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좀 더 흐르면 전혀 다른 양상이 찾아와요. 흑사병 직후에는작품의 질이 후퇴하지만 점차 미술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엄청나게 확대되는 시기, 즉 르네상스가 도래하는 거죠. - P175

미술을 저렴하게 만들다 
흑사병은 미술을 좀 더 대중과 가깝게 했습니다. 이전에는 귀족이나 고위 성직자, 그리고 성공한 상공인들처럼 부유한 사람들만 살수 있는 비싼 그림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중산층이 구입할 수 있는비교적 저렴한 그림도 많이 그려지게 되지요. - P175

개인적으로 웬만한 사고나 사건은 역사의 큰 줄기를 바꿀 수 없다고생각합니다만, 흑사병만큼은 역사의 흐름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데에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변화들을 고스란히 겪어야 했던 유럽인들의 심정이 어땠을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지요. 그런데 많은 도시국가들 중에서도 흑사병을유독 힘들게 보낸 지역이 있습니다. 바로 르네상스 문화의 시작을보여줄 도시, 이탈리아 피렌체입니다. - P177

전쟁에는 엄청난 돈이 필요합니다. 전쟁자금이 필요했던 영국 국왕은 막대한 돈을 피렌체 은행에서 빌려갔습니다. 그런데 결국 빚을 감당할 수 없었던 영국 국왕이 빌려간 돈을 못 갚아요. 그 여파로돈을 빌려줬던 바르디 가문과 페루치 가문이 파산했습니다. - P178

‘피‘는 무슨 뜻인가요?
촘피는 하급 노동자, 그중에서도양모를 손질하는 기술자를 가리킵니다. 즉 이런 기술자들이 지금의촘피광장 주변에 모여 살았기에 촘피란 이름이 광장에 붙여진거지요. - P183

역사적으로 그런 평가를 받습니다. 이들의 반란은 일단 성공해서촘피는 4년 동안 피렌체를 지배합니다. 결국은 내분으로 인해 무너지게 되죠. 하지만 촘피의 난은 역사상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반란,
노동자 혁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근대 자본주의 역사의한 획을 그은 사건이 피렌체에서 벌어진 겁니다. 어떻게 보면 피렌체에는 이미 이때부터 상업화와 함께 산업화도 상당히 진행되어 있었던 거죠. - P184

1347 년 유럽을 덮친 흑사병은 유럽 인구의 절반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으며 사람들의삶의 모습까지 바꿔놓았다. 그러나 한편 줄어든 인구는 집값의 하락과 임금 상승을불러와 미술의 대중화를 불러오기도 했다. - P186

피렌체는 1315년부터 대기근을 겪음. 1337년 영국과 프랑스 간 백년전쟁이 발발하자 피렌체 은행들이 줄줄이 파산함. 그러한 상황에서 흑사병이 창궐하고 촘피의 난과밀라노의 위협까지 덮침. 1400년대에 이르러 혼란이 정리되기 시작하자 도시 재생사업을 벌임.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바로 르네상스가 됨. - P187

피렌체를 관통해 흐르는 아르노강은 때때로 범람하기도 했으나 피렌체 사람들에게 풍부한 물 자원을 제공했으며 지중해로 나아가는 창구가 되어주었다. 아르노강줄기를 따라 피렌체 사람들은 기꺼이 새 시대를 향해 나아갈 것을 택했다. 사람들은 지금도 강 위에 세워진 다리들을 건너며 찬란했던 과거의 순간들을 기억한다.
- 아르노강, 이탈리아 피렌체 - P192

피렌체의 모든 것들은 붉은 포도주처럼 부드러운 보라색으로채색되어 있는 듯합니다.
- 헨리제임스, 1869년의 편지에서 - P194

앞서 스탕달이 미술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병에 걸렸다는 이야기를했지요? 사실 스탕달 신드롬은 ‘피렌체 신드롬‘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스탕달이 미술품들을 열정적으로 감상했던 곳이 피렌체였거든요. - P195

피렌체의 전경 
‘아르노강의 아테네‘라고 불리는 피렌체는 14세기에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춘다.
이 도시를 배경으로 조토부터 미켈란젤로까지 쟁쟁한 미술가들의 이야기가 동화같이 펼쳐진다. - P196

강 하나를 두고 피렌체와 피사가 결투를 벌인 셈이네요.
꼭 고구려, 백제,신라가 한강을 놓고 싸웠던 것과 비슷하죠. 어떤사람들은 피렌체를 ‘아르노강의 아테네‘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고대 문명의 중심이 아테네였다면 르네상스 문명의 중심에는 피렌체가 있다는 뜻을 담아서 말입니다.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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