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사투리 - 서울 사람들은 이거 어떻게 읽어요? 아무튼 시리즈 70
다드래기 지음 / 위고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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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공감, 카타르시스.
삼박자 딱 딱 맞아,
기대이상, 의미, 재미 다 챙긴 시간.
2024 추석 연휴 마지막날 근사하게 마무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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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4-09-22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석연휴 마지막날이라는 문구에 확 꽂혔습니다. 연휴가 길었군요. 부러울 따름입니다. ㅎㅎ

잘잘라 2024-09-22 23:34   좋아요 1 | URL
《아무튼 사투리》 읽으면서 여러번 웃었더니 홀가분해요. 길고 길었던 연휴, 드디어 끝나서 좋아요. 후회없어요. 후련해요.
 
스토리 설계자 - 고객의 욕망을 꿰뚫는 31가지 카피라이팅 과학 스타트업의 과학 4
짐 에드워즈 지음, 신솔잎 옮김 / 윌북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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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들의 연예인? 셀럽들의 셀럽? 평소 예능 프로그램이나 유튜브 콘텐츠에 나오지 않던 게스트가 특별 출연했다거나 할 때 쓰는 말. 멋진 모습으로 출연해준 것만도 고마운데 겸손한 태도, 유쾌한 말솜씨까지 보여준다면 이런 기분일까? 정가 22,800원. 슈퍼울트라짱, 개이득. 짐 에드워즈 입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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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나는 틈만 나면 무슨 수를 써서든 책을 읽는 부모 밑에서 성장했다. 부모님은 매주 목요일밤마다 우리를 데리고 도서관에 가서 일주일 동안 읽을 책을 빌려 차에 싣고 왔다. 


(10쪽) 글쓰기는 아버지에게 집중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주의력을 집중한 다음 그들의 생각과 관찰 결과를 종이에 적도록 시켰다. 아버지의 학생들은 샌 쿠엔틴 감옥의 창작 교실에 참여한 수감자들이었다. 아버지는 나에게도 글쓰기를 가르쳤는데 대부분 예화를 통해서였다. 그는 수감자들과 나에게 매일 조금씩이라도 쓰도록 가르쳤고,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최대한의 명작과 희곡을 읽도록 시켰다. 시를 읽으라고도 했다. 그는 우리가 보다 대담해지고 독창적이 되기를, 그리고 자발적으로 실수를 범하는 인간이 되기를 원했다. "실패하지 않으려고 너무 안간힘 쓰느니, 차라리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까지 실패해 보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라고 한 카툰 작가 제임스 터버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맞는 말인지를 역설했다. 아버지는 수감자들과 내가 감수성과 관찰력이 풍부하다는 것과, 우리에게도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수많은 추억과 꿈과 의견이 있다는 것을(정말 그런지는 하느님만이 알겠지만) 자각하도록 도왔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의 감수성은 고작 파리 한 마리가 크림 위에 떨어진 것을 발견했을 때 아주 약간 화가 날 듯 말 듯 한 정도에 그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어느 시점에서 정말로 집중에서 무슨 글이든 쓸 수밖에 없었다.


(14쪽) 아버지가 서재 책상에 앉아 자기 책을 쓰는 동안, 나는 서재 바닥에 앉아 나만의 시를 썼다. 아버지는 2년마다 새 책을 발표했다. 


(15쪽) 이 모든 것은 나에게 나중에 작가가 되고 싶다는 욕구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즉 예술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면서도, 동시에 스스로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는 희귀한 노동 계층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살림이 결코 넉넉했던 적이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아버지는 충분한 돈을 벌지 못했다. 


