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물로 세수를 하고 나니 정신이 조금 맑아졌다.

사야마가 대놓고 얼굴을 찌푸렸다. 쇼타의 아버지를 알고 있는 사야마로서는 거부감이 드는 것이다.

"공부만 할 줄 알지 상대방 마음을 헤아리는 법은 배우지 못했나 봐"

영양사 전문학교에 다니는 아야카 입장에서는 유명 대학에 다니는 쇼타의 말과 행동이 거슬렸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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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초 베키오가 지어지기 전에는 팔라초 바르젤로를 정부 청사로썼습니다. 지금 팔라초 바르젤로는 조각 박물관이 되었습니다만 이전에는 오랫동안 경찰서와 감옥으로, 범죄자들을 처형하던 곳으로사용되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성 같은 육중한 건물에 종탑이올라가 있어 팔라초 베키오와 비슷해 보입니다. - P228

피렌체 정치를 책임지던 상공인들은 이 정도 규모의 정부 청사에 만족하지 못했을 거예요. 피렌체의 번영과 자신들의 정치적 위치를 확실히 알릴 수 있는 보다 웅장한 건물을 갖고 싶었을 겁니다.
결국 그걸 모두 담은 팔라초 베키오를 짓게 된 거죠. - P229

르네상스의 본고장이라 할 만한 피렌체는 11세기부터 상공업으로 부를 축적하였고, 상공인들의 조합인  길드를 중심으로 오랫동안 공화정을 유지했다. 피렌체 사람들은물질적으로 풍요롭고 구성원들의 균등한 기회가 보장되는 환경에 자부심을 느꼈다.
그런 자부심은 피렌체의 각종 거대한 건축물에 잘 드러난다. - P235

르네상스 근대의 시작으로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가 부활한 시대. 피렌체에서 본격적으로 시작.
피렌체의 역사적 배경 고대 로마 때 퇴역군인들의 거주지로 만들어졌다가 11세기부터본격적으로 발전. - P235

피렌체의 공화정 
다른 도시국가들에 비해 오랫동안 공화정을 유지. 귀족 출신이 아니라 상공인들의 조합인 길드를 중심으로 의사가 결정됨. - P235

모든 새로운 시작은 다른 시작의 끝에서 온다.
-세네카 - P236

1300년을 앞두고 유럽에서 가장 거대한 대성당 공사를 시작한 뒤곧바로 시청사까지 지어 나갔던 때가 바로 피렌체의 번영이 절정에 이른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이때 이후 피렌체는 점점 위기에 빠져듭니다. - P237

무엇보다도 흑사병으로 입은 피해가 엄청났습니다. 피렌체 인구의60% 가까이 죽었다고 하니 거의 도시가 붕괴된 수준입니다. 이때피의 반란까지 일어나 극심한 내분이 이어졌습니다. 게다가 외부에서는 밀라노의 비스콘티 가문이 북부 이탈리아를 제패하면서피렌체를 강하게 위협했어요.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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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주요 법령을 정비하면서 "공직에 나가 국가 운영에 참여하려면 반드시 길드에 소속되어야 한다"는 조항이들어갑니다. 원래 피렌체에서 경제활동을 하려면 반드시 길드에가입해야 했는데, 이 시기부터는 정치 활동에도 길드 가입이 필수가 된 거죠. 귀족 출신이었던 단테도 공직에 나가기 위해 길드에 들어가야 했을 정도니까요. 결국 길드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할 수 없었던 겁니다. - P206

중세 피렌체의 경제 축
첫 번째는 지중해 중계무역입니다. - P206

두 번째는 섬유 산업입니다. - P207

세 번째는 앞서 주목했던 은행업입니다. - P207

당시 이탈리아 은행가들은 자기 앞에 조그만 테이블을 놓고 손님을 상대했는데, 테이블은 중세 이탈리아어로 ‘방카(Banca)‘라고 합니다. 은행을 뜻하는 영어 단어 ‘뱅크(Bank)‘는 여기서 유래한 말이죠. 또 은행이 파산할 때 이 테이블을 부숴버렸다고 해서 ‘뱅크럽트(Bankrupt, 이탈리아어 Banca rotta)‘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 P207

