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 속에서 살았다. 독서는 흔히 한 책을 골라서 그 속을 처음부터 끝까지 여행하는 일로 묘사되지만, 내 경우에는 그것은 물론이거니와 아예 그 속에 터를 잡고 산 책들도 있었다. 몇번이나 다시 읽었던 책들, 그러고는 이후에도 종종 그 세계에 들어가고 싶고, 그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고, 그 작가의 생각과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아무 쪽이나 펼쳐 들곤 한 책들이었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이 그랬다. 어슐러 K. 르 귄의 어시스 시리즈, 프랭크 허버트의 《듄》, 더 나중에는 E. M. 포스터, 윌라 캐더, 마이클 온다치, 어른이 된 후 다시 읽은 몇몇 동화책, 더 이전에는 문학적 가치가 미미한 숱한 소설들이 그랬다. 사방 지리를 속속들이 아는 그 영토들 속을 나는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줄거리를 알고자 딱 한 번 읽고 마는 책에서는 낯선 감각이 보상이라면, 그 영토들에서는 친숙함이 보상이었다.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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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3-25 17: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득 내 맘에 터를 잡고 사는 책들이 뭘까 생각하게 되네요 ㅎㅎ 잘잘라님 맘에 터 잡고 사는 책들은 뭐가 있을까요 *^^*

잘잘라 2022-03-26 15:41   좋아요 1 | URL
잘잘라 마음 너무 좁아서, 저 하나로도 너무 갑갑해서, ㅎㅎ... 대신 아주 아주 가벼워서 이리로 저리로,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나풀 나풀 잘 돌아다녀요. 방금도 미니님 서재에 폴폴폴 다녀오는 길입니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