(24쪽) 결국 나는 유명한 작가가 되고자 열아홉 살에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렇게 큰 포부를 안고 샌프란시스코로 옮겨갔건만 꿈을 실현하는 일은 요원하기만 했다. 나 자신의 무능을 처절히 깨닫고 하루하루를 눈물로 보냈다. 자신감이라곤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고, 불신과 자학 속에서 세상을 원망했다. 나는 그 도시의 거대한 건축 회사의 타자수로 취직을 했다. 외부와 차단된 품질 관리 부서에서, 해일처럼 밀려드는 삼중의 서식들과 메모들을 처리하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자칫 딴생각을 하다가는 꼬여 버릴 수 있는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따분하기도 해서 얼마 안 가 눈가에 고리 모양의 다크 서클이 생겨났다. 나는 마침내 이러한 서류 작업이 대부분, 그곳에 정말로 폭탄이라도 떨어지지 않는 한 영원히 헤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일을 소재로 짧은 단편소설도 썼다.

  "얼마간은 매일매일 써라."

  아버지는 항상 그렇게 말씀하셨다.

  "글쓰기를 피아노의 음계 연습하듯이 해라. 너 스스로 사전 조율을 하고 나서 말이다. 글쓰기를 체면상 갚아야 할 빚(노름빚)처럼 다루어라. 그리고 일들을 어떻게든 끝맺을 수 있도록 헌신해라."


(26쪽) 그런 생활을 몇 년이나 반복했다. 내 책을 내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최근에 어느 목사의 설교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는 "희망은 대변혁을 가져오는 인내심"이라고 말했다. 


(30쪽) 그러나 매번 예상은 빗나갔다.

  그런데도 여전히 나는 글을 쓰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들에게 글을 쓰라고 부추긴다. 다만 자기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출판이라는 게 생각만큼 화려한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충분히 일러둔다. 창작은 그 자체로 너무나 많은 것을 일깨워 주고, 가르쳐 주며, 또 수많은 놀라움을 준다. 실제로 글을 쓰기 위해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는 일이야말로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것은 마치 당신이 카페인을 좋아하므로 다도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상 당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은 다도 그 자체라는 것을 발견할 때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글쓰는 행위는 그 자체로 큰 부상을 돌려준다.


(42쪽)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도통 알 수가 없어요."

한 학생이 울먹이듯이 호소한다.

"당신의 유년 시절부터 시작해 보세요."


(62쪽) E. L. 닥터로는 이렇게 말했다.

  "소설 쓰기는 한밤중에 운전하는 것과 비슷하다. 당신은 오로지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만큼만 볼 수 있지만, 그런 방법으로 여행지까지 다다를 수 있다."


(62쪽) 다른 어디선가 이야기한 적 있지만, 언제나 거듭해서 내게 도움을 주는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겠다. 30년 전 당시 열 살이었던 나의 오빠는 새에 관한 리포트를 쓰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오빠는 3개월 기한을 부여받았지만, 마감 하루 전날까지 한 줄도 써놓지 않았다. 우리는 휴가차 볼리나스에 있는 가족의 오두막집에 가 있었고, 오빠는 식탁에 앉아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이었다. 종이 한 묶음과 연필과 열어 본 적 없는 새 도감들에 둘러싸인 채, 눈앞에 놓인 과제의 거대함에 짓눌려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가 옆에 앉더니, 오빠의 어깨에 팔을 얹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씩 하나씩. 새 한 마리 한 마리 차근차근 처리하면 돼."


(65쪽) 이제 짧은 글 한 편 쓰기보다 실질적으로 훨씬 더 효과적인 아이디어를 소개하겠다. 그것은 바로 '조잡한 초고'라는 개념이다. 


(71쪽) 거의 모든 명문도 형편없는 초고에서 시작된다. 당신은 일단 무슨 문장이든 써볼 필요가 있다. 내용은 상관없다. 시작이 반이라고, 종이 위에 쓰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 친구는 첫 번째 원고를 '내린 원고(down draft)'라고 부른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모두 종이에 내려 쓴 원고라는 뜻이다. 두 번째 원고는 '올린 원고(up draft)'라고 부른다. 한 번 수정하여 내용이 향상된 원고라는 뜻이다. 세 번째 원고는 '치과 원고(dental draft)'라고 부른다. 모든 치아를 하나씩 하나씩 다 검사하듯, 각각이 흔들거리는지 너무 붙었는지 썩었는지 혹은 하늘의 도우심으로 여전히 건강한지 살펴본 원고라는 뜻이다. 


