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게 이 생활을 가르쳐 주지. 알고 싶으면 우리 집의 빨래너는 곳까지 오면 돼. 거기서 살짝 가르쳐 줄게. - P216

나도 이 나이가 되도록 아직 독신으로 매일매일 빈둥빈둥 놀며 지내는 통에 친척들로부터 괴짜 취급을 당하고 멸시당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내 두뇌는 어디까지나 상식적이다.
타협적이다. 통상적인 도덕을 신봉하며 살아왔다. - P232

수천만 마리 사체예요. 철새란 슬픈 새지요. 여행이 생활이니까요. 한곳에 오래 머물 수 없는 숙명을 지고 있습니다. 전, 이걸 일원 묘사로 해 보려고요. ‘나‘라는 젊은 철새가 그저 동쪽에서 서쪽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허둥지둥하는 사이에 늙어 버린다는 주제입니다. 동료가 하나둘씩 죽어가지요. 총에 맞기도 하고, 파도가 삼켜 버리기도 하고, 굶주리기도 하고, 병들기도 하고, 둥지가 따스해질 틈도 없는 슬픔.
거 있잖아요, 먼 바다 갈매기에게 물때를 물으면, 이라는 노래, 전, 언젠가 당신한테 유명병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뭐, 사람을 죽이거나 비행기를 타는 것보다 훨씬 수월한 방법이 있습니다. 게다가 사후의 명성이라는 부록도 딸려 있지요. 걸작을 하나 쓰면 돼요. 이거예요." - P248

나는 그만 불안해지고 말았다. 그가내게 영향을 주고 있나? 내가 그에게 영향을 주고 있나? 어느한쪽이 뱀파이어다. 어느 한쪽이 알게 모르게 상대의 기분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는 건 아닐까? - P249

"가난하면 탐을 낸다, 라는 말이 있지요." - P250

"돈이 있었으면, 돈이 필요해요. 제 몸은 썩었어요. 높은 데서 떨어지는 폭포수를 맞고 깨끗해지고 싶습니다. 그러면 당신처럼 좋은 사람과 훨씬 더 거리감 없이 사귈 수도 있고." - P252

난들, 이 집을 그저 놀려 두고 있는 게 아냐. 땅값이 지난달부터 또 조금 올랐고, 게다가 세금이니 보험료니 수리비 따위로 상당한 돈이 빠져나간다고. 남한테 폐를 끼치고서도 시치미를 뗄 수 있다면 어지간히 오만한 정신이거나, 아니면 거지 근성, 둘 중 하나야. 어리광 부리는 것도 이쯤에서 그만둬."
말을 내뱉고 일어섰다. - P254

"밤에 발톱을 깎으면 죽은 사람이 나온다지요. 이 목욕탕에서 누군가 죽었습니다. 요즘 전, 손톱발톱하고 머리카락만자라요." - P255

범부에게 그럴싸한 의미를 부여하고 꿈이라 덧씌운 채 바라보며 지내 왔을 뿐 아닌가.
준마(駿馬)는 없는가? 기린아는 없는가?  더 이상, 이러한 기대는 정말이지 딱 질렸다. 모두 모두 옛날 그대로의 그이고, 그날그날의 바람 상태에 따라 조금씩 색조가 달라 보일뿐이다 - P260

옛날 쓰가루 지방, 가나기 마을에 구와가타소스케라는 촌장이 있었다. 마흔아홉에 첫아이를 하나 얻었다. 남자아이였다. - P262

어린 시절의 신동은 이삼 년 지나 마침내 나쁜 길로 빠졌다. 언제부턴가 다로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게으름뱅이라고 불렸다. - P266

수수께끼를 좋아했다. 어느 겨울밤, 다로는 화롯가에 버릇없이 드러누운 채, 옆에 있는 소스케의 얼굴을 실눈으로 올려다보며 느릿느릿한 말투로 수수께끼를 냈다. 물속에 들어가도젖지 않는 것은 뭐게요? 소스케는 고개를 세 번쯤 흔들며 생각하더니, 모르겠네, 하고 대답했다. 다로는 께느른한 듯 눈을살포시 감고 나서 가르쳐 주었다. 그림자잖아요. 소스케는 급기야 다로를 못마땅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애가 바보 아닐까?
멍텅구리인 게 틀림없어. 마을 사람들 말대로 역시나 그냥 게으름뱅이였어. - P266

그다음은 말투다. 속내를 알 수 없게 나직이 말하자고 생각했다. 싸움 전에는 뭔가 재치 있는 대사를 해야만 하기에, 지로베는 그 대사 선택에 고심했다. 틀에 박힌 말로는 현실감이떨어진다. 이런 파격적인 대사를 골랐다. 당신, 잘못한 거 아닙니까? 농담 아닌가요? 당신의 그 코끝이 자줏빛으로 부어오르면 우스꽝스러워요. 낫는 데백일이나 걸리지요. 뭔가 잘못한 것 같습니다. 이 말을 언제든지 술술 꺼낼 수 있도록 매일밤 누워서 서른 번씩 낮게 암송했다. 또 이 말을 하는 동안 입을 삐죽거리거나 필요 이상으로 눈을 번뜩이지 않고 흡사 미소 짓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 그 연습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 P274

