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기로 오며 일변한편 느낀 것이, "세상은 본디 태평한데 어리석은 것이 시끄럽게 한다" 天下本無事 庸人擾之耳는 옛말의 옳음이었다. 주제넘게 천곡만탄千谷萬灘"을 제 것으로 치려는 욕심에 몹쓸 짓도 마다 않고 바둥거리는 못된 것들만 없다면 모두가 자연스러움을 되찾을 것이 주어진 이치였다.-35쪽
땅 위에 도생倒生하는 것들은 죄다 하늘의 이치를 고이 따르고 있었다. 임자 없는 것들은 제 성질대로 살고, 임자 만난 것들도 제구실을 다하며 살고 있었다. 하찮은 풀꽃도 수채 옆이나 두엄더미 곁에서 핀 것은 한결 이뻐 보이고, 같은 이삭이라도 자갈투성이의 메진 땅에서 맺힌 것들은 훨씬 여물게 영글어 있었다. 물뭍 것을 가리기 전에, 먹고 못 먹는 것을 따지기 전에, 모든 것은 싱싱하고 싱그럽고 소담하게 살고 있었다. 심지어 바위는 늙은 것일수록 듬직한 것 같고 자갈은 어릴수록 야무져 보였으니, 오히려 여리고 가냘프며 풍덩한 것으로는 오로지 사람이 있을 따름이었다.-35~36쪽
그러므로 대뜸 가장 고맙던 것은, 이웃과 마을 사람들이 예사람들에 견줄 만큼 어진 것이었다. 나는 이삿짐을 풀던 자리에서 이웃 사람들을 만나 이튿날부터 서로 벗 삼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니, 실로 교천언심交淺言深의 본보기라고 흰소리해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세상살이에서 되게 어렵기로는 사람 잘 만남과 견줄 것이 없음이 확실할진대, 내 스스로 인덕이 있는 자라고 깨친 것은 문단 선배ㆍ친구들의 이낌을 받아 오면서였지만, 그것을 보다 입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두 번째 계기는 우리게 이웃 사람들의 관심이었다고 믿는다. 우리게 사람들은 낯선 자를 다룸에 있어 되바라진 도시 사람들과 달리, 상대방의 직업이나 생활 규모를 엿보기 전에 자기 인심을 먼저 쓰며, 상대방의 무심한 정도를 가늠하기보다 자기 관심을 먼저 주는 것이 예사였다. -36쪽
그들은 내가 보아 온 서울 사람들보다 훨씬 헐벗고 못 먹을 분 아니라, 인물을 가꾸고 모양을 찾기는 고사하고 붙여 문 담배마저 태울 겨를이 없게 흙의 노예로 산다. 그러므로 속으로 꾸미는 게 없고 겉으로 여미는 게 없으며, 공연한 흉내나 허드레 군말도 짐짓 시늉할 줄을 모른다. 생긴 대로 안팎을 열어 놓으니, 그들과 죽이 맞아 한가지로 사는 내 마음의 개운하고 후련함을 무엇에 비겨 끄적거릴 것인가. -36쪽
나는 서울에서 얻은 갖은 주접들, 잔뜩 주눅 들어 지르숙은 어깨, 갈수록 지들어 오종종해진 가슴, 해야 할 소리 마음대로 못해 받침이 분명치 않은 말투, 치미는 부아, 끓는 열통, 못 터뜨려 어혈 들었던 오장육부를 말짱 내던지고, 그들의 한패가 되어 장단 맞추며 논다. -37쪽
단추 떨어진 여름살이에 검정 고무신을 꿰면 삼동네를 싸질러 다녀도 남 보매가 없고, 얼김에 들어 이름 없이 성만 아는 집이라도 스스럼 타지 않고 툇마루에 걸터앉아, 가물어 쓰디쓴 오이 한두 개로 몰래 걸러 우물에 채워 둔 농주를 축낸 뒤 하늘을 잡아 내려 멍석 삼아 쓰러져 잠드니, 이 위에 더 바랄 것이 없다.-37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