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골 농부의 둘째딸로 태어났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지역 신문사 수습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열 여덟 살이었다. 나이로 보면 아버지뻘인 신문사 소유주이자 지역의 유력한 사업가였던 남자가 나에게 퍼부은 애정공세를 받아들여 임신을 했지만, 그는 두번째 부인과 이혼소송 중이었고 나는 그와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아이는 낳기를 원했고, 방법을 찾아냈고, 아이를 낳기 위해 고향을 떠났다. 


스무살에 미혼모로 타국에서 아들을 낳아, 아이는 위탁 가정에 맡기고 나는 곧 먹고 살 길을 모색하였다. 직업 학교에 들어가 타이핑, 회계, 속기, 비즈니스 서신 작성법 등을 배운 것이다. 능률적이고 활기 넘치며 붙임성 있는 성격으로 나는 어떤 직장에서도 어렵지않게 적응했다. 타이핑, 속기에 능했으며 영어와 독일어 서신 작성도 문제 없었다. 


나의 매력에 빠진 남자와 스물 다섯 살에 결혼했다. 그 사이 아들은 위탁가정에서 시골 친정집으로 옮긴 상태였다. 남편은 아홉 살 연상으로, 나와 사귀기 전에는 부인과 이혼 절차를 밟고 있었다. 나는 친정부모님이 맡아주셨던 아들을 데리고 직장 상사이자 이혼남인 남자와 새로운 가정을 꾸린 것이다. 


결혼한 지 3년 만에 딸을 낳았다. 네 명의 가족이 된 후 서른 한 살 무렵 다시 종일제로 일하기 시작했다.


내 나이 33살에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나는 전쟁에 관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국가기밀 정보기관에서 편지 검열 일을 하기도 했다. 


내 나이 44살에는 아들의 아들이 태어났다. 이른바 할머니가 된 것이다. 


내 나이 46살에 남편이 죽었다. 55세, 사망 원인은 알콜중독이었다.


내 나이 55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내 나이 63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내 나이 68살에 오빠가 죽었다.


내 나이 80살에 아들이 죽었다.


나는 96살이 되던 해 1월, 잠자는 동안 세상을 떠났다.


나는 남편이 죽은 뒤로 50년을 더 살았고,

아들이 죽은 뒤로는 16년을 더 살았다. 

내가 세상을 떠날 때, 간호사 두 명과 의사 한 명, 그리고 내 딸이 그곳에 서있었다. 


결혼 전 내 이름은 아스트리드 에릭손,

결혼 후 내 이름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나는 『삐삐 롱스타킹』을 쓴 작가다.


나는 평생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 받았다.

나는 매일 글을 쓰고 책을 읽고 편지를 쓰고, 이야기를 생각했다. 아직도 수없이 많은 곳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듣는다. 세상을 떠나서도 내가 살아있는 이유다.


그들에게 사랑을!

그들에게 평화를!!

그들에게 편지를!!!



1952년 11월, 아스트리드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다. "일요일 저녁에 군보르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는 카린과 북부 공동묘지로 가서 스투레의 묘비 앞에 촛불을 켰어요. 만성절이니까요. 거의 모든 묘지마다 타오르는 촛불이 어둠 속에서 참 아름답게 빛났어요. 그리고 엄마, 난 모든 비석에 적혀 있는 비문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그들이 몇 살에 세상을 떴는지 살펴봤어요. 스투레만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게 아니란 걸 자신에게 납득시키려는 듯이 말이죠. 맙소사, 정말 많은 사람들이 너무 일찍 숨졌어요!" 

- 『우리가 이토록 작고 외롭지 않다면』(285p.)



날짜가 없는 1961년도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루이제, 울적하고 좌절감을 느끼면서 편지를 쓰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만 그래도 난 이 편지를 끄적거리고 있어. 너의 답장으로 위로받고 싶으니까.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뭔가 긍정적인 답을 듣고 싶어. 혹시 생각나는 게 있다면 말이지. 나는 모든 것이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느껴져. 어쩌면 이 어두운 나라에 햇볕이 들지 않기 때문인지도 몰라."

- 『우리가 이토록 작고 외롭지 않다면』(446p.)



 
















『우리가 이토록 작고 외롭지 않다면』을 읽고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읽고 『사라진 나라』도 읽고, 읽었지만 읽고 또 읽는다.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뭔가 긍정적인 답을 듣고 싶어. 혹시 생각나는 게 있다면 말이지.'


맙소사, 정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일찍 숨졌어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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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7-08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잘라님 얘긴 줄 알고 몰입해 읽다가 으잉? 했잖아요~ㅎㅎㅎㅎ

잘잘라 2021-07-09 00:23   좋아요 0 | URL
붕붕툐툐님께 사랑을~~ 평화를~~~!!!