바위에게 속삭이네
볼을 붉히며
난 힘이 세다
바위는 대답 없네 - P280

인간 만사 거짓은 진실 - P285

사부로는 거짓의 마지막 방귀가 풍기는 참을 수없는 악취를 맡은 느낌이었다. - P287

답답하기 짝이없는 현실을 조금이라도 시원하게  만들려고 거짓말을 하지만, 거짓말은 술과마찬가지로 점점 적당량이 늘어난다. 차츰차츰 심한 거짓말을 내뱉고 절차탁마하여, 마침내 진실의 빛을 발한다. 이건 나혼자만의 경우에 해당되는 게 아닌 듯하다. 인간만사 거짓은진실. 문득 그 말이 이제 비로소 피부에 착 달라붙듯 떠올라, 쓴 웃음을 지었다. 아아, 이건 코미디의  정점이다. 오손의 뼈를정성껏 묻어 주고 나서 사부로는 오늘부터 한번 거짓 없는 생활을 해 보자고 마음 먹었다. 다들 비밀스런 범죄를 지니고 있잖아 겁먹을 건 없어. 주눅 들 건 없어. - P288

포럼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가니, 이른 아침인데도 벌써 손님 둘이 있었다. 놀랍게도, 선술 다로와 싸움 지로베 두 사람이었다. - P289

될대로되라지, 하고 입에서 튀어나오는 대로 엄청난 거짓말을 했다. 우리는 예술가다. 그런 거짓말을 하고 나니, 더욱더거짓말에 열기가 더해졌다. 우리 세 사람은 형제다. 오늘 여기서 만난 이상, 죽어도 헤어질 수 없다. 이제 곧 틀림없이 우리세상이 온다. 나는 예술가다. 선술 다로 씨의 반생과 싸움 지로베 씨의 반생, 그리고 외람되나마나의 반생, 이 세 가지 삶의 방식의 모범을 세상 사람들에게 써서 보내 주자. 뭐 어때?
거짓말 사부로의 거짓말 화염은 이쯤에서 그 극점에 달했다.
우리는 예술가다. 왕후라 한들 두렵지 않다. 금전 또한 우리에겐 나뭇잎처럼 가볍다. - P291

어떻게든 된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하루하루를 맞이해그대로 보내면서 지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아무리 애써도, 도저히 어떻게도 안 되는 경우가 있다. - P292

쓸까? 나의 갓난아기때 기억만으로도 괜찮다면, 하루에단 대여섯 줄씩만 써나가도 괜찮다면, 당신만이라도 정성껏정성껏 읽어 준다면, 좋아! 언제 완성될지도 모르는 이 쓸모없는 일의 출발을 축하하며, 당신과 둘이서 조촐하게 건배하자. 일은 그다음이야. - P295

나는 태어나서 처음 땅바닥에 섰을 때의 일을 기억한다. - P295

사물의 이름이란 그게 어울리는 이름이라면 굳이 묻지 않더라도 절로 알게 되는 법이다. 나는 내 피부로 들었다. 멍하니 물상을 응시하고 있노라면, 그 물상의 언어가 내 피부를간지럽힌다. 예를들면, 엉겅퀴, 나쁜 이름은 아무런 반응도 없다. 여러번 들어도,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던 이름도 있다. 예를 들면, 사람. - P296

지금도 여전히 내 귓불을 간질이는 할머니의 자장가 "여우시집가는데, 신랑님 없네." 그 외 말은 없느니만 못하다. (미완) - P299

"난 너와 달리, 아무래도 어수룩한가 보다. 나는 처녀가 아닌 아내를 맞아, 삼 년 동안 이 사실을 모른 채 지냈지. 이런일은 입 밖에 내지 말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네. 지금은 행복한 듯 뜨개질에 열중하는 아내에게도 참으로 딱한 일이지. 또한 세상의 수많은 부부들도 듣기 싫어하는 말일 테지. 하지만난, 말을 하겠어. 시치미 떼는 네 낯짝을 흠씬 후려갈기고 싶기 때문이야. - P305

장님 이야기
아무것도 쓰지마. 아무것도 읽지 마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 오직 살아만 있어! - P324

