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는 비록 ‘이아(이상한 아빠)‘지만 아주 멋진 사람이다. 정말이다. 아빠도 나처럼 시인이다. 나와 아빠의 차이라면, 나는 시를 쓰지만, 아빠는 쓰지 않는다는 정도다. 아빠는 시를 쓰지 않는 시인이다. 하지만 아빠는 시인 그 자체다. 생김새나 걷는 모습, 말투만 봐도 누구나 대번에 ‘아, 이 사람 시인이군.‘ 하고 알아챌 수 있다.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38쪽
아빠가 멋진 이유는 또 있다. 누가 아빠에게 "뭐하세요?" 하고 물으면 아빠는 "장군이에요.", "시인입니다.", "소방수예요." 따위의 케케묵은 대답 대신에 이렇게 말했다. "전 지금 숨 쉬는 중인데요!"-39쪽
"제 시는요, 어떨 때는 제 생각이 아니라 아빠 생각이에요. 아빠는 적는 걸 잊어버리지만, 전 잊지 않고 다 적으니까요." 할머니가 말했다. "아가, 그건 네 머리에서 나오는 거야. 확실해. 헤리트가 정말 시를 쓸 마음이 있으면 자기가 연필을 쥐고 써야지." 아빠의 진짜 이름은 ‘스픽‘이 아니라 ‘헤리트‘이다. "암, 그렇고말고." 할아버지가 맞장구를 쳤다. 나는 생각에 잠겼고, 조금 슬퍼졌다. 내가 아빠의 시를 대신 적을 수 없다면, 아빠의 시는 아무도 읽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그 시들은 아빠의 머릿속에 영영 숨어 버리고 말 것이다.-52쪽
아빠가 물었다. "너 시인이 되고 싶다고 했지?" "응." "내, 시 수천 수를 지어서 돌아오마." 나는 아빠의 말을 믿었다. 하지만 예전만큼은 아니었다. 내가 말했다. "그래도 내 시가 더 많을 거야." 아빠가 물었다. "왜?" "난 벌써 시를 쓰기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아빤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잖아."-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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