중세 피렌체의 번영을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건축물이 바로 피렌체의 대성당입니다. 정식명칭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인데간단하게 두오모라 부르죠. 아래 사진을 보세요. 도시에 대한 피렌체 사람들의 자부심을 담아내듯 웅장한 모습을 자랑합니다. - P209

자부심이 강해질수록 탑은 높아진다 
화가로 명성이 높았던 조토는 건축과 토목 기술에도 능했습니다.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피렌체 형 인재의 원형이었다고 할 수 있죠. - P216

앞서 피렌체의 경제적 번영과 길드의 역할을 이야기했었죠? 사실피렌체를 이야기할 때 경제가 중요하긴 합니다만 역시 정치를 빼놓으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습니다. 피렌체는 공화국이었습니다. 시민들은 자신들이 국가를 책임진다는 점에서 큰 자부심을 느꼈어요.
피렌체의 공화제를 말할 때 반드시 언급해야 할 인물이 있습니다. - P221

브루니가 산타 크로체 성당에 묻혀 있기 때문이죠. 산타 크로체 성당은 피렌체인의 명예의전당이라고 할 수 있는 곳입니다. 미켈란젤로나 갈릴레오도 이성당에 묻혀 있고요, 묻힌 곳만 보면 브루니는 당시 피렌체 사람들에게 미켈란젤로나 갈릴레오만큼 중요한 사람이었던 거죠 - P222

무엇보다도 브루니의 책에 따르면 피렌체인들은 피렌체가 공화국이었다는 사실에큰 자부심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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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좀 더 흐르면 전혀 다른 양상이 찾아와요. 흑사병 직후에는작품의 질이 후퇴하지만 점차 미술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엄청나게 확대되는 시기, 즉 르네상스가 도래하는 거죠. - P175

미술을 저렴하게 만들다 
흑사병은 미술을 좀 더 대중과 가깝게 했습니다. 이전에는 귀족이나 고위 성직자, 그리고 성공한 상공인들처럼 부유한 사람들만 살수 있는 비싼 그림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중산층이 구입할 수 있는비교적 저렴한 그림도 많이 그려지게 되지요. - P175

개인적으로 웬만한 사고나 사건은 역사의 큰 줄기를 바꿀 수 없다고생각합니다만, 흑사병만큼은 역사의 흐름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데에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변화들을 고스란히 겪어야 했던 유럽인들의 심정이 어땠을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지요. 그런데 많은 도시국가들 중에서도 흑사병을유독 힘들게 보낸 지역이 있습니다. 바로 르네상스 문화의 시작을보여줄 도시, 이탈리아 피렌체입니다. - P177

전쟁에는 엄청난 돈이 필요합니다. 전쟁자금이 필요했던 영국 국왕은 막대한 돈을 피렌체 은행에서 빌려갔습니다. 그런데 결국 빚을 감당할 수 없었던 영국 국왕이 빌려간 돈을 못 갚아요. 그 여파로돈을 빌려줬던 바르디 가문과 페루치 가문이 파산했습니다. - P178

‘피‘는 무슨 뜻인가요?
촘피는 하급 노동자, 그중에서도양모를 손질하는 기술자를 가리킵니다. 즉 이런 기술자들이 지금의촘피광장 주변에 모여 살았기에 촘피란 이름이 광장에 붙여진거지요. - P183

역사적으로 그런 평가를 받습니다. 이들의 반란은 일단 성공해서촘피는 4년 동안 피렌체를 지배합니다. 결국은 내분으로 인해 무너지게 되죠. 하지만 촘피의 난은 역사상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반란,
노동자 혁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근대 자본주의 역사의한 획을 그은 사건이 피렌체에서 벌어진 겁니다. 어떻게 보면 피렌체에는 이미 이때부터 상업화와 함께 산업화도 상당히 진행되어 있었던 거죠. - P184