(75쪽) 완벽주의는 압제자의 목소리이다. 


(75쪽) 완벽주의는 청소할 일이 두려워 되도록 어지르지 않고 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것들은 인생이 그만큼 활발히 굴러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원래 난잡함이란 대단히 풍부한 다산성의 땅이다. 

(76쪽) 당신은 그 모든 쓰레기 더미 속에서 새로운 보물을 발견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것을 깨끗하게 하거나, 어떤 것을 삭제하거나, 수정하거나, 움켜잡을 수도 있다. 단정함이란 어떤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정함은 내게 숨을 참는 상태나 정지된 만화 화면을 떠올리게 한다. 글쓰기란 그와 반대로 숨 쉬고 움직이는 것을 필요로 하는데 말이다. 

  나는 스물한 살 때 편도선 제거 수술을 받았다. 걸핏하면 목구멍이 붓는 체질이었고, 의사는 마침내 내 편도선을 제거해 버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 수술을 받은 후 일주일 동안 침을 삼키는 것만으로도 너무 목이 아파서 빨대 하나를 물려고 입을 벌리기도 힘든 지경이었다. 진통제 처방을 받았지만, 진통제를 먹어도 고통은 줄어들지 않았다. 나는 간호사를 불러 다른 처방을 받거나, 아니면 (내가 마약 중독을 우려하는 점을 고려해서) 다른 약과 혼합한 마약 처방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둘 다 들어주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상사와 말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간호사는 자기 상사가 점심을 먹으러 갔으며, 내게 다른 건 별로 필요 없고 단지 껌을 사서 열심히 씹으면 된다고 단호히 말했다. 껌을 씹는다니, 생각만 해도 목구멍이 꽉 막히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우리 몸은 상처를 입었을 때, 그 부위의 근육을 단단히 뭉침으로써 더 이상의 폭력이나 감염이 일어나지 않게 상처를 보호하려 한다. 그러므로 내가 그 경직된 근육을 다시 이완시키고 싶으면 그 근육을 충분히 사용해서 풀어줄 필요가 있다는 얘기였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 패미가 밖에 나가서 껌을 사다 주었고, 나는 마지못해 껌을 씹기 시작했다. 엄청난 적대감과 의심을 내비치면서 말이다. 처음 껌을 씹었을 때 목구멍 안쪽이 찢어지는 것 같았지만, 몇 분 더 씹자 모든 고통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96쪽) 내가 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미지가 하나 있다.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인데, 우리는 모두 출발할 때 자신만의 마음의 땅을 부여받는다고 했다. 당신도 하나, 무서운 필 삼촌도 하나, 나도 하나, 트리샤 닉슨도 하나, 모든 사람이 하나씩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한도 내에서, 당신은 정말 마음대로 자유롭게 땅을 활용하게 된다. 과일나무나 꽃들을 심거나, 채소를 알파벳 순서대로 분류해서 심을 수도 있고, 아무것도 안 하고 땅을 놀려도 상관없다. 거대한 창고형 마트처럼 만들고 싶다면, 혹은 폐차장으로 만들고 싶다면, 당장 그렇게 하면 된다. 땅 둘레에는 담장이 있고 문도 있는데, 만약 사람들이 계속 당신의 땅에 침범하여 땅을 망치거나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당신에게 시키려고 애쓴다면, 당신은 나가라고 요구할 수 있다. 그러면 그들은 나가야 한다. 왜냐하면 이곳은 당신의 땅이니까. 


(97쪽) 같은 이유로, 당신의 등장인물들도 자기만의 마음의 땅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각각 자기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그 땅을 돌보거나 방치한다. 당신이 글쓰기를 시작할 때 알고 싶어 하는 것중 한 가지는 바로 각 인물들 땅의 상태이다. 그 땅에 무엇을 기르며, 땅의 모양은 어떤가? 이러한 지식이 글에 그대로 나타나지는 않을지 모른다. 그래도 당신이 글로 형상화하고 있는 인물들의 내면의 삶에 대해서 최대한 많은 것을 발견할 필요가 있다. 


