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세상을 더듬다
저우쭝웨이 글, 주잉춘 그림, 장영권 옮김 / 펜타그램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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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빠름~ 빠름~ 빠름~' 하는 광고를 자주 봅니다. 엘티이 워프~ 하는 광고 말입니다.

어릴땐 골목길에서 이런 노래를 부르며 놀기도 했습니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기차는 빨러 빨르면 비행기~'

말하자면 제가 어릴땐 기차하고 비행기가 빨랐고, 요즘은 엘티이 스마트폰 정도는 되어야 빠른 축에 낀다고 하겠습니다.

교통 수단으로만 쳐도요, 요즘은 기차가 빠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 않나요?

빨리 가려면 비행기를 타던지 KTX를 타니까요.

 

그런데 달팽이는요, 예나 지금이나 느림의 대명사입니다. 물론 거북이도 있고 나무 늘보도 있긴 하지만 말이지요.

빠른 쪽으로는 계속 변화가 일어나는데 느린 쪽으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빠른 것의 가치는 계속 부각되어가는데 느린 것의 가치는 점차 사그라들어 사람들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될 지경입니다.  

 

『달팽이, 세상을 더듬다』는 느림의 대명사인 달팽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그림책입니다.

『달팽이, 세상을 더듬다』는 그림책이라서 그림을 빼면 얘기가 안됩니다.

『달팽이, 세상을 더듬다』에 나오는 그림은 아름답습니다. 세밀화 같기도 하고 수채화 같기도 하고 동양화 같기도 하다가, 그게 뭐가 중요해. 아름다우면 됐지. 이런 생각이 들만큼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그림을 보는 방법은 참 여러가지입니다.

한 눈에 쓱- 볼 수도 있고 코를 박고 자세히 들여다 볼 수도 있고 하나 하나 뜯어 볼 수도 있지요.

저는 무엇보다 '느리게' 보려고 신경썼습니다.

 

가능하다면 지은이가 이 그림을 그린 속도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그 정도로 느리게 볼 수 있을까? 나에게 그런 능력이 있을까? 그런 인내심이? 그런 섬세함이? 하고 갸웃거리면서

최대한 느리게 보려고 노력하며 보았습니다.

 

처음엔 그림만 봤습니다. 글도 꽤 있는 편이지만 글씨가 아주 작아서 대부분 손바닥 하나로 가릴 수 있는 정도라 그림만 보는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림만 보면서 어떤 내용일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두번째도 그림만 봤습니다. 나라면 이런 그림에 어떤 글을 써 넣을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런 다음 세번째에는 글만 읽었습니다. 그림만 보는 것과 달리 글만 따로 읽기는 어려웠습니다. 끝까지 고집하지 않고 중간에 멈추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아무튼 이제 네번째 읽기 시작입니다. 네번째 읽기에 드디어 그림과 글을 함께 봅니다.

 

놀라운 것은, 제가 생각한 것과 지은이가 써 놓은 글이 아주 달르다는 사실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런데 딱 한 장, 맨 마지막 장은 신기할만큼 비슷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기분이 참 좋습니다.

지은이와 내 생각이 달라서 기분이 좋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맨 마지막엔 같은 길을 걷기 시작한것 같아서

또 기분이 좋습니다.

 

처음엔 '멸종 위기에 처한 느림의 가치'를 되살려보자는 어줍잖은 이유로 이 책을 선택해서 읽었지만

지금은, 내가 걱정하는 것과 달리 세상이, 사람들이, 우리가, 내가, 당신이,

제 속도를 찾아낼 것이라고 믿고 빠르든 느리든 길을 가자는 생각을 하며 

리뷰를 썼습니다.

 

시간이 너무 빨라서 멀미 나는 분이나 반대로

너무 느려서 답답해 죽겠는 분,

속도 조정이 필요한 모든 분께 이 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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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3 0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03 1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2-07-03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빠르든 느리든 자신만의 속도로 가보자구요.
좋은아침이에요, 메리포핀스님^^

잘잘라 2012-07-03 10:11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하늘이 맑아요. 아직 바람도 선선하구요. 오늘은 딱 요 속도, 살랑 살랑, 요 속도로 가고 싶어요. ^_______^

2012-07-03 1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