1347 년 유럽을 덮친 흑사병은 유럽 인구의 절반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으며 사람들의삶의 모습까지 바꿔놓았다. 그러나 한편 줄어든 인구는 집값의 하락과 임금 상승을불러와 미술의 대중화를 불러오기도 했다. - P186

피렌체는 1315년부터 대기근을 겪음. 1337년 영국과 프랑스 간 백년전쟁이 발발하자 피렌체 은행들이 줄줄이 파산함. 그러한 상황에서 흑사병이 창궐하고 촘피의 난과밀라노의 위협까지 덮침. 1400년대에 이르러 혼란이 정리되기 시작하자 도시 재생사업을 벌임.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바로 르네상스가 됨. - P187

피렌체를 관통해 흐르는 아르노강은 때때로 범람하기도 했으나 피렌체 사람들에게 풍부한 물 자원을 제공했으며 지중해로 나아가는 창구가 되어주었다. 아르노강줄기를 따라 피렌체 사람들은 기꺼이 새 시대를 향해 나아갈 것을 택했다. 사람들은 지금도 강 위에 세워진 다리들을 건너며 찬란했던 과거의 순간들을 기억한다.
- 아르노강, 이탈리아 피렌체 - P192

피렌체의 모든 것들은 붉은 포도주처럼 부드러운 보라색으로채색되어 있는 듯합니다.
- 헨리제임스, 1869년의 편지에서 - P194

앞서 스탕달이 미술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병에 걸렸다는 이야기를했지요? 사실 스탕달 신드롬은 ‘피렌체 신드롬‘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스탕달이 미술품들을 열정적으로 감상했던 곳이 피렌체였거든요. - P195

피렌체의 전경 
‘아르노강의 아테네‘라고 불리는 피렌체는 14세기에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춘다.
이 도시를 배경으로 조토부터 미켈란젤로까지 쟁쟁한 미술가들의 이야기가 동화같이 펼쳐진다. - P196

강 하나를 두고 피렌체와 피사가 결투를 벌인 셈이네요.
꼭 고구려, 백제,신라가 한강을 놓고 싸웠던 것과 비슷하죠. 어떤사람들은 피렌체를 ‘아르노강의 아테네‘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고대 문명의 중심이 아테네였다면 르네상스 문명의 중심에는 피렌체가 있다는 뜻을 담아서 말입니다.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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遊漢拏山
2월의 마지막날 눈 다 녹기전 한라산에 가자.
지인 3명과 다녀오다.
한라산은 거기 그대로 서 있었다.
고도 1,000이 넘으니 눈이 있고 길이 얼어 아이젠을 착용한다.
좀 일찍 2월초에 설국이었을때 왔어야됐는데.
탐방로 예약이 꽉 차 있어 마지막날자로(2.28) 겨우 네자리, 관음사 코스로 예약. 막차 탔다.
날이 너무 좋아(사실 더웠다, 성판악 쪽 등로는 눈이 녹아 질퍽거렸다) 어려움없이 상쾌한 산행이었다.
일행중 5백넘는 산은 첨 오른다는 사람이 있어 내심 걱정했으나 다행이 별 탈없이 산행을 마쳤다.
영산이라 그런지 산객이 많았다. 젊은 처자들도 많이 보인다. 백록담 정상석 인증 줄이 100미터도 넘는다. 사진 찍기에 방해되지 않게 옆에 서 있다 잽싸게 찍고 빠진다.
관음사코스로 올라 성판악으로 내려오다 사라오름 찍고 마무리.
연휴가 끼어 제주공항엔 人山人海.
올핸 신년산행을 못했는데 한라산행으로 대신.
그동안 찍었던 백록담 사진 네컷 올려본다.

심경호 선생의 山文記行
동양 고전의 권위자 심경호 교수가 엄선한
조선시대 유산기遊山記의 정수

전국 48개 산에 대한 선인들의 기록
이이(청학산-오대산), 허목, 정약용, 채제공, 이산해, 주세붕, 허균, 김종직, 이곡, 남효온, 김만중, 유몽인 등 이름 석자를(두 자인 분도 있다)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올려 누구나 다 알고있는 쟁쟁한 분들의 유산기가 실려있다.