(97쪽) 당신은 스스로 만든 인물 가운데 일부는 편애할 것이다. 아마 그들은 당신의 분신이거나 혹은 당신의 일면을 지닌 사람일 테니까. 당신은 똑같은 이유로 일부 인물들은 미워할 것이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때로 당신이 사랑하는 일부 인물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이야기가 풍부하지 못할 테니까.


(98쪽) 좋은 인물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우리의 행동들이 필연적인 결과들을 가져오기 때문이고, 우리가 언제나 완벽하게 행동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고상하지 못한 행동을 한 탓에 당면한 결과로부터 당신이 그들을 보호하기 시작하는 순간, 당신의 이야기는 밋밋하고 재미없어질 것이다. 마치 지루한 현실 세계처럼 말이다. 


(105쪽) 보통 한 인물의 결점들은 그(그녀)를 오히려 호감이 가는 인물로 만든다. 나는 작중 화자를 선정할 때, 내가 평소 친구로 선택하는 사람들과 비슷한 사람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말하자면 나와 똑같이 수많은 결점을 지닌 사람들 말이다. 자의식이 강한 것도 나쁘지 않고, 일을 미루는 버릇이나, 자기기만, 어두운 성격, 질투, 비굴함, 탐욕, 중독 성향도 괜찮다. 그들은 너무 완벽해서는 안 된다. 완벽이란 공허하고 비현실적이며, 무엇보다 치명적인 건, 너무 따분하다. 


(105쪽) 나는 사람들이 희망을 품고 있었으면 한다. 친구든 소설 속 화자든 너무 빨리 자신은 희망이 없다는 것을 드러내면, 나는 흥미를 잃는다. 그런 상황은 나를 의기소침하게 한다.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면 과식을 하게 된다. 어떤 사람이 모든 면에서 유머러스하다면 그가 희망을 품고 있지 않더라도 괜찮다. 확실히, 다른 사람을 웃게 만들 수 있다는 건 일종의 희망이나 회복력을 뜻하기 때문이다. 


(105쪽) 우리는 모두 자기가 죽을 거라는 사실을 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운명에 직면한 우리가 어떤 종류의 인간으로 살아가느냐 하는 점이다. 

  가끔씩 기대와 달리 재미도 없고 그리 똑똑하지도 못한 사람들이 있지만, 어떤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 역시 훌륭한 친구나 화자가 될 수 있다. 특히 역경에서 살아남았거나 역경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 있다면 더 좋다. 이런 것은 언제 읽어도 재미있는 소재인데, 사실상 우리 모두의 앞에 놓인 과제이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한쪽 손은 이쪽 바위 위에 얹고, 다른 쪽 손은 저쪽 바위 위에 얹은 , 양쪽 엄지발가락으로는 잠깐이라도 디딜 만한 단단한 곳을 찾아 더듬거려야 할 때가 있다. 바위 표면을 가늠하느라, 웃고 떠들거나 샴페인을 터뜨리거나 재치를 부릴 시간도 없다.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매력적인지 아닌지 여부가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겪어야 할 일을 그들이 앞서서 그것도 품위 있게 해내는 것을 보면 그저 반갑고 기쁘다. 


(111쪽) 플롯은 캐릭터들로부터 비롯된다. 당신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에 초점을 맞춘다면, 책상에 앉아 당신이 그 인물에 대해 알아낸 것을 글로 쓰고 날마다 점점 더 그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낸다면, 어떤 사건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캐릭터들은 당신이 꿈꾸는 플롯을 위해 졸개 노릇을 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당신의 캐릭터에게 임의로 부여한 플롯은 플롯의 흉내에 불과하다. 


(112쪽) 나는 플롯에 대해서는 걱정 말라고 강조한다. 캐릭터에 대해서만 걱정하면 된다고. 그 인물들이 말하는 대로 말하게 내버려 두고, 자연스럽게 그들 자신을 드러내도록 하고, 그들의 삶을 살게 하라. 그러면서 호시탐탐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까?' 관계의 발전이 플롯을 창조한다. 


