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사는 법 - 지리산 자락에 정착한 어느 디자이너의 행복한 귀촌일기
권산 지음 / 북하우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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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기서 뭐하나?
지인들조차 가끔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나의 대답은 퉁명스럽다.
     - 내가 여기서 뭐하겠나?
서울이었다면 겪지 않아도 되는 질문이다. 단지 시골에 산다는 이유로 겪어야 하는 질문이다. 따라서 서울이건 시골이건 무시해도 되는 질문이다. 세상에는 서울에 사는 디자이너도 있고 시골에 사는 디자이너도 있다. 사는 곳이 바뀐다고 먹고사는 방식을 바꿀 필요는 없다. "거기서 뭐하나" 라는 질문 속에는 "도대체 너의 생각은 뭐냐?"라는 밑장을 한 장 깔고 있다. 특별하게 생각이 바뀐 것도 없다. 그래서 역시 나의 대답은 또 퉁명스럽다. "넌 특별한 생각 가지고 서울에 사냐?" (4쪽, 여는 글, '거처를 위하여' 에서)
 
   

책 제목에 끌려서 읽은 책,
다 읽고 나니 제목이 좀 약하다는 느낌이다.
내용에 비해 제목이 딸린다, 라는게 내가 이 책에 보내는 애정 표현이다.
좀 더 멋지고, 좀 더 임팩트 있는(?) 그런 제목을 달아주시지요!  

1963년에 부산에서 태어나서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지만 일찍 '붓'을 꺾었던 남자가
2006년에 아내와 함께 전라남도 구례로 귀촌해서
4년 간 쓴 일기장이다. 

구례에서, 농사가 아닌 '웹사이트 운영'으로 밥벌이를 하면서
살아온 4년이라는 시간에 대한 리뷰. 그래서 내가 따로 책에 대한 리뷰를
쓸 건 없지싶다.

그냥 궁금하면 읽어보시라.
참고로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퉁명스런 말투로, 그러나 참 '그럴듯한'(백배 공감이 간다는,
또는 믿어진다는 뜻임) 귀촌 현실을 풀어내는 작가에게 빠져들어
하루만에 다 읽어버렸다. 

유기농 밀가루 재배 과정을 기록하고, 지리산닷컴 회원들에게 판매한
이야기에서 부터, 3부 '이웃과의 인터뷰'에 나오는 한 사람 한 사람 이야기에
감동받는다.

나도 귀촌할 생각이다. (귀농 말고) 헌데 산 마을 말고,
바다 가까운 곳으로 갈거다. 바다 마을 귀촌 일기 예약!!!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아주 훌륭한 가이드북이다. 



▼ 재미있는 분류 하나,

   
  귀향이 아닌 귀농이나 귀촌인 경우 몇 가지 유형이 있다. 도식화할 수는 없지만 귀농이나 귀촌에 관심 있는 분들이 많으니 한번 카테고리를 정리해보자. 

     1. 은퇴형 귀촌
     55세 이상의 연령층이 많다. 보통 농사를 짓지 않는다. 남은 생에 대한 여유자금이 있다. 서울에 여전히 집 한 채 정도 유지하는 경우도 많다. 원두커피와 음향장비를 가지고 있다. 지역민이 되는 것은 주요한 관심사가 아니다. 주소지가 귀촌한 지역이 아닌 경우도 제법 있다. 전원생활을 즐긴다. 보통은 기존 마을 주민들과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다. 외식이 일반화되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차茶를 구입하고 즐긴다. 

     2. 계획형 귀농
     수년간 준비한다. 도시에서 비교적 안정적이거나 버틸 만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도시생활이 맞지 않고, 도시는 사람 살 곳이 못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이 많은 편이다. 도시 시절부터 책장에는 니어링 부부의 책이 구비되어 있었다. 아이들 교육문제가 귀농 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단기적인 '버티기 자금'을 준비하지만 대략 '농사지어 생활하기'는 미션 임파서블에 가까우므로 삼 년 안에 쌈짓돈이 바닥난다. 진정한 버티기로 돌입해서 자구책을 찾거나 다시 도시로 떠난다. 처음에는 원두커피와 음향장비를 가지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간혹 귀농에 대한 후회가 밀려들기도 하지만 돌아갈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도시에서 다시 집을 마련할 방도가 없다. 하지만 대략 버틸 수는 있다. 집과 약간의 농사지을 땅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이민 간 대학교수 출신이 세탁소를 운영하듯이 도시에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막일도 점점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차를 만들어 판매한다. 