한라산에 대한 유산기는 총 3편
1. 林悌 南溟小乘 중 한라산부분 발췌
2. 李衡祥 地誌 중 한라산부분 발췌
3. 崔益鉉 遊漢拏山記

최익현의 유한라산기는 중고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어 아마 가장 유명한 기록이라 생각된다.

1873년(고종 10년) 대원군을 탄핵하다 제주에 유배되었고 1875년 사면되었다.
1875년 3월 27일. 제주 선비 이기남의 인도로 어른 10 명 종자 6명과 함께 탐라계곡을 거쳐, 삼각봉, 백록담 북벽으로 정상을 오른 후 남벽으로 내려와 선작지왓에서 1박 노숙한 뒤 영실로 하산했다.
현재의 관음사코스로 올라 남벽, 윗세오름을 거쳐 영실로 내려온 듯

p.523
이른 새벽에 일어나 종자에게 날씨를 보라고 했더니, 알리는 말이 어제 초저녁과 같거나 오히려 심한 편이라고 했다. 그냥 돌아가 머물러 후일을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는 자가 열에 일고여덟이었다. 나는 억지로 홍조, 술 한 잔을 마시고 국 한 모금을 들이키고는, 끝내 여러 사람의 의사를 어기고 말을 채찍질해 앞으로 나아갔다. 돌길이 꽤 험하고 좁았다. 5리쯤 가자 큰 언덕이 있는데, 중산이라고 했다. 관원들이 산을 오를적에 말을 묶어 두고 가마로 갈아타는 곳이다.
갑자기 검은 구름이 풀어져 걷히고 햇빛이 새어 나와 내리쪼여 바다 경치와 산 모양이 차례로 드러났다. 그래서 이성(二成)의 곳으로 말을 돌려보내고, 옷차림을 가벼이 하고 짚신을신고는 지팡이를 짚으며 걸음을 내디뎠다. 주인 윤규환은 다리가 아파 물러나겠다고 청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생선 두름처럼 일렬로 내 뒤를 따랐다.

p.525
이렇게 6~7리를 나아가 비로소 상봉이 보이는데, 흙과 돌이 섞여 있고 평평하지도 비탈지지도 않으며, 원만하고 풍후한 봉우리가  이마 위 가까이 있었다. 초목이 나지 않고 푸른 이끼와 담쟁이 넝쿨만 돌의 표면을 덮고 있어서 앉거나 눕거나 할 만했다. 높고 밝으며 넓게 확  트여 정말로 해와 달을 옆에 끼고 비바람을 몰고 갈 만해, 의연히 티끌 세상을 잊고 속세의 먼지에서 벗어난 생각이 들었다.
얼마 후 검은 안개가 한바탕 몰려와 냅다 치달려서 주위를 깜깜하게 만들며, 서쪽에서 동쪽으로 산등성이를 휘감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괴이하게 여겼지만 이곳까지 와서 한라산의 진면목을 보지 못한다면 흙을 한 삼태기  더 붓지 않아 구인(九仞)의 높은 산을 이루지  못하는 꼴이 될 것이므로 섬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굳게 먹고 곧장 수백 보를 앞으로 나아가서 북쪽가의 오목한 곳에 이르러 굽어 바라보았더니,  가장 높은 봉우리가 여기에 이르러 갑자기 중앙이 터져 움푹 내려가 구덩이를 이루고 있다. 바로 이른 바 백록담이다. 둘레가 1리를 넘고 정지한 수면은 담담하며, 반은물이고 반은 얼음이다. 홍수나 가뭄에도 불거나 줄지 않으며, 얕은 곳은 가랑이만 걷으면 되고 깊은 곳은 무릎까지 걷어 올려야 했다.