(112쪽) 그러니까 등장인물에 초첨을 맞추면 된다. 예를 들면 포크너의 소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그 소설 주인공들의 본성에서 비롯된다. 비록 그의 캐릭터들이 당신이 데이트하고 싶은 유형의 사람은 아니더라도, 그들은 우리를 사로잡는다. 우리는 그들이 실재하는 인물이며, 그들이 하는 일이 그들의 본성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믿게 된다. 우리는 그가 만든 소름끼치게 아름다운 캐릭터들 때문에 포크너를 읽는다. 


(113쪽) 각각의 인물이 세상에서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보라. 그걸 알아야만 무엇이 급선무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 발견을 행동으로 표현할 방법부터 찾아야 한다. 그런 다음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당신의 인물들이 그 일을 시작하거나 매달리거나 방어하도록 시키는 것이다. 그떄 가서 당신은 그들을 데리고 오거나, 나쁜 상황에서 좋은 상황으로 회복시키거나, 상실한 것을 되찾도록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인가는 위기 상황에 두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긴장도 만들 수 없을 것이고, 당신의 독자들은 페이지를 넘기지 못할 것이다. 


(113쪽) 하키 선수를 생각해 보라. 얼음 위에 하키공이 하나 정도 있는 게 좋다. 공이 없다면 그는 꽤나 우습게 보일 것이다. 


(117쪽) 드라마는 독자의 시선을 끌기 좋은 방법이다. 드라마의 기본 공식은 설정(setup), 발전(buildup), 클라이맥스(payoff)이다. 농담의 구조와 같다. 설정은 우리에게 게임의 공식이 무엇인지를 말해 준다. 발전은 당신이 모든 움직임과 방향 이동 방식을 집어넣는 곳으로, 거기에서 당신은 칠면조의 살을 모두 발라낼 수 있다. 클라이맥스는 '도대체 우리가 왜 여기까지 도달했는가?'라는 ㅈㄹ문에 대한 대답을 들려준다. 당신이 전달하려고 한 것은 무엇인가? 드라마는 앞쪽과 위쪽으로 움직여야 한다. 


(118쪽) 드라마엔 반드시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당신은 캐릭터들을 계속 앞으로 전진시킬 필요가 있다. 그들의 걸음이 아무리 느리다 하더라도 말이다. 


(122쪽) 나는 몇 년 전 앨리스 애덤스가 단편소설에 관해 강의하는 것을 들었다. 그 강의에서 거론된 한 가지 관점이 관객석에 있던 글쓰기 지망생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그 후부터 나도 내 학생들에게 그 관점을 전해 주게 되었다. 물론 나는 언제나 출처를 밝힌다. 그것은 ABDCE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은 Action(행동), Background(배경), Development(발전), Climax(절정), Ending(결말)을 말한다. 당신은 먼저 액션부터 취해야 하는데, 그것은 우리를 유인하기에 충분하고 그다음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백그라운드는 당신이 우리에게 이 캐릭터들이 누구인지, 그들이 어떻게 만났는지,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를 이해하도록 만든다. 그런 다음 이러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서서히 발전시켜서, 그들이 무엇에 가장 관심을 쏟는지를 우리에게 알려 준다. 그것들로부터 플롯과 드라마, 행동, 긴장이 자라날 것이다. 당신은 모든 것이 절정이라는 한 지점에서 만날 때까지 그들을 계속 몰아가고, 절정을 기점으로 주인공들은 모든 것이 변화된 것을 실질적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고 나면 결말이 따라온다. 이제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그들에게 남겨진 것이 무엇인지, 무슨 사건이 일어났고, 그것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우리는 어떤 느낌을 받았는가?