나는, 죽어도, 교언영색이어야만 한다. - P334

"이 물은, 너의 그릇을 따를지니." - P334

"나는 이 단편집 한 권을 위해 십 년을 허비했다. 만 십 년,
보통 시민과 마찬가지로 산뜻한 아침 식사를 하지 못했다. 나는 이 책 한 권을 위해 몸 둘 곳을 잃은 채 끊임없이 자존심에상처 입고 세상의 휘몰아치는 찬 바람을 맞으며,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다. (………) 혀를 데고 가슴을 태우고, 내 몸을 도저히 회복되기 어려울 만치 일부러 망가뜨렸다. 백 편이 넘는 소설을찢어 없앴다. 원고지 5만 매. 그리고 남은 건 겨우 이것뿐이다.
이것뿐. (……)하지만 나는 믿는다. 이 단편집 『만년』은 해가 갈수록 더욱더 선명하게 그대의 눈에, 그대의 가슴에 침투해 갈 게 틀림없음을 나는 오직 이 책 한 권을 쓰기 위해 태어났다. (……) - P335

"읽으면 재미있는 소설도 두셋 있으니, 짬 날 때 읽어 봐 주세요.
내 소설을 읽은들, 당신의 생활이 전혀 편해지지 않습니다.
전혀 훌륭해지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안 됩니다. 그러니, 나는그다지 권할 수 없습니다.
「추억」을 읽으면 재미있지 않을까요. 분명 당신은 폭소를 터뜨리겠지요. 그걸로 됐습니다. 로마네스크」도 우스꽝스러운 엉망진창으로 가득한데, 이건 좀 스산해서, 그다지 권할 수 없습니다."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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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면, 시원한 맥주를, 이라 했다. 겨울이면 따끈한 술을, 이라 했다.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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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5-31 16: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당분간 술 끊었는데 이런 문장이라니요. ㅠ.ㅠ

대장정 2022-05-31 17:30   좋아요 0 | URL
ㅠㅠ 그냥 죄송하단 말씀밖엔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ㅠㅠ
 

곽재구
현풍곽씨. 본향 대구 달성군 현풍읍, 세거인구 17만.
홍의장군 곽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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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 정지영의 ˝안나푸르나에서 밀크티를 마시다˝

읽은지 아주 오래된 책들. 정유정 소설 모아보기.

언젠가는 꼭 가야만 하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티벳

공교롭게 둘다 정씨네.
연일정씨? 본향 포항시 연일읍, 세거인구수 40 만
정몽주, 정제두, 정철, 정지용, 정수일(무함마드 깐수)
동래정씨? 본향 부산시 동래구, 세거인구수 48만
정여립, 정광필, 정창손. 정태화, 정인보, 개그맨 정형돈
정씨 인물도 많다.
30대 과거급제자 순위에 연일정씨가 없구나.
동래정씨 15위 (한영우, ˝출세의 사다리, 과거˝)

오늘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다.
‘네팔 관광지서 22명 태운 항공기 실종...수색중‘
좀솜~포카라 구간.
금요일 네팔로 떠난 우리 ***이 네팔 국내선 타신다는 구간이기에 깜짝 놀랐다.
다행히 한국인은 없다는...
독일인 2, 인도인 4명, 네팔인 13명. 총 19명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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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an 2022-05-30 07: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30대 급제자에 최씨가 없는 것도 특이합니다. 인구수로는 5위안에 들지 않나요?

대장정 2022-06-01 00:01   좋아요 2 | URL
ㅎㅎ 그러네요. 거기까지 미처 생각지 못했네요. 최씨 전체인구 230만 넘고 , 경주최씨만도 백만넘고, 전주최씨 40 만이 넘는다는데요, 정씨 241만 4위, 최씨 5위네요.^^
 

어떤 소설을 읽어도 첫 두세 줄을 대충 훑어보고서 이미 그 소설의 내막을 훤히 꿰뚫은 듯 코웃음 치며 책을 덮는 오만불손한 남자가 있었다. 여기 러시아 시인의 말이 있다. "대체 어떤 자인가? 그렇다면 겨우 흉내쟁이 보잘것없는 유령? 해럴드의 망토를 걸친 모스크바 청년.  타인의 버릇을 번안했다? 유행어 사전? 아니, 결국 패러디 가득한 시(詩) 아닌가?" - P174

우선 고쳐 써야 할 부분은 이 주인공의 직업이다. 어이쿠참, 주인공은 신인 작가다. 이렇게 고치자고 생각했다. 먼저 문호가 되려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실패, 그때의 첫번째 통신다음으로 혁명가를 꿈꾸었으나 패배, 그때 두 번째 통신. 지금은 샐러리맨이 되어 가정의 안락에 대한 의문을 품고 괴로워하는데, 그때 세 번째 통신. 이런 식으로 대략 조망해 둔다. - P178

"그는 오직 정열의 가장 정직한 배출구를 원했다.
생각하는 것보다, 노래하는 것보다 말없이 느릿느릿 실행하는쪽이 진짜인 듯 여겨졌다. 괴테보다 나폴레옹. 고리키보다 레닌." - P183

남자는 쓰기 시작한 원고지에 시선을 떨어뜨리고 잠시 생각한 다음, 제목을 ‘원숭이 얼굴을 한 젊은이‘라고 했다. 어쩔수 없을 만치 딱 어울리는 묘표다,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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