p.526
석벽에 매달려 내려가서 백록담을 따라 남쪽으로 가다가 털썩 주저앉아 잠깐 휴식을 취했다.  일행은 모두 지쳐서 남은 힘이 없었지만 서쪽을 향해 있는 가장 높은 봉우리가 절정이기에조금씩 나아가 숨을 몰아쉬면서 올라가니, 따라오는 자는 세 사람뿐이다. 평평하게 퍼지고  널찍이 트여 시선이 그리 어질어질하지 않지만 위로는 별과 아주 가깝고 아래로는 인간 세상을 굽어보고 좌로는 부상(扶桑, 동방의 나무)을 돌아보고 우로는 서양을 접하며, 남으로는 소주, 항주를 가리키고 북으로는 내륙을 끌어당기며, 옹기종기 널려 있는 섬들은 큰 것은 구름 조각만 하고 작은 것은 달걀만 해서 놀랍고 괴이할 정도로 천태만상이다.

p.527
20리쯤 내려오니 이미 황혼이었다.
내가 ˝듣건대 여기서 인가까지는 매우 멀다고  하고 밤공기도 그리 차지 않으니, 도중에 길에서 자빠져 지쳐 버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잠시  노숙하고서 내일 일을 홀가분하게 하는 것이  어떠한가?˝라고 하자, 일행이 모두 ˝좋습니다.˝ 했다. 마침내 바위에 의지해서 나무를 걸치고 불을 피워 따뜻하게 한 후에 한바탕 얼풋  잠을 자고 깨어 보니 하늘이 벌써 새어 있었다. 밥을 먹고는 천천히 걸어 나아가는데 어젯밤 이슬이 미처 마르지 않아서 옷과 버선이 다 젖었다. 얼마 가지 않아 다시 길을 잃어 이리저리 방황했는데 그 고달픔은 구곡양장(태황산 산길)과 십구당(양자강 상류의 험한 협곡)을 가는 정도보다 훨씬 더했다. 그러나 아래로 내려가는 형세라서 어제에 비하면 평지나 다름 없었다.

p.528
10리를 가서 영실에 이르자 높은 정상과 깊은  골짜기에 우뚝우뚝 괴석이 빼곡하게 늘어서서 웅장하고 위험이 있다. 역시 모두가 부처의 형태였으며 그 수가 백이나 천 단위로는 헤아릴 수 없었다. 이는 천불암이라 이름하는데, 아무래도 이른바 오백장군이다. 산의 남쪽과 비교해 보면 이곳이 더 기이하고 웅장하다. 산 밑에는 시내가 흘러나와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데, 길가에 있기 때문에 매우 얕고 퍽 드러나 있다. 가시덤불을 헤치고 앉아 얼마쯤 쉬다가  이윽고 출발해 20리를 가서 서쪽 계곡의 입구로 나오자, 감영의 군졸들이 말을 끌고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인가에 들어가서 밥을 지어 요기를 하고는 어스름 저녁 그늘이 깔릴때 성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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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3-03-05 09: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장정님 멋집니다! 2023년 대운의 기운 가득^^

대장정 2023-03-05 10:46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스콧님께서도 대운이 가득하시길 바라요.

바람돌이 2023-03-05 17: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3월의 한라산은 또 그대로 멋지네요.
멋진 대장정님덕분에 멋진 한라산 사진도 보고, 최익현선생같은 분이 길에서 자빠져 자는 것보다는 같은 표현을 한 것도 알게 되고 좋네요. ^^

대장정 2023-03-05 18:2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한라산은 언제가도 멋집니다. ㅎㅎ 심경호 선생께서 번역을 잘하셔서 그런거 같아요. 자빠져 자는게 아니고 지쳐서 자빠져 있단 말 같아요. 다른분 번역한거 보면 ˝피곤해서 길거리에 쓰러지는거보다˝라고 번역된거도 있네요

대장정 2023-03-05 18:19   좋아요 0 | URL
원문 찾아보았습니다.
余曰.˝聞此距人家甚遠 夜亦不寒.
與其顚倒疲困於途中,曷若暫次露宿 使明日事爲易易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