(352쪽) 글을 쓰고 읽는 일은 우리의 고독을 덜어 준다. 그것은 인생에 대한 우리의 감수성을 깊고 넓게 확장시킨다. 한마디로 그것은 우리 영혼의 양식이다. 작가들이 예리한 산문과 적확한 진실로 우리의 머리를 흔들어 놓을 때, 나아가 우리 자신이나 인생에 대해 웃음 짓게 만들 때, 우리는 낙천성을 되찾는다. 우리는 인생의 불합리라는 불협화음에 맞춰 춤을 추는 시도를 하거나, 적어도 따라서 손뼉을 친다. 거듭거듭 짓눌리는 대신 말이다. 그것은 바다에서 무시무시한 태풍이 불어올 때 배 위에서 노래를 하는 것과도 같다. 당신이 화난 풍랑을 잠재울 수는 없지만, 노래는 배 위에 함꼐 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을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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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잡지나 신문에서 어떤 작가의 글을 읽을 때 우리는 사실 두 명의 작가를 만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할 말이 있는 사람과 그 할 말을 적절하게 써내는 사람.

(중략)

디디온은 표현의 자연스러움과 자기가 하는 일을 진정으로 이해해야만 비로소 가질 수 있는 제어력을 추구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일상생활에서 엿보이는 형언할 수 없는 것들과 섬뜩함을 이해하기가 더 쉽다.


그러나 어떻게 그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까?


쓰는 행위, 작가가 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_힐튼 앨스(Hilton Als)

2020년 7월

「앨리시아와 대안 언론」


(41p.) 요즘 신문을 읽다 보면, 나는 AP통신의 전화선일 확률이 아주 높은 끈 같은 것에 목을 졸려서 뇌로 가는 산소 공급이 끊긴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에 빠지곤 한다. 그런 식으로 숨통을 막지 않는 몇 안 되는 예외는《월스트리트 저널》, 로스앤젤레스의《프리 프레스(Free Press)》와《오픈 시티(Open City)》, 그리고《이스트 빌리지 아더(East Village Other》뿐이다. 내가 재미있는 괴짜라든가, 괴팍하고, 엉뚱하고, 뭐랄까 취향이 근사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 모두에게 벌어지고 있는 매우 심각하고 독특한 현상, 즉 누구도 다른 사람과 직접 의사소통하지 못하는 현상, 미국 신문들이 독자들에게 '가닿도록'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는 현상에 관한 것이다. 《월스트리트 저널》(내가 거기에 실린 글의 내용에 거의 관심 없는 것은 논외로 하고)과 '대안' 매체에 실린 글들의 공통점은 독자들과 직접 의사소통한다는 점이다.  

(42p.)《프리 프레스》,《이스트 빌리지 아더》,《버클리 바브(Berkeley Barb)》 등을 비롯한 타블로이드 형식의 신문을 발행하는 언론사들은 젊은이와 소외 계층의 관심과 이익을 대변한다고 자부하는 곳들로, 상당히 작위적인 '객관성'을 코에 걸고 젠체하는 기성 언론들의 가식을 찾아볼 수 없다는 큰 장점이 있다.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나도 객관성을 매우 중요시한다. 하지만 글쓴이가 가진 편향성을 독자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나는 도저히 모르겠다. 모든 편향에서 자유로운 척하며 쓴 글에는 대안 매체에 아직 전염되지 않은 가식과 허위가 가득할 수밖에 없고, 《월스트리트 저널》 등에는 발도 들일 수 없을 것이다. 대안 신문에 글을 기고하는 사람은 자기가 무엇에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으면, 그렇다고 밝힌다. 누가, 무엇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같은 요소를 무시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의견부터 분명히 밝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대안으로 불리는 신문들이 딱히 은밀한 지하 세계에서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뉴욕의 34번가 남쪽에는 《이스트 빌리지 아더》가 발에 밟힐 정도로 널렸고, 로스앤젤레스의 회계사들은 선셋 스트립에 점심 먹으로 가는 길에 일상적으로 《프리 프레스》를 집어 들곤 할 정도가 아닌가. 사람들은 흔이 이런 신문들이 전문적이지 못하고(사실 그렇다), 되잖게 우습고(사실 그렇다), 따분하고(사실 그렇지 않다), 실제 정보에 그다지 얽매이지 않느다고 불평한다. 실제로 대안 신문들에 담긴 정보량은 극도로 적다. 평화 행진 소식, 로큰롤 그룹이 착취 세력에 합류한 소식(가령, 어느 그룹이 레코드를 발매했다거나 주류 무대 공연 계약을 맺었다거나, 하는 배신의 소식), 멕시칸 낙태를 시도하다 하혈이 너무 심해져 응급실에 가서, 초진하는 인턴이 꼬치꾀치 캐물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관한 패트리샤 매기니스의 조언["패트리샤와 로위나 거너 두 사라람, 혹은 둘 중 하나가 임신 중절을 도왔다고 마음 놓고 말하세요. 다른 사람 이름은 입에 올리지 마세요. 우리는 체포당하려고 애쓰는 중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거든요."], 열다섯 살 난 마약 거래상의 반성("마약을 거래하려면, 정말 평생직장이라는 생각으로 임해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죠."), 과속 운전은 살인 행위라는 훈계 등으로 지면이 채워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말하자면, 오늘자 《프리 프레스》 내용은 다음 주나 다다음 주 《프리 프레스》에 실리는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특히 약물 사용자들, 혹은 게릴라 혁명 운동가들 내부에 생기고 있는 분열 소식을 건성으로 대하는 사람에게는 《로스앤젤레스 프리 프레스》, 《이스트 비리지 아더》, 《버클리 바브》, 《피프스 에스테이트》,《워싱턴 프리 프레스》가 모두 비슷비슷해 보일 것이다.