     3. 허술한 귀촌
     여행 왔다가 밤하늘의 별을 보다 "자기 우리 여기 살자! 어차피 도시에서 답도 없는데"라는 말을 시작으로 사태가 전개되기도 한다. 기존 시스템 속에서 애당초 자리 잡기 힘든 이력들인 경우가 많다. (나도 이 카테고리에 속한다) 대개 자력으로 집을 짓거나 마련하기 힘들다. 빈집을 노리거나 저렴한 가격의 농가를 개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넉넉치 않은 자금력으로 아주 단기간을 버티거나 약간의 농지를 대농하거나 이런저런 일들, 가령 녹차나 효소 만들기, 계절별로 농산물 수확하는 품앗이 등을 습득하면서 저렴하고 부정기적인 수입을 확보한다. 하지만 농사가 아닌 다른 방도를 찾는 데 항상 집중한다.
    대부분 블로그를 가지고 있고 '그러나 자연 속에서 행복하다'는 포스팅을 하고 시스템 종료하고 나면 바로 경제문제로 부부싸움에 돌입한다. 원두커피와 제대로 된 음향장비로 음악을 즐기고 싶지만 시설 자체가 없다. 이런 사람들은 차를 만드는 곳에서 품을 판다. 

     4. 포괄적으로 예술가들
     저렴한 작업장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지역 특성상 도자, 목공, 염색 등의 공예 족이 많은데 재료 공급 등의 환경적인 면과 적은 돈으로 공간 마련이라는 현실적인 측면이 결합한다. 농사일에는 비교적 관심이 없다. 할 수 없이 간혹 품앗이에 동원되나 일을 하는 내내 '이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다'는 생각이 강하다. 마을 주민들과 소통이 원활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불화하지는 않는다. 근본적으로 사람들이 착하거나 현실대응력이 지극히 미약하다. 따라서 도시로 돌아갈 생각도 거의 하지 않는다. 18세기가 아닌 관계로 사실 시장에서 성공하는 예술가들은 골프장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낭만적인 미학관이 강하여 이런 현실과 타협하지 못한다.
     '원래 잃을 것이 없다'는 사고방식은 계속 버틸 수 있는 강력한 자산이다. (나는 이 카테고리에도 속한다) 이런 사람들은 간혹 누군가에게서 차를 얻는다. 

     이상은 삼 년차 귀촌인의 약간 비장하면서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이다. 평소 '객관은 없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분명한 것은 도시에서건 시골에서건 사람은 경제에 가장 많이 지배당한다. (199~201쪽)
 
   
 
아무튼, 나는 지금 도시인이고, 귀촌한다면 위에서 말한 1번과 4번을 합하고
거기에 또 나만의 이야기를 섞은 새로운 형태로 하고 싶다.
그동안, 이 책과 아래 사이트를 많이 참조할 생각이다.

▶지리산닷컴
www.jirisan.com
▶운조루 사이트 www.unjoru.net 
▶농부 홍순영 사이트 
www.ecosoon.com  

리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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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1-08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좋나요? 별 다섯이네요!
안 그래도 어제 한줄 리뷰 올리신거 보고, 혹 하는 마음에
책 상세 설명을 보러 들어갔답니다.

꼭 농사 짓는 것은 아니지만, 작은 마을로서 옹기종기 사는 형태인거죠?
아.. 어떨까요?

잘잘라 2010-11-08 09:38   좋아요 0 | URL
한마디로 아주 솔직한 책이예요. 그러면서도 재미있어요. 제 생각에 하이라이트는 3부, 인터뷰 기사가 아닐까 해요. 사람이야기라서 그렇겠죠. '어떻게 사는가'에 대해 고민하는 질긴 면두 있구.. 암튼, 살아가는 이야기,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 여운이 길어요. 강추!^^

herenow 2010-11-17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렁 책바구니에 담아두었습니다.
저도 '귀농'이라면 후덜덜하지만 이런 식의 '귀촌'이라면 귀가 솔깃!
요렇게 긴 글을 타이핑해두신 걸 보니 컨디션은 빨리 회복되신 듯?!

잘잘라 2010-11-17 22:40   좋아요 0 | URL
저어기.. 귀농이든 귀촌이든 우선 결혼은 하고봐야겠던데, 그게 좀 걸려요. 이리 저리 알아봐도, 농사를 짓든 안짓든, 촌에서 자리잡으려면 돈보다는 가족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아참, 그리고 저는 수간호사에게 인정받은 '모범 환자'였다는,, 자랑이었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