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월러스》라는 잡지에 제이슨 구리엘이 쓴 「난 당신 인생에 관심 없다. 왜 비평가들은 에세이에서 개인적인 얘기를 그만해야 하는가」 라는 글이 실렸다. 이 글에서 구리엘은 고백과 비평 형식을 뒤섞는 데 개탄한다. 자기 생각에만 빠진 형편없는 고백은 순수하게 비평이 될 수도 있었을 글의 효과를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 P13

구리엘의 글이 나온지 일주일 쯤 지나서 맨디 렌 캐트런이 「당신은 내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일인칭 대명사는 사소하지 않다. 그것은 핵심적이다.」라는 반박문을 실었다. 그녀는 구리엘의 입장이 왜 문제인지 핵심을 찌르는 이야기를 여러 번 언급했다.

예를 들자면, 고백적인 글을 나르시시즘과 나태함과 뒤섞은 의도가 무엇인가?

또는, 모든 글에는 우리의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이 깊이, 본질적으로 침윤되어 있다. 얼마나 많은 특권을 누리기에 이런 당연한 사실도 모를 수 있단 말인가? - P15

부당함에 저항하고 이를 바꾸려면 제일 먼저 부당함을 알아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런 부당한 힘을 언제 보게 되는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 P22

가부장 문화가 우리에게 다르게 작용하지만, 각자의 삶의 현실이 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 가는 일이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현실 속에서 세상을 살아 나간다. 때로 운이 좋다면 그런 현실들은 공통성을 갖는다. 역시 운이 좋다면 전혀 다를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서로에게 배우고 우리의 공감 능력을 실천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자신의 근시안을 통해서 보는 때가 너무나 많다. 우리 길만 힘들고 "그들의 길"은 "우리"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완전히 틀린 생각이다. 편협하기 짝이 없다. 비겁한 생각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정상이기도 하다. 최소한 정상으로 통한다.
*
그러면 어디에서 시작할까? - P38

학생들이 던진 질문과 내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을 생각하고 있다. 압제적 시스템을 해체하고, 분해하고, 불태우는 일이 이토록 엄청나 보이는데, 어디에서 시작할까?

먼저, 우리 자신의 위치를 찾는다. 그다음에 우리의 시야를 넓힌다. 그리고 다시 우리 위치를 찾는다. 그리고 반복한다. - P39

이 글을 쓰면서 가끔 숨을 멈추거나 진짜로 손을 비틀면서 컴퓨터 화면을 뚫어지도록 쳐다본다. 심장이 마구 뛰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혹은 날카로워진다. 소리 지르고 싶지만, 누구에게 소리 지르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분노의 신체적 효과가 다른 식으로 나타나곤 한다. 피로. 절망. 글을 쓰면서 운다. 거기에 또 화가 난다. 콧물이 줄줄 흐른다. 아닌 줄 알면서도 약해진 기분이 든다. 우는 것이 나약함의 표시가 아닌 줄 안다. 누군가 이 글을 읽어줄까? 읽어준다면 나를 공격하는 데 이용할까? 벌써 항의 메일을 예상한다.

이렇게 일상적으로 나를 따라다니는 분노를 상기시켜 주는 신체 증상들을 경험할 때마다, 그것들ㅡ이런 느낌들ㅡ또한 강간 문화의 일부가 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그런 감정들을 처리하고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 낸다. 이것은 일이다. - P67

정말로 열심히 일했고 자격을 넘치게 갖추었는데도 정규직을 얻을 기회를 부당하게 빼앗겼을 때 당연히 화가 났다. 간신히 정신을 추스리고 나서(그렇다, 내 파트너가 몇 달 동아 나를 도와주었다), 입에서 분노의 말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내게서 분노가 스며 나왔다. 다른 이들도 부당하다고 내게 동조해 주었기 때문에 기분은 좋았다. 아주 명쾌했다. 잘못된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좀 지나고, 매일같이 분노를 느끼며 몇 달을 보낸 후, 내가 하는 말이 내 말처럼 들리지 않을 만큼 격한 분노로 부들부들 떠는 시간이 지나고 나니, 정당한 분노라 해도 더는 나를 지탱해 주지 못했다. 지금이라고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 부당한 일은 공개적으로 인정되지도 않고 바로잡히지도 않았지만, 여전히 이 분야에서 일한 지 십 년이 넘었어도 안정된 자리를 얻지 못했지만, 내 분노가 다 가시지 않았지만, 내 정당함은 다 타서 소진되었다. - P73

적당히 설명하고 넘기려는 데 맞서기. 축소하는 내러티브에 맞서기. 희생자에 대한 비난에 맞서기. 내면화에 맞서 공적 토론의 또 다른 형태로 나아가기. - P75

어떻게 대화가 공격인 방어의 무기가 될 수 있는지(고마워요, 제인 오스틴), 어떻게 세상에 관습에서 벗어난 미인으로 보이는 것이("추함", "못생김", 나다움) 배움을 위한 전복적인 공간을 만들어 주는지(고마워요, 샬럿 브론테), 계급에 묶여 움직이다 보면 어떻게 자기가 자신 최대의 적이 될 수 있는지(고마워요, 플로베르/마담 보바리), 글쓰기가 어떻게 기억과 저항의 도구가 될 수 있는지(나를 가르쳐 주고 당신들의 말과 친해지게 해 주어서 고마워요, 안네 프랑크, 마야 엔절로), 난폭함이 어떻게 일종의 거부가 될 수 있느지(고마워요, 에밀리 브론테)를 배웠다.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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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8-26 14: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당함을 알아보는 법... 결국 정확한 판단력이 관건인 셈이네요. ^^

잘잘라 2021-08-26 15:04   좋아요 1 | URL
놀면서 돈 버는 법, 혼자 사는 법, 같이 사는 법, 세금 덜 내는 법, 포기하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 면역력 높이는 법, 말하는 법, 듣는 법, 읽는 법, 쓰는 법, 피하는 법, 싸우는 법, 예방하는 법, 법, 법, 법.... 배울 게 참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