 

(44p.) 나는 대안 신문에서 내가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팩트'를 발견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러나 '팩트'를 알기 위해 이런 신문을 읽는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이 신문들의 특출난 점은 바로 독자들에게 직선적으로 의사 표현하면서 말을 건다는 점이다. 그들은 독자들을 무엇인가 걱정하거나 마음이 상한 친구로 가정하고, 솔직하게 말하면 이해할 것으로 생각한다. 공통의 윤리관을 가진, 말이 통하는 독자들을 상대로 한다는 추정 덕분에 이런 신문에 실리는 글은 타당성과 설득력을 갖추게 된다. 


(45p.) 최근《프리 프레스》에는 '앨리시아'라는 이름의 독자가 앤아버시(*미시간대학교가 있는 미국의 대학 도시이다)를 분석한 글이 실렸다. 글쓴이는 이 도시의 성격을 세 줄로 요약해서 하이쿠를 방불케 하는 간결 명료함을 과시했다. '교수들과 교수 부인들은 비트 세대 출신들(버클리, 57년 졸업생들)로 평화 행진에 참여하고 우탄트(U Thant)에게 수선화를 선물하는 사람들이다. 일부 아이들은 아직도 티모시 리어리(Timothy Leary)와 칼릴 지브란(Kahllil Gibran)을 신봉한다. 그 아이들의 부모 중 일부는 아직도 킨제이 보고서를 믿는다.'

  이 신문들은 기존 신문의 관습을 무시하고, 하고자 하는 말을 직설적으로 해버린다. 단호하고 자신만만하지만, 신경에 거슬리지 않는다. 그 글들이 범하는 실수는 친구로서 할 만한 실례이지, 모놀리스(Monolith)로서의 우(訧)는 아니다. [물론 모놀리스는 대안 언론에서 가장 선호하는 단어이며, 몇 안 되는 세 개의 음절로 된 단어 중 하나이다.] 


(46p.) 대안 신문에 기고된 글의 시각은 아무리 둔한 독자라도 놓치기가 힘들다. 기성 매체의 훌륭한 신문들은 입에 올리지 않지만, 그 배후에 매우 강한 태도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런 시각을 절대 언급하지도, 인정하지도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습지 식물이 썩을 때 내뿜는 부식 가스 같은 것이 독자와 신문지를 자욱하게 감싸곤 한다. 《뉴욕 타임스》를 읽고 있자면, 내 안에서 불쾌한 소작민의 공격 본능이 깨어나고, 영화 〈카루셀(Carousel)〉에서 가난한 주인공의 맨발의 딸이 되어 스노가의 아이들이 맥조지 번디(McGeorge Bundy),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하워드 러스크(Haward Rusk) 박사 같은 당대의 지성인들과 주일 만찬을 하기 위해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47p.) 풍요의 뿔이 넘쳐나고, 황금 십자가가 번쩍인다. 회전목마 호객 담당인 딸은 무정부 상태를 꿈꾸면서 스노가의 아이들이 어젯밤은 어두웠다고 말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뉴욕 타임스》나《로스앤젤레스 타임스》보다 낮은 수준의 신문들은 보도되는 뉴스를 신뢰하고 말고를 논하기 전에 뉴스가 전달되는지 여부 자체가 문제다. 이런 신문들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을 보도할 때면, 송신되어 들어오는 텔레타이프를 손에 넣은 원숭이가 여기저기 아무 구절이나 넣고, 보도 자료를 조금 삽입해 놓은 듯한 글을 읽는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다. 열일곱 살이 되던 해 여름, 나는 한 신문사에서 일했다. 날마다 제일 중요한 일은 경쟁사의 기사를 자르고 재조합해서 새 기사를 써내는 일이었다.("우리를 교란하기 위해 심어놓은 기사인지 확인해." 일하기 시작한 첫날 내가 들은 조언이다.) 게다가 그런 종류의 작업은 지역 전체에 걸쳐 매우 활발하게 벌어지는 일이라는 인상이 짙었다. '카운티 감독관들, 빈민가를 밀고 하워드 존슨 호텔을 건축할 계획을 세우 노스 에어리어 부동산업자들을 칭송하다', '자선 사업에 열심인 상류층 여성들, 최근 구입한 말기 암 치요용 의료기를 둘러 보다', '디어 애비', '마음의 거울' 등등. 


(48p.) 혀가 입 밖으로 축 처지게 나올 정도로 졸음이 오고, 현실은 저만치 멀어진다. 35면에는 '세미너리? 세미터리? 사전이 절실한 초등학생'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파두카, 켄터키(연합통신) 주일학교 선생님인 케이 파울러가 세미너리(Seminary, 신학교)가 무엇인지 몯자 한 소년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사람들을 묻는 곳(세미터리, Cemetery)이에요.' 그런 기사가 35면에 실린 신문이라면, 1면에 실린 기사도 믿을 수 없다. 

  낮은 수준의 언론이 원숭이 손에 있다면, 높은 수준의 언론은 암호가 장악하고 있다. '잘 알고 있다', 혹은 '소식에 정통하다'라고 간주되려면, '진짜 스토리', 즉 신문에 실리지 않은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통한다는 사실 자체가 현재 미국 언론에 팽배한 통념이 무엇인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신문들이 공식적 윤리를 반영하고, '책임감 있게' 일해주기를 기대하게 됐다.


(49p.) 존경받는 신문기자는 더는 적이 아니라 비밀을 털어놓는 친구이자 참여자다. 그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대통령 고문 역할을 하고, 월터 로이터(Walter Reuther), 헨리 포드(Henry Ford)와 식사하고, 르 클럽에서 헨리 포드의 딸과 춤을 추는 생활이다. 그런 다음 어깨를 누르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암호로 가득한 기사를 쓴다. 앨리시아는 책임감 따위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앨리시아는 르 클럽 같은 곳에 절대 가지 않는다. 앨리시아는 아마 앤아버를 벗어난 세상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를 확률이 높다. 그러나 그녀는 앤아버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내게 말해준다.

 


책임감 따위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앨리시아를 본받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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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셉 수업 -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잘 팔리는 비즈니스로 이끄는
호소다 다카히로 지음, 지소연.권희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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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오엔씨이피티 CONCEPT, 기말 과제 판넬 작업할 때 맨처음 쓰는 글자, 꼭 이렇게 전체 대문자로 쓰는 단어. 내가 쓴 컨셉을 읽으면서 ˝그래서 진짜 컨셉이 뭔데?˝라고 되묻는 교수님 앞에서 버벅거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제라도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수 있게 해줘서 고마운 책. 컨셉 수업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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