 남게.’ 이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그는 나이 먹은 이 친구의 늙어버린 손 위로 흘러내릴 눈물을 상상했다. 그리고 리비에르는 얼굴이 아닌 바로 이 늙은 두 손이 보여주게 될 그 기쁨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울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이 공문을 찢어버릴까?’ 집에 가면 그는 조심스럽게 위신을 세울 것이다. - P-1

‘무슨 일에서든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즉시 뿌리 뽑지 않는다면 여기저기서 잇달아 고장이 나겠지. 잘못이 저질러진 원인을 발견하고도 그것을 눈감아 준다는 것은 범죄행위야. 역시 로블레는 내보내야 해.’

‘이런저런 일들이 점차 우위를 점하며 흐름을 장악한다는 게 참으로 신기하다. 처녀림을 뒤흔들어 놓고, 점점 이를 키워 강해지게 만든 뒤 도처에 엄청나게 큰 힘을 솟아나게 하는, 무언가 미지의 강력한 힘이 숨겨져 있는 것 같다.’
리비에르는 큰 성당을 무너뜨리는 것이, 벽에 붙어 있는 조그마한 담쟁이 덩굴이라는 것을 생각했다.

‘나는 이 사람들을 모두 사랑한다. 내가 싸우는 대상은 이들이 아니다. 나는 다만 이들 배후에 있는 악과 싸우는 것이다.’

‘삶은 모순이다. 무척이나 심한……. 그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헤쳐 나가야 한다. 하지만 견뎌야 한다. 창조해내야 한다. 자신의 덧없는 육신을 통째